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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만의 방
김그래 지음 / 유유히 / 2024년 7월
평점 :
우리나라 가정을 살펴보면, 부부방, 아이방, 내방, 서재방(=아빠방)과 같은 방은 존재하는 데 유달리 '엄마방'은 잘 없다. 가족 중 거의 유일무이하게 '엄마방'만 없는 것이다.
맞벌이 부부가 아닌 이상, 집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도, 집에서 일을 가장 많이 하는 사람도 엄마인데 정작 엄마방은 없는 것이 좀 이상하게 느껴진다. 취미생활이나 쉼의 공간, 나만의 사색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엄마만의 방'의 왜 없는 걸까?
이 책에서는 비로소 베트남으로 떠나고 나서야 나만의 방을 가지게 된 엄마의 이야기가 담겨있는데, 물리적 거리만큼 떨어진 뒤에야 비로소 '엄마'라는 사람을 새롭게 보게 된 딸을 만나볼 수 있다.
한국에서 일을 하던 엄마가 쉰이 넘은 나이에 베트남으로 혼자 일을 하러 떠나게 되면서 겪은 일상의 이야기를 웹툰으로 담고 있는 이 책은 딸의 시점에서 바라본 엄마의 삶과 새롭게 알게 된 엄마라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내용을 살펴보면, 엄마의 베트남 이주가 결정 난 시점부터 딸과 엄마의 상황이 완전히 뒤바뀐 것을 알 수 있는데, 특히 출국 일주일 전 짐을 쌀 때부터 딸은 자신과 엄마가 많이 닮아 있음을 깨닫게 된다.
상황의 반전으로 평소 여행을 갈 때 하던 엄마의 잔소리를 이제는 딸이 하고 있었고, 밥 잘 챙겨 먹어라, 잘 지내라 와 같은 말을 통화할 때마다 딸이 엄마에게 하고 있었다.
엄마의 해외 생활이 길어질수록 딸은 점차 엄마를 나의 엄마가 아닌 또 한 사람으로 인식하게 되는데, 덕분에 엄마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하는 한편, 자신과 너무도 똑 닮아 있는 비슷한 면모도 함께 확인하게 된다.
엄마의 해외 생활은 가족들에게 많은 변화를 불러일으켰는데,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당연하지 않았음을, 엄마도 한 명의 사람이었음을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된다.
딸은 언젠가부터 한국으로 휴가를 왔다가 베트남으로 돌아가는 엄마가 '집에 간다'라고 말할 때마다 내심 서운한 감정을 느끼는데, 엄마를 응원하는 마음은 가득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편안하게 생각하는 집이라는 공간이 이젠 다른 곳을 의미하는 것 같아 떨어진 몸만큼 마음의 거리도 멀어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베트남으로 떠난 엄마의 적응기와 일상생활, 그리고 엄마를 한 사람으로 바라보게 된 딸의 시선, 여기에 더해 딸과 엄마라는 관계에서 오는 필연적인 감정들에 대해 담고 있는데, 읽다 보면 공감 가는 부분들이 꽤 많다.
나의 엄마가 아니라, 엄마를 한 사람으로 떨어뜨려놓고 보니 엄마 또한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사람이었다는 걸 저자는 깨닫는다.
항상 부지런했던 엄마가 때론 미루기도 하고, 또 뭐든지 잘해내는 사람이 아니라 해내야만 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토록 모든 것에 완벽했던 사람이라는 것 또한 알게 된다.
가족들과 떨어져 오롯이 나 자신으로서 살아가며 삶의 가치를 경험해 보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우리의 모습을 떠올려보게 한다.
엄마가 베트남으로 떠난 뒤 딸과 엄마의 역할이 바뀌면서 딸은 과거 자신을 키우며 느꼈을 엄마의 심정을 비로소 알게 된다.
'아마 이런 심정으로 나를 지켜보고 계셨겠지?'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점점 더 겁이 많아진다. 그래서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도 실패를 감당하는 것도 더 이상 시도하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어쩌면 정작 감내할 수 있는 일조차 우리는 '할 수 없다'로 결론짓고 그냥 지나쳐 왔을지도 모르겠다. 안주하는 삶에 그냥 익숙해진 것이다.
저자는 엄마 역시 그럴 거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베트남에서 홀로 생활하는 엄마의 일상을 지켜보며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알게 된다.
엄마는 지금도 용기를 내어 한 발 한 발 내디디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었다. 자신이 누릴 수 있는 세계를 더 넓혀가며 멋진 인생을 살고 있었다.
저자는 그런 엄마를 보며 용기를 배운다.
엄마의 '혼자 사는 삶'은 엄마에게 자기 자신을 되찾아 주는 것은 물론 쉼을 주었다. 한국에서 '엄마'의 역할이 녹록지 않은 것을 생각하면 저자가 왜 엄마의 '혼자 사는 삶'을 응원하는지 알 수 있다.
특히 휴가를 받아 오는 날이 명절이라도 되는 날이면, 역시 또 엄마는 쉼이 아닌 고된 노동으로 고된 일상을 살다 돌아가야 한다.
휴가가 모든 사람들에게 '쉼'이 될 수 없기에 저자는 다음 휴가는 부디 엄마에게 '쉼'이 되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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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휴가를 마치고 베트남으로 돌아가면서 집에 가는 기분이 들었다고 말했을 때 정체 모를 감정이 떠올랐다. 한참이 지나서야 그게 섭섭함 이었음을 깨달았다. 그가 베트남에서 잘 자리 잡은 덕에 그만큼 그곳이 편안해졌다는 말일 텐데 왜 그게 내 마음을 찔렀을까. 그와 내가 생각하는 '집'이라는 공간이 더 이상 같지 않아서 우리가 멀어졌다고 느꼈을까.
사실 진작에 이 감정의 정체를 알아챘으나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컸다. 평생 고생만 하다가 이제야 제 삶을 살게 된 엄마에게 응원만 보내도 부족한데, 섭섭함은 그 역할과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서.
28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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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베트남에서 생활한 이후 저자는 자신도 모르게 이중적인 감정을 느끼게 된다. 엄마가 편안하길 바라는 마음 한편으로는 여전히 같은 마음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뒤섞여 복잡하다.
차마 섣불리 내뱉을 수 없어 어쩌면 더 심란한 마음이 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잘 적응하고 잘 지내는 모습이 보기 좋으면서도 나를 잊은 것은 아닐까 나와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약간의 불안감도 느껴졌으리라.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감정이고 생각이라 공감이 간다. 특히 부모가 아닌 자식의 입장이라면 더 그렇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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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나의 관계를 직시할 수 있는 기회와 앞으로 엄마와의 관계를 잘 가꿔나갈 힌트를 얻은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나에게 엄마는 어떤 의미인지, 지금 이 시간들을 기록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가족이란 너무 멀 때만큼이나 가까울 때도 서로를 다치게 한다. 어느 누구와의 관계보다 어려운 게 가족이라는 걸 <엄마만의 방>을 통해 다시 배웠다. 고단한 삶을 뒤로하고 훨훨 날아가 자기만의 삶을 살아내는 엄마처럼. 나 또한 몇 발 떨어진 곳에서 씩씩한 눈을 하고 내 삶을 살아내고 싶다.
28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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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해외 생활로 인해 떨어져 살게 되면서 저자는 비로소 엄마라는 사람, 가족, 그리고 관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를 가지게 된다.
더불어 <엄마만의 방>을 출간하기 위해 엄마와 더 자주 연락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비로소 엄마에 대한 마음을 다시 돌아볼 수 있었다고 전한다.
우리는 때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제대로 상대를 보려고 하지 않는 때가 있는데, 저자는 물리적 거리가 멀어지며 오히려 제대로 마주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어쩌면 이 일을 계기로 인생을 앞서 걷는 엄마를 보며, 저자 역시 힘과 용기를 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미 훌륭한 인생의 멘토가 있기에 적어도 힘든 순간 무너지거나 포기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