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반대편에 들판이 있다면 - 문보영 아이오와 일기
문보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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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대여와 반납만 하고 쏜살같이 튀어나오던 도서관을 요즘은 그래도 꽤 자주 휘~ 돌아보고 나오는 편이다. 더불어 이곳저곳 어지럽게 붙여져 있는 각종 전단지와 글귀들을 한 자라도 더 눈에 담아보려는 노력도 기울인다.

지금보다 더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 더 넓은 관점을 갖기 위해 해보는 나름의 방법이자 노력이랄까? 내 바운더리에 갇히지 않으려는 나름의 발버둥이자, 해보지 않았던 경험들을 하나씩 추가해 보고자 하는 도전의식은 그래선지 평소 대비 더 많은 에너지와 피로를 불러온다.

모르는 것은 물어봐야 하고, 또 알게 된 것을 실천으로 연결해야 하기에 눈과 머리는 핑핑 돌고, 손과 발은 늘 바쁘다. 때문에 한 곳에 진득이 앉아 집중할 시간은 부족해지고, 덕분에 몸은 피로를 업고 산다.

그렇게 얻는 것들이 모두 성공 혹은 긍정적 경험만을 얻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모르던 것을 알게 되고, 실패의 경험을 통해 다음의 실패를 예방할 수 있기에 어쩌면 더 귀한 경험이자 시간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 역시 그런 활동 에너지를 쓰면서 읽게 된 도서로, 단순하게는 그냥 새로운 책을 읽는 행위였고, 더 넓은 관점에서 보자면 도서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일이자, 누군가의 추천도서를 읽는 하나의 행위로 연결되는 일이었다.

모르는 작가, 모르는 출판사, 모르는 책 제목일지라도 나에겐 크게 문제 되지 않는 일이기에 더 별생각 없이 집어 들게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모르는 또 다른 세계와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었다.


총 5부로 구성된 이 책은, 저자가 2023년 가을 3개월간 아이오와 글쓰기 프로그램(IWP)에 참여하게 되면서 겪은 일련의 에피소드들을 엮어 만든 책으로 일기의 형식을 빌려 자유롭게 쓴 기록물이다.

보통 일기라고 하면 1일 1개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저자는 이 공식을 깨고 머문 일수보다 일기를 쓴 횟수가 더 많다. 그러니 일기 같은 자유로운 형식을 따랐지만, 실상 보통의 통념상 일기라고 구분 짓기는 어려울 수도 있겠다.

내용 또한 한계 없이 널을 뛴다. 아무 말 대잔치 같은 글들부터 시작해 통통 튀거나 재치 있는 글, 기발한 상상을 불러오는 글까지 다채롭고 흥미로운 글들로 가득하다.

물론 보통의 평범한 글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역시 내 시선을 잡아끄는 것은 '00을 했다'와 같은 글은 아니다. 예상치 못한 전개와 생각들, 그리고 궁금증을 유발하는 이야기가 나의 전두엽을 자극하며 이마를 탁 치게 만든다. 그리고 그 문장들이야말로 나의 시선을 잡아끄는 글들이다.

이런 이유로 이 책은 단문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장문처럼 읽었다. 어디로 튈지 모르니 주의 깊게 읽지 않으면 맥락을 따라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덕분에 이리저리 바람에 위치를 바꾸던 종이컵과 창문 사이로 들이치던 샛바람, 아이오와의 골목과 거리들을 꼼꼼히 상상해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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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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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오와 글쓰기 프로그램(IWP)은 30여 개국에서 온 작가들이 3개월간 한 호텔에 묵으며 리딩, 강연, 토론 등 열 문학 행사에 참여하는 작가 레지던시 프로그램이다.

2023년 가을, 저자는 한국 시인으로 아이오와에 가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많은 작가가 자신의 나라를 떠나 낯선 언어로 작품을 쓴다는 사실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고 전한다.

이 책은 그런 작가들을 마주하면서 변화한 저자 내면의 기록이자 일기, 그리고 성장소설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저자 스스로는 아이오와에서의 체류가 인생의 방향을 틀 만한 중요한 변화를 일으켰다고 말하며, 이중 언어자로 살아가는 작가들과, 이민자들의 삶을 목격한 경험은 새로운 정체성과 모험의 씨앗을 움트게 했다고 한다.

※엑소포닉: 모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작품 활동을 하는 작가를 일컫는 말로, 이중언어자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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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 깊게 다가왔던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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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들과 있을 때 가장 편할 때는 이들이 만다린어로 얘기할 때다.
(...)
가령, 닌텐도 미니게임에서 둘이 같은 편이 되었을 때, 혹은 급하게 서로를 이해시켜야 할 때 등이 그러하다. 그럴 때 내 입장에서는 대화에 빈 공간이 생기는 셈인데, 그 검은 심연이 발생할 때면 나는 푹 쉴 수 있다. 전혀 알아듣지 못하니 아무 책임도, 구속도 없는 기분. 아무것도 발생하지 않는 그 정지의 시간을 나는 좋아하게 되었다.
(...)
나는 만다린어도 광둥어도 일본어도 못 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알아들을 수 없고, 그래서 나만 홀로 자유롭다.
3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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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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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나는 생각했다. 사람들이 모르는 언어로 말할 때 대화에 깊은 구덩이가 생겨서 좋다고. 이해할 수 없는 음성의 쏟아짐 속에서만이 나의 귀는 자유롭다고. 그런데 나는 변하고 말았다. 이제 이해하고 싶다. 친구들의 모르는 언어를. 범람하는 언어에 파묻힌 나는 알아듣고 싶다. 내가 살고 싶어 하네. 이제는 미세하게 사는 것을 그만두고 싶구나. 변화하고 만 것이다. 이런 내가 조금은 징그럽지만.
244~24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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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3개월간 아이오와에서 지내며 가장 크게 변화한 부분을 꼽자면 바로 이 부분이 아닐까? 초창기에 그녀는 프로그램을 자주 스킵하는 스킵러로 불리는 것은 물론, 소수의 인원이 함께 있는 공간에서조차 오히려 알아듣지 못해서 편하다고 생각하는 부류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가까운 친구들과 사적인 시간을 보낼 때는 함께 섞이고 싶다, 알아듣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을 보면, 정말 '변했구나' 느끼게 된다.

사실 위의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는 신선하다 생각했었다. 소수의 인원이 한공간에 함께 있는데 나만 알아듣지 못하는 것을 두고 '소외감'이 아니라 '편안함'으로 느낀다는 것이 어쩐지 좀 정신 승리같이 여겨졌달까?

그런데 역시나 친분이 쌓이고 난 후에는 무리에 섞이고 싶다는 생각으로 변하는 것을 보고 사람은 역시 '사회적 동물'인가보다 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저자의 탈출 방향을 살펴보다가 무릎을 탁 치게 되는 문장이 있었는데, 바로 "내부에서 더 진한 내부로 뛰어드는 것도 일종의 탈출인 셈이다."라고 언급한 문장 때문이다.

일반적인 탈출 방식이야 그렇다고 치고, "막힘+더 막힘=뚫림"이라니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데 문득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안에서 더 안으로 파고드는 것을 우리는 보통 '도망' 혹은 '갇힘'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오히려 그것조차 탈출이라 말하는 발상은 좀 색다르게 다가왔다.

탈출 방향이야 어떻든 탈출만 하면 그만 아닌가? 앞으로는 안에서 안으로 파고든다고 해서 꼭 숨는다거나 도망간다고 생각하지 말고, '다른 방향으로의 탈출'이라고 생각해야겠다.

그래야 또 다른 도전을 이어 나갈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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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How are you'의 가장 고약한 점은 내 상태가 어떤지, 내가 어떻게 지내는지 자문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지금 내 기분이 어떻지?' '최근에 무슨 일이 있었더라?' 그런 질문을 던지다가 분노하는 수순을 밟게 된다... '아 맞다. 나 기분 별로지' 하고 잊은 일을 되살려내는 힘이 이 인사말에 있다.. 그러니까, 'How are you'의 가장 큰 문제는 나를 돌아보게 한다는 것이다.
5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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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How are you?"라고 물었을 때 기계적으로 대답하는 "I'm fine, thank you." 말고 이 물음에 진정성 있는 대답을 하려면 잠시 멈춰야 한다. 지금 내 기분이 어떤지 나의 상태가 어떤지 살펴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저자가 말하는 "How are you?"의 고약성에 대해서는 나 역시 동감하게 된다. 쾌청하고 맑은 기분이었을 때는 괜찮지만, 우울하고 기분이 좋지 않을 때 이 물음은 다시 한번 나의 좋지 않은 상태를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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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인이 특히 취약한 발음인 'r'을 반복 연습했는데, 'word'와 'world' 때문에 애를 먹었다.
-'world'는 혓바닥이 앞니의 뒷면에 닿아야 해.
-세상에 닿기가 힘듭니다.
-입을 열듯이!
-세상이 안 열려요.
-열거라.

(...)

그리고 낭독할 시에 'windy'라는 단어가 있었는데, 웬디는 그 단어를 자신의 이름인 'wendy'와 구분하는 방식으로 발음을 설명했다.
-손으로 입을 가려봐.
-네.
-그리고 'wendy'해봐. 어때? 입에서 바람이 불지?
-제 입 냄새가 나요.
-'windy'는 좀 더 짧고, 입에서 바람이 불지 않아.
-둘 다 바람이 부는 것 같은데...
-'wound(상처)'도 마찬가지야. 상처를 발음할 땐 약간의 바람이 불도록 해.
-모르겠습니다.
5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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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 이렇게 웃기기 있기 없기?

한국인들이 특히 영어 발음 교정할 때 엄청 애를 먹는데, 그때 모습이 떠올라 더 웃음이 나왔던 것 같다. 특히 재치 있게 받아치는 말에서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면 당신 역시 발음 교정에 애를 먹어 본 경험이 있는 경험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혀는 세상에 닿지 않지 않고, 바람도 불지 않아요.
이젠 어쩌죠?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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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통한다는 건 무엇일까. 그건 언어의 능숙도와는 무관한 것 같다.
10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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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게 공감되는 말이다. 특히 요즘 우리 사회 모습을 보면서 같은 언어를 쓴다고, 언어가 능숙하다고 다 말이 통하는 것은 아니구나 느끼게 된다.

떨어지는 이해력, 문해력, 어휘력은 물론, 여기에 더해 타인을 이해하고자 마음, 배려심, 공감 등이 결여되면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고 해도 소통으로 연결되지 않고 불통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덕분에 한국말은 외계어로 들리는 현실.

반면 경청하고 공감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꼭 능숙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의미와 뜻이 통하는 느낌을 받게 된다.

문득 오늘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통했을까 생각해 보게 되는 밤이다.


각 언어별로 단어 방향을 따라가다 보면 만나기도 하고 또 비가 내리기도 한다. 은근히 재밌는 발상이라 읽으면서 새록새록 재미있는 상상이 떠올랐던 부분이다.

만날지, 피할지, 비켜갈지 선택하는 것은 오로지 당신의 몫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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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릿의 말마따나 내가 느끼기에 영어는 좀 라이트 하다. 그래서 난 영어로 말할 때 목소리의 톤이 올라간다. 그 말을 하니 오릿이 한국어를 해보란다. "안녕하세요. 최선을 다하십쇼"라고 말하니 나의 완연한 저음에 놀랐다. 다른 사람 같다고. 난 그 점이 좋다. 내가 두 개의 성격, 두 개의 기분을 지닐 수 있다는 점에 감사함을 느낀다. 그러니, 내가 두 명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알아버렸는데 어떻게 과거로 돌아가겠는가?
190~19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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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중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보면, 언어별로 목소리 톤과 억양, 높낮이 등이 확연히 달라지는 것을 목격할 수 있는데, 저자 역시 비슷한 경험을 했던 것 같다.

덕분에 같은 사람이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으로 사는 듯한 느낌을 받았던 것이 아닐까 한다. 지금의 내 목소리, 이미지, 성격 등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외국어를 배워보면 어떨까?

어쩌면 또 다른 성격, 다른 이미지의 나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신기하고 진귀한 경험이 될 것 같아 도전해 보고 싶어지는 동기가 될지도. 이 덕분에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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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혼자 많이 돌아다녔습니다. 하루는 어느 농장에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농부의 집에 초대받았습니다. 그는 정말 친절했죠. 그 사람은 왕년에 시인이었고, 알고 보니 아이오와 작가 워크숍 출신이었어요. 당시 그는 유망 있는 젊은 작가였는데 돌연 마음을 바꾸어 농사를 짓기 시작했대요. 

저는 가끔 이런 농담을 하곤 합니다. "글쓰기가 잘 안 풀리면, 그리고 앞길이 보이지 않으면 농사나 짓고 살아야지"라고요. 물론 농담이죠. 며칠 전에도 라울이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나중에 농부가 되어야지." 그래서 제가 말했어요. "헛소리 하지마라." 농사가 어디 뭐 쉽습니까?

저는 그와 이야기를 나누기 전까지만 해도 작가가 농부가 될 수 있을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그냥 하면 되는 거였습니다. 그리고 그와 이야기하면서 알았습니다. 글쓰기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건 그냥 내가 되는 것이라는 걸, 누구의 기대도 충족할 필요가 없다는 걸요. 그래서 저는 이제 압니다. 난 언젠가 정말 농부가 될 수도 있다는 걸요."
27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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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너무 쉽게 이야기하거나 혹은 너무 어렵게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내가 내 인생을 산다면 그게 그 무엇이 되었든 그것은 그냥 나고 내 직업이다.

작가였다가 농부가 될 수도 있고, 반대로 농부였다가 작가 될 수도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내 의지고 내 마음뿐이다.

그러니 언젠가 내가 무엇이 되고자 한다면 나는 무엇이 될 수도 있음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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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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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쓰인 글이다. 그렇기에 주제도 다양하고, 형식도 완전히 자유롭다. 저자가 생전 처음 경험한 아이오와 문학 레지던시 프로그램(IWP)은 저자에게 그야말로 새 바람을 안겨주었다.

새로운 영감의 글들을 떠올리게 했고, 새로운 언어를 통해 자유를 얻었으며, 모국에서 멀어짐으로써 새로운 정체성과 관점을 가지게 되었다.

다소 불편하거나 어렵게 다가왔을 수도 있었을 텐데 오히려 자신만의 속도로 적응해 가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삶도 이렇게 적응해 가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됐다.

통하면 통하는 대로, 안 통하면 안 통하는 대로, 들리면 들리는 대로, 들리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 대로 거기에서 나만의 자유를 찾아 '만족'을 추구해 보는 것도 색다른 인생살이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통하지 않아 속타는 일이 있었는데, 이 글을 읽고 나니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나만의 해석 방식으로 이 순간을 즐겨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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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들판을 걷다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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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만나본 클레어 키건의 신작은 일곱 편의 단편집을 엮은 책으로, 아일랜드의 시골 풍경과 남성 중심 사상이 짙게 묻어있는 가부장적이고 폐쇄적인 문화를 가득 담고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권이 유독 남성 중심 사상이 강하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통해 유럽, 그것도 자유로움과 버스킹으로 유명한 아일랜드도 과거에는 꽤 가부장적이고 남성 중심적 문화가 팽배했음을 알 수 있었다.


특히 깊게 들어가기 어려운 한 가정, 한 사람의 심리 등을 생략과 공백 등을 활용해 독자로 하여금 더 깊이 느낄 수 있도록 함으로써 무력감, 외로움, 허무함 등의 감정이 더 적나라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총 7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이 책에는 아일랜드의 시골 풍경과 공기, 한 가정의 적나라한 모습 등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이야기로 가득하다. 특히 짧은 여행이나 현재의 모습에서는 도저히 찾아보기 힘든 구석구석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어 더 흥미롭게 다가오기도 한다.


대체적인 분위기는 음울하고, 축축하며, 허허벌판의 모습이 그려지는 모습인데, 그 속에 자리한 사람들의 모습도 이와 별반 다르지는 않다.


우울하고, 외롭고, 씁쓸하고, 죄책감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주의나 서툰 느낌의 캐릭터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채우고 있다.


여기에 더해 우리나라 민담이나 신화 이야기처럼, 아일랜드만의 설화가 곳곳을 채우고 있어 신비로운 느낌도 감돈다.


'나라면 어땠을까?'하는 포인트들도 곳곳에 눈에 띄는데, 대부분의 경우 '도망친다'가 나의 답이다. 과거에는 시대 분위기가 그러했고, 또 다른 살아갈 방법을 몰라서 버텼다지만 지금의 나라면 어떤 수를 쓰더라도 다른 길을 찾았을 것 같다.


그 이야기들 중 함께 이야기하고 싶은 이야기 몇 편을 중심으로 담아보았다. 나의 글을 읽는 또 다른 독자분들도 '나라면?'을 염두에 두고 읽어보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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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략 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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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 선물

딸이 뉴욕으로 떠나는 날의 모습을 담고 있는 소설로, 소녀가 왜 집을 떠날 수밖에 없는지 그 사정을 점점이 그리고 있다.


소녀는 어릴 적 어머니의 묵인과 주도하에 아버지로부터 성폭행을 당하게 된다. 꼭 오빠 유진이 없는 날을 골라 한 달에 한 번 정도 마치 재물을 바치듯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딸을 데려가곤 했다.


시간이 지나 언니, 오빠들이 하나 둘 집을 떠나고 이제 남은 건 자신과 오빠 유진뿐으로 마침내 그녀도 이 집을 탈출해 뉴욕으로 가게 된다.


이에 유진은 그녀를 배웅하며, 마지막 선물로 그녀의 죄책감과 미안함을 덜어주는 말을 건넨다. '자신도 이내 곧 떠날 것이라고'



■푸른 들판을 걷다

사제의 하루를 담고 있는 소설로, 주요 배경은 결혼식장이다. 사제는 잠시 자리를 지켰다가 자신이 왔다는 눈도장만 찍고 금방 떠나도 되지만 그럴 수 없는 사정을 가지고 있다.


사실 신부가 그녀의 옛 연인이기 때문이다. 모른 척 신랑과 신부를 축복해 주고, 끝까지 그녀의 결혼식을 지켜보다가 이내 발길을 돌린 사제는 그날 식장에서 사람들의 가십 속에 등장하는 한 중국인이 머물고 있는 장소로 발걸음을 옮기게 된다.


그리고 거기에서 차 한 잔을 얻어먹고, 마사지를 받게 된다. 온몸 구석구석 뭉쳐있던 피로감과 슬픔을 달래주던 손길 덕에 사제는 그곳을 벗어날 때쯤에는 발길이 가뿐하다.


그렇게 푸른 들판을 걷고 또 걷으며, 사제가 사랑을 떠나보내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소설이다.



■검은 말

브래디의 무의미한 일상을 관망하는 듯한 시선으로 쫓고 있는 이 소설은 어리숙하고 서툰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소설이다.


그녀가 떠나간 후에도 여전히 브래디는 그녀와 커다란 사냥용 말이 나타나는 꿈을 꾼다. 그렇게 행복했던 순간을 꿈으로 떠올린다.


브래디는 잠을 잘 때조차 편하게 자지 못한다. 외출복에 작업화 차림 그대로 입고 잔다. 무력감에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것 같아서다.


그녀가 떠나간 뒤 그는 더 이상 텃밭에 신경 쓰지 않는다. 생활은 엉망이 되었고 삶에 활력이 떨어지면서 경제력도 형편없어졌다.


브래디는 매번 그녀를 떠나보낸 순간을 떠올린다. 그녀가 요구하는 것들(장도 보고, 공과금도 내고, 외식도 시켜달라는 말)에 꺼지라고 답했던 자신을 경멸한다.


술을 먹고 객기를 부리고, 마지막으로 얻은 기회를 놓친 것을 후회하고 반성하며, 여전히 그녀가 돌아오기를 바라고 또 꿈꾼다.



■삼림 관리인의 딸

디건은 자신만 아는 이기주의자다. 오로지 자신이 산 땅에만 관심이 있다. 덕분에 아내와 아이들에게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마사에게 끈질기게 구애한 끝에 결혼했음에도 그녀를 외롭게 하고 방치한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마사는 삶이 무료하다. 섣부른 청혼을 한 것이라는 후회를 하며 매일을 살아간다.


그 와중에 세 명의 아이를 낳았지만, 그들에게 큰 애정이 없다. 사실 막내딸은 디건의 아이가 아닌, 외판원과의 외도로 낳은 아이로, 세 아이 중에 가장 머리가 좋고 똑똑하다.


돈을 쓰는 것에도, 마사가 외부 일을 하는 것도 싫어하는 디건으로 인해 마사는 그나마 가끔 마을 사람들을 모아놓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게 낙이라면 낙이다.


하루는 디건이 가지치기를 하던 중 우연히 사냥개를 한 마리 발견하게 되고 주인이 없다고 생각해서 집으로 데려오게 된다. 그런데 또 하필 그날 생일이던 막내딸의 선물로 주게 되면서 딸아이와 사냥개는 둘도 없는 사이가 된다.


사냥개를 받고 기뻐하던 막내딸은 항상 개와 함께 보내지만, 어느 날 그 개는 사라지고 만다. 그리고 아이는 그 후로 말도 하지 않고 학교도 가지 않는다.


이를 지켜보던 마사는 마침내 모든 것을 다 풀어내고 떠날 결심을 한다. 그리고 여느 때와 같이 마을 사람들을 모아놓고 자신의 진짜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한다.


이것이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 임을 확신한 디건은 자리를 피하고 이후 모든 외부 활동을 접는다. 집안 분위기는 싸늘해지고 더 이상 아내는 남편과 함께 잠을 자거나 공간을 공유하려 들지 않는다.


그러다 어느 날 밤 꼬질한 개 한 마리가 집을 찾아오게 되고 이를 처음 발견한 모자란 둘째 아들이 개를 위해 불을 피우게 되는데 이것이 집 전체로 번져나가며 온 집안을 태우게 된다.


가족들은 잠에서 깨어나 목숨은 건졌지만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디건의 집은 사라지고 없다. 하지만 돌아온 개를 보고 딸아이는 행복해하고, 옆에서 모자란 아들은 자신이 만든 농장이 사라졌다며 우울해한다.



■물가 가까이

부모님의 이혼으로 할머니의 손에서 자란 청년은

케임브리지에 있는 하버드대를 다니고 있다. 오늘은 자신의 스물 한 번째 생일을 맞아 엄마와 지내기 위해 텍사스 해변으로 왔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이혼 후 몇 달 만에 백만장자와 결혼했는데, 사이는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는다. 체할 것 같은 분위기 속 청년은 새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저녁을 먹고 홀로 산책을 겸해 해변으로 향한다.


답답해서였는지 그날 청년은 생각지 못한 일들을 여럿 하게 되는데, 샴페인을 마셨고, 수영을 했고, 죽을뻔한 위기를 경험하게 된다. 그 후 그는 이내 비행기표를 바꿔 돌아갈 결심을 하는데, 이때 눈앞에 어머니가 모습을 드러낸다.


청년은 수화를 통해 들려오는 상담원에게 과연 어떤 말을 하게 될까?



■굴복

이 소설은 아일랜드 소설가 존 맥가헌에게 영감을 받아 쓴 단편으로, 오렌지 먹는 장면을 모티브로 삼아 주인공의 행동과 태도를 적나라하게 담고 있는 소설이다.


소설 속 주인공인 중사는 다분히 개인적이고 가학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그래서인지 남을 괴롭히고 통제하는 행동을 서슴없이 행한다.


가까이에 있는 부하나, 배고픔을 느끼는 아이, 연애를 즐기고 있는 여자에게 무력감을 느끼게 하는 한편 괴롭히면서 자신의 만족감을 찾는다.


여기에 더해 자신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고, 혼자 있는 동안 어떤 일을 하는지는 철저히 감춘다. 이 대상자에는 결혼을 약속한 약혼자도 포함되는데, 마침내 견디다 못한 약혼자는 파혼을 통보하고 이에 중사는 이중적인 감정을 느낀다.


남을 굴복시키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는 중사의 이야기를 이 소설 속에서 만나볼 수 있다.



■퀴큰 나무 숲의 밤

설화적 요소가 많이 가미된 이 소설 속에는 미신을 믿는 마거릿이라는 여성이 등장한다. 그녀는 사촌인 사제와 결혼을 약속하지만, 이내 사제의 배신으로 버림받게 된다.


하지만 그 이유를 알고 싶었던 그녀는 어느 날 그를 쫓게 되고 이에 관계를 갖게 되면서 임신을 하게 된다. 하지만 아이는 죽게 되고 여자는 가족들로부터도 버림을 받게 된다.


시간이 지나 사제가 죽으면서 그가 살던 집이 그녀의 소유가 되고 그녀는 낯선 동네로 이사 오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갑자기 아이를 가질 수 있는 몸으로 변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던 중 점을 치는 마담을 통해 그녀의 과거와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고, 이에 그녀는 자신의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아이를 갖기로 결심한다.


마침 옆집에 붙어살고 있던 총각이 호감을 보기고 있던 터라 그녀는 전기가 나간 날을 기점으로 그와 자주 왕래하며 지내게 된다. 또 점을 치고 난 후 어떻게 알고 오는 건지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병과 유령을 쫓는 것도 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 임신을 하게 되면서 그녀는 한동안 벽을 허물고 남자와 가깝게 지낸다. 더불어 사제의 물건들을 하나둘 태워버리며 과거와도 이별을 고한다.


그러다 출산을 하게 되고 아이는 더할 수 없이 건강하게 자란다. 아이가 일곱 살을 넘기자 마거릿은 병과 유령을 쫓는 일을 그만두게 되고 이에 사람들은 그녀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아이가 걱정되었던 그녀는 이곳을 떠나기로 마음먹고, 어느 날 배를 타고 가뿐한 마음으로 마을을 떠난다. 이것을 일찍이 예감하고 있던 옆집 총각은 그녀를 마음에 묻고 다시 일상을 찾기로 한다.


벽을 다시 시멘트로 바르고, 암염소를 집에 들이는 등 다시는 여자에게 속지 않기로, 가까이하지 않기로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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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들여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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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 선물


어머니는 대가족을 바라지 않았다. 하지만 대가족이 되었고 어머니는 가끔 화가 나면 소녀를 양동이에 넣어서 물에 빠뜨려 죽이겠다고 말하고는 했다.


소녀에게는 언니와 오빠들이 있는데, 현재 이 집에 살고 있는 사람은 부모님과 자신 그리고 오빠 유진뿐이다. 오늘 그녀는 뉴욕으로 유학을 떠날 것이고 이제 이 집에는 부모님을 제외하면 유진만 남을 것이다.


그녀는 계속 떠날 시간을 체크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으로, 떠나는 것에 큰 아쉬움이나 미련은 없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어릴 적 어머니의 묵인과 주도하에 그녀는 아버지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한 달에 한 번 오빠 유진이 없는 틈을 타 어머니는 남편과 관계를 맺은 후 소녀를 아버지가 있는 방에 집어넣고는 했다.


아버지는 소녀를 추행했고 소녀는 홀로 그 모든 것을 감내해야 했다. 그러다 생리가 시작하면서 소녀는 더 이상 그 방에 들어가지 않게 된다.


그래서 소녀는 뉴욕으로 먼 길을 떠날 예정이지만 어떤 미련도 없다. 어머니에게도 그 어떤 다정한 말이나 위로를 건네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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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에게 할 말이 없다. 입을 열면 엉뚱한 말이 나올 텐데, 그런 식으로 끝내고 싶지 않다. 당신은 위층으로 올라가지만 방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당신은 층계참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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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의 이야기를 통해 집을 벗어나고 싶어 하는 것은 비단 그녀뿐만은 아닌듯하다. 그녀 위로 있는 언니 오빠들도 집이라면 학을 뗐음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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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와 오빠들은 모든 것을, 여기서 살던 추억을 떠올리다가도 아버지의 그림자가 바닥을 가로지르면 뻣뻣하게 굳었다. 언니 오빠 들은 집을 다시 떠나면 치유받는 것 같았고, 빨리 가고 싶어서 안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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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작건대 소녀가 겪은 일이 소녀에게만 해당되는 내용은 아니었던 듯하다. 특히 아버지의 그림자를 두려워하고 피하고자 하는 일념이 강했던 것을 보면, 형제자매들에게 있어 집은 치유와 위로의 공간이 아닌 두려움과 불안의 공간이었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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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을 어렵게 만들 행복한 기억을 찾아야 할 것 같지만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 대신 키우던 세터가 새끼를 여러 마리 낳았을 때가 기억난다. 어머니가 당신을 그의 방에 들여보내기 시작한 즈음이었다.

(...)

강아지들을 물에 빠뜨려 죽인 날, 어머니는 고개를 돌려 당신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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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아무리 떠올려보려 해도 이 집에서 행복한 기억을 발견할 수 없다. 오히려 끔찍한 기억만 떠오를 뿐이다.


아버지는 먼 길을 떠나는 딸을 마중 나오지 않는다. 헐벗은 채 침대에 누워 돈으로 희롱을 일삼을 뿐이다. 소녀는 그 모습을 마지막으로 집을 떠난다.


그리고 오빠 유진이 공항으로 가는 길을 배웅한다. 소녀에게 귀띔하듯이 자신도 곧 이 집을 떠날 거라 일러둔다. 소녀가 떠나기만을 기다렸다며 걱정하지 말라는 위로와 안심의 말을 건넨다.


하지만 소녀는 알고 있다. 결코 유진이 절대 밭을 떠나지 않으리란 사실을. 그저 홀로 유진을 두고 떠나는 자신의 죄책감을 덜어주기 위해, 막냇동생이 아버지에게 추행당하는 사실을 알면서도 막아주지 못한 미안함을 담아 건넨 말일뿐이라는 것을 소녀는 알고 있다.


소녀는 차마 유진의 앞에서 눈물을 보일 수 없어 꾹꾹 내리 참다가, 공항 게이트의 구석진 화장실 칸에 들어서고서야 눈물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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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어진 가족의 모습을 담고 있는 소설이다. 아이들을 부양하고 올바르게 가르쳐야 할 부모들이 나서서 성추행을 일삼고 이를 묵인한다.


언니, 오빠들은 이 모든 것을 견디다 하나 둘 집을 떠나고 이제 남은 것은 오빠와 자신뿐이다. 떠나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알기에 오빠는 기꺼이 선의의 거짓말로 동생에게 작별의 선물을 건넨다.


유능하고 똑똑해도, 공부를 잘해도 아버지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아들을 농부로 만들어버렸다. 딸들은 성추행의 도구로 삼으면서 가정은 더 이상 울타리가 되어주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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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면? 당연히 진작 도망갔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이일 때는 아마도 이들처럼 숨죽이며 살았을 것이다.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어머니와 성추행을 일삼는 아버지를 피해 최대한 눈에 띄지 않으려 노력했을 것이다.


그리고 떠날 방법을 나름대로 강구하지 않았을까?

돈을 모은다거나,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으면서 지식을 쌓는다거나 무언가 방법을 찾았을 것이다.


더 이상 이 집은 안전함도, 평화도, 위로도 되어주지 못하는 공간이 되었기에.



●삼림 관리인의 딸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받게 된 아하울 땅을 빅터 디건은 형제들의 몫까지 사들여 거대한 빚을 지고 자신의 소유로 만들어 버린다.


그리고 신붓감을 찾기 위해 코트 타운 항구로 가게 되는데, 거기에서 춤추는 여자를 보게 되고 그녀에게 다시 만나자고 들이댄다.


여자는 싫다고 했지만 디건의 끈질긴 구애로 인해 결혼 승낙을 하게 되는데, 당시 여자의 나이가 서른 살이었다는 점 그리고 다시는 이런 기회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 년 뒤 둘은 결혼을 하게 되지만, 아내가 된 마사는 곧 후회하게 된다. 그가 대단한 것처럼 읊어대던 아하울은 지저분하고 낡은 곳이었고,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었으며 무엇보다 보수적이고 사랑을 모르는 디건이 그녀를 외롭게 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행복하지 않았고, 공허하고 외로웠다. 어느 날은 그녀가 외판원을 통해 장미를 사서 심어두었는데 그것을 알게 된 디건은 크게 화를 내며 '멍청이'라고 말하는 동시에 '내 돈을 낭비했다'라며 역정을 낸다.


마사는 꿈꾸던 결혼생활과 크게 차이가 나는 생활을 바로잡고 싶어, 오해를 뛰어넘는 대화를 간절히 원했지만 그 기회는 좀처럼 찾을 수 없게 된다.


그렇게 지내면서 마사는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낳게 되는데, 자기가 낳았지만 큰 애정 없이 무심하게 키우게 된다.


큰아들은 농사에 대한 '그라(사랑)'이 없었고, 더불어 언제든 기회가 닿으면 이곳을 떠날 것이 분명해 보였다.


둘째 아들은 모자랐는데, 자기만의 세상에서 살았고 진실을 말하는 무서운 습성이 있었다.


막내딸 빅토리아는 머리가 좋고 똑똑했는데, 유일하게 자신은 물론 타인까지 잘 컨트롤하는 아이였다. 덕분에 모자란 오빠를 잘 구슬려서 그가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게 만들었고, 자신의 일도 스스로 잘 해냈다.


마사가 이 집에서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낙으로 삼을 수 있는 일은 마을 사람들을 모아놓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가끔 마을 사람들은 이 집에 모여 마사의 이야기를 즐겁게 듣고 가고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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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알았다. 이 땅이 아내와 자식들보다 더 큰 만족감을 준다는 것을.

9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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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와중에 디건은 홀로 바빴고 은행에서 빌린 돈을 갚고 토지 문서를 되찾아 오는 것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


어느 날은 전나무 가지치기를 하던 중 사냥개 하나를 발견하게 되는데, 주인이 없다고 판단하게 되면서 집으로 데려오게 된다. 그런데 마침 그날이 막내딸의 생일이었고, 또 마침 가장 먼저 건넨 사람 또한 막내딸이 되면서 그 개는 막내딸의 선물이 되어 버린다.


막내딸은 리트리버의 성별이 남자인 것을 알고 저지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늘 함께 한다. 그러다 진짜 개의 주인인 오도넬이 나타나고 개를 데려가면서 딸아이는 개가 없어진 것을 알게 된다.


이후 말을 잃고 학교도 가지 않는 딸을 본 마사는 그동안 고심해오던 일을 마침내 실행에 옮기기로 결정한다. 마사는 평소 생활비를 조금씩 떼어 돈을 모아두며 언젠가 떠날 날만을 고대하고 있던 차였는데, 마침 그때 촉발제가 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어디서 데려온 개를 딸아이에게 생일선물이라고 주었는데 문제가 생겼고 이 일을 계기로 더 이상 남편의 이기적이고 무심한 것을 보아 넘길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이제 마사는 더 이상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잠도 같이 자지 않고, 말도 섞지 않았다. 디건은 내심 계속 속으로 토지 문서만 돌려받으면을 외치며 마사가 원하는 것을 해주리라 다짐하지만 이 마음이 마사에게 닿진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하고 돌아오는 길에 디건은 집안이 여느 날과 다르게 환하고 사람들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마사가 이야기를 하는 날이었던 것이다.


그날 마사의 이야기는 평소와는 달랐는데, 가짜가 아닌 숨겨진 진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결혼생활은 행복하지 않으며, 자신이 외판원과 관계를 가졌고 그렇게 막내딸이 태어났다는 것.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으나 사실이 만천하에 공개되면서 디건은 자리를 벗어나고 그렇게 집안은 더 한 침묵 속에 빠지게 된다.


결혼생활 20년 만에 처음으로 듣는 '행복하냐'고 묻는 말은 어쩌면 마사를 더 비참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이후 디건은 이웃에게 보이기 위해 가던 미사도 불참하고, 주변 사람들과 왕래도 끊는다. 마사는 아침식사도 차리지 않았고 오로지 모자란 아들만 행복하다.


그러던 어느 날 꾀죄죄한 모양을 한 개 한마디가 돌아오고 모자란 아들은 그 개를 처음 발견하게 된다. 덜덜 떠는 모습에 막내딸이 알려준 방법으로 불을 피우고 그것은 곧 집 전체로 번져나간다.


피어나는 연기와 매캐한 냄새 때문에 가족들은 하나 둘 깨어나고 덕분에 목숨을 건졌지만 아하울은 불길에 휩싸여 사라지게 된다.


딸아이는 돌아온 저지(개)를 보며 행복해하고, 모자란 아들은 자기가 불지른 집을 보며 자신이 만든 농장을 잃어버렸다고 괴로워한다. 그러는 한편 흥미롭게 활활 타오르는 불을 지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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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건은 오로지 자신만 생각하는 인물이다. 자신의 만족을 위해 거대한 빚을 내면서까지 아하울을 사들였고, 또 신붓감을 찾아 억지 구애를 하며 마사를 아내로 맞았다.


하지만 그의 관심사는 오로지 땅을 지키는 것뿐이었다. 아내는 외로움에 지쳐갔고, 그래서 집안일이나 아이들을 돌보는 것에 큰 애정을 가지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마음속에 전혀 애정이 없지는 않았다. 자그마한 애정이 숨어있었다. 마사를 사랑하고 그녀를 위해주고 싶은 마음이 숨어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은행으로부터 아하울의 토지 문서를 완전히 가져오고 난 뒤에 행할 일이었다.


우선순위가 바뀌다 보니, 모든 것의 일 순위는 아하울의 토지 문서였다. 20년의 결혼생활이 얼마나 마사를 좀먹었을지 가히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장미조차 제 마음대로 살 수 없는,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 아이들과 애정 없는 남편만을 바라보면 산다는 것이 얼마나 공허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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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면? 역시 도망갔을 것이다. 20년의 세월을 어찌 견딜 수 있을까? 결혼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부부관계다. 애정해주고 관심 가져주고 아껴주는 마음이 없다면, 그 관계는 오래 지속될 수 없다.


깊은 대화조차 나누려 하지 않는 디건을 보며 마사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얼마나 오랜 시간 푼돈을 모으며 견뎌냈을까?


이 상황에서 더 이상 아이들은 그녀의 안중에 없었을 것이다. 고립되고 외로운 상황 속에서 자신밖에는 눈에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이 병에 걸리든 말든 위생도 신경 쓰지 않았고, 어떤 집안일도 애정을 쏟지 않은 것이다.


못해서가 아니라, 하지 않았던 것이다. 디건이 조금만 생각을 달리했다면, 이들은 아하울에서 보다 더 행복하고 예쁜 가정을 꾸릴 수 있지 않았을까?



●물가 가까이


케임브리지에 있은 하버드대를 다니고 있는 청년은 스물 한번째 생일을 맞아 어머니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텍사스 해변으로 왔다.


썩 내키는 일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어머니를 생각해 올해도 어기없이 이곳을 찾았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이혼 후 몇달 뒤 공화당원이자 백만장자인 새아버지 리처드와 재혼했는데, 사이는 그리 좋아보이지 않는다.


청년은 부모님의 이혼 후 할머니 밑에서 자랐는데, 그녀는 테네시주 출신으로 돼지를 키우는 시골에서 살았다. 지금은 돌아가시고 없어 찾아뵐수는 없지만 청년은 종종 할머니를 떠올리고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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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들이 하버드대학에 가다니'라고 말할 수 있는 엄마가 몇 명이나 되겠니? 난 테네시주 돼지 농장 딸인데 내 아들이 하버드에 가다니. 기분이 가라앉으면 항상 그 생각을 해. 그러면 기운이 끝도 없이 솟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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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보잘것 없는 어려운 생활을 오래해서인지, 이렇듯 장성한 아들을 보며 늘 자랑스러워하는 이야기를 숨김없이 하고는 했다.


하지만 아들은 늘 어머니가 행복하지 않은 결혼생활을 이어가고 있는것이 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에 엄마는 아들을 생각해서라고 이야기하는데, 거기에는 어떤 말못할 애틋함과 희생이 엿보인다.


함께 저녁을 먹은후 청년은 답답한 마음에 해변으로 향한다. 그날은 생각지 못한 일들을 많이 겪게 된 날이었는데, 샴페인을 마셨고, 물에 뛰어들어 수영을 했으며, 옷을 잃어버렸고, 익사할뻔한 상황도 경험하게 된다.


그렇게 물가에서 나온 청년은 이내 어머니가 있는 리조트로 향하고 일정을 바꿔 돌아갈 결심을 한다. 샤워를 마치고 항공사에 전화를 걸던 중 어머니를 마주하게 되고 그때 수화기에서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는 말이 들려온다.


청년은 할머니에게서 결혼 당시 할아버지와의 일화를 전해 들은 적이 있다. 대서양을 한번도 본적이 없어 꼭 한번 바다를 보고 싶다는 요청에 할아버지는 늘상 "그럼 여기 일은 누가 하고?"라며 거절하곤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만삭이 되면서, 결국 바다는 포기할때쯤 어느날 일요일에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흔들어 깨워 바닷가에 데리고 갔다. 한 시간을 주고 늦으면 두고 가겠다는 엄포를 하는데, 이에 할머니는 맨발로 바닷가를 30분동안 걸었다가 돌아왔다고 한다.


그리고 약속 시간에서 5분이 지나자 남편은 정말 혼자 차에 시동을 걸어서 혼자 떠나려고 하는 것을 할머니는 도로에 뛰어들어 차를 세우고 겨우 같이 타고 왔다고 한다.


할머니는 인생을 다시 산다면 절대 그 차에 올라타지 않겠다고 말했는데, 그런 남편을 믿고 긴 세월을 산 것을 후회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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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 차에 다시 탄 이유를 묻자 할머니가 말했다.

"우리 땐 다 그랬어. 난 그렇게 생각했지. 선택의 여지가 없는 줄 알았어."


할머니는 세상을 떠났지만 나는 스물한 살이고, 이 지구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하버드에서 A학점을 받았고, 달빛 속에서 아무런 시간제한도 없이 해변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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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상 할머니의 부재를 느끼고 있는 청년은 어쩌면 그날 물가를 배회하며, 그때의 할머니를 떠올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불현듯 자신은 다른 선택을 하겠노라 결심하고 항공일정을 바꾸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날 청년은 과연 어떤 선택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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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하게 남은 가족, 어머니를 위해 청년은 매년 자신의 생일이 되면 어머니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늘 불편함을 감수하고 새아버지와 어머니가 있는 곳으로 향한다.


하지만 매번 후회한다. 더 나은 생일을 보낼 수 있었는데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자신도 자신을 이해할 수가 없다.


그렇게 스물한 번째 생일날 청년은 또다시 반복되는 생일날을 보내지만 그날은 생각지 못한 일들을 연속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물가에서 자신이 익사 당할뻔 했다는 사실을 인지한 후에는 불현듯 할머니가 들려준 옛 이야기를 떠올리게 된다.


이와 다른 선택을 해보자 결심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 길로 청년은 숙소로 향하게 되고 항공사에 연락해 일정을 바꾸려는 찰나 어머니가 눈앞에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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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면? 한번쯤은 다른 선택을 해볼 것 같다. 다른 선택은 다른 결과를 불러오는 법이고, 이 또한 시도해보지 않으면 모를 일이다. 다음에는 어머니를 자신이 속한 공간에 초대해 보거나 어머니와 자신 모두 행복할만한 경험을 해볼수도 있을 것이다.


모진 삶을 산 어머니이기에 아들을 위해 희생하며, 백만장자 남편과 어렵사리 지내고 있는듯 한데,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된다고 알려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듯 하다.



●퀴큰 나무 숲의 밤


사제가 죽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살던 더나고어 언덕의 집으로 한 여자가 이사를 했다. 그녀의 이름은 마거릿 플러스크로 마흔살도 채 되지 않았으며, 사제와는 사촌지간이다.


사실 사제와 마거릿은 마거릿이 10대 때 청혼하고 결혼하기로 약속한 사이로, 돌연 사제가 신학교에 들어가 사제가 되면서 마거릿은 졸지에 버림을 받게 된다.


하지만 그들은 사촌지간이었기에 종종 변함없이 얼굴을 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마거릿은 그런 그를 보며 자신을 모르는척 하는 이유를 알고 싶어 어느날 그를 따라 나서게 된다.


그러다 거기에서 둘은 관계를 가지게 되고 마거릿은 임신을 하게 된다. 하지만 아이는 영아 돌연사로 죽게 되고, 이후 가족들로부터도 버림을 받게 되면서 마거릿은 미신에 집착하기 시작한다.


월요일에는 절대 재를 버리지 않았고, 일꾼을 지나칠 때는 반드시 그의 일을 축복했으며, 난로에 소금을 뿌리고 침실 벽에 성녀 브리지다의 십자가를 걸고 달의 변화를 주시하는 등의 미신을 늘 따랐다.


그렇게 아이가 죽고 이런저런 이유로 사제가 죽으면서 그가 살던 집은 그녀에게 상속되었고, 그녀는 갑작스레 이곳으로 이사를 오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곳에 온 후에 마거릿은 갑작스레 임신할 수 없는 몸에서 임신할 수 있는 몸으로 변화된 것을 감지하게 된다.


사실 그녀가 더 이상 임신할 수 없는 몸으로 된 데에는 퀴 큰 나무(=마가목)가 원인이라고 늘 생각해 왔는데, 정말 퀴 큰 나무가 없는 이곳에서 그녀의 몸은 신비한 변화를 맞이하게 된것이다.


마거릿이 거주하고 있는 언덕위에는 두 채의 집이 나란히 붙어 있었는데, 사제의 집과 대머리 노총각, 마흔아홉살의 스택이 거주하고 있었다.


스택은 은근히 그녀가 자신에게 관심이 있다며 착각하고 있었는데, 그래서 마을전체에 전기가 나간 그날 저녁식사에 초대하여 은근히 그녀를 자신의 집으로 끌어들인다.


어두워서 잘 보이진 않았지만, 그의 집에는 암염소(조지핀)을 집안에서 함께 키우고 있었는데, 살짝 열린 침실위에 털이 가득한 것으로 보아 함께 자는 것으로 추측되었다.


그는 아버지가 죽고 남긴 집과 땅, 이탄이 나오는 수입 전부를 소유하고 있었는데, 그래서 경제적으로는 크게 부족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오래전에 자신이 마음에 품었던 여성이 다른 남자와 결혼하며 그 후 홀로 지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모처럼 옆집으로 이사 온 이성과 서서히 가까워지며 지내게 된 것이다. 그리고 둘이 가깝게 지내는 것을 목격한 마을 사람들은 수근거리며 뒤로 여러 말들을 쏟아내고는 했는데, 이에 마거릿은 더욱더 고립된 생활을 이어나간다.


그러던 어느날도 사람들의 수근거림을 피해 한 이동식 주택에 들어서게 되고 거기서 점을 치는 마담 놀란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놀란을 통해 그녀의 과거와 미래를 점치게 되면서 마거릿은 다시한번 임신을 꿈꾸게 된다.


더불어 그녀가 놀란을 통해 '일곱째 아이(아일랜드의 민간 전승에 따르면 일곱째 아이는 치유력이나 예지력 같은 신비한 힘을 가진다)'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면서 하나 둘 사람들이 병과 유령을 쫓기 위해 찾아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녀는 그들을 치유해주기 시작한다. 덕분에 매일 그녀의 집앞에는 먹을것을 비롯해 많은것들이 쌓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옆집 남자 스택과 관계를 가지면서 마침내 임신을 하게 되고 이후 마거릿은 두 집 사이의 벽을 허물고 따로 또 같이 생활하게 된다.


이때 마거릿은 남아있던 사제의 물건과 스택이 방한구석에 꽁꽁 보관하고 있던 부모님의 물건들을 태우기 시작하는데, 아마도 과거와 안녕을 고하기 위함이 아니었나 싶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사제의 집에서 마거릿은 출산을 하게 되고 마이클이라는 세례명을 지어주게 된다. 아이는 예언과 같이 건강하게 자라났고, 스택은 서서히 그녀가 곧 떠날것임을 직감하게 된다.


아이는 신기하게 단 하루도 아프지 않았고, 성장 속도는 남달랐다. 기어다니지 않고 어느날 벌떡 일어나 걸어다녔으며, 스스로 염소젖을 먹기도 했다. 그러다가 곧 자기 이름을 뒤집어서도 쓰고 앞뒤 순서를 바꿔서도 쓰는 모습도 보인다.


아이가 일곱살을 넘기자 마거릿은 사람들의 병과 유령을 쫓는 일을 그만두게 된다. 그러자 사람들이 그녀를 괴롭히기 시작했고, 마거릿은 아이가 걱정되어 이곳을 떠날 결심을 하게 된다.


그리고 앞서 마담 놀란이 예언한데로, 아이의 양막을 건넸던 어부를 통해 아이를 데리고 무사히 배를 타고 떠날 수 있게 된다.


스택은 그 모습을 지켜본 후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허물어진 벽과 벽 사이를 시멘트로 바르고, 이탄을 캐면서 바쁘게 살아갈 결심을 한다. 더불어 다시는 여성을 믿지 않겠다 결심하며, 키우던 암염소를 다시 집으로 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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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아이는 당신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들어줄 거예요. 아들을 낳고 나면 당신은 절벽 밑을 보지 않게 될 거예요."

22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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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이 마을을 떠난 이후 마거릿은 마담 놀란의 예언처럼 아들덕에 가치 있는 삶을 살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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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약속한 사제의 일방적인 파기로 인해 마거릿은 불행한 삶을 살게 된다. 원치 않던 임신을 하게 됐고, 가족들과도 인연이 모두 끊겼다.


그나마 유일한 가족이었던 아이도 잃었으며 홀로 떠돌며 사람들의 손가락질과 수군거리는 말을 늘 들으며 지내게 된다. 때문에 그려는 고립을 선택했고 사람들과의 왕래도 모두 끊게 된다.


하지만 불행끝에 낙이 온다고 했던가? 먼저 떠나보낸 아이덕에 사제의 집을 소유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다시 출산 능력을 갖게 되면서 삶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예언에 따르면, 그 아이는 마거릿의 삶에 더없는 가치를 안겨줄 아이로, 특출난 아이로 예상된다. 미신을 굳게 믿어서인지, 아니면 정말 그럴 운명이었는지 마담이 예언한대로 마거릿은 순탄하게 아이를 출산하고 남다른 능력을 가진 아이와 예정대로 이곳을 떠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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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나라면? 광활한 자연속 언덕위에 자리한 집 두채. 그리고 절벽이 위태롭게 내려다보이는 곳의 풍경과 함께 수군거리는 이웃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한 아일랜드의 어느 바닷가 마을의 모습이 그대로 펼쳐지는 듯한 이 이야기는 판타지적 요소가 가미되어 있어 더 베일에 쌓인듯한 느낌을 준다.


여기에 더해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는 아일랜드만의 설화가 곳곳에 녹아들어 있어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홀로 떠밀리듯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났다가 불현듯 사라진 여인 마가릿의 이야기 역시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이야기이기에 더 그렇다.


배신당한 괴로움이 컸겠지만 만약 그때 궁금증을 억누르고 사제를 따라가지 않았다면, 어쩌면 마거릿의 인생을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거기서부터 마거릿의 인생은 꼬였는지도 모르겠다.


이미 떠나간 사람에 대해서는 미련두지 않는것이 맞다고 들었다. 그렇기에 나라면 굳이 사제를 따라가진 않았을 것 같다.


늦게 이유를 알아서 무엇하겠는가? 그냥 빨리 잊고 더 나은 사람과 연애하고 결혼하거나 아니면, 나만의 인생을 꾸리는 선택이 더 현명한 선택이지 않을까 싶다.


그 한번의 일로 마거릿은 모든것을 잃었다. 뭐 그런 최악의 상황에 자신을 버린 가족과 굳이 함께 하겠다는 생각은 없지만, 잃지 않아도 될 것을 잃은 것은 뼈아프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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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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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에 다가왔던 소설의 줄거리와 함께 그 속에서 '만약 나라면?'이라는 가정을 함께 담은 의견을 적어보았다. 유독 여성들에게 가혹한 이야기들이라 읽는내내 마음이 불편했는데, 그래서 더 '나라면'이라는 물음을 건네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이들중에는 그 어떤 이도 행복과 가까운 이는 없다. 그저 황폐하고, 외롭고, 비참하고, 상처와 결핍이 있는 이들이 가득 할 뿐이다.


여기 남성성에 가부장, 억압, 이기적, 퇴폐적, 반인륜적, 자기애적인 느낌이 더해지며 최악의 상황에 도래하게 된다.


여성성에는 무관심, 방치, 방관, 순리, 수동적인 이미지가 더해지며 어딘가 무기력하고 포기한 듯한 뉘앙스가 많이 엿보인다.(마지막 '퀴큰 나무 숲의 밤' 제외)


덕분에 문학을 읽으며, 역사를 배우게 된다. 아일랜드의 역사에도 이토록 지난한 과거가 존재했구나 깨닫게 된다.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모두 꽤 험난한 과거를 보냈고, 또 예상치 못한 선택으로 고통을 겪었다. 하지만 현재에 이르러서는 새로운 선택과 도전을 앞두고 있다.


'작별 선물'에서 그녀는 뉴욕으로 이주하게 되었고, '푸른 들판을 걷다'에서 사제의 옛 연인은 새로운 반려자를 만나 결혼을 했다.


'삼림 관리인의 딸'에서는 상처로 뒤덮인 집이 사라지고 거기에 남은 것은 오로지 새로 올릴 미래만 남았다. 똑똑한 막내딸에게 집이 사라진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을 행복하게 해 줄 저지가 돌아온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퀴큰 나무 숲의 밤'에서 마거릿은 자신의 운명을 새로이 개척했다. 미신이나 점사가 허무맹랑하다고 할지언정,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졌다. 그녀는 아픔과 고통에 무너지지 않았다. 다시 찾아온 기회를 잡아챘고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


만약 지금 어떤 위태로운 상황에 놓여있다면, 이들의 이야기에서 힌트를 얻어보면 어떨까 한다.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이들 역시 남들의 손가락질과 수군거림, 어쩔 수 없는 상황들을 겪어왔지만, 그럼에도 자신만의 길을 찾아냈다.


그리고 거침없이 돌격 중이다. 당신도 과거를 벗어던지고 앞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과거가 발목을 잡는다고 느낀다면 마주하고 직면함으로써 상처를 치유할 수도 있다.


천천히 한발 한발 내디디며, 희망을 향해 전진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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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이야기들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최성은 옮김 / 민음사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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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환상을 넘나들며 상상과 이해를 확장시키는 기묘한 이야기들"



2018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는 앞서 그림책을 통해 먼저 만나봤던 작가다. 여타 그림책과는 다르게 묘하게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는 내용과 그림으로 인해 개인적으로는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을 쓴 작가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텍스트로만 엮은 소설책으로 만나보니 색다른 느낌이다.


그림책에서는 제공되던 그림이 사라지고 오로지 텍스트로만 이야기를 받아들이다 보니, 이미지를 머릿속으로 구현하는 것 역시 오로지 내 몫이 되었다. 덕분에 어떤 제한이나 한계도 없이 상상의 이미지들은 끝없이 뻗어나간다.


책 속 인물들의 생김새, 그들이 머무는 공간과 분위기, 알 수 없는 생명체들의 모습까지 생각에 또 다른 상상이 입혀지며 더없는 긴장감을 유발한다.



총 10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이 책에는 제목처럼 기묘하고 조금 생소한,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익숙한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왠지 어디선가 들어봄직한 느낌이 들기도 하면서, 미래에 일어날 수도 있을 것만 같은, 그렇지만 결코 긍정적 방향과는 무관한, 기이하고 독특한 세계관을 만나볼 수 있다.


그래서 통상적인 편안함이나 안락함과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보편적인 관점에서 벗어난 이야기라고 보면 더 이해가 빠를 것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건, 현재 우리가 가고 있는 방향과도 많이 맞닿아 있어 소설 속 허구의 이야기로만 보기에는 석연찮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이런 거 어때?'하면서 자꾸 기묘하게 신경을 거스르는 이야기들은 흥미를 유발하면서도 우리가 덮어두고만 싶은 이야기들을 자꾸 끄집어 냄으로써 관계, 사람, 자연, 죽음, 종교, 환경, 존엄성 외에도 단절, 불안, 공포, 강박 등의 감정을 더 크고 넓게 생각해 보게 만든다.


그리고 또 어떤 면에서는 추리하는 기분이 들도록 유도하는 부분도 있는데, 특히 결말을 묘하게 가려둠으로써 독자가 알아서 상상하도록 만든다. 이런저런 단서를 하나 둘 뿌리고 그것을 어떻게 마무리하고 결론 내리느냐는 오롯이 독자의 몫인 것이다.


이 이야기들에는 대조적인 두 상황들이 절묘하게 접점을 이루고 있는 것도 확인해 볼 수 있는데,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현실적vs초현실적, 합리적vs비합리적, 개인적vs사회적, 주류vs비주류, 익숙함vs기묘함, 진짜vs가짜, 정상vs비정상과 같은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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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일어난 일과 일어날 수 있는 일 사이의

공간을 창조합니다.

(...)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

이것이 문학의 본질입니다."


-올가 토카르추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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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다 하나씩 열거하며 짚어보면 좋겠지만, 후에 읽을 독자를 위해 열 가지 이야기 중 네 가지만 꼽아 나만의 해석과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이야기 속 결말에는 명확한 뭔가를 발견하거나 확신하는 것처럼 서술되어 있지만, 사실 독자 입장에서는 열린 결말의 형태이기에 이것에 대한 해석은 순전히 나의 주관을 담고 있음을 밝힌다.


그러고 보니 추후 같은 책을 읽은 독자들의 결말 해석을 찾아보는 재미도 은근 쏠쏠할 것 같다. 혹은 독서모임을 통해 직접 의견을 나눈다면 서로 할 말이 엄청 많은 책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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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략 줄거리 살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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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객

비행기를 타고 가는 동안 옆자리에 앉은 승객은 자신이 어릴 적 겪은 공포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그 이야기 속에는 미지의 어떤 존재가 등장하는데, 여타 사람들이 공포심을 느끼는 주제나 사물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그 승객에게 있어 이 존재는 극도의 공포심을 불러와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였는데, 다행히 성장하면서 점차 공포는 희미해지게 된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 육십 줄에 이르렀을 때 승객은 다시 한번 그 공포와 마주하게 된다.


결말의 해석에 따라 충분히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이 공포의 근원은 직접 찾아보기 바란다.



■녹색 아이들

1656년 스코틀랜드 왕과 함께 여행하던 사절단 중 한 명인 윌리엄 데이비슨은 한마을에서 사고를 당하면서 왕과 떨어져 잠시 마을에 머물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온몸이 녹색으로 뒤덮인 여자아이와 남자아이를 만나게 된다. 그들은 인간의 언어도 모르고 그저 짐승 같은 울음소리만 내며 사람을 물거나 뚫어지게 쳐다보는 형태로 경계심을 내보였는데, 신기한 모양새와 신묘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듯 보였다.


이 녹색의 아이들은 어디에서 온 것이며,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기묘하고 독특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아이들의 삶과 문화는 우리 삶을 되돌아보게 만들었는데, 마지막에 사라진 이들은 어디로 간 것인지 그것 또한 미스터리로 남았다.



■병조림

오십이 넘은 노모는 독립은커녕 백수로 노모에게 빌붙어 사는 아들이 탐탁지 않다. 그러던 중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남은 아들은 어머니가 남긴 것들을 이것저것 뒤져보지만 나오는 건 현금도 주식도 아닌 병에 넣어 여기저기 보관 중인 병조림뿐이다.


아들은 여전히 빈둥거리며 어머니가 남긴 병조림을 하나씩 따서 먹기 시작하는데, 그러다 어느 날 병조림을 먹고 다 토해내게 된다. 그리고 결국 아들도 사망하게 된다.


여기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솔기

아내가 죽고 혼자 남은 노인 B 씨는 언젠가부터 일상의 별것 아닌 것들이 눈에 거슬리기 시작한다. 양말의 솔기, 볼펜의 색, 우표 모양 등.


때문에 익숙하던 일상이 낯설게 느껴지면서 점점 짜증을 유발하게 된다.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 낯섦 때문에 평정심을 서서히 잃어가는 B 씨는 서서히 세상 적응이 힘들어진다.


여기에 더해 체력과 질병까지 보태지며 씁쓸하고 힘겨운 노년기를 보내게 되는데, 홀로 남아 외로움은 물론 통제력까지 상실한 노년의 모습은 어딘가 모르게 남일처럼 여겨지지 않는다.



■방문

조간만 만나게 될지도 모를, 미래의 일을 그리고 있는 이 이야기 속에는 하나의 인물 '에곤'에서 갈라져 나온 동일 인물이 여러 형태로 나뉘어 다른 역할을 수행하며 살아간다.


이들은 하나의 가족으로써 존재하게 되는데, 새로운 형태의 로봇 혹은 인공지능이 탑재된 인조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듯하다.


이들은 같은 얼굴,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역할분담은 철저하다. 그리고 가족단위의 모습으로만 생활하기 때문에 단절과 고립은 기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이웃집에서 방문하겠다는 연락을 받게 되고 이로 인해 이 가족은 불편함과 당황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매일의 평온하고 반복적인 삶에 예상치 못한 바이러스 침투와 같은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시뮬레이션 한 대로 철저히 준비하지만 상황은 예상치 못하게 흐른다. 하지만 다행히 무사히 손님 접대를 마무리 짓고 이들은 다시 평정심을 찾는다. 기묘하지만 어딘가 현실 속에서도 일어날 수도 있을 것만 같은 미래세대 가족의 모습을 이 이야기를 통해 만나보면 어떨까?



■실화(實話)

학술대회 방문차 네덜란드에 오게 된 교수는 잠시 비는 시간을 틈타 홀로 거리를 걷게 된다. 그러다 우연히 지하철역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진 여자를 발견하게 되고 도움을 주기 위해 다가서게 된다.


하지만 아무리 주변에 도움을 외쳐도 아무도 그를 도와주는 이는 없고, 오히려 자신이 범인으로 의심을 받게 되면서 도망을 치게 된다. 그리고 가지고 있던 여권과 지갑, 휴대폰 등을 모두 분실하면서 자신을 증명할 방법 또한 없어진다.


이 일로 교수는 자신이 누리던 모든 것에서 멀어지게 되고 피투성이가 된 채 여기저기 쫓기는 신세가 된다. 그러면서 더 이상 자신이 속했던 공간에 다가설 수 없게 된다. 순식간에 이방인의 처지가 된 한 사람의 상황과 심리묘사를 이 이야기를 통해 만나보기를 바란다.



■심장

경제적으로 풍족한 삶을 사는 M 씨 부부는 유럽에 살고 있다. 이들은 겨울이 찾아오면 몇 달을 아시아에서 보내다 봄이면 다시 유럽으로 돌아오는 생활을 반복했는데, 그러던 중 중년 남성인 M 씨는 평소 앓고 있던 심장병이 더 악화되면서 결국 중국에서 장기 이식 수술을 받게 된다.


수술을 무사히 마쳤지만 그때부터 그는 주변 사물이 다르게 보이거나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을 다르게 받아들이게 된다. 한 번씩 강한 충동을 느끼는 M 씨는 이것의 원인을 찾기 위해 불현듯 아내와 함께 중국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기묘한 체험을 하게 되는데, 이것 또한 잠시 잠깐이다.


이들은 다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원래의 패턴대로 아시아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장기이식 수술을 하면 공여자의 기억이나 생활패턴 등이 수혜자에게 전이된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여기에서 착안한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트란스푸기움

어딘가 비밀스러운 시술이 벌어지는 숲으로 둘러싸인 트란스푸기움에 여자는 언니인 레나타 일로 찾아오게 된다. 언니와는 여섯 살 차이로, 부모님의 재혼으로 만들어진 의붓자매다.


어릴 적에는 나름 행복한 삶을 살았던 이들이지만 성인이 된 후 언니는 어딘가 모르게 변했는데, 특히 늑대들에게 깊은 애정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마침내 레나타는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다른 생물체로 전환하는 시술을 받기로 결정한다. 이에 가족들은 반대하지만 그녀는 자기의 주장을 그대로 밀고 나간다.


여자는 언니가 그런 결정을 내린 동기를 파헤치기 위해 그녀의 시술에 동행하지만, 결국 이유는 알아내지 못하고 시술 후 멀어져 가는 언니를 바라볼 뿐이다.


현재 '성'은 전환할 수 있으나 종은 전환이 어렵다. 이 소설은 여러 가지 의문과 여태껏 그려보지 못했던 또 다른 미래를 그려보게 만들었는데, 어쩐지 두려움과 더 큰 불행을 예고하는 이야기처럼 다가왔다.


미래에는 인간과 자연, 동물, 식물의 구분 없이 다른 생명체로의 전환이 가능할까? 만약 그 정도로 과학이 발달한다면 인간의 존엄성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이 모든 기술이 확고히 자리 잡는다면 지구는 제대로 존재할 수 있을까?



■모든 성인의 산(山)

폴란드의 심리학자인 나는 내가 개발한 심리검사로 성공을 거두게 되면서 승승장구하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러던 중 스위스 산중에 위치한 한 연구소에서 거액의 금액과 함께 비밀 보장 조건으로 제안을 받게 된다.


나는 이 제안을 수락하게 되는데, 단순히 돈만 보고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니고, 시한부 판정을 받은 이유도 한몫을 했다.


그렇게 십 대 소녀들을 대상으로 심리 실험을 하던 중 나는 그동안 미스터리로 남아 있던 이 실험의 목적을 파헤칠 수 있는 몇 가지 단서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종교적, 신비주의적 요소와 맞물리며 어딘가 미스터리 함과 비현실적 이야기를 다시 상상하게 만든다.



■인간의 축일력(祝日曆)

미래의 삶을 그리고 있지만 어딘가 모르게 더 낙후된 듯한 느낌이 드는 배경 속에는 과거부터 상징처럼 여겨져 온 모노디코스라는 존재가 자리하고 있다.


미디어를 통해 주로 이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국민들에게 있어 이 존재는 '신' 혹은 '신성한 존재'와 같이 여겨진다. 이 때문인지 이 존재가 소멸과 탄생을 이어가는 잠시 잠깐의 순간에는 이기한 일들이 종종 벌어지고는 하는데 이 때문에라도 이 존재의 부활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행해져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몇몇 소수의 관계자만 알고 있는 내용을 살펴보자면 사실 이 존재는 의미 없는 존재일 뿐만 아니라, 그저 대중을 위한 인형과 같은 존재다. 과거의 무용한 존재를 상징화 시켜 특권을 누리고자 하는 악습과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때문에 어떤 소수의 집단에서는 이 존재를 소멸시켜 과거를 타파하고 새로운 세상이 오기를 꿈꾼다. 현재 세상의 모습을 지키려는 자와 그것을 깨려는 자의 이야기를 그린 이야기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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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시선으로 바라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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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객


비행기를 타고 가던 중 옆자리에 앉은 승객은 불현듯 자신의 어릴 적 겪은 공포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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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원인은 딱히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부모님이 그의 방에 들러서 무슨 일이 있는지, 또는 무슨 꿈을 꾸는지 물을 때마다 그는 '그 남자' 또는 '누군가', 아니면 '그것'이라는 말만 되풀이 했다.

(...)

아이가 본 것은 자신의 방, 옷방과 창문 사이 어디쯤 서 있는 한 사내의 어두운 형체였다. 사내는 그곳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

이따금 담뱃불이 밝게 빛날 때면, 그의 이목구비가 어둠 속에서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피로에 찌든 창백한 눈동자가 약간의 원망을 머금은 채 아이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9~1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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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성장했고 그러면서 점차 밤중의 공포를 잊게 된다. 그러다 마침내는 아들과 부모 모두 어린 시절과 관련된 모든 것에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게 된다.


그렇게 의식하지 못하고 살던 중 육십 줄에 접어든 남자는 어느 날 저녁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왔고, 자기 전 담배를 한 대 태우고 싶어서 바깥의 어둠이 근시 거울로 변한 창가에 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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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성냥불의 섬광이 어둠의 장막을 꿰뚫었고, 잠시 후 담뱃불이 누군가의 얼굴을 비췄다. 그러자 어둠 속에서 예전의 바로 그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

남자는 사내를 즉시 알아보았다. 어린 시절과 하나도 변한 게 없이 그대로였다. 순간 어릴 때의 해묵은 습관이 곧바로 튀어나왔다. 남자는 비명을 내지르기 위해 깊게 숨을 들이마셨지만 그의 곁에는 불러낼 사람이 없었다. 부모님은 이미 오래전에 돌아가셨기에 그는 혼자였다.

(...)

바로 그 순간 남자는 자신이 한때 그토록 두려워하던 존재가 누구였는지 깨닫게 되었고, 비로소 진정한 안도감을 맛보았다. 바깥세상은 안전하다고 부모님은 늘 말했었다. 어떤 면에서는 부모님이 옳았다.


"지금 당신의 눈에 보이는 사람은 당신이 보고 있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당신을 보고 있기에 존재한다."


이 괴상한 이야기를 끝마치며 남자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1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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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객이 어릴 적 두려움과 공포를 느꼈던 인물은 아마도 중년에 접어든, 홀로 살고 있는 자기 자신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싶다.


두 가지 가설로 생각해 볼 수 있는데, 하나는 어린 소년의 내면에 미래에 대한 불안이 작용해서 미래의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는 가설 하나와, 두 번째는 영화 인터스텔라처럼 미래의 내가 과거의 나와 접점이 생긴 지점이 바로 그 어린 시절이라는 가설이다.


그래서 더 이상 나를 지켜줄 부모님도 없고, 외롭게 홀로 나이를 먹은 중년의 남성이 어린 시절의 나를 찾아와 원망스럽게 쳐다봤던 것은 아니었을까?


'바깥세상은 안전하다'는 부모님은 말은 여러 가지를 시사한다. 그중 나는 이 말을 이렇게 해석해 보았다. 바깥세상은 내 인생에 큰 영향력을 끼치지 않는다. 고로 안전하다!



●방문


동종의 균일한 개체들로 이루어진 소규모 가족 단위를 이루는 세상에서 우리 가족은 네 명의 어른과 한 명의 아이가 한 가족을 이루며 살고 있다.


우리는 하나의 인물 '에곤'에서 갈라져 나온 동일 인물로 각자의 역할은 나누어져 있다. '나'는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며 생계를 부양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최근 들어온 '레나'는 요리와 아내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알마'는 마당을 관리하며 채소와 꽃을 가꾸고 우리의 삶을 정돈하는 역할을 한다.


'파니아'는 아들을 도맡아 키우는 유모 역할로 세 살배기 아들 '찰림'을 돌보고 있다. 이렇게 다섯 가족이 평화롭게 지내던 어느 날 이들은 이웃집에서 방문하겠다는 연락을 받게 된다.


이에 불편함과 혼란을 느낀 이들 가족은 각자 역할을 분담하여 이웃 맞을 준비를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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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존재가 우리 집에 온다. 낯선 눈동자, 낯선 체취, 부드러운 카펫에 찍히는 낯선 흔적들. 그리고 그와 함께 저절로 따라오는, 출처를 알 수 없는 낯선 미생물들. 낯선 음색, 남성적인 데다 낮게 깔리며, 주변의 소리를 압도하는 음성. 사실 우리에겐 교우 관계나 오락거리가 전혀 부족하지 않았다.

(...)

이곳에서 우리 말고 다른 사람은 필요치 않았다.

그런데 얼마 전 이곳으로 이사 온 새 이웃이 우리 집을 방문 할 예정이다. 유대 관계를 맺고 싶어서임에 틀림없다.

(...)

하루를 송두리째 날리게 되자 알마는 짜증이 났고, 파니아도 성이 났다.

78~7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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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으로 이웃을 거부하고 있는 이들 가족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들은 철저히 고립과 단절된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고 이에 전혀 불만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불청객처럼 다가온 이웃의 존재는 불편함과 짜증, 화를 유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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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곧 자신과 똑같은 얼굴만 바라보며 지내다가 갑자기 다른 모습을 보게 되면 누구든 일종의 충격을 받게 마련이다. 그리고 나와 다른 모든 것은 추하고, 괴상하고, 투박하고, 어설프고, 기괴하게 느껴진다.

80페이지 中

요즘 같은 세상에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은 사람을 발견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타인은 따분한 대상이다. 당신이 이미 잘 아는 내용에 대해 타인이 할 수 있는 말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9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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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된 세상에서 새로 만나는 이웃 혹은 타인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적나라하게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들은 매일 매 순간 자신과 똑같은 모습을 한 가족만을 바라보며 살고 있으며, 그 생활이 이미 몸에 익은 상태다.


그러던 중 불현듯 자신과 다른 존재가 나타난다는 사실에 충격을 먹는다. 그리고 이것은 결코 긍정적 모습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더불어 타인은 따분한 대상이라 말하는 것을 통해 이들이 얼마나 편견과 편협한 사고를 가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여기까지 읽었을 때 어떤 기분이 드는가? 현재 우리의 모습 어딘가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가?


나와 다른 외모, 가치관, 사상, 생각을 가진 이들을 우리는 추하고, 괴상하고, 투박하고, 어설프고, 기괴하게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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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똑같은 리듬으로 숨을 쉬었고, 나는 우리의 몸이 살아 있음을 두 귀로 들었다. 극도로 행복하다고 느꼈다.

94~9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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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이 돌아간 뒤 이들은 똑같은 리듬, 똑같은 숨소리를 들으며 다시 행복을 느꼈다 말한다.


이 소설은 어딘가 모르게 현재의 우리 모습을 꼬집는 것처럼 느껴진다. 미래의 가상세계를 만들어 여기에 같은 곳, 같은 것만 추구하고 옹호하는 사람들의 심리와 편견을 다룬 이야기처럼 다가왔달까? 다양성이 배제된 사회와 세상의 모습은 이와 닮지 않았을까?



●실화(實話)


학술대회 방문차 네덜란드에 오게 된 교수는 잠시 비는 시간을 틈타 홀로 거리를 걷게 된다. 일행들과 함께 자리를 옮길 수도 있었지만, 교수는 그러지 않고 잠시 혼자 있는 시간을 갖지만, 이것이 결국 큰 사단을 만들게 된다.


지하철역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진 여자를 발견한 교수는 앞뒤 잴 것도 없이 그녀에게 다가가 도움을 주려 노력한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아무도 그의 말에 귀 기울여 주는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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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물줄기가 쓰러져 있는 여자를 무시한 채 자신의 물길을 따라 계속 흘러갔다는 표현이 어울릴 듯했다.

(...)

쓰러진 여자의 머리에서 계속 피가 흘렀지만 인간의 물줄기는 솜씨 좋게 그녀를 피해 갔고, 그 바람에 흐름의 형태가 구불구불하게 바뀌었다.

96~9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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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지하철역이지만 어느 누구도 여자를 향해 시선을 두거나 가까이 오는 사람이 없다. 그저 인간 물줄기처럼 그들은 자신들의 물길을 따라 흘러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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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와주세요!"

교수가 절망적으로 외쳤다.

군중은 교수의 투지에 분노한 것처럼 두 사람을 흘낏 내려다보며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마치 교수와 쓰러진 여인이 태양의 주변을 공전하는 지구의 운동을 막아서고 있다는 듯한 태도였다.


(...)


"경찰!"

교수가 단호하게 외쳤다.

그 어휘를 내뱉는 순간, 비로소 어떤 남자가 발걸음을 멈췄고, 그 뒤로 또 다른 누군가가 멈춰 섰다. 하지만 그들은 좀처럼 감정을 읽을 수 없는 담담한 표정으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가만히 서서 모든 상황을 지켜보기만 했다.

10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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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는 수도 없이 도움을 요청하지만, 아무도 이에 반응하지 않는다. 문득 교수는 '경찰'을 외치게 되고 이에 사람들은 제자리에서 멈춰서 일제히 교수를 쳐다보게 된다.


그리고 이내 구경꾼들도 그와 함께 '경찰'을 외치기 시작하고, 군중의 발걸음은 더욱 빨라지면서, 더욱 과민해진다.


순간 교수는 쓰러진 여자에게 몸을 숙이고 있으면 마치 자신이 그녀를 살해한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황급히 몸을 일으키지만 그 순간 누군가 그를 때렸고, 교수는 검붉은 핏빛 얼룩 속으로 넘어지게 된다.


경찰들인 군중을 헤치며 나타났고 그들은 쓰러진 여인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위협적인 시선으로 교수를 쳐다보게 된다. 교수는 그들이 자신을 범인으로 지목했음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린다.


어느새 재킷 속에 넣어둔 신분증과 여권, 휴대폰은 어딘가로 사라졌고, 교수는 공황 상태에 빠져 도망치기 시작한다.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자신이 묵고 있는 호텔이었지만, 몇 번이나 마주친 도어맨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내쳐졌고 학술대회가 열리는 곳에서도 도움을 받지 못한다.


교수는 선의를 베풀려고 하다가 졸지에 신분을 보증할 그 어떤 것도 가진 게 없는, 피범벅이 된 도망자 신세가 된 것이다.


요즘은 흔하게 외국을 가는 세상이라, 이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 같지 않았다. 어디서든 우리는 신분을 도용당하거나 빼앗길 수 있고, 또 미아 상태로 도망자 신세가 될 수도 있다.


매번 보던 사람도 나를 모른척할 수 있고, 선의로 베푼 선행이 되려 악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그래서 어딘가 낯선 곳으로 향한다는 것은 그만한 위험을 감수한다는 말과도 같다.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는 실제 이야기이기에 저자는 제목을 '실화(實話)'로 지은 것이 아닐까 한다.



●모든 성인의 산(山)


폴란드의 심리학자인 나는 스위스 산중에 위치한 한 연구소에서 거액의 금액을 제안받아 그곳에서 십 대 소녀들을 대상으로 심리 실험을 진행하게 된다.


이곳에 온 이유는 거액의 계약금도 있었지만 최근 시한부 판정을 받게 되면서,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려 집중할 만한 무언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에 비밀 보장 조건까지 승낙하며 목적도 알 수 없는 비밀 실험에 참여하게 된다. 내가 잠시 머물 곳은 여덟 명의 수녀들이 기거하는 낡은 수녀원으로 이곳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지내게 된다.


나의 가장 큰 성과 중 하나는 심리 테스트로, 그중 특히 성숙한 대상의 심리적 특성을 연구하는데 유용한 심리검사인 발달 경향 테스트(TTR)는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인정받으며 널리 사용되고 있다.


덕분에 나는 명성을 얻었고 교수직을 맡아 평탄한 삶을 살아오던 중이었다. 하지만 암의 발견과 두 번의 항암치료는 그런 나를 무력하게 만들었다.


취리히에서의 연구는 목적도 모른 채 진행되었는데, 이곳에서 생활하며 경험한 몇 가지 단서를 통해 나는 마침내 실험의 목적을 파악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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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에 문득 명쾌하면서도 단순한 생각이 떠올랐다. 이곳에서 나를 그렇게 괴롭혔지만 아무도 대답해 주지 않았던 질문에 대한 실질적인 답변이었다.

(...)

이 연구는 도대체 무엇인가?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단순하면서도 동시에 광기 어린 것이었고, 아마도 그래서 사실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곳에 도착한 첫날, 미리가 했던 순수한 질문이 다시금 떠올랐다.

"혹시 개를 복제할 생각은 안 해 보셨나요? 중국에서는 이미 그런 걸 한다고 들었어요."

(...)

그들의 생년월일과 함께 태어난 시간과 장소까지 기재되어 있었다. 마치 연구의 일환으로 아이들에게 별자리를 만들어 주려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실 누가 알겠는가, 어쩌면 그것도 계획의 일부였을지 모른다. 나는 연필로 각각의 이름과 날짜에 서명을 부여했다.

21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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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자인 '나'는 무언가 제대로 된 해답을 찾은 듯해 보인다. 하지만 독자인 나는 그 해답을 유추할 수밖에 없다. 다소 비현실적이지만 저자가 준 몇 가지 단서를 통해 나 역시 몇 가지 키워드를 걸러내고 여기에서 나만의 답을 찾아보았다.


키워드① 광기 어린 생각

키워드② 개를 복제하다

키워드③ 생년월일, 태어난 시간과 장소



-----

고통의 경계선에서 괴로워하다 예상했던 안도의 순간이 깃들기 바로 직전, 갑자기 내 머릿속에서 파일과 기호들, 연구 대상인 청소년들을 명시하는 날짜와 서명들, 소녀원 정문 위에 새겨진 문구, 다니의 미소, 검은 트러플 조각, 그리고 죽은 개에 대해 물어보던 미리의 근심스런 눈빛-이 모든 것들이 마치 끈적끈적한 눈덩이처럼 한데 뭉쳐 굴러가기 시작했다.

(...)

상황은 점점 명확해졌다. 단지 글자 뒤의 숫자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아마도 실험의 횟수나 어떤 버전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

간단했다.

아시시의 성녀 클라라-부패의 흔적이 전혀 없는 시신이 19세기 중반부터 성녀 클라라 성당의 크리스털 진열장에 전시되어 있다.

(...)

성 프란치스코-양호한 상태의 골격이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에 보존되어 있다.

(...)

나는 방금 틱택토 게임의 격자무늬에 아름다운 동그라미를 그려 넣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217~21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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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단서를 얻을 수 있는 부분이다.


키워드④ 파일과 기호들

키워드⑤ 대상자들을 명시하는 날짜와 서명

키워드⑥ 소녀원 정문에 새겨진 문구

키워드⑦ 다니의 미소

키워드⑧ 검은 트러플 조각

키워드⑨ 죽은 개에 대해 물어보던 미리의 근심 어린 눈빛



*파일의 기호들

-Hd 1.2.2

-JhC1.1.2/JhC 1.1.1


*다니: 프로젝트 연구 책임자

*빅토르: 프로젝트 매니저


*내가 하는 실험

아이들은 산악 학교로 알려진 이곳에서 석 달 동안 학습과 놀이를 통해 자신의 능력과 역량을 검사를 받는다. 모두 입양된 아이들로 이 프로젝트는 사회 자본이 개인의 성장과 발달에 미치는 영향과 다양한 환경 변수가 미래의 직업적 성과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다니와 빅토르는 정확한 프로필과 미래에 대한 예측을 원했다.


*봉쇄 수녀들을 위한 예배당 입구 문구

고린도전서 14장 45절: 성경에 기록된 대로 첫 인간 아담은 살아 있는 영혼이 되었고 마지막 아담은 생명을 주는 영이 되었다.


*옥시: 인간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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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앞에서 택시를 기다리는데 울타리에 앉아 있는 미리가 보였다.

(...)

"클라라?"

마침내 내가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속삭였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 아이의 손을 잡고 내 이마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소녀는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몇 초가 흐른 뒤에야 그녀는 내 말을 알아듣고는 내 눈과 귀를 어루만졌다. 그러고는 두 손을 내 심장 위에 올렸다. 바로 거기, 내가 그녀의 손길을 가장 필요로 하던 곳에.

21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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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를 마치고 떠나기 전 마중 나온 듯 보이는 미리에게 나는 성녀의 이름 '클라라?'라며 조용히 속삭인다. 이에 아이는 조금도 놀라지 않고 두 손을 심장 위에 올려준다. 내가 가장 손길을 필요로 하는 그곳에.


여기까지 단서를 짜 맞춰 보면서 내린 결론은 이들이 하는 프로젝트는 고아 소녀들을 데려다가 성녀를 만들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똑똑하고 특별한 아이들이 나무가 되어 세상에 한 획을 그었듯이 이들은 심리 테스트를 통해 성녀가 될 재목을 찾아 여러 실험을 진행하고, 앞서 세상을 떠난 성녀들과 매칭이 가장 잘 되는 소녀들을 골라 영이 환생하거나 혹은 성녀를 만들어낸다는 개념으로 파악했다.


이 중 미리는 이미 아시시의 성녀 클라라에 빙의했거나 그에 응답한 것으로 보인다. 일반인의 시선으로 봤을 때 이것은 광기 어린 생각이다. 그리고 다른 관점으로 보자면 신비스럽기도 하고 미스터리하게 보이기도 한다.


점점 줄어들고 있는 교회의 수녀들, 그리고 원장수녀인 안나수녀를 통해 전해 들은 과거의 이력들을 쭉 들어왔을 때, 어쩌면 이것은 또다시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시도가 아닐까 한다.


특히 고아들을 골라 실험을 하고 있다는 점, 유명한 심리학자를 데려다가 정확한 예측을 함과 동시에 그녀는 시한부로 곧 세상을 떠날 예정이니 또다시 비밀은 묻힐 것을 고려한다면 이것은 명백한 팩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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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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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가 토카르추크의 이야기는 여러 번 곱씹어야 그 맛이 살아난다. 그림책도 그러할진대, 소설은 말해 무엇할까? 미스터리함과 신비스러움,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며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한 번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


두 번, 세 번 읽고 쓰며 추리하고 상상해야 미약한 단서의 조각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어디까지 뻗어갈 수 있을지는 독자들의 선택에 달려있는 만큼 그동안 가지고 있는 경계선을 이번 기회에 넘어보면 어떨까 한다.


시간적 제한이 있어 현재 내가 발휘할 수 있는 상상의 범주는 여기까지지만,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인다면 아마도 더 많은 이야기와 새로운 창조의 공간이 나타나지 않을까?


더불어, 같은 책을 읽고 다른 독자들은 어떤 상상의 나래를 펼쳤을지, 또 어떤 결론에 다다랐을지 너무너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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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2-09 18: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버니 2025-02-09 18:12   좋아요 0 | URL
독자의 생각은 저마다 다를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소설에 정답은 없지요. 본인의 생각을 강요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저만의 추리와 추측으로 남긴 글이며 리건님의 의견 또한 정답이라 할수 없고요. 그냥 의견을 나누는 댓글형태로 남겨주셨음 더 좋았을것 같네요.
 
한국의 아름다운 시 마음을 다해 쓰는 글씨, 나만의 필사책
윤동주 외 지음 / 마음시선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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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록새록 떠오르는 추억의 시들"


필사책을 여럿 만나봤지만, 한국의 유명한 시를 테마로 한 필사책은 처음인 듯하다. 참신하고 기발한 아이디어에 박수가 절로 나온다.

책의 표지나 내지의 디자인도 한국적인 느낌이 물씬 풍겨 외국인 친구나 필사를 즐겨 하는 이에게 선물하기 딱 좋은 책이 아닐까 한다.

중고등학교 때 시험을 위해 만났던 어렵게만 느껴졌던 시가, 읽고 감상하고 쓰면서 이렇게 반갑게 다가올 수도 있구나 새삼 깨닫게 된다.

종국에는 흥얼거리기도 했는데, 특히 노래로 만들어졌던 <진달래꽃>, <엄마야 누나야>와 같은 시가 그러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 7명의 아름다운 시를 읽고 필사할 수 있는 책이다. 특히 이들은 조국을 위한 마음을 한껏 담은 시인으로도 유명한데, 그래서인지 당시의 아픔과 시대적 배경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시간이 지나서 다시 과거 그때의 그 시를 접하니, 학창 시절과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아마도 어떤 목적을 위해서 시를 접하고 쓰는 게 아니라, 순전히 시 자체를 즐길 수 있는 상황이라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마지막에는 각 시를 더 깊이 이해하고 생각할 수 있는 질문들이 준비되어 있는데, 시를 읽고 이 질문들에 답하며 다른 관점으로 다가가 보는 것도 시를 음미하는 또 다른 방법이 되지 않을까 한다.

아직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따사로운 가을날이 떠나가기 전에, 의미 있는 시를 읽고, 쓰고, 감상하고, 질문에 답하며 시를 마음에 담아보면 어떨까 한다. 더불어 아날로그 감성을 더해 색이 고운 나뭇잎 한두 장 끼워 넣어 말려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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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대표하는 7명의 시인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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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1917~1945)
-윤동주는 일제강점기 한국의 저항 시인으로, 조국의 독립과 민족의 자유를 갈망하며 시를 통해 자신의 신념을 표현했다.
-만주 북간도에서 태어난 그는 한국의 독립운동이 활발하던 환경에서 성장했다.
-광복을 앞둔 1945년 2월, 젊은 나이에 옥사했다. 그의 죽음은 일제의 잔혹함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고, 이후 그의 시는 한국 문학사에서 저항과 순수한 예술적 혼을 상징하는 작품으로 자리매김했다.


■김소월(1902~1934)
-김소월은 한국을 대표적인 서정 시인으로, 본명은 김정식이다.
-김소월의 시는 주로 민요적 리듬과 토속적 언어를 사용하여 전통적인 정서를 표현하며 <진달래꽃>, <산유화>, <초혼> 등이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김소월의 시 세계는 단순한 서정성을 넘어,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한국인의 상실감과 슬픔을 대변하는 역할을 했다.
-그의 시는 민족적 애환과 함께 자연과 인간의 내면을 아름답게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34년 32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쳤다.


■한용운(1879-1944)
-한용운은 일제강점기 한국의 독립운동가이자 저항 시인, 불교 승려이다.
-1919년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참여하여 독립선언서에 서명했고, 이로 인해 체포되어 3년간 옥고를 치렀으나 그의 투지는 꺾이지 않았다.
-한용운의 시는 조국의 독립을 염원하는 강렬한 감정과 불굴의 의지를 담고 있으며 그의 대표작 <님의 침묵>은 이러한 저항 의식을 잘 보여준다.
-그는 일제의 강압 속에서도 민족의 자주성과 독립을 위해 평생을 헌신했고 1944년 6월, 서울 성북동에서 생을 마감했다.


■정지용(1902-1950)
-정지용은 한국의 대표적인 서정 시인으로, 서정적인 감수성과 탁월한 언어 감각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일본 교토의 도시샤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하면서 서구 문학의 영향을 받아 한국어의 아름다움을 새로운 방식으로 탐구했다.
-정지용은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의 혼란스러운 시대를 거치면서도 순수 문학의 가치를 지키며 한국 시문학의 발전에 기여했다.
-한국전쟁 중 실종되어 사망 장소와 시기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으나, 1950년 9월 납북 과정에서 미군의 폭격으로 사망했다는 내용의 기사가 발표된 적이 있다.


■김영랑(1903-1950)
-김영랑은 일제강점기 한국의 시인이자 독립운동가로, 본명은 김윤식이다.
-1920년대 말 순수 서정시를 추구하는 '시문학파'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한국 현대 시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독립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는데, 1930년대 중반부터 항일 운동에 가담하여 일제의 식민 통치에 저항했으며 이로 인해 여러 차례 투옥되기도 했다.
-1950년 한국전쟁 중 포탄 파편을 맞아 사망했다.
-김영랑은 민족의 아픔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담아낸 시인으로 기억되고 있다.


■이육사(1904-1944)
-이육사는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저항 시인이자 독립운동가로, 본명은 이원록이다.
-그는 평생을 독립을 위해 싸우며 문학과 투쟁을 결합한 독특한 행보를 보였다.
-그의 시는 강렬한 저항정신과 민족의식을 담고 있으며, 대표작인 <광야>, <청포도>, <절정> 등은 고난의 시대 속에서 자유와 독립을 향한 열망을 그려낸다.
-이육사는 여러 차례 투옥되었고, 마지막으로 체포된 후 1944년 북경의 감옥에서 생을 마감했다.


■이상(1910-1937)
-이상은 한국 현대문학사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시인이자 소설가로, 본명은 김해경이다.
-이상의 작품은 복잡한 상징과 이미지, 파격적인 형식으로 독자들에게 충격을 준다.
-현실의 부조리와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며, 자신만의 독창적인 문학 세계를 구축했으나 병약한 몸과 경제적 어려움, 정신적 고뇌 속에서 폐결핵으로 짧은 생애를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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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 자세히 들여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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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눈>Q. 시인은 눈을 '덮어주는 이불'이라고 표현합니다. 여러분은 눈이 내릴 때 어떤 느낌이 드나요? 만약 이불처럼 따뜻하게 누군가를 덮어줄 수 있다면, 누구를 덮어주고 싶나요?

A. 눈이 내리는 모습을 볼 때면 하얀 설탕가루를 뿌리는 듯한 느낌이 들고는 한다. 더럽고 추악한 것들을 하얗고 달콤한 것들로 덮어주는 느낌이랄까?

만약 누군가를 따뜻하게 덮어줄 수 있다면, 상처받은 이들이나 버림받은 이들에게 덮어주고 싶다. 상황에 따라 그게 나 자신이 될 수도 있을 것이고, 가까운 지인이나 혹은 모르는 누군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김소월 <진달래꽃>Q. 시인은 진달래꽃을 길에 뿌려서 누군가를 배웅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만약 소중한 사람을 위해 꽃을 뿌린다면, 어떤 꽃을 뿌리고 싶나요?

A. 어떤 꽃이냐라기보다는 소중한 사람에게 어울리는 꽃을 뿌려주고 싶다. 그 기준은 꽃말이 될 수도 있고, 컬러가 될 수도 있고, 혹은 모양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한용운 <복종>Q. 시인은 '복종'이 다른 사람에게 순순히 따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누군가를 기꺼이 따르거나 도와준 적이 있나요? 그때 어떤 마음이었나요?

A. 기본적으로는 '복종'이라는 말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누군가를 따른다'는 개념으로 봤을 때는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나 열정을 다하는 사람에게는 기꺼이 따르거나 도움을 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보통 이럴 때는 찝찝함이나 마음속 갈등은 없다. 그저 개운하고 또 뿌듯함이 남을 뿐이다. 따르지만 오히려 고맙다는 느낌이 든달까?


정지용 <호수 1>Q. 시인은 호수를 바라보며 누군가를 떠올립니다. 여러분도 어떤 장소를 보며 특별한 사람이나 추억이 떠오른 적이 있나요?

A. 어릴 적 살던 장소, 어떤 물건을 볼 때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이제는 영원히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사람.


김영랑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Q. 시인은 돌담에 비치는 햇살을 보고 있습니다. 햇살이 따뜻하게 비추는 날에 어디에 가고 싶나요? 햇살을 받으며 놀거나 산책한 기억 중에 가장 즐거웠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A. 햇살이 좋은 날이면, 어디든 걷고 싶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든다. 이동이 가능한 상황이라면 보다 멀리, 안되는 상황이라면 가까운 공원이나 산을 걸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기억에 남는 순간은, 최악의 날이었던 어느 날 제주도 올레길 코스를 걸으며 자연에 흠뻑 동화되었던 날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덕분에 제주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걷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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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들여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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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봄 물보다 깊으니라.
가을 산보다 높으니라.
달보다 빛나리라.
돌보다 굳으리라.
사랑을 묻는 이 있거든
이대로만 말하리.
-시인 한용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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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운은 사랑에 대해 '깊고, 높고, 빛나고, 굳은 마음'을 사랑이라 말한다. 각자 사랑에 대한 정의는 제각각이겠지만, 이 네 가지 마음은 모두 같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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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창 1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
열없이 붙어 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닥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 나가고 밀려와 부딪치고
물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운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아아, 너는 산새처럼 날아갔구나!
-시인 정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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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캄한 어둠이 드리운 밤에 투명한 창을 통해 밤하늘을 바라보는 것은 황홀하면서도 외로운 마음이 들게 만든다. 그래서인지 이 순간은 낭만적이면서도 어쩐지 쓸쓸함을 떠올리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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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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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수험공부로만 만났던 시였는데, 세월이 흐르고 이제는 아무 목적 없이 만나니 시가 다르게 보인다. 선생님이 일러주던 뜻과 의미, 상징이 아니라 내 식대로, 내 마음이 읽히는 대로 시를 바라보게 된다.

그래서인지 때론 어떤 단어에 꽂히기도 하고, 또 어떨 때는 시가 주는 분위기에 젖어들기도 한다. 일제강점기라는 우울하고 참혹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태어난 시임에도 불구하고, 따뜻하고 다정하게 다가온다.

독립을 위해 애쓰면서도 문학적인 외침을 놓지 않았던 이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는 것이겠지! 고마운 마음을 담아 한 줄을 읽고, 감사한 마음을 담아 또 한 줄을 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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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지만 타인입니다 - 조금 멀찍이 떨어져 마침내, 상처의 고리를 끊어낸 마음 치유기
원정미 지음 / 서사원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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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의 대물림을 끊어내고, 스스로 정서적 결핍을 치유한 저자의 자전적 이야기!"



이 책을 읽고 난 뒤 가장 처음 느낀 감정은 '와 이렇게까지 솔직하다고?'였다. 이 책은 앞서 읽었던 그녀의 신작 <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던 거야>을 읽고 궁금한 마음에 읽게 된 책이었는데, 솔직하게 담은 저자의 자전적 이야기가 깊은 울림과 공감을 불러일으켜 주변에도 추천해 주고 싶은 책이다.


특히 가부장제나 남녀 차별, 남존여비 사상 등을 들으며 커온 세대들에게는 더 그렇지 않을까 한다. 엄마의 엄마의 엄마들도 그래왔기에 그 누구에게도 억울함과 상처를 차마 드러낼 수 없었던 여성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박차고 일어나 씩씩하게 나 홀로 서는 선택을 했고, 굳은 결심을 통해 상처가 대물림 되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노력했던 흔적들이 엿보여 읽는 내내 토닥여주고 응원해 주고 싶은 기분이었달까?


더불어 자신의 아픔에만 매몰되지 않고,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책과 공부를 선택함으로써 이제는 어엿한 심리학자이자 상담 학자가 되었다. 그리고 이 책에는 주관적 경험과 객관적 심리상태를 기록으로 담음으로써 저자 자신에게나 독자들에게도 의미 있는 책이 아닐까 한다.



총 4막으로 구성된 이 책은, 저자가 어린 시절부터 경험한 상처와 치유의 과정을 담고 있으며, 여기에 더해 상담 학자로써 이 상황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본 의견을 함께 엮었다. 덕분에 일련의 과정 속에서 '관계'와 '심리'를 주관적, 객관적 관점 모두에서 들여다볼 수 있었다.


또 각 챕터가 끝나는 부분에는 21개의 체크리스트를 첨부해 둠으로써 독자 역시 자신의 마음과 상태를 파악해 볼 수 있도록 했는데, 덕분에 하나하나 마음속으로 체크해 보면서 나의 내면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어떤 식으로든 상처는 대물림 된다. 특히 가족 사이에 전파되는 상처는 외부에 잘 드러나지 않을뿐더러, 세대를 거듭할수록 더 강력하고 더 잔인해질 수밖에 없다.


나의 결핍은 나의 대에서 끝나지 않고, 나의 결핍까지 더해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 부모의 사랑과 관심을 먹고 사는 아이들은 그런 부모 밑에서 성장하게 되면 완연한 사랑을 먹고 자란 아이들과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언제든 억눌려온 감정은 폭발할 수 있으며, 그래서 늘 조마조마한 상태로 살 수밖에 없다. 부모, 가정 사이에서 벌어진 이런 불완전한 관계는 나아가 학교, 친구, 사회로까지 연결되기에 어쩌면 우리는 가정환경을 그토록 따지는 지도 모르겠다.



아래는 저자가 담은 생생한 유년기의 이야기와 심리학자로써 담은 이야기를 구분하여 정리하였다. 꽤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는바, 문단의 내용이 생략되어 있을지언정 직접 기술한 상황에 대한 부분은 최대한 그대로 담으려고 노력했다.


혹여 줄이거나 변형하면서 당시 저자가 느꼈던 불우한 유년 시절에 대한 내용이 가볍게 들릴까 봐, 혹은 이 악물고 버틴 상처를 잘못 건드리게 될까 봐 자전적 이야기에 대한 내용은 중요 내용만을 꼽아 그대로 담았다.


반면, 상담가로써 객관적인 관점으로 서술한 부분에 대해서는 공감 갔던 부분을 위주로 꼽아보았다. 성장과정을 거치며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 봄직한 마음의 열기도 느껴져 많은 사람들이 읽고 느끼는 바가 많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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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차별적이고 냉랭했던 우리 집 분위기는 나를 가치 없고 무능력한 존재로 만들었다.

(...)

후에 심리학과 상담심리학을 공부하면서 인간 존재의 의미는 타인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 피를 나눈 가족이라도 서로를 제대로 사랑할 수 없음을 깨달았고, 때로는 그들로부터 한 발짝 물러나야 함을 배웠다. 가족이라도 타인을 대하듯 적절한 거리와 예의를 갖추는 것이 건강한 관계의 지름길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렇게 상처받은 가족과 떨어져 나를 먼저 돌아보고, 사랑하는 법을 배움으로써 나는 회복되었다.

프롤로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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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결핍을 스스로의 노력을 통해 채워간 상담가의 마음 치유기, 그럼 지금부터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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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불우했던 자전적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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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다른 집들도 우리 집과 크게 다르지 않은 줄 알았다. 그러나 몇 살 더 먹고 나니 우리 집이 유독 할머니와 어머니의 고부 갈등이 심하다는 것을, 그 고부 갈등으로 인해 부모님의 부부 싸움 또한 잦다는 것을 깨달았다. 난 잘 곳도 있고 배고프지도 않았지만 늘 불안하고 두려웠다. 그리고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 외로웠다.


나는 건물 옥상에 올라가 바닥을 내려다보며 '여기서 떨어지면 단번에 죽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이유 없이 자주 배가 아팠고, 어딜 가나 불안했고, 밤마다 악몽을 꾸었다. 고통스럽게 않게 죽는 방법이 있다면 그렇게 세상을 떠나고 싶었다. 이런 증상들이 평범한 아이들이 겪는 감정이 아니라는 것을 그로부터 30년이 지나 미국에서 상담학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되었다.


그랬다. 나는 가정에서 정서적 유대와 안도감, 사랑받는 느낌을 경험해 보지 못했다.


내가 어렸을 때 선생님은 부모보다 더 권위 있는 존재였고 선생님의 모든 말과 행동은 곧 법이었다. 학생들은 대걸레 자루에 엉덩이를 맞기도, 단체로 책상 위에 올라가 무릎 꿇고 의자를 든 채 한 시간씩 벌을 받기도 했다. 집에서 그랬던 것처럼 나는 학교에서도 늘 긴장했고 불안을 느꼈다. 마음 편하게 있을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먹고살기 바빴던 부모님과 본인들 문제만으로도 벅찬 어른들 사이에서 나는 먼지 같은 존재였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


세월이 흘러 나도 부모가 되었고 심리치료사가 되었다. 이제는 안다. 부모님은 그들의 방식대로 나와 오빠를 사랑했다.


심리치료사의 관점으로 보자면 부모님은 심각한 아동학대의 피해자였다. 부모님은 본인이 경험하고 체득한 방식으로 우리를 키웠다.


사랑과 인내 그리고 용납으로 양육하기보다 체벌, 엄포, 협박으로 우리를 굴복시켰다. 부모님 내면에 감춰진 불안과 걱정을 해소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나를 혼내고 협박하는 것이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내 마음속 혼란은 잠들지 않았고 부모님을 원망하며 괴로워했다.


어느 날, 결혼 가족치료사 인턴을 하던 도중 트라우마 훈련 과정에서 교수님의 말을 듣고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트라우마는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일이 일어난 것이고 또 일어났어야 할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한 마디로 일어났어야 할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내가 괴롭고 아팠던 것은 내가 이상해서가 아니라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보통 '트라우마'라고 하면 재난이나 사건 같은 큰 일회성 사건만 떠올리지만, 개인의 존재와 가치에 손상을 입히는 지속적인 행위도 트라우마가 될 수 있다. 나 또한 내가 트라우마를 가진 줄도 모르고 성장했다.


험난한 성장 과정을 거친 두 사람(부모님)이 만나 가정을 이루었으니 그 가정이 건강할 리가 없었다. 내면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부부의 결혼 생활은 그야말로 전쟁이었다.


어느 날 생전 처음으로 미술 학원에 보내달라는 나의 요청에 아버지는 네까짓 게 그림을 그리면 얼만 잘 그리냐며, 예술은 머리에 똥이 든 애들이나 하는 짓이라며 잔소리를 하게 되는데, 이 사건을 계기로 나는 마음의 문을 완전히 닫았다.


'그래, 아버지는 내 마음 같은 건 안중에도 없구나. 그럼 나도 아버지에게 이런 부탁 같은 것은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리고 그 이후 아버지와 그 어떤 깊은 대화도 하지 않았다. 자식의 꿈보다 돈이 더 중요한 아버지에게 그렇게 복수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내가 가장 화나고 슬펐던 것은 아버지는 내게 '완벽하게 무관심 했다'는 것이다.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 무관심이 마음속에 비수로 박혔다.


사춘기 때에는 나의 차별 대상인 오빠를 무작정 미워했고 한 집안의 가장이면서 늘 남의 편인 아버지에게 분노했다. 오빠의 사춘기 어린 장난질이나 아버지의 손길을 혐오하고 경멸했다. 마치 남자에게 원수라도 진 사람처럼. 누구에게도 말하진 못했지만 나의 분노는 생각보다 매우 컸다. 마치 마음에 시한폭탄을 하나 안고 사는 것 같았다.


이렇듯 어린 시절 내 마음은 언제 깨질지 모르는 차가운 살얼음판 같았다. 그러나 그때 나를 붙잡아준 사람들이 있다. 나의 오빠와 사촌 동생들이었다. 나보다 두 살 위인 오빠는 참 밉고도 고마운 존재다. 살면서 오빠로부터 복잡 미묘한 감정을 정말 많이 느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래도 오빠 덕분에 집에서 숨을 쉴 수 있었다. 똑똑하고 글쓰기에도 소질이 있었던 오빠는 내게 언니 같은 존재였다. 죽일 듯이 서로 싸우기도 했지만, 여자 마음을 잘 아는 오빠와 대화도 잘 통했고 사이좋게 놀 땐 그 누구보다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어머니만큼이나 불행한 결혼 생활을 했던 이모와 그녀의 딸들도 나만큼 힘든 시절을 보냈다. 그 시절 갈 곳 없던 이모는 사촌 동생들을 데리고 우리 집에 자주 왔었고 우리는 하루가 멀다 하고 만났다. 그렇게 자주 만나면 싸울 법도 하건만 우리 넷은 그런 적이 없다.


함께했던 그 시간만큼은 불안하지 않았다. 현실을 잊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자 숨을 쉴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내가 무너지지 않도록 잡아준 존재들 덕분에 그 시절을 버티었다.


공부 머리가 없다고 철석같이 믿었던 나는 우여곡절 끝에 지방대 아동 학교로 진학했다. 그 선택은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잘한 일 중 하나가 되었다.


아동학을 공부하며 인간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고, 그동안 몰랐던 새로운 세상도 알게 되었다. 나는 공부하며 어른 시절부터 느꼈던 복잡한 감정, 그리고 이해되지 않았던 부모님 행동의 원인을 찾을 수 있었다.


또 한 사람의 뇌는 어떻게 작동하며 기억은 어떻게 저장되는지, 어떻게 공부해야 기억에 좀 더 오래 남는지 공부하면서 실제로 일상생활에 적용해 보기도 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공부가 잘되기 시작했고 학과 공부가 재미있어졌다. 공부가 재미있어지니 성적은 자연스럽게 올라갔다. 학교에서 노트 필기 잘하고 공부 잘하는 친구로 인정을 받기도 했다. 나는 공부머리 없는 바보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후 나는 미국에 가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는데, 부모님께 2년을 약속하고 설득해 미국 유학길에 오를 수 있었다. 그리고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깨달았다. 내 영어 실력으로 대학원은 어림도 없었다.


그전까지 나는 한국에 살고 있어서 인지하지 못했을 뿐, 사회 불안 장애가 있었다. 타국에서 낯선 사람들과 친해지고 수업 시간에 영어로 토론하고 발표하는 것은 내게 그야말로 공포였다.


그러나 나는 미국에 살고 싶었다. 남을 의식하지 않는 자유로운 옷차림에 유행이란 것도 없고 나이가 많든 적든 서로 평등하게 대화하며 존중하는 모습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나의 목표는 유학이 아닌 '정착'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새로운 나라에 정착할 가장 좋은 방법을 찾았다. 바로 결혼이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정말 무모하고 위험한 선택이자, 내 인생에서 가장 이기적이고 무모한 선택이었다.


아버지의 지원에 약속했던 보답을 하지 못하는 결정이었고, 우리 남매와 함께 밥 먹으며 수다 떠는 것이 불행한 결혼생활의 유일한 기쁨이었던 어머니에게는 큰 배신이었다. 더불어 앞으로 부모님에게 일어날 모든 일을 오빠에게 떠넘기는 것 같아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그러나 그때 나는 다른 것은 차치하기로 했다. 어떤 이해관계나 가족들의 상황 모두를 내려놓고 나만 생각하기로, 내 행복만 생각하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나는 미국에 정착했다.


결혼은 내게 부모로부터의 완벽한 독립을 선사해 주었다. 정서적, 경제적으로 완벽히 독립적인 삶을 살고자 노력했다.


독립하고 몇 년이 지나자 어머니는 애를 봐달라, 반찬을 해달라, 돈을 빌려달라 요구하지 않는 나에게 오히려 고마워했다.


어머니는 그 당시 평생소원이었던 공부를 다시 하며 자신의 삶을 되찾고 있었는데, 주변의 어머니 또래 친구들은 또다시 자식에게 매여 손주 육아며 자식 살림을 거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오롯이 독립했다. 우리는 각자 완벽하게 독립함으로써 서로 다시 연결되었다.


교회 오빠였던 남편과의 결혼을 결심했을 때 내 부모의 불행한 결혼을 절대로 답습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러나 신혼의 달콤함은 오래가지 못했고 나 또한 결혼의 현실을 보았다.


연애 때 매력이라고 생각했던 모습들은 24시간 함께 일상을 공유하면 할수록 불편함으로 다가왔다. 그러니 정말 별일 아닌 일로 싸우기 일쑤였다.


그러자 나도 별 수 없이 그저 그런 결혼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두려웠다. 그 당시 친한 친구 하나 없던 미국에서 나는 그저 막막했다.


그러나 나는 반드시 답을 찾아야 했다. 나뿐만 아니라 딸을 위해서도 남편과의 갈등을 해결할 돌파구를 찾아야만 했다.


이것이 나에게 관계 공부를 하게 한 강력한 동기가 되었다. 그때부터 결혼과 인간관계에 관한 서적을 읽기 시작했다. 자라면서 보고 배운 게 없으니 책으로라도 배워야 했다. 책들을 읽으며 알게 되었다. 내가 알고 경험했던 모든 인간관계는 미성숙한 것뿐이었다는 것을.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깨닫고 남자와 여자가 얼마나 다른지,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성향이나 성격이 얼마나 다른지 알고 나자 남편의 생각과 행동이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임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 사이의 사랑의 언어도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상대가 내 마음 같지 않을 수 있음을 인정하며 이해하고 배려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맞추어 갔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쌓이고 소중해지자 우리는 서로에게 일 순위가 되었다.


그는 한 번도 나를 탓하지도 비난하지도 않았다. 덕분에 나는 세상 그 누구에게도 드러내지 못한 나의 민낯과 상처를 그에게 보여주며 상처를 꿰매는 작업을 수도 없이 했다. 사람을 믿지 못하던 고질병도 점점 고쳐졌다. 남편은 내가 온전히 기대고 의지할 수 있는 그 '한 사람'이 되어 주었다.


결혼은 불완전한 부모 밑에서 자란 인간에게 주는 두 번째 애착의 기회다. 인간에겐 그 무엇보다 나를 진정 이해하고 사랑하는 단 '한 사람'만 있으면 된다는 것을, 그리고 그 한 사람이 배우자가 될 때 마음의 그늘이 기적처럼 회복된다는 것을 나는 몸소 배웠다.


나는 운이 너무나 좋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처럼 상처받고 꼬인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사랑과 인정에 대한 욕구가 높아 잘못된 관계에 얽히기 쉽다. 그래서 상처받는 관계를 반복하는 악순환에 휘말리는 경우가 흔하다.


배우자 선택에 있어서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와 객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자신에 대한 이해가 배우자의 능력과 스펙보다 훨씬 중요하다. 결혼은 내 삶을 누군가와 온전히 공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도 잘 모르는 채 평생 함께할 누군가를 선택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기질이 너무나 다른 세 아이를 키우면서 양육은 농사와 비슷하다는 것을 배웠다. 세상에는 너무나 다양한 식물이 있고, 각각의 종자는 재배법이 다르다.


부모는 자신이 어떤 기질의 사람인지 그리고 우리 아이는 어떤 성향인지를 먼저 관찰하고 이해하는 것이 양육의 가장 중요한 시작점이다.


딸이 자아가 생기기 시작하는 미운 일곱 살이 되자 정말로 이유 없이 미워지기 시작했다. 아이는 여느 아이와 같이 장난치고, 말썽 부리고, 말대꾸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아이였지만 나는 그런 아이의 모습을 용납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함께 웃고 놀아주는 시간보다 벌세우고 윽박지르는 시간이 늘었고 냉정하게 대하기도 했다. 이런 생활을 반복하며 나 자신에게 '왜?'라는 질문을 수없이 던졌고 길고 긴 고민 끝에 나는 내 속의 진짜 감정을 찾아냈다.


딸아이에게 질투심을 느껴서 화가 나는 것이었다. 내가 딸아이 나이였을 때는 집에서 먼지 같은 존재였는데, 딸아이는 어딜 가나 모든 이의 사랑과 관심을 독차지 하는 것이 미웠던 것이다. 내면아이가 질투심을 느끼고 있으니 아이를 제대로 사랑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저자는 상담학을 공부하면서 스스로 자신의 상황을 인정하고 더 나은 선택을 함으로써 스스로 치유하고, 회복하고, 성장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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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적이었던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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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인간의 인생은 자신을 사랑하고 아껴주는 '한 사람'을 찾아 헤매는 여정일지도 모른다. 크고 작은 역경이나 실패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견뎌내는 능력인 회복탄력성도 그 토대는 '주변에 마음을 터놓을 믿을 만한 사람이 있는가'에 있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겪는 총체적인 우울과 불안도 그 '한 사람'과 연결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7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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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친구들과 어울릴 때는 몰랐다. 그런데 서서히 사회적 경험과 나이를 먹어가면서 느꼈다. 많은 숫자의 친구가 꼭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오히려 세상에서 나를 제대로 이해해 주고 아껴주는 '단 한 사람'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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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에 맴도는 부정적인 목소리는 모두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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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때로는 용기 있게 그 내면의 목소리를 마주해서 검증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나의 존재를 타인이 아닌 나 스스로 검증해 보는 시간 말이다. 이때 다양한 경험, 교육, 책, 여행 등은 훌륭한 방법이 된다.

85~8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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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내면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이 항상 나를 이롭게 만들지는 않는다. '할 수 없을지도 몰라', '나는 못해'와 같은 부정적 시그널을 보내는 소리들은 때로 우리가 앞을 향해 나아갈 수 없도록 만든다.


그러니 만약 그런 부정적 소리들이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다면, 한 번쯤 멈춰 서서 스스로를 검증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내가 가진 지식에 한계가 있다면, 책, 교육, 여행, 멘토를 통해 더 개념을 확장해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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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어른이 되는 가장 기본적이 기준은 '스스로 얼마나 독립적인가'다. 아무리 부모 자식, 형제지간이라고 해도 각자는 다른 인격체다. 다른 인격체를 가진 사람들이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는 각자의 영역을 존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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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소통은 상대방을 결국 나의 뜻에 따르게 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의 생각이나 의견이 나와 다르더라도 그 의견을 존중하고 상대방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것이다.


건강한 소통에는 건강한 독립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래서 때론 물리적, 심리적 거리가 필요하다. 더 나아가 경제적으로도 자립이 되어야 진정한 독립이다. 이렇게 건강한 독립을 한 사람만이 가까운 사람들의 집착이나 간섭에서 벗어나 건강한 소통을 할 수 있다.


독립에는 반드시 자유와 책임이 따른다.

9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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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실상을 살펴보면 외국에 비해 독립이 쉽지 않은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아이를 적게 낳고, 살기가 퍽퍽해지면서 잠자리 독립, 경제적 독립, 정신적 독립 등 매 단계마다 점점 더 퇴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건 비단 나뿐일까?


어른이라는 것은, 모든 것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정신적 물질적으로 스스로 혼자 설 수 있는 상태, 즉 '독립된 '상태를 말한다.


이 기준에 대입해 봤을 때 진정한 독립을 이룬 청년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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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자존감을 가진 사람은 인생의 방향과 삶에서의 선택권이 본인에게 있음을 믿고 용기 있게 도전하며 결국 끝까지 해낸다. 비록 그 일이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하찮고 실패한 것처럼 보여도, 스스로 선택한 일을 책임진 경험이 쌓이고 쌓이면 더 큰 도전이 가능해진다. 건강한 자존감을 가진 사람의 가장 큰 특징은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인생의 목표가 사회적 인정이 아닌 스스로 해내는 성취고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성공과 실패는 경험으로 흡수하기 때문이다.

10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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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을 외부에서 찾으려고 하면 답이 없다. 왜냐하면 건강한 자존감은 내 안에 답이 있기 때문이다. 타인의 기준에서 비교하며 사는 삶에는 성취나 만족이 있을 수 없다.


그러니 건강한 자존감을 가진 인생을 살고 싶다면, 자신만의 인생 방향과 목표를 설정하고 스스로를 신뢰하며 용기 있게 도전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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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억압과 통제가 많았던 가정의 아이들은 내면에 억울함과 분노가 쌓여 있다. 그것을 제대로 해소하지 못하면 그 분노는 결국 엉뚱한 곳에서 터진다. 누군가가 나의 내면의 분노와 억울함의 방아쇠를 잡아 당시는 순간 그냥 터지는 것이다. 이 방아쇠를 당기는 사람은 보통 가까운 사람이다. 그러면 자신이 만만하게 생각하는 약자인 자녀와 배우자에게 분노를 쏟아내게 된다. 그로 인해 가정 안에서의 소중한 관계가 꼬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152~15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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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에 불화가 잦다면, 오랜 과거부터 되짚어 봐야 한다. 보통 3대 이상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억압과 통제로 인해 내면의 아이가 자라지 못하고 어른이 되고, 또 그것이 무한 반복된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소중히 다뤄져야 할 가정의 약자나 배우자에게 분노를 쏟아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면,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내가 느끼는 분노와 억울함이 과연 이들을 향한 것인가? 아니면 그 너머의 누군가를 향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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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상처를 고스란히 지니고 있는 나의 내면 아이를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상처받은 나를 대면하고 애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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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소되지 않은 감정과 상처는 반드시 인생의 어느 순간에 우리 발목을 잡는다. 해소되지 않은 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 그 자리에 머물기 때문이다. 그러면 치유는 일어나지 않는다.


감정은 터져 나와 흘러가야 한다. 그 당시 상처받은 내가 표현하지 못했던 모든 감정이 터져 나와야 회복이 시작된다. 이 해소 과정은 그 당시 괴롭고 힘들었던 기억을 소환해야 하기에 두렵고 아프다. 그래서 대부분은 그저 덮고 사는 것이다. 그러나 어린아이로서 당연히 가지고 누려야 했던 것들을 누리지 못한 것에 대한 애도가 충분히 이루어져야 상처는 아물기 시작한다.


애도의 시간을 충분히 가졌다면 이제 해결되지 않았던 나의 욕구를 채워야 한다.

(...)

이것이 제대로 채워지지 않으면 한이 된다. 한이 된 것은 후에 미련과 후회 또는 집착이 된다. 해보고 싶었던 것, 원하고 바랐던 것을 어느 정도 충족하는 것이 우리 내면의 성장에 꼭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이 마음을 숨기기 때문에 내면 아이가 성장하지 못한다. 이 욕구가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그 욕구를 채울 수 있다. 동시에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건강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변화가 있고 성장이 있다. 이렇게 내면아이와 소통하는 것이 진정한 어른으로 가는 길이다.

162~16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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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심한 상처를 입은 내면아이는 몸이 커진 어른이 되어서도 자라지 않는다. 어루만져 주고 위로해 주어야만 비로소 내면아이는 자랄 수 있다. 그러니 만약 내 안에 상처받은 내면아이가 몸을 웅크리고 있다면, 이제라도 꺼내어 보듬어주고 감정을 터트릴 수 있도록 도와주자.


건강한 상대와 함께 건강한 방식으로 감정 표현을 나누고 공감함으로써 진정한 어른으로 거듭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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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불장군처럼 꼼짝도 하지 않는 부모와 화해하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나의 실망만 커지고 아플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화해는 신중히 생각해야 한다. 섣부른 화해 시도는 오히려 부모 자식 간의 감정의 골을 더 깊어지게 할 수도 있다. 부모가 지금 나와 손뼉을 마주칠 의사가 없다면 적정한 거리를 두고 서로 더 이상의 상처를 주고받지 않는 것이 서로를 위한 가장 현실적인 방법일 수도 있다.

17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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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하겠다는 좋은 마음을 가졌더라도 무조건적으로 부딪히려고 하지 말자. 어느 한쪽이 화해에 대한 의사가 없다면 이는 더 큰 상처로 돌아올 수 있다.


그러니, 변화의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면 굳이 가까워지려 하기보다 오히려 조금 거리를 두고 상처를 주고받지 않는 방법을 택하는 것이 더 현명한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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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를 준 부모에게 사과받거나 화해하는 데 몰입하기보다는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에 집중하자. 본인의 상처를 먼저 치유해야 과거에 묶이지 않고 성장할 수 있다. 내 부모와 다른 선택을 함으로써 인격적인 성장을 하는 것만이 결핍의 대물림을 막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17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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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를 받고 자란 아이임에도 불구하고, 더 성숙하고 건강하게 자란 사람들을 보면 결국 자신에게 집중한 사람들이다.


부모에게 사과받기 위해 집착하거나 상처를 치유하겠다는 목적으로 화해를 청하기보다, 오히려 독립적으로 떨어져 나와 나만의 방법으로 나의 상처를 어루만짐으로써 이들은 어둠의 터널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부모에게서 받은 결핍의 대물림을 강력히 끊고 싶다면, 이제부터라도 나에게 더 집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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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주목한 윤여정 배우와 인기 유튜버 밀라논나에게 많은 젊은이가 열광하는 이유는 그들이 이 시대가 바라는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든 세대에게 존경과 인정을 받는 '어른'은 다음과 같은 공통점이 있다.


첫째, 모든 사람을 독립된 인격으로 존중한다.

정서적, 물질적으로 누군가에게 의지하거나 누군가를 어떤 이유에서든 이용하지 않는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인생에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내 마음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둘째, 자신이 연약한 인간임을 인정한다.

자신도 실수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겸손하고 타인을 넓은 포용력으로 감싸 안을 수 있는 것이다. 성숙한 어른의 가장 큰 기준은 나와 다른 사람들에 대한 포용력이다.


셋째, 과거의 영광에 머물러 있지 않고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죽을 때까지 성장에 힘쓰는 사람들이 어른이다.


결국 '진짜 어른'은 사회적 지위나 성공 여부에 상관없이 내면이 성숙한 인격적인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237~23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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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람들에게 '윤여정'과 '밀라논나'라는 키워드는 '어른'으로 통한다. 그만큼 우리가 가까이하고 싶고 또 되고 싶은 어른의 모습이자, 흔하게 볼 수 없는 '어른'이 아닐까 한다.


나이 먹음과 경력으로 사람을 평가하거나 밀어붙이기 보다 그저 인간 대 인간으로 존중해 주고 인정해 주는 사람. 우리는 이런 사람을 보고 '어른'이라고 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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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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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사적이고 민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담겨 있어 읽으면서 오히려 내가 더 조심스러웠다. 실제로 겪어본 사람의 입장에서 이런 일들을 거침없이 써 내려간다는 것은 그 자체로 힘든 일이기에, 더불어 그것을 대중에게 공개하고 어떤 코멘트를 받는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에 더 그러했다.


하지만, 주관적 경험과 객관적 사실들을 잘 버무려 담아냄으로써 오히려 비슷한 경험이 있는 사람, 혹은 그런 상황에 처해있는 사람들에게 더 강한 위로와 공감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가족 안에서 존재감이 없다고 느껴지는 것, 사랑받지 못한다는 감정, 죽고 싶다는 생각들, 차별받고 있다는 느낌들은 우리의 유년기를 피폐하게 만들고 또 부정적인 사람으로 만든다.


하지만, 거기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저자처럼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오는 방법을 선택해 보면 어떨까? 대학을 가고 대학원을 가지 않아도 책을 읽고, 공부하며 하나씩 내 인생에 적용해 보는 것이다.


그렇게 한 스텝씩 나아가다 보면, 적어도 과거의 나로부터, 나를 괴롭고 외롭게 했던 가족으로부터 정신적으로 분리 독립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더 행복해지기 위해, 내 괴로움을 다음 세대에게 대물림 하지 않기 위해 내면의 아이를 성장시키고, 진정한 어른으로 거듭나는 방법을 적용해 보자.


당신도 할 수 있다. 우리 모두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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