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마음대로 살아보겠습니다 - 현실은 엉망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원지 지음 / 상상출판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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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원지'를 있게 한 짠내나는 인생이야기"


단발의 뽀글 머리를 장착하고 늘 여행을 떠나는 그녀는 라테, 카레, 노란색, 안경, 눕는 것을 좋아한다. 그녀의 이름은 '원지'로 지금은 라디오와 각종 매체를 통해 얼굴이 알려져 아마 이전보다는 더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알고 있지 않을까 한다.

여행을 좋아하지만 코로나 이후 뚝 끊을 수밖에 없었던 발걸음, 그리고 그런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자 이것저것 뒤적이던 중 우연찮게 보게 된 한 유튜브 채널에서 나는 '원지'를 알게 된다.

이색적인 말투, 단발의 뽀글 머리(사실 이전에는 생머리의 똑단발이었다)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는데, 보다 보니 은근히 중독성 있게 계속 그녀의 채널을 찾게 되었다. 그리고 여전히 나는 그녀의 채널이 업로드되면 어김없이 찾는다.


총 5개의 파트로 구성된 이 책은 지금의 원지를 만든 토대이자 인생 이야기에 더해 여행 유튜버 초창기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녀의 유튜브 채널에서는 만날 수 없었던 속 깊은 이야기와 고민, 그리고 그녀가 열심히 살아왔던 짠 내 나는 성장기를 만나볼 수 있는데, 읽다 보면 공감 가는 여러 이야기들을 만나볼 수 있다.

이를테면 진로, 박봉, 야근, 나이를 먹음에 따라오는 압박감,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 사이에서의 갈등, 삶에 대한 고민 등이다.

그녀의 유튜브를 보고 어떤 이들은 그녀의 말투나 눕는 것을 즐겨 하는 행동, 여행 유튜브 등의 키워드만 보고 고민 없이 살지 않을까 오해할 수도 있는데, 가끔 그녀의 브리핑을 듣다 보면 그녀 또한 꽤 머릿속이 복잡함을 알 수 있다.

단지 그것을 유튜브를 통해 심각하게 드러내지 않을 뿐이며, 가끔 드러낼 때는 그 현상에 대해 스스로 어느 정도 정리하고 받아들인 뒤에 결론까지 내린 상황을 공유하기 때문에 어쩌면 쉽게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꽤 시간과 공을 들여 애쓰고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원지가 책을 썼다는 것을 알고 언젠가 한번 꼭 읽어봐야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마침내 읽게 되었다.



이 책에는 여행 유튜버로서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이전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담겨있었는데, 가끔 유튜브에서 조각조각 언급하던 이야기들의 실체를 마주할 수 있었다.

쉽게 이야기하기 힘든 집안 이야기는 물론, 무대뽀로 도전한 꿈과 열정에 관한 이야기, 어설프지만 해보겠다는 일념으로 배고프고 힘들어도 해나갔던 이야기 등.

흔히 청춘이라 말하는 피, 땀, 눈물에 대한 성장기가 오롯이 이 책에 담겨있었다. 어떨 때는 맨땅에 헤딩하는 느낌으로 도전하는 이야기도 만나볼 수 있었는데 어쩌면 그때의 그런 도전과 경험이 있었기에 지금의 든든한 '원지'가 자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무턱대고 떠난 아프리카로의 여행, 그리고 거기서 발견한 또 하나의 희망. 여기에 더해 본격적으로 여행 유튜버로서 자리하기까지의 성장담을 보며 인생이란 무엇이며, 어쩌면 우리는 나이에, 세상의 틀에 갇혀 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됐다.

스스로 기회를 찾아 떠난 원지의 여행을 통해 한 번쯤 내 인생을 제대로 사는 것이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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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 파산, 눈물과 한숨. 모든 불행은 정해진 각본처럼 느리지만 정직하게 흘러갔다. 아빠는 신용불량자가 됐다. 자식들에게 빚을 무려 줄 수는 없다며 파산 신고를 했고, 곧 엄마와 이혼을 했다. 이런 일들을 겪으며 자연스럽게 아빠와는 따로 살게 되었고, 세 모녀의 본격적인 단칸방살이가 시작되었다. 바닥부터 시작하는 기분이었다.
(...)
우리 가족은 기초수급대상자가 되었고, 매달 쌀 한 포대씩 을 받았다.

나는 그렇게 국가에서 인정한 공식 '흙수저'가 되었다.
30~3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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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그녀 인생에서 불행의 시작이라 일컬어지는 시점을 그녀는 이때로 삼은 것 같다. 가족의 붕괴 그리고 단칸방에서 시작한 삶.

하지만 당시 그녀는 그것을 어려움으로 여기지 않고, 그저 즐거움으로 받아들였다. 바퀴벌레가 나오기 전까지는 나만의 다락방이 생겼다는 즐거움에 한동안은 매우 좋아했던 것을 보면 꽤 긍정적 마인드를 보유한 사람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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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장기 여행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헤어스타일'이라고 감히 생각하고 있었다. 며칠 감지 않아도 기름진 것이 티가 안 나며 머리를 감고 대충 털고 말려도 그럴싸한 형태가 유지되는 그런 헤어스타일 말이다. 며칠을 고민하다가 떠올린 것은 바로 '이은미 머리'였다.
(...)
"제일 얇은 롤로 앞머리까지 빡시게 말아주세요!"
(...)
그렇게 완성된 나의 '장기 여행자 머리'는 결과적으로 여행 내내 다른 여행자들에게서 "Nice Hair!"라는 칭찬을 질리도록 듣게 해주었다.

탁월한 선택이었다.
61~62, 6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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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당연한 듯 여행을 앞두면 동네 미용실을 찾아 뽀글 머리 파마를 하지만, 과거 동영상을 찾아보면 처음 아프리카를 찾을 당시만 해도 그녀는 똑단발의 생머리였다.

그런 그녀가 언젠가부터 뽀글 머리를 하고 털털하게 여행을 떠나는 모습을 보며 내심 그 이유가 궁금했는데, 그 이유를 여기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신기한 건 그런 뽀글 머리가 너무 잘 어울린다는 거! 왠지 그녀의 영상을 보다 보면 '나도 한번 해볼까?'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물론 생각에만 그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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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후에는 어떻게 살지?' 하는 오지랖과 꼰대 같은 발상이 내 안에서 자연스럽게 스쳤다.
그때보다 몇 년이 흐른 지금의 나는 다행히 답을 알고 있다. 퇴사를 하든 안 하든, 장기 여행을 하든 안 하든 '앞으로 무엇을 하며 먹고 살 것인가'라는 문제는 각자 죽을 때까지 평생 안고 가야 할 숙제라는 것을 말이다.
9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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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에 들어서면서부터 모두가 하는 이 고민은 아마 '앞으로 무엇을 하며 먹고 살 건인가'하는 문제가 아닐까 싶다.

대학을 입학하면, 취업하면 다 해결될 줄 알았는데 이 모든 게 해결되고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이 질문은 아마 평생 우리 모두를 따라다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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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콜이었다. 수분을 가득 머금은 차가운 바람이 몸을 스쳤다.
(...)
오랜만에 온몸에 물이 가득 쏟아져 흐르니 콧노래가 나왔다.

"최고다. 그치?"
"응. 기분 좋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프로란스와 나는 소나기 아래 발가벗고 한참을 깔깔거렸다. 세수도 사치라 여기며 살다 보니 당연한 것 하나에도 기쁨이 배가 된다. 삶이 이런 것인가 싶다. 그래 인생 뭐 있나. 이런 게 행복이지.
14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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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삶에 있어 아프리카에서의 경험은 유독 특별하다. 뭔가 제대로 갖춰진 게 없는 곳, 상식이 통하는 않는 나라인 이곳에서 그녀는 일찍이 인생의 깨달음을 얻게 된다.

뭐든 다 부족했고, 여러 사건사고를 겪었지만 그럼에도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생활하며 얻은 삶의 가치는 그녀에게 도전의식과 꿈을 심어주었다.

당시만 해도 아프리카는 제대로 된 정보를 얻기 힘든 나라 중 하나였다. 오로지 부정적인 '카더라'만 존재하던 시절, 그녀는 그곳에서 그런 정보가 모두 사실이 아님을 몸소 느끼며 몇 달을 보낸다.

지금 생각해 보면 쫄보인 그녀가 어떻게 홀로 그 먼 나라에서 그 모든 것을 감내하며 살았는지 새삼 신기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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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제작부터 영업, 마케팅, 회계 등의 일을 적은 인력으로 해내야 하는 스타트업의 세계는 일당백으로도 모자랐다. 밤늦게 사무실을 나서는 날들이 이어졌지만 이전의 야근과는 많이 달랐다. 먹고 싶은 과자 한 봉지에 고민을 해야 할 만큼 가난해도 매일이 새로웠고 피곤했지만 의욕은 넘쳐났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하는 새로운 환경과 인연, 겪어보지 못한 일이지만 처음이 아닌 것처럼 해내야 하는 것까지.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하루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여행을 가지 않아도 매일 여행을 하는 기분이었다.
16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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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보다 오히려 창업이나 스타트업 경험이 더 많은 그녀의 이력을 살펴보면, 참 용감하고 도전적이고 모험적인 일들을 많이 감행했음을 알 수 있다.

이 내용은 청년창업 지원 사업에 도전한 경험에 대한 이야기로,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느끼는 도파민, 의욕,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같은 야근이라도 억지로 하는 야근과 하고 싶어서 하는 야근은 천지차이라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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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취업사이트를 뒤지며 이력서 양식을 찾다가도 어느 틈엔가 켜져 있는 건 결국 유튜브였다.
(...)
"나도 영상이나 만들어 볼까?"
(...)
'이 엉망진창 볼품없는 인생을 영상으로라도 한번 기록해 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
그렇게 유튜브에 일상을 영상으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모두에게나 똑같이 흘러가는 24시간을 내 마음대로 돌려도 보고 순서도 바꿔보며 편집하는 것. 마치 똑같은 하루를 한 번 더 사는 기분이었다. 영상을 편집하다 보니 매 순간순간 내 모습에 조금 더 집중할 수 있었다. 별거 없는 하루라는 덩어리도 쪼개보니 의외로 즐거운 순간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이제는 결과보다 과정 자체를 즐겨보기로 했다.

이러나저러나 힘들 거라면 하루하루를 즐기는 거다.
168~16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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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처음 유튜브를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내용이다. 무엇이든 억지로 시작하거나 뭔가 대단한 걸 해보겠다는 생각을 가지고서는 보통 시작조차 하기 힘들다.

하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한번 해볼까?'하는 생각으로 도전하는 일들은 의외로 재미를 붙이고 오래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 순간을 즐기게 되면서 지금의 '원지의 하루'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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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는 아프리카 우간다에서 다시 한번 창업에 도전하게 되었다. 그동안 결과만 보고 헛된 노력이었다고 우울해했던 모든 '짓'들은 지나고 보니 쓸데없는 시간 낭비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
아이러니하게도 이 모든 것들은 이 이상한 글로벌 사업 아이디어의 '실현 가능성' 부분에 높은 점수를 안겼다.

'이번에는 결과보다 과정의 즐거움을 찾아보자. 행여나 또 한 번 실패한다 해도 절대 우울해하지 말자.'

이렇게 다짐하며 5년 만에 다시 우간다를 찾게 되었다.
17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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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정 떠난 아프리카 여행 이후 이런저런 일을 겪으며 어떤 순간에는 분명 그 모든 노력들이 그저 헛짓이라고 생각되는 때도 있었을 것이다.

과정이야 어쨌든 결과는 매번 실패로 돌아왔고, 시간만 계속 흘러가는 것에 우울한 순간도 있었을 것이다. (친구나 주변인들과 비교되는 때도 분명 있었을 텐데, 그녀의 이야기 속에 그런 '비교'에 대한 이야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일들이 하나둘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하면서 계속 새로운 문이 열리기 시작했고, 그렇게 그녀에게 또 한 번 아프리카 우간다에서 새롭게 일할 기회가 생기게 된다.

그제야 비로소 저자는 과정을 즐기는 법을, 지금까지의 노력과 경험이 헛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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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고 보니 내가 알고 있던 기준은 오직 한국에서만 적용되는 것이었다. 세상에는 상식이 비상식이 되기도, 비상식이 상식이 되기도 하는 수천수만 가지의 삶의 방식이 존재했다. 때론 '디스 이즈 아프리카!'란 말처럼 '디스 이즈 원지!'라고 외칠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기를.
20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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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많이 다녀본 사람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이 통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일찍이 알고 있다. 저자 또한 아프리카 여행을 통해 몸으로 체험하면서 상식이 비상식이 되기도 하고, 비상식이 상식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더불어 추후에는 '디스 이즈 원지!'라고 외칠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는데, 이미 그녀만의 브랜드를 론칭한 순간 이 말은 지켜진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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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나는 또다시 새로운 공간, 한동안 '내 방'이라 부를 공간에 누웠다. 머릿속에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이 떠다녔다.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는 이 생활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10년쯤 더 지나면 나는 스스로를 어른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그때는 앞으로 뭘 할 것인가라는 고민보다 과거에 뭘 했나를 더 돌아보게 될까. 나이에 맞게 산다는 건 도대체 누가 정한 걸까. 그 기준에 맞게 살면 이런 고민들은 사라질까.

정해진 답은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그런 것에 휘둘리지 말고 각자의 속도대로 살아가면 그만 아닐까.
22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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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이런 사고와 생각들은 가끔 유튜브를 통해 만나볼 수 있는데, 그때 그녀의 철학과 결론을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비슷한 고민을 함께 하게 될 때가 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정해진 답은 없다. 한 번씩 그렇게 머리가 복잡할 날, 흔들리는 때가 있을 때는 저자처럼 종이에 적으면서 정리해 보거나 아니면 근처 공원이나 산을 오르는 등 몸을 움직여 보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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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자전거를 타고 평소 가보고 싶었던 카페를 찾았다. 좋아하는 라테를 주문하고 전자책을 꺼냈다. 1시간이 흘렀지만 페이지를 단 한 장도 넘어가지 않았다. 그때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Can you do me a favor?(부탁 좀 들어줄래요?)"

(...)
한 손에 포스트잇과 볼펜을, 그리고 한쪽 어깨에는 커다란 백팩을 걸친, 정돈되지 않은 머리의 백인 남자가 서 있었다.
(...)
그는 노란 포스트잇에 무언가를 적고서 나에게 건넸다. 거기엔 이런 말이 적혀 있었다.

Stay awesome. (계속 멋있어줘요)

쪽지와 친절한 웃음을 남기고는 그는 유유히 카페를 나갔다. 돌아가는 그의 뒷모습과 노란 쪽지를 번갈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가끔은 누군가에게 별 이유 없이 그냥 '괜찮아. 잘하고 있어'라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듣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모르는 남자가 건네고 간 그 작고 노란 포스트잇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미국에서 버틸 수 있는 힘을 주었다.
235~236페이지 中
=====

살다 보면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 순간들이 있다. 그럴 때 나와 전혀 접점이 없는 누군가가 건네는 소박한 인사말은 때로 큰 힘이 되기도 한다.

한 시간 내내 멍한 상태로 자리를 지키고 있던 저자,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며 힘내라며 응원의 메시지를 센스 있게 건넸던 어떤 남자.

당시의 그 노란 포스트잇은 그 어떤 응원의 말보다 더 힘을 주는 문장이 아니었을까?

어떤 남자가 건넨 노란 포스트잇 그리고 그가 가지고 있던 볼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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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분명 나 혼자 노력한다고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안다. 대신 개미 같은 존재지만 나 한 명조차도 움직이지 않으면 영영 변하지 않는다는 것도 배웠다. 100명이 보고 100명이 모두 옳다 할 수 있을 만큼 당당한 일이라면 움직이는 게 맞다.
25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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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움직이는 몇몇 소수의 사람들 덕분에 세상이 돌아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때문에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리라'가 적용되는 것이 아닐까?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가만히 있기보다, 필요하다면 화를 내기도 하고 때론 부딪혀 보기라도 해보자! 그 미약한 움직임이 후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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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들을 겪으며 조금이나마 나를 위로해 주었던 것은 헛짓거리라 생각하며 벌여온 일들이 (금전적 보상은 아니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꼭 돌아온다는 것이었다. 반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정말 놀랍도록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25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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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도움이 되든 되지 않든, 뭐든 하면 그게 어떤 식으로든 후에 결과로 돌아온다. 반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새로운 기회를 만들고 싶다면, 지금 당장 어떤 것에 도전해 보자. 그게 금전적 보상으로 돌아오지 않더라도, 그저 시간을 허비하는 일처럼 여겨져도 그 과정을 즐길 수 있다면, 지금의 나를 위로해 주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고 시도해 보자.

경험은 돈으로 살 수 없다. 그저 몸으로 익히고 체험해야만 가질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시간과 노력이 곁들여진다면 후에 새삼 놀라운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

이 책에는 저자의 고등학생 시절부터 20대, 그리고 본격적인 여행유튜버가 되기로 마음먹은 30대 초반까지의 일들이 담겨 있다.

지금의 10~20대라면 상상할 수도 없는 일들을 겪으며, 꿋꿋이 자신의 길을 걸어온 그녀의 삶을 살펴보다 보면, 어떤 내공이 느껴진다.

한참 사춘기 예민한 시기에 겪은 가정의 불운, 그리고 대학 입학을 위해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으로 생긴 학자금 대출(빚), 공식적으로 공인된 흙수저 등등. 도전하고 또 도전하지만 자꾸만 실패로 되돌아오는 일들은 어쩌면 좌절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그래서였는지 뜻밖의 행운들이 찾아와 그녀를 일으켜 주었고, 그녀는 새로운 삶의 도전을 이어갈 수 있었다.

'노력하는 자에게 기회가 온다'라는 말이 있는데, 저자를 보면서 이 말의 진실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누군가는 최근 가장 각광받는 직업인 유튜버, SNS(블로거/인스타그램/틱톡/숏츠), 콘텐츠 크리에이터 등의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만만하고 쉽게 보는 사람들이 있는데, 잘 된 사람들을 보면 직업에 생각보다 진심임을 알 수 있다.

저자 또한 그렇다. 수많은 고민과 좌절, 그리고 다시 도전하는 시간들을 통해 지금의 자리에 이르게 된 것이다. 유명인들을 보면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한다'라고 한번 유명세를 타면 그대로 여기저기 방송을 남발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오히려 그럴 때 한숨 돌리며 쉬는 저자를 보면서 나만의 속도와 방향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깨닫는다.

때론 후회하거나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는 상황도 분명 있을 것이다. 여기에 더해 비교당하거나 좌절하거나, 우울해지는 상황도 발생할 것이다.

그럴 때는 잠시 쉬어가며 나만의 길을 다시 점검해 보자. 무엇이든 하나씩 도전하고 해내다 보면, 분명 언젠가 그것에 대한 보상(혹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녀가 그러했던 것처럼.

저자는 여행유튜버로 방향을 정하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종종 우울감과 좌절감을 맛봤다. 하지만 몇몇의 도전들, 그리고 앞서 경험한 것들이 새로운 기회로 이어지며 어려운 순간들을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유튜브 구독자와 함께 한 '두마게티 여행'도 그중 하나였는데, 한참 다운되어 있던 그때 독자들과 함께 한 여행 덕분에 다시 에너지를 얻었다고 전한다.

이후 그녀는 여행 유튜버로서 다시 힘을 장전하여, 여러 나라들을 여행하며 많은 이야기들을 우리에게 전해주었다.

부딪히고 넘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이제는 꿋꿋이 자기만의 길을 걸어가는 저자의 인생 여정을 살펴보며, 나 또한 일상을 여행처럼 살아가야지 다짐하게 된다. 헤매고 돌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그 또한 삶의 하나라고 생각하다 보면 여행처럼 인생도 설레도 즐겁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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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아저씨 - 한 지휘자가 옮긴 감동 있는 음악이야기
이상환 지음 / 바른북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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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라는 범주를 가만히 살펴보면 가요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데, 우리는 생각보다 꽤 좁은 범주의 음악만 즐기고 사는 것이 아닌가 가끔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물론 자신의 취향, 직업 등 필요에 따라 클래식이나 트로트 등을 즐겨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특정 음악만 듣고 즐기는 것 또한 사실이기에 한편으로는 안타깝다는 생각도 든다.


그 원인에 대해 생각해 보면, 학창 시절 음악을 제대로 처음 접했던 시기에 너무 '공부'로서만 다가왔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다 큰 성인이 된 후에야 뒤늦게 책이나 영화, 드라마, 광고음악, 지인의 추천 등의 계기로 빠져드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는 생각도 해본다.



총 2부로 구성된 이 책은 음악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품고 있는 책으로, 한 지휘자가 세계 여러 나라의 음악과 악기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베토벤, 브람스, 베르디 등의 유명한 작곡가를 비롯해, 풍금, 가야금, 꽹과리, 바이올린, 피아노, 첼로, 피리 등의 악기, 그리고 클래식과 대중가요, 왈츠 등 분야를 막론하고 다양한 음악과 악기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이렇듯 음악의 범주 안에 있는 다양한 이야기를 마치 옛이야기 듣듯 읽다 보면 새삼 몰랐던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호기심을 자극해 나도 모르게 빠져들게 된다.


그리고 새삼 그 이야기에 등장하는 곡, 가사, 악기 등이 새삼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때론 감동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어떨 때는 깊은 슬픔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지금과는 다른 시대적 배경이나 상황으로 인해 서글픈 애환이나 안타까움으로 다가오는 것도 있었는데, 그렇게 배경지식을 하나씩 쌓고 보니 더 많은 것들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아래는 몇 가지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를 추려 소개해 보려 한다. 나처럼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흥미로운 이야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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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는 모두의 마음을 하나로 만들어주는 힘이 있다. 하나의 숭고하고 감동적인 멜로디는 백 마디의 말보다 더 큰 감화력과 영향력을 발휘할 때도 있다. 어느 때는 그것에 내 의지와 관계없이 나의 마음까지도 내어주어야 할 때도 있고, 또 그 멜로디 하나가 서로 다른 마음들을 하나 되게도 한다.

(...)

이처럼 노래와 멜로디는 마음을 움직이는 중계자로 오래도록 우리와 함께 해왔다. 그래서 지금도 나라에서는 국가를 학교에서는 교과를 그리고 단체나 군대에서는 단가와 군가를 불러왔다.

(...)

그런 이유에서 글과 말은 사람의 지성을 설득하기 위함이지만, 음악은 인간의 원초적인 감성을 움직이는 능력이 있다고 말하지 않나 생각한다.

24~2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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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우리는 많은 매체를 통해 음악의 힘을 충분히 경험하고 있다. 영화를 볼 때, 드라마를 감상할 때, 게임을 할 때, 광고를 볼 때 등등 음악이 빠진다면 정말 적막한 상황이 연출될 것이다.


음악은 이렇듯 우리의 심신을 릴랙스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때론 심장을 뛰게 만드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음악 별거 있어?'싶지만, 실상 음소거로 처리하고 많은 일들을 실행해 보면 얼마나 시간이 안 가는지, 또 흥미가 떨어지는지 알게 될 것이다.


이처럼 음악은 우리의 원초적인 감성을 움직이며 우리가 미처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 물리적인 시간과 행동마저 다르게 느끼도록 만든다. 그리고 이러한 점이 바로 음악의 위대함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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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기의 추억'은 포스터가 작곡한 미국 노래로 그가 작곡한 '스와니 강'과 '금발의 제니'등과 함께 우리에게도 많이 알려진 곡이다.


포스터는 3백 곡에 가까운 가곡을 남겼다. 하지만 그는 37세 짧고도 짧은 인생을 살았다.

(...)

그의 많은 곡들 중에서 특히 '메기의 추억'은 노래 가사와 멜로디가 잔잔한 감동을 주는 명곡 중 하나이다. 이 곡은 미국 선교사를 통해 한국에 처음 들어온 후 우리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가슴을 아프게 하는 작곡 배경이 곡에 대한 애잔한 감동을 더해주었다.

(...)

대학을 갓 졸업한 젊은 선생님 조지 존슨은 한 고등학교의 영어교사로 부임한다. 존슨은 그곳에서 학생이었던 메기 클락을 만나게 된다. 그런데 영어 선생님으로 온 존슨과 제자인 여학생 메기는 서로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그리고 메기가 학교를 졸업하면서 둘은 미래를 약속하며 행복한 결혼식을 올렸다.


그런데 아름다운 신혼의 단꿈이 채 가시기도 전에 그만 아내 메기에게 폐결핵이 찾아오고 만다.

(...)

결국 아내는 결혼 1년 만에 어린 갓난아이와 남편을 남겨두고 세상을 떠나고 만다. 사랑하던 아내를 잃은 존슨은 어린아이를 등에 업고 아내와 행복하게 살던 시골 고향 언덕에 그녀를 묻는다.


그토록 사랑하던 여제자였던 아내를 떠나보낸 존슨은 깊은 슬픔에 잠겼다. 그 후 그는 시인이 되었다. 그리고 죽은 아내를 생각하며 "메이플의 사랑"이라는 시집을 펴내게 되었고, 시집 첫머리에 아내 메기와의 추억이 담긴 시 한 편을 써넣었다.


그것은 지울 수 없는 메기와의 아름다운 추억을 그리워하며 지은 시였다.

63~6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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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기의 추억'이라는 곡을 들어보면 익숙한 멜로디와 가사에 저도 모르게 흥얼거리게 된다. 그런데 이 곡의 뒤 배경에 이렇듯 슬픈 사연이 숨어있을 줄은 몰랐다.


얼마나 사랑했으면 직업도 바꾸고 오롯이 아내만을 생각하며 시를 남기게 되었을까? 이 내용을 알고 다시 가사를 보니 왠지 모르게 그리움이 절절히 느껴지는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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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의 찬미'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윤심덕은 1900년대 초 활동했던 한국 최초의 소프라니스트였다. 하지만 그녀는 29살의 아주 짧은 인생을 살다 간 비운의 성악가였다.


그녀는 일제 강점기 당시 어려운 상황 가운데에서 스타 소프라니스트의 꿈을 안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

그런데 윤심덕이 유학 중 순회공연차 고국을 방문했는데 공연 도중 처자식이 있는 한 유부남을 만나게 된다. 그 남자는 김우진이라는 극작가였는데, 둘은 빠르게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

멈춰야 하는 길인 것은 알았지만 그 둘의 관계는 이미 돌이키기에 너무 늦어버린 관계가 되어 있었다.


당시 보수적인 시대적 상황에 비추어 보아도 그들의 사랑을 이루기는 쉽지 않았다.

(...)

바로 그때 그녀는 '사의 찬미'라는 곡을 쓰게 된다. 그리고 그 노래로 이루지 못한 자신의 사랑을 비관하며 죽음의 비극을 알리는 메시지를 남기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는 그녀가 쓴 '사의 찬미'의 노래 가사처럼, 그녀가 그토록 사랑하던 김우진과 함께 이 세상을 떠나가 버렸다.

(...)

이 곡은 원래 한 루마니아 음악가가 작곡한 '다뉴브강의 잔 물결'이라는 원곡에 윤심덕이 가사를 붙인 번안곡이었다.


윤심덕에 의해 작곡된 후 이 곡은 1926년 발매되어 대중음악의 효시 격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불렸다. 또 이 노래는 실연의 아픔을 이기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애창곡으로도 즐겨 불렸다.

173~17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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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진의 와이프 입장에서는 정말 억울한 상황인데, 시대적 배경과 가사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하면서 어떻게 보면 비운의 연인처럼 보이는 윤심덕과 김우진의 사랑 이야기인 '사의 찬미'는 어떤 입장에 서서 노래를 감상하는지에 따라 다르게 들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더불어 이런 스토리 덕에 오히려 사람들의 연심을 자극한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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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작은 여름이면 오케스트라를 데리고 그의 여름 별장에 가서 시간을 보내곤 했었다. 그런데 그해 여름에는 예년보다 별장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지쳐갔고 또 고향과 가족에 대한 깊은 향수가 생겨났다. 결국 악장 하이든에게 그 고충을 토로하게 이르렀다.


하이든은 그 난처한 상황으로 인해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그때 지혜로운 하이든은 후작의 뜻을 거스르지 않고 단원들의 고충을 알릴 수 있는 묘안을 찾아내게 된다. 바로 이 '고별'이라는 교향곡을 통해 후작에게 이별의 뜻을 알리기로 한 것이다.

(...)

연주회는 시작되었고 이제 마지막 악장에 다다랐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지 갑자기 베이스 연주자가 하던 연주를 중단하고는 악기를 들고 자리를 뜨는 것이었다. 곧이어 다른 연주자들도 한 사람 한 사람씩 무거운 표정을 하고는 무대 뒤로 사라져갔다.

(...)

그사이 벌써 연주를 하던 단원들의 자리는 거의 비워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악장과 또 한 명의 연주자만이 무대에 남아 있게 되었다. 그들도 지친 표정으로 마지막까지 연주를 이어갔고 연주는 그렇게 마쳐졌다.

(...)

그때까지만 해도 그런 형식의 작품은 소개되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쉽게 이해할 수도 없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날 연주를 다 들은 후작은 하이든의 뜻을 헤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다음 날로 지쳐 있던 단원들에게 그동안 늦어졌던 여름휴가를 보내게 되었다는 것이다.

(...)

하이든의 이 작품은 지금에 와서도 그 의미가 적지 않다. 그 이유는 행위를 접목한 이런 형식의 작품은 순수 절대음악에 있어서 음악과 퍼포먼스를 접목한 역사상 첫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놀랍게도 하이든은 그 오랜 옛적에 사회의 통념을 깨고 그런 시도를 했던 것이다. 아마도 하이든의 인격과 성품이 아니었다면 그 당시 어느 누구도 쉽게 생각하거나 시도할 수 없는 아이디어였을 것이다.

(...)

때로는 말보다 글이 더 필요할 때가 있다고 한다. 또 때로는 글이나 말보다 적절한 제스처가 더 큰 효과를 가져올 때도 있다.

178~18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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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이는 아이디어에 획기적인 퍼포먼스가 음악과 결합된 당시로서의 매우 파격적인 연주가 아니었나 싶다.


사실 중간에서 매우 난처했을 텐데, 하이든은 이것을 오히려 기회로 삼아 후작의 면을 살려주는 것은 물론 지쳐있던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의중까지도 전달할 수 있는 상황으로 만들었다.


단순히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이끄는 악장으로써만 생활했다면 급작스러운 상황에 이런 아이디어는 절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깊이 있게 음악을 대하고 늘 고심했기에 나온 지혜가 아니었나 싶다.


이제서야 말이지만, 당시에는 저질러 놓고도 뒤에서는 얼마나 조마조마한 마음이었을까?😂



****


그냥 들었으면 '그냥' 넘겼을 음악, 작곡가, 악기 소리를 이렇듯 흥미롭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통해 알게 되니 새삼 다르게 다가온다.


이래서 '아는 것이 힘'이라고 하는가 보다. 덕분에 조금 멀게 느꼈던 음악들과도 꽤 가까워진 느낌이다. 어떤 음악을 들었을 때 이렇게 한번 콕 짚어진 것들은 새삼 반갑게 다가올 것만 같다.


그때 '엇! 이 음악은~ ' 하면서 마치 아는 사람인 것 마냥 반갑게 맞이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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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적의 단어들
이적 지음 / 김영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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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적의 글들은 노래 가사를 비롯해 SNS를 통해 가끔 마주하기에 어떻게 보면 나에게 있어 그의 글은 믿고 보는 글이나 다름없다. 그의 감성과 똑 부러지는 글솜씨는 군더더기가 없고 명확한 메시지와 내용을 전달하기에 더 그렇다.


한동안 약속된 것들을 이행하느라 바빠 정작 읽고 싶은 것들을 가까이할 수 없었는데, 이제서야 한숨 돌릴 기회를 포착하고 모처럼 읽고 싶은 책 목록을 뒤져 이적의 책 한 권을 집어 든다.


이 책을 마주하고 처음 드는 생각은 '아! 금방 읽겠다'였는데, 그만큼 부담 없는 구성과 편집이 시선을 끌었다. 보통 책을 처음 마주하면 책 앞뒤 표지와 목차, 페이지들을 주르륵 넘기며 살펴보는 게 일련의 패턴인데, 그렇게 대강 마주한 책에서 '얼른 읽어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총 5부로 구성된 이 책을 살펴보면, 인생의 넓이, 상상의 높이, 언어의 차이, 노래의 깊이, 자신의 길이를 주제로 하여 각 단어에 얽힌 이야기를 짧게 나열하는 형태로 담겨있다.


단어로 보자면, 인생, 상상, 언어 차이, 노래, 자신에 대한 이야기라고도 말할 수 있는데 길지 않은 글자 속에서 이런저런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생각지 못한 발상, 날카로운 유머, 되돌아봐야 할 나 자신 등 짧게 남긴 메모 같은 글에서 여러 생각과 감정이 교차함을 느낀다. 익숙한 단어를 발견할 때는 내심 반가웠다가, 글을 읽고는 공감을 하기도 하고, 다른 의미에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어디서 끊어 읽어도 부담스럽지 않고, 언제 어디서 마주해도 헷갈릴 일이 없어 이 책은 출퇴근길이나 쉬는 시간, 점심시간을 활용해서 읽어봐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적의 수많은 단어들 중, 내 마음에 콕 하고 다가왔던 몇몇 단어들을 지금부터 소개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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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받은 인성 교육 이야기를 들려준다.


"종이에 사람을 그리세요. 그리고 그 사람에게 나쁜 말을 하며 종이를 구겨보세요. 이제 좋은 말을 하며 종이를 다시 펼치세요. 어때요. 구겨졌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죠? 그래요. 나쁜 말을 하고 나면 나중에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상처가 완전히 없어지지 않는 답니다. 그러니까 친구한테 나쁜 말을 하면 안되겠지요?

2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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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은 때로 아이들을 통해 삶을 배울 때가 있다. 그리고 그걸 캐치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타인에게 상처를 주면 안 된다는 내용은 이미 유치원 때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배운다. 때문에 말을 조심해야 하고, 타인에게 상처가 될 말들은 하지 않는 게 옳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어른이 된 우리들은 때론 생각 없이, 또 어떨 때는 일부러 타인에게 상처 줄 말들을 서슴없이 내놓는다.


알고 했던 모르고 했던, 타인에게 상처가 될 말들은 되돌릴 수 없으니 오늘부터라도 자중하고 조심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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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폰


호젓한 산길을 걷고 있는데 맞은편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온다. 아니나 다를까, 한 등산객 목에 걸린 휴대전화 스피커에서 음악이 쩌렁쩌렁 울리고 있다. 보기 싫은 건 고개를 돌리면 그만이지만 듣기 싫은 건 고개 돌려봐야 피할 방도가 없다. 혹시 이어폰이란 게 발명된 걸 아직 모르나 싶어 가방 속 내 것이라도 건네줄까 하다가, 이어폰 끼면 경적 소리를 못 들어 위험하다며 음악을 스피커 최고 볼륨으로 틀어놓고 달리던 자전거 라이더가 생각나, 그냥 살포시 내 귀에 꽂기로 한다. 이럴 때 이어폰은 귀마개이자 마스크. 유해한 것들로부터 내 몸은 내가 지킬 수밖에.

2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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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롭게 다가왔던 일상에서 흔히 겪는 공감 가는 이야기 중 하나로, 혀를 차게 되는 내용이기도 했다.


요즘은 민폐 끼치는 이들은 오히려 활개를 치고 다니고, 오히려 정상 범주의 사람들이 피해 다니는 꼴이라니 어떻게 보면 어처구니없고, 어떻게 보면 참 아이러니하다는 생각도 든다.


개인적으로 저자의 말에 하나를 더 덧붙이고 싶다. '보기 싫은 건 고개를 돌리면 그만이지만 듣기 싫은 것, 맡기 싫은 냄새는 고개를 돌려봐야 피할 방도가 없다'라고.


그래서 내 가방은 언제나 빵빵하다. 꼭 봐야 할 때를 대비한 안경(평소에는 시력이 나빠도 안경을 쓰지 않는다), 귀에 꼽을 이어폰, 향을 없애기 위한 핸드크림이나 향수는 필수이자 기본 옵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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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톱


(...)

전 국민이 열광하는 것처럼 보였던 어떤 것도 한 세대가 지나면 마이너로 사라져간다. 세상은 소리 없이 빠르게 변화한다.

4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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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명절이면 누구나 즐기던 고스톱, 그리고 가장 먼저 발명된 고스톱 게임을 언급하며 이제는 수그러들어 서서히 마이너로 사라져 가는 현상을 이야기한다. 얼마나 세상이 소리 없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콕 짚어 이야기한다.


맞다! 어느 것도 영원한 것은 없다. 눈 깜짝할 새 많은 것들은 메이저에서 마이너로 사라져가고, 또 마이너에서 메이저로 변화해간다.


유행은 적응할 새도 없이 급속히 변하고 또 변한다. 뒤돌아 봐야 알아챌 만큼 우리는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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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사람


A 씨는 폭설이 내린 다음 날 남자친구와 거리를 걷다가, 길가에 놓인 아담한 눈사람을 사정없이 걷어차며 크게 웃는 남자친구를 보고, 결별을 결심했다. 이유를 구구절절 설명하진 않았다. 저 귀여운 눈사람을 아무렇지 않게 부술 수 있다는 게 놀라웠고,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모습이 소름 끼쳤으며, 뭐 이런 장난 가지고 그리 심각한 표정을 짓느냐는 듯 이죽거리는 눈빛이 역겨웠다. 눈사람을 파괴할 수 있다면 동물을 학대할 수 있고 마침내 폭력은 자신을 향할 거라는 공포도 입에 담지 않았다. 단지 둘의 사이가 더 깊어지기 전에 큰 눈이 와준 게 어쩌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9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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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특히 뉴스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데이트 폭력의 전조증상을 목격한 느낌이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라는 말처럼, 처음은 사소하고 작은 것들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렇기에 특히 여성이라면 일상의 이런 일들을 가벼이 넘기기 보다 신중하게 지켜보고 현명한 판단을 내려야 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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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떡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어"라는 건 개떡같이 말한 쪽에서 염치없이 강요할 예기가 아니라, 감성과 지력을 총동원하여 마침내 상대가 원래 전하고자 했던 의미를 포착하는 일에 성공한 쪽에서 "개떡같이 말씀하셨어도 찰떡같이 알아들었어요." 라고 한숨을 돌리며 토로할 얘기가 아닐까. 어느 쪽 입장이든 개떡같이 말했다는 사실만은 변하지 않으니, 찰떡같이 말해주세요.

12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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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으며 세상이 참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런 말조차 제대로 된 의미 파악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는 상황이라니.


한때 문해력 논란이 이슈가 되었던 적이 있는데, 이런 해석조차 문해력 부족으로 봐야 하는 건지 아니면, 이기심으로 봐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타인이 자신에게 맞추기를 강요하고 원하기 보다, 자신이 먼저 타인이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먼저 배려해 보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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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


고수를 좋아하게 된 건 서른 살부터였다. 그 전까지 고수를 먹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다.

(...)

서른 살 때 보스턴의 한 베트남 식당에서, 속는 셈 치고 시도해 보라는 친구의 말에, '그래, 그래 외국까지 왔는데 눈 딱 감고 마지막으로 먹어보자'라는 생각으로 고수와 쌀국수를 입에 듬뿍 밀어 넣은 순간, 이 허브의 존재 이유가 온몸으로 납득이 되며 덜컥 사랑에 빠졌다.


어떤 맛은, 어떤 경험은 그러하다. 벼락같이 기호를 바꾸고 인생을 그 이전과 이후로 나눈다. 그러니 마음을 열어두자. 완성된 취향 따위는 없다. 우리는 끊임없이 바뀔 때 젊다.

19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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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아직 전자의 경험에 가깝다. 고수를 먹지 못한다. 그렇기에 '왜 고수를 먹지?'쪽에 더 가깝다.


하지만 어떤 맛이나 경험이 벼락같이 뇌를 강타하는 순간이 있다는 것은 알기에 마음은 열어두고 있는 편이다. 고수를 언젠가 저자처럼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젊다는 것은 이처럼 새로운 것을 서슴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완성이라는 것이 삶에 과연 존재할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우리 마음은 늘 청춘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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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


싫은 사람과는 같이 일하지 않아도 먹고사는데 지장이 없는 상태.

21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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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다! 성공이 뭐 별거냐? 그저 싫은 사람과 함께 일하지 않아도 먹고사는데 지장이 없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우리 모두는 그것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음 편히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것! 이 말속에는 싫은 사람과 함께 하지 않아도 된다는 깊은 뜻이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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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적의 생애 첫 산문집인 이 책은 고루하지 않아서 좋다. 조잡한 단어와 말들로 장황하게 늘어놓기 보다 명확하고 분명한 의도를 간략하고 명확하게 전달함으로써 쿡하고 웃어넘기거나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는 등 즉각적인 반응을 내보일 수 있어 좋다.


딥하지 않은 상상력을 발휘할 수도 있고, 나 자신과 삶, 언어의 또 다른 차이, 저자가 직접 쓴 가사의 비하인드까지 함께 만나볼 수 있어 지루할 틈이 없다.


순서 상관없이 원하는 주제를 먼저 만나보아도 되고, 멈춰 서고 싶을 때는 언제고 멈춰서 머물러도 된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읽어나가되, 그의 시선이나 생각 속에 깃든 것들을 하나하나 짚어나가는 재미가 있어 결코 독서하는 시간이 헛되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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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 행복 - 가장 알맞은 시절에 건네는 스물네 번의 다정한 안부
김신지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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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절기에 따라 1년을 살아본 이야기"


도시에 살다 보면 계절, 자연, 날씨 등을 온전히 느끼기 힘든 경우가 많다. 출퇴근길에 잠깐 마주하는 날씨, 춥고 더운 것으로 느끼는 계절, 그리고 근처 산이나 공원을 찾아야지만 느낄 수 있는 자연.

때문에 우리는 계절감을 잊고 매일 쳇바퀴 굴러가듯 '그냥' 살아간다. 사실 한때는 나 역시 이런 것조차 생각할 겨를이 없을 만큼 너무 바쁘게 살았다. 새벽같이 일어나 출근하고, 매일 지속되는 야근에 막차 타고 오기 바쁜 하루라 날씨, 계절, 자연 이런 것은 늘 뒷전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나를 건강하게 하고, 쉼을 주는 힐링 포인트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음을 알게 된다. 어릴 때는 자연 속에서 피톤치드 맞으며 흙, 나무, 꽃, 신선한 과일, 좋은 공기 등과 함께 했는데 그런 것들이 모조리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래서 지쳤고, 아팠고 참 많이 힘든 날들을 보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며 문득 건강한 환경 속에 있던 그때가 떠올랐다. 그리고 계절 따라 우리에게 제철 행복을 주던 것들이 그리워졌다.


총 4부로 구성된 이 책은, 계절을 24절기로 나눠 변화하는 풍경과 제철에만 누릴 수 있는 행복에 대해 전한다.

저자는 요즘 사람들에게는 달력 속에 작은 글씨로만 존재하는 절기를 통해 계절의 변화를 서술함으로써 이 속에 얼마나 많은 성장과 변화, 그리고 삶이 숨어있는지를 알려준다.

덕분에 이 계절과 맞물려 있는 우리의 인생 속에 숨어있는 빽빽하고 가지런한 작은 행복의 씨앗 또한 발견할 수 있었는데, 은근히 이것들을 하나 둘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온전히 계절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가질 수 있는 눈앞에 있는 행복! 지금부터 그것을 제대로 맞이하기 위해 제철 행복을 찾아 떠나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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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떠나기 전 참고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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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맞은 시절을 산다는 건 계절의 변화를 촘촘히 느끼며 때를 놓치지 않고 지금 챙겨야 할 기쁨에 무엇이 있는지 살피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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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이 보였다. 좋아하는 것들 앞에 '제철'을 붙이자 사는 일이 조금 더 즐거워졌다.
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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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맞은 시절을 맞이하기 전, 먼저 저자가 구분 지은 24절기를 알아둘 필요가 있다. 보통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이야기하지만, 조금 더 촘촘히 계절을 음미하기 위해 지금부터는 24절기로 계절을 만끽해 보자!


■24절기란?
'천구상에서 태양이 1년에 걸쳐 이동하는 경로'를 '황도'라 부른다. 황도 한 바퀴인 360도를 15도 간격으로 나누어 계절을 세밀하게 구분한 것이 24절기.

봄, 여름, 가을, 겨울 각각에 여섯 절기가 속하며, 한 절기의 길이는 약 15일로 한 달에 두 번 들어 있다.


■절기 알기
양력(태양력)에 따른 것이다. 보통 우리는 절기를 하루인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 황도상에서 15도 간격으로 나눈 각 지점을 태양의 정중앙이 통과할 때가 24절기가 시작되는 시점이며, 다음 절기까지의 기간을 한 절기로 본다. 달력에 적힌 일자는 입기일(절기가 시작되는 날)이다.

세종은 조선시대 천문학을 집대성한 역법서 <칠정산>을 펴내며 24절기를 한양의 위치와 기후에 맞게 수정했다. 현재 우리가 쓰는 절기는 이에 따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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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 행복을 챙기기 위한 저자의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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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 끝자락에 저자가 제안하는 제철 숙제를 풀어보며 나만의 절기를 마음에 꼭꼭 담아두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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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봄, 봄비에 깨어나는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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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
▷2월 4일 무렵
▷봄이 일어서기 시작하는 한 해의 첫 번째 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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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의 숙제는 하나.
꼬박꼬박 때를 맞춰 찾아오는 봄처럼,
지치지 않는 희망을 새해 숙제로 제출할 것.

희망은 어디 숨겨져 있어 찾아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희망하는 사람의 마음에 새것처럼 생겨나는 법이니까. 새싹을 틔우는 게 초목의 일이라면 희망을 틔우는 건 우리의 일.
다시 봄이다.
여기서부터 '진짜 시작'이라 힘주어 말해도 좋은.
3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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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보통 1월 1일을 기점으로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시작을 이야기하지만, 절기로 이야기하자면 봄의 시작은 '입춘'이라 말할 수 있다.

1월 1일 목표를 세웠다면, 새해 희망을 다지는 날은 '입춘'을 기점으로 해보면 어떨까 한다. 이제 진짜 시작!


■춘분
▷3월 20일 무렵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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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아져야 한다고 끊임없이 다그치는 인간 세상과 달리, 자연은 나무라지도 채근하지도 않는다. 나무가 나무로 살고 새가 새로 살듯 나는 나로 살면 된다는 걸 알게 할 뿐. 세상에 풀처럼 돋아났으니 다만 철 따라 한 해를 사는 것. 봄에 새순 같은 희망을 내어 여름에 키우고, 가을에 거두며, 겨울엔 이듬해를 준비하는 게 자연스러운 한 해 살이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을 땐 큰 질문은 쪼개서 작은 질문으로, 큰 시간은 쪼개서 작은 시간으로. 1년이 막막하다면 다만 봄의 하루를 성실하게.

빈손으로 돌아온다 생각했는데 내가 펼쳐본 쪽지에 적혀 있던 건 모두 나를 위한 답이었다.
73~7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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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생명을 키워내는 방식처럼, 있는 그대로 나를 받아들이고 차근차근 성장하는 이치를 따르면 어떨까 한다. 매 철에 맞게 성장시키고, 수확하고, 다독이며 살아가다 보면 어느새 나다운 삶에 접어들어있지 않을까?

다만 방법을 잘 모르겠다 싶을 땐, 쪼개고 쪼개서 단위를 줄여 하나씩 이뤄나가면 된다. 성실하고 나답게.


■청명
▷4월 5일 무렵
▷산과 들에 꽃이 피어나는 맑고 밝은 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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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은 365일로 이루어져 있는데 고작 봄의 하루도 시간을 내지 못하며 사는 게 정말 괜찮은 걸까? 벚꽃 앞에서 나는 늘 그런 생각을 한다.
(...)
그러니 누가 뭐라 해도 꽃놀이만큼은 '내가 나한테 이것도 못 해줘!'하는 마음으로 시간을 내서 즐기기를.
(...)
환한 꽃그늘 아래 자리를 펴고 앉아 시시각각 봄이 흘러가는 것을 지켜보다가 '아, 이 맛에 산다'하는 흡족한 미소를 띨 그날까지. '이게 사는 건가'와 '이 맛에 살지' 사이에는 모름지기 계획과 의지가 필요한 법이다. 제철 행복이란 결국 '이 맛에 살지'의 순간을 늘려가는 일.
(...)
꽃은 늘 기다린 시간보다 짧게 머물다 가니,
봄이 오면 언제까지라도 오늘의 기쁨을 선택할 수 있기를.
내일의 즐거움을 예약할 수 있기를.
85, 8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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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해 오는 봄이지만, 오늘의 봄은 지나가면 끝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올해의 봄을 넘겨버리면 어느새 '이게 사는 건가'와 같은 생각에 접어들기 마련이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다가오는 봄을 만끽할 하루를 내어준다면, 적어도 '이 맛에 살지'하는 제철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제철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약간의 부지런함과 의지, 그리고 계획은 필수다.


■곡우
▷4월 20일 무렵
▷곡식을 기르는 봄비가 내리는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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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4월이면 돌미나리 전을 먹는다. 그건 봄마다 친구를 떠올린다는 말. 우리는 예전처럼 자주 만나지 못하게 되었지만 평생 미나리전 앞에서 친구를 떠올릴 것을 생각하면, 오래전의 약속이 모양만 바뀐 채로 계속 지켜지고 있는 것 같다. 그때 봄 산을 같이 걷길 잘했지. 평상에 앉아 미나리 전을 먹길 잘했지.

어쩌면 좋은 계절의 좋은 순간을 함께 보내고 싶은 마음을 줄여서 우정이라 부르는 건지도. 우리는 그렇게 잊지 못할 시절을 함께 보낸다. 서로에게, 잊지 못할 사람이 된다.
10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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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 행복을 누리는 것 중에 먹거리를 빼놓고 이야기하기는 쉽지 않다. 음식은 당시의 디테일한 추억을 상기시키기 좋은 소재인데, 먹었던 음식을 비롯해 당시의 날씨, 함께 한 이들, 코끝에 머물던 향기, 풍경까지 담아낸다.

때문에 우리는 당시와 비슷한 상황에 놓이게 되면 그때를 회상하며 그리워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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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여름, 햇볕에 자라나는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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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만
▷5월 20일 무렵
▷작은 것들이 점점 자라서 대지에 가득 차는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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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면 안부가 원래 그런 일이다. 생각나서 연락하는 일.
(...)
안 하던 일을 하기가 어려울 땐 작게 해본다. 그중 가장 쉬운 안부의 규칙은 '이름으로 된 간판을 발견하면 연락하기'다. 싱겁기로는 국내 최고인, 저염식 안부라 할 수 있다.
(...)
제대로 할 게 아니면 아예 안 할 거라 마음먹는 것보다야 가볍게라도 하는 게 낫다. 무엇보다 '제대로 된 안부'라는 게 있나? 안부는 짧아도 가벼워도 먼저 건네면 무조건 좋은 것이다.
(...)
시간차를 두고 도착하는 답장들엔, 직접 보지 못했어도 웃음이 묻어 있단 게 느껴진다. 어떤 안부는 조만간 만나자는 약속으로 이어지고, 또 어떤 안부는 서로의 무사함을 확인하고 끝나기도 한다. 그거면 됐다. 안부란 정말 별게 아니니까. 편안한지 아닌지 묻는 일.
(...)
작은 안부가 자라 마음을 가득 채우는 소만.
아무렴, 안부를 묻기에 좋은 계절이다.
127, 129, 131~13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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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서로의 안부를 묻는 일이 뜸해지기 시작했다. 쉽게 작은 안부를 먼저 묻던 때도 있었는데, 사는 게 바쁘다는 핑계로, 먼저 하는 것이 껄끄럽다는 이유로 미루다 보니 이제는 안부를 나누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 되었다.

작은 것들이 점점 자라기 시작하는 소만, 시시한 작은 안부를 먼저 건네보면 어떨까 한다.


■망종
▷6월 5일 무렵
▷까끄라기 곡식인 보리를 베고 모를 심는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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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알맞은 행복을 찾는 일은 다른 게 아니라 내 마음이 바라는 것을 귀담아듣는대서부터 시작하니까. '이런 걸 보니 좋네, 여기 있으니 마음이 편하네, 이걸 먹으니 행복하네' 내가 언제 그렇게 느끼는지를 알아채고, '이런 걸 보고 싶다, 이런 데 가고 싶다, 이런 걸 먹고 싶다' 내가 바라는 것들을 알아줄 때. 그 목록만으로 우리는 살아갈 힘을 얻는다. 내가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만 한 위로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망종엔 우리 모두 바깥 인간이 되자. 밖으로 나가 초여름을 누리자. 잠시여서 아름다운 계절을 즐기며 스스로를 웃게 해주는 일이야말로 변치 않는 제출 숙제니까.
145~14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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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행복을 찾기 위해 저자는 바깥 인간이 되라고 말한다. 초 여름을 누리며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바라는지, 어떤 것에 관심이 있는지를 귀담아 들으며 나의 행복을 찾아보라 권한다.

푸릇함과 싱그러움이 가득한 6월, 나를 발견하고 환기시킬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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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가을, 이슬에 여물어가는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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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강
▷10월 23일 무렵
▷서리가 내리고 단풍이 짙어지는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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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려다보는 단풍의 계절에서 내려다보는 낙엽의 계절까지, 내가 생각하는 숙제는 하나다. 이 가을을 끝까지 써야지. 더 이상 나오지 않는 치약이나 핸드크림의 가운데를 가위로 잘라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쓰는 사람답게, 이 계절을 끝까지 쓰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까워라, 하는 마음으로.
(...)
다들 가을에 진심인 것, 아름다움 앞에 열심인 것. 그 마음을 헤아리면 이 모든 소통이 극성이 아니라 정성으로 느껴지고 마는 것이다. 성수기가 성수기인 이유는 그때가 가장 아름답기 때문이라는 당연한 사실과 함께. 우리는 저마다의 제철 숙제를 열심히 하고 있을 뿐이다.
251~25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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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성수기마다 사람들을 피해 다니느라 바빴는데, 이 글을 읽고 보니 저마다 제철 숙제를 하느라 바빴던 것이었구나 깨닫게 된다.

유독 알록달록 가을빛으로 물든 가을이면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엉덩이가 들썩이면서도 막상 사람들에 치일 생각에 주저앉고는 했는데, 올가을에는 나만의 제철 숙제를 하러 떠나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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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겨울, 눈을 덮고 잠드는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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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
▷1월 20일 무렵
▷큰 추위가 찾아오는 한 해의 마지막 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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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럽게 산다는 건 결국 계절의 흐름을 알고, 계절이 무엇을 어떻게 바꾸어놓는지도 알고, '제때' 해야 할 일을 찾아서 했던 옛사람들과 동식물처럼 사는 것.
(...)
꼭 필요치도 않은 것을 이것저것 매달고 여태 그것을 풍성함이라 여기며 살았던 건 아닐까. 내가 나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건 이거구나, 나머지는 결국 다 부수적인 것들이구나. 살아온 시간이 쌓인 만큼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선명해지면 좋을 텐데, 자주 잊고 새로 배우길 반복할 뿐이다.

그러니 다시 돌아오는 계절이 있어 우리 삶을 새로고침 해준다는 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봄이 오는 한 우리는 매번 기회를 얻는다. 동시에 이번 봄은 다음 봄이 아니기에 유일한 기회이기도 하다.

한 번뿐인 계절을 귀하여 여기면서, 한 번뿐인 삶을 자연스럽게 살아가고 싶다. 겨울 숲의 저 나무들처럼, 신의 부재 속에서도 할 일을 찾았던 옛사람들처럼.
333~33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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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우리는 자연을 거스르고 역행하는 삶을 살고 있기에 불행한 것이 아닐까 한다. 물 흐르듯 '제때'에 맞춰 살아간다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더 건강하고 행복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제부터라도 계절의 변화를 눈치채보자. 제때 해야 할 일을 눈여겨보고, 계절을 만끽할 수 있는 무엇을 하나씩 실행해 보자. 여기에 더해 제철 음식을 충분히 음미해 보는 것도 추천한다.

매해 돌아보는 봄이 있어 다행히 우리는 일 년을 주기로 삶을 새로고침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지만, 동시에 이번 봄이 다음 봄과 같지는 않기에 어쩌면 유일한 기회일지도 모르겠다.

결국 방법은 하나다. 매 순간을 의미 있게 사는 것. 지금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즐기는 것. 그것이야말로 제철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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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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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다 보면 왜 일 년이 사계절로 이루어져 있고, 또 이것이 24절기로 나누어져 있는지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 무엇도 버릴 것이 없다는 것 또한 알게 된다.

빽빽하게 자리한 절기를 노닐다 보면, 자연 그 자체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 들어 시선을 떼기 어렵다 느낄지도 모르겠다. 싹이 트는 모습을 지켜보다 보면 불쑥 커버린 작물을 목격하게 되고, 그러다 울긋불긋 불든 풍경을 넋 놓고 바라보다 보면, 어느새 수확의 시기를 경험하게 된다. 쌀쌀함이 감돌 때쯤에는 하얗게 뒤덮인 눈 때문에 또 멍을 때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렇듯 풍경에 압도당하는 느낌에 더해 중간중간 익숙한 먹거리와 추억들이 스쳐 지나가 새삼 낭만이라는 단어가 불쑥 떠오른다.

'오랫동안 잊고 살았구나'

온전히 계절을 느끼며 살았던 그때가 문득 그리워진다. 이제부터라도 제철 숙제를 하며 절기별로 느낄 수 있는 행복을 누리며 살아야겠다 다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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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보듯 너를 본다 J.H Classic 2
나태주 지음 / 지혜 / 2015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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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주 시인의 책을 읽다가 앞서 온라인에서 사람들에게 사랑받은 시만 모아 출간한 책이 있다고 하여 읽게 되었다. 찾아보니 최초의 인터넷 시집이라고 하는데, 시와 가깝지 않았던 젊은 사람들에게 보다 가까이 다가간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이 책에는 나태주 시인의 시와 그림, 그리고 각 장의 첫 페이지를 장식하는 윤문영 화백의 그림을 만나볼 수 있는데, 보다 보면 자꾸 빠져드는 묘한 매력이 있다.


총 3부로 구성된 이 책은, 사람들이 많이 알고 있는 풀꽃부터 다양한 색감을 지닌 시들이 가득 들어차 있다. 여기에 더해 중간중간 여백을 채우는 시인의 그림은 상상력을 자극한다.

이 책을 읽으며 개인적으로 좋았던 점은 시보다 오히려 그림이었는데,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풀, 나무, 낙엽 등의 자연 소재에 시인의 상상력을 더한 그림들이 인상 깊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나에게 조금 더 특별하게 다가왔던 시와 그림들을 지금부터 소개해 보려 한다.



=====
사랑은 언제나 서툴다

서툴지 않은 사랑은 이미
사랑이 아니다
어제 보고 오늘 보아도
서툴고 새로운 너의 얼굴

낯설지 않은 사랑은 이미
사랑이 아니다
금방 듣고 또 들어도
낯설고 새로운 너의 목소리

어디서 이 사람을 보았던가...
이 목소리 들었던가...
서툰 것만이 사랑이다
낯선 것만이 사랑이다

오늘도 너는 내 앞에서
다시 한번 태어나고
오늘도 나는 네 앞에서
다시 한번 죽는다.
63페이지 中
=====

이 시를 읽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왜 서툰 것이 사랑일까? 그러다 오래 사귄 연인들이 헤어지는 이유, 즉 '권태감'이 문득 떠올랐다.

너무 오래 알고 지내서,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어서 서로에 대한 궁금증이나 서투름이 없는 상태. 어쩌면 이 권태감은 물리적인 시간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서로에 대한 관심, 새로움, 낯섦, 서툶이 없어진 이유일 테다. 때문에 시인은 늘 새로운 느낌이 드는 것, 즉 서투름이야말로 곧 사랑이라 표현한 것이 아닐까 한다.


=====
행복

저녁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 있다는 것.
72페이지 中
=====

겪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행복이 별거 없다는 것. 시에 담긴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아니, 충분히 행복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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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1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74페이지 中
=====

사람들이 이 시를 좋아하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대체적으로 짧은 몇 구절만으로도 충분히 풀꽃의 사랑스러움과 싱그러움을 느끼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여기에 더해, 너도 그렇다는 한마디는 앞의 수식어들이 더해져 누구든 심쿵 하게 만드는 마법의 주문처럼 느껴지기 때문이 아닐까?

비슷한 느낌의 단어로 볼수록 매력적이라는 말을 뜻하는 '볼매'라는 단어가 불쑥 떠오른다.


=====
묘비명

많이 보고 싶겠지만
조금만 참자.
81페이지 中
=====

이 시를 그대로 묘비명으로 써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색다른 나만의 묘비명을 미리 정해두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일 것 같다.




=====
아끼지 마세요

좋은 것 아끼지 마세요
(...)
그러다 그러다가 철 지나면 헌 옷 되지요

마음 또한 아끼지 마세요.
(...)
그러다 그러다가 마음의 물기 마르면 노인이 되지요

좋은 옷 있으면 생각날 때 입고
좋은 음식 있으면 먹고 싶은 때 먹고
좋은 음악 있으면 듣고 싶은 때 들으세요
더구나 좋은 사람 있으면
마음속에 숨겨두지 말고
마음껏 좋아하고 마음껏 그리워하세요

그리하여 때로는 얼굴 붉힐 일
눈물 글썽일 일 있다 한들
그게 무슨 대수겠어요!
지금도 그대 앞에 꽃이 있고
좋은 사람이 있지 않나요
그 꽃을 마음껏 좋아하고
그 사람을 마음껏 그리워하세요.
106~107페이지 中
=====

'아끼다가 똥 된다'라는 말처럼, 무언가를 아끼다가 정작 쓰려고 꺼냈을 때 쓰지 못한 경험 한두 번쯤은 있을 것이다. 그게 물건이 됐든, 사람이 됐든 너무 아끼다 보면 무용지물이 되기 마련이다.

폐기처분하기 이전에, 마음껏 사랑하고, 마음껏 사용해 보면 어떨까? 감정이든, 사람이든, 물건이든 중요한 것은 현재이지 나중이 아니다.

좋아하는 것은 더 자주 사용하고, 좋아하는 음식은 바로 먹으며 음미해 보자. 좋아하고 그리운 마음 또한 마음껏 누리며 살아가 보자. 그게 바로 잘 사는 인생 아닐까?


=====
사랑하는 마음 내게 있어도

사랑하는 마음
내게 있어도
(...)
차마 건네지 못하고 삽니다
사랑한다는 그 말 끝까지
감당할 수 없기 때문

모진 마음
내게 있어도
(...)
차마 하지 못하고 삽니다
나도 모진 말 남들한테 들으면
오래오래 잊혀지지 않기 때문

외롭고 슬픈 마음
내게 있어도
(...)
차마 하지 못하고 삽니다
외롭고 슬픈 말 남들한테 들으면
나도 덩달아 외롭고 슬퍼지기 때문

사랑하는 마음을 아끼며
삽니다
모진 마음을 달래며
삽니다
될수록 외롭고 슬픈 마음을
숨기며 삽니다.
160~161페이지 中
=====

앞 전의 시와 반대되는 시로, 이 시에서는 배려와 책임감이 느껴진다. 책임지지 못할 감정은 마음속에 꾹 담아두기, 나도 겪어본 감정들을 타인이 굳이 겪게 하지 않기.

타인을 향한 깊은 애정이 느껴져 더 애달프게 다가왔다.


시를 위주로 소개했지만, 중간중간 시선이 갔던 그림도 함께 담아보았다. 섬세한 표현과 상상력이 더해진 그림을 통해 잠시 힐링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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