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쉽지만 마리 여사의 강의 지상중계는 오늘로 막을 내립니다. 네 번에 불과하지만 너무 질질 끌었나 싶은 생각도 해봅니다. 마지막 강의는 '국제화'와 '글로벌리제이션'의 의미를 통해 세계질서의 변동에 대응하는 일본인의 자세를 보여줍니다. 우리 모습을 빗대어본다면 어떻게 말할 수 있을지. 앞서 말씀드렸듯이 이제 마리 여사의 책은 세 권 남았습니다. 계획대로라면 올해 안에 완간이 될 터인데 더 많은 이들이 곱씹을 수 있도록 널리 알려지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문득 일본에서는 마리 여사를 어떻게 기억하고 추억하는지 궁금해지네요. 참고 삼아 알라딘에서 진행한 요네하라 마리 리뷰 대회 페이지를 소개합니다. 한번 살펴볼 만합니다. 

http://www.aladin.co.kr/events/wevent_detail_book.aspx?pn=100802_mari_end 

 

제4장. ‘국제화와 글로벌리제이션 사이’에서

이미 국제화를 이루었지만

비일상적이라고 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미 국제적인 교류랄까 다른 나라와의 교류는 일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 한편으로 일본인의 의식 속에는 전통적으로 국제적인 일은 비일상이라는 관성의 법칙(외부로부터 힘이 가해지지 않는 한 현재의 상태를 유지하려는 성질)이 아직도 남아 있다. 마음속에도, 행동양식에도 이 관성의 법칙이 살아 있어서 현실은 이미 국제적인데도 마음은 여전히 비非국제적인 상태 그대로다.
  국제적이게 된 요인으로는 먼저 교통수단과 운반수단의 발달을 들 수 있다. 굳이 목숨을 걸고 바다를 건너지 않아도 비행기로 한번에 외국에 갈 수 있다. 국경이라는 울타리가 차츰 낮아지고 있다. 또 통신수단이 발달해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일도 몇 초 후면 텔레비전 중계로 방송되고 인터넷으로 전해진다. 눈 깜짝할 사이에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난 일들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다. 유럽에서는 10여 년 전에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되어 체제의 벽이 없어졌다. 그래서 다국적 기업이 자원을 조달할 때도 국경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최근 일본의 엔화가 약세다. 경제 불황이 이어져 엔화가 힘을 쓰지 못한다고 하는데, 그래도 국제적으로 보면 엔화의 수준은 상당히 높고 강하다. 그러면 일본에 값싼 노동력이 자꾸 들어온다. 외국인이 일본 열도로 몰려든다. 그런 의미에서도 현실에서 일본은 이미 국제화되어 있다. 다른 국가와의 교류가 증가하고 있다.
  바다는 더 이상 국경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국제화는 비일상이 아니라 일상이 되었는데도 뉴스를 봐도 그렇고, 일반인들을 봐도 그렇고, 세계나 국제라는 말을 들으면 약간 흥분한다. 이웃현縣의 손님보다 외국 손님이 오면 흥분하는 것과 같은 게 아닐까? 아무튼 일상의 연장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국제화는 영어로 뭘까

어떤 이유에선지 사람들은 일상적인 일이 아니면 평상심을 잃는데, ‘국제’와 ‘국제화’에 대해 차분히 생각해보자.
  ‘국제화’라는 말에 우리는 많은 개념을 뒤섞어 집어넣고 있는 게 아닐까? 일본어로 ‘국제적’이라고 할 때와 ‘국제화’라고 할 때 똑같이 ‘국제’라는 단어를 쓰는데, 영어로 ‘국제적’은 ‘international’이다. 그럼 ‘국제화’라고 할 때는 ‘internationalization’이라고 하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이 말을 쓰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사전에도 나와 있다. 그런데 ‘국제화’라는 의미는 아니다. ‘internationalization’은 ‘국제 관리화’라는 뜻이다.
  파나마 운하를 예로 들어보자. 남북 아메리카를 잇는 잘록한 땅이 있는데 그곳이 바로 파나마라는 나라다. 파나마 운하는 파나마 지협地峽을 횡단해 태평양과 카리브해(대서양)를 잇는 장소라서, 그곳의 이권을 쥐는 것은 교통이나 군사적인 면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 파나마 운하를 한 나라가 아닌 국제 공동 통치하에 두어 관리한다고 할 때 ‘internationalization’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일본은 미국, 소련, 프랑스, 중국 등 아홉 개의 나라로 이루어진 연합국—연합국은 9개국이었던 걸로 기억한다—의 통치하에 놓였다. 국제 공동 통치하에 놓인 것이다. 독일도 그랬다. 이런 경우에 ‘internationalization’이라는 말을 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국제화’는 영어로 어떻게 번역할까? 사전에 나와 있듯이 ‘globalization’, 글로벌리제이션 혹은 글로벌라이제이션이라고 한다.
  일본인이 ‘국제화’라고 말할 때 그것은 어떤 의미일까? 일본은 장사 습관이나 행정 방법 등 많은 것들이 특수한 나라로, 국제사회와는 약간 다르다. 그래서 일본인의 양식을 국제사회의 양식에 맞추지 않으면 안 된다. 일본인이 국제화라고 말할 때는 국제 양식에 맞추는 것, 흔히 글로벌 스탠더드global standard라 말하는 세계 표준에 맞춘다는 의미다.
 


글로벌리제이션의 진짜 의미

그럼 ‘국제화’로 번역되는 ‘글로벌리제이션’은 어떤 의미일까? 글로벌리제이션이라는 용어의 중심 개념은 ‘글로브globe’다. 글로브는 지구의 구球, ‘지구의地球儀’를 말한다. ‘영어로 지구는 earth인데?’라고 생각할 텐데, 글로브는 지구가 구형인 것, 즉 둥근 것을 강조할 때 사용한다. 글로벌리제이션은 영어니까 영국과 미국이 자신들의 기준, 자신들의 표준으로 세계를 뒤덮으려는 것이 글로벌리제이션이다.
  그래서 나는 동시통역을 할 때, 일본인이 국제화라고 말하면 거의 자동적으로 글로벌리제이션—러시아어니까 글로발리자치야Глобализация—이라고 번역했는데, 지금 말한 것처럼 사실은 반대 의미다. 앞서 말했지만 ‘국제화’라 할 때 일본인이 말하는 국제화는 국제적인 기준에 자신들이 맞춘다는 의미다. 지구촌, 국제사회에 맞춰간다는 의미.
  미국인이 말하는 글로벌리제이션은 자신들의 기준을 세계에 보편화한다는 의미다. 자신들은 달라지지 않는다. 자신들은 정당하고 정의롭다. 자신들이 법이다. 이것을 세계 각국에 강요하는 것이 글로벌리제이션이다.
  똑같이 국제화라고 하지만 자신을 세계의 기준으로 하려는 ‘글로벌리제이션’과 세계 기준에 자신을 맞추려는 ‘국제화’ 사이에는 아주 커다란 도랑이 있는 것이다. 정반대의 의미다. 일본인은 이 점을 자각해야 한다. 이것이 첫 번째 문제점이다.
  두 번째 문제점은 무엇일까? 일본인이 세계에 자신들을 맞추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할 때의 세계 혹은 국제사회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이것은 일본인의 전통적인 습성으로, 일본인에게는 그때그때의 세계 최강국이 곧 세계가 되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세계 최강국이라고 할 때 무엇을 기준으로 하는가 하면, 기본적으로 군사력과 경제력, 이 두 가지만 보고 문화는 염두에 두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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