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제이슨 벨을 죽였나 - 여고생 핍의 사건 파일 3 여고생 핍 시리즈
홀리 잭슨 지음, 장여정 옮김 / 북레시피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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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치지 말아야 할 3부작 대단원의 끝판왕!"


600페이지를 거뜬히 넘기는 두께에도 불구하고, 숨죽이며 자꾸 읽게 되는 이 시리즈는 진심을 담아 권하 건데, 꼭 1부부터 순서대로 보라고 말하고 싶다.

여타 시리즈물에 비해 앞의 사건들과 연계되는 인물, 사건, 관계 등이 맞물려 있어 만약 중간부터 끼어들게 되면 헤맬 수 있다. 특히 등장인물들이 많고 반복적으로 등장해 사전에 인물들의 특성이나 관계성을 충분히 파악하지 못하면, 사건을 따라가는 데 있어 방해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오로지 핍의 사건 파일에 집중하고 싶다면, 경고하건대 1부부터 시작해 각 인물들과 관계도를 주의 집중해서 파악해두길 바란다.


3부 시리즈의 완결편인 이번 편은 여타 사건들의 해결사 역할을 도맡았던 핍이 사건의 중심에 서게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읽다 보면 현실감 돋는 내용에 절로 소름이 돋는다.

특히 2부 말미에 핍이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면서 궁금증을 자아냈던 장면들이 연이어 3부로 이어지면서 핍의 내밀한 감정을 밀도 있게 표현했는데, 이때야말로 몰아치던 사건에서 벗어나 잠시 숨을 몰아쉴 타이밍인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곧이어 '진짜' 본격적인 이야기에 들어서게 되면 그때는 정말 돌아볼 겨를도 없이 사건에 휘말려 버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반에는 기존의 속도보다 살짝 느리게 흘러간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초반을 넘어서면 메인 사건을 중심으로 여러 사건들이 이리저리 뒤엉키고, 마침내는 1부와 2부에 일어났던 사건들마저 끌어와 허리케인이 온 마을을 휘저어놓은 것 같은 쑥대밭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핍 개인에게는 매우 힘든 시간이었던 트라우마를 겪는 시간들이 사실은 폭풍의 눈 속이었음을 곧이어 알게 될 것이다.


3부의 핵심 키워드는 표지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바로 범죄현장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는 '테이프'다. 사람을 결박하기 위해 쓰는 테이프, 범죄 현장을 보존하기 위한 테이프.

3부에서 저자는 타인에서 '나'로 이야기를 끌어들여와 핍을 통해 모든 감정과 상황을 보게 만들고, 마침내 분명하고 명백하게 마침표를 찍는다. 히든으로 남겨뒀던 뒷이야기까지 풀어내며 1부와 2부에 결점처럼 남아있던 모든 이야기를 깔끔하게 마무리 지으면서 완전한 결말에 다다른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마음 한켠에 석연치 않은 '무언가'를 자꾸만 떠올리게 된다. 더불어 어쩌면 정의사회 구현, 윤리와 도덕, 법과 제도와 같은 이야기를 꺼내게 될지도 모르겠다.

'핍'이라는 인물은 어찌 보면 홍길동이나 로빈 후드와 같은 인물이다. 국가나 사법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음으로써 태어나게 된 사적 응징 혹은 정의 구현을 위한 인물이라고나 할까?(그것이 십 대 여고생이라는 점이 특이사항이라면 특이사항이지 언제 어디서든 나타날 수밖에 없는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우리 사회가 만약 약자를 보호하지 못하고, 제대로 법제 시스템이 운영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핍'과 같은 인물에게 기댈 수밖에 없다. 핍이 살고 있는 리틀 킬턴 마을 사람들처럼.

그래서 이 소설은 단순한 추리나 스릴러라는 장르를 넘어 트루 크라임 장르에 가장 부합하는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3부 완결 편에서는 피해자가 된 핍에 대한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는데, 이 이야기 속에서 핍은 앞선 피해자들처럼 사법 시스템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한다. 그래서 '네가 사라지면 누가 널 찾지?'라는 범죄자의 질문에 핍은 섣불리 대답할 수 없다.

하지만 이미 몸으로는 알고 있었다. 자신만이 자신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을. 때문에 그녀는 흔들리는 멘탈 속에서도 자신을 구하기 위해 나름의 전략과 계획을 가지고 움직인다. 스스로 '선택'한 방식을 통해 범죄를 해결하는 것은 물론, 주변 사람들까지 구해내는 기염을 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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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관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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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핍(핍 피츠-아모비)
-곧 대학에 진행 예정인 여고생으로, 팟캐스트를 운영하며 사건을 파헤치고 진실을 향해 주도적으로 나아가는 여고생 탐정
-가족: 부모님과 11살 동생 조쉬
-앞선 사건으로 인해 트라우마와 심한 불면증을 앓고 있음
-루크 이튼을 통해 수면제를 구매 후 가족 몰래 복용 중
-일상생활을 되찾고 싶어 회색 영역 말고 흑과 백이 명확한 사건을 통해 자신의 상황을 탈피하고자 노력 중
(회색 영역: 모순, 혼란, 모호한 영역)
-3부에서는 본인이 피해자이자 해결사로 나서게 된다.

※수면제 정보
현재 복용 중인 수면제: 자낙스
자낙스보다 더 센 수면제: 로히프놀


■라비 싱
-선배이자 핍의 든든한 남자친구
-사건을 푸는데 늘 함께 하며 핍과 손발이 잘 맞는 파트너
-변호사가 되기 위해 로펌 인턴으로 근무 중


■샐 싱
-라비의 형
-앤디의 남자친구
-앤디의 살인범이라는 누명을 뒤집어 쓰고 엘리엇 워드에 의해 사망함


■앤디 벨
-사망
-라비의 형인 샐 싱과 연인 관계
-숨겨진 앤디의 이메일이 드러나면서 앤디 죽음의 원인을 비로소 알게 됨


■베카 벨
-앤디의 동생
-현재 수감생활 중으로 14개월의 형기가 남아 있음
-맥스 헤이스팅스가 약을 먹이고 베카를 범함


■제이슨 벨
-앤디와 베카의 아버지
-그린 신 및 클린 신 리미티드의 소유주이자 최고 경영자


■카라 워드
-핍의 가장 친한 친구
-1권에서 다뤄진 살인범이자 납치범이 되어버린 아버지로 인해 불면증을 앓고 있음


■나오미 워드
-카라의 친언니


■엘리엇 워드
-우연히 앤디를 죽였다고 착각하고는 그걸 감추려 샐을 죽임(라비형인 샐은 그렇게 숲속에서 주검으로 발견됨)
-사실 앤디를 죽인 진범은 따로 있었는데 그 진실은 3부에서 밝혀짐
-카라와 나오미의 아빠가 라비의 형을 죽이고 실종된 여자를 5년씩이나 감금한 것으로 현재 수감 중


■스테파니
-카라의 새 여자친구(사귄 지 약 두어 달 됨)


■코너 레이놀즈
-핍의 친구
-친형인 제이미 레이놀즈가 사라지면서 2권에서 핍에게 실종사건을 맡아달라며 의뢰, 이후 친한 사이가 됨


■제이미 레이놀즈
-코너의 친형
-추도식 날 갑자기 사라진 이후 행방불명 되었으나 핍 덕분에 발견됨
-사건 후 나탈리 다 실바와는 연인 사이가 된 것으로 추측됨


■나탈리 다 실바
-1권에서 맥스 헤이스팅스가 약물을 탄 음료를 먹고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 중 하나
-제이미의 행방불명 사건 이후 연인 사이로 발전된 것으로 추측됨


■다니엘 다 실바
-나탈리 오빠로 경찰
-지속적으로 핍의 경계망에 들어와 있는 사람


■맥스 헤이스팅스
-1권에서 여성을 상대로 성폭행을 저지른 가해자
-늘 파란색 물병을 가지고 다님
-존재하는 것만으로 위험 그 자체인 인물
-요리조리 법망을 잘 빠져나감으로써 여러 사람의 원망의 대상자


■해리엇 헌터
-DT 사건에서 희생당한 피해자의 유가족(동생)
-숨겨져 있던 앤디와의 관계가 3부에서 드러남
-해리엇과의 만남은 DT 사건은 물론 앤디의 죽음, 스토커 사건을 풀어나가는데 단초가 됨


■루크 이튼
-나탈리의 전 남자친구로 마약 및 약물 판매상
-핍은 불면증 약을 루크를 통해 불법으로 구매


■호킨스 경위
-핍의 사건들을 담당했던 경찰관
-마을의 사건사고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여 넘기는 스타일로 피해자에게는 최악의 담당자임
-3부에서는 유독 핍에 대해 날카로운 촉을 발휘


■찰리 그린
-2권에서 스탠리 포브스를 살해한 살인자로 현재 도주 중


■스탠리 포브스
-동네 신문사에서 무료 봉사했으나 찰리 그린에 의해 살해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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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Key 내용(사후 경과 시간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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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한 핍은 강한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불면증, 환각, 환청들을 앓지만 병원에서는 스스로 이겨내야 한다며 더 이상 도움을 주지 않는다.

가족을 비롯해 가까운 사람들에게 이를 털어놓을 수 없었던 핍은 불법적인 루트를 통해 수면제를 구매해 짧게나마 잠을 청하려고 노력한다.

스탠리의 죽음을 정면으로 마주했기에 핍은 주기적으로 자신을 비롯한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을 떠올리며 어느새 사후 경과 시간에 대한 내용을 검색해서 확인해 보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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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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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에서 스탠리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한 핍은 강한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한동안 병원 치료를 받지만, 이내 그것도 강제 종료되며 여러 증상을 겪는다.

걱정을 끼치기 싫었던 핍은 가족을 비롯한 남자친구 라비에게 증상이 호전되었다는 거짓말을 하고 몰래 루크를 통해 수면제를 구매하며 근근이 생활하게 된다.

하지만 증상은 나아지지 않았고 수면제로 겨우 버티며 생활하던 중 몇 가지 이상 현상을 목격하게 된다. 현관 앞 목이 잘린 채 죽어 있는 비둘기 두 마리, 몇 달 전부터 시작된 익명의 '네가 사라지면 누가 널 찾지?'라고 쓰인 이메일 그리고 바닥에 분필로 그린 다섯 개의 막대 그림은 처음에는 핍과 연결 짓기에는 다소 모호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서서히 이 모든 증거가 하나로 모아지며, 자신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 핍은 무언의 압박을 느끼며 마침내 자신을 향하고 있는 스토커를 대비하기 위해 목록을 작성하고, 증거를 수집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사실을 남자친구인 라비에게도 공유하며 관련된 키워드를 한꺼번에 넣어 검색하던 중 과거 연쇄살인사건 중 하나인 DT 살인범에 대한 기사가 결괏값으로 나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이내 피해자 동생인 해리엇 헌터의 인터뷰 내용에서 검색한 키워드에 대한 내용을 발견하게 되면서 여기서 실마리를 얻게 된다. 또 DT 살인범으로 지목된 '빌리 카라스'의 모친이 페이스북을 통해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이를 함께 지켜본 라비의 부추김으로 인해 핍은 빌리의 모친인 마리아에게 전화를 걸게 되고 조금씩 DT 사건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렇게 트라우마를 벗어나기 위한 노력과 더불어 자신을 스토커하고 있는 이를 찾던 중 돌연 핍은 납치를 당하게 되고 거기에서 이 모든 일의 시작이자 끝인 진짜 범인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앞서 자신이 해결했던 사건과 DT 연쇄살인사건, 그리고 자신을 스토커하고 있던 범인이 한 명으로 좁혀지는 동시에 DT 살인사건의 여섯 번째 희생자로 핍이 지목되면서 죽을 위기에 처하게 된다.

경찰서에서는 앞선 사건들을 겪고도 여전히 핍의 스토커에 대해 무대응으로 대응했는데, 때문에 무방비 상태에서 핍은 고스란히 위험에 노출된 것이다. 거기에 더해 앤디의 히든 메일을 통해 알게 된 앤디 죽음의 진실과 여기에 경찰의 커넥션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면서 핍은 섣불리 신고를 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면서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는 오로지 핍 자신의 힘으로 벗어나야 함을 깨닫게 된다. 당장 죽을 수 있는 상황이지만 앞서 기사를 통해 꼼꼼히 독파했던 DT 사건의 내막과 피해자들의 상황들을 되짚어 보면서 핍은 자신만의 탈출 계획을 세우게 되고, 다행히 무사히 죽을 위기에서 탈출하게 된다.

하지만 핍은 거기에서 도망치지 않았다. 앞선 경험을 통해 법도 경찰도 믿을 수 없었던 핍은 큰 결심을 함과 동시에 자신의 '선택'에 따라 스스로 범인을 처단하는 길을 택한다.

그리고 2장에서는 이 모든 판이 깔린 가운데 핍이 직접 만들어 가는 사건의 재구성을 만나볼 수 있다. 손이 덜덜 떨리고 호흡이 가빠질 만큼 두려웠지만, 법이 해결해 주지 않는 상황에서 어쩌면 이 상황은 다시없을 기회였기 때문이다.

이 기회를 놓치면 또 앞선 피해자 및 핍과 같은 피해자가 양산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기에 핍은 용기를 내서 이 사회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두 악을 엮어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한 사건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누구도 아니라고 말할 수 없는 명백한 알리바이를 만들어 내면서 완전무결한 범죄현장이 마침내 완성된다.

하지만,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흠 하나가 발견되면서 핍은 위기 상황에 빠지게 되고 이에 주변의 사람들을 끌어들이지 않기 위해 핍은 자수를 결심하지만, 라비의 도움으로 무사히 위기를 넘길 수 있게 된다.

그 과정은 매우 혼란스럽고 때로는 두려움에 잠식당할 만큼 힘겨웠지만, 핍은 자기 자신과 가족, 그리고 가까운 이들을 지켜냄과 동시에 사회의 악을 처단함으로써 마침내 그토록 원했던 평화로운 일상을 오랜 시간의 기다림 끝에 마침내 이뤄내게 된다.

물론 예전과 같지 않은 일상이었지만, 적어도 두려움에 떨며 쫓기는 듯한 느낌에서는 벗어난 듯하다. 핍은 그렇게 여태껏 그래왔듯이 리틀 킬턴의 수호자가 되어 끝까지 많은 사람들을 구하게 된다.

여기에서 한 가지 소름 돋았던 장면은 호킨스의 촉과 무시하지 못할 한마디 말이었는데, 어딘가 핍을 주시하고 있는 듯한 발언으로 인해 핍은 대학생이 된 이후 사람들과 거리를 두며 홀로 긴긴 시간을 보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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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핍은 행여 이런 사건에 엮이더라도, 절대 잡히지 않겠지?"
61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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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살인범 앞에서 오로지 홀로 싸워 살아남은 핍의 기상천외한 세 번째 이야기는 직접 책을 통해 만나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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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커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한 핍의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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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커일지, 증거사진, 잠재적 적의 목록)


핍은 자신과 소중한 이들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둘러싼 의문점들을 하나하나 분석하여 기록해 나가기 시작한다. 스프레드시트에 기록한 스토커일지와 쉽게 지워져 흔적을 남기지 않았던 분필 그림은 세 번째부터 사진으로 남기면서 확실한 증거수집 목록에 들어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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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제이슨 벨을 죽였나'의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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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8개월 16일(697일 차) 후 라비가 핍에게 전송한 문자메시지를 통해 독자는 기다려 왔던 최종 재판 결과를 명확히 알 수 있었다.

그동안 목구멍에 걸려있던 가시를 속시원히 빼 낸 느낌이 드는 건 비단 나뿐일까? 아마 이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었던 모든 독자가 그렇지 않을까 한다.

더불어 법이 바로 서지 못하고, 국가기관이 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을 때 사람들에게 있어 윤리와 도덕의 기준은 언제든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환기시키는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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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 깊었던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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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 없는 눈빛이라고들 하던가? 생기 없이 멍하니 공허한 눈. 눈을 한번 깜빡일 때나 예외일까, 이제 그 영혼 없는 눈은 언제나 핍을 따라다녔다.
(...)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 그리고 뒤이어 조용히 울리는 잔향 속 총성. 죽은 눈과 더불어 핍을 늘 따라다니는 그 소리에 핍은 다시금 움찔했다.
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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핍은 10대 여고생이 겪기엔 끔찍한 살인사건을 마주하며 큰 트라우마를 겪게 된다. 한동안 병원의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이내 스스로 이겨내라는 말과 함께 더 이상 도움을 받을 수 없게 된다.

그래서인지 핍은 여러 트라우마 증상(공허함, 환청, 환각, 불면증 등)을 겪으며 괴로운 나날을 보내게 된다. 그러면서도 정작 소중한 이들에게는 티를 내지 않으려 발버둥을 치는 모습은 안타깝고 안쓰럽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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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짓을 또 하다니, 죄책감이 들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오늘이 마지막이야.' 집으로 걸어가며 핍은 스스로 되뇌었다. '마지막이야. 이젠 정말 끝이야.'

최소한 오늘 밤은 조금이나마 잠을 청할 수 있을 터였다.
(...)
그래, 오늘은 잠이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만 한다.
4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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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약을 중단한 이후로 잠을 잘 수 없었던 핍은 조깅과 불법적인 루트로 구매한 수면제를 통해 짧은 잠을 청한다.

분명 잘못된 것을 인지하고 있기에, 핍은 매번 '이번이 마지막이야'라는 생각으로 구매하지만, 정작 수면제를 끊지는 못한다.

처음 살인을 목격하고 죽음을 느낀 것이 꽤 충격적으로 다가왔지만, 정작 전문가나 그 외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을 수는 없었다.

이로 인해 핍은 스스로 방법을 찾아냈지만 죄책감이 더해지며 또 다른 괴로움을 추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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핍의 웹사이트를 통해 보내온 이메일이었다. 또다시 같은 메시지였다. '네가 사라지면 누가 널 찾지?' 발송 주소는 anonymous987654321@gmail.com이었다. 메일 주소만 달리했을 뿐 같은 내용으로 다른 휘황찬란한 악성 댓글들과 함께 몇 달째 핍에게 날아오는 이메일이었다.
5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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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핍은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몇 달째 이어지고 있는 같은 메시지였음에도 말이다. 그러나 서서히 자신을 옥죄어 오고 있는 다른 이상 현상들이 목격되며 핍은 자신을 쫓는 스토커가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여기에서 '사라진다'는 곧 죽음을 뜻하는 것으로, 이는 다시 말해 핍의 죽음을 암시하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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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킨스 경위는 핍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동안 벌어진 그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호킨스는 핍을 믿지 않았다. 이럴 줄 알았다. 라비에게도 그럴 거라고 얘기했었다.
(...)
안 봐도 뻔한 전개였는데 말이다. 핍이 바보였다. 어리석었다.
11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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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속에서도 핍처럼 도움이 필요한 순간, 정작 도움은 받지 못하고 무기력함과 자책만을 안고 돌아오는 사람들이 많다고 알고 있다.

핍에게 도움을 요청했던 이들이 모두 이와 같은 과정을 겪은 후 결국 핍에게 도움을 요청했음을 기억하고 있다면 이것은 비단 핍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호킨스 경위는 앞서 몇 번의 일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했다. 전혀 바뀌지 않았다. 핍의 말에 귀 기울여 주지 않았다. 이를 계기로 핍은 위험에 빠졌고, 이제 다시는 경찰서를 방문하지 않을 거라 다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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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정의라는 건 법 밖에서만 실현 가능한 건지도 모르죠. 이런 경찰서 밖에서만. 이해한다면서 절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당신 같은 사람들이 없을 때에만."
11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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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하지 않는 호킨스 경위를 보며, 핍은 화가 나 위와 같은 말을 내뱉는다. 피해자를 오히려 이상한 사람 취급하며, 날카롭게 반응한다는 식의 대응은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데 말이다.

핍은 자신이 내뱉은 말처럼, 법 밖에서 실제로 정의를 찾았다. 법이 해주지 않기에, 경찰이 도와주지 않기에 스스로 정의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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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섬세해. 너무나 똑똑하고. 경찰은 날 미친 사람 취급하지. 나를 고립시키는 거야. 다른 사람들한테 도움을 청하지 못하게. 가뜩이나 다들 이미 내가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아아주 똑똑해."
(...)
"마치 전에도 해본 사람처럼."
15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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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심장한 이 한마디를 시작으로 핍과 범인의 게임이 시작된다. 이 메시지를 알아보고, 전후 상황을 모두 파악한 핍 또한 나에게는 아주 똑똑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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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핍은 깨달았다. 핍에게 이제 평온이란 없다. 그 무엇보다 핍이 바랐던 한 가지, 평범한 일상으로 되돌아가는 일은 이제 불가능해졌다. 이 모든 일을 벌인 이유도 오로지 평범한 일상을 되찾겠단 바람 그 하나 때문이었건만, 결국 핍은 대가를 치러야 했다.
(...)
피할 수 없단 걸 핍은 깨달았다. 그러나 정작 핍에게 그건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였다.
61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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핍은 살인사건을 직접 목격한 후에 트라우마를 겪게 된다. 하지만 이내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여 다시 예전처럼 평범한 일상을 되찾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하지만, 이제 어떤 식으로든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깨닫는다. 이미 많은 일들을 겪으며 많은 것들이 변화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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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일차. 핍이 이 유배길에 오른지, 자신만의 연옥에 들어온 지 겨우 두 달 반밖에 되지 않았다. 핍은 울퉁불퉁 자갈이 박힌 굽이진 이 옛길을 따라 걷고 또 걸었다. 매일같이 걸으며 핍은 약속했다. 앞으로 다른 사람,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고. 그리하여 제 인생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을 되찾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62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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핍은 위기를 맞는 매 순간,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지 않았다. 트라우마를 겪는 순간, 죽을 위기에 놓인 순간, 이후 사건을 재구성한 순간 모두 핍은 자기 자신보다 가까이에 있는 소중한 사람을 우선했다.

홀로 보내는 긴 시간 속에서도 핍은 만약을 그리며 더 나은 사람, 자격을 갖춘 사람이 되겠다 다짐한다. 이를 통해 핍이 얼마나 정신이 건강한 사람인지, 또 따뜻한 사람인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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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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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시작되는 3부 2장의 이야기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핍의 방식에 대해 의문을 표하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랬어야 했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피해자가 된 핍의 입장에서 더 이상의 방법은 없었다. 초반에 맥스 헤이스팅스와의 조정 이야기만 보아도 성범죄자가 되려 핍을 상대로 고소하겠다 날뛰는 상황에서 핍은 '협의 거부'라는 대안밖에는 별도로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이 없다.

성범죄자에 대한 명확한 증거와 녹취록, 피의자 진술이 있음에도 맥스는 법적 처벌을 전혀 받지 않는 무죄가 나왔고, 이로 인해 되려 불똥이 핍에게 튀며 핍은 또 다른 억울한 일에 휘말리게 된 것이다.

분통이 터지고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지만, 법이 그렇단다. 또 스토커에 대한 의문점과 두려움을 경찰관인 호킨스 경위에게 털어놓지만 혹시나가 역시나가 된 상황이다.

정석적인 방법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여러 차례 경험으로 체득한 핍은 이제 법과 공공기관에 대한 신뢰가 완전히 무너진 상황이다.

이런 전제 상황을 충분히 고려해 보면, 핍의 이런 결정과 방법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누구도 나를 도와주지 않는 상황에서 내가 위협과 위험으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위험을 제거하는 방법밖에 없기 때문이다.

핍은 그런 혼란스러운 겪고도 끝까지 이타심을 발휘해 억울한 누명을 쓰고 몇 년째 감방생활을 하고 있는 빌리 카라스를 구하기 위해 자신이 수집한 증거들을 호킨스 경위에게 전달한다. 자신과 같은 피해를 겪은 앞선 피해자들의 죽음의 이유와 진짜 범인을 색출하기 위해 힘을 보탠 것이다.

'누가 제이슨 벨을 죽였나'가 제목이지만, 실상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쩌면 그 이면에 있는 숨겨져 있는 사라진 법과 제도가 아닐까 한다.

죽어 마땅한 제이슨 벨이었고, 또 핍이 사건을 조작해 또 다른 사건을 만들었지만 이 모든 일의 배후에는 결국 망가진 법과 제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쩌면 제이슨 벨은 그런 망가진 사법제도와 국가기관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것'이 아닐까 한다. 만약 법과 제도가 바로 서 있었다면 그렇게 많은 희생자가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도 제대로 처벌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요즘 나라의 정세를 보면, 왜 법과 제도가 바로 서야 하는지, 시대에 맞는 입법 제도가 마련되어야 하는지 깨닫게 된다. 이 책이 에둘러 그런 현실을 소설이라는 형태를 빌어 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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