쟌 모리스의 50년간의 유럽여행
쟌 모리스 지음, 박유안 옮김 / 바람구두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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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작가든 자신의 이력을 쓸 때 성별을 밝히지는 않는다. 하지만 [50년간의 유럽여행]의 저자(쟌 모리스)만큼은 밝혀야 할 필요성을 느낄 듯싶다.  "1926년 웨일즈에서 사내아이로 태어남. 30세에 [더 타임즈] 기자를 사임하고 여행기 전업작가로 나섬. [베네치아], [스페인], [옥스포드] 등의 여행에세이를 발표하여 좋은 평가를 받고 [팍스 브리타니카] 3부작으로 문학적 성취를 이룸. 1964년 이후 8년에 걸쳐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을 전환하는 수술을 받고, 46세의 나이(1972)에 쟌 모리스라는 여인으로 거듭남. 성전환 후에도 왕성하게 여행기를 집필함. 웨일즈에서 자신과의 사이에 다섯 아이를 낳은 과거의 아내를 '파트너'라고 부르며 자매처럼 지내고 있음." 이 책 [쟌 모르스의 50년간의 유럽여행]은 제임스 모리스와 쟌 모르스의 합작품이다. 어떤 것을 바라보는 시선에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이 구별되는 거라면, 이 책은 두 개의 성적 시선이 하나가 되거나 혹은 교직되는, 그래서 '중성적'이 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기묘한 책읽기를 경험시킨다. 가령, 그가 여자가 된 뒤의 어느 해(1980년대) 오리엔트 특급 안에서 채록한 세 개의 에피소드들은 이 경험을 지극히 날것으로 제공한다.

* 한 미국 아주머니가 다른 여인에게 얘기한다. "나는 늘 말이죠, 내 아이는 마마보이로 키우지 않겠다고 얘기했답니다. 저 사람 어머니가 애를 그렇게 키웠거든요." 그녀가 고개짓으로 옆자리의 자기 남편을 가리켰다. 기차는 덜컹대고 수프 숟가락이 달그락거리고, 그동안 두 부인이 문제의 그 남편을 쏘아본다. "베네치아 가면 우리 저 남자 아는 척도 하지 맙시다." 아내 되는 여인이 그렇게 말했다.(p.389-390)

* 신혼여행 중인 듯한 젊은 앵글랜드 여인이 말한다. "우와! 저 성 좀 보세요. 정말 아름답죠?" 젊은 잉글랜드인 남편은 "그거 성이잖아. 성은 성이지 뭐. 성 처음 보는 것도 아니면서..." 라며 면박을 준다. 그녀는 입을 꼭 다물고 생각에 잠기는 눈치이고, 그는 방해 당했던 스릴러 소설 읽기를 다시 시작한다.(p390)

* 한 미국인 사내가 내게 말한다. "이 책 꼭 읽어보세요. 런던에서부터 계속 이 책만 읽고 있어요. 책 제목이 [하느님이 나의 사장]이지요. [하느님이 나의 사장], 그게 제목이구요. 저자는 널리 알려진 사람은 아니지만 자기 가게 높은 데다 '주님이 나의 관리인'이라고 써붙여 두었다네요. 인스부르크 도착 시간이 언제죠? 거기서는 햄버거를 살 수 있겠죠?"(p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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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유 2004-11-23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존재에 대한 히스테리증자[대개 여자]의 주된 질문이 "내가 남자인가 여자인가"라면 강박증자[대개 남자]의 경우엔 "내가 죽었는가 살았는가"라던, 라캉의 말이 뜬금없이 생각납니다...

책먹는하마 2004-11-24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캉은 남근과 성기를 구별했지요. 남근은 기표고 상징이니까 여자가 상실한 건 남근이 아니라 성기일 뿐이라고 그러지요. 신경증은 결국 남근의 문제는 아니다, 그런 건데, 그런 점에서 쟌 모리스 같은 이는 결코 신경증 따위에는 시달리지 않을 듯...^^;;

레드페퍼 2005-06-08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고 싶은 책이 너무 많네요. 으~ 리스트에 넣습니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