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어딘가 단단히 고장난 게 틀림없다. 꾸역꾸역 바쁘게 지내고는 있으나 실은 만사가 다 귀찮다. 그 와중에도 책은 많이 샀고 조금 읽었다.
책탑 사진 찍기 귀찮아서 패기 있게 주문 내역으로 대체
지난 토요일엔 에드워드 호퍼 전에 다녀왔다. 듣던대로 사람이 많았고 전시관 벽을 따라 한줄로 선 인파를 따라 이동하며 그림을 봐야했다. 그만 보고 싶은 그림을 오래 봐야하는 건 괜찮았는데(그 덕분에 "사랑하는 아내 조에게" 처럼 그림 귀퉁이에 연필로 적힌 글귀 같은 것까지 자세히 볼 수 있어 좋았다) 오래 보고 싶은 그림을 짧게밖에 볼 수 없는 건 많이 아쉬웠다. <nighthawks>같은 대표작들은 오지도 않았다. 그 대신 비교적 덜 알려진 초기작이 많이 와서 호퍼가 화가로서의 정체성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볼 수 있어 좋았다(일테면 실내작업에서 야외작업으로 반경을 넓혀가며 차츰 그에 익숙해지는 모습, 시야가 점점 넓어지고 보다 대담한 구도를 택하면서 안에서 밖을 바라보던 시선이 밖에서 안을 바라보는 시선(아무리봐도 관음증인듯)으로 이동하는 것 등). 습작이 많았던 것 역시 내게는 장점으로 느껴졌다. 캔버스에 유화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쳤을지 자연스레 유추해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작품 수가 적고 대부분이 습작이나 에칭, 삽화밖에 없는 걸 어떻게든 큐레이션의 힘으로 메워보려는 노력이 느껴졌다. 딱 여기까지였으면 이 전시는 굳이 힘들게 관람할 가치까지는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래도 오길 잘했다고 느끼게 된 건 모델로 소비된 왜곡된 조세핀의 모습이 아니라 일상에서의 자연스러운 모습의 조세핀을 담은 그림들을 볼 수 있었던 덕분이다(조세핀에 대해 알게된 이후로는 아무래도 이전처럼 마음 편히 호퍼의 그림을 좋아할 수 없는 터라 이런 그림들이 더 귀하게 느껴졌다). 특히, 독서하고 있는 조세핀을 스케치한 아래 그림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그림 그리고 있는 조세핀도 있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은 이윤하 작가의 <나인폭스 갬빗>. 여성 영웅이 주인공인 SF 소설이라는 것만으로도 점수 따고 시작했는데 힙하고 쿨하고 핫하고 매력적인 요소는 다 들어있는 페이지 터너였다.
새로이 시작한 건 포르투갈어 미니 학습지. 잊어버린 포르투갈어를 되찾아보려고 시작했다. 뭐야 나 이거 왜 기억하고 있어 싶은 게 은근히 많고 어딘가 둥글둥글하고 대충대충인 것 같은 브라질식 억양을 배우는 뜻밖의 재미가 있다.
이상 일하기 싫어서 쓴 안물안궁 근황토크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