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알베르 카뮈 전집 개정판 1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책세상 / 2023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최근 알베르 카뮈의 책을 읽어보고 싶어 도서관의 책 목록을 뒤지던 중 '알베르 카뮈 탄생 110주년'을 맞아 새로운 책 개정판을 발견하게 되면서 읽게 되었다.

 

처음에는 강렬한 책표지 컬러가 시선을 사로잡아 단숨에 읽어 나갈 수 있겠다 싶었는데, 생각보다 꽤 시간이 걸렸다.

 

처음에는 주인공의 시니컬함에 뒤에 뭔가 있겠지 하는 생각으로 읽어 나갔는데, 2부에 들어서면서 갑자기 달라지는 템포와 어리둥절하게 흘러가는 상황에 중간중간 한참을 머뭇거리며 시간을 소요하게 되었던 것 같다.

 

스토리로 보자면 더할 나위 없이 별거 없는 단순함의 극치인데, 이 상황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꽤나 부조리함 투성이다. 1부의 내용이 내 의지대로 흐르는 강물에 몸을 맡긴 형태라면, 2부는 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배에 갇혀 강물에 내맡겨진 형국이다.

 

처음 알베르 카뮈의 책을 읽는 거라 살짝 당황스러운 면도 없지 않아 있었는데, 다행히 뒤 페이지에 담긴 미국판 서문과 해설, 작가 연보, 옮긴이의 말 등을 통해 다방면으로 작가의 의도와 이 글이 쓰인 배경, 그리고 줄거리에 대한 새로운 시각 등을 통해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1부와 2부의 내용을 간단히 살펴보면, 1부에서는 그날 그날의 별 의미 없는 뫼르소의 생활 묘사가 주를 이룬다. 여기에는 어떤 거짓이나 꾸밈이 없다. 어머니의 죽음에서부터 살인 사건을 저지르기까지 18일간의 일상적 생활이 오늘, 어제, 토요일, 아침, 저녁 등 시간의 변화와 흐름이 뚜렷하게 표시되면서 기록된다.

 

2부는 1부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는데, 1부의 끝에 살인을 저지르면서부터 상황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법정에서 그 생활과 행동의 의미가 타자에 의해 해석되고 1년여에 걸친 감옥 생활과 재판 과정에서는 시간이 정지된 듯 시간 개념이 흐려진다.

 

 


꽤 계획적이고 체계적으로 작품을 써 내려간 알베르 카뮈의 작품 중 ' 1단계 부조리'에 속하는 초기작이자 무명작가인 그를 단번에 프랑스 문단의 신화로 만든 불멸의 역작인 이 작품을 먼저 읽어보게 된 것은 참 다행스러우면서 잘 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작품을 시작으로 이후의 그의 작품들을 통해 알베르 카뮈의 작품세계를 하나씩 만나보면서 그가 왜 그렇게 유명한 작가인지, 왜 그토록 그의 작품이 자주 입에 오르내리는지 알아가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한다.

 

그전에 이 작품을 읽으며 느꼈던 나의 감상평과 나만의 해석을 이제부터 기록해 보고자 한다. 그때가 아닌 지금의 상황이었으면 어땠을까를 자꾸만 되짚어 보면서 읽게 되는 <이방인>을 살펴보며, 주인공 뫼르소의 선택과 행동에 대해서도 함께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
작가 소개
=====

 

아버지가 전쟁에 징집되었다가 사망한 뒤, 어머니와 할머니 밑에서 가난하게 자랐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선생님의 각별한 총애를 받으며 재능을 키우고,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대학교에 갈 기회를 얻는다.

 

알제 대학교 재학 시절 장 그르니에를 만나 사상적 스승으로 여기고 그의 권유로 공산당에 가입하지만 이후 탈퇴한다.

 

교수가 되려고 했으나 건강 문제로 교수 시험에 응시하지 못하고 일간지 기자로 일한다. 1942년 <이방인>을 발표하면서 이름을 알렸으며, 이후 다채로운 작품 활동을 펼친다. 1957년에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지만, 3년 뒤인 1960년 1월 4일 자동차 사고로 생을 마친다.

 

그 밖에 자세한 연보는 이 책의 뒤 페이지의 '작가 연보'에서 확인할 수 있다.

 

 


=====
이 책을 읽으며 드는 궁금증?!
=====

 

■뫼르소도 평범한 사람들과 같은 야심을 가지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학업을 포기해야 했을 때 모든 것이 부질없다 느끼게 되었고, 이후 그는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자리 잡게 된다. 이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를 이토록 무심하고 시니컬하게 바꾸어 놓은 구체적인 동기가 무척 궁금해진다.

 

■같은 거주지 안에 파트너를 상실한 세 남자의 우연한 연대도 시선을 끄는 부분이다. 살짝 뒤틀린 듯 보이지만, 실상은 외로움과 각자의 사정으로 목마름을 느끼고 있던 이들에게 무심한 듯 말을 건넨 뫼르소 덕분에 이들은 친구이자 이웃을 얻게 된다. 만약 뫼르소가 살인자가 되지 않았다면, 이들의 우연 같은 인연은 어떻게 이어졌을까?

 

■법정에 자리한 이들은 정작 당사자인 뫼르소는 제쳐두고 자신들만의 법정을 이어나간다. 이들에게 진짜 중요한 것은 무엇이며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는 것일까 문득 궁금해졌다. 이 법정에는 정의도, 사실도, 피해자도, 문제의 본질도 빠져있었다.

 

 


=====
인물 소개
=====

 

▶뫼르소(몽피스)
-선박 회사 사무원
-일상생활을 즉흥적으로 영위
-살인 전: 육체적 감각을 통해 접촉하는 자연 세계와 일체감을 느끼며, 삶에 있어 소외감을 느끼지 않음
-살인 후: 재판을 받으면서 그와 그의 행동들은 타인에게 해석의 대상이 됨. 법정은 그의 인간성을 '설명'하기 위해 모든 행동의 동기를 찾아내려고 함.

 

▶뫼르소 부인
-뫼르소의 엄마
-삼 년 전에 양로원에 들어왔음
-노환으로 사망

 

▶관리인
-엄마의 관 옆에서 함께 하룻밤을 지샘
-양로원에서 일한 지 오 년 되었음
-예순네 살이며 파리 태생

 

▶양로 원장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단, 키가 작은 늙은이
-상황에 따라 말을 덧붙여 대세의 흐름에 유리한 형태로 진술

 

▶토마 페레스
-양로원에서 사귄 엄마의 남자친구
-엄마의 죽음으로 슬퍼하는 그를 배려해 이번만 예외로 장지까지 함께 따라가는 것이 허락됨

 

▶레몽 생테스
-창고관리인
-같은 층에 사는 이웃
-동네에서는 그가 여자들을 등쳐 먹고 산다고들 한다.
-대체로 그는 사람들에게 전혀 호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
-뫼르소는 그가 하는 이야기가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살라마노 영감
-같은 층에 사는 이웃
-피부병을 가지고 있는 스패니얼 품종의 개와 늘 함께 함
-열한 시와 오후 여섯시 하루에 두 번씩 영감은 개를 데리고 나와 산책함

 

▶마송
-레몽의 친구의 친구로 아내와 함께 바닷가에 살고 있음

 

▶마리
-뫼르소의 여자친구이자 결혼까지 약속한 사이

 

 


=====
간단 줄거리
=====

 

뫼르소는 어느 날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부고 소식을 전보로 받게 된다. 회사에는 이틀간 휴가를 쓰겠다고 말한 후 긴 80킬로미터 떨어진 마랭고에 있는 양로원으로 향한다.

 

뜨겁고 무더운 여름 날씨 속에서 엄마의 관 옆에서 하루를 꼬박 보낸다. 매우 피곤하고 뜨거운 상태로 비몽사몽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열을 식힐 겸 바다로 향하고 그때 평소 관심이 있던 마리를 우연히 만나게 되면서 연인 사이가 된다.

 

그리고 같은 층에 사는 이웃인 레몽&살라마노 영감과 우연히 몇 마디 나누게 되면서 친구이자 이웃이 된다. 그들은 비슷한 시기 파트너를 상실하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되면서 적어도 그들에게는 조금 더 돈독한 형태로 관계가 형성된다.

 

이때 레몽은 자신의 친구가 사는 바닷가로 함께 가자는 제안을 하게 되고 이때 여자친구인 마리와 함께 휴가를 가게 된다. 그곳에서 레몽과 관련 있는 아랍인을 우연찮게 살인하게 되면서 그는 살인자로 법정에 서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형태로 진행되면서 그는 모든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사형수가 된다.

 

 


=====
'이방인' 자세히 들여다보기
====

 

-----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모르겠다. 양로원으로부터 전보를 한 통 받았다. '모친 사망, 명일 장례식, 근조.' 그것만으로는 아무런 뜻이 없다. 어쩌면 어제였는지도 모르겠다.

9페이지 中
-----

 

첫 문장의 시작이 강렬하게 다가온다. 엄마의 죽음 앞에 뫼르소는 슬픔이나 연민과 같은 감정보다 그저 전보를 받았다는 사실에만 집중해 말한다. 심지어 그 날짜조차 정확하지 않다.

 

 


-----
지금 당장은 엄마가 죽지 않은 것이나 거의 마찬가지다. 장례식을 치르고 나면 기정사실이 되어 만사가 다 공식적인 모양새를 갖추게 될 것이다.

10페이지 中
-----

 

심지어 장례식을 치르지 않은 현재는 엄마가 죽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말로 무심하지만 상당히 정직한 발언으로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 있다.

 

 


-----
나는, 언제나 다름없는 일요일이 또 하루 지나갔고, 이제 엄마의 장례가 끝났고, 나는 다시 일을 하러 나갈 것이고, 그러니 결국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을 했다.

35페이지 中
-----

 

그에 대한 일상이 점점이 묘사되는 상황을 살펴보면, 감정이 배제된 그저 무의미한 일상을 덤덤히 서술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 속에서 갑작스레 벌어진 엄마의 죽음 또한 그의 삶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의 이런 무덤덤하고 냉소적이며, 미적지근한 반응은 계속해서 이어지는데, 전반적으로 그의 삶에 자리 잡은 패턴처럼 보인다.

 

이것은 다음의 문장들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
나는, 삶이란 결코 달라지는 게 아니며, 어쨌건 모든 삶이 다 그게 그거고, 또 나로서는 이곳에서의 삶에 전혀 불만이 없다.

56페이지 中
-----

 

-----
저녁에 마리가 찾아와서, 자기와 결혼할 마음이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고 마리가 원한다면 우리가 결혼할 수도 있을 거라고 말했다.

57페이지 中
-----

 

-----
그는 또다시 나에게 자기와 친구가 되고 싶으냐고 물었다. 내가 아무래도 좋다고 말했더니 그는 만족해하는 눈치였다.

41페이지 中
-----

 

그에게 있어 애인의 청혼도, 직장 동료의 위로도, 직장에서의 승진 권유조차도 그에게는 큰 의미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아예 감정 없는 인간은 아닌 것이 몇몇 문장에서 드러나는데, 이를테면 다음과 같다.

 

-----
그의 아내는 마침 마리와 웃고 있었다. 나는 아마 그때 처음으로 내가 결혼을 하게 되겠다고 진정으로 생각한 것 같다.

66페이지 中
-----

 

-----
재판장이 차장 검사에게 증인에 대한 질문이 없느냐고 묻자 검사가 외쳤다. "아! 없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 목소리가 어찌나 강렬하고 나를 보는 그 눈초리가 의기양양한지, 여러 해 만에 처음으로 나는 바보같이 울음이 터져 나올 것만 같은 심정이었다. 왜냐하면 내가 그 모든 사람에게 얼마나 미움을 사고 있는지를 느꼈기 때문이다.

113페이지 中
-----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보이는 데로 이야기하는 그의 화법은 조금 냉소적으로 보이기는 해도 거짓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누군가에는 상처가 될 수도 있으며,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하는 화법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제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의 엄마의 부고를 주변인들이 들어 알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그를 가엽게 여기고 있는 상황이었고, 그가 무심하게 던지는 말을 상대방은 자기 좋을 대로 해석하면서 그와 조금은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문제가 발생한 건 레몽의 제안으로 마리와 함께 간 바닷가에서 우연히 살인을 저지르게 되면서부터다.

 

 


-----
나는 기다렸다. 불로 지지는 듯한 태양의 열기가 내 두 뺨으로 확 번졌고 땀방울들이 내 눈썹 위에 고이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은 내가 엄마의 장례를 치르던 그날과 똑같은 태양이었고, 그날처럼 머리가 아팠고, 이마의 모든 핏줄이 한꺼번에 다 피부 밑에서 펄떡거렸다.

 

불로 지지는 것 같은 그 뜨거움을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서 나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나는 그게 어리석은 짓이며, 한 걸음 몸을 옮겨본 댔자 태양을 떨쳐 버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한 걸음, 단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러자 이번에는 아랍인이, 몸을 일으키지는 않은 채 칼을 뽑더니 태양 빛 속에서 나를 향해 쳐들었다. 빛이 강철 위에서 반사되었고, 번쩍하는 긴 칼날 같은 것이 내 이마를 쑤셨다.

77페이지 中
-----

 

잔잔했던 그의 일상에 파문이 일어난 것은 그렇게 시작된다. 뜨거웠던 그 여름, 엄마의 장례를 치르던 그날과 같은 태양을 마주한 그는 태양을 피하기 위해 한 발을 내디뎠으나 그로 인해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음을 뒤늦게 알게 된다.

 

레몽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아랍인이 뫼르소에게 긴 칼날을 들이대면서 순간적으로 가지고 있던 총구를 그를 향해 발사하게 되었고, 이내 아랍인이 죽음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이 문장을 보면서 개인적으로는 정당방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는데, 이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나 진술은 더 이상 서술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아랍인이 칼날을 이마에 내리꽂은 것인지 아니면 칼날의 빛이 태양에 반사된 것인지는 정확히 내용을 알기는 어렵다.

 

어쨌든 칼날을 쳐드는 순간 위협이 되는 것은 맞으므로 정당방위라는 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법정에서는 이에 대한 어떤 진술도 언급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살인자라는 이름으로 여러 번의 진술을 하게 되고, 이내 법정에 서게 되지만 언급되는 말들은 엄마의 죽음에 관련 내용뿐이다.

 

 


----
나는 내 감정이 어떤지 살펴보는 습관 같은 건 없기 때문에 그 점에 대해 알려주기는 어렵다고 대답했다. 아마도 나는 엄마를 사랑했겠지만 그러나 그런 것은 아무 의미도 없었다.

83페이지 中
-----

 

그를 맡은 국선 변호사마저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에 관해 궁금해하는데,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던 날 마음이 아팠느냐는 질문을 한다.

 

그에 대해 그는 어느 날과 동일하게 자신이 보고 느끼는 그대로의 감정을 정직하게 그대로 진술한다. 하지만 이 답을 들은 변호사는 매우 흥분하며 예심판사의 방에서든 어디서든 그런 말은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라고 다그친다.

 

이에 대해 뫼르소는 자기만의 솔직한 의견을 내놓지만 변호사는 그런 그를 이해하지 못했고 오히려 원망하고 있었다.

 

 


-----
그렇지만 나는 그에게, 내가 원래 육체적 욕구에 감정이 방해받는 일이 많은 천성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엄마의 장례식이 있던 날, 나는 매우 피곤했고 졸렸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잘 알 수 가 없었다.
(...)
그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고 오히려 나를 원망하고 있었다. 나는 내가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고, 조금도 다를 바 없다고 그에게 분명히 말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게 다 결국은 별 소용이 없는 짓이었다. 나는 귀찮아서 그러는 걸 포기하고 말았다.

84~85페이지 中
-----

 

상황이 이렇게 되자, 뫼르소는 또 한 번 모든 것이 귀찮아졌고 그저 그런 설명조차 이어나가기를 포기하고 만다.

 

뫼르소가 사람을 죽인 일과 관련해서 딱 한 번 제대로 된 질문을 예심판사로부터 듣게 되는데, 이것마저도 결론적으로는 그 자신의 신념과 믿음을 강요하기 위한 행위였음을 알게 된다.

 

 


-----
그가 생각할 때 나의 자백 가운데는 오직 한 가지 모호한 부분이 있으니, 그건 바로 둘째 발을 쏘기 전에 짬을 두고 기다렸다는 사실이다. 그 밖의 내용은 다 이해가 되는데, 바로 그 점을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그에게 그처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것은 잘못이라고, 그 마지막 문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셈이었다.

88페이지 中
-----

 

뫼르소 자신에게는 사실 이 질문마저 의미 없고 중요하지 않은 문제였지만, 유일하게 사건과 관련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예심판사의 이런 유의미한 질문 또한 결국 부질없어지게 되는데, 그 이유는 그의 믿음에 대한 강요와 태도 때문이었다. 

 

그는 신을 믿느냐면 분개하다가 이내 "당신처럼 영혼이 메마른 사람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라고 말함으로써 자기 기준에 맞춰 상대방을 판단하는 것으로 심문의 목적을 잃어버리게 된다.

 

더불어 뫼르소가 한 행동을 후회하느냐고 묻는데, 이에 대해 뫼르소 자신은 진정한 후회라기보다는 차라리 좀 귀찮다 싶은 느낌이라고 대답하게 되면서 상호 간에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게 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뫼르소는 세상을 바라보는 자기의 관점을 고수하게 되는데, 여기에 살인자라는 이름이 덧씌워지며 결국에는 오해를 쌓게 되고, 심지어는 반성하지 않는 살인자가 되어 사형까지 구형 받게 된다.

 

그의 이러한 태도는 감옥에 투옥되어 있는 와중에도 바뀌지 않는데, 오히려 그런 자신의 상황을 그저 수긍하고 받아들이게 되면서 시간의 흐름조차 까마득하게 느끼며 분별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른다.

 

 


-----
모든 것이 시작된 것은 오직, 마리가 처음이자 단 한번뿐인 면회를 온 다음부터였다. 그녀의 편지를 받은 날부터 바로 그날부터, 나는 감방이 내 집이고 내 삶이 그 속에서 멈추어버렸다는 것을 느꼈다.

92페이지 中
-----

 

사람은 결국 그 무엇에든 익숙해지는 법! 그는 그렇게 처음에는 불편하게 여겼던 감옥생활에 서서히 적응해 나가기 시작한다.

 

처음 몇 달 동안은 힘들었다. 가령 여자에 대한 욕정이 고통 거리였다. 젊으니까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간수장의 '자유란 바로 그런 거거든요. 당신네들에게서 그 자유를 빼앗는 거예요.' 라는 말에 뫼르소는 욕정을 통제당하는 것이 결국 벌을 받는다는 것에 동감하면서 수긍하게 된다.

 

다음은 담배 문제였는데, 담배를 피울 수 없는 것이 고통이었다. 그러나 나중에 그것도 벌의 일부임을 깨닫게 되는데, 그때쯤에는 벌써 담배를 피우지 않는 습관이 들어서 그 벌은 그에게 더 이상 벌이 아니게 된다.

 

또 잠도 문제였다. 처음에는 밤에 잠을 잘 자지 못했고 낮에는 한숨도 못 잤다. 차츰 밤에 잘 자게 되었고 낮에도 잘 수 있었다. 그렇게 잠자는 시간, 기억하기, 사건 기사 읽기, 그리고 빚과 어둠의 교차로, 시간은 지나갔다.

 

그러한 문제점들을 제외하면 그는 그다지 불행하지 안 않다. 하지만 문제는 오로지 시간을 보내는 일이었다.

 

그렇게 실감할 수 없는 시간을 무료하게 보내며 열한 달 동안 수십 번의 예심을 치르며 마침내 중죄 재판소 법정에 선 그는 당사자인 자신을 빠진 법정을 그저 관람객으로써 바라보게 된다.

 

이 사건의 본질은 무시되고, 상관없는 어머니의 장례식이 언급되면서 수많은 증인들의 증언이 이어진다. 양로원 원장, 장의사 직원, 토마스 페레스, 셀레스트, 마리, 마송, 살라마노, 레몽까지.

 

그들의 진술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다른 관점을 가지게 했고, 이것을 이끈 것은 상대편 검사 측이었다. 상황이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으며 진실은 무시되었다. 

 

더불어 뫼르소에게 유리한 증언들은 그 누구도 제대로 듣지 않았다. 특히 레몽의 경우 증인이 포주 노릇을 업으로 하고 있다는 것과 그의 공범자요 친구로 치부되어 가장 저질의 치정 사건으로, 피고인이 도덕적으로 기형적 인물이라는 점 때문에 더욱 위중하다는 것으로 치부되면서 완전히 묵살당한다.

 

오죽하면 뫼르소 측의 변호사가 "도대체 피고인은 어머니의 장례를 치렀다고 해서 기소된 것입니까, 아니면 살인을 했다고 해서 기소된 것입니까?"라고 말할 정도였지만, 재판의 초점은 어머니의 장례에 맞춰져 진행된다.

 

 


-----
검사는 그 두 범주의 사실들 사이에 어떤 심오하고 비장하고 본질적인 관계가 있음을 감지하지 않을 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121페이지 中
-----

 

어머니의 장례식을 주요 쟁점으로 삼는 검사 측의 의견을 살펴보면 어처구니없고 황당한 의견을 매우 장황하고 있어 보이게 포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때로는 나도 한마디 참견을 하고 싶었다. 그러면 변호사는 "가만있어요. 그편이 당신 사건에 더 유리해요"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사람들은 나를 빼놓은 채 사건을 다루고 있는 것 같았다. 모든 것이 나의 참여 없이 진행되었다. 나의 의견을 묻는 일 없이 나의 운명이 결정되고 있었다.

123~124페이지 中
-----

 

뫼르소는 자신 역시 이 재판에 참여하고 싶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 자신이 재판에 참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뫼르소는 자신의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방관자가 되어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내 재판장은 그가 프랑스 국민의 이름으로 공공 광장에서 목이 잘리게 될 거라고 말한다.

 

진실 여부와는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이루어진 재판, 그리고 사형수로 판결이 나면서 뫼르소는 이제 아무 생각이 없게 된다. 진종일 상고 생각을 할 때도 있었지만, 이내 모든 것을 단념하고 그녀 누워서 하늘만 바라볼 뿐이다.

 

그렇게 사형 선고를 받은 후 부속 사제는 계속 면회를 신청하지만 뫼르소는 계속 거절을 한다. 그러다 갑자기 찾아온 부속 사제의 존재는 어쩐지 짐스럽고 성가시다.

 

그러다 당신을 위해서 기도하겠다며 자신의 신념과 믿음을 강요하는 그에게 화가 난 뫼르소는 목이 터져라 고함을 치기 시작하는데, 덕분에 그렇게 그는 마음속에 담아둔 말들을 숨이 막힐 만큼 송두리째 쏟아붓게 된다. 그리고 그가 나가고 나자 뫼르소는 다시 평정을 되찾게 된다.

 

 


-----
나는 마치 그 커다란 분노가 나의 고뇌를 씻어주고 희망을 비워버리기라도 했다는 듯 신호들과 별들이 가득한 이 밤을 앞에 두고 나는 처음으로 세계의 정다운 무관심에 마음을 열고 있었다.

153페이지 中
-----

 

어쩌면 부속 사제와의 만남은 죽음을 앞두고 그가 마지막으로 마음속에 눌러 담고 있던 말들을 내뱉은 속 시원한 순간이 아닐까 싶다.

 

그는 사형수였지만, 페이지의 마지막까지 그가 죽는 순간은 만나볼 수 없다. 그저 그렇게 1급 살인자가 되어 독방에 머물면서 죽을 날만을 기다리는 형태로 막을 내린다.

 

 


=====
'이방인' 감상평
=====

 

이 책을 읽으며 황당하고 어이없던 결말에 몇 가지 물음들이 끊임없이 머릿속을 부유했는데, 그 질문들을 스스로 하나하나 답하면서 왜 제목이 '이방인'인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는 왜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상태로 재판에 서서 어이없는 이유로 사형수가 된 것일까?', '그는 왜 완전한 외톨이가 되어 사회에서 '이방인이 된 것일까?'

 

엄마의 장례식장에서도 눈물을 보이지 않을 만큼 덤덤하고 냉소적이었던 그는 재판에서 차장 검사의 외침에 꽤나 미움을 사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왈칵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고 말한다.

 

일상을 그냥 물 흐르듯 살던 그가 우연히 휩쓸린 단 한 번의 파도로 완전히 무너진 순간이 어쩌면 이 부분이 아닐까 싶다. 덕분에 그는 자신이 이 사회의 외톨이이자 완전한 이방인임을 깨닫게 된다.

 

그가 이렇듯 이방인이 되는 과정은 살인자로 감옥에 갇히고 심문 과정을 거치면서 서서히 드러나는데, 보통의 사람들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으레 하는 거짓말 혹은 자신의 감정을 은폐하거나 과장해서 드러내는 행동을 뫼르소는 전혀 하지 않음으로써 그는 이 사회에 속할 수 없는 이방인이 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솔직하고 정직하게 이야기함으로써 그의 모든 의견은 묵살당하는데 거기에 더해 적은 말수에 침묵, 무미건조한 성격이 더해지며 점점 오해가 오해를 낳게 된다. 그러면서 그의 상황은 완전히 다른 결말에 다다르게 된다.

 

사람들은 없는 말이라도 그가 반성한다, 뉘우친다는 말을 하기를 은근히 강요한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귀찮은 일이라 여긴다고 답하면서 유죄 선고를 받게 된다.

 

그는 자신의 감정에 솔직했고, 가식이 없었기에 결국 죽음을 맞게 된다. 그 덕에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이방인이 되었고, 바다 위를 떠도는 부표처럼 여겨지게 된다.

 

사형수가 되어서도 변하지 않는,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는 그의 결연한 거부의 자세를 지켜보면서, 나중에는 정직성에 대한 용맹한 기개로까지 느껴졌다.

 

자신의 목숨이 위협당하는 순간에도 끝까지 거짓말 따위는 하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를 과연 우리는 지켜낼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대부분은 '절대 노'라고 말할 것이다. 그래서 쉽지 않은 그의 신념에 한편으로는 응원하고 싶은 마음까지 든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자신들이 원하는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일순간 상황을 몰아 큰 대역 죄인으로 만든 뫼르소의 재판처럼 우리 사회에서는 이런 부조리가 없는지를 살펴보게 된다.

 

또 장례식장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고 해서, 슬퍼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자신의 판단 기준에 맞춰 타인을 끼워 맞추고 재단하는 현실의 부조리함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타인에게 보이기 위한 감정의 호소, 짜 맞추기식의 거짓말, 상황에 따른 마음 없는 위로와 말들이 난무한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어쩌면 이 모든 것들은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이 모든 것들이 피로함과 무의미한 것으로 다가올 수 있음을 인지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뫼르소 역시 한때는 보통의 사람들과 비슷한 야심을 가지던 때도 있었지만 학업을 포기하는 것을 계기로 모든 것에 무심해지기 시작한다.

 

그 만의 사정과 가치관의 변화로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진 것이다. 그것을 누구도 편파적으로 몰아가거나 옳다 그르다로 판단할 수 없음에도 재판에 선 그의 정직하고 성실한 발언에 대해 왜곡하고 몰아가면서 결국 그를 동떨어진 개체로 만들어버렸다. 그럼에도 그는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지켜나가며 주어진 운명조차도 충실히 받아들인다.

 

그가 살인자라는 팩트는 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가 그를 응원하게 되는 것은 그것을 밝혀나가는 과정이 너무도 부조리했기 때문이다. 억울한 1명을 만들지 않기 위해 1년간 진행된 수많은 심문과 재판이 이상한 방향으로 나가면서 허위로 가득한 거짓들로만 가득 차게 된다.

 

거기에 당사자인 뫼르소는 없었다. 그리고 그의 편에 서서 진실을 이야기했던 증인들도 없었다. 이 부조리는 세기를 넘어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현재에도 진행 중이다. 그렇기에 어쩌면 오랫동안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이 사랑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책을 읽는 동안 수많은 질문과 궁금증에 사로잡혀 페이지를 넘겼다. 그러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그 질문들의 답을 하나 둘 찾을 수 있었다.

 

또 시대와 상황의 전환에 따라 이 책의 내용에서는 뫼르소가 마치 섞이지 못하는 이방인처럼 느껴지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어쩌면 반대로 흔한 상황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사회와 관계, 사람, 일 등에 무기력함과 회의감을 느끼는 요즘 사람들의 모습에서 그것을 느낀다.

 

어떤 부분에 관점을 두고 읽느냐에 따라 새로운 질문과 사회 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책 <이방인>.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꼭 필요한 필독서가 아닐까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위너 1 베어타운 3부작 3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페이지가 만만치 않은 분량의 소설을 쓰는 작가이기에 처음에는 마음의 각오를 다져야 하지만, 읽다 보면 빠져들게 되는 프레드릭 배크만의 소설은 현실과 크게 동떨어지지 않은 소재를 담고 있어 늘 눈길을 끈다.

 

현실 어딘가에서 늘 벌어지는 '우리들'의 이야기이기에 그의 소설을 읽을 때면 여러 감정을 동시다발적으로 느끼게 한다. 그럼으로 인해 반성과 함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을 얻게 되기도 한다.

 

이번 이야기는 산속 깊은 마을에 숲을 두고 인접한 두 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오랜 토박이들이 머물고 있기에 경험할 수 있는 정겨움과 더불어 폐쇄성이 어떤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지 함께 확인해 볼 수 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을 파악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스스로 인물 관계도를 그려보는 것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그려지는 인물의 친밀도와 관계를 하나하나 짚어보면서 사건의 개요와 상황을 파악하다 보면 어느새 스토리는 물론 전반적인 내용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마을(베어 타운과 헤드) 별로 나누어 구분하고 여기에서부터 인물의 관계를 이어나가는 방법을 추천한다.

 

스웨덴 북부의 두 작은 마을 베어 타운과 헤드는 경쟁관계이자 앙숙관계로 유명한 곳으로, 숲과 호수뿐인데다가 여러모로 쇠락해 가는 곳이지만, 유일하게 하키만큼은 두 마을의 희망이자 최고의 스포츠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의 한일전과 같이 서로와의 경기에서 승리하는 것만이 유일한 기쁨인 이 두 마을의 얽히고설킨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아름답고 평화롭게만 보였던 이 두 마을에 유례없는 폭풍우가 몰아치게 되면서 이야기는 다시 시작되는데, 떠난 사람들이 하나 둘 돌아오게 되면서 그날의 숨겨진 진실이 하나 둘 드러나기 시작한다.

 

여타 소설과는 다르게 처음부터 이 소설은 대략적인 소설의 결말과 이야기를 미리 풀어놓고 서서히 진실에 접근해 가는 방식을 취하는데, 하나하나 파헤쳐 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어떻게 잃었는지, 이것을 통해 우리에게 어떤 것을 남겼는지 확인할 수 있을듯하다.

 

 


총 2권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 중 내가 읽은 부분은 <위너 1>권으로, 본격적인 스토리가 전개되기 이전의 상황과 배경을 알 수 있는 편이다.

 

베어 타운과 헤드를 이루고 있는 숲과 호수, 두 마을에 살고 있는 주요 인물들의 직업과 가족관계, 이웃 간의 유대관계 및 두 마을이 서로에게 가지고 있는 불만과 상황들은 물론, 아이스하키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중점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더불어 2년 전 갑작스럽게 벌어진 불미스러운 사건에 대한 전말과 이 사건으로 영향을 받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

 

공생이 아닌 각자도생을 꾀하게 된 두 마을에 숨겨진 또 다른 이야기도 맛보기로 만나볼 수 있는데, 1권의 후반부에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어, 2권에서 본격적으로 내용을 확인해 볼 수 있을 듯하다.

 

외줄타기를 하듯 어딘가 위태롭게 마주하고 있는 두 마을의 이야기를 통해 충격적인 사건의 전말과 이것이 과연 어떤 결론으로 이어질지 기대가 된다.

 

 


=====
이 소설의 서술 방식!
=====

 

■사전에 결론까지 모두 서술한 뒤에 살을 덧붙이는 형태로 서술된다.

■세세한 인물 묘사와 상황, 사건들이 차근차근 하나씩 덧되는 식으로 서술된다.

■중간중간 벌어질 일들을 미리 예고한 뒤에 복선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가는 형태로 서술한다.

 

-----
앞으로 벌어질 모든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누군가가 등장해 그를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막았더라면.

200페이지 中
-----

 

-----
"재밌을 수도 있어요. 어디를 봐야 하는지 제대로 알기만 하면."
그녀는 노인의 말을 믿지 않는다. 그게 패착이다.

256페이지 中
-----

 

 


=====
베어 타운 vs 헤드
=====

 

■베어 타운
▷상징색: 초록색
▷부유한 마을
▷매달 새로운 후원자가 등장한다.
▷아이스링크의 보수공사를 마침
▷베어 타운의 가장 규모가 큰 공장과 슈퍼마켓은 또다시 직원을 뽑고 있다.


■헤드
▷상징색: 빨간색
▷가난한 마을
▷후원자가 점점 줄고 있다.
▷아이스링크의 지붕이 무너지기 일보 직전
▷헤드의 사업체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병원은 해마다 인원을 감축하고 있다.


평범한 숲속의 두 마을이고, 어떤 사람들 눈에는 작은 시골 동네로 보일 수 있지만, 이들은 서로를 증오하고 또 증오한다.

 

 


=====
중점적으로 봐야 하는 내용
=====

 

■2년 전 마야 안데르손이 파티에서 하키 선수인 케빈 에르달에게 성폭행을 당했던 사건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
▷얽혀있는 사람과 인물관계 살펴보기
▷사건의 결말과 당시 상황 전개 살펴보기
▷개인과 마을에 끼친 영향과 파급력 확인하기

 

■마야의 성폭행 사건과 거울처럼 닮아있는 마테오의 누나에 대한 이야기
▷안데르손 가족과 비슷한 상황과 경험을 했지만, 완전히 다른 결말과 상황에 이르게 한 배경은 무엇인가
▷누나를 죽음에 이르게 한 배경은 무엇이며 하키맨은 누구인가
▷종교에 심취한 부모가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
▷가족 분위기가 자녀의 미래에 끼치는 영향

 

■최고의 선수였던 아맛이 한순간에 바닥으로 추락했다 다시 일어서는 이야기
▷폐쇄적인 동네의 토박이 사이에서 이방인이었던 아이가 섞여들기 위해 한 노력이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
▷꿈과 추락의 한 끗 차이를 불러온 사기꾼과 좋은 어른의 차이 
▷어머니가 가진 위대한 사랑의 힘

 

■자신의 정체성을 찾았지만 그 외의 모든 것을 잃어버린 벤야민 오비크(벤이)의 이야기
▷마야의 성폭행 사건과 어떤 식으로 연루되었는지
▷그가 베어 타운을 떠나 찾고자 한 것은 무엇이고 어떤 것을 깨달았는지
▷돌아온 이후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페테르 안데르손의 이름으로 행해졌다는 부정부패의 정황과 진실
▷베어 타운 하키 전 단장이었으나 2년 전 그 사건 이후 모든 것을 내려둔 그가 벌였다는 사건의 전말은?
▷기자인 아버지와 기자인 딸이 파헤치는 베어 타운 의회와 하키단 사이의 유착과 비리에 대한 진실은 무엇일까?

 

■검은 양복을 입은 일당들은 누구이며 이들의 정체는 무엇인가
▷아이인 티무가 어떻게 이들의 우두머리가 될 수 있었는지
▷검은 양복을 입은 일당들의 진짜 정체는 무엇인지 파헤쳐 볼 것

 

■라모나가 이 두 마을에서 갖는 의미
▷버려진 아이들을 거둬들여 돌봐주고 중립적인 입장에 서서 중재 역할을 했던 라모나의 죽음이 의미하는 것은?
▷라모나와 페테르의 관계의 진실은 무엇일까?

 

■각 마을에 끈끈하게 얽힌 관계성
▷대다수가 함께 선수로 뛰고, 또 함께 소방서에서 근무하며, 그 아이들은 하키팀에서 또 함께 뛰는 등 이들만이 가는 끈끈함과 유대성이 갖는 의미
▷폐쇄성 짙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돌발 상황을 대처하는 이들만의 방법

 

■사업가인 프락이 벌이는 이해 못 할 행동들의 의미
▷의도적으로 두 마을의 불화를 조장하고 부채질하는 행위를 하는 이유
▷앞에서는 베어 타운을 위한 답시고 하는 모종의 행동들은 과연 누구를 위한 행동일까?

 

 


=====
인상적인 문장들
=====

 

-----
"이 일대에서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 연결돼 있지. 좋은 싫든."

194페이지 中
-----

 

이 이야기의 가장 핵심이자 두 마을에 대해 함축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최고의 문장이다.

 

이 마을에 대해 알기를 원한다면, 모든 사람과 모든 것이 관계, 의리, 빚이라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 어떻게 서로 연결되어 있는지 알아야 한다. 이곳 사람들의 끈끈함과 생존력은 이와 같은 것에서 비롯됐지만 이는 곧 서로에게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2년 6개월 전 어느 겨울날, 마야는 파티에서 케빈 에르달에게 성폭행을 당했고 비슷한 일을 마테오의 누나도 당했다. 그리고 결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나타난다.

 

이 일로 관련된 아이들은 모두 떠났다. 마야는 빛에서, 벤이는 어둠에서 해답을 찾기 위해 떠났다. 그리고 케빈과 그 가족은 이 도시를 '그냥' 떠난다.

 

 


-----
"집" 집을 뜻하는 단어는 여러 개라야 한다. 하나는 거기에 남아 있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용도로, 또 하나는 우리가 잃어버린 공간을 가리키는 용도로.

145페이지 中
-----

 

집이 주는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문장이다. 따뜻함, 안락함, 포근함, 쉬는 공간, 가족이 함께 머무르는 공간 등.

 

이 소설에서 '집'은 누군가에겐 쉴 수 있는 공간이자 믿어주는 가족을 가리킨다. 그런 한편 또 다른 누군가에겐 되찾을 수 없는 사람이자 공간이 되기도 한다.

 

 


-----
우리는 도울 수 있는 경우에, 도울 수 있을 때, 도울 수 있는 데까지 돕는다.

41페이지 中
-----

 

헤드에서 각각 조산사와 소방서에서 근무하는 한나-요니 부부의 직업관을 가장 잘 표현한 문장이 아닐까 싶다. 남을 돕는 직업을 가진 이들의 숙명과 같은 직업의식과 상황을 대변한 문장에서 이들의 진심을 엿볼 수 있다.

 

 


-----
베어 타운에서 사람들이 제거한 것은 포식동물이 아니라 골치 아픈 문제였다. 그로부터 몇 년 뒤에 마야가 케빈의 방에서 뛰쳐나왔을 때 대부분의 사람은 포식자가 아니라 그녀를 공격하려고 했다. 케빈이 아니라 그녀가 그냥 사라져 버리면 훨씬 수월하게 두루두루 상황이 해결될 테니까. 마야가 그 골치 아픈 문제였다.

77페이지 中
-----

 

피해자가 가해자로 바뀌는 양상을 엿볼 수 있는 문장이다. 아주 작은 시골마을에서 벌어진 성폭행 사건에서 중요한 건 피해자나 진실이 아니다. 사람들이 열광해 마지않는 '하키'다. 

 

때문에 문제 제기를 한 마야가 '골치 아픈 문제'가 되었고, 사람들은 그녀를 공격하려고 했다. 자신들이 사랑한 하키 선수를 공격했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가족들의 믿음과 라모나의 도움으로 다행히 상처를 치유할 수 있었고, 덕분에 미래를 다시 한번 꿈꿀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
대다수가 함께 선수로 뛰었던 사이라 소방서는 라커 룸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중 한 명과 싸우면 그들 전부와 싸우는 셈이다.

404페이지 中
-----

 

-----
한나는 요니와 어렸을 때부터 함께 자란 친구의 90퍼센트가 대책 없는 바보들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는데, 지금 그들의 아이들이 대부분 하키팀에서 뛰고 있다.

406페이지 中
-----

 

폐쇄적인 마을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는 대목이다. 세대를 이어 끈끈하게 연결되어 오는 모습과 더불어 이들이 가지는 소속감과 연대감을 확인해 볼 수 있는 문장이다.

 

 


-----
토비아스는 바닥에 눕는다. 지금까지 수천 번 그랬듯 동생은 침대에서 재운다. 형은 평소처럼 곯아떨어지기 직전에 하품과 함께 진실을 전한다.

"너는 뭐든 되고 싶은 대로 될 수 있어. 테디베어. 뭐든."

410페이지 中
-----

 

마을 사람들뿐만 아니라 가족끼리의 우애도 매우 끈끈하고 우애가 깊은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문장이다.

 

 


-----
맨 처음 알게 된 사실 중 하나. 새끼 곰의 40퍼센트가 생후 1년 내에 죽는데, 대부분 자기 아비를 제외한 다른 수컷에게 죽임을 당한다는 것이었다.

 

그때 파티마는 깨달았다. 누군가 그녀의 자식을 위협한다면 그녀도 곰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그래서 그녀는 아들도 다른 집 아이들처럼 근심 걱정 없는 천진난만한 곰으로 자랄 수 있는 권리를 위해 싸웠다.
(...)
빙판 위에서는 고통 없이 자유로웠으니 그거면 충분했다. 어렸을 때는 부잣집 아이들이 유리했는데 중학교 이후부터는 오로지 실력이었다. 이기기만 하면 모두가 아이를 사랑했다. 아이는 이내 거기에 익숙해졌다.

183페이지 中
-----

 

-----
이 일대 사람들은 하키를 귀족 계급처럼 간주했다. 알맞은 집안에 태어난 사람만 하키에 발을 담글 수 있길 바랐다. 어린 아이들마저도 토박이와 이방인을 구분할 수 있도록, 이곳 사람들이 수많은 전통이며 관계며 전문용어를 갖춘 전혀 별개의 언어를 개발한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었다.

181페이지 中
-----

 

토박이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방인이었던 아맛과 아맛의 엄마 파티마는 아이를 지키기 위해 하키를 시켰고 모든 경기에서 이김으로써 실력으로 자신의 자리를 가지게 된다.

 

작고 폐쇄적인 마을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해, 이들이 살아남기 위해 붙잡아야 했던 것은 '하키'라는 이름 뒤에 숨은 공동체의 소속감이었다.

 

 


-----
지금은 이 마을의 남자들이 이미 감옥을 만들었다는 것을, 누나에게 절대 벗어날 수 없는 족쇄를 씌웠다는 것을 안다. 마테오는 이제 겨우 열네 살이지만, 하느님의 종복인 부모님이 누나의 복수를 시도할리 없으니 그가 나서야 한다.

438페이지 中
-----

 

마테오는 종종 소설에 등장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존재감을 확인할 수 없다. 어느 누구도 그를 눈여겨보거나 말을 건네지 않는다. 파탄 난 가정, 종교에 심취한 부모님, 마을 사람들의 집단적인 어떤 행위로 목숨을 잃은 누나.

 

열네 살 홀로 세상을 살아가기에는 아직 너무 어린 나이다. 무언의 복수를 결심하는 마테오의 독백을 종종 목격할 수 있다.

 

 


-----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는 나이와 장소를 막론하고 똑같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미워하고 그리워하고 밀쳐내지만 사는 동안 서로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우리는 남자가 되려고 하지만 사실 방법을 모른다. 여기 사는 우리의 이야기는 모든 곳에 사는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와 같다. 우리는 이야기의 주도권을 우리가 쥐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경우는 당연하게도 거의 없다. 이야기들이 원하는 곳으로 우리를 데려갈 따름이다. 해피엔드로 끝나는 이야기도 있고, 제발 거기만은 아니길 바라는 바로 그곳에서 끝나는 이야기도 있다.

323페이지 中
-----

 

작은 의미에서는 가족, 점차 넓혀나가면서 마을, 운명공동체로 엮이는 모든 것들은 서로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성장하고 발전해 나간다.

 

베어 타운과 헤드는 서로 미워하고 밀쳐내지만 사실은 서로를 사랑하는 방법을 몰라서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서로가 주도권을 쥐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폭풍과 같은 상황이 벌어지면 어쩔 수 없이 이끄는 대로 따라야만 하는 상황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끝에는 생각지 못한 죽음이 기다리기도 하고,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해피엔딩의 순간을 맞이하기도 한다.

 

 

2년 6개월 전의 사건은 마을 사람들에게 꽤나 큰 충격을 안겨다 준다. 각 개인은 물론 마을 사이의 관계가 틀어져 증오하고 미워하는 마음만 남는 상황에 이른다. 이후 큰 폭풍이 몰아치게 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는데, 본격적인 이야기는 2권을 통해 확인이 가능할 듯하다.

 

두 마을 사람들이 몇 년간 쌓아 올린 아픔과 불신을 어떻게 해소해 나갈지, 또 1권에서 언급된 여러 사건과 상황들이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지켜보는 재미도 있을듯하다.

 

쉽게 누군가를 미워하고 혐오하는 갈등의 시대에 살고 있는 지금의 우리들에게 위너가 담고 있는 이야기들은 어쩌면 완전히 반대되는 이야기이면서 한편으로는 완전히 닮은 꼴의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벼락처럼 닥친 불행 앞에서 우리는 서로를 향해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 또 어떻게 다독이며 살아가야 하는지 배울 수 있는 책이 아닐까 싶다.

 

핵심과제를 풀어나가는 과정은 2권을 통해서 따로 확인해 볼 예정이다. 이를 통해서 이들에게 진정한 위너는 누구인지 프레드릭 배크만이 이 책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의미는 무엇인지 찾아보고자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에게 남은 시간 - 인간이 지구를 파괴하는 시대, 인류세를 사는 사람들
최평순 지음 / 해나무 / 202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꽤 오래전부터 언급되었던 지구 위기! 시간에 무뎌진 건지 아니면 논외의 일이라고 생각해서인지 이 문제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와 주변의 반응은 무덤덤 혹은 무관심 둘 중 하나였다. 

 

해외의 반응은 직접적으로 확인이 불가해 국내 분위기만을 살펴보자면, 대체적으로 뉴스와 언론을 통한 보도는 거의 만나볼 수 없었으며, 가끔 전해지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지구 위기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가늠해 볼 뿐이었다.

 

예전보다 더 빠르고 강하게 다가오는 자연재해가 눈앞에 닥쳤음에도 순간의 위기를 넘기고 나면, 그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넘어가는 일이 일상이 되어가면서 사람들은 대체 무얼 보고 듣고 있는 걸까 새삼 궁금해지기도 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느꼈던 당황스러움과 궁금증, 그리고 또 다른 질문과 답을 얻을 수 있었다.

 

더 잘 살고 싶다는 소망, 나의 아이가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담고 있으면서도 정작 태도나 행동에 있어서는 당장 눈앞에 떨어진 이익과 자신만을 위하는 이기적인 행동을 일삼고 있는 이들이 부디 이 책을 빌어 더 크고 넓게 보고, 사고하고, 행동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지구 온도의 상승을 막기 위한 세계적인 탄소 배출 감소 대책과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는 방법을 강구하던 이야기들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현재에 이르러서 그때의 약속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제대로 지켜지기는커녕 오히려 상승한 곳도 부지기수다.

 

지구 온도가 1도 올라갔을 때 나타나는 여러 생태계 변화와 영향력에 대해 익히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의 나라 이야기로만 취급하며 나 몰라라 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저자는 '인간과 지구에게 희망은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뜨거워지는 지구 속에서 쉴 틈 없이 불어닥치는 홍수와 태풍, 가뭄, 산불 등의 자연재해는 물론 심상치 않게 일어나는 감염병과 원인 모를 일들을 이제는 덮어두거나 모른척하기보다 제대로 마주하고 시간을 더 늦출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때가 아닐까 싶다.

 

이 책에서는 인류세 현장을 찾아 전 지구를 누빈 환경 피디가 우리 사회의 현주소와 한국 언론이 위기 뉴스를 소홀히 하는 이유를 살펴보고, 지구 환경과 관련 있는 이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직접 전한다. 또 기후 위기의 시대를 헤쳐 나갈 방법들을 살펴보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전하면서 우리에게도 그 물음을 던진다.

 

지구 위기는 이제 더 이상 미룰 수도 외면할 수도 없는 지점에 이르렀다. 피하기만 한다고 답이 나오지도 않는다. 어쩌면 우리는 답을 알고 있기에 더 회피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불편을 감수하고 실천하기 어려운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주하고 실천해야 다음 세대가 살아갈 터전이 남는다. 아니 다음 세대를 걱정하기에 앞서 우리 세대가 온전히 살아남을 수 있다. 현 상황을 제대로 알리고 공유하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적 재난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고 관심을 가져야 더 많은 방법과 실천들이 행해질 수 있다.

 

'우리 이대로 괜찮은 걸까?'라는 질문을 수없이 하게 만든 이 책을 통해 또 다른 이들도 경각심과 위기의식에 대한 관심, 그리고 작은 실천력을 발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어느 날 방송을 보다가 망망대해 한가운데에 쓰레기 산을 이룬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꽤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둥둥 떠다니는 각종 플라스틱이 깊이와 넓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쌓여 하나의 섬처럼 보인다는 것이, 그리고 그것을 그냥 두고 보고만 있다는 것이 어처구니 없으면서도 이게 현실이구나 싶었다.

 

'바다니깐 괜찮을 거야'라는 안일함이 그렇게 만든 것은 아니었을까, 저것이 어디까지 연결될까 하는 두려움이 곧 남의 일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에서 철저히 하는 분리수거는 왜 끝까지 이어지지 못할까라는 생각으로까지 연결됐는데, 아마 그것은 재활용과 재사용에 대한 간절함과 관심이 없어서이지 않을까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마음먹으면 무엇이든 해내는 한국 사람들에게 있어 플라스틱의 재활용 방법이나 대체방안이 아예 생각해 내지 못할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당장 편하고 크게 바꿀 마음이 없기에 난무하는 국가 정책 속에 분리수거라는 이름으로 시늉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우리가 어떤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공존을 위해 힘써야 하는지 지금부터 하나하나 살펴보자. 그리고 무엇보다 '나'부터 시작되어야 함을 잊지 말자!

 

 


=====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계기
=====

 

신흥 선진국의 반열에 오르고, K-컬처를 자랑하는 대한민국이 지구의 위기에 대해서 만큼은 '돈 룩 업!(위를 보지 마)을 외치고 있다. 정말 왜 그런지 너무 궁금했다.



※참고사항
2021년 제작된 영화<돈 룩 업>은 에베레스트만 한 혜성이 지구를 향해 달려와 멸망이 목전이어도 대부분의 사람이 그 사실을 걱정조차 하지 않는 세상을 풍자한 영화

 

 


인간에 의해 행성 전체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은 왜 국내에서 주류 담론이 될 수 없는 걸까?

 

이 책은 그 의문과 답답함에서 시작되었는데,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을 만나 묻고, 여러 저자들의 책과 논문 등을 탐독하며 답을 찾고자 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위기는 '기후 위기'를 넘어 중첩된 문제를 안고 있기에 저자는 더 범위를 확대해 '지구의 위기'라는 이름 아래 세계가 겪고 있는 여러 문제를 다방면에서 다뤘다.

 

국내에서는 지구적 문제가 국내 여러 이슈에 묻혀 외면받고 있는 상황으로, 이 책이 지구 위기로 관심을 돌릴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본다.

 

 


=====
'인류세' 그게 뭔데? 
=====

 

"넌 왜 그런데 관심 있냐?"라는 주변 친구들의 말을 종종 듣던 저자의 사회생활은 왜 많은 이들의 관심사와 나의 그것이 다른지를 설명하는 일의 반복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인류세'라는 단어와 함께 상황이 바뀌었다. 어느 날 갑자기 저자에게 찾아온 이 단어에는 게임의 법칙을 바꾸는 힘이 있었다.

 

영화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찰리가 초콜릿 속에 숨겨진 황금티켓을 복권처럼 발견하고 인생이 바뀌는 유명한 장면이 나오는데, 저자에겐 인류세가 그런 황금티켓이었다고 한다.

 

다큐멘터리 PD로서 그 단어를 처음 접하는 순간, '인류'라는 이름을 붙인 지질시대 용어가 지구상에서 인간에 의해 벌어지는 대다수 문제의 심각성을 설명할 수 있다는 직감이 들었다. 또한 '인류세'라는 개념이 주는 새로움이 환경 문제에 대한 대중적 피로감을 상쇄하고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고 판단했다.

 

더불어 관심 없어 하던 사람들을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바꿔줄 기회로까지 느껴졌다고 한다. '왜 우리나라만 유독 인류세에 무관심하지?'라는 생각이 일순간 들었지만 그래서 더욱 매력적인 아이템으로 다가왔다고 말한다.

 

듣거나 발음하면서 명확하게 인지되는 단어 하나의 파급력을 저자는 '인류세'에서 느꼈던 것은 아니었을까? 지구환경과 맞서 싸우게 된 시대를 뜻하는 '인류세'를 살고 있는 현시대 사람들은 이 단어의 탄생을 결코 자랑스럽게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
지구적 문제는 대체 왜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걸까?
=====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말처럼 인류세에서 지구적 문제는 우리 모두가 죽느냐 사느냐와 다름없는 아주 중요한 우선순위의 문제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이 문제는 답답할 만큼 꽤 동떨어진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그 몇 가지 이유를 저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첫째, 개별 과학 지식에 대한 신뢰라기보다는 과학 지식을 가지고 일을 하는 국가와 사회제도에 대한 신뢰의 차이 때문이다.

 

즉, 우리가 중고등학교 때 배운 과학지식을 받아들이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 지식을 가지고 정책을 펼치는 기관, 정부에 대한 신뢰가 결합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기후 위기와 관련한 에너지 정책이든 몸에 맞는 백신이든 모두 자신의 건강과 경제적 이해관계와 관련이 있다. 그러면 그것을 수행하는 제도와 정부에 대해 믿음과 의심으로 갈리게 되고, 그와 결부된 과학 지식을 의심하는 데까지 나아갈 가능성이 생기게 된다.

 

코로나 19는 우리 사회가 얼마만큼 과학을 불신하는지, 정확히는 얼마만큼 과학 지식에 기반한 정책과 사회제도를 불신하는지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둘째, 위기가 위기로 안 느껴지게 범주화되기 쉬운 사회이기 때문이다.

 

'기후변화'가 많은 사람들에게 생존이 달린 위기가 아니라 다른 여러 문제 중 하나로 인지되고 있기 때문에, 이 문제를 되짚어보는 데 있어 출발점부터 잘못 설정된 것이다.

 

진짜 문제는 이제부터인데, '확증편향'이란 것이 등장한다. 쉽게 말하면 수많은 뉴스 중 자신이 듣고 싶은 것만 크게 들리는 경향성을 의미한다.

 

대중은 자신의 가치와 맞는 뉴스만 소비하고, 좋아하는 것만 찾다 보니, 알고리즘까지 가세해 좋아하는 것만 들리게 만들어 버린다.

 

-----
"내 신념에 맞는 메시지가 더 좋은 거야. '내가 옳다. 내가 생각하는 대로 타인도 생각할 것이다'라는 사고방식이지. 이건 사실 영유아한테 보이는 '자기중심성'이라는 인지적 특성인데, 이게 성인들에게도 여실히 드러나는 거지. 내가 옳으니까."

34페이지 中
-----

 

문제는 유치한 사고방식이라고 치부하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란 점이다. 기후 위기가 진짜여도 자신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팩트들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런 사람이 많으면 사회적 논의가 나아가지 못한다.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흘려보내면, 지구 시스템이 붕괴하고 인류와 다른 비인간 생명체 모두 파국을 맞이할 수 있다.

 

----
위기를 위기라 인지하지 않고 북극이나 남극의 일, 혹은 죽을 때까지는 벌어지지 않을 먼 미래의 일로 여기는 사람이 다수다. 예상은 했지만, 사고의 작동원리를 알고 나니 허탈하다. 심리학자와 대화를 나누며 마신 커피는 참 쓸쓸했다.

35페이지 中
----

 

 


▶셋째, 인류세적 재난이 체감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재난의 예고에서 발생까지 진행되는 속도가 느리기 때문이다.

 

인류세 현장은 누적된 산업화의 결과일 뿐 아니라. 재난의 전조를 방기한 사회의 공동 책임이기도 하다. 행성 전체에 걸쳐 나타나는 인류세 현장의 특성을 이해한다면 투발루와 히말라야의 위기는 곧 우리와 연결된다. 그렇기에 만성화된 위기감이 선사하는 '그게 뭐?'의 무감각함을 더 경계해야 한다. 무감각하기에는 이 시대가 너무 긴급하다.

 

-----
우리가 지구적 위기를 외면할 수 있는 것은 외면해도 아직은 살 만하기 때문이다. 역대급 폭염이 오면 에어컨을 켜서 온도를 낮추면 되고, 최장의 장마가 오면 제습기로 습도를 낮추면 된다. 살 만한 이들의 손쉬운 해결책은 양의 되먹임이라는 부메랑이 되어 다시 역대급 폭염과 장마로 이어진다.

73페이지 中
-----

 

세 가지 이유를 살펴보며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이구나를 다시 한번 실감하게 한다. 어떤 것도 '아니'라고 분명히 말할 수 없는 너무 적나라한 이유 덕에 더 현실을 뼈아프게 직면하게 된다.

 

특히 우리나라는 과학지식을 가지고 일하는 정부를 믿지 못하는 성향이 강하고, SNS의 사용이 늘어남에 따라 점점 더 확증편향이 강해지고 있는 것은 물론, 만성화된 위기감과 나름대로 살만하다고 생각하는 이들 사이에서 외면받고 있는 없는 사람들은 점점 더 한 고통을 되돌려 받게 되기라는 것은 지난 경험을 통해 알고 있기 때문이다.

 

 


=====
한국 언론은 지구적 문제를 왜 충분히 다루지 않을까?
=====

 

이에 대한 답은 허무할 정도로 간단했는데, 기획 기사나 탐사 기사가 많아지면 출입처 시스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데 기획이 부족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온라인의 페이지뷰 성과도 무시할 수 없는데, 언론사의 수익이 클릭 수에 따른 트래픽에 좌지우지되기 때문에 기후 위기를 공부하고 전문가를 발굴해 인터뷰하는 것보다는 정치인, 연예인, 운동선수 등 유명인의 발언이나 SNS 포스팅을 기사화하는 것이 손쉽고 결과물이 보장된다. 때문에 상대적으로 지구적 문제는 등한시되는 것이다.

 

언론사 수익의 다변화와 방식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싶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결국 어떤 방식을 쓰더라도 원점으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추세를 살펴보고, 해외 언론은 어떤 방식으로 운영하고 이끌어 나가는지, 또 지구 문제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는지 살펴보면서 우리도 배울 필요가 있어 보인다.

 

 


=====
지구 위기에 대한 '국내'와 '해외' 인식 차이의 원인
=====

 

1. 언론의 역할
독일의 언론을 예시로 살펴보면 언론의 역할에서 그 차이를 발견해 볼 수 있다.

 

"언론의 역할이 가장 크다고 생각해요. 독일 사람들은 공영방송 ARD의 저녁 8시 뉴스를 즐겨 보는데, 전체 분량의 15분입니다. 거기에 거의 매일 기후 관련 뉴스 꼭지가 하나씩은 나와요."

 

2019년의 호주 대화재 때 독일 저녁 8시 뉴스는 첫 꼭지나 두 번째 꼭지 헤드라인으로 호주 소식을 다뤘다.

 

해외 뉴스는 뒤에 배치되는 한국의 저녁 프라임 타임 뉴스를 생각하면 비교가 된다. 독일 방송사는 해외 뉴스임에도 기후 관련 소식이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하여 앞부분에 배치한 것이다. 그 순서와 비중으로 독일 시청자들은 사건의 무게감을 느끼게 하고 뉴스의 가치를 반영한다.

 

이렇듯 두 나라 간 지구적 문제에 대한 인식 차이의 원인 하나는 '언론'의 역할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2. 확실한 방향 설정과 협의된 사회적 합의의 유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부족 현상이 발생했을 때, 우리나라의 경우 같은 상황을 두고 가스 수입의 어려움으로 인한 난방 에너지 부족 및 전력 가격 인상을 가장 큰 논조로 꼽았다.

 

하지만 독일의 경우 오히려 재생에너지로 더 빨리 전환하는 동력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외부에 에너지를 의존해선 안 된다는 에너지 자립 개념이 강해진 것이다.

 

주변국 전쟁이 에너지 전환에 큰 혼란을 야기하기보다 오히려 독일은 방향이 확실하다 보니 혼란이 비교적 적은 것이며, 분열과 정책 번복보다는 고통을 함께 감내하면서 정해진 길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쓰레기 같은 기사를 배포하는 기자를 '기레기'라고도 표현하는데, 독일 언론과 비교해 보니 언론인의 진정한 자세에 대해 곱씹게 된다. 경쟁사와의 차별점을 제대로 된 기사를 내는 것으로 구분할 수는 없는 걸까 새삼 의문이 든다.

 

보통 메인뉴스에서 초반에 언급되는 것들은 그날의 헤드라인으로 사람들에게 인식된다. 그런 만큼 그 영향력 또한 상당한데, 그런 사람들의 심리를 잘 이용해 세계적인 이슈를 잘 전달하고 있는 독일의 언론은 그 역할을 매우 잘하고 있다고 보인다.

 

두 번째 차이점을 살펴보면서 최근 다시 불거지고 있는 요소수에 대한 이슈가 떠올랐다. 중국에 90%를 의존하고 있는 요소수 부족의 문제가 처음 불거졌을 때 우리나라는 우왕좌왕 난리가 났었다. 그때 정부는 중국의 수입의존도를 낮추고 다른 방안을 찾겠다고 이야기했지만, 다시 불거진 현시점에서 대안은 아무것도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세계적 정세가 불안한 요즘 국가는 중요한 에너지 자원에 대한 대책 마련을 하고 이에 대해 국민적 합의가 이행되어야 하는 것이 맞다. 신재생 에너지와 대체 에너지에 대한 방향과 방법들이 강구되어야 할 때, 국가는 무엇을 하고 있나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지구 위기에 대한 문제 또한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이 아니라고 해서 손놓고 있기 보다 서서히 준비해서 국민적 합의와 대책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맞는다고 본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 당장은 요소수 하나로 넘어가겠지만, 앞으로는 더 큰 문제들이 연이어 발생할 것이고, 우리는 이것을 남 탓만 하다가 시간만 허비하게 될 것이다.

 

 


=====
30년이라는 시간으로 살펴본 우리 사회의 객관적 지표!
=====

 

1991년부터 2019년까지 보도된 기사를 통해 우리 사회가 기후 위기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가졌는지 살펴보면 더 확연히 드러난다.

 

▶1991년 기후 변화 관련 기사가 11건에 불과
▶2009년 기후 관련 기사가 2611건 보도됨
  (코펜하겐에서 COP15가 열리던 해)
▶2015년 2399건으로 올라갔다가 떨어짐
  (파리에서 COP15가 열리던 해)
▶2019년에는 2000건

 

이처럼 기후 관련 소식은 '국제회의'라는 이벤트나 사상 초유의 재난이 발생하는 정도는 되어야 뉴스로서의 가치를 부여받았다.

 

30년 동안 언론계에 종사한 기자는 "뉴스 가치가 떨어진다고 생각하니까 기사가 안 될 때가 많았어요. 데스크를 이해시켜야 지면에 실리는데 이해시키지 못한 적이 있죠."라고 말한다.

 

지금도 기후 위기 관련 뉴스는 열심히 써도 클릭 수가 잘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독자들의 수요가 받쳐주지 않으니 예나 지금이나 기자들도 나름의 고충이 있다.

 

이를 통해 지구 위기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
기후 위기 vs 미세먼지 대응의 차이를 불러온 이유는 무엇일까?
=====

 

한 가지 놀라운 점을 살펴보자면, 기후 위기 대응은 더디기만 한데, 미세먼지 대응은 생각보다 꽤 빠르고 국민들의 인식도 달랐음을 확인해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이유를 살펴보면 미세먼지는 일단 뿌옇게 눈이 보이고 그 피해가 우리에게 호흡기 질환처럼 직접적으로 오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한다.

 

반면 기후 위기는 우리에게 오기도 하지만 피해가 지구 전체로 흩어지는 거고 눈에 안 보이니 달랐던 것이다.

 

더불어 미세먼지는 저감이 상대적으로 쉬운데, 자동차 배기가스를 규제하고 공장 굴뚝을 관리하면 미세먼지를 걸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기후 위기는 차원이 다른 문제로 산업 구조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생각이 바뀌고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 난제 중의 난제다.

 

그런데도 우리의 관심사는 부동산과 정치권 뉴스에 쏠려있다. 관심사가 멀어지기 때문에 언론사가 판단하는 뉴스 가치가 떨어져 기사량이 부족한 상황이 되면서 양의 되먹임 구조가 되는것이다. 누군가 각성해야 끊을 수 있는 악순환의 고리라 할 수 있겠다.

 

 


>>확실하게 눈으로 보여주는 방법을 통해 미세먼지처럼 기후 위기를 인지시키고 관심을 가지도록 노력하는 방법을 찾는 노력도 필요할 것 같다. 뒤에 해결 방안에서 이에 대해 언급하는 방법이 있는데, 두 가지 만남으로 이를 해결할 수 있을 듯하다.

 

 


=====
표현 단어와 언어의 변화로 이끌어 낼 수 있는 변화
=====

 

프랑스 언론의 사례를 통해 살펴보면, 

 

▷프랑스 언론은 '기후 변화' 대신 '기후 고장' 혹은 '기후 비상'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대표적인 신문사 르몽드는 지구 위기를 다루는 전담팀을 환경팀이라고 부르지 않고 '플래닛 팀'이라고 명명한다.

 

이런 식으로 꾸준히 지구의 위기를 고민하며 언론사로서 바꿀 수 있는 것을 하나씩 바꾸는 시도한 과정들이 엿보인다.

 

진민정 박사는 프랑스 언론과 인터뷰를 할 때마다 단순히 대중에게 보도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의 이해를 높여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내겠다는 큰 목표를 느낀다고 말한다.

 

지구 반대편 프랑스 미디어에 불고 있는 변화는 우리에게도 작은 희망을 품게 한다.

 

지구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지금의 사회를 보여주는 단어나 심리를 드러내는 적확한 용어를 떠올려보자.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는 그런 마음을 표현할 상상력이 더 많이 필요한 시기일지도 모르겠다.

 

언어의 한계와 그 언어를 생산하고 유통하는 이들의 한계를 극복함으로써 인류세를 더 직관적으로 표현하고 이 위기의 긴급성을 드러낼 단어가 우리의 입에서 계속 오르내린다면 언젠가 더 나은 상황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품게 된다.

 

 


=====
우리나라 사람들의 생태계에 대한 인식
=====

 

저자는 전국 곳곳의 사람들을 만나며 우리나라 사람들이 야생에 호의적이지 않은 태도를 가지고 있음을 느꼈다고 전한다. 좁은 국토에 5000만 명 넘는 사람이 살 땅도 부족한데 무슨 야생동물이냐는 생각이 만연했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생명다양성을 말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절로 가슴이 답답해지는 순간이다.

 

지구의 주류 기관인 유엔은 지난 2011년부터 2020년까지를 '생명 다양성의 10년'이라고 정했다.

 

 

=====
우리나라에서는 '생명다양성의 10년'이 지정된 사실조차 알려지지 않은 상태로 지나가 버렸다. 물론 개인이 그런 소식을 모르는 것은 언론의 무관심과 구조적 요인 탓도 있겠지만, 태도는 개인적 차원이 문제다. 모르면 인지하고 빨리 쫓아가려 하는 게 바람직할 텐데, 여전히 사람들은 뒷짐을 지고 '내게 조금 더 와닿도록 나를 설득해 봐'라는 자세를 취한다.

186페이지 中
=====

 

우리는 기후 위기 외에도 수많은 지구 위기를 겪고 있다.

 

▶야생 조류 유리창 충돌 문제
▶대멸종이 진행 중인 시대(꿀벌과 야생의 수분 매개자들의 개체 수 급감)
▶비인간 유인원 개체 수의 급감과 그들을 위한 땅의 멸종 상황

 

도래한 큰 문제들은 많은데, 우리의 인식이 그것을 따라가지 못한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안타깝고 답답한 마음만 가득하다. 뒷짐지고 있기 보다 따라가려는 노력에 더 귀를 기울여 보자. (제발!)

 

 


=====
우리가 지구의 위기를 외면하는 이유
=====

 

1. 생존 의식 때문
한국의 20세기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생존'이다.

 

-----
식민 지배, 한국 전쟁, 분단을 겪으며 고생했는데, 또 당할 수는 없다는 생존 의식이 20세기를 지배한 것이다. 지금 당장 한국 사회의 생태 감수성이 낮고 인류세 담론이 더 확산하지 못하는 것에도 그런 배경이 있다.

 

어떤 억울함이라고 해야 할까. 지겹게 당해서 이제 좀 발전하려고 하는데 선진국, 강대국들이 지구를 망쳐놓고는 갑자기 고치겠다며 북 치고 장구 치는 것에 분개심으로 볼 수도 있다. 인구수가 많은 중국이나 인도보다는 지구에 끼치는 영향이 적다는 셈도 있을 것이다.

210~211페이지 中
-----

 

 

2. 시간 감각의 무딤 때문
우리가 지구의 위기를 외면하는 이유는 시간 감각이 무뎌서다. 46억 년이라는 지구의 시간을 고작 1950년대 이후 70여 년 동안 본격적으로 망쳐놓았다는 게 좀처럼 믿기지 않는다. 

 

인간은 길어야 백 년밖에 못 사는데, 2050년의 지구가 어떻게 바뀌어 있을지 그때 자신은 몇 살이고 악화된 환경에서 남은 생은 얼마일지 계산기를 두드려봐야 시간 개념이 어렴풋하게 잡힌다.

 

 


>>과거는 과거로 두고, 현재를 바라봐야 할 시기가 아닌가 싶다. 46억 지구의 시간을 인간은 고작 70여 년 동안 망쳐놓았다. 그리고 그 시기는 우리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정신 차려야 할 시기라는 생각이 든다.

 

 


=====
다른 관점으로 살펴보는 지구 위기의 원인!
=====

 

1. 젠더 문제
산업화와 과학기술 발전이 남성의 주도로 이뤄졌기 때문에 그 반대편에서 해결책을 모색해 보자는 것으로, 인류세는 서구 백인 남성의 반성문이기에 '지금 우리가 위기다'라고 하는 이 담론조차도 선도해가는 배긴 남성들에 의한 것이기에 우리한테 와닿지 않는 것이라는 의견이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돌봄의 전략을 제안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주로 백인 남성들을 사용자로 가정하고 만들었던 기술들을 다양한 인종, 여성, 장애인, 지역 주민, 동식물을 포함한 비인간 존재들의 요구에 맞춰서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을 말한다.

 

과학기술 밖으로 몰아냈던 것들을 복권시키고 지금껏 배제되었던 것에서 혁신과 창의성이 나올 것이라며, 숲을 돌보고, 가축을 돌보고, 야생동물을 돌보면서 시대와 공명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2. 이분법적 사고
인간/자연, 남성/여성, 인류/동물 식의 이분법적, 분리적 사고가 지구의 위기를 불러왔다는 주장이다. 인류세 시대를 넘으려면 분리적 사고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것으로 그러기 위해서는 새로운 감수성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국어사전에서 정의하는 감수성
외부 세계의 자극을 받아들이고 느끼는 성질

 

▶홍성욱 교수가 정의하는 감수성
외부 세상을 받아들여서 인지하고 느끼는데 그치지 않고 몸으로 행하는 것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다양하고 복잡하게 엉켜있는 세상을 포용하고 공감하며 애정 하는 적극적인 심성을 말한다.

 

지구의 위기에 제대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근대성에 대한 성찰과 새로운 해석이 필요하다. 그게 감수성을 정의할 때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이다.

 

인류세 시대의 감수성은 분리적 사고가 아니라 통합적인 실천까지 포함하는 감수성이다. 무해의 태도가 다른 존재에게 가해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서 더 나아가 적극적인 실천을 동반하는 것을 말한다.

 

그렇기에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과학기술이 아니라 필요한 것은 단순하고, 작고, 덜 쓰는 세상을 상상하고 실천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 감수성을 철학에서는 '포스트 휴머니즘'이라고 부르는데 포스트 휴머니즘은 세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는 인간은 자기중심적인데 그것을 버리는 것이다.
내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변방에 갖다 놓는 것 그러면 잘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많이 보인다.

 

▶두 번째는 내가 있던 위치에 다른 존재들을 갖다 놓고 생각해 보는 것이다.
남성이면 여성을, 동양인이면 아프리카의 흑인을, 그 위치에 놓고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러면 잘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많이 보인다.

 

▶세 번째는 그것들을 연결된 존재로 생각하는 것이다.
보통은 스스로가 주체적으로 친구와 애인을 사귄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라 다른 존재들과의 관계 속에서 내가 살고 있고 그 관계의 합이 나를 만든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내가 있어서 관계를 만드는 게 아니라 그 관계의 총체가 나다. 그 관계의 총체가 인간이다.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보는 것이 포스트 휴머니즘 감수성이다.

 

 


=====
분열된 한국 사회를 기회로 만들 해결책
=====

 

현재 한국 사회가 분열되어 있는 것은 팩트에 가까울 정도로 명징하다. 정치적으로도, 세대로도, 젠더적으로도 분열이 심하다. 이러한 한국 사회에 지구의 위기는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는데, 이에 대해 홍성욱 교수는 두 가지 만남에 주목한다고 한다.

 

▶첫 번째. 과학과 종교의 만남
지구의 위기 앞에서는 과학과 종교가 힘을 합쳐야 상당한 동력이 생긴다. 

 

▶두 번째. 과학과 예술의 만남
인류세 문제는 눈에 보이지 않고 피부로 잘 느껴지지도 않다 보니 과학적 커뮤니케이션이 더욱 어렵다. 예술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할 수 있고 피부로 느껴지지 않는 것을 느껴지게 할 수 있다.

 

실천적 연대는 거창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할 수 있는 영역에서 벽을 깨고 인접 분야와 같이 협력하고 다른 사람과 문제의식을 공유하며 실천을 넓혀가는 것이다. 그 무해한 삶의 태도와 실천적 연대가 함께 한다면 어쩌면 우리는 지구와 충돌하지 않고 무사히 착륙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끊임없이 시스템을 의심하고 변화와 대책을 요구하며 연결되어야 한다. 텀블러와 종이 빨대를 쓰는 착한 소비자 운동에서 그치지 않으려면 주변 사람 및 그 너머에 있는 사람들과 어떻게 자기의 생각을 함께 나눌 수 있을지 생각하고 이야기해야 한다.

 

지금 현재 나의 생각의 지점은 어디쯤에 있는지, 또 당장 실천할 수 있는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고민하면서 지구와 우리가 함께 공존할 수 있는 방법들을 하나씩 실천해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향적이지만 집순이는 아닙니다
라비니야 지음 / 부크럼 / 202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가고 싶은 곳에 한계를 두지 말 것.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원하는 곳으로 향할 것.

그리고 자신만의 여행에 동참할 것!
----------------------------------------------

 


'여행'하면 거창하고 어려운 것으로 생각해 쉽게 발길을 떼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책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여행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아 주고, 여행이 주는 행복과 그 속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해 준다.

 

특히 이 책에서 담고 있는 여행은 흥청망청 먹고 마시고 즐기기 위한 여행이 아닌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들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경험하며 나를 채우는 오로지 '나 자신'을 위한 여행에 대해 담고 있다.

 

모두 벗어 던져버리고 멀리 떠나고 싶은 순간, 현재가 만족스럽지 않거나 늘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있다면 잠시 숨을 돌리기 위한 여행을 떠나보자.

 

거창하거나 완벽할 필요 없다. 그저 내가 좋아하는 게 가득한 장소로 떠나기만 하면 된다. 만약 어디론가 떠나는 것이 번거롭거나 두렵다고 느껴진다면 이 책을 통해 여행이 생각보다 별거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집 밖으로 한 발을 내디디는 것으로 시작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해외를 가거나 거리가 멀지 않아도 된다. 가까운 곳에 위치한 좋아하는 카페를 방문하는 것만으로도 꽤 큰 활력과 기쁨을 얻을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내가 갇혀있는 생각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는 공간, 그것을 경험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여행의 묘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저자가 여행한 국내 전국 각지의 여행지를 살펴보면 여느 여행과는 확연히 다르다. 유명한 관광지나 먹거리 등 인터넷으로 쉽게 검색되는 그런 곳은 이 책에서 확인할 수 없다.

 

그저 마음이 닿는 곳, 발길이 향하는 곳, 우연히 알게 된 좋았던 곳, 나만의 맛집 등 저자 자신에게 위로와 위안을 주었던 장소들과 그에 대해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한 것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발자취들을 따라가다 보면 '진짜 여행이란 이런 것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어떻게 보면 소소하고 작은 것들이라 치부할 수도 있지만, 그 안에서 스스로 즐거움과 행복을 느낀다면 이것만큼 좋은 것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내향적이지만 집순이는 아니라는 책 제목처럼, 오히려 자신의 감성과 취향에 따라 홀로 낯선 곳을 방문하고 그곳에서 하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만끽하는 저자의 여정은 그래서 더 푸근하고 다정하게 다가온다.

 

더불어 왜 나는 여태껏 망설이고만 있나라는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삶의 환기가 필요한 순간, 여행을 통해 새로운 원동력과 에너지를 얻어 갈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자. 당신도, 나도 이제 가볍게 발길을 떼는 일만 남았다.

 

 


-----
이 책이 여행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이들에게 작은 바람을 불어넣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여행은 결코 시간과 돈의 자유가 허락되어야만 갈 수 있는 게 아니며 당장 어디로든 향할 수 있는 사람이 더 먼 곳의 풍경도 꿈꿀 수 있다는 걸 말해주고 싶다. 날 좋은 어떤 날, 이대로 시간을 흘려보내는 게 아쉽다면 작은 가방 메고 어디든 가 보자.

우리 주변에는 가 보지 못한 곳과 가 보면 좋을 곳들이 도처에 많이 남아 있으므로.

프롤로그 中
-----

 

 


----------------------------------
knock, knock
이제 짧은 외출을 할 시간이다!
----------------------------------

 

 


=====
기억에 남는 여행지 에피소드
=====

 

epi 1. 공주에서 만난 무인 책방

 

■공주를 가게 된 이유
구황 작물 중에서도 밤을 특히 좋아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는데, 공주에서 밤 떼를 볼 수 있으리라는 예상과는 달리 공주는 밤의 도시라 불리지만 밤을 선두로 하는 음식이 별로 없었다.

 


■우연히 발견한 무인 책방
공주에서 묵었던 두 번째 밤, 잠이 오지 않아 걷던 중 우연히 무인 책방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앞서 다녀간 이들의 가득한 메모를 발견하게 된다.

 

-----
이 책방에선 많은 이들이 쉬어 갔다. 낯선 골목을 거닐며 자신만의 지도를 넓혀가던 여행자가 방문하여 뜻밖의 영감을 얻는다.

 

이곳에서는 쓰는 기적이, 그리웠던 기억을 촘촘한 뜰채로 조심스럽게 뜨는 일이 일어난다. 잊혔거나 모른 척하고 있던 단어들이 심연에서 모습을 드러내면 내 손은 더욱 바빠진다.

누군가 잡아 둔 말들은 내 것과 비슷하기도 하고 전혀 다르기도 했다.

52페이지 中
-----

 

길을 걷아 우연찮게 들어간 무인 서점은 앞서 다녀간 이들로 메모가 가득한 곳이다. 그 기록들은 특정인을 위한 것이 아니기에 그저 휘발되고 말 테지만 그렇기에 무거웠던 속내를 속시원히 내뱉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타인이 남긴 메모를 읽다 보면 울고 웃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데, 어쩌면 그것은 누군가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구나 하는 안도 혹은 위로일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의 시선 없이 그저 고요히 메모 한 장을 통해 마음을 나누고, 위로와 위안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이 공간이기에 가능한 것은 아니었을까?

 

 


epi 2. 심란할 땐 대전으로 침묵 여행을 떠나자

 

어째서인지 마음이 심란할 때면 나무를 다루는 J의 뒷모습을 보곤 하는 저자는 어느 겨울, 땔감을 모아 오듯 걱정거리를 안고 J를 찾아갔다. 그 시기에 저자는 공모전에 떨어진 원고를 투고하는 일에 지쳐있는 상태였다.

 

수상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속상함, 내 안에서 커져가는 불안과 초조함을 안고 J를 찾았던 건 그녀의 기질 때문이었는데, 저자는 J와 함께일 때 자신이 지닌 고민이 가벼워지는 걸 느꼈다고 한다.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혀 계획을 포기하고 싶거나 합리화하고 싶은 시기에도 그녀는 저자의 헐거워진 마음을 단단하게 쪼여 주었는데, 그때마다 그 안정감에 기대어 불안을 해소할 지혜를 구했다고 한다. 

 

이번에 방문해서는 대중적인 작가가 되려면 등단하거나 공모전에서 수상하여 공식적 인정을 받아야 한다고 토로하는 저자에게 J는 별다른 답이 하지 않았는데, 이에 저자는 그녀의 침묵이 의미하는 바를 멋대로 해석해 자신의 생각에 동의하는 걸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잠시 후 그녀의 질문과 이야기 덕에 저자는 다시 한번 불완전한 자신의 마음이 균형을 이루는 것을 느낄 수 있었으며,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방향을 찾게 된다.

 

 

-----
J는 '네 마음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면 돼. 결국 넌 하고 싶은 일을 기어코 해낼 걸 알아.'라고 덧붙여 말했다. J의 말은 나의 불완전하고 결함 많은 마음이 깨어지지 않도록 균형을 메워주었다.

 

섬세한 손길로 나무를 다루는 J는 거칠어진 마음 표면을 부드럽게 다듬는 일에도 능숙했다. 난 J의 말에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몸을 일으켰다. 가고 싶은 곳으로 떠나고 느낀 것들을 써 내려가기 위해서. 그녀는 도면 위에 새로운 선을 그으며 이젠 어디로 떠날 거냐고 물었다. 

 

나는 '때마다 다르겠지만, 그 순간에 제일 가고 싶은 곳'이라고 대답했다.

58~59페이지 中
-----

 

마음이 심란할 때 안정을 주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J는 진심 어린 말 한마디를 툭툭 내뱉는 것으로, 그저 잘 될 거라 믿어주는 말 한마디로 저자에게 안정감과 고민을 해결할 지혜를 전해준다. 그리고 그 말들은 어떤 위로의 말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한다.

 

제자리를 지키며 늘 묵묵하게 확고한 믿음과 신뢰를 전해주는 J가 있기에 저자에게 대전은 마음을 추스를 수 있는 유일무이한 여행지일지도 모르겠다.

 

마치 정답을 찾아가듯이, '심란할 땐 대전으로!' 와 같은 문장이 떠오르는 것으로 보아 저자의 치유여행은 나에게도 확실히 각인된 것 같다.

 

 


=====
인상 깊은 구절들
=====

 

-----
쓸모의 기준은 타인이 정하지만, 나의 필요는 타인의 쓸모와 다른 지점에서 시작된다. 내 마음이 머무는 위치와 보고 싶은 전경, 머물고 싶은 장소가 어디냐에 따라 답은 달라진다.

22페이지 中
-----

 

스스로 무엇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순간, 그것을 찾는 여행을 시작해 보자. 그 '필요'에는 오로지 내 마음이 정답이므로 내가 원하는 곳, 내가 보고 싶은 전경, 내가 머물고 싶은 장소, 내가 먹고 싶은 곳이 바로 그 답이다.

 

 


-----
매번 원하는 시점에 찾아가면 내가 기대한 모습 그대로 남아 있을 거라 보장할 수 없겠지. 그렇기에 같은 곳이라도 좋았던 장소는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계절이 바뀔 때마다 자주 방문하면 좋겠다. 내가 머물렀던 곳이 언젠가 다시 볼 수 있는 그리운 추억이 될지도 모르니까.

29~30페이지 中
-----

 

돌이켜보면 추억 속에만 머무르는 장소가 꽤 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기대한 모습으로 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곳이 몇 없기 때문이다. 빠르게 변모하는 시대, 이제라도 마음에만 담아두기 보다 자주 방문해서 아쉬움의 질량을 줄여보자.

 

 


-----
떠날 수 있는 용기란 지금 상황을 견디기 힘들거나 또 다른 변화를 도모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서 일어난다. 휴양지로 떠나는 여행이 아닌 이상 다른 곳으로 떠날 적에는 간절함이 기반 되지만 무언가를 열망하는 마음은 여정의 족쇄가 되기도 한다.
(...)
어떤 것은 너무 간절할수록 멀어지고 움켜잡으려 할수록 손아귀에서 멀리 벗어나고 만다.

38~39페이지 中
-----

 

단순히 휴양을 목적으로 하는 여행 말고, 상황의 변화와 탈피를 위한 용기로 떠난 여행은 때로, 오히려 목적을 상실하고 돌아올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차라리 답을 찾으려는 강박과 부담을 놓아버리고 괜찮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여행을 즐겨보면 어떨까? 아무것도 없는 그 자체가 오히려 현재의 나의 모습에 더 집중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른다.

 

 


-----
낭만적 취미에 대해 곰곰 떠올려 보면 대게 자신만의 즐거움과 연결된 경우가 많은 듯하다.
(...)
'취미가 뭐예요.'라는 질문에 자신만의 의식을 설명하는 이들은 과연 낭만적이다. 난 이런 낭만을 가진 이들에게 매료된다.
(...)
난 분명 낭만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다. 언제까지고 낭만을 그리며 예민한 감수성을 잃지 않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개별적이고 특수한 자신만의 취미 한두 가지 정도는 만들어 두는 게 좋지 않을까. 다른 이들의 눈에는 불필요해 보이거나 의아함을 일으키면 또 어떤가. 마음을 충족시켜 줄 만한 취미에 낭만까지 한 스푼 더해진다면 사는 건 어떤 책의 제목처럼 꽃 같아질 수 있다. 제일 중요한 건 마음껏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가고 싶은 곳을 가는 것이다.
(...)
모두 자신만의 방식으로 잃었던 낭만을 회복할 수 있으면 좋겠다.

92~93페이지 中
-----

 

정세랑 작가는 '사람들이 길에 두고 가는 물건들을 사진으로 찍어 남겨 두는 것'이라고 소개하고, 조현 작가는 식물을 기르고 싹을 틔우는 일의 기쁨'을 서술한다. 하루키의 경우 '낡은 레코드를 수집하는 게 취미'라고 언급했다.

 

저자는 '여수 밤바다'를 듣다가 여수행 기차를 타고, 지역마다 다른 바다의 빛깔을 비교하고 싶어서 한 주에 창원, 보성, 부산의 바다를 찾아 진이 빠지게 다닌 적도 있다고 한다.

 

문득 나의 즐거움과 연결된 낭만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된다. 걷다가 눈에 띄는 소소한 기쁨을 사진으로 남기는 것, 반려 식물들의 성장을 눈과 사진으로 남기는 것, 떠오르는 여행지를 홀로 거닐며 마음과 사진에 담는 것!

 

그러고 보면, 나의 즐거움과 연결된 낭만은 '일상의 여행'과 '사진의 기록'으로 정리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생각만으로도 어쩐지 행복해지는 기분이다.

 

 


-----
일상의 단면을 관찰하는 기록자로서 남겨 둔 메모를 신뢰하는 편이다. 그것들은 시간이 지난 뒤에 소중한 장면을 떠오르게 하는 버튼이 된다. 글쓰기를 통해 기억의 버튼을 남기는 건 사진을 찍는 일에 비하면 에너지가 소요되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다. 다녔던 곳들을 떠올리며 재생 버튼을 누르면 정성 들여 만든 기록이 마음을 어루만진다. 삶이 팍팍하거나 무료함에 진력이 나서 멈추고 싶은 날에는 만들어 둔 버튼을 골라 누른다. 그 순간, 그리운 장면과 고마운 사람들이 선명하게 나타난다.

139페이지 中
-----

 

나 역시 수집가이자 기록자이지만, 유독 여행에 대해서만큼은 기록으로 연결 짓지 못하고 있다. 올해만큼은 여행의 기록을 남겨보자 마음먹었던 시기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에 들어섰다.

 

이 문장을 읽다 보니, 더 늦기 전에 기억의 버튼을 남길 수 있는 여행 글쓰기를 시작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다시 한번 꼼꼼히 자료들을 살펴보고 하나하나 기록으로 남겨 그때의 추억과 마음을 떠올려 봐야겠다.

 

 


-----
내가 배워야 하는 건 어디로든 떠날 용기와 망설임 없는 실행력일 것이다. 작은 시도가 쌓여 무언가를 실천할 동력을 만들고 그 힘을 통해 더 나은 환경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러므로 한곳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지금 이곳에 정착할 수도 있고 어디든 다른 곳으로 떠날 수도 있다. 이건 비단 장소만의 문제는 아니며 관계와 일도 마찬가지다. 어떤 관계를 소중히 유지해 갈 수도 있지만, 서로 간의 방향성이 달라지면 거리를 두는 멀어짐도 필요하다. 같은 일을 반복적인 패턴으로 거듭하는 것에서 벗어나 다른 방식으로 움직일 수도 있어야 한다.

 

내가 경험한 세계가 판단의 기준이 되기에 그 범위를 넓히는 건 중요하다. 다양한 곳에서 여러 인연을 맺고 생활하는 건 나만의 시야에 갇히는 오류를 줄이는 데에 도움을 준다.



가고 싶은 곳에 한계를 두지 말 것.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원하는 곳으로 향할 것.

213~214페이지 中
-----

 

여행을 떠나야만 하는 이유와 이점에 대해 명확히 알 수 있는 단락이다. 어디로든 떠날 수 있는 용기와 실행력, 그리고 언제 어디로든 떠날 수 있다는 유연한 마음은 여행을 시작하는데 더없이 필요한 요소들이다.

 

또 이것들은 일과 관계에 적용되는 또 하나의 깨달음을 주기도 하는데, 융통성과 유연함을 길러주는 것은 물론 한 가지 생각에 정착하지 않도록 도와줌으로써 더 넓은 세계관과 경험, 시야를 확보해 준다.

 

삶에 있어 한자리에 머무는 것은 안정감이 아니라 또 다른 불안을 야기한다. 불안하다는 이유로, 귀찮다는 이유로 머물러 있기 보다 마음이 이끄는 곳을 향해 나아가 보자. 어느 곳도 못 갈 곳은 없다. 내 마음이 이끄는 곳, 내 마음이 향하는 곳을 향해 한 발을 내디뎌 보자.

 

이것이 반복되어 습관으로 자리 잡을 때쯤에는 자연스럽게 내 감정이 이끄는 장소가 콕 하고 박히지 않을까?

 

 

보통 우리는 여행을 이야기할 때 돈이 없거나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자주 대곤 한다. 하지만 어쩌면 그런 이유로 떠나지 못한 게 아니라 떠날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되돌아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저자 역시 이런 핑계들로 차일피일 미루다 친구의 말 한마디에 위기감을 느껴 불현듯 여행을 가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떠나보고 나니 상상하던 것보다 훨씬 더 만족스러웠다고 전한다.

 

-----
영화와 책을 통해 접하는 것과 달리 실제 세계를 오감으로 체험하는 일은 훨씬 더 생생했다. 즐거운 경험을 놓치지 않기 위해 버스나 기차를 탔고 때론 걸었다. 그렇게 보고 체험한 것들을 모아 글로 엮었다. 그 순간에 느꼈던 기쁨과 즐거움, 만족을 잊지 않기 위하여.
(...)
한 권의 책만큼 강렬한 배움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 경험과 대화를 통해 알맞은 속도와 방식으로 정성스럽게 자신을 키워 가는 중이다.
(...)
지쳐 있던 마음을 부드럽게 단련하는 경험을 쌓아갈 수 있었다.

에필로그 中
-----

 

영화나 책과 같은 간접 경험으로는 메꿀 수 없는 생생함과 거기에서 비롯되는 다양한 감정들, 여행을 하며 만나는 강렬한 만남으로 성장하는 나 자신, 거기에 더해 마음을 단련하는 경험까지. 어쩐지 이 책을 덮고 당장 떠나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몰려온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기 보다, 잠을 자거나 잠시 일어나 스트레칭을 하는 게 더 도움이 되는 것처럼, 일상이 따분하거나 지치는 순간 한 번씩 나를 위한 충전의 여행을 떠나보자.

 

새로운 환경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온전히 느끼고, 경험하며 시간을 보내는 동안 어느새 불안은 잠재워지고 새로운 에너지가 채워져 내일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가볍게 배낭을 꾸려 가보고 싶었던 곳을 향해 떠나보자. 지금이 바로 그 타이밍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the ORANGE 머묾 여행 - 무조건 지금 떠나는 개인 취향 여행 Rainbow Series
박상준.송윤경.조정희 지음 / 여가로운삶 / 202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번에 만난 도서는 앞서 만난 여느 '여행' 도서와는 다른 지극히 개인의 취향을 반영한 여행 책으로, 세 명의 작가가 각기 자신의 목적을 위해 떠나 '머문' 장소들을 담고 있다.

 

그리고 그 장소들에서 생각과 시선, 감성과 영감을 엿볼 수 있었는데, 이들에게는 꽤나 특별한 장소처럼 보였다. 더불어 아주 내밀한 공간을 살짝 엿본듯한 느낌도 들었는데, 모두 홀로 방문하여 조용히 머물다 가는 장소처럼 느껴져 더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세 명의 저자는 이 책을 편찬하면서 오렌지 컬러를 테마로 설정했는데, 그들은 이 컬러는 '창조의 색'이라고 말한다.

 

그들이 담은 주제를 살펴보면, 그 이유를 더 명확히 알 수 있는데, 공간의 틈 안에 사유 찾아(박상준,) 오감과 감성을 깨우며(송윤경), 어느 순간 속 영감이 피어올라(조정희) 창조의 시작에 머무는 여행을 담은 <the ORANGE 머묾 여행> 여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대체적으로 여행책이지만 사진보다는 글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아마도 이들 각자의 마음속에 자리한 장소에 대한 의미와 생각들에 더 집중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소박하지만, 어디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장소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다 보면, 어릴 적 자주 숨어들던 아지트가 생각나기도 했는데, 대체적으로 고요하고, 한적하며, 감성을 자극하는 곳들이 대부분이라 더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훌쩍 떠나서 마음을 추스르고, 생각을 정리하며, 마음을 온전히 달랠 수 있는 장소! 문득 나에게 그런 장소는 어디일까 생각해 보게 한다. 또 지금에 머무르지 말고 더 많은 공간을 만나고 공감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봐야겠다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세 명의 작가에게 생각의 틈, 감각과 감성의 조화, 영감이 되어준 소중한 장소들을 만나보며, 자신이 머무는 곳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도 함께 귀 기울여 보자. 어쩌면 당신도 당신만의 의미 있는 장소와 시간들이 머물러 있는 곳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복잡한 일상과 거리를 두고 때로 고요히 머물 곳이 필요한 순간, 나를 돌아보고 내가 잃어버린 것들을 확인해 봐야 하는 순간 이 장소들은 아주 좋은 휴식처가 되어줄 것이다. 또 방전된 나를 가득 품어 더 나은 하루를 살아갈 힘을 전해줄 것이다.

 

이제부터 이들이 소개한 보물 같은 장소들을 소개해 보려 한다.

 

 


=====
작가별 '머묾' 장소들의 의미
=====

 

■박상준: 공간의 틈 안에 사유 찾아, 머묾
좋아하는, 그래서 천천히 생각하고 오래 머물렀던 자리들을 모았다. 대상을 두루 천천히 생각하고 슬로 모션처럼 느린 동작으로 구석구석 눈을 맞춰본다.

 

천천히 생각하기, 느리게 걷기, 삶을 늘여 살아내기, 쉴 새를 만드는 몸짓, 오늘 당신의 사유 역시 그러했으면 좋겠다.

 

■송윤경: 오감과 감성이 깨어나, 머묾
고민이 있거나 일이 풀리지 않으면 차에 시동부터 걸어 정해진 장소 없이 떠나 대자연과 예술, 문화, 역사적인 장소까지 가리지 않고 그곳에 가 나를 앉혔다. 그러면 안내자를 만난 것처럼 길이 보이고 순조롭게 진행되곤 했다.

 

때로 이질감 탓에 불안해지기도 했지만 그래도 여행을 떠나면 떠날수록 익숙한 장소와 낯선 곳의 간극이 좁혀졌다.

 

그 과정에서 오감과 감성이 동시에 깨어나 내면을 깊숙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 생각의 폭이 넓어지고 여행지에서 받은 영감이 서로 손을 잡으며 새로운 삶을 낳았다.

 

■조정희: 어느 순간 속 영감이 피어올라. 머묾
타인의 감정과 행동에 공감하기 위해 여행을 통해 경험으로 느끼고 생각한다.

 

마음이 헛헛할 때, 생각이 많아질 때, 재미있게 놀고 싶을 때, 이 순간의 상황과 감정들을 모아놓는다. 그리곤 상황에 잘 어울리는 장소로 나를 데려간다.

 

소개된 장소마다 나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내가 겪었던 상황별 처방 장소이다. 나를 나답게 만들어준 장소이기에 오랫동안 머물고 싶고, 장소를 닮아가고 싶다.

 

아름다운 기억에는 항상 장소가 필요한가 보다. 내 일상이 아름답고 특별한 영감으로 채워질 수 있도록 오늘도 떠나본다.

 

 


=====
더 오래, 더 깊게 머물고 싶은 여행지 Pick!
=====

 

세 명의 저자는 하나의 장소를 'the ORANGE/더 오래/더 깊게'로 구분하여 머물기 좋은 여행지 소개, 더 오래 머물 수 있는 이유, 더 깊게 사유하고 깨우고 영감을 받는 방법에 대해 담고 있다.

 


■[서울] 삼청공원 숲속 도서관
숲속의 집과 나무, 바람과 새소리 그리고 잠잠히 어울리는 커피 향. 서울에 속한 땅이지만 서울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 장소다. 5분만 걸으면 삼청동 명소가 줄지어 자리하고, 또 불과 5분 거리에 북악산을 향하는 말바위 등산로가 열린다.

 

"부지의 수목을 그대로 살려 자연과 건축이 누가 먼저 오게 되었는지 모르도록 하고 싶었다."
삼청공원 숲속 도서관을 디자인한 이소진 건축가의 말이다.

 

도서관은 원래 삼청공원 매점이 있던 자리로, 그 터 위에 도서관을 지으며 마치 그곳에 오래 있던 건물처럼 얹히고 싶었다는 말이다. 즉, '책'과 '도서관'과 '숲'이 서로에게 기대어 이웃하는 공간 말이다. 그래서 그 자리에 있던 길과 나무를 최대한 건드리지 않고 지었다고 한다.

 

건물의 존재를 알아채게 하는 것이 아니라 모르게 하고 싶었다는 말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충주] 아무것도 아닌 곳
충주시 금가면, 시골 우체국 건물 왼편 입구에 아무 곳도 아니라는 듯 카페 하나가 있다. 모르는 사람은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는 곳, 어른들을 위한 동화 속에 나올 법한 곳, 그 공간의 이름 또한 '아무것도 아닌 곳'이다. 그저 카페 벽에는 법정 스님의 글귀 하나가 붙어 있을 따름이다.

 

'아무것도 없다는 소리와 모든 것을 가졌다는 소리는 결국 같은 소리지요.'

 

한참 지난 어느 힘든 날, 혼자 찾아가 조용히 기운을 차리고 돌아오기 좋은 곳, '실은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자신에게 말해줄 수 있는 곳.

 

카페를 연 박진아 씨는 '아무것도 아닌 곳'을 "편지와 커피 그리고 이야기가 있는 복합 문화 공간"이라 소개한다.

 

그날 저자는 '아무것도 아닌 곳'에서 편지를 써서는 '1년 후 어느 날 문득 배달' 되는 카페 앞 느린 우체통에 넣었다고 전한다.

 

 


■[영덕] 벌영리 메타세쿼이아 숲
벌영리 메타세쿼이아 숲은 이곳이 고향인 장상국 씨가 선산에 오랜 시간 공을 들여 만들었다. 원래 아까시 나무가 많아서 꽃 피는 5월이면 향기롭던 야산이었다.

 

나무를 베어내고, 2003년부터 메타세쿼이아 나무를 하나씩 심던 것이 6000여 그루에 이른다.

 

메타세쿼이아 숲은 산 아래 평지에 만들어져 있다. 생각 없이 밭을 옮겨도 걸음이 엉키지 않는다. 한량없이 느리게 걸으면 걷는 행위에 집중하게 된다.

 

그렇게 걷기를 1시간 정도 하면 숲 구석구석을 봤다고 해도 무방하다. 살짝 땀이 배면 군데군데 있는 벤치에서 쉬어가자.

 

 


■[김재] 미즈노 씨네 트리하우스
미즈노 씨네 트리하우스는 어린 시절의 추억을 환기해 주는 대표적인 장소로, 동화 속에 나올법한 통나무집들을 볼 수 있다.

 

땅 위에 있는 통나무집도 마냥 흥미로울 텐데 나무 위에 올려져 있다는 점이 더욱 재미있다. 나무 위 통나무집은 보는 것만으로도 매력적이다. 더욱이 나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갈 수 있으니 누구나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미즈노 씨네 트리하우스에서는 모두가 자신만의 동심에 온전히 집중한다.

 

건조한 어른이 되어가는 나를 발견하고 흠칫 놀라는 그런 날 미즈노 씨네 트리하우스 나무 위 오두막에 올라야 하는 날이다. 다락방 동심의 세계 속에 쪼그리고 앉아 평온한 눈길로 세상을 바라봐야 하는 때다.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주는 4곳을 뽑아보았다.

 

'책'과 '도서관'과 '숲'이 어우러져 사계절을 느낄 수 있는 삼청공원과 숲속 도서관!

 

쉽게 찾을 수 없는 은밀함이 있어 더 좋은 '아무것도 아닌 곳'은 조용한 곳에서 즐기는 차 한 잔과 1년 후 어느 날 문득 배달되는 느린 우체통 덕에 더 '홀로' 가보고 싶은 곳이다.

 

사유지이지만 넉넉한 마음으로 일반인들에게 공개해 준 주인의 마음 씀씀이가 돋보이는 벌영리 메타세쿼이아 숲은 앞으로 위로 탁 트인 숲을 보는 것만으로도 어쩐지 힐링이 될 것 같은 느낌이다. 멍 때리며 느리게 걷고, 그러면서 나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곳이 아닐까 싶다.

 

로망과 판타지의 세계를 꿈꾸게 해주는 나무 위 통나무집은 정말이지 지나치기 힘든 유혹이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구석구석 자리한 공간들을 눈으로, 마음으로 품는 것만으로도 어쩐지 동심과 추억 속에 풍덩 빠져들게 만든다.

 

무심한 어른이 된 나를 다시금 말랑말랑한 나로 되돌릴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미즈노 씨네 트리하우스가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