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만의 방
김그래 지음 / 유유히 / 202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나라 가정을 살펴보면, 부부방, 아이방, 내방, 서재방(=아빠방)과 같은 방은 존재하는 데 유달리 '엄마방'은 잘 없다. 가족 중 거의 유일무이하게 '엄마방'만 없는 것이다.

맞벌이 부부가 아닌 이상, 집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도, 집에서 일을 가장 많이 하는 사람도 엄마인데 정작 엄마방은 없는 것이 좀 이상하게 느껴진다. 취미생활이나 쉼의 공간, 나만의 사색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엄마만의 방'의 왜 없는 걸까?

이 책에서는 비로소 베트남으로 떠나고 나서야 나만의 방을 가지게 된 엄마의 이야기가 담겨있는데, 물리적 거리만큼 떨어진 뒤에야 비로소 '엄마'라는 사람을 새롭게 보게 된 딸을 만나볼 수 있다.


한국에서 일을 하던 엄마가 쉰이 넘은 나이에 베트남으로 혼자 일을 하러 떠나게 되면서 겪은 일상의 이야기를 웹툰으로 담고 있는 이 책은 딸의 시점에서 바라본 엄마의 삶과 새롭게 알게 된 엄마라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내용을 살펴보면, 엄마의 베트남 이주가 결정 난 시점부터 딸과 엄마의 상황이 완전히 뒤바뀐 것을 알 수 있는데, 특히 출국 일주일 전 짐을 쌀 때부터 딸은 자신과 엄마가 많이 닮아 있음을 깨닫게 된다.

상황의 반전으로 평소 여행을 갈 때 하던 엄마의 잔소리를 이제는 딸이 하고 있었고, 밥 잘 챙겨 먹어라, 잘 지내라 와 같은 말을 통화할 때마다 딸이 엄마에게 하고 있었다.

엄마의 해외 생활이 길어질수록 딸은 점차 엄마를 나의 엄마가 아닌 또 한 사람으로 인식하게 되는데, 덕분에 엄마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하는 한편, 자신과 너무도 똑 닮아 있는 비슷한 면모도 함께 확인하게 된다.

엄마의 해외 생활은 가족들에게 많은 변화를 불러일으켰는데,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당연하지 않았음을, 엄마도 한 명의 사람이었음을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된다.

딸은 언젠가부터 한국으로 휴가를 왔다가 베트남으로 돌아가는 엄마가 '집에 간다'라고 말할 때마다 내심 서운한 감정을 느끼는데, 엄마를 응원하는 마음은 가득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편안하게 생각하는 집이라는 공간이 이젠 다른 곳을 의미하는 것 같아 떨어진 몸만큼 마음의 거리도 멀어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베트남으로 떠난 엄마의 적응기와 일상생활, 그리고 엄마를 한 사람으로 바라보게 된 딸의 시선, 여기에 더해 딸과 엄마라는 관계에서 오는 필연적인 감정들에 대해 담고 있는데, 읽다 보면 공감 가는 부분들이 꽤 많다.


나의 엄마가 아니라, 엄마를 한 사람으로 떨어뜨려놓고 보니 엄마 또한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사람이었다는 걸 저자는 깨닫는다.

항상 부지런했던 엄마가 때론 미루기도 하고, 또 뭐든지 잘해내는 사람이 아니라 해내야만 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토록 모든 것에 완벽했던 사람이라는 것 또한 알게 된다.

가족들과 떨어져 오롯이 나 자신으로서 살아가며 삶의 가치를 경험해 보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우리의 모습을 떠올려보게 한다.


엄마가 베트남으로 떠난 뒤 딸과 엄마의 역할이 바뀌면서 딸은 과거 자신을 키우며 느꼈을 엄마의 심정을 비로소 알게 된다.

'아마 이런 심정으로 나를 지켜보고 계셨겠지?'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점점 더 겁이 많아진다. 그래서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도 실패를 감당하는 것도 더 이상 시도하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어쩌면 정작 감내할 수 있는 일조차 우리는 '할 수 없다'로 결론짓고 그냥 지나쳐 왔을지도 모르겠다. 안주하는 삶에 그냥 익숙해진 것이다.

저자는 엄마 역시 그럴 거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베트남에서 홀로 생활하는 엄마의 일상을 지켜보며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알게 된다.

엄마는 지금도 용기를 내어 한 발 한 발 내디디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었다. 자신이 누릴 수 있는 세계를 더 넓혀가며 멋진 인생을 살고 있었다.

저자는 그런 엄마를 보며 용기를 배운다.


엄마의 '혼자 사는 삶'은 엄마에게 자기 자신을 되찾아 주는 것은 물론 쉼을 주었다. 한국에서 '엄마'의 역할이 녹록지 않은 것을 생각하면 저자가 왜 엄마의 '혼자 사는 삶'을 응원하는지 알 수 있다.

특히 휴가를 받아 오는 날이 명절이라도 되는 날이면, 역시 또 엄마는 쉼이 아닌 고된 노동으로 고된 일상을 살다 돌아가야 한다.

휴가가 모든 사람들에게 '쉼'이 될 수 없기에 저자는 다음 휴가는 부디 엄마에게 '쉼'이 되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
엄마가 휴가를 마치고 베트남으로 돌아가면서 집에 가는 기분이 들었다고 말했을 때 정체 모를 감정이 떠올랐다. 한참이 지나서야 그게 섭섭함 이었음을 깨달았다. 그가 베트남에서 잘 자리 잡은 덕에 그만큼 그곳이 편안해졌다는 말일 텐데 왜 그게 내 마음을 찔렀을까. 그와 내가 생각하는 '집'이라는 공간이 더 이상 같지 않아서 우리가 멀어졌다고 느꼈을까.

사실 진작에 이 감정의 정체를 알아챘으나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컸다. 평생 고생만 하다가 이제야 제 삶을 살게 된 엄마에게 응원만 보내도 부족한데, 섭섭함은 그 역할과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서.
280페이지 中
=====

엄마가 베트남에서 생활한 이후 저자는 자신도 모르게 이중적인 감정을 느끼게 된다. 엄마가 편안하길 바라는 마음 한편으로는 여전히 같은 마음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뒤섞여 복잡하다.

차마 섣불리 내뱉을 수 없어 어쩌면 더 심란한 마음이 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잘 적응하고 잘 지내는 모습이 보기 좋으면서도 나를 잊은 것은 아닐까 나와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약간의 불안감도 느껴졌으리라.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감정이고 생각이라 공감이 간다. 특히 부모가 아닌 자식의 입장이라면 더 그렇지 않을까?


=====
엄마와 나의 관계를 직시할 수 있는 기회와 앞으로 엄마와의 관계를 잘 가꿔나갈 힌트를 얻은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나에게 엄마는 어떤 의미인지, 지금 이 시간들을 기록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가족이란 너무 멀 때만큼이나 가까울 때도 서로를 다치게 한다. 어느 누구와의 관계보다 어려운 게 가족이라는 걸 <엄마만의 방>을 통해 다시 배웠다. 고단한 삶을 뒤로하고 훨훨 날아가 자기만의 삶을 살아내는 엄마처럼. 나 또한 몇 발 떨어진 곳에서 씩씩한 눈을 하고 내 삶을 살아내고 싶다.
282페이지 中
=====

엄마의 해외 생활로 인해 떨어져 살게 되면서 저자는 비로소 엄마라는 사람, 가족, 그리고 관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를 가지게 된다.

더불어 <엄마만의 방>을 출간하기 위해 엄마와 더 자주 연락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비로소 엄마에 대한 마음을 다시 돌아볼 수 있었다고 전한다.

우리는 때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제대로 상대를 보려고 하지 않는 때가 있는데, 저자는 물리적 거리가 멀어지며 오히려 제대로 마주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어쩌면 이 일을 계기로 인생을 앞서 걷는 엄마를 보며, 저자 역시 힘과 용기를 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미 훌륭한 인생의 멘토가 있기에 적어도 힘든 순간 무너지거나 포기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누가 제이슨 벨을 죽였나 - 여고생 핍의 사건 파일 3 여고생 핍 시리즈
홀리 잭슨 지음, 장여정 옮김 / 북레시피 / 202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놓치지 말아야 할 3부작 대단원의 끝판왕!"


600페이지를 거뜬히 넘기는 두께에도 불구하고, 숨죽이며 자꾸 읽게 되는 이 시리즈는 진심을 담아 권하 건데, 꼭 1부부터 순서대로 보라고 말하고 싶다.

여타 시리즈물에 비해 앞의 사건들과 연계되는 인물, 사건, 관계 등이 맞물려 있어 만약 중간부터 끼어들게 되면 헤맬 수 있다. 특히 등장인물들이 많고 반복적으로 등장해 사전에 인물들의 특성이나 관계성을 충분히 파악하지 못하면, 사건을 따라가는 데 있어 방해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오로지 핍의 사건 파일에 집중하고 싶다면, 경고하건대 1부부터 시작해 각 인물들과 관계도를 주의 집중해서 파악해두길 바란다.


3부 시리즈의 완결편인 이번 편은 여타 사건들의 해결사 역할을 도맡았던 핍이 사건의 중심에 서게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읽다 보면 현실감 돋는 내용에 절로 소름이 돋는다.

특히 2부 말미에 핍이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면서 궁금증을 자아냈던 장면들이 연이어 3부로 이어지면서 핍의 내밀한 감정을 밀도 있게 표현했는데, 이때야말로 몰아치던 사건에서 벗어나 잠시 숨을 몰아쉴 타이밍인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곧이어 '진짜' 본격적인 이야기에 들어서게 되면 그때는 정말 돌아볼 겨를도 없이 사건에 휘말려 버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반에는 기존의 속도보다 살짝 느리게 흘러간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초반을 넘어서면 메인 사건을 중심으로 여러 사건들이 이리저리 뒤엉키고, 마침내는 1부와 2부에 일어났던 사건들마저 끌어와 허리케인이 온 마을을 휘저어놓은 것 같은 쑥대밭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핍 개인에게는 매우 힘든 시간이었던 트라우마를 겪는 시간들이 사실은 폭풍의 눈 속이었음을 곧이어 알게 될 것이다.


3부의 핵심 키워드는 표지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바로 범죄현장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는 '테이프'다. 사람을 결박하기 위해 쓰는 테이프, 범죄 현장을 보존하기 위한 테이프.

3부에서 저자는 타인에서 '나'로 이야기를 끌어들여와 핍을 통해 모든 감정과 상황을 보게 만들고, 마침내 분명하고 명백하게 마침표를 찍는다. 히든으로 남겨뒀던 뒷이야기까지 풀어내며 1부와 2부에 결점처럼 남아있던 모든 이야기를 깔끔하게 마무리 지으면서 완전한 결말에 다다른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마음 한켠에 석연치 않은 '무언가'를 자꾸만 떠올리게 된다. 더불어 어쩌면 정의사회 구현, 윤리와 도덕, 법과 제도와 같은 이야기를 꺼내게 될지도 모르겠다.

'핍'이라는 인물은 어찌 보면 홍길동이나 로빈 후드와 같은 인물이다. 국가나 사법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음으로써 태어나게 된 사적 응징 혹은 정의 구현을 위한 인물이라고나 할까?(그것이 십 대 여고생이라는 점이 특이사항이라면 특이사항이지 언제 어디서든 나타날 수밖에 없는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우리 사회가 만약 약자를 보호하지 못하고, 제대로 법제 시스템이 운영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핍'과 같은 인물에게 기댈 수밖에 없다. 핍이 살고 있는 리틀 킬턴 마을 사람들처럼.

그래서 이 소설은 단순한 추리나 스릴러라는 장르를 넘어 트루 크라임 장르에 가장 부합하는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3부 완결 편에서는 피해자가 된 핍에 대한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는데, 이 이야기 속에서 핍은 앞선 피해자들처럼 사법 시스템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한다. 그래서 '네가 사라지면 누가 널 찾지?'라는 범죄자의 질문에 핍은 섣불리 대답할 수 없다.

하지만 이미 몸으로는 알고 있었다. 자신만이 자신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을. 때문에 그녀는 흔들리는 멘탈 속에서도 자신을 구하기 위해 나름의 전략과 계획을 가지고 움직인다. 스스로 '선택'한 방식을 통해 범죄를 해결하는 것은 물론, 주변 사람들까지 구해내는 기염을 토한다.


=====
인물 관계도
=====

■핍(핍 피츠-아모비)
-곧 대학에 진행 예정인 여고생으로, 팟캐스트를 운영하며 사건을 파헤치고 진실을 향해 주도적으로 나아가는 여고생 탐정
-가족: 부모님과 11살 동생 조쉬
-앞선 사건으로 인해 트라우마와 심한 불면증을 앓고 있음
-루크 이튼을 통해 수면제를 구매 후 가족 몰래 복용 중
-일상생활을 되찾고 싶어 회색 영역 말고 흑과 백이 명확한 사건을 통해 자신의 상황을 탈피하고자 노력 중
(회색 영역: 모순, 혼란, 모호한 영역)
-3부에서는 본인이 피해자이자 해결사로 나서게 된다.

※수면제 정보
현재 복용 중인 수면제: 자낙스
자낙스보다 더 센 수면제: 로히프놀


■라비 싱
-선배이자 핍의 든든한 남자친구
-사건을 푸는데 늘 함께 하며 핍과 손발이 잘 맞는 파트너
-변호사가 되기 위해 로펌 인턴으로 근무 중


■샐 싱
-라비의 형
-앤디의 남자친구
-앤디의 살인범이라는 누명을 뒤집어 쓰고 엘리엇 워드에 의해 사망함


■앤디 벨
-사망
-라비의 형인 샐 싱과 연인 관계
-숨겨진 앤디의 이메일이 드러나면서 앤디 죽음의 원인을 비로소 알게 됨


■베카 벨
-앤디의 동생
-현재 수감생활 중으로 14개월의 형기가 남아 있음
-맥스 헤이스팅스가 약을 먹이고 베카를 범함


■제이슨 벨
-앤디와 베카의 아버지
-그린 신 및 클린 신 리미티드의 소유주이자 최고 경영자


■카라 워드
-핍의 가장 친한 친구
-1권에서 다뤄진 살인범이자 납치범이 되어버린 아버지로 인해 불면증을 앓고 있음


■나오미 워드
-카라의 친언니


■엘리엇 워드
-우연히 앤디를 죽였다고 착각하고는 그걸 감추려 샐을 죽임(라비형인 샐은 그렇게 숲속에서 주검으로 발견됨)
-사실 앤디를 죽인 진범은 따로 있었는데 그 진실은 3부에서 밝혀짐
-카라와 나오미의 아빠가 라비의 형을 죽이고 실종된 여자를 5년씩이나 감금한 것으로 현재 수감 중


■스테파니
-카라의 새 여자친구(사귄 지 약 두어 달 됨)


■코너 레이놀즈
-핍의 친구
-친형인 제이미 레이놀즈가 사라지면서 2권에서 핍에게 실종사건을 맡아달라며 의뢰, 이후 친한 사이가 됨


■제이미 레이놀즈
-코너의 친형
-추도식 날 갑자기 사라진 이후 행방불명 되었으나 핍 덕분에 발견됨
-사건 후 나탈리 다 실바와는 연인 사이가 된 것으로 추측됨


■나탈리 다 실바
-1권에서 맥스 헤이스팅스가 약물을 탄 음료를 먹고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 중 하나
-제이미의 행방불명 사건 이후 연인 사이로 발전된 것으로 추측됨


■다니엘 다 실바
-나탈리 오빠로 경찰
-지속적으로 핍의 경계망에 들어와 있는 사람


■맥스 헤이스팅스
-1권에서 여성을 상대로 성폭행을 저지른 가해자
-늘 파란색 물병을 가지고 다님
-존재하는 것만으로 위험 그 자체인 인물
-요리조리 법망을 잘 빠져나감으로써 여러 사람의 원망의 대상자


■해리엇 헌터
-DT 사건에서 희생당한 피해자의 유가족(동생)
-숨겨져 있던 앤디와의 관계가 3부에서 드러남
-해리엇과의 만남은 DT 사건은 물론 앤디의 죽음, 스토커 사건을 풀어나가는데 단초가 됨


■루크 이튼
-나탈리의 전 남자친구로 마약 및 약물 판매상
-핍은 불면증 약을 루크를 통해 불법으로 구매


■호킨스 경위
-핍의 사건들을 담당했던 경찰관
-마을의 사건사고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여 넘기는 스타일로 피해자에게는 최악의 담당자임
-3부에서는 유독 핍에 대해 날카로운 촉을 발휘


■찰리 그린
-2권에서 스탠리 포브스를 살해한 살인자로 현재 도주 중


■스탠리 포브스
-동네 신문사에서 무료 봉사했으나 찰리 그린에 의해 살해됨


=====
핵심 Key 내용(사후 경과 시간 추정)
=====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한 핍은 강한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불면증, 환각, 환청들을 앓지만 병원에서는 스스로 이겨내야 한다며 더 이상 도움을 주지 않는다.

가족을 비롯해 가까운 사람들에게 이를 털어놓을 수 없었던 핍은 불법적인 루트를 통해 수면제를 구매해 짧게나마 잠을 청하려고 노력한다.

스탠리의 죽음을 정면으로 마주했기에 핍은 주기적으로 자신을 비롯한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을 떠올리며 어느새 사후 경과 시간에 대한 내용을 검색해서 확인해 보기에 이른다.


=====
스토리 요약
=====

전작에서 스탠리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한 핍은 강한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한동안 병원 치료를 받지만, 이내 그것도 강제 종료되며 여러 증상을 겪는다.

걱정을 끼치기 싫었던 핍은 가족을 비롯한 남자친구 라비에게 증상이 호전되었다는 거짓말을 하고 몰래 루크를 통해 수면제를 구매하며 근근이 생활하게 된다.

하지만 증상은 나아지지 않았고 수면제로 겨우 버티며 생활하던 중 몇 가지 이상 현상을 목격하게 된다. 현관 앞 목이 잘린 채 죽어 있는 비둘기 두 마리, 몇 달 전부터 시작된 익명의 '네가 사라지면 누가 널 찾지?'라고 쓰인 이메일 그리고 바닥에 분필로 그린 다섯 개의 막대 그림은 처음에는 핍과 연결 짓기에는 다소 모호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서서히 이 모든 증거가 하나로 모아지며, 자신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 핍은 무언의 압박을 느끼며 마침내 자신을 향하고 있는 스토커를 대비하기 위해 목록을 작성하고, 증거를 수집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사실을 남자친구인 라비에게도 공유하며 관련된 키워드를 한꺼번에 넣어 검색하던 중 과거 연쇄살인사건 중 하나인 DT 살인범에 대한 기사가 결괏값으로 나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이내 피해자 동생인 해리엇 헌터의 인터뷰 내용에서 검색한 키워드에 대한 내용을 발견하게 되면서 여기서 실마리를 얻게 된다. 또 DT 살인범으로 지목된 '빌리 카라스'의 모친이 페이스북을 통해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이를 함께 지켜본 라비의 부추김으로 인해 핍은 빌리의 모친인 마리아에게 전화를 걸게 되고 조금씩 DT 사건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렇게 트라우마를 벗어나기 위한 노력과 더불어 자신을 스토커하고 있는 이를 찾던 중 돌연 핍은 납치를 당하게 되고 거기에서 이 모든 일의 시작이자 끝인 진짜 범인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앞서 자신이 해결했던 사건과 DT 연쇄살인사건, 그리고 자신을 스토커하고 있던 범인이 한 명으로 좁혀지는 동시에 DT 살인사건의 여섯 번째 희생자로 핍이 지목되면서 죽을 위기에 처하게 된다.

경찰서에서는 앞선 사건들을 겪고도 여전히 핍의 스토커에 대해 무대응으로 대응했는데, 때문에 무방비 상태에서 핍은 고스란히 위험에 노출된 것이다. 거기에 더해 앤디의 히든 메일을 통해 알게 된 앤디 죽음의 진실과 여기에 경찰의 커넥션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면서 핍은 섣불리 신고를 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면서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는 오로지 핍 자신의 힘으로 벗어나야 함을 깨닫게 된다. 당장 죽을 수 있는 상황이지만 앞서 기사를 통해 꼼꼼히 독파했던 DT 사건의 내막과 피해자들의 상황들을 되짚어 보면서 핍은 자신만의 탈출 계획을 세우게 되고, 다행히 무사히 죽을 위기에서 탈출하게 된다.

하지만 핍은 거기에서 도망치지 않았다. 앞선 경험을 통해 법도 경찰도 믿을 수 없었던 핍은 큰 결심을 함과 동시에 자신의 '선택'에 따라 스스로 범인을 처단하는 길을 택한다.

그리고 2장에서는 이 모든 판이 깔린 가운데 핍이 직접 만들어 가는 사건의 재구성을 만나볼 수 있다. 손이 덜덜 떨리고 호흡이 가빠질 만큼 두려웠지만, 법이 해결해 주지 않는 상황에서 어쩌면 이 상황은 다시없을 기회였기 때문이다.

이 기회를 놓치면 또 앞선 피해자 및 핍과 같은 피해자가 양산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기에 핍은 용기를 내서 이 사회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두 악을 엮어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한 사건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누구도 아니라고 말할 수 없는 명백한 알리바이를 만들어 내면서 완전무결한 범죄현장이 마침내 완성된다.

하지만,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흠 하나가 발견되면서 핍은 위기 상황에 빠지게 되고 이에 주변의 사람들을 끌어들이지 않기 위해 핍은 자수를 결심하지만, 라비의 도움으로 무사히 위기를 넘길 수 있게 된다.

그 과정은 매우 혼란스럽고 때로는 두려움에 잠식당할 만큼 힘겨웠지만, 핍은 자기 자신과 가족, 그리고 가까운 이들을 지켜냄과 동시에 사회의 악을 처단함으로써 마침내 그토록 원했던 평화로운 일상을 오랜 시간의 기다림 끝에 마침내 이뤄내게 된다.

물론 예전과 같지 않은 일상이었지만, 적어도 두려움에 떨며 쫓기는 듯한 느낌에서는 벗어난 듯하다. 핍은 그렇게 여태껏 그래왔듯이 리틀 킬턴의 수호자가 되어 끝까지 많은 사람들을 구하게 된다.

여기에서 한 가지 소름 돋았던 장면은 호킨스의 촉과 무시하지 못할 한마디 말이었는데, 어딘가 핍을 주시하고 있는 듯한 발언으로 인해 핍은 대학생이 된 이후 사람들과 거리를 두며 홀로 긴긴 시간을 보내게 된다.

-----
"핍은 행여 이런 사건에 엮이더라도, 절대 잡히지 않겠지?"
610페이지 中
-----

연쇄살인범 앞에서 오로지 홀로 싸워 살아남은 핍의 기상천외한 세 번째 이야기는 직접 책을 통해 만나보기를 바란다.


=====
스토커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한 핍의 조사
=====



(스토커일지, 증거사진, 잠재적 적의 목록)


핍은 자신과 소중한 이들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둘러싼 의문점들을 하나하나 분석하여 기록해 나가기 시작한다. 스프레드시트에 기록한 스토커일지와 쉽게 지워져 흔적을 남기지 않았던 분필 그림은 세 번째부터 사진으로 남기면서 확실한 증거수집 목록에 들어가게 된다.


=====
'누가 제이슨 벨을 죽였나'의 결론
=====


1년 8개월 16일(697일 차) 후 라비가 핍에게 전송한 문자메시지를 통해 독자는 기다려 왔던 최종 재판 결과를 명확히 알 수 있었다.

그동안 목구멍에 걸려있던 가시를 속시원히 빼 낸 느낌이 드는 건 비단 나뿐일까? 아마 이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었던 모든 독자가 그렇지 않을까 한다.

더불어 법이 바로 서지 못하고, 국가기관이 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을 때 사람들에게 있어 윤리와 도덕의 기준은 언제든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환기시키는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다.


=====
인상 깊었던 문장들
=====

-----
영혼 없는 눈빛이라고들 하던가? 생기 없이 멍하니 공허한 눈. 눈을 한번 깜빡일 때나 예외일까, 이제 그 영혼 없는 눈은 언제나 핍을 따라다녔다.
(...)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 그리고 뒤이어 조용히 울리는 잔향 속 총성. 죽은 눈과 더불어 핍을 늘 따라다니는 그 소리에 핍은 다시금 움찔했다.
9페이지 中
-----

핍은 10대 여고생이 겪기엔 끔찍한 살인사건을 마주하며 큰 트라우마를 겪게 된다. 한동안 병원의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이내 스스로 이겨내라는 말과 함께 더 이상 도움을 받을 수 없게 된다.

그래서인지 핍은 여러 트라우마 증상(공허함, 환청, 환각, 불면증 등)을 겪으며 괴로운 나날을 보내게 된다. 그러면서도 정작 소중한 이들에게는 티를 내지 않으려 발버둥을 치는 모습은 안타깝고 안쓰럽게 다가온다.


-----
이 짓을 또 하다니, 죄책감이 들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오늘이 마지막이야.' 집으로 걸어가며 핍은 스스로 되뇌었다. '마지막이야. 이젠 정말 끝이야.'

최소한 오늘 밤은 조금이나마 잠을 청할 수 있을 터였다.
(...)
그래, 오늘은 잠이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만 한다.
42페이지 中
-----

병원에서 약을 중단한 이후로 잠을 잘 수 없었던 핍은 조깅과 불법적인 루트로 구매한 수면제를 통해 짧은 잠을 청한다.

분명 잘못된 것을 인지하고 있기에, 핍은 매번 '이번이 마지막이야'라는 생각으로 구매하지만, 정작 수면제를 끊지는 못한다.

처음 살인을 목격하고 죽음을 느낀 것이 꽤 충격적으로 다가왔지만, 정작 전문가나 그 외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을 수는 없었다.

이로 인해 핍은 스스로 방법을 찾아냈지만 죄책감이 더해지며 또 다른 괴로움을 추가했다.


-----
핍의 웹사이트를 통해 보내온 이메일이었다. 또다시 같은 메시지였다. '네가 사라지면 누가 널 찾지?' 발송 주소는 anonymous987654321@gmail.com이었다. 메일 주소만 달리했을 뿐 같은 내용으로 다른 휘황찬란한 악성 댓글들과 함께 몇 달째 핍에게 날아오는 이메일이었다.
53페이지 中
-----

처음에 핍은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몇 달째 이어지고 있는 같은 메시지였음에도 말이다. 그러나 서서히 자신을 옥죄어 오고 있는 다른 이상 현상들이 목격되며 핍은 자신을 쫓는 스토커가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여기에서 '사라진다'는 곧 죽음을 뜻하는 것으로, 이는 다시 말해 핍의 죽음을 암시하는 말이었다.


-----
호킨스 경위는 핍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동안 벌어진 그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호킨스는 핍을 믿지 않았다. 이럴 줄 알았다. 라비에게도 그럴 거라고 얘기했었다.
(...)
안 봐도 뻔한 전개였는데 말이다. 핍이 바보였다. 어리석었다.
115페이지 中
-----

현실 속에서도 핍처럼 도움이 필요한 순간, 정작 도움은 받지 못하고 무기력함과 자책만을 안고 돌아오는 사람들이 많다고 알고 있다.

핍에게 도움을 요청했던 이들이 모두 이와 같은 과정을 겪은 후 결국 핍에게 도움을 요청했음을 기억하고 있다면 이것은 비단 핍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호킨스 경위는 앞서 몇 번의 일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했다. 전혀 바뀌지 않았다. 핍의 말에 귀 기울여 주지 않았다. 이를 계기로 핍은 위험에 빠졌고, 이제 다시는 경찰서를 방문하지 않을 거라 다짐하게 된다.


-----
"어쩌면 정의라는 건 법 밖에서만 실현 가능한 건지도 모르죠. 이런 경찰서 밖에서만. 이해한다면서 절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당신 같은 사람들이 없을 때에만."
119페이지 中
-----

아무것도 하지 않는 호킨스 경위를 보며, 핍은 화가 나 위와 같은 말을 내뱉는다. 피해자를 오히려 이상한 사람 취급하며, 날카롭게 반응한다는 식의 대응은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데 말이다.

핍은 자신이 내뱉은 말처럼, 법 밖에서 실제로 정의를 찾았다. 법이 해주지 않기에, 경찰이 도와주지 않기에 스스로 정의를 찾았다.


-----
"너무 섬세해. 너무나 똑똑하고. 경찰은 날 미친 사람 취급하지. 나를 고립시키는 거야. 다른 사람들한테 도움을 청하지 못하게. 가뜩이나 다들 이미 내가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아아주 똑똑해."
(...)
"마치 전에도 해본 사람처럼."
150페이지 中
-----

의미심장한 이 한마디를 시작으로 핍과 범인의 게임이 시작된다. 이 메시지를 알아보고, 전후 상황을 모두 파악한 핍 또한 나에게는 아주 똑똑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
이제 핍은 깨달았다. 핍에게 이제 평온이란 없다. 그 무엇보다 핍이 바랐던 한 가지, 평범한 일상으로 되돌아가는 일은 이제 불가능해졌다. 이 모든 일을 벌인 이유도 오로지 평범한 일상을 되찾겠단 바람 그 하나 때문이었건만, 결국 핍은 대가를 치러야 했다.
(...)
피할 수 없단 걸 핍은 깨달았다. 그러나 정작 핍에게 그건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였다.
615페이지 中
-----

핍은 살인사건을 직접 목격한 후에 트라우마를 겪게 된다. 하지만 이내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여 다시 예전처럼 평범한 일상을 되찾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하지만, 이제 어떤 식으로든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깨닫는다. 이미 많은 일들을 겪으며 많은 것들이 변화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
72일차. 핍이 이 유배길에 오른지, 자신만의 연옥에 들어온 지 겨우 두 달 반밖에 되지 않았다. 핍은 울퉁불퉁 자갈이 박힌 굽이진 이 옛길을 따라 걷고 또 걸었다. 매일같이 걸으며 핍은 약속했다. 앞으로 다른 사람,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고. 그리하여 제 인생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을 되찾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629페이지 中
-----

핍은 위기를 맞는 매 순간,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지 않았다. 트라우마를 겪는 순간, 죽을 위기에 놓인 순간, 이후 사건을 재구성한 순간 모두 핍은 자기 자신보다 가까이에 있는 소중한 사람을 우선했다.

홀로 보내는 긴 시간 속에서도 핍은 만약을 그리며 더 나은 사람, 자격을 갖춘 사람이 되겠다 다짐한다. 이를 통해 핍이 얼마나 정신이 건강한 사람인지, 또 따뜻한 사람인지 알 수 있다.


=====
마무리
=====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3부 2장의 이야기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핍의 방식에 대해 의문을 표하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랬어야 했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피해자가 된 핍의 입장에서 더 이상의 방법은 없었다. 초반에 맥스 헤이스팅스와의 조정 이야기만 보아도 성범죄자가 되려 핍을 상대로 고소하겠다 날뛰는 상황에서 핍은 '협의 거부'라는 대안밖에는 별도로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이 없다.

성범죄자에 대한 명확한 증거와 녹취록, 피의자 진술이 있음에도 맥스는 법적 처벌을 전혀 받지 않는 무죄가 나왔고, 이로 인해 되려 불똥이 핍에게 튀며 핍은 또 다른 억울한 일에 휘말리게 된 것이다.

분통이 터지고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지만, 법이 그렇단다. 또 스토커에 대한 의문점과 두려움을 경찰관인 호킨스 경위에게 털어놓지만 혹시나가 역시나가 된 상황이다.

정석적인 방법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여러 차례 경험으로 체득한 핍은 이제 법과 공공기관에 대한 신뢰가 완전히 무너진 상황이다.

이런 전제 상황을 충분히 고려해 보면, 핍의 이런 결정과 방법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누구도 나를 도와주지 않는 상황에서 내가 위협과 위험으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위험을 제거하는 방법밖에 없기 때문이다.

핍은 그런 혼란스러운 겪고도 끝까지 이타심을 발휘해 억울한 누명을 쓰고 몇 년째 감방생활을 하고 있는 빌리 카라스를 구하기 위해 자신이 수집한 증거들을 호킨스 경위에게 전달한다. 자신과 같은 피해를 겪은 앞선 피해자들의 죽음의 이유와 진짜 범인을 색출하기 위해 힘을 보탠 것이다.

'누가 제이슨 벨을 죽였나'가 제목이지만, 실상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쩌면 그 이면에 있는 숨겨져 있는 사라진 법과 제도가 아닐까 한다.

죽어 마땅한 제이슨 벨이었고, 또 핍이 사건을 조작해 또 다른 사건을 만들었지만 이 모든 일의 배후에는 결국 망가진 법과 제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쩌면 제이슨 벨은 그런 망가진 사법제도와 국가기관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것'이 아닐까 한다. 만약 법과 제도가 바로 서 있었다면 그렇게 많은 희생자가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도 제대로 처벌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요즘 나라의 정세를 보면, 왜 법과 제도가 바로 서야 하는지, 시대에 맞는 입법 제도가 마련되어야 하는지 깨닫게 된다. 이 책이 에둘러 그런 현실을 소설이라는 형태를 빌어 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너에게 들려주는 단단한 말
김종원 지음 / 퍼스트펭귄 / 202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를 단단하게 잡아줄 문장들!"


몇 주 간의 길고 긴 대기시간을 거쳐 만난 책이지만, 막상 읽는 시간은 몇 시간 되지 않았다. 후루룩 페이지를 넘겨보다 그냥 그 자리에서 완독해 버렸기 때문이다.

감성적인 일러스트와 철학자들의 명언, 여기에 더해 눈에 쏙쏙 들어오는 문장들은 미처 다 채우지 못한 빈틈을 채워주는 것은 물론 내면이 더 단단하게 여물 수 있도록 돕는다.

처음으로 청소년을 위해 쓴 인생철학 에세이라서 저자가 단어 하나, 문장 하나에도 온 마음을 담았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어느 것 하나 버릴 게 없다.

덕분에 쉽게 읽히고, 또 빠르게 흡수가 되는 문장들로 가득하다. 심지어 문장 말미에 압축된 필사 문장까지 만나볼 수 있어 여러모로 활용도가 높은 책이다.

살면서 도움이 되는 70가지 문장들 속에는 자존감, 관계, 꿈, 가치관, 지성, 관계 등 여러 주제들을 포함하고 있는데 그래서 꼭 청소년에 국한해서 읽기보다 오히려 범위를 넓혀 다양한 사람들이 읽으면 더 좋지 않을까 한다.


총 5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전반적인 레이아웃과 내용이 꽤 알차면서도 쉽게 다가오도록 구성되어 있다. 텍스트마다 강약 조절을 하여 시인성을 높이는 한편, 중간중간 일러스트를 배치해 피로감을 덜었다.

또 알아보기 쉽도록 각 장마다 주제를 설정하고 그에 따라 도움이 되는 내용을 다양하게 다루는 한편, 문장의 말미에는 이를 압축하는 필사 문장까지 더하면서 짧은 시간 안에 문장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덕분에 긴 시간을 투자하지 않고도 필요할 때는 언제든 특정 문장을 필사하거나 되새기는 것으로 스스로 마음을 다잡을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며 마음에 와닿는 문장들이 꽤 많았는데, 그래서 고민 끝에 '철학자들의 명언'과 '본문의 내용들'을 분리해서 기록해 보려 한다.

사람마다 뇌리에 박히는 문장들은 제각기 다르므로, 더 확실하게 기억에 남는 문장들을 선별해 마음에 담아두고 필요할 때 꺼내보면 좋을듯하다.


=====
철학자들의 명언
=====

---------------
처음에 그들은 비웃으며
"그걸 왜 하냐?라고 묻겠지만
나중에 그들은 경탄하며
"그걸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라고
물어볼 것이다.
-알버트 아인슈타인-
---------------

타인의 말에 굳이 흔들릴 필요 없다는 말이다.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하는 데에는 일정 부분 염려와 걱정의 마음이 섞여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시기와 질투가 뒤섞인 감정으로 인해 이런 말을 내뱉는 경우가 더 많다.

자신이 해내지 못하는 생각,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보면 누구나 부러움과 질투의 마음이 샘솟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일단 'go'를 하자. 해낸 후에는 되려 물을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냐고.


---------------
모든 사람에게는 경탄할 만한 잠재력이 있다.
자신의 힘과 젊음을 믿어라.
'모든 것은 내가 하기 나름이다'라고
끊임없이 자신에게 말하는 법을 배워라.
-앙드레 지드-
---------------

성취의 기본 밑바탕에는 '내가 나를 믿는 것'이 전제되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 일단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면 반은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다.


---------------
우리는 자신에게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그 사건에 대한
자신의 해석에 영향을 받는다.
-에픽테토스-
---------------

사람들은 종종 '사건' 그 자체가 우리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착각하고는 한다. 그러나 비슷한 상황을 겪은 이들은 가만히 살펴보면, 결국 그 사건을 해석하는 방식에 따라 삶의 방향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때문에'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바꿔보면 어떨까?


---------------
풍요 속에서는
친구들이 나를 알게 되지만,
역경 속에서는
내가 친구를 알게 된다.
-존 콜린스-
---------------

내가 역경을 겪고 있을 때야말로 진정한 친구를 판가름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시기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 이때 '관계'를 정리해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 않을까 한다.


---------------
사람은 자기 자신 말고는
누구도 의지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장 폴 사르트르-
---------------

경력과 나이가 쌓여감에 따라 확실하게 느끼게 되는 깨달음은 바로 이 문장이 아닐까 한다.


---------------
약속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장 폴 사르트르-
---------------

주변을 살펴보면, 약속을 말로 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분명히 말하지만, 약속은 '행동'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
글도 그렇고
내 인생도 그렇다.
모든 것은 수십,
아니 수백 번 고쳐 쓰는 것이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

블로그에 글을 쓸 때면 업로드 전은 너무 당연하고, 업로드 후는 물론 때론 오래된 과거 글을 보며 수정할 때도 있다. 어쩌면 우리 인생도 그렇게 조금씩 고쳐 쓰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인생에 완벽이란 없으니, 매일 매 순간 불필요한 것은 지우고 새로운 것은 도전해 보며, 필요한 것은 추가하고 고쳐나가다 보면 이상적인 삶에 조금은 가까워지지 않을까 한다.


=====
기억에 남는 문장들
=====

-----
당장의 결과에 너무 마음을 빼앗기지 마세요. 길게 보면 마음이 좀 더 차분해지고, 오랫동안 분투한 자신에게 자부심도 갖게 됩니다.
22페이지 中
-----

당장 발등에 떨어진 것에 너무 마음을 쏟게 되면 일희일비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조금 더 넉넉하고 길게 인생을 살펴보자. 그러면 지금 당장 눈앞의 결과에 크게 흔들리지 않게 될 것이다.

때론 부정적인 결과가 긍정을 낳는 신호탄이 되기도 하는 법! 조금만 떨어져서 살펴보면 나의 노력과 성장세가 분명 보일 것이다.


-----
인내는 가장 강한 자만이 해낼 수 있는 숭고한 가치입니다. 자신의 의견보다는 타인의 말을 따르고, 자신의 생각이 지닌 가치를 낮게 평가하는 사람들은 결코 무엇도 인내 할 수 없어요. 반대로 무작정 감정을 배출하고, 하고 싶은 말을 다 내뱉고, 가진 힘을 다 보여주는 건 사실 약한 사람들의 자기 표현이죠. 세상에서 가장 강한 자는 그 모든 것을 자신과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잠시 인내하는 사람입니다.
26페이지 中
-----

인내하는 것의 가치와 강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키워드인 다이어트, 공부, 계획, 목표 등의 예시만 보아도 인내를 가진 자만이 숭고한 가치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이 얼마나 강한지를 알 수 있다.


-----
나는 '시간을 내서 내게 오는 사람'과 '시간이 나서 내게 오는 사람'이 내게 완전히 다른 마음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다 소중하지만 나를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사랑과 행복을 선물하면서 살겠습니다.
68~69페이지 中
-----

단어는 한 끗 차이인데, 상대방이 마음속에 품은 의미는 하늘과 땅 차이만큼 벌어진다. 이왕이면 '시간을 내서' 가고, 오는 사람이 되어보면 어떨까?


-----
'사람'이 아니라 '상황'을 보면 속지 않습니다.
나는 '누가 옳은가'보다 '무엇이 옳은가'를 생각합니다.
'무엇'에 집중해야 지혜롭게 판단할 수 있습니다.
105페이지 中
-----

명언 같은 말이다. 실제로 직장과 같은 집단에서 무엇을 판단할 때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문장이다. '사람'을 보면 종종 속는 경우가 있다. '상황'을 보면 적어도 위험은 피해 갈 수 있다.


-----
세상에서 가장 이상적인 투자는 나 자신을 나아지게 하는 투자입니다. 나는 나를 속이지 않기 때문이죠. 매년 나는 꼬박꼬박 나의 크기를 확장합니다. 자신을 믿고 실천하기만 하면 누구나 가능한 일입니다.
129페이지 中
-----

요즘 사람들은 각종 투자에 관심이 많다. 그런데 정작 자기 자신에게 하는 투자는 등한시하는 경우가 있다. 투자에 있어 가장 우선시해야 할 것은 나 자신에게 하는 투자이며, 이것이야말로 곱절로 돌려받을 수 있는 최상의 투자임을 잊지 말자.


-----
우리는 경험한 것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늘 무언가를 소망하고, 사랑하고, 감동하며 살아간다면 새로운 것을 경험하는 동시에 멋지게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136페이지 中
-----

사람들을 만나고 소통하며 종종 느끼는 부분이다. 사람들은 경험한 것만 이해할 수 있다. 때로 '~척'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것은 진정으로 이해했다고 보기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새로운 것을 경험하는 것은 삶을 보다 풍요롭게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때문에 긍정적 경험이든, 부정적 경험이든 더 많은 것을 경험하는 것에 두려워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
내게는 내가 가장 소중합니다. 타인에게 의미 없는 박수를 100년 동안 받는 것보다, 단 1초라도 나 자신에게 박수 치는 하루를 사는 것이 더 빛나는 인생입니다.
163~164페이지 中
-----

우리나라 사람들은 나 자신보다 외부의 시선에 더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 정작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것은 타인이 아닌 나 자신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내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무엇보다 우선시해야 할 것은 나의 인정, 나의 격려, 나에 대한 믿음임을 기억하자!


-----
스스로 믿는 것을 찾으세요. 그리고 꾸준히 반복하세요. 때로 우리에게 가장 큰 재능은 꾸준한 반복에서 나옵니다. 그 가능성을 믿고 지금 시작하세요. 그토록 간절하게 바라는 여러분의 멋진 미래를 만나게 될 겁니다.
182~183페이지 中
-----

반복의 힘은 몇 번을 말해도 부족하다. 어렸을 때부터 꾸준함과 성실함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왔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이것을 여러 핑계로 미뤄둔다.

무언가를 이루고 싶다면, 간절히 바라는 것이 있다면 스스로를 믿고 꾸준한 반복을 이어가 보자. 거기에 원하는 결과가 기다리고 있다.


-----
진짜로 시작하는 사람은 시작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시작하는 모습으로 의지를 알려주죠. 그리고 매일 반복하며 그 가치를 증명합니다.
222~223페이지 中
-----

말이 앞서는 사람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다. '오늘부터 다이어트할 거야'라거나 '오늘부터 수능 공부 00일'과 같은 식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오래 가지 못한다.

진짜 시작하는 사람들은 이런 말보다 행동하는 것으로, 결과로 자신의 신념과 가치를 증명한다.


-----
남들보다 더 잘하려는 생각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금의 나보다 잘하려는 생각이 더 큰 나로 만들어주니까요. 지금 내가 머무는 공간에서 내가 가진 힘과 능력으로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하면 변화는 기적처럼 찾아옵니다.
276페이지 中
-----

나를 성장시키는 가장 큰 원동력은 결국 나 자신이다. 더불어 내가 나의 경쟁상대가 되었을 때 우리는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다.

타인과 나를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목표도, 기준도, 삶의 방식도 같지 않은 타인은 그래서 비교 대상 자체가 되지 않는다.


=====
마무리
=====

가슴에, 머리에 새기면 좋을 문장들을 여럿 만나며 모처럼 삶에 대한 열기가 활활 타오름을 느낀다. 주눅 들어 있을 때, 자신감이 떨어졌을 때, 목표를 상실했을 때, 타인과 비교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을 때, 불안감이 스며들 때, 삶의 의지가 약해졌을 때, 되는 일이 없다고 느낄 때 이 책을 꺼내들어 보자.

필요한 주제에 맞는 문장들을 읽어나가도 좋고, 필사를 하며 다시 한번 의지를 다져봐도 좋겠다. 자신의 약한 부분이나 자주 허물어지는 키워드가 있다면 메모지에 써서 눈에 띄는 곳에 붙여두고 자주 들여다보자. 마음을 다잡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나를 일으키고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힘은 결국 내 안에 있다. 많은 경험과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통해 부디 내면이 단단해지는 '나'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그러다 가끔 마음이 약해지는 순간, 이 책 속에 담겨있는 문장과 명언들을 펼쳐들고 의지를 활활 불태워보자. 당신은 할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뭉크의 별이 빛나는 밤 - 고독 속 절규마저 빛나는 순간
이미경 지음 / 더블북 / 202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All about 뭉크!"


'절규'의 화가로 유명한 뭉크의 탄생과 예술, 죽음까지 모두 만나볼 수 있는 이 책 덕분에 뭉크의 삶과 그의 작품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보통 미술을 어렵다고들 많이 이야기하는데, 그 이유는 예술을 즐기는 방법보다 '미술사'에 더 주목하여 가르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미술사보다 뭉크라는 한 사람의 개인에 집중해서 이야기를 펼쳐 나가면서 보다 즐겁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뭉크는 어릴 적부터 항상 그림자처럼 우울과 불안, 외로움 등의 감정들이 작품에 영감을 주며 많은 영향을 끼쳤는데, 때문에 그의 내면에 품고 있는 이런 감정과 그런 감정에 영향을 끼친 삶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그의 작품을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자칫 잘못 받아들이거나 오해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는데, 이를테면 그의 작품으로 유명한 <절규> 또한 그렇다. 대충 그림만 보고서는 절규하는 대상이 얼굴을 부여잡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상 작가가 의도한 것은 사람이 아닌 '자연'의 절규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나서 보면, 작품을 보는 재미가 한층 격상되고, 또 새로운 눈이 생기게 되는데 은근히 쏠쏠한 재미가 있다.


총 5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뭉크의 삶 전반은 물론, 작품에 얽힌 이야기에 이어, 사후 그가 머물렀던 집 이야기까지 뭉크의 전 생이 담겨 있는 책이다.

때문에 띄엄띄엄 알고 있던 뭉크에 대한 지식을 차곡차곡 채워나갈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몸이 약해 태어난 순간부터 이미 죽음을 가까이에 두고 있었던 뭉크는 어린 시절 어머니의 죽음을 시작으로 줄줄이 가족들의 죽음을 겪게 된다.

이로 인해 정서적, 육체적으로 고달픈 삶을 살아가야 했던 뭉크는 이를 예술로써 승화하며 삶을 이어 나간다. 때문에 그의 작품에 있어 영감의 원천은 모두 그를 둘러싼 사람들(가족, 연인, 지인들)과 그의 삶에 있었다.

이 책에는 그러한 뭉크의 삶과 작품을 둘러싼 이야기들을 가득 만나볼 수 있는데, 이러한 설명 덕분에 나도 모르게 작품을 더 자세히 감상하게 되는 매직을 경험하게 된다.

참고하면 좋을 그의 유년 시절과 그리고 그의 작품에 얽힌 이야기를 위주로 정리하여 구성해 보았다. 만약 아직 뭉크에 대해서 잘 모르거나 뭉크가 궁금하다면 이 글을 통해 한층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감정을 표출하는 '표현주의' 화가로 유명한 뭉크의 삶과 작품들에 대한 자료는 여타 예술가에 비해 많은 기록으로 남겨져 있다. 이는 기록광이었던 뭉크 자신이 직접 남긴 일기, 메모, 스케치, 편지 등을 통해 남긴 덕분이다.

사망 직전의 삶에 대해서는 막냇동생 잉게르가 뭉크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주기 위해 일부 처분하여 자세히 알 수 없지만, 그 외의 것들은 직접 목격할 수 있다.


=====
뭉크의 예술
=====


보이지 않는 인간의 감정을 그리는 일에 흥미를 느낀 뭉크는 예술에 씌워진 규칙을 걷어내면 내면으로부터 가장 본질적인 것을 포착해 낼 수 있다고 믿었다.

뭉크의 가족, 연인, 지인 등과 그가 직접 경험한 일들은 뭉크 예술의 모티브이자 출발점이다. 따라서 뭉크가 그린 세상에는 인간관계에서 오는 불안, 공포, 환희, 두려움, 질투, 고독 등 미묘한 감정의 변화가 담겨 있다.

바로 이 점이 미술사에서 뭉크를 인간의 내밀한 감정을 그리기 시작한 화가로 평가하는 이유이며 영혼의 해부학자라 부르는 이유다.


=====
뭉크의 가족
=====


뭉크의 가족은 아버지, 어머니, 소피에, 뭉크, 안드레아스, 라우라, 잉게르 다섯식구와 그리고 카렌 이모가 있다.


=====
뭉크의 삶
=====

1863년 12월 둘째로 태어난 뭉크. 뭉크 가족의 비극은 예술적 감성이 풍부했던 어머니 라우라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됐다. 라우라는 1868년 12월 서른다섯 살에 다섯 남매를 남겨두고 죽음을 맞았다.

어린 나이에 경험한 어머니의 죽음은 평생 뭉크를 괴롭혔다. 뭉크의 어머니가 사망한 후 카렌 이모가 어린 조카들을 돌보기 위해 같이 살게 되었는데, 경제적 어려움은 늘 뭉크 가족을 힘들게 했다.

어머니를 잃은 어린 뭉크의 무의식 속에는 주변 사람들이 언제든 나를 떠날 수 있다는 강박이 자리 잡았고, 강박은 불필요한 집착을 만들었으며 집착은 주변 사람들을 지치게 했다. 이런 상황은 뭉크의 생애 내내 반복되었다.

한편 아버지의 외로움은 슬픔을 넘어 광기로 변했고 아버지는 시간이 갈수록 종교에 의지하고 병적으로 집착했다. 그의 종교에 대한 강박적 신념과 정서적 학대는 아이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뭉크의 어린 시절은 어머니의 죽음과 아버지의 종교적 엄격함, 불완전한 가정 환경에 의해 지배되었다.

뭉크는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했던 탓에 생후 4개월이 되어서야 세례를 받았다. 그는 어려서부터 기관지염이나 류머티스성 관절염 등 병치레가 잦아 학교보다는 집에서 지낸 날이 더 많았다. 그러나 가정교사를 둘 형편은 못 되어 뭉크는 한 살 터울의 누나 소피에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다.

병약했던 뭉크는 자신의 주변을 맴도는 죽음을 두려워했다. 열세 살 무렵 뭉크에게 어지럼증과 함께 온몸에 열이 나면서 경련 증상까지 나타났는데, 뭉크는 그날 밤 고열로 인한 환각 증상을 겪었다.

죽음 직전까지 갔던 그날의 기억을 뭉크는 도저히 떨쳐낼 수 없었다. 뭉크가 앓은 병은 결핵으로 밤새 입으로 피를 쏟았다. 그러나 카렌 이모와 소피에의 극진한 간호와 기도 덕분인지 뭉크는 그날 밤 고비를 간신히 넘길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누나 소피에가 엄마와 뭉크가 앓았던 그 병을 앓게 된다. 그때는 그 병이 정확히 무엇인지 아무도 몰랐는데, 결핵은 1882년이 되어서야 학계에서 알려진 병명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입으로 피를 쏟는 그 병에 걸리면 죽을 수밖에 없는 병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어린 소피에는 의자에 앉아 조용히 죽음을 맞았다. 뭉크와 달리 소피에는 병을 견디지 못하고 열다섯 살에 숨을 거두고 말았다. 뭉크 가족은 그렇게 또 한 번 비극을 맞았다.

누나의 죽음은 사춘기를 맞은 뭉크에게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열네 살 뭉크의 정서와 감정은 더욱더 불안정해졌다. 그는 언제고 죽을 수 있다는 공포에 사로잡혔고 두려움과 불안감 그리고 죄의식에 휩싸였다.

소년 뭉크는 자신의 병이 소피에에게 전염되었다고 자책했으며 자신을 대신해 누나가 죽은 것이라는 극심한 죄의식을 느꼈다. 이 마음의 부담감은 9년 후 <아픈 아이>로 탄생했다.

그림 속 소피에는 생명이 꺼져가는 순간에도 카렌 이모를 위로하고 있는데, 떠나는 자가 남겨진 자를 위로하는 모습이라 더 슬프다.

뭉크는 1886년부터 1927년까지 40여 년에 걸쳐 유화로 여섯 점의 <아픈 아이>를 제작했다. 이 작품은 그가 가장 많이 반복한 모티브 가운데 하나다.

뭉크는 한 살 터울의 누나가 더는 자신의 곁에 있지 않다는 상실감과 자신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 때문에 죽은 누이를 그리는 일에 병적으로 집착했다.

그렇게 엄마와 누나의 죽음을 지켜본 뭉크는 죽음에서 오히려 삶을 찾았다.

뭉크는 <아픈 아이>를 1886년 10월 《추계전》에 출품했다. 스승 크로그의 호평과 달리 이 작품은 노르웨이 미술계로부터 혹평을 받았다.

비평가들은 특히 주제와 테크닉이 낯설고 난해하다고 평가했다. 그들은 <아픈 아이>는 주제가 기분 나쁘고 손도 하나 제대로 그리지 못할 정도로 테크닉이 미숙하다고 비웃었다. 가장 비난받은 요소는 눈물을 흘린 것처럼 얼룩진 표면이었다. 사실 지저분하게 흘러내린 얼룩은 뭉크가 흐르는 눈물을 표현한 것이다.

소피에가 사망하고 웃음기가 사라진 뭉크의 집은 적막하기 그지없었다. 집에서 대화가 사라졌다. 특히 사춘기에 접어든 장남 뭉크와 아버지의 관계는 늘 평행선을 달렸다.

아버지는 아이들에게 종교에 헌신적으로 매달리는 순종적인 삶을 강요했다. 그러나 뭉크는 아버지처럼 종교에 집착하는 삶을 원치 않았다. 게다가 그렇게 빌었건만 신은 야속하게도 의지하던 누나 소피에를 데려갔다. 뭉크는 더 이상 종교에 의지하지 않았다.

뭉크는 아버지와 진로와 진학 문제로 사사건건 부딪쳤다. 그러다 아버지의 뜻대로 공업학교에 진학하지만 잦은 병치레로 얼마 다니지도 못한 채 자퇴하게 된다.

그 후로 뭉크는 집에서 드로잉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마침내 뭉크는 화가가 되기로 결정하게 된다. 1880년 뭉크는 왕립 미술 디자인 학교에 입학했다. 그곳에서 뭉크는 실물 모델 드로잉을 접하며 자신의 재능이 깨어남을 느꼈다.

이 시기 뭉크는 자화상을 세 점 선보였다. 이 자화상들에는 예술가로 첫발을 내딛는 뭉크의 불안함과 긴장이 서려 있다. 이 자화상을 시작으로 그는 평생 80여 점에 달하는 자화상을 그렸다. 1882~1883년에 그려진 <자화상>은 프랑스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은 작품이다.

뭉크는 인상주의의 빛의 효과를 실험하면서 동시에 아카데미 화풍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그는 더 이상 화면을 매끈하게 다듬는 노력을 들이지 않았다. 대신 화면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해 점점 본질만 남기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뭉크가 처음으로 서명한 작품인 1886년의 <자화상>은 화가로서 뭉크의 자의식이 자리 잡은 그림이다. 3년 전의 자화상보다 표정이 부드러워졌으며 몸에 대한 묘사는 사라졌다. 더 이상 눈썹이나 머리카락 등 세부 묘사에 공을 들이지 않고 본질만 남기려는 시도가 돋보인다.

뭉크는 1889년 여름 노르웨이 국비 장학금을 받아 프랑스에서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 아버지도 이 소식을 듣고 무척 자랑스러워했다. 그러나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았다.

뭉크가 프랑스행 배를 타고 떠나는 날 그를 배웅하기 위해 항구에 아버지가 나왔는데 그날 백발의 구부정한 노인이 손을 흔드는 모습이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땐 그 사실을 서로 몰랐다.

뭉크의 아버지는 뭉크가 화가로서 막 기지개를 켤 무렵 사망했다. 당시 뭉크는 노르웨이 국비 장학금을 받아 프랑스에서 유학 중이었다.

어느 날 뭉크는 자신에게 온 편지를 읽고 순간 얼어버린다. 아버지와 살가운 사이가 아니었지만 그는 엄마와 누나에 이어 또 한 번의 큰 상실감을 느껴야만 했다. 뭉크는 이 상실감을 <생 클루의 밤>으로 표현했다.

창가에 앉은 노인은 생각에 잠겨 있다. 창틀의 십자가 모양과 바닥에 비친 십자가는 광적으로 신앙에 집착한 뭉크의 아버지를 연상시킨다.

어두운 방 안에 외롭게 앉아 있는 남성을 그린 <생 클루의 밤>은 종교적 신념에 일생을 바친 아버지를 향한 헌사다.

이때 뭉크는 아버지의 죽음을 생각하며 삶, 예술, 살아 움직이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되는데, 뭉크의 이러한 심경 변화는 1890년 '생 클루 선언'에 잘 나타나 있다.

-----
나는 지금 내가 본 것을 그대로 그릴 것이다.
나는 책을 읽는 사람들이나 뜨개질하는 여성들이 있는 그저 그런 실내 풍경을 더 이상 그리지 않을 것이다.
내가 그리는 사람들은 살아 있는 생생한 사람들이 될 것이다.
나는 살아 숨 쉬고, 느끼고, 아파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릴 것이다.
87페이지 中
-----

'생 클루 선언'은 사랑하고 괴로워하는 인간의 살아 있는 감정을 그리겠다는 뭉크의 다짐이다. 뭉크는 1892년 이후 더는 자연주의 인상주의 화풍의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이런 '생 클루 선언'으로 뭉크는 새로운 예술의 방향을 선언했다.

아버지의 죽음을 알게 된 그날 밤, 뭉크는 아버지와의 관계에 대해 생각했다. 그는 자신을 이해해 주지 않고 일방적인 순종만을 강요했던 아버지가 여전히 몹시 미웠다.

그러나 아버지에 대한 원망은 점점 자신을 향한 원망으로 바뀌었다. '먼저 사랑한다고 손을 내밀걸. 조금만 더 다정하게 대할걸. 한 번만이라도 따뜻하게 안아줄걸.' 뭉크는 아버지에게 걱정만 안겨주었던 자신이 미웠다. 아버지와의 불화를 부추긴 예게르도 미웠다.

아버지가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은 뭉크 가슴 한편에 커다란 구멍을 만들었다. 아버지의 죽음은 생각보다 많이 뭉크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파리에서의 생활은 엉망이 되었고 허약한 체질 때문에 늘 달고 다니는 감기와 몸살도 더욱 심해져 쉬이 낫지 않았다.

거기다 무절제한 술과 담배, 매춘행위로 그의 삶은 완전히 망가졌다. 뭉크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힘들어져 대인기피증까지 생겼다.

이런 뭉크에게 동생 라우라에 관한 절망적인 소식까지 전해졌다. 뭉크는 점점 광기의 씨앗이 자라는 라우라를 보며 자기 속에서도 광기가 자라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훗날 이 광기가 예술가로서의 삶에는 도움이 되었지만 개인의 삶은 지옥으로 만들었다고 술회했다.

뭉크는 당시의 절망적인 상황을 낙서로 끄적였다.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는 자신이나 상태가 점점 더 심해지는 라우라를 떠올리면 모두가 죽은 나무의 열매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는데, 그는 이 불길한 나무의 수액을 먹고 자라는 자신의 몸에 점점 더 죽음의 기운이 퍼지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뭉크는 죽음의 나무에 가족의 얼굴들을 걸쳐놓았다. <가계도>에는 뭉크의 아버지, 어머니, 누나 소피에 말고도 뭉크의 마음을 아프게 한 라우라가 있었다.

뭉크는 자신이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늘 삶을 비관적으로 다뤘다. 그러나 이 <가계도>에는 삶에 대한 간절함도 담겨 있다. 바로 창틀로 묘사된 십자가다.

그 창틀 십자가 뒤에서 누군가 조용히 기도를 드리고 있다. 이것은 신과 멀어지려 했던 뭉크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신에게 기도한 단 하나의 기도 그림이다. 뭉크는 아버지에게 간절한 기도를 보냈다.

지독한 뭉크 가족의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6년 후, 동생 안드레아스가 서른 살 젊은 나이게 폐렴으로 급작스럽게 사망한 것이다.

안드레아스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의사가 되었고, 덕분에 뭉크 가족 중 유일하게 안정적인 수입을 가진 사람이었다. 평소 매우 건강한 그였기에 가족들은 그의 죽음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안드레아스는 한창 신혼 생활을 즐기던 무렵이었고, 아내의 배 속에는 아이가 자라나고 있었다. 그는 1895년 4월에 결혼했고, 같은 해 11월에 폐렴으로 사망했다.

아버지에 이어 안드레아스마저 세상을 떠나자 뭉크는 실질적인 가장의 역할을 떠맡게 되었다. 이 시기에 제작된 뭉크의 자화상을 보면 그 무게감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뭉크는 석판화로 삶을 뚫어지게 응시하는 자화상을 제작했다. 이 자화상은 뭉크의 얼굴이 검은 배경에 그려져 있는데, 특이하게도 위에는 묘비석처럼 뭉크의 이름과 연도를, 아래에는 팔뼈를 그려 넣었다.

<팔뼈가 있는 자화상>속 뭉크는 삶에 대한 의지를 잃은 채 죽음에 더 가까운 모습이다. 뭉크는 80여 점에 이르는 많은 자화상을 남겼는데, 그 가운데 이 작품은 가장 무거운 표정의 자화상이다.

뭉크는 이즈음 생계를 위해 판화를 대중적 판매 전략으로 삼았다. 그는 판화라는 매체를 실험하고 기존에 없던 판화기법을 만들어냈다. 예를 들어 유화본에는 없는 요소들을 판화에 새겨 넣는 것은 뭉크가 발전시킨 판화 기법이다. 이런 이유로 뭉크는 판화사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뭉크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자살 충동에 시달렸다. 또 동시에 죽음에 대한 공포도 그를 괴롭혔다. 거기에 가장의 역할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자 삶의 무게가 더욱 버거워졌다.

뭉크는 나이가 서른이 넘었지만 이뤄놓은 것이 없다는 생가기 들었다. 또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는 거대한 작품을 의뢰받을 만큼 예술가로서 성공했지만, 가장으로서 재정 상황은 그렇지 못했다.

시간이 갈수록 라우라는 점점 가족들의 짐이 되었다. 다혈질인 기질 때문에 또래 아이들은 물론이고 가족들과의 관계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그녀는 감정 기복이 심했고 누구와도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불가능했다. 라우라는 질책 받는 것을 참지 못했고 분노를 조절하지 못했다.

또 거짓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가족들이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자해로 시선을 끌었다. 그녀는 길거리에서 자기도 하고 망상에 사로잡힌 행동으로 가족들을 곤란하게 했다.

사실 이런 행동들은 전형적인 조현병 증상이다. 그러나 19세기 사람들은 이 증상을 광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겼다. 사람들은 뭉크의 아버지에 이어 라우라까지 뭉크 집안에 정신병이 깃들었다고 수군거렸다.

라우라의 상태는 아버지가 사망한 이후 더욱 급격히 나빠졌다. 아버지가 아이들이 말썽을 부릴 때마다 "엄마가 하늘에서 지켜보신다"라며 쏟아낸 엄한 질책은 라우라의 정신을 잠식했다.

뭉크는 라우라에 대한 책임감을 홀로 감당해야 했다. 뭉크는 라우라를 끝까지 책임 지리라 속으로 다짐했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라우라의 상태는 끝내 나아지지 않았다.

라우라는 29세의 나이에 정신질환을 판정받았다. 그 후 정신 병원에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고, 시간이 갈수록 가족들의 심리적, 경제적 부담감을 가중되었다.

<라우라>를 보면 그녀는 한곳을 응시한 채 눈을 깜빡이지 않는다. 이런 자세는 뭉크가 주문한 것이 아니다. 평소 가만히 한곳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라우라를 그렸을 뿐이다. 그녀의 초상화에서는 10대 소녀의 밝은 모습을 전혀 찾을 수 없다.

한 살 터울의 라우라와 잉게르 자매는 라우라의 정신질환 때문에 잘 지내지 못했다. <여름 햇살 아래 라우라와 잉게르>를 보면 두 사람은 한여름 햇살 아래서 눈길조차 마주치지 않고 따로 서 있다.

차가운 푸른색 옷을 입은 두 사람을 통해 냉랭한 뭉크 가족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특히 감정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모자를 깊게 눌러쓴 라우라의 불안한 모습에서 이후 정신질환의 판명을 예상할 수 있다.

30대의 라우라를 그린 작품 <멜랑콜리, 라우라>에서 라우라는 초점 없이 앞을 보며 가만히 앉아 있다.

라우라 앞에 있는 빨간 탁자는 뭉크가 당시 의학잡지에서 본 신경증을 앓는 뇌의 단면도를 그린 것이다. 이것은 어떻게든 동생의 병을 고쳐주고 싶은 뭉크의 마음을 담은 것이다.

<멜랑콜리, 라우라>는 의학잡지까지 읽어가며 동생을 이해하고 고쳐보려 했던 뭉크의 간절함이 엿보여 슬픈 초상화다.

라우라는 자신만의 어두운 세계 속에 갇혀 살다 1926년 사망하고 말았다. 라우라는 인생의 반을 정신병원에서 보냈다.

뭉크가 예술가로서 명성을 얻고 작품도 잘 팔리게 되자 가장 먼저 한 일은 1892년 라우라를 위해 병원에 독방을 마련해 준 일이다. 비록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뭉크는 라우라를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켰다.

안드레아스를 떠나보낸 후 뭉크가 의지할 수 있는 가족은 이모 카렌과 막냇동생 잉게르뿐이었다. 그들은 자신보다 서로를 먼저 생각했으며 몇 푼 안 되는 돈도 너무 많이 보냈다며 매번 감사해 하고 미안해했다. 남겨진 가족들은 서로를 아끼고 보살펴주었다. 이들의 유대감은 누구보다도 강력하고 끈끈했다.

카렌 이모는 결핵으로 젊은 나이에 죽은 언니와 달리 1931년 92세까지 살다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조카들을 정성껏 키웠으며 뭉크 가문의 안주인으로서 검소하고 소박하게 살림을 유지했다. 카렌 이모는 뭉크의 재능을 가장 먼저 알아본 사람이었다.

카렌 이모는 뭉크와 아버지 사이를 조율하기도 했고 아픈 라우라를 돌봤다. 그녀가 없었다면 뭉크 가족의 삶은 더 삭막하고 막막했을 것이 분명하다. 카렌 이모는 때로는 조력자로 때로는 조언자로 뭉크 가족을 돌봤다.

뭉크는 잉게르를 모델로 많은 그림을 그렸다. 처음 미술 교육을 받았을 때도 사실적이고 전통적인 아카데미 테크닉으로 초상화 <잉게르>를 제작했다.

잉게르를 그린 또 다른 그림은 <여름밤, 해변의 잉게르>다. 이 그림이 그려진 시각은 오후 10시 무렵으로, 잉게르의 흰색드레스는 푸른 이끼가 낀 돌과 이제 해가 지고 있는 바다의 색과 대조를 이룬다.

뭉크는 화강암 바위로 가득 찬 오스고르스트란 해변의 풍경을 외로움, 우울, 불안을 표현하는 배경으로 삼았다. 이곳은 뭉크의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곳이다. 이곳에서 첫사랑을 만났고 생애 처음 마련한 집도 이 근처였다.

뭉크는 <검정과 바이올렛의 잉게르>에서 두 손을 가지런히 앞으로 모은 자세를 통해 잉게르가 매사 행동과 표정을 조심하는 사람임을 표현했다.

뭉크는 잉게르의 표정, 눈빛, 자세에만 초점을 맞추기 위해 주변의 모든 것을 제거했다. 똑바로 선 잉게르의 자세는 그녀의 강한 독립심을 잘 드러낸다.

잉게르는 피아노 교사로 일하며 전시를 위해 자주 해외에 머물던 뭉크를 대신해 가장 역할을 도맡았다. 그녀는 결혼하지 않았으며 뭉크의 작품은 물론 그와 관련된 편지, 메모들까지 관리했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버지의 임종을 지킨 것도 잉게르였다.

뭉크의 가족 중 잉게르만 뭉크보다 오래 살았다. 그래서 잉게르는 뭉크 사망 이후 그의 작품을 관리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그녀는 뭉크 작품들의 연대기를 작성하거나 제작 일지 등의 서류를 보완함으로써 뭉크 작품의 아카이빙의 기초를 다졌다.

뭉크의 비극적인 가족사를 들여다보면 질병, 죽음, 광기의 연속이다. 그러나 뭉크는 이에 굴하지 않았다. 그는 평생 자신을 따라다닌 질병, 죽음, 광기를 덮어두거나 외면하지 않고 이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삶을 택했다. 뭉크의 일기를 보면 그가 이러한 고통을 자기 삶의 일부로 받아들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내 고통은 나 자신과 예술의 일부이다.
고통은 나와 하나이기에 그것이 파괴되면 나도, 예술도 파괴될 것이다.
66페이지 中
-----

뭉크 예술의 위대함은 고통을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여 예술로 승화시켰다는 데 있다.


=====
뭉크의 여인들
=====


■밀리 테울로브

>>>에드바르 뭉크, <그 다음 날>, 1894
1885년 여름 뭉크는 밀리를 처음 만났다. 뭉크는 아름다운 외모에 화려하게 치장한 밀리에게 첫눈에 반했다. 그리고 뭉크가 밀리를 다시 만난 것은 그란 호텔에서 열린 사교 파티에서 밀리를 다시 만나게 되면서 완전히 푹 빠지게 된다.

사촌 형수이자 자신을 후원하는 프리즈 태울로브의 제수라는 것을 알고 있던 뭉크는 사랑해선 안 될 사람이라는 사실 때문에 오히려 더 깊이 빠져들게 만든다. 금지된 사랑에 빠진 뭉크는 극심한 사랑의 열병을 앓게 된다.

두 사람은 예술과 파리 얘기로 밤을 지새웠다. 자유분방한 삶을 추구하는 밀리가 수줍음 많고 어리숙한 뭉크를 유혹했다. 뭉크는 매사에 당당한 밀리에 비해 부끄럼을 많이 타는 자신이 한없이 초라해 보였는데 그래서 먼저 말을 걸거나 대화를 주도하지 못했다.

이처럼 뭉크와 밀리의 사랑은 동등하지 않았다. 비밀스러운 관계 때문에 뭉크는 밀리에게서 사랑과 욕망뿐 아니라 수치심과 굴욕감을 느꼈다.

<그 다음 날>은 밀리와 사랑을 나눈 아침을 그린 작품이다. 생전 처음 여성과 육체적 관계를 맺은 그리고 그 이상의 관계를 거절당한 수치심은 뭉크 작품 전반에 드러난다.


>>>에드바르 뭉크, <빨강과 흰색>, 1894
뭉크는 밀리에게서 순수, 열정, 관능을 보았다. 그녀는 성녀와 요부 두 가지 모습을 동시에 보여준 여성이었다.

뭉크는 밀리에게서 관찰한 여성의 두 가지 측면, 즉 관능적인 여성과 순수한 여성을 <빨강과 흰색>으로 그렸다. 빨강은 뜨거운 사랑에 빠진 여성의 열정을 상징하며 흰색은 순결, 순수함을 연상시킨다.


>>>에드바르 뭉크, <이별>, 1896
뭉크의 첫사랑은 두 계절 만에 일방적으로 끝났다. 그러나 그는 밀리를 떠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뭉크는 밀리와 이별한 후 느낀 심장을 도려내는 듯한 아픔을 <이별>로 그려냈다.

첫사랑 밀리는 뭉크의 심장이었다. 뭉크는 사람이 이별할 때 심장이 아프다는 것을 자신의 경험으로 똑똑히 느꼈다.

뭉크는 <이별>을 그리기 전 뜯겨진 심장을 직접 보기 위해 도살장을 방문해 소의 도축 과정을 지켜보기도 했다. 무자비한 도축업자처럼 밀리는 뭉크의 심장을 도려냈다. 뭉크의 사랑도 멈췄다.


■다그니 율

>>>에드바르 뭉크, <사춘기>, 1894
뭉크는 다그니를 모델로 <사춘기>, <마돈나>, <질투>, <뱀파이어>를 그리며 창작 에너지를 폭발시켰다.

<사춘기>는 벌거벗은 소녀가 침대 가장자리에 수줍게 앉아 있는 모습을 묘사했다. 뭉크는 사춘기에 접어든 소녀가 느끼는 불안과 두려움, 우울을 애처로운 모습으로 나타냈다.

<사춘기>는 뭉크가 불안한 감성을 그린 최초의 그림이며, 뭉크 작품의 공식인 '성'과 '죽음'이 처음 등장한 그림이다. 이 작품의 모델이었던 다그니의 관능적이면서 순수한 매력은 사춘기 소녀가 가진 미성숙한 모습과 성숙한 모습 모두를 표현하기에 적합했다.

소녀의 존재 못지않게 눈에 띄는 것은 대각선으로 길게 늘어선 그림자다. 그림자는 불안과 두려움, 소녀의 몸과 마음속에서 깨어나는 섹슈얼리티를 그린 것이다.


>>>에드바르 뭉크, <질투>, 1895
다그니는 프시비셰프스키와 만난 지 5개월 만에 즉흥적으로 결혼식을 올린다. 그러나 그들의 결혼 생활은 처음부터 순탄치 않았다.

현실감각이 없는 남편 프시비셰프스키는 자기 부부와 뭉크의 얘기를 담은 실화 소설로 돈을 벌겠다는 허황된 생각을 품었고 실제로 <배 밖으로>를 출간했다. 소설에서 프시비셰프스키는 뭉크를 파렴치한 인간으로 묘사했는데 뭉크는 이에 크게 화를 냈다.

당시 프시비셰프스키를 향한 분노, 화, 불쾌함은 <질투>에 반영되었다. <질투>에는 세 사람이 등장한다. 아담과 이브, 그리고 의문의 남성이다. 이 작품은 뭉크와 다그니, 프시비셰프스키의 삼각관계 이야기다.


>>>에드바르 뭉크, <질투>, 1907
뭉크의 또 다른 <질투>에서 무관심한 프시비셰프스키의 모습을 담았다. 전면에 크게 그린 프시비셰프스키의 얼굴은 녹색으로 칠해져 있다. 독일어로 '녹색'은 애송이, 풋내기'라는 의미여서 다그니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는 프시비셰프스키를 조롱하는 뭉크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에드바르 뭉크, <붉은 담쟁이>, 1900
뭉크는 다그니가 살해되기 1년 전 <붉은 담쟁이>를 그렸다. 아래에 있는 남성은 왠지 불안한 표정이다. 남성의 몸에서 뻗어 나온 붉은 담쟁이는 붉은 집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 인물은 프시비셰프스키다.

벽을 타고 흐르는 피와 벽을 타고 기어오르는 담쟁이는 다그니와 프시비셰프스키의 위험한 관계를 상징한다. 이 작품은 다그니의 비참한 죽음의 책임이 프시비셰프스키에게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에드바르 뭉크, <담배를 든 자화상>, 1895
>>>에드바르 뭉크, <다그니 율의 초상>, 1893
뭉크가 다그니의 결혼 후에도 계속 만남을 이어갔는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뭉크가 다그니를 특별하게 생각한 것은 사실이다.

그는 <다그니 율의 초상>과 <담배를 든 자화상>이 하나의 쌍을 이루도록 그렸다. 이것은 뭉크가 다그니를 사랑했다는 결정적 증거다.

독립된 두 개의 초상화가 하나의 쌍을 이루게 그리는 것은 당시 상류층들 사이에서 유행한 부부 초상화를 그리는 방식이었다. <담배를 든 자화상>에서 뭉크는 담배 연기로 가득 찬 어두운 그림자에 둘러싸여 있다.

다그니 역시 연극 무대와 같은 곳에서 신비한 미소를 짓고 있다. 뭉크와 다그니의 두 초상화는 둘 다 검은색 배경이며 길이도 비슷하다. 이는 마치 한 공간 속에 있는 두 연인을 그린 것 같은 인상을 준다.

뭉크는 전시장에 두 초상화를 마치 부부의 초상화인 것처럼 나란히 배치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뭉크가 다그니를 사랑한다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하자 소문에 놀란 다그니 아버지는 아직 결혼하지 않은 딸을 걱정하며 뭉크에게 딸의 초상화를 내려 달라고 정중히 요청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한다. 뭉크는 요청에 따라 다그니의 초상화를 철거한다.

그는 <다그니 율의 초상>을 평생 자신의 침실에 걸어두었다. 현실에서는 맺어질 수 없는 사이였지만 뭉크의 마음속에서 그리고 꿈속에서 다그니는 그의 연인이었다. 뭉크의 작품 속 다그니는 대체 불가한 유일한 뮤즈였다.


>>>에드바르 뭉크, <마돈나>, 1894~1895
마돈나'는 귀부인에 대한 존칭으로 쓰이는 이탈리아 말이다. 그것은 중세를 지나오면서 성모 마리아를 지칭하는 말로 변화되었다.

그러나 뭉크의 마돈나는 성스러운 성모 마리아가 아니다. <마돈나>의 여인을 성모 마리아로 볼 근거는 머리 뒤 붉은 후광뿐이다. 뭉크의 마돈나는 가슴을 드러내 보이고 있으며 관능적 시선으로 관람객을 바라보고 있다. 그녀는 에로티시즘을 나타내는 관능적 성모상이다.

뭉크는 다그니를 모델로 <마돈나>를 다섯 점이나 제작했으며 1895년부터 1902년까지 여러 점의 판화로도 제작했다.


>>>에드바르 뭉크, <마돈나>, 1895, 석판화

뭉크는 <마돈나>의 석판화 테두리에 유화에는 없는 태아와 정자 모양의 생명체를 추가했다. 이 두 가지는 <마돈나>의 의미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정자는 잉태를 상징하고, 해골 형상의 태아는 죽음을 상징한다. 이는 마돈나의 운명을 축약해 보여준다.

뭉크의 마돈나는 종교를 초월해 완전히 자유로운 존재로 거듭났다. 성스러움과 관능적인 매력을 동시에 지닌 다그니는 뭉크가 만든 새로운 마돈나 그 자체였다.


>>>에드바르 뭉크, <뱀파이어>, 1895
<뱀파이어>는 뭉크 자신의 두려움일 뿐 아니라 19세기 말 남성들이 느끼는 집단적 두려움의 표현이었다.

뭉크는 여성을 열망하면서도 자신을 파괴할 수 있는 두려운 존재로 만들었다.


■툴라 라르센

>>>에드바르 뭉크, <유전>, 1897~1899
자신이 건강한 가족을 갖지 못할 것이라는 뭉크의 불안은 <유전>에 잘 드러나 있다. <유전>은 매독에 감염된 어머니와 선천성 매독에 걸린 아이를 그린 그림이다. 이것은 뭉크가 파리 병원에서 목격한 한 여성이 아리를 안고 울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뭉크는 두려워졌다. 자신도 울고 있는 저 여인처럼 건강한 가족을 이루지 못할까 두려웠다.


>>>에드바르 뭉크, <물질대사>, 1898~1899
뭉크와 툴라의 어정쩡한 관계는 <물질대사>에 잘 드러나 있다. 뭉크와 툴라의 어색한 관계처럼 두 남녀는 시선을 떨구고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이대로 결혼한다면 뭉크와 툴라의 결혼생활은 불행해질 거라고 말하는 듯하다.

뭉크는 다른 작품들과 달리 <물질대사>는 액자의 틀까지 디자인했다. 뭉크가 그린 <물질대사>는 순환의 개념이지만 뭉크는 사회에 보탬이 되는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가족을 꾸릴 자신이 없었다. 뭉크의 불안은 점점 심각해지는 툴라의 집착으로 이어졌다.


>>>에드바르 뭉크, <수술대 위에서>, 1902~1903
뭉크는 지긋지긋한 툴라와 헤어지기로 결심하고 이 문제를 매듭짓고자 오스고르스트란의 집에 마주 앉았다. 둘은 말싸움으로 시작해 몸싸움을 벌였고 이 과정에서 실수로 뭉크가 집에 가지고 있던 권총에서 총알이 발사되었다.

누가 총을 발사했는지 정확히 알 길은 없지만 뭉크가 남긴 기록에서는 툴라가 총을 발사했고 자신이 그 총의 총구를 막다가 손가락에 총상을 입은 것이라 했다.

총알이 박힌 뭉크의 왼손에서는 피가 철철 흘렀고 그는 이내 의식을 잃었다. 깨어난 뭉크는 마취를 거부하고 자신의 수술을 두 눈으로 지켜보았다. 뭉크는 이 과정을 이를 악물고 지켜보았다.

이제 툴라와의 관계는 모두 깨져버렸다. 이 권총 오발 사고는 뭉크 인생 최악의 사건이며 그의 손에 영원한 장애를 남겼다. 뭉크는 이후 평생 왼손에 검은 가죽 장갑을 착용하고 남들 앞에서는 절대 맨손을 드러내지 않았다.


>>>에드바르 뭉크, <초대받지 못한 손님>, 1932~1935
툴라와의 싸움에 지친 뭉크는 이제 쉬고 싶었다. 그는 오스고르스트란의 자기 집에서 안정을 취하고 건강을 회복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그의 노력은 5년이 못 되어 물거품이 되었다.

그곳에서 두 번째 총기 사고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두 번째 총기 사고는 1905년 친구 루드비크 카슈튼과의 사소한 싸움으로 인해 벌어졌다.

카슈튼과 집에서 술을 마시던 뭉크는 저녁이 되자 그에게 그만 돌아가 달라고 부탁했다. 취기가 오른 카슈튼은 장난스럽게 안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고 이에 주먹다짐까지 하며 그를 집에서 내보냈다.

술에 취한 카슈튼은 뭉크가 잠이 든 뒤 정원에서 바스락거리며 그의 신경을 긁어댔고 화가 난 뭉크는 침대에서 일어나 총을 가져오더니 카슈튼을 향해 발사했다.

이날에 대한 뭉크의 기억은 25년 후 <초대받지 못한 손님>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초대받지 못한 손님>의 주방 식탁 위에는 술병이 잔뜩 널려 있다. 아마도 뭉크는 이미 과음한 상태다. 그는 창밖에 있는 사람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다.


■에바 무도치

>>>에드바르 뭉크, <브로치>, 1903
뭉크는 에바를 모델로 <브로치>를 제작했다. 이 작품은 뭉크가 사랑의 감정을 담아 부드러운 선을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에드바르 뭉크, <살로메, 에바 무도치와 뭉크>
뭉크가 에바와의 연애를 더 발전시키지 못한 채 머뭇거리던 태도는 <살로메, 에바 무도치와 뭉크>에 잘 나타나 있다.

이 작품에서 풍성한 머리카락에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은 에바와 달리 뭉크의 표정은 경직되어 있다. 이는 여성에 대한 뭉크의 내재된 불안과 두려움, 공포를 나타낸다.


=====
뭉크의 갤러리
=====

>>>에드바르 뭉크, <예게르 초상>, 1889
예게르는 냉소적인 나르시시스트였다. 뭉크가 그린 <예게르 초상>의 비스듬하게 앉은 자세는 예게르의 냉소적인 성격을 드러낸다. 안경 너머로 보이는 냉정한 눈빛에서는 예게르의 리더로서의 카리스마를 느낄 수 있다.


>>>에드바르 뭉크, <크리아티아니아 보헤미안 Ⅱ>, 1895
크리스티아니아 보헤미안 그룹의 핵심 인물이었던 크로그, 오다, 예게르 세 사람은 자유연애를 주장하며 사회의 모든 구속을 벗어버리자고 했다. 크로그와 오다는 부부 사이였으며 예게르는 오다와 불륜 관계였다. 셋은 자유 의지로 삼각관계를 형성했고, 이 삼각관계는 그룹 내에서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다의 자유로운 연애사와 남성 편력은 <크리스티아니아 보헤미안 Ⅱ>에 잘 드러나 있다. 뭉크는 오다의 행동을 주의 깊게 관찰하여 연인들에게 둘러싸인 그녀를 여러 번 변주해 그렸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남성들은 뭉크를 제외하고 모두 오다와 과거에 연인 관계였거나 혹은 현재 연인 관계인 인물들이다.

뭉크는 이 그룹에서 오다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은 유일한 인물이었다. 뭉크는 크로그, 오다, 예게르가 만든 삼각관계를 이해할 수 없었다.

한때 뭉크가 존경했던 예게르는 때로는 치사하고 파렴치하기도 했다. 뭉크는 크리스티아니아 보헤미안 그룹 사람들의 역겨운 싸움에 신물이 났다.

크리스티아니아 보헤미안 그룹은 후에 삼각관계, 치정, 음모, 재산 싸움, 자살 등 온갖 구설수로 해체되었다.


>>>에드바르 뭉크, <라파예트 거리>, 1891
뭉크는 1891년 한 번 더 장학금을 받아 파리에서 유학할 기회를 얻었다. 그는 라파예츠 49번지의 집을 임대했다. 이곳에서 뭉크는 화사하고 밝은 인상주의 색채로 이제 막 새롭게 태어난 파리를 그렸다.

그는 마차와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가는 파리 거리와 이를 발코니에 서서 한가로이 지켜보는 사람의 모습을 <라파예트 거리>에 담았다.


>>>에드바르 뭉크, <니스의 밤>, 1891
뭉크는 프랑스에서 유학하던 시기에 병의 재발을 겪게 된다. 1890년 두 번째 유학길에서 큰 고비를 맞게 된다. 바다의 찬 바람을 맞으며 추운 선실에서 생활하다 류머티즘이 도저 배에서 고열에 시달리게 된 것이다.

그는 요양을 위해 파리가 아닌 따뜻한 니스로 목적지를 바꾸었고 그곳에서 건강 회복에 전념했다.

그래서 호텔 바깥을 돌아다니지 않고 호텔 옥상에 올라 니스 시내를 둘러보는 간단한 산책을 즐겼다. 이때 뭉크가 본 니스 풍경은 <니스의 밤>에 잘 드러난다.

에드바르 뭉크, <몬테카를로의 룰렛 테이블에서>, 1892

니스에서 뭉크의 병은 호전되었지만 두 달 치 입원비와 해를 넘겨도 전달되지 않는 장학금으로 인해 재정 상황은 더 나빠지게 된다. 여기에 더해 스튜디오에 화재가 발생하게 되면서 생존을 위협받기에 이른다.

그러던 중 카지노에서 도박으로 필요한 돈을 얻을 수 있다는 소식에 솔깃해진 그는 몬테카를로 카지노에 발을 들이게 된다.

그리고 이내 그는 도박의 함정에 빠지게 되는데 이때 자신의 기억과 기록을 토대로 <몬테카를로의 룰렛 테이블에서>를 그렸다. 또한 이 그림을 토대로 기록을 남겼다.

<몬테카를로의 룰렛 테이블에서>의 왼쪽에 있는 사람들 틈 바구니에는 한탕을 위해 기웃거리는 뭉크가 있다. 이 일로 뭉크는 결국 도박 중독 증상을 보이게 되고 결국 그곳에서 살다시피 하게 된다.


>>>에드바르 뭉크, <봄>, 1889
1892년 뭉크는 베를린 미술가 협회 소속의 노르웨이 화가 아델스테인 노르만의 추천으로 베를린 전시에 초대되었다.

협회 역사상 처음으로 열린 개인전으로, 베를린 미술가 협회 관계자들은 물론이고 베를린 예술계의 모든 눈과 귀가 노르웨이에서 온 이방인 뭉크에게 쏠렸다.

고상하고 건전한 그림을 기대했던 베를린 미술가 협회 관계자들은 <봄>을 보자마자 크게 실망했는데, <봄>의 거친 붓 터치와 조화롭지 못한 색감은 당시 예술 상식에 반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지속하자는 쪽과 철회하자는 쪽으로 나뉘게 되면서 투표로 결정하게 되었고 120대 105로 전시는 폐쇄 결정된다. 이 결정으로 뭉크의 전시는 일주일도 못 돼 막을 내렸다.

노르웨이 화가 뭉크가 베를린 미술계에 일으킨 파란은 전시 폐쇄로 끝나지 않았다. 뭉크의 전시가 촉발시킨 싸움은 베를린 미술가 협회의 원로 대 신진의 싸움으로 비화되었다. 이 싸움은 독일 현대 미술사를 통틀어 최대의 스캔들로, 바로 '뭉크 스캔들'이다.


>>>에드바르 뭉크, <스트린드베리 초상>, 1896
>>>에드바르 뭉크, <스트린드베리 초상>, 1896
한번은 뭉크가 호의로 스트린드베리에게 초상화를 그려주었다. 그런데 초상화 테두리에 스트린드베리의 이름을 적다가 철자 'R'을 빠뜨리는 실수를 저질렀다. 그런데 스트린드베리는 이 단순한 실수를 뭉크가 고의적으로 자신을 모욕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또한 스트린드베리는 초상화의 테두리에 벌거벗은 여성과 머리카락을 그려 넣은 것을 보고는 더욱 펄쩍 뛰었다. 자신이 여성을 싫어하는 것을 알면서 뭉크가 일부러 여성을 등장시켜 자신을 욕보이려 했다고 불같이 화를 낸 것이다.

그는 사소한 실수를 이해하고 용서해 줄 만한 아량이 없었다. 그가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버렸기 때문이다.

뭉크는 스트린드베를 이해하고 관계를 회복하려 했다. 우선 그가 그토록 싫어하던 벌거벗은 여성의 형태를 지우고 이름에서 빠진 철자 'R'을 추가해 다시 초상화를 제작했다. 그러나 정신착란 증상이 심해진 스트린드베리의 마음을 돌릴 순 없었다.


>>>에드바르 뭉크, <프시비셰프스키의 초상>, 1895
검은 새끼 돼지 그룹에서 만난 친구 중 하나인 스타니스와프 프시비셰프스키는 호감형 외모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많은 이들의 주목을 끌었다. 특히 술에 취하면 즉흥 연주로 사람들을 즐겁게 했다. 그러나 논쟁을 벌일 때 자주 비아냥거리고 빈정대고 조롱하는 투로 말했기 때문에 그를 따르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프시비셰프스키는 심리학 연구서를 여러 편 저술할 정도로 심리학과 철학에 해박한 지식을 가졌다. 그는 뭉크 작품을 분석한 글을 출간하거나 자신의 소설 속 주인공을 뭉크로 설정하기도 했는데 뭉크는 프시비셰프스키의 분석과 평가에서 용기와 힘을 얻었다.

뭉크는 <프시비셰프스키의 초상>에서 그를 스물일곱 살의 청년 모습으로 재현했다.


>>>에드바르 뭉크, <손들>, 1893~1894
검은 새끼 돼지 그룹에서 다그니는 '정신', '영혼'이라는 의미의 폴란드어 '두하'로 불렸다.

뭉크, 스트린드베리, 프시비셰프스키 세 사람을 포함해 모두 다그니에게 호기심을 보이다 결국 그녀를 추종했다. 그녀의 매력은 지적이면서 관능적이라는 데 있었다.

다그니를 그린 <손들>을 보면 당시 다그니의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다그니를 향한 수많은 손들은 다그니를 향한 마음들이었다.


>>>에드바르 뭉크, <옌스 티스>, 1909
다국적 모임인 검은 새끼 돼지 그룹 멤버 중에는 옌스 티스도 있었다. 티스는 후에 노르웨이 국립 미술관 초대 관장이 되어 뭉크 미술을 후원하고 체계적으로 정리, 관리한 인물이다.

후에 뭉크는 검은 새끼 돼지 그룹에서 만난 스트린드베리, 프시비셰프스키, 다그니와는 연락 두절, 절교, 사망으로 헤어졌다. 그러나 티스는 까다로운 성격의 뭉크가 말년까지 의지하며 만난 몇 안 되는 친구 가운데 하나였다.

뭉크는 티스와 같이 의지가 되어 주는 이들의 전신 초상화를 그려 그 그림들을 야외 스튜디오에 호위무사처럼 둘러 세웠다. 그 전신 초상화들은 뭉크가 죽는 순간까지 그의 곁을 지켰다.


>>>에드바르 뭉크, <다리 위의 소녀들>, 1901
사실 뭉크는 꽃을 싫어했다. 뭉크는 꽃이 인간보다 빨리 시들고 죽기 때문에 죽음을 연상시킨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어머니와 누나, 아버지의 죽음을 연상시키는 모든 것을 싫어했다. 뭉크는 죽음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이것이 뭉크의 작품에 꽃이 없는 이유다.

뭉크는 오스고르스트란을 배경으로 <다리 위의 소녀들>을 제작했다. 소녀들이 서 있는 곳은 다리로 보이지만 사실 이것은 항구로 이어지는 둑이다. 세 소녀가 둑 난간에서 물을 내려다보고 있다.

뭉크의 작품 가운데 <다르 위의 소녀들>처럼 소소한 일상을 그린 작품은 드물다. 늘 신경이 날카롭게 서 있던 뭉크에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주는 일상은 없었다.

늘 비난, 언쟁, 격정과 폭력으로 마음 편할 날 없었던 뭉크였지만 생애 처음 마련한 집에서 마침내 소소한 행복을 누릴 수 있었다.

뭉크 작품 가운데 유일하게 평온한 풍경을 그린 이 작품은 그래서 인기가 좋다. 뭉크는 오스고르스트란에서 인생 2 막을 시작했다.


>>>에드바르 뭉크, <절망>, 1892
1890년대 초반 과도한 음주와 잦은 병치레, 절제되지 않은 생활 습관으로 뭉크의 몸은 몹시 쇠약해졌다. 뭉크는 이때 느낀 우울과 불안을 메모에 남겨두었다.

그리고 이때의 절망감을 <절망>에 풀어놓았다. 배경은 <절규>와 같은 에케베르크 언덕으로, 1892년 <절망>은 '해 질 녘의 아픈 분위기'라는 제목으로 전시되었다.

사실 <절망>의 기억은 니스에서 장학금과 생활비를 도박 자금으로 탕진한 후의 것이다. 그런 자신의 절망적인 상황과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을 <절망>에 잘 드러나 있다.


>>>에드바르 뭉크, <절망>, 1894
뭉크는 <절망>을 다시 변주해서 그렸다. 피오르를 바라보는 중절모 쓴 남자 대신 젊은이가 앞을 향한 모습으로 그렸다. 눈을 감고 있는 이 남성은 이제 <절규>에서 해골 모양의 사람으로 대체될 것이다.

그리고 물결치는 하늘과 혼란한 순간은 그대로 <절규>에 표현된다. 뭉크의 <절망>은 노트 속 스케치에서 <절규>로 이행되는 과도기적 그림이다. <절망>의 배경과 구성은 그대로 <절규>로 이어진다.


>>>에드바르 뭉크, <절규>, 1893, 판지에 유채와 템페라
>>>에드바르 뭉크, <절규>, 1893, 판지에 파스텔과 크레용
>>>에드바르 뭉크, <절규>, 1895, 판지에 파스텔
>>>에드바르 뭉크, <절규>, 1910, 판지에 템페라

뭉크의 대표작 <절규>는 네 점의 채색본에 판화본까지 포함하면 50점에 달한다. 네 점의 채색본은 재료도 각각이고, 작품 구성도 조금씩 다르다.

뭉크가 쓴 '자연을 가로지르는 무한한 비명'이라는 글과 <절규>의 원제가 '자연의 절규'라는 점에서 절규하는 주체는 인물이 아니라 자연이다. 따라서 해골 모양의 인물은 비명을 지르는 게 아니라 자연의 비명 때문에 귀를 막고 있는 모습이다.

에케베르크 언덕에 오르면 뭉크는 가족들이 생각났다. 그리고 가족을 생각하면 현기증과 어지럼증을 느꼈고, 강박 증세가 나타났다. 순간 그는 붉은 핏빛 저녁놀을 보자 불안 증세가 도져 숨을 쉴 수 없었다. 뭉크가 극도의 두려움과 불안을 느낀 이 증상은 공황발작이다.


>>>에드바르 뭉크, <카를 요한 거리의 저녁>, 1892
>>>에드바르 뭉크, <카를 요한 거리의 봄날>, 1891
<카를 요한 거리의 저녁>과 그보다 1년 전에 그린 <카를 요한 거리의 봄날>을 비교해 보면 뭉크의 기법과 심리가 많이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카를 요한 거리의 저녁>은 뭉크의 불안한 심리를 드러낸 작품이다. 뭉크는 작품을 제작할 때 객관적 현실보다 주관적 감정을 강조했다. 즉 같은 공간을 그렸어도 그대의 감정이 다르면 다른 그림이 되었다.


>>>에드바르 뭉크, <린데 박사의 네 아들>, 1903
1903년 4월부터 3주간 린데 박사는 뭉크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 작품을 의뢰했다.

린데 박사의 네 아이들은 공원에서 놀다 집으로 돌아오라는 부름을 듣고 지금 막 도착했다. 마치 스냅사진처럼 보이는 이 작품에서 네 아이들은 외국에서 온 손님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뭉크는 낯선 이를 바라보는 아이들을 관찰한 대로 그렸다.

네 아이를 여러 차례 관찰한 뭉크는 책임감이 강한 아이, 독립심이 강한 아이, 사회성이 발달한 아이, 귀여운 아이로 각각의 특징을 그려냈다.


>>>에드바르 뭉크, <태양>, 1911
오슬로 대학교는 1911년 개교 100주년을 맞이해 아울라 대강당을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장식하고자 했다. 그래서 공모전을 열었으나 출품된 작품 대부분 모더니즘 경향을 띠어 실망하게 된다.

이에 출품작 전체를 거부하고 부랴부랴 조각가 비겔란과 화가 뭉크의 비공개 경쟁을 제안했는데 이에 뭉크는 대강당 벽화의 중심 주제를 '빛'으로 정하고 이를 표현하고자 했다.

뭉크는 매일 아침 크라게뢰 앞바다에서 태양이 내뿜는 광선과 에너지를 관찰한 후에 작품을 그려나갔다. '태양'은 그가 정신병원에서 나와 선택한 모티브로 광선은 에너지를 주는 힘의 원천이며 학문에 대한 경외감의 표현이다.

아울라 대강당 벽화 습작들은 대중들에게도 인기가 있어 1911년 오슬로 대학교에서 대중의 강력한 지지를 받은 뭉크의 작품들을 벽화로 결정했다.

오슬로 대학교로부터 의뢰받은 벽화 연작들은 뭉크 인생에서 가장 빛나고 강한 에너지를 발산하는 그림들이다.


>>>에드바르 뭉크, <별이 빛나는 밤>, 1893
뭉크는 밤하늘의 풍경이 아니라 외롭고 우울한 밤의 본질을 그렸다. 뭉크는 <별이 빛나는 밤>을 1893년 처음 그렸다.

이 그림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압도적인 슬픔이 공존하는 노르웨이의 겨울 밤하늘을 그린 것이다.


>>>에드바르 뭉크, <별이 빛나는 밤>, 1900~1901
뭉크가 1900년대 초에 그린 <별이 빛나는 밤>의 구도는 눈 쌓인 땅과 하늘이 지배하는 구도다.


>>>에드바르 뭉크, <별이 빛나는 밤>, 1922~1924
>>>에드바르 뭉크, <별이 빛나는 밤>, 1922~1924
>>>에드바르 뭉크, <별이 빛나는 밤>, 1922~1924
뭉크는 1920년대 <별이 빛나는 밤>을 세 점 그렸다. 깊은 밤 잠을 이루지 못하는 예순이 넘은 뭉크의 자전적 슬픔과 고독이 묻어 나오는 작품이다.

1922년과 1924년 사이에 그린 세 점의 <별이 빛나는 밤>은 모두 에켈리에서 그려진 것이다.

뭉크의 <별이 빛나는 밤>에는 뭉크가 노쇠하고 병들어가고 나약해지는 과정이 진실하게 담겨 있다. 밤하늘에서 빛나는 것은 뭉크 자신이었다.


>>>에드바르 뭉크, <시계와 침대 사이의 자화상>, 1940~1943
<시계와 침대 사이의 자화상>은 삶과 죽음이라는 두 세계에 대한 적극적인 대면 의지가 잘 반영된 작품이다. 사실 뭉크는 이 무렵 두 발로 똑바로 서 있기 힘들 정도로 보행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 작품은 뭉크가 이제 정말 편하게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
마무리
=====

뭉크의 삶과 작품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자식 같았던 작품 그 자체가 뭉크를 대변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자신의 감정과 마음, 현재의 상태를 고스란히 작품에 쏟아내며 예술로 승화시켰다. 현실 속에서 겪어야 했던 감당할 수 없는, 외로움, 불안, 우울, 사랑 등의 감정을 그림에 온전히 담으며 평생을 그림과만 함께 한 것이다.

그래서 그의 그림을 보면 뭉크 본연의 자신이 엿보인다. 현실 속에서 오래 자신을 지지해 주고 지원해 주었던 이를 그림으로 그려 밖에 세워두는가 하면(자신을 지켜달라는 의미), 사랑하는 이와의 관계가 변화되면 그때마다 그것을 그림으로 그려 심경 변화를 표현했다.

어쩌면 뭉크는 태어난 순간부터 죽음이라는 그림자를 곁에 두고, 또 가족들을 하나 둘 잃으면서 현실에서 직접적인 소통의 창구를 잃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때문에 그림을 통해 자신의 심정을 대변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게 한 풀이를 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지난한 삶을 살았던 뭉크의 삶을 그림으로 살펴보고 나니, 예술가로서는 성공했을지언정 한 사람으로서는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아파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초록이 좋아서 - 정원을 가꾸며 나를 가꿉니다
더초록 홍진영 지음 / 앵글북스 / 202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계절 정원을 가꾸며 느낀 치유와 회복의 시간에 대한 이야기!"


사람들은 저마다 마음속에 나만의 정원을 가꾸며 살아간다. 때론 실패하고 좌절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꿋꿋이 인내하고 노력하며 정원이 늘 건강하고 아름다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

이 책을 쓴 저자는 실제 정원을 가꾸며 그런 시간들을 가진다. 시작은 갑작스럽고 숙제 같았지만, 흙을 만지고 식물과 교감하며 서서히 정원 가꾸기에 빠져들게 된다.

그러다 서서히 욕심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이내 텅 빈 공터는 꽃과 나무들로 가득 차게 된다. 그리고 마음속에도 어느새 초록을 가득 들이게 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총 4개의 챕터로 구성된 이 책은, 계절별로 달라지는 정원의 모습과 함께 마음의 변화까지 불러온 저자의 삶을 엿볼 수 있다.

가드닝을 하며 인내와 실패는 물론 체념과 여유의 마음을 배운 저자는 덕분에 치유와 회복의 시간을 경험하게 된다. 이 책에서 저자는 그런 시간에 대한 소박한 이야기를 편안하고 따뜻하게 담았다.

혹시 오해할까 봐 미리 말하지만, 이 책에서 직접적인 가드닝 비법 같은 건 찾을 수 없다. 그저 7년간 정원을 가꾸며 느꼈던 소회를 소박하게 담은 '이야기'만 존재할 뿐이다.

그래서 더 따뜻하고 감성적으로 다가온다. 포근한 흙냄새와 내리쬐는 햇볕, 흩날리는 꽃향기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정원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힐링'이라는 감정뿐이다.

이는 텍스트에서뿐만이 아니라 페이지 곳곳을 수놓은 사진 속에서도 느낄 수 있는데, 사계절 피고 지는 화려한 꽃들의 향연과 싱그러움을 가득 머금은 초록이들, 그리고 싱싱하게 자리한 채소는 자꾸만 시선을 잡아 끈다.

=====
정원을 보살피는 일은
매일 작은 기쁨이
차곡차곡 쌓이는 일이다.
15페이지 中
=====

저자는 이러한 가드닝 일상으로 얻은 즐거움과 다정한 위안을 나누고 싶어 독자들에게도 자신만의 정원을 가꿔보라 권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저자의 이러한 권유가 없어도 절로 삶에 초록을 들이고 싶어질 것이다. 초록을 꿈꾸게 될 것이다. 내가 그러했던 것처럼.


=====
정원일에 서툴던 초반에는 성공보다는 실패가 주를 이뤘다. 열심히 해도 달라지는 게 없었다. 당장 결과가 나오는 일에 익숙했던 내게, 정원은 뜸을 들이는 일도 중요하다는 걸 일깨워 주고 싶었나 보다. 종종 불확실성의 폭풍을 견딜 인내가 필요하다는 것, 기다림은 지침이 아니라 설렘이라는 것. 그리고 소중한 것들은 천천히 자라나니 조바심 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 3년 만에 꽃피운 작약의 선물이다.
48페이지 中
=====

나만의 정원을 가지고 있거나 반려 식물을 키워본 이들은 안다. 인내와 기다림은 기본 옵션이라는 사실을.

분명 금방 꽃을 볼 수 있을 것 같아 보여도, 실상은 바로 결과를 보여주지 않는다.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몇 년이 걸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오랜 시간 지켜보며 기다리게 된다. 길고 긴 폭풍의 시간을 견뎌야만 소중한 것들이 서서히 자라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
정원일은 절대 내 생각이나 예상대로 풀리지 않는다. 노력한다고 실패를 피할 수도 없다. 여기서 실망하고 저기 낙담하는 게 일이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게, 밥 먹듯 실패하니 도리어 실패의 무게감이 점점 가벼워지는 게 아닌가. 나중에는 거의 깃털 하나의 무게감밖에 안 돼서 '아이고, 이것도 텄네, 텄어....' 하고 넘길 수 있게 됐다. 실패에서 너그러워지고 종종 웃음이 나기도 했다. 무수한 실패는 나에게 산뜻한 체념을 가르쳤다. 뭐,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지. 안 되는 건 받아들이고 다음에 잘하면 되지 않을까? 그건 내가 실패에서 연상했던 절망이나 열패감과는 전혀 다른 모양의 어떠한 희망이었다.
80~84페이지 中
=====

살다가 겪는 여러 실패들은 자꾸만 우리를 작아지게 만든다. 그런데 정원을 가꾸면서 겪는 실패는 반대로 점점 우리를 가벼워지게 만든다.

처음에는 애지중지 마음 쓰던 것도 어느새 산뜻한 체념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내가 무얼 잘못해서가 아니라 피할 수 없는 실패가 있음을 깨닫기 때문이다.

덕분에 실패에서 너그러워지고 여유가 생긴다. 다음을 기약하는 체념도 배우게 된다.


=====
정원이 어느 정도 모양을 갖춘 뒤에는 식물을 보태는 '덧셈'보다는 뽑아내고 제거하는 '뺄셈'을 더 자주 하게 된다.

빽빽이 채우기보다 여백을 마련하기, 전력투구보다 감당할 수 있는 만큼 사부작거리기, 시간도 공간도 에너지도, 조금쯤 여유롭게 남겨두기, 정원을 가꾸며 되새긴 세상의 이치다.
107페이지 中
=====

만약 지금 '덧셈'에서 '뺄셈'으로 넘어갔다면 이제 안정권에 들어섰다는 이야기와도 같다. 삶도 이와 비슷하다.

너무 빽빽해서는 주변을 돌아볼 수 없다. 내가 숨 쉬고 편안해질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해야만 다음 스텝으로 넘어갈 수 있다.

때로는 반대의 경우도 필요한데, 뺄셈을 통해 공간 확보를 하고, 필요한 것만 남겨두는 것으로 안정적인 삶을 개척할 수도 있다.

식물이건, 사람이건 우리에게는 조금쯤 여유가 필요하다.


=====
세상은 약육강식을 들먹이며 강해지라 다그치지만, 꾸준한 연약함으로 살아온 나는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안다. 살아남는 전략은 저마다 다르다. 약하게 타고났어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는 유연함이 있다면 승산은 있다. 연약한 몸으로 치열하게 하루하루 버티는 식물들에게 동병상련을 느끼며 작은 응원을 보낸다.
112페이지 中
=====

인간 사회에서는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한 방향의 방식을 강요하거나 옳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식물의 세계에서는 피고 지고 자라는 방식이 다르다고 해서 누군가 강요하거나 보채지 않는다. 그저 존중하고 기다릴 뿐이다.

특성이나 종에 따라 살아남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선천적인 약함이나 유함과는 상관없이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는 유연함과 지속할 수 있는 지속성만 있다면 살아남을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식물에게 배워야 하는 또 다른 '깨달음'이다.


=====
소중한 사람을 잃은 고통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인생의 절댓값이다. 상실감에 당당히 맞서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한 방 맞고 쓰러지는 이가 부지기수일 거다. 그럴 때 일어나려고 안간힘을 써봤자 헛수고다. 언젠가 다시 카운터 펀치를 맞는 날이 오면, 나는 잠시 죽은 듯 쓰러져 있을 테다. 그사이 없어질 것들이라면 애초에 내 것이 아닌 거다. 놓아야 할 것들은 산뜻하게 놓은 뒤, 또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일어서겠지. 언젠가는 그날조차 웃으며 이야기할 때가 올 거다. 지금껏 그랬듯, 앞으로도.
156페이지 中
=====

내려놓을 줄 아는 것. 우리 삶에 어쩌면 가장 어렵고 필요한 일이 아닐까 한다. 안간힘을 쓰고 버티고 이겨내려고 하는 마음도 좋지만, 피할 수 없는 상실 앞에서는 잠시 내려놓고 시간에 몸을 맡겨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만약 이때 무언가를 잃어버린다면 그것은 내 것이 아닌 것이다. 그럴 때는 그저 마음 편히 놓아주자. 그것이 정답이다.


*****

초록을 가까이해보면, 그것이 주는 매력을 반드시 알게 된다. 이런저런 이유로 미뤄두기만 했던 나 역시 큰맘 먹고 초록을 하나 둘 삶에 들이기 시작하면서 그 매력을 알게 되었는데, 이제는 '덧셈'보다 '뺄셈'으로 여백의 미를 주며 즐기는 중이다.

처음에는 답답하기도 했다. 어리숙한 초보 가드너였기에 실패하는 이유를 몰라 여기저기 찾아보기도 하고 방법을 달리해봐도 성공보다 실패가 주를 이뤘기 때문이다.

그래도 꾸준히 관찰하고 살피며 공을 들였다. 그리고 계속해서 눈에 들어오는 다양한 꽃과 식물들을 하나 둘 들여놓으며 개체수를 늘리기도 했다.

그렇게 저자가 말한 과정들을 하나 둘 겪어 나가며 실패에 대해 언젠가부터는 체념과 수용을 배웠고, 인내의 끝에 다디단 열매가 있음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성장을 목격했을 때는 환호가 터지기도 했다. 이런 과정들을 겪으며 이제는 사계절이 있는 이유와 초록이 주는 기쁨을 매일 체감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읽으며 공감 가는 부분이 꽤 많았다. 더불어 새로운 꿈도 꾸어본다. 저자처럼 큰 정원까지는 아니더라도 앞마당에 작은 모종과 야채를 손수 키워 먹을 수 있는 텃밭을 가진 공간을 가져보는 꿈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