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수첩 검사와 스폰서 편이 방송된 지 어느새 1년, 사태는 대강 마무리되는 분위기다. 몇몇 검사의 징계와 고발자의 구속이 결과인데, 검찰 내부 문화와 권력 문제는 제대로 논의되지 못한 듯싶다. 그간 몇몇 책이 나와 일정한 호응을 얻었지만 고발 이상의 의미를 만들어내진 못했다. 스폰서 정용재씨의 증언을 바탕으로 시사IN 정희상, 오마이뉴스 구영식 기자가 정리한 이번 책은 50여 명에 이르는 관련 검사 실명을 직접 내보인다는 점에서 PD수첩 이후 가장 폭발력이 큰 이야기가 될 거라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너무 뜨거워지지는 말자. 이 책 역시 폭로와 고발에 그친다면 언제 새로운 기회가 올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니. 이제는 PD수첩을 '떠나게 된' 최승호 PD의 추천사와 세 명의 저자가 전하는 서문을 공개한다. 책은 11일 월요일에 나오는데 문제 없이 독자들에게 전해질 수 있을지 걱정이다.

 

[추천사] 

‘검사와 스폰서’ 방영 후 1년… 그리고 이 책  
- 최승호, MBC PD 


<PD수첩> ‘검사와 스폰서’(2010년 4월 20일 방송)가 방송된 지도 벌써 1년이 되어간다. 방송 1년이 지난 지금 검사들의 스폰서 행태를 고발한 정용재 씨는 수감자의 신분이고 나 역시 <PD수첩>을 타의로 떠났다.

검찰에도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수십 명의 검사들이 특검 수사를 받았고 일부는 기소됐지만 1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박기준·한승철 두 검사장은 면직 처분됐다. 박기준 씨는 면직처분 취소소송을 냈지만 기각됐다. 특검 기소가 무죄 판결을 받는 상황에서 나머지 일부 검사들을 대상으로 한 징계가 ‘조용히’ 이뤄졌다. 정직, 감봉 등의 징계가 내려졌다. 이렇게 스폰서 검사 파문은 정리되어가고 있다. 검사들은 당분간 그들이 받은 ‘섹검’의 수치를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곧 위엄을 갖추고 일인지하만인지상의 검찰 위상을 회복할 것이다.

지난 1년간 그 난리를 쳤지만 사실 검찰이 인정한 것은 별로 없다. 그저 증거가 명확하게 남아 있는 최근의 몇 차례 향응을 인정했을 뿐 스폰서 정씨가 수백 명에게 제공했다는 성 접대는 한 건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엄연히 있는 증거와 증인도 없는 것처럼 묵살하고 은폐했다. 검찰이 다른 사건을 수사할 때도 이렇게 한다면 우리 국민은 불안해서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을 것이다. 그 정도로 심각한 은폐·왜곡이 저질러졌다.

그 한 예로 검찰은 인터넷에서 이름만 검색하면 어디에 있는지 지도까지 나오는 식당을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만들었다. <PD수첩>은 쉽게 찾아낸 과거 업주들 중 상당수도 찾을 수 없었다는 한마디로 은폐해버렸다. 어찌 보면 검찰이 제대로 조사를 했더라도 업주들이 과거 정용재 씨가 얼마나 검사들을 자주 접대했는지 밝히기를 꺼렸을 가능성이 크다. 누가 검찰의 비위를 상해가면서 오래 된 과거 일을 굳이 진술하려 하겠는가. 그러나 검찰은 아예 찾아보지도 않고 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나는 검찰이 찾아보는 시늉도 하지 않고 없다고 결론을 내버린 것이야말로 검찰이 누리고 있는 권력이 얼마나 무지막지한지 말해준다고 믿는다. 검찰이 이렇게 결론을 내버리면 그 누구도 쉽게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는 것을 검찰 스스로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이런 일을 저지르는 것이다.

실제로 <PD수첩>이 검찰의 진상은폐를 통렬하게 고발하는 ‘검사와 스폰서3’을 방송했지만 검찰 조직은 묵묵부답이었다. 일언반구 변명도, 항변도 하지 않았다. 그 뒤에 느껴지는 것은 “너희는 떠들어라. 우리가 묵살하면 결국 그뿐이다”라는 오만함이었다. 대한민국에서는 검찰이 이렇게 버틸 경우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우리가 그들을 이렇게 괴물로 만들어놓았던 것이다.

정용재 씨는 이때 큰 상실감을 토로했다. 그는 자신의 전 인생을 걸고 검찰을 고발한 결과가 이런 용두사미 특검이라는 데 분노했다. 그런 그를 두 언론인이 찾아왔다. 이 책은 검찰의 검사 스폰서 사건 은폐·왜곡을 향해 정용재 씨와 그를 취재하던 두 언론인이 보내는 고발장이다. 《시사IN》 정희상 기자, 《오마이뉴스》 구영식 기자. 이 두 분은 나와 함께 정용재 씨를 취재하던 기자들이다. 특검의 수사가 결국 의혹만 남기고 정리될 즈음 이들은 정용재 씨를 만나 이 책을 쓰기로 의기투합했다. 검찰의 진상규명이 어느 정도 순조로웠다면 만들어지지 않았을 책이 태어난 것이다.

원고를 읽어보니 새로운 사실이 많다. 게다가 거의 실명을 공개했다. 저자들은 “일부 고위직 검사들뿐 아니라 일반 검사들조차도 스폰서 문화에 포획된 현실을 가감 없이 보여줄 필요가 있어서” 실명을 공개했다고 밝혔다. 검찰뿐 아니라 경찰, 군 등 과거 정용재 씨의 스폰을 받은 다른 부문의 고위 인사들도 실명으로 등장한다. 이 책의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거라는 예감이 든다.

증언을 한 정용재 씨는 지금 가족이 있는 곳과 멀리 떨어진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다. 어쩌면 이번 증언은 그에게 또 다른 시련을 안겨줄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누가 과연 그의 처지에서 그와 같은 일을 할 수 있을까? 그런 점에서 그는 우리 사회가 가진 축복이다. 비록 그것이 그와 그의 가족에게는 천형을 의미한다 할지라도.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와 가족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저자 서문] 

인터넷 국어사전은 ‘스폰서sponsor’를 이렇게 설명해놓고 있다.

1. 행사, 자선사업 따위에 기부금을 내어 돕는 사람.
2. 라디오나 텔레비전 방송 따위에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광고주.

하지만 스폰서는 이런 사전적 의미에만 머물지 않고, 사회적 의미로 확장된다. 그런 점에서 스폰서는 국회의원, 판·검사 등 사회에서 힘이 있는 사람을 뒤에서 돈 등으로 뒷받침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이런 경우 스폰서는 대부분 사업가다. 마치 권력과 돈이 만나는 것과 비슷하다. 지난해 우리 사회를 뒤흔들었던 ‘검사 스폰서’ 사건은 그러한 성격의 스폰서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계기였다.

우리는 ‘검사 스폰서’ 사건이 터진 때를 전후로 수차례 정용재 씨를 부산 현지에서 만났다. 정씨는 20대의 젊은 나이에 아버지의 사업체를 물려받아 한때 부산·경남지역에서 가장 잘나가던 건설업자였다. 정씨에게는 젊은 나이라는 약점을 보완해줄 힘(권력)이 필요했고, 정씨는 아버지 때부터 관계를 맺고 있던 ‘검사’를 선택했다. 정씨는 사업이 몰락한 이후에도 ‘검사 스폰서’ 노릇을 멈추지 않았다. ‘스폰서 중독증’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권력에 돈 쓰는 맛’, 그 대가로 ‘권력에 호가호위하는 맛’을 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정씨는 자신이 20여 년 동안이나 검사 스폰서였다고 고백했다. 검사들에게 정기적으로 밥과 술을 사고, 촌지를 돌렸을 뿐 아니라 수시로 성 접대까지 해왔다고 증언했다. 이렇게 쓴 접대비만 당시 돈으로 10억 원 이상이라고 한다. 특히 검사들이 다른 지역으로 떠날 때면 전별금과 함께 순금으로 만든 마고자 단추를 선물했고, 심지어 검사들이 제 시간에 비행기를 탈 수 있도록 경찰 헬리콥터를 띄우기도 했다. 떠나는 검사가 부임하는 검사에게 정씨를 소개해주는 ‘스폰서 인계’ 문화는 검사─스폰서 유착관계의 원동력이었다. 정씨는 접대가 “보험 성격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검사들이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분위기였다”며 “하지만 어떤 검사도 이러한 접대에 죄의식을 느끼지 않았다”고 말했다.

더 놀라운 증언도 나왔다. 부산의 한 모델에이전시에 소속된 모델들을 불러 ‘원정 접대’에 나섰는데, 그 과정에서 경찰 호송차의 호위를 받았다는 얘기다. 경찰도 ‘검사 스폰서’의 손아귀 안에 있었던 셈이다. 이렇게 공권력이 검사 접대를 위해 움직인 것은 정씨가 ‘검사’스폰서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점에서 검사 스폰서의 실체를 들여다보는 일은 검사의 어두운 얼굴을 들여다보는 것이나 다름없다. 정씨가 증언한, 술자리에서 보여준 검사들의 행태는 차마 글로 옮기기조차 민망할 정도다.

하지만 검사의 어두운 얼굴은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 언론의 집중적인 보도에도 불구하고 검찰 진상규명위원회와 특검의 활동은 그야말로 ‘용두사미’로 끝나고 말았다. 오히려 이들의 활동은 스폰서 검사들에게 면죄부만 줬다는 지적을 받았다. 생선을 고양이에게 맡긴 데서 예고된 결과였다. 특검에 파견된 현직 검사들은 날마다 변호사 출신인 특검보들과 싸워가며 조직의 치부를 덮기에 바빴다. 정씨는 지난해 12월 중순 우리에게 보낸 문자메시지에서 이렇게 토로했다.

“스폰서 검사 건은 이제 막을 내리는 것 같다. 모든 진실이 묻혀버리고 정의가 사라지고 무소불위의 검찰은 자성의 기미가 전혀 없다는 현실이 서글플 뿐이다.”

그동안 계속 정씨를 취재해온 우리도 ‘막을 내리는 검사 스폰서 사건’ 앞에 아쉬움이 컸다. 고민한 끝에 정씨의 증언을 한 권의 책으로 정리하자는 데 뜻을 모았다. 그리고 구속집행정지 상태였던 정씨를 다시 부산에서 만나 수차례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 책은 우리가 그동안 정씨를 취재해왔던 내용과 그때 심층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해 엮은 것이다.

특히 이 책에서는 정씨가 접대했던 검사들의 이름을 과감하게 드러냈다. ‘한두 번 접대받은 검사들 이름까지 공개할 필요가 있느냐?’는 주위의 걱정도 있었다. 하지만 검사 스폰서 사건이 터졌을 때 공개된 일부 고위직 검사들뿐 아니라 일반 검사들조차도 ‘스폰서 문화’에 포획된 현실을 가감없이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하기 위해 고심 끝에 내린 선택이 검사들의 ‘실명 공개’다. 수사검사로 8년 6개월간 검찰에 몸담았던 김용원 변호사는 자신의 저서에서 ‘스폰서 문화’를 이렇게 독하게 꼬집었다. 그의 독설은 우리의 검사 실명 공개를 설득력 있게 뒷받침해준다.

“여자 접대도 하고 용돈도 주면 물론 금상청화다. 판검사들, 특히 젊은 판검사들 가운데는 술과 여자에 굶주린 사람이 많다. 스폰서들은 이런 판검사들을 노린다. (…) 룸살롱의 잘나가는 아가씨들 가운데 판검사와 섹스 한번 해보지 않은 사람을 찾는다는 건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 그러나 스폰서를 두고 있는 판검사들은 여전히 적지 않다. 특히 잘나가는 검사들 가운데 스폰서를 여럿 거느린 사람도 많다.”(《천당에 간 판검사가 있을까?》 중에서》)

이 책은 정씨의 의지가 없었더라면 나올 수 없었다. 그는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증언이 책으로 기록되어 세상에 나오길 가장 바랐다. 그는 “그동안 제가 접대했던 분들이 이 책을 한 권씩 사서 읽어주길 바란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잊지 않았다. 하지만 정씨는 진실을 얘기했다는 괘씸죄에 걸려 현재 신병치료를 위한 구속집행정지조차 얻어내지 못한 채 고통스러운 옥살이를 견뎌내고 있다. 애초 도전하지 말아야 할 ‘성역’에 도전한 탓이었다. 정씨는 지난 2월 우리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의 처지를 <산장의 여인> 노래 가사에 빗댔다.

“아무도 날 찾는 이 없는 외로운 이 산장에 (…) 병들어 쓰라린 가슴을 부여안고 나 홀로 재생의 길 찾으며 외로이 서 있네.”

정씨는 다시 구속된 이후 수술이나 재활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정씨는 편지에서 “모든 것이 이렇게 고통스러울 줄, 힘들 줄 몰랐다”며 “모든 것이 고립”이라고 토로했다. 정씨의 유죄가 확정돼 형사처벌을 받고 있더라도 그가 건강을 되찾을 수 있도록 사법부에서 정당하게 배려해주기를 바란다.

특히 ‘언론보도’의 한계를 절감했던 우리는 책을 펴내는 과정에서 ‘책’이라는 ‘올드 미디어old media’가 의미 있는 미디어로서 기능할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됐다. 그런 점에서 출판사에 부담이 될 수도 있는 이 책을 내겠다고 선뜻 나서준 김이수 책보세 주간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그리고 검사 스폰서 사건 보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최승호 PD 등 MBC <PD수첩>에도 감사한다. <PD수첩>은 두 번에 걸친 검사 스폰서 관련 방송 원고를 이 책에 실을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앞으로도 <PD수첩>이 우리 사회의 성역을 끈질기게 파헤치는 ‘시대의 눈’으로 남기를 바란다.

지난 4월 6일, 책 출간을 앞두고 안동교도소에 수감된 ‘스폰서 정씨’를 면회했다. 수감 상태에서도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늘 검찰의 주시 대상이었다. 안동교도소로 이감되기 직전 부산구치소에 있을 때, 그의 구속을 지휘한 부산지검 검사가 이 책 초고를 손에 넣으려고 구치소 내 그의 방에 들이닥쳤지만 간발의 차이로 원고를 우편으로 내보낸 뒤여서 허사로 끝났다고 했다. “도둑이 제 발 저린” 꼴이다. 검찰이 지난 1년간 그런 열성으로 환골탈태를 위해 각고했다면 아마 이 책은 나올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2011년 4월 초
정용재의 증언을 정리한 정희상·구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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