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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자본주의라는 용어의 문제에 대해 간단히 언급해 두고 싶다. ‘인지’라는 말은 주로 과학용어로 사용된다. 인지과학이라는 용어를 통해 비교적 널리 알려진 ‘인지’는 신경생리학, 뇌과학, 컴퓨터공학, 심리학, 교육학 등의 용어로도 자주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추세 때문에 정치경제학 용어인 ‘자본주의’라는 말과 ‘인지’라는 용어의 결합은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바로 이 생소함이야말로 우리가 인지라는 말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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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 다중, 아우또노미아... 조정환 하면 함께 떠오르는 개념이다. 물론 캘리니코스, 네그리, 하먼 등의 이름도 빼놓을 수 없다. 그의 연구를 거칠게 정리하면 '현대 세계의 성격과 구조를 탐구하고 이 조건 속에서 가능한 사회변혁의 가능성과 방법을 고민'하는 학문이라 하겠다. <인지자본주의>는 이 여정의 일단락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번 책은 입론이라 변혁의 대안에 대해서는 <혁명의 세계사>(가제)에서 따로 다룰 계획이라 한다. 다중이 어느새 (그 내용에 대한 이해를 떠나) 익숙한 표현이 되었듯이, 인지자본주의도 세계를 이해하는 새롭고 강력한 틀로 자리잡을 수 있을까? 몇 가지 질문과 답변, 서문을 통해 <인지자본주의>를 읽기 위한 준비운동을 제안한다.
Q. 인지자본주의는 신자유주의, 금융자본주의, 탈산업사회 등의 다른 이름인가?
이것들이 사유하는 대상은 거의 같다. 하지만 신자유주의론은 자본주의 정책 형태의 변화를 중심에 놓고 사고하며 그것의 대안은 주로 사회(민주)주의적 정책변경에서 찾아진다. 금융자본주의론은 자본형태를 중심으로 사유하며 그것의 대안은 지금까지 주로 산업자본에서 찾아졌다. 탈산업사회론은 주로 기술형태를 중심으로 사유하며 그것의 초점은 대안기술과 문화에 모아졌다. 인지자본주의론은 노동형태의 변화를 중심으로 사고하며 그 대안은 노동의 대안적 자기조직화이다.
Q. 인지자본주의는 산업자본주의의 한 유형일 뿐, 자본주의의 새로운 국면은 아니라는 주장이 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인지활동도 신체를 사용하며 신체에 의존한다. 인지노동은 육체노동에 대립하는 노동이 아니라 육체노동이 확장되고 진화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인지노동은 산업노동과 연속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지노동은 산업노동으로 환원될 수 없다. 산업자본주의에서 육체노동은 정신노동과 분업적으로 구별되었고 심지어 대립되었다. 구상과 실행의 분리가 그것이다. 인지자본주의에서 이 분업적 구별과 분리는 사라진다. 육체노동이 인지화하며 인지노동이 육체화한다. 그 결과 모든 노동은 육체노동이면서 동시에 인지노동이라는 이중적 성격을 띠고 나타난다. 인지자본주의를 산업자본주의로 환원하는 것은 이 핵심적인 변화를 간과하면서 인지화가 가져오는 변화의 여러 지점들을 놓친다. 이 책에서 내가 분석하는 것은 인지화가 가져오는 실제적 변화들, 그 결과들, 그리고 의미들이다.
Q. 인지자본주의론이 인지노동자들을 특권화시키지는 않겠는가?
인지자본주의에서는 대학이 공장으로 되고 메트로폴리스가 미술관으로 되고 국가가 스펙타클로 된다. 이것의 영향으로 전통적 공장들도 점점 디자인 작업실로 바뀐다. 이런 의미에서 인지노동의 헤게모니가 나타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이 학생, 예술가, 공무원 등을 인지노동자로 특화할 수 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모든 노동들이 인지노동의 성격을 더 많이 띠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원자력발전소의 노동자들을 전통적 산업노동자로 부를 수 있겠는가? 고도의 지식을 요하는 유기농산물 생산자를 농민이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인지노동은 산업노동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산업의 메트로폴리스로의 확장이며 또 그것의 변화한 특질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지노동의 헤게모니를 말하는 것이 인지노동자의 정치적 특권이나 헤게모니를 의미할 수는 없다.
Q. 인지자본주의론은 공통되기를 위한 인지혁명을 주장한다. 그렇다면 인지자본주의론은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등 인지적 성격이 강한 신기술의 영역을 운동과 혁명의 핵심영역으로 간주하는가? 예컨대 최근의 아랍혁명을 SNS 혁명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전통적 관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SNS는 표현수단에 불과했고 실제로는 노동운동이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고 말한다.
인지자본주의론은 기술을 노동과의 관계 속에서, 그리고 자본과 노동의 적대관계 속에서 고려하지 그 자체로 독립적인 것으로 고려하지 않는다.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폭발한 혁명의 성격을 묘사하면서 그것을 페이스북 혁명이라거나 트윗 혁명이라는 말로 묘사하는 것은 그러므로 일면적이다. 튀니지와 이집트의 경우에 대해 특히 그러하다. 이러한 말들의 유행은 혁명을 테크롤로지 의존적인 것으로 표상할 위험성이 있다. 이러한 표상은 혁명을 기술적 지적 엘리뜨의 과업으로 만들고 이러한 테크놀로지에서 소외되어 있는 대중들의 혁명적 역할을 간과하거나 폄하할 수 있다
반면 고전적 혁명 관념을 가진 사람들은 트윗이나 페이스북은 발화수단일 뿐, 진정한 혁명은 공장에서 파업을 통해 준비되어 왔고 또 그것을 통해 완성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SNS나 그와 연관되어 있는 사람들(학생과 청년들)를 주변적이거나 종속적인 힘으로 묘사한다. 이러한 관점은 20세기 운동의 표상을 현재로까지 가져와 육체적 산업노동자들을 중심에 놓으면서 새로운 노동자층의 혁명적 역할을 간과하거나 폄하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 두 관점은 모두 현존하는 혁명능력들을 축소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SNS는 오늘날의 공장이다. 사회적 인지력을 연결하는 망은 공장노동자들을 연결하는 콘베이어벨트와 같다. 내가 현대의 메트로폴리스를 거대공장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런 의미에서이다. 이것을 통해 가치생산이 이루어지고 축적이 이루어진다. SNS 사용자들을 산업공장의 노동자들과 구별짓는 것은 그들의 생산방식이나 그 생산과정의 특성일 뿐이다. 자본주의적 생산과 재생산의 구성부분이라는 점에서 양자는 동일하다. 그러므로 SNS가 생산의 장소가 아니라 혁명의 장소로 사용된다는 것은 공장이 점거되어 파업투쟁의 장소로 사용되는 것과 같다. 그것은 투쟁의 특권적 장소로 파악되어서도 안 되며 투쟁을 보조하는 종속적 장소로 파악되어서도 안 된다. 메트로폴리스에서의 혁명은 산업적 투쟁과 사회적 투쟁 그리고 담론적 투쟁 모두를 위계 없는 관계로서 포괄한다. 이 각각을 서로 연결되어야 할 특이한 투쟁력들로 파악할 때에만 현대의 혁명이 뿌리에까지 이르는 혁명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책머리에]
과거에 비해 오늘날의 사람들은 어느 나라 어느 곳에서나, 유사한 경험을 한다. 실업으로 인해 소득은 줄어들고 치솟는 물가로 인해 상품들의 문턱은 높아지며 양극화로 인해 가난하다는 느낌은 점점 깊어진다. 역사적 공동체들을 대체한 국가는 지배계급을 옹호하는 이익집단으로 행동하고 제국은 소수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에 의해 조종당한다.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주의적 사회관계에 의해, 특히 사적 이익집단들에 의해 무차별적으로 이용당한 지구생태계는 단말마의 신음을 내뿜으며 점점 인간에 적대적인 양상을 드러내고 있다. 이런 것들로 인해 개개인들은 점점 더 의외의 시간에, 의외의 방식으로, 질병에 걸리거나 죽게 되고, 인류 전체가 종말의 시간을 맞이하고 있다는 묵시록적인 공포의 정서가 일상세계에서뿐만 아니라 학술세계에서도 전염병처럼 확산되고 있다. 이럴수록 사람들의 삶은 고통스럽고 무의미한 것으로 되고 공포와 절망의 감정은 모든 윤리적 감각을 마비시키는 마취제로 작용한다.
그리고 어느 나라 어느 곳에서나 통치집단들의 모습도 비슷하다. 뻔한 거짓말을 지겹도록 늘어놓고 모든 것을 돈에 종속시킨다. 심지어는 인도주의라는 말조차도 자원약탈과 제국주의적 침략의 수사학으로 이용한다. 정치, 경제, 교육, 미디어, 종교, 군대 등 모든 영역들에서 지배집단들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뿌리깊은 부패의 사슬에 연루되어 있다. 그래서 이들은 더 자주, 그리고 더 깊이 사람들 사이의 경쟁에, 집단들 사이의 갈등에, 그리고 전 지구적인 전쟁에 의존한다. 그리하여 정치가들이 자신의 지역을 멋지게 가꾸었다고 자랑하는 목소리가 높으면 높을수록 그 지역의 오염과 훼손은 심각해지고, 주가가 떨어지건 고공행진을 하건 대중들의 가난은 깊어가고 GNP 지표가 하락하건 수 만 달러를 가리키건 하루 2달러 미만으로 사는 사람들의 수는 늘어나고, 텔레비전 드라마와 광고가 꿈같이 화려한 세계를 누구나 만져보고 싶도록 연출해서 보여주면 그럴수록 일상의 삶은 그 만큼 더 비루해지며, 구원이 가까왔다는 목소리가 높아질수록 행복은 아득하게 멀게만 느껴진다.
부와 가난의 양극화는 권력과 무력의 양극화로, 탐욕의 끝모르는 질주와 희망의 추락이라는 양극화로, 마천루 높은 곳에서 아래를 굽어 보는 삶과 뒷골목 쓰레기통을 뒤지는 삶의 양극화로 이어진다. 조산(早産)된 21세기는 1968년 혁명에서 시작해서 부채위기로 점철되었고 냉전을 제국적 내전들과 테러에 대한 전쟁으로 대체했으며 2008년의 금융위기로 조로(早老)현상을 드러냈다. 나는 이 조로하고 있는 21세기의 자본주의를 인지자본주의라는 말로 명명했다.
현대 사회를 인지자본주의로 파악하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한국에서 지난 이 십 여 년 동안 이루어져온 연구들의 많은 부분은 인지자본주의의 증상들과 결과들을 탐구하는 데 바쳐졌다. 인지자본주의가 고용에 미치는 영향에 집중하는 실업, 비정규직, 불안정노동이라는 대중화된 주제들, 인지자본주의가 소득에 미치는 영향에 집중하는 88세대론이나 양극화론, 인지자본주의가 주체 재구성에 미치는 영향에 집중하는 신세대론을 비롯한 각종의 세대론과 청년론, 인지자본주의가 과학과 테크놀로지 발전에 미치는 영향에 집중하는 인지과학, 생명공학, 정보화론, 인지자본주의가 공간재구성에 미치는 영향에 집중하는 도시개발론, 메트로폴리스론, 환경공학, 인지자본주의가 기업형태 변화에 미치는 영향에 집중하는 네트워크 기업론이나 사회적 기업론, 인지자본주의가 대중의 문화체험에 미치는 영향에 집중하는 스펙타클론이나 시뮬라크르론, 인지자본주의가 가져오는 권력형태의 미시적 재구성에 집중하는 우리안의 파시즘론, 대중독재론, 부드러운 파시즘론, 인지자본주의가 자연에 미치는 영향에 집중하는 다양한 생태론, 인지자본주의가 성별 문제에 미치는 영향에 집중하는 돌봄노동론과 페미니즘론 등등의 주제가 그러하다. 인지자본주의론은 이 미시적이고 다양한 탐구들이 천착하고 더듬어온 문제들을 노동형태 및 자본형태의 변화, 그리고 이 둘 사이의 사회적 관계의 변화라는 거시적 틀 속에서 종합하고 각각의 문제들의 위치를 밝히며 총체적인 발전의 경향을 밝히려는 시도이다.
우리가 분석 대상으로 삼은 인지자본주의는, 2011년에 들어 발생한 두 개의 사건들을 통해 자신이 발전과정에서 불러낸 힘들을 그 자신이 통제할 없음을 고백하고 있다. 그 중 하나는 일본 대지진에 뒤이은 원자로 폭발과 방사능 위기이며 또 하나는 북아프리카 및 중동에서의 연쇄적이고 연속적인 혁명이다. 원자력 발전은 우라늄이라는 자연물질을 이용하는 것이지만 그것의 분열과정은 인간의 과학기술에 의해 인지적으로 정교하게 조직되어 있다. 인간은 핵분열 조작을 통해 거대한 핵에너지를 인공적으로 발생시키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후쿠시마 원자로의 폭발과 누출되는 방사능에 대한 통제불가능의 상황은 인지자본주의가 거대한 힘을 불러낼 수는 있지만 그것을 그 자신이 통제할 수 없을 수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원자 에너지는 켤 수는 있지만 끌 수 없는 불이다. 인간은 그것을 냉각시킬 수 있을 뿐이고 수 만, 수 십 만, 아니 수 십 억 년에 걸쳐 진행될 그것의 반감을 기다릴 수 있을 뿐이다. 일본 핵상황의 불확실성은 전 세계에 불안과 공포를 확산시키고 있다.
아프리카와 중동에서의 혁명은 이 통제불가능성의 또 다른 예이다. 인지자본주의는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핵연료인 우라늄을 비롯한 막대한 광물자원과 석유자원을 채굴했고 그것으로 거대한 자본을 축적했다. 2011년, 이 지역의 다중들의 혁명과 그것의 연쇄적 확산은 인지자본주의가 빠져 있는 통제불가능성과 무능력을 전혀 다른 방향에서 보여준다. 튀니지에서 시작된 혁명은 이집트로 확산되었고 이어 리비아, 알제리, 모리타니 등의 아프리카 지역 뿐만 아니라 예맨,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오만, 시리아, 팔레스타인 등 중동의 전 지역으로 확산되었고 이 지역에 통제불가능성과 불확실성을 확대시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절실해지는 것은 우리가 속해 있는 인지자본주의가 어디에서 와서 지금 어떻게 운동하고 있고 무엇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가, 하는 물음이다. 이 물음은,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진보와 실천의 물음뿐만 아니라 우리의 능력 가운데 무엇을 발전시키고 무엇을 억제해야 하는가 라는 윤리적 선택과 자제의 물음도 포함해야 한다.
1991년 사회주의 소련이 붕괴하고 미국에 의해 새로운 세계질서가 선포되었을 때, 문제는 그 새로운 세계질서의 성격, 그것의 구조, 그것의 내적 모순, 그리고 그것의 동학에 대한 탐구였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우리로 하여금 냉전 이후의 이 통합된 세계질서가 가져오는 새로운 주권형태가 무엇인가를 탐구하도록 우리를 이끌었다. 그 탐구의 결실은 네트워크 주권형태로서의 제국에 대한 개념화로 나타났다. 그러나 2001년 9/11 사건과 그에 대한 미국의 대응으로서의 테러에 대한 전쟁, 그리고 그에 뒤이어진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제2차 걸프전은 제국의 형상을 수정했다. 9/11 사건은 군주국 미국이 정치적으로 뿐만 아니라 군사적으로도 도전받는 상태에 있다는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이러한 상황을 이용해 미국은 제국의 다원주의적 합의 체제를 깨뜨리고 일방주의적으로 행동하는 쿠데타를 감행했다. 테러에 대한 전쟁이라는 이름 하에서 수행되어온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은 이 일방주의적 행동의 산물이다. 그러나 이 전쟁들은 미국을 단독적 군주국으로 만들어주기는커녕 미국을 더 깊은 수렁으로 끌어들였다. 10년 여 계속되고 있는 이 전쟁은 제국 내부에 커다란 긴장과 갈등을 불러왔을 뿐만 아니라 미국을 정치적 군사적으로 실추시켰고, 2008년의 금융위기는 미국의 이 쿠데타가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미국의 종말을, 나아가 세계자본주의의 결정적 위기를 불러오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제국의 위기가 자본주의의 결정적 위기로 이어진 것이다. 금융위기는 세계경제위기를 불러오면서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 수습되기는커녕 나날이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 세계적 수준에서 다중의 저항과 혁명은 이러한 상황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대응으로서, 라틴아메리카에서 아시아로, 아시에서 유럽으로, 유럽에서 아프리카로, 아프리카에서 중동으로 순환하고 있는, 다중의 전 지구적 대장정의 형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2008년 이후의 위기는 자본주의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현 시대를 재조명하는 과제를 절실한 것으로 만든다. 많은 경제학자들은 이것을 자본주의의 순환적 위기의 한 국면으로 간주하곤 한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인지자본주의하에서 누적되어온 위기의 축적과 그 축적된 위기가 갖는 탈순환적이고 구조적인 성격을 간과하는 것이다. 이것은 과거의 경험을 통해 현재를 해석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 나는 현재의 위기의 구조적 성격을 규명하는 한편, 현재의 체제 속에 자본과 노동의 적대가 고스란히 살아 있음을 확인하면서도 그것이 결코 고전적 형태 그대로가 아니고 변용된 형태로 살아있음을 밝힐 것이다. 이 작업은 우리 시대에 가능한 혁명의 기원과 경향과 형태를 밝히는 작업-이 작업은 곧 출간될『혁명의 세계사』(가제)에서 이루어질 것이다-의 필수적인 전제가 될 것이다.
지난해부터 이 책을 준비하면서 나는 지난 십 여 년 동안의 나의 연구과제 대부분이 바로 현대 세계의 성격과 구조를 탐구하고 이 조건 속에서 가능한 사회변혁의 가능성과 방법을 탐구하는 데 바쳐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철학을 다루든, 정치경제를 다루든, 문학예술을 다루든, 늘 나의 문제의식이 이 문제를 중심으로 회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나는 지난 해 이후 의식적으로 이 책의 발간을 목표로 기고활동을 조직하고 이 책의 기획 이전에 썼던 글들을 이 책의 취지에 맞게 편집하고 수정했으며 일관된 서술체계를 부여했다. 이 책은 인지자본주의의 구조와 특성에 대해 서술한 책이기 때문에 대안을 찾는 데 관심을 갖고 있는 독자들을 충분히 만족시켜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각 장의 끝 부분과 책의 마지막 부분, 그리고 간주곡에 해당하는 몇 편의 글을 통해, 그 대안이 고려해야 할 거시적 조건들과 대안이 추구되어야 할 커다란 방향이 제시되거나 최소한 암시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 하지만 그 서술의 내용은 이 책에 필요한 범위에 제한되었다. 이 책에서 다루어지지 못한 사회혁명적 대안문제에 관해서 나는, 『혁명의 세계사』에서 역사서술적 방식을 통해 좀 더 상세하게 다룰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