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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이 좋아서 - 정원을 가꾸며 나를 가꿉니다
더초록 홍진영 지음 / 앵글북스 / 2024년 9월
평점 :
"사계절 정원을 가꾸며 느낀 치유와 회복의 시간에 대한 이야기!"
사람들은 저마다 마음속에 나만의 정원을 가꾸며 살아간다. 때론 실패하고 좌절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꿋꿋이 인내하고 노력하며 정원이 늘 건강하고 아름다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
이 책을 쓴 저자는 실제 정원을 가꾸며 그런 시간들을 가진다. 시작은 갑작스럽고 숙제 같았지만, 흙을 만지고 식물과 교감하며 서서히 정원 가꾸기에 빠져들게 된다.
그러다 서서히 욕심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이내 텅 빈 공터는 꽃과 나무들로 가득 차게 된다. 그리고 마음속에도 어느새 초록을 가득 들이게 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총 4개의 챕터로 구성된 이 책은, 계절별로 달라지는 정원의 모습과 함께 마음의 변화까지 불러온 저자의 삶을 엿볼 수 있다.
가드닝을 하며 인내와 실패는 물론 체념과 여유의 마음을 배운 저자는 덕분에 치유와 회복의 시간을 경험하게 된다. 이 책에서 저자는 그런 시간에 대한 소박한 이야기를 편안하고 따뜻하게 담았다.
혹시 오해할까 봐 미리 말하지만, 이 책에서 직접적인 가드닝 비법 같은 건 찾을 수 없다. 그저 7년간 정원을 가꾸며 느꼈던 소회를 소박하게 담은 '이야기'만 존재할 뿐이다.
그래서 더 따뜻하고 감성적으로 다가온다. 포근한 흙냄새와 내리쬐는 햇볕, 흩날리는 꽃향기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정원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힐링'이라는 감정뿐이다.
이는 텍스트에서뿐만이 아니라 페이지 곳곳을 수놓은 사진 속에서도 느낄 수 있는데, 사계절 피고 지는 화려한 꽃들의 향연과 싱그러움을 가득 머금은 초록이들, 그리고 싱싱하게 자리한 채소는 자꾸만 시선을 잡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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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을 보살피는 일은
매일 작은 기쁨이
차곡차곡 쌓이는 일이다.
1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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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이러한 가드닝 일상으로 얻은 즐거움과 다정한 위안을 나누고 싶어 독자들에게도 자신만의 정원을 가꿔보라 권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저자의 이러한 권유가 없어도 절로 삶에 초록을 들이고 싶어질 것이다. 초록을 꿈꾸게 될 것이다. 내가 그러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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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일에 서툴던 초반에는 성공보다는 실패가 주를 이뤘다. 열심히 해도 달라지는 게 없었다. 당장 결과가 나오는 일에 익숙했던 내게, 정원은 뜸을 들이는 일도 중요하다는 걸 일깨워 주고 싶었나 보다. 종종 불확실성의 폭풍을 견딜 인내가 필요하다는 것, 기다림은 지침이 아니라 설렘이라는 것. 그리고 소중한 것들은 천천히 자라나니 조바심 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 3년 만에 꽃피운 작약의 선물이다.
4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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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정원을 가지고 있거나 반려 식물을 키워본 이들은 안다. 인내와 기다림은 기본 옵션이라는 사실을.
분명 금방 꽃을 볼 수 있을 것 같아 보여도, 실상은 바로 결과를 보여주지 않는다.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몇 년이 걸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오랜 시간 지켜보며 기다리게 된다. 길고 긴 폭풍의 시간을 견뎌야만 소중한 것들이 서서히 자라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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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일은 절대 내 생각이나 예상대로 풀리지 않는다. 노력한다고 실패를 피할 수도 없다. 여기서 실망하고 저기 낙담하는 게 일이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게, 밥 먹듯 실패하니 도리어 실패의 무게감이 점점 가벼워지는 게 아닌가. 나중에는 거의 깃털 하나의 무게감밖에 안 돼서 '아이고, 이것도 텄네, 텄어....' 하고 넘길 수 있게 됐다. 실패에서 너그러워지고 종종 웃음이 나기도 했다. 무수한 실패는 나에게 산뜻한 체념을 가르쳤다. 뭐,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지. 안 되는 건 받아들이고 다음에 잘하면 되지 않을까? 그건 내가 실패에서 연상했던 절망이나 열패감과는 전혀 다른 모양의 어떠한 희망이었다.
80~8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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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가 겪는 여러 실패들은 자꾸만 우리를 작아지게 만든다. 그런데 정원을 가꾸면서 겪는 실패는 반대로 점점 우리를 가벼워지게 만든다.
처음에는 애지중지 마음 쓰던 것도 어느새 산뜻한 체념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내가 무얼 잘못해서가 아니라 피할 수 없는 실패가 있음을 깨닫기 때문이다.
덕분에 실패에서 너그러워지고 여유가 생긴다. 다음을 기약하는 체념도 배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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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이 어느 정도 모양을 갖춘 뒤에는 식물을 보태는 '덧셈'보다는 뽑아내고 제거하는 '뺄셈'을 더 자주 하게 된다.
빽빽이 채우기보다 여백을 마련하기, 전력투구보다 감당할 수 있는 만큼 사부작거리기, 시간도 공간도 에너지도, 조금쯤 여유롭게 남겨두기, 정원을 가꾸며 되새긴 세상의 이치다.
10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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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지금 '덧셈'에서 '뺄셈'으로 넘어갔다면 이제 안정권에 들어섰다는 이야기와도 같다. 삶도 이와 비슷하다.
너무 빽빽해서는 주변을 돌아볼 수 없다. 내가 숨 쉬고 편안해질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해야만 다음 스텝으로 넘어갈 수 있다.
때로는 반대의 경우도 필요한데, 뺄셈을 통해 공간 확보를 하고, 필요한 것만 남겨두는 것으로 안정적인 삶을 개척할 수도 있다.
식물이건, 사람이건 우리에게는 조금쯤 여유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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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약육강식을 들먹이며 강해지라 다그치지만, 꾸준한 연약함으로 살아온 나는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안다. 살아남는 전략은 저마다 다르다. 약하게 타고났어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는 유연함이 있다면 승산은 있다. 연약한 몸으로 치열하게 하루하루 버티는 식물들에게 동병상련을 느끼며 작은 응원을 보낸다.
11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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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사회에서는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한 방향의 방식을 강요하거나 옳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식물의 세계에서는 피고 지고 자라는 방식이 다르다고 해서 누군가 강요하거나 보채지 않는다. 그저 존중하고 기다릴 뿐이다.
특성이나 종에 따라 살아남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선천적인 약함이나 유함과는 상관없이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는 유연함과 지속할 수 있는 지속성만 있다면 살아남을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식물에게 배워야 하는 또 다른 '깨달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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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사람을 잃은 고통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인생의 절댓값이다. 상실감에 당당히 맞서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한 방 맞고 쓰러지는 이가 부지기수일 거다. 그럴 때 일어나려고 안간힘을 써봤자 헛수고다. 언젠가 다시 카운터 펀치를 맞는 날이 오면, 나는 잠시 죽은 듯 쓰러져 있을 테다. 그사이 없어질 것들이라면 애초에 내 것이 아닌 거다. 놓아야 할 것들은 산뜻하게 놓은 뒤, 또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일어서겠지. 언젠가는 그날조차 웃으며 이야기할 때가 올 거다. 지금껏 그랬듯, 앞으로도.
15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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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놓을 줄 아는 것. 우리 삶에 어쩌면 가장 어렵고 필요한 일이 아닐까 한다. 안간힘을 쓰고 버티고 이겨내려고 하는 마음도 좋지만, 피할 수 없는 상실 앞에서는 잠시 내려놓고 시간에 몸을 맡겨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만약 이때 무언가를 잃어버린다면 그것은 내 것이 아닌 것이다. 그럴 때는 그저 마음 편히 놓아주자. 그것이 정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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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을 가까이해보면, 그것이 주는 매력을 반드시 알게 된다. 이런저런 이유로 미뤄두기만 했던 나 역시 큰맘 먹고 초록을 하나 둘 삶에 들이기 시작하면서 그 매력을 알게 되었는데, 이제는 '덧셈'보다 '뺄셈'으로 여백의 미를 주며 즐기는 중이다.
처음에는 답답하기도 했다. 어리숙한 초보 가드너였기에 실패하는 이유를 몰라 여기저기 찾아보기도 하고 방법을 달리해봐도 성공보다 실패가 주를 이뤘기 때문이다.
그래도 꾸준히 관찰하고 살피며 공을 들였다. 그리고 계속해서 눈에 들어오는 다양한 꽃과 식물들을 하나 둘 들여놓으며 개체수를 늘리기도 했다.
그렇게 저자가 말한 과정들을 하나 둘 겪어 나가며 실패에 대해 언젠가부터는 체념과 수용을 배웠고, 인내의 끝에 다디단 열매가 있음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성장을 목격했을 때는 환호가 터지기도 했다. 이런 과정들을 겪으며 이제는 사계절이 있는 이유와 초록이 주는 기쁨을 매일 체감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읽으며 공감 가는 부분이 꽤 많았다. 더불어 새로운 꿈도 꾸어본다. 저자처럼 큰 정원까지는 아니더라도 앞마당에 작은 모종과 야채를 손수 키워 먹을 수 있는 텃밭을 가진 공간을 가져보는 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