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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ㅣ 알베르 카뮈 전집 개정판 1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책세상 / 2023년 11월
평점 :
최근 알베르 카뮈의 책을 읽어보고 싶어 도서관의 책 목록을 뒤지던 중 '알베르 카뮈 탄생 110주년'을 맞아 새로운 책 개정판을 발견하게 되면서 읽게 되었다.
처음에는 강렬한 책표지 컬러가 시선을 사로잡아 단숨에 읽어 나갈 수 있겠다 싶었는데, 생각보다 꽤 시간이 걸렸다.
처음에는 주인공의 시니컬함에 뒤에 뭔가 있겠지 하는 생각으로 읽어 나갔는데, 2부에 들어서면서 갑자기 달라지는 템포와 어리둥절하게 흘러가는 상황에 중간중간 한참을 머뭇거리며 시간을 소요하게 되었던 것 같다.
스토리로 보자면 더할 나위 없이 별거 없는 단순함의 극치인데, 이 상황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꽤나 부조리함 투성이다. 1부의 내용이 내 의지대로 흐르는 강물에 몸을 맡긴 형태라면, 2부는 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배에 갇혀 강물에 내맡겨진 형국이다.
처음 알베르 카뮈의 책을 읽는 거라 살짝 당황스러운 면도 없지 않아 있었는데, 다행히 뒤 페이지에 담긴 미국판 서문과 해설, 작가 연보, 옮긴이의 말 등을 통해 다방면으로 작가의 의도와 이 글이 쓰인 배경, 그리고 줄거리에 대한 새로운 시각 등을 통해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1부와 2부의 내용을 간단히 살펴보면, 1부에서는 그날 그날의 별 의미 없는 뫼르소의 생활 묘사가 주를 이룬다. 여기에는 어떤 거짓이나 꾸밈이 없다. 어머니의 죽음에서부터 살인 사건을 저지르기까지 18일간의 일상적 생활이 오늘, 어제, 토요일, 아침, 저녁 등 시간의 변화와 흐름이 뚜렷하게 표시되면서 기록된다.
2부는 1부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는데, 1부의 끝에 살인을 저지르면서부터 상황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법정에서 그 생활과 행동의 의미가 타자에 의해 해석되고 1년여에 걸친 감옥 생활과 재판 과정에서는 시간이 정지된 듯 시간 개념이 흐려진다.
꽤 계획적이고 체계적으로 작품을 써 내려간 알베르 카뮈의 작품 중 ' 1단계 부조리'에 속하는 초기작이자 무명작가인 그를 단번에 프랑스 문단의 신화로 만든 불멸의 역작인 이 작품을 먼저 읽어보게 된 것은 참 다행스러우면서 잘 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작품을 시작으로 이후의 그의 작품들을 통해 알베르 카뮈의 작품세계를 하나씩 만나보면서 그가 왜 그렇게 유명한 작가인지, 왜 그토록 그의 작품이 자주 입에 오르내리는지 알아가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한다.
그전에 이 작품을 읽으며 느꼈던 나의 감상평과 나만의 해석을 이제부터 기록해 보고자 한다. 그때가 아닌 지금의 상황이었으면 어땠을까를 자꾸만 되짚어 보면서 읽게 되는 <이방인>을 살펴보며, 주인공 뫼르소의 선택과 행동에 대해서도 함께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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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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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전쟁에 징집되었다가 사망한 뒤, 어머니와 할머니 밑에서 가난하게 자랐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선생님의 각별한 총애를 받으며 재능을 키우고,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대학교에 갈 기회를 얻는다.
알제 대학교 재학 시절 장 그르니에를 만나 사상적 스승으로 여기고 그의 권유로 공산당에 가입하지만 이후 탈퇴한다.
교수가 되려고 했으나 건강 문제로 교수 시험에 응시하지 못하고 일간지 기자로 일한다. 1942년 <이방인>을 발표하면서 이름을 알렸으며, 이후 다채로운 작품 활동을 펼친다. 1957년에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지만, 3년 뒤인 1960년 1월 4일 자동차 사고로 생을 마친다.
그 밖에 자세한 연보는 이 책의 뒤 페이지의 '작가 연보'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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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며 드는 궁금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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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뫼르소도 평범한 사람들과 같은 야심을 가지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학업을 포기해야 했을 때 모든 것이 부질없다 느끼게 되었고, 이후 그는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자리 잡게 된다. 이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를 이토록 무심하고 시니컬하게 바꾸어 놓은 구체적인 동기가 무척 궁금해진다.
■같은 거주지 안에 파트너를 상실한 세 남자의 우연한 연대도 시선을 끄는 부분이다. 살짝 뒤틀린 듯 보이지만, 실상은 외로움과 각자의 사정으로 목마름을 느끼고 있던 이들에게 무심한 듯 말을 건넨 뫼르소 덕분에 이들은 친구이자 이웃을 얻게 된다. 만약 뫼르소가 살인자가 되지 않았다면, 이들의 우연 같은 인연은 어떻게 이어졌을까?
■법정에 자리한 이들은 정작 당사자인 뫼르소는 제쳐두고 자신들만의 법정을 이어나간다. 이들에게 진짜 중요한 것은 무엇이며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는 것일까 문득 궁금해졌다. 이 법정에는 정의도, 사실도, 피해자도, 문제의 본질도 빠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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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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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뫼르소(몽피스)
-선박 회사 사무원
-일상생활을 즉흥적으로 영위
-살인 전: 육체적 감각을 통해 접촉하는 자연 세계와 일체감을 느끼며, 삶에 있어 소외감을 느끼지 않음
-살인 후: 재판을 받으면서 그와 그의 행동들은 타인에게 해석의 대상이 됨. 법정은 그의 인간성을 '설명'하기 위해 모든 행동의 동기를 찾아내려고 함.
▶뫼르소 부인
-뫼르소의 엄마
-삼 년 전에 양로원에 들어왔음
-노환으로 사망
▶관리인
-엄마의 관 옆에서 함께 하룻밤을 지샘
-양로원에서 일한 지 오 년 되었음
-예순네 살이며 파리 태생
▶양로 원장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단, 키가 작은 늙은이
-상황에 따라 말을 덧붙여 대세의 흐름에 유리한 형태로 진술
▶토마 페레스
-양로원에서 사귄 엄마의 남자친구
-엄마의 죽음으로 슬퍼하는 그를 배려해 이번만 예외로 장지까지 함께 따라가는 것이 허락됨
▶레몽 생테스
-창고관리인
-같은 층에 사는 이웃
-동네에서는 그가 여자들을 등쳐 먹고 산다고들 한다.
-대체로 그는 사람들에게 전혀 호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
-뫼르소는 그가 하는 이야기가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살라마노 영감
-같은 층에 사는 이웃
-피부병을 가지고 있는 스패니얼 품종의 개와 늘 함께 함
-열한 시와 오후 여섯시 하루에 두 번씩 영감은 개를 데리고 나와 산책함
▶마송
-레몽의 친구의 친구로 아내와 함께 바닷가에 살고 있음
▶마리
-뫼르소의 여자친구이자 결혼까지 약속한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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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 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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뫼르소는 어느 날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부고 소식을 전보로 받게 된다. 회사에는 이틀간 휴가를 쓰겠다고 말한 후 긴 80킬로미터 떨어진 마랭고에 있는 양로원으로 향한다.
뜨겁고 무더운 여름 날씨 속에서 엄마의 관 옆에서 하루를 꼬박 보낸다. 매우 피곤하고 뜨거운 상태로 비몽사몽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열을 식힐 겸 바다로 향하고 그때 평소 관심이 있던 마리를 우연히 만나게 되면서 연인 사이가 된다.
그리고 같은 층에 사는 이웃인 레몽&살라마노 영감과 우연히 몇 마디 나누게 되면서 친구이자 이웃이 된다. 그들은 비슷한 시기 파트너를 상실하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되면서 적어도 그들에게는 조금 더 돈독한 형태로 관계가 형성된다.
이때 레몽은 자신의 친구가 사는 바닷가로 함께 가자는 제안을 하게 되고 이때 여자친구인 마리와 함께 휴가를 가게 된다. 그곳에서 레몽과 관련 있는 아랍인을 우연찮게 살인하게 되면서 그는 살인자로 법정에 서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형태로 진행되면서 그는 모든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사형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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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자세히 들여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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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모르겠다. 양로원으로부터 전보를 한 통 받았다. '모친 사망, 명일 장례식, 근조.' 그것만으로는 아무런 뜻이 없다. 어쩌면 어제였는지도 모르겠다.
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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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문장의 시작이 강렬하게 다가온다. 엄마의 죽음 앞에 뫼르소는 슬픔이나 연민과 같은 감정보다 그저 전보를 받았다는 사실에만 집중해 말한다. 심지어 그 날짜조차 정확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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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장은 엄마가 죽지 않은 것이나 거의 마찬가지다. 장례식을 치르고 나면 기정사실이 되어 만사가 다 공식적인 모양새를 갖추게 될 것이다.
1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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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장례식을 치르지 않은 현재는 엄마가 죽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말로 무심하지만 상당히 정직한 발언으로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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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나 다름없는 일요일이 또 하루 지나갔고, 이제 엄마의 장례가 끝났고, 나는 다시 일을 하러 나갈 것이고, 그러니 결국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을 했다.
3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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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대한 일상이 점점이 묘사되는 상황을 살펴보면, 감정이 배제된 그저 무의미한 일상을 덤덤히 서술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 속에서 갑작스레 벌어진 엄마의 죽음 또한 그의 삶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의 이런 무덤덤하고 냉소적이며, 미적지근한 반응은 계속해서 이어지는데, 전반적으로 그의 삶에 자리 잡은 패턴처럼 보인다.
이것은 다음의 문장들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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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삶이란 결코 달라지는 게 아니며, 어쨌건 모든 삶이 다 그게 그거고, 또 나로서는 이곳에서의 삶에 전혀 불만이 없다.
5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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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마리가 찾아와서, 자기와 결혼할 마음이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고 마리가 원한다면 우리가 결혼할 수도 있을 거라고 말했다.
5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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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또다시 나에게 자기와 친구가 되고 싶으냐고 물었다. 내가 아무래도 좋다고 말했더니 그는 만족해하는 눈치였다.
4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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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있어 애인의 청혼도, 직장 동료의 위로도, 직장에서의 승진 권유조차도 그에게는 큰 의미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아예 감정 없는 인간은 아닌 것이 몇몇 문장에서 드러나는데, 이를테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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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아내는 마침 마리와 웃고 있었다. 나는 아마 그때 처음으로 내가 결혼을 하게 되겠다고 진정으로 생각한 것 같다.
6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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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장이 차장 검사에게 증인에 대한 질문이 없느냐고 묻자 검사가 외쳤다. "아! 없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 목소리가 어찌나 강렬하고 나를 보는 그 눈초리가 의기양양한지, 여러 해 만에 처음으로 나는 바보같이 울음이 터져 나올 것만 같은 심정이었다. 왜냐하면 내가 그 모든 사람에게 얼마나 미움을 사고 있는지를 느꼈기 때문이다.
11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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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보이는 데로 이야기하는 그의 화법은 조금 냉소적으로 보이기는 해도 거짓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누군가에는 상처가 될 수도 있으며,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하는 화법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제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의 엄마의 부고를 주변인들이 들어 알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그를 가엽게 여기고 있는 상황이었고, 그가 무심하게 던지는 말을 상대방은 자기 좋을 대로 해석하면서 그와 조금은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문제가 발생한 건 레몽의 제안으로 마리와 함께 간 바닷가에서 우연히 살인을 저지르게 되면서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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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다렸다. 불로 지지는 듯한 태양의 열기가 내 두 뺨으로 확 번졌고 땀방울들이 내 눈썹 위에 고이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은 내가 엄마의 장례를 치르던 그날과 똑같은 태양이었고, 그날처럼 머리가 아팠고, 이마의 모든 핏줄이 한꺼번에 다 피부 밑에서 펄떡거렸다.
불로 지지는 것 같은 그 뜨거움을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서 나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나는 그게 어리석은 짓이며, 한 걸음 몸을 옮겨본 댔자 태양을 떨쳐 버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한 걸음, 단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러자 이번에는 아랍인이, 몸을 일으키지는 않은 채 칼을 뽑더니 태양 빛 속에서 나를 향해 쳐들었다. 빛이 강철 위에서 반사되었고, 번쩍하는 긴 칼날 같은 것이 내 이마를 쑤셨다.
7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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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했던 그의 일상에 파문이 일어난 것은 그렇게 시작된다. 뜨거웠던 그 여름, 엄마의 장례를 치르던 그날과 같은 태양을 마주한 그는 태양을 피하기 위해 한 발을 내디뎠으나 그로 인해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음을 뒤늦게 알게 된다.
레몽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아랍인이 뫼르소에게 긴 칼날을 들이대면서 순간적으로 가지고 있던 총구를 그를 향해 발사하게 되었고, 이내 아랍인이 죽음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이 문장을 보면서 개인적으로는 정당방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는데, 이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나 진술은 더 이상 서술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아랍인이 칼날을 이마에 내리꽂은 것인지 아니면 칼날의 빛이 태양에 반사된 것인지는 정확히 내용을 알기는 어렵다.
어쨌든 칼날을 쳐드는 순간 위협이 되는 것은 맞으므로 정당방위라는 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법정에서는 이에 대한 어떤 진술도 언급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살인자라는 이름으로 여러 번의 진술을 하게 되고, 이내 법정에 서게 되지만 언급되는 말들은 엄마의 죽음에 관련 내용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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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감정이 어떤지 살펴보는 습관 같은 건 없기 때문에 그 점에 대해 알려주기는 어렵다고 대답했다. 아마도 나는 엄마를 사랑했겠지만 그러나 그런 것은 아무 의미도 없었다.
8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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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맡은 국선 변호사마저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에 관해 궁금해하는데,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던 날 마음이 아팠느냐는 질문을 한다.
그에 대해 그는 어느 날과 동일하게 자신이 보고 느끼는 그대로의 감정을 정직하게 그대로 진술한다. 하지만 이 답을 들은 변호사는 매우 흥분하며 예심판사의 방에서든 어디서든 그런 말은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라고 다그친다.
이에 대해 뫼르소는 자기만의 솔직한 의견을 내놓지만 변호사는 그런 그를 이해하지 못했고 오히려 원망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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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나는 그에게, 내가 원래 육체적 욕구에 감정이 방해받는 일이 많은 천성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엄마의 장례식이 있던 날, 나는 매우 피곤했고 졸렸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잘 알 수 가 없었다.
(...)
그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고 오히려 나를 원망하고 있었다. 나는 내가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고, 조금도 다를 바 없다고 그에게 분명히 말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게 다 결국은 별 소용이 없는 짓이었다. 나는 귀찮아서 그러는 걸 포기하고 말았다.
84~8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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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이렇게 되자, 뫼르소는 또 한 번 모든 것이 귀찮아졌고 그저 그런 설명조차 이어나가기를 포기하고 만다.
뫼르소가 사람을 죽인 일과 관련해서 딱 한 번 제대로 된 질문을 예심판사로부터 듣게 되는데, 이것마저도 결론적으로는 그 자신의 신념과 믿음을 강요하기 위한 행위였음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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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생각할 때 나의 자백 가운데는 오직 한 가지 모호한 부분이 있으니, 그건 바로 둘째 발을 쏘기 전에 짬을 두고 기다렸다는 사실이다. 그 밖의 내용은 다 이해가 되는데, 바로 그 점을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그에게 그처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것은 잘못이라고, 그 마지막 문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셈이었다.
8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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뫼르소 자신에게는 사실 이 질문마저 의미 없고 중요하지 않은 문제였지만, 유일하게 사건과 관련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예심판사의 이런 유의미한 질문 또한 결국 부질없어지게 되는데, 그 이유는 그의 믿음에 대한 강요와 태도 때문이었다.
그는 신을 믿느냐면 분개하다가 이내 "당신처럼 영혼이 메마른 사람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라고 말함으로써 자기 기준에 맞춰 상대방을 판단하는 것으로 심문의 목적을 잃어버리게 된다.
더불어 뫼르소가 한 행동을 후회하느냐고 묻는데, 이에 대해 뫼르소 자신은 진정한 후회라기보다는 차라리 좀 귀찮다 싶은 느낌이라고 대답하게 되면서 상호 간에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게 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뫼르소는 세상을 바라보는 자기의 관점을 고수하게 되는데, 여기에 살인자라는 이름이 덧씌워지며 결국에는 오해를 쌓게 되고, 심지어는 반성하지 않는 살인자가 되어 사형까지 구형 받게 된다.
그의 이러한 태도는 감옥에 투옥되어 있는 와중에도 바뀌지 않는데, 오히려 그런 자신의 상황을 그저 수긍하고 받아들이게 되면서 시간의 흐름조차 까마득하게 느끼며 분별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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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시작된 것은 오직, 마리가 처음이자 단 한번뿐인 면회를 온 다음부터였다. 그녀의 편지를 받은 날부터 바로 그날부터, 나는 감방이 내 집이고 내 삶이 그 속에서 멈추어버렸다는 것을 느꼈다.
9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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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결국 그 무엇에든 익숙해지는 법! 그는 그렇게 처음에는 불편하게 여겼던 감옥생활에 서서히 적응해 나가기 시작한다.
처음 몇 달 동안은 힘들었다. 가령 여자에 대한 욕정이 고통 거리였다. 젊으니까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간수장의 '자유란 바로 그런 거거든요. 당신네들에게서 그 자유를 빼앗는 거예요.' 라는 말에 뫼르소는 욕정을 통제당하는 것이 결국 벌을 받는다는 것에 동감하면서 수긍하게 된다.
다음은 담배 문제였는데, 담배를 피울 수 없는 것이 고통이었다. 그러나 나중에 그것도 벌의 일부임을 깨닫게 되는데, 그때쯤에는 벌써 담배를 피우지 않는 습관이 들어서 그 벌은 그에게 더 이상 벌이 아니게 된다.
또 잠도 문제였다. 처음에는 밤에 잠을 잘 자지 못했고 낮에는 한숨도 못 잤다. 차츰 밤에 잘 자게 되었고 낮에도 잘 수 있었다. 그렇게 잠자는 시간, 기억하기, 사건 기사 읽기, 그리고 빚과 어둠의 교차로, 시간은 지나갔다.
그러한 문제점들을 제외하면 그는 그다지 불행하지 안 않다. 하지만 문제는 오로지 시간을 보내는 일이었다.
그렇게 실감할 수 없는 시간을 무료하게 보내며 열한 달 동안 수십 번의 예심을 치르며 마침내 중죄 재판소 법정에 선 그는 당사자인 자신을 빠진 법정을 그저 관람객으로써 바라보게 된다.
이 사건의 본질은 무시되고, 상관없는 어머니의 장례식이 언급되면서 수많은 증인들의 증언이 이어진다. 양로원 원장, 장의사 직원, 토마스 페레스, 셀레스트, 마리, 마송, 살라마노, 레몽까지.
그들의 진술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다른 관점을 가지게 했고, 이것을 이끈 것은 상대편 검사 측이었다. 상황이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으며 진실은 무시되었다.
더불어 뫼르소에게 유리한 증언들은 그 누구도 제대로 듣지 않았다. 특히 레몽의 경우 증인이 포주 노릇을 업으로 하고 있다는 것과 그의 공범자요 친구로 치부되어 가장 저질의 치정 사건으로, 피고인이 도덕적으로 기형적 인물이라는 점 때문에 더욱 위중하다는 것으로 치부되면서 완전히 묵살당한다.
오죽하면 뫼르소 측의 변호사가 "도대체 피고인은 어머니의 장례를 치렀다고 해서 기소된 것입니까, 아니면 살인을 했다고 해서 기소된 것입니까?"라고 말할 정도였지만, 재판의 초점은 어머니의 장례에 맞춰져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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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는 그 두 범주의 사실들 사이에 어떤 심오하고 비장하고 본질적인 관계가 있음을 감지하지 않을 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12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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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장례식을 주요 쟁점으로 삼는 검사 측의 의견을 살펴보면 어처구니없고 황당한 의견을 매우 장황하고 있어 보이게 포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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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나도 한마디 참견을 하고 싶었다. 그러면 변호사는 "가만있어요. 그편이 당신 사건에 더 유리해요"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사람들은 나를 빼놓은 채 사건을 다루고 있는 것 같았다. 모든 것이 나의 참여 없이 진행되었다. 나의 의견을 묻는 일 없이 나의 운명이 결정되고 있었다.
123~12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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뫼르소는 자신 역시 이 재판에 참여하고 싶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 자신이 재판에 참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뫼르소는 자신의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방관자가 되어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내 재판장은 그가 프랑스 국민의 이름으로 공공 광장에서 목이 잘리게 될 거라고 말한다.
진실 여부와는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이루어진 재판, 그리고 사형수로 판결이 나면서 뫼르소는 이제 아무 생각이 없게 된다. 진종일 상고 생각을 할 때도 있었지만, 이내 모든 것을 단념하고 그녀 누워서 하늘만 바라볼 뿐이다.
그렇게 사형 선고를 받은 후 부속 사제는 계속 면회를 신청하지만 뫼르소는 계속 거절을 한다. 그러다 갑자기 찾아온 부속 사제의 존재는 어쩐지 짐스럽고 성가시다.
그러다 당신을 위해서 기도하겠다며 자신의 신념과 믿음을 강요하는 그에게 화가 난 뫼르소는 목이 터져라 고함을 치기 시작하는데, 덕분에 그렇게 그는 마음속에 담아둔 말들을 숨이 막힐 만큼 송두리째 쏟아붓게 된다. 그리고 그가 나가고 나자 뫼르소는 다시 평정을 되찾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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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치 그 커다란 분노가 나의 고뇌를 씻어주고 희망을 비워버리기라도 했다는 듯 신호들과 별들이 가득한 이 밤을 앞에 두고 나는 처음으로 세계의 정다운 무관심에 마음을 열고 있었다.
15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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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부속 사제와의 만남은 죽음을 앞두고 그가 마지막으로 마음속에 눌러 담고 있던 말들을 내뱉은 속 시원한 순간이 아닐까 싶다.
그는 사형수였지만, 페이지의 마지막까지 그가 죽는 순간은 만나볼 수 없다. 그저 그렇게 1급 살인자가 되어 독방에 머물면서 죽을 날만을 기다리는 형태로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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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감상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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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며 황당하고 어이없던 결말에 몇 가지 물음들이 끊임없이 머릿속을 부유했는데, 그 질문들을 스스로 하나하나 답하면서 왜 제목이 '이방인'인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는 왜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상태로 재판에 서서 어이없는 이유로 사형수가 된 것일까?', '그는 왜 완전한 외톨이가 되어 사회에서 '이방인이 된 것일까?'
엄마의 장례식장에서도 눈물을 보이지 않을 만큼 덤덤하고 냉소적이었던 그는 재판에서 차장 검사의 외침에 꽤나 미움을 사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왈칵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고 말한다.
일상을 그냥 물 흐르듯 살던 그가 우연히 휩쓸린 단 한 번의 파도로 완전히 무너진 순간이 어쩌면 이 부분이 아닐까 싶다. 덕분에 그는 자신이 이 사회의 외톨이이자 완전한 이방인임을 깨닫게 된다.
그가 이렇듯 이방인이 되는 과정은 살인자로 감옥에 갇히고 심문 과정을 거치면서 서서히 드러나는데, 보통의 사람들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으레 하는 거짓말 혹은 자신의 감정을 은폐하거나 과장해서 드러내는 행동을 뫼르소는 전혀 하지 않음으로써 그는 이 사회에 속할 수 없는 이방인이 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솔직하고 정직하게 이야기함으로써 그의 모든 의견은 묵살당하는데 거기에 더해 적은 말수에 침묵, 무미건조한 성격이 더해지며 점점 오해가 오해를 낳게 된다. 그러면서 그의 상황은 완전히 다른 결말에 다다르게 된다.
사람들은 없는 말이라도 그가 반성한다, 뉘우친다는 말을 하기를 은근히 강요한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귀찮은 일이라 여긴다고 답하면서 유죄 선고를 받게 된다.
그는 자신의 감정에 솔직했고, 가식이 없었기에 결국 죽음을 맞게 된다. 그 덕에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이방인이 되었고, 바다 위를 떠도는 부표처럼 여겨지게 된다.
사형수가 되어서도 변하지 않는,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는 그의 결연한 거부의 자세를 지켜보면서, 나중에는 정직성에 대한 용맹한 기개로까지 느껴졌다.
자신의 목숨이 위협당하는 순간에도 끝까지 거짓말 따위는 하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를 과연 우리는 지켜낼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대부분은 '절대 노'라고 말할 것이다. 그래서 쉽지 않은 그의 신념에 한편으로는 응원하고 싶은 마음까지 든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자신들이 원하는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일순간 상황을 몰아 큰 대역 죄인으로 만든 뫼르소의 재판처럼 우리 사회에서는 이런 부조리가 없는지를 살펴보게 된다.
또 장례식장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고 해서, 슬퍼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자신의 판단 기준에 맞춰 타인을 끼워 맞추고 재단하는 현실의 부조리함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타인에게 보이기 위한 감정의 호소, 짜 맞추기식의 거짓말, 상황에 따른 마음 없는 위로와 말들이 난무한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어쩌면 이 모든 것들은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이 모든 것들이 피로함과 무의미한 것으로 다가올 수 있음을 인지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뫼르소 역시 한때는 보통의 사람들과 비슷한 야심을 가지던 때도 있었지만 학업을 포기하는 것을 계기로 모든 것에 무심해지기 시작한다.
그 만의 사정과 가치관의 변화로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진 것이다. 그것을 누구도 편파적으로 몰아가거나 옳다 그르다로 판단할 수 없음에도 재판에 선 그의 정직하고 성실한 발언에 대해 왜곡하고 몰아가면서 결국 그를 동떨어진 개체로 만들어버렸다. 그럼에도 그는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지켜나가며 주어진 운명조차도 충실히 받아들인다.
그가 살인자라는 팩트는 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가 그를 응원하게 되는 것은 그것을 밝혀나가는 과정이 너무도 부조리했기 때문이다. 억울한 1명을 만들지 않기 위해 1년간 진행된 수많은 심문과 재판이 이상한 방향으로 나가면서 허위로 가득한 거짓들로만 가득 차게 된다.
거기에 당사자인 뫼르소는 없었다. 그리고 그의 편에 서서 진실을 이야기했던 증인들도 없었다. 이 부조리는 세기를 넘어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현재에도 진행 중이다. 그렇기에 어쩌면 오랫동안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이 사랑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책을 읽는 동안 수많은 질문과 궁금증에 사로잡혀 페이지를 넘겼다. 그러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그 질문들의 답을 하나 둘 찾을 수 있었다.
또 시대와 상황의 전환에 따라 이 책의 내용에서는 뫼르소가 마치 섞이지 못하는 이방인처럼 느껴지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어쩌면 반대로 흔한 상황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사회와 관계, 사람, 일 등에 무기력함과 회의감을 느끼는 요즘 사람들의 모습에서 그것을 느낀다.
어떤 부분에 관점을 두고 읽느냐에 따라 새로운 질문과 사회 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책 <이방인>.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꼭 필요한 필독서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