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널로그 - 생존과 쾌락을 관장하는 놀라운 구멍, 항문 탐사기
이자벨 시몽 지음, 윤미연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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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성'에 대한 책을 유쾌하고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어 이번에도 내심 그런 방향성의 흥미로운 인체를 다루는 책일 거라 기대하며 이 책을 읽게 되었다. 과거와는 달리 요즘은 인체를 다루는 책들에서 과감함과 적극성, 개방적인 사고방식들이 엿보여 폐쇄적이지 않고 건강하고 흥미롭게 잘 다루고 있어 정보성이나 교육적인 면에서도 여러 가지로 건전하다는 생각을 하고는 했는데, 이 책은 과연 어떨지 내심 궁금하기도 했다.

 

특히 흔히 잘 다루지 않는 인체의 숨겨진 부분인 '항문'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어, 더 기대감과 궁금증이 일었는지도 모르겠다. 보통 항문이라고 하면 '음습함', '더러움', '부끄러움'이라는 키워드를 떠올리기 마련인데,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사람들 머릿속에 항문은 감춰야 할 곳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자리하고 있기도 하다.

 

사실 따지고 보면 독소를 배출해 주는 중요한 부위이기도 하고, 사람을 비롯해 웬만한 동물들 또한 가지고 있는 부위이기에 이상하거나 굳이 언급을 꺼릴만한 부위가 아님에도 오랜 시간 항문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조금 부정적인 이미지로 각인되었던 것 같다.

 

이 책에서는 항문에 대한 대부분의 내용들을 다루고 있는데, 그래서 어떻게 보면 '항문 백과사전'과 같은 느낌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인체의 탄생에서부터 항문의 중요성, 역할, 인류 문화와 현실의 문제, 그리고 성적인 부분에 이르기까지 항문과 관련 있는 대부분의 내용을 전방위적으로 다루고 있다. 때로는 조금 진지하지만 과감하게, 또 다른 한편으로는 탐구적이지만 거침없이 항문에 대해 다루고 있다.

 

약간의 위트 있고 재미있는 항문에 얽힌 이야기도 엿볼 수 있지만 대부분은 성적인 부분에 치우쳐 있어 19금 내용이 사실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동물에 관한 이야기도 담겨있지만 중후반부에는 항문성교에 대해 집착적으로 다루고 있어 약간의 거부감이 들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이 책의 편집자분께서 책과 함께 엽서를 하나 같이 보내주셨는데, 내용인즉슨 불편한 부분은 패스해달라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항문성교에 대해 지나치게 다루고 있다는 점만 빼만 나름대로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득 담겨있어 우리가 그동안 뒤로 미뤄두었던 항문에 대한 놀라운 이야기를 다양하게 만나볼 수 있었다. 어쩌면 편견 속에서 인체의 중요한 기관을 너무 모른척했던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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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토리스, 페니스, 음낭, 항문의 성감을 좌우하는 음부 신경은 한때 부끄러운 것으로 여겨졌다. 도덕이 부과한 이 불명예스러운 낙인은 정상적인 신체 기관에 죄의식을 느끼게 만들었고, 그 기관들의 자연스러운 기능을 교란하기에 충분했다.

3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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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통해 항문에 얽힌 다양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통해 색다른 의미에서 항문이 가지는 의미와 인체 기관으로서의 중요성에 대해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다소 난해하다고 느끼거나 부담스럽다고 느끼는 부분은 과감 없이 패스하길 추천한다.

 

항문을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어떤 것을 떠올릴까? 보편적으로는 신체 기관 중 가장 말하기 꺼려지는 곳이라는 생각을 가장 먼저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항문은 인간 신체의 배출구이자 또 다른 숨구멍으로 사실상 인체에서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신체 기관 중 하나다. 그래서 저자는 항문을 '인체의 중심'으로도 표현하는데, 그것의 근거로 인간의 탄생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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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인간은 항문이었다. 최상위 포식자의 초기 성장 발달은 항문이 형성되며 시작된다. 여자의 몸에서, 흔히 '두 번째 구멍'이라고 부르는 이 구멍이 사실상 명실상부한 첫 번째 구멍이다.

3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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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문에 얽힌 재미있는 에피소드들도 만나볼 수 있었는데, 많이들 알고 있는 '루이 14세의 치루 이야기'와 항문을 악기로 삼아 연주했던 '방귀꾼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 항문 이야기에서 잠시 숨 돌릴 틈이 필요하다면 이 에피소드들을 참고하길 바란다.

 

동물들의 항문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도 만나볼 수 있었는데, 동물들의 세계에서 항문이 차지하는 부분이 상당히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미처 몰랐던 동물들의 삶과 성에 대한 부분도 확인해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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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는 희미한 단서 하나만으로도 뇌에 냄새를 전달하며, 그 즉시 뇌는 냄새를 분석하고 분류한다. 상대방 엉덩이에서 맡은 냄새로 성별, 기분, 건강 상태, 식생활 등에 관한 정보를 알아내고, 상대가 암컷일 경우에는 생리주기까지 알 수 있다.
(...)
개가 꼬리를 들어 올리며 항문을 내보이는 것은 상대방에게 신분증과 건강검진 확인서, 페이스북 프로필을 한꺼번에 보여주는 것이다.

1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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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에게 있어 항문을 내보이는 것은 그야말로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는 것과 같다는 것을 이번에 새삼 알게 되었다. 단순히 짝짓기를 위한 행동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그 이상의 의미를 품고 있었다는 것에 그저 놀라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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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호두빗 해파리에게는 항문을 일시적으로 만들었다 사라지게 하는 놀라운 능력이 있다. 이 해파리는 그런 배설기관을 가졌다고 알려진 생명체들 가운데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유일한 생명체다.

1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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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문을 일시적으로 만들었다 사라지게 하는 유일한 생명체인 바다 호두빗 해파리에 대해서도 알 수 있어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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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동물당 하나의 항문.' 단, 예외로 둔 동물이 있다. 하루살이와 모낭충이다. 섭취물이 소화되는 시간보다 생존 기간이 더 짧은 하루살이 같은 생물에게 항문 기관이란 부질없는 것이다. 
(...)
기생성 진드기 모낭충은 끝까지, 다시 말해 자가분해될 때까지, 자신의 배설물과 함께 당신의 모공 속에 들러붙어 있을 것이다.

20~2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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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동물당 하나의 항문을 가진다는 것에서 예외로 두는 동물 두 가지! 하루살이와 모낭충이다. 하루살이는 이름값을 정말 톡톡히 하는 동물이라는 것이 절절히 느껴진다. 반면 모낭충은 '윽! 내 피부!!' 소리가 절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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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는 하루의 생존에 필요한 200킬로그램의 풀, 나뭇잎, 나무껍질 같은 먹이를 충분히 먹지 못했을 때 코끼리는 다른 코끼리의 똥구멍에 코를 처박아 부족한 먹이를 보충한다. 
(...)
공기가 희박한 얼음 밑에서 겨울잠을 자는 붉은귀거북들은 항문으로 숨을 쉰다.

2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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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에게 먹는 것이 이렇게 중요한 일인지 처음 알았다. 코끼리 코의 쓰임에 대해 새삼 다시 생각하게 하는 문장이었다. 저마다 먹고사는 방식이 제각각이라지만 항문으로 숨을 쉬는 붉은귀 거북에 대한 이야기는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동물들의 난교와 성행위에 대한 내용들도 다루고 있어 확인해 볼 수 있었는데, 생각보다 성적으로 매우 자유분방함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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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팬지, 고릴라, 마카크 원숭이 같은 다른 원숭이들도 성적으로 자유분방하기는 마찬가지다.
(...)
사실 그들은 양성애와 난교를 통해 미개하지만 다 함께 잘 사는 행복한 사회를 유지해 나간다.
(...)
단, 오랑우탄에게서는 이런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다. 대신 오랑우탄은 나뭇조각으로 인공 음경을 만들어 사용한다.
(...)
쥐도 비슷한 행동을 한다. 코끼리, 사자, 족제비, 얼룩말, 그리고 야생 양도 항문성교를 한다. 들소도 사자처럼 번식기에만 암컷을 만나 아주 신속하게 교미한다. 나머지 계절에는 수컷끼리 생활하며 서로 수작을 걸고,  만족할 때 물밑에서 춤을 추며 서로를 얽어맨다.
(...)
이처럼 생물학적 성별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한다고 확인된 동물들은 현재까지 1500종이 넘는다.

25~2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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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들의 세상에서는 항문성교가 거의 일상처럼 보인다. 더불어 번식을 위한 성교 외에 수컷끼리 성교를 나누는 것도 흔함을 알 수 있었다. 성별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한다고 확인된 동물이 현재까지 1500종이 넘는다는 것을 보니 동물들의 세계에서는 성이 매우 개방적이고 자유분방한 것처럼 보인다.

 

 


항문에 대해 전방위적으로 다루고 있는 만큼 배변에 대한 내용도 다루고 있는데, 배변이 가지는 의미는 사람에 따라 조금 다른 것 같다. 일반적인 성인에게 배변은 '더러운 것'이나 '변비', 혹은 '건강한 것' 과 같은 것들이 떠오를지 모르겠다. 반면 같은 의미 다른 말로 '똥'이라고 하면 아이들에게는 까르르 웃는 웃음 포인트가 된다.

 

배변에 대한 이야기 중 흥미로웠던 부분은 '순조로운 배변을 위한 효과적인 자세'에 대해 다루고 있는 부분이었다. 특히 쪼그려 앉는 자세가 가장 이상적인 자세라는 점을 통해 과거 흔했던 재래식 화장실을 설계하고 사용했던 선조들의 지혜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인체공학적 재래식 화장실을 썼던 그때는 아마 변비라는 단어는 찾아볼 수 없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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쪼그려앉은 배변 자세를 취하면, 치골직장근이 이완되어 항문직장이 항문관과 160도를 이루며 항문이 열리므로, 치질 같은 질환에 걸리지 않는다.

3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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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질 같은 질환도 예방해 주고, 원활한 배변활동까지 돕는 쪼그려 앉는 자세를 요즘은 양변기 사용으로 원해도 실행할 수가 없다. 그래서 비슷한 자세를 위해 발받침을 활용해 비슷한 자세를 유지하면, 조금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하니 참고해 보자.

 

 


항문 하면 또 빠질 수 없는 현대인들이 말 못 할 여러 질환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는데, 여기 담긴 내용들을 통해 예방과 정보를 습득해 두면 도움이 될듯하다. 

 

■항문소양증
항문 주변은 민감해서 가려움증에 걸리기 쉬운데, 특히 건조한 부위에 스키드 마크가 조금이라도 남은 경우 가려움증이 생긴다. 일반적으로 항문소양증은 위생관리에 소홀했거나 아니면 지나치게 닦아대는 바람에 생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정 질환이나 징후가 동반하지 않는 경우라면, 배변 후 항문 주변에 수분크림을 바르는 것만으로도 가려움증을 충분히 가라앉힐 수 있다.

 

■요충증
요충이라 불리는 작은 기생충들이 그 주변에 몰려 있는 것일 수도 있는데, 이 기생충은 장내에 살지만 가늘고 긴 띠처럼 생긴 암컷들은 항문 가장자리에 알을 낳기 위해 밤이 되면 밖으로 기어 나온다. 구충제를 한 두번만 복용하면 말끔하게 사라질 것이다.

 

■치핵
일반적으로 치질이라고 불리는 질환이다. 이 질병은 항문에의 달갑지 않는 침입, 즉 불명예스러운 침입들에서 정조를 지켜내기 위해 우리의 정신이 세워놓는 경비병의 역할을 하는 듯하다.

 

■직장염
혈변, 점액변, 가짜 변의와 잔변감, 직장이 당기거나 욱신거리면서 복통이 일어날 경우 직장염을 의심해 볼 수 있다.

 

■치열
항문의 피부와 점막 사이가 헐어서 문드러지거나 궤양, 파열 등이 생긴 상태를 의미한다. 배변 시 통증이 극심하기 때문에 두려움으로 인한 변비를 초래할 수 있다.

 

■항문농양
항문선들이 위치한 항문벽은 항문농양 발병률이 아주 높은 곳이다. 박테리아가 아주 풍부한 배설물이 주기적으로 지나가기 때문이다.

 

■치루
치루 수술은 누공이 통하는 항문관 내부까지 죽 절개한 다음 수술로 잘라낸 괄약근을 정확하게 봉합해야 하기 때문에, 숙련된 의사가 극도로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탈항
항문 및 직장 점막 또는 전층이 항문 밖으로 빠져나와 들어가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탈장
변비증 환자들과 산모들이 힘주어 밀어내기를 한 결과 탈장(일명 직장 헤르니아)이 생기는 것을 볼 수 있다.

 

■항문암
항문에 생기는 악성종양으로 편평상피세포함이 가장 흔하다. 50세 이상부터는 예방을 위해 결장암과 직장암 검진을 정기적으로 받을 필요가 있다. 항문암은 발견 시 완치율이 80퍼센트에 달한다.

 

항문은 섬세하고 민감한 부위이긴 하지만 알고 보면 간단한 관리만으로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단순하고 까다롭지 않은 기관이므로, 부드럽고 조심스럽게 다루기만 하면 큰 재앙을 겪지 않고 건강한 항문을 오랫동안 별 무리 없이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항문의 중요성에 다룬 부분도 찾아볼 수 있었는데, 저자는 항문이 우리 인체 기관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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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에 따라 부르는 명칭이 다를 뿐 세상의 중심과 세계의 기원은 같다. 이런 의미에서 항문과 똥구멍은 결국 같은 배설기관이지만 확실히 구분된다. 세상의 중심이 어디인지 찾는 위치적인 관점에서 이 기관은 똥구멍이라 불리지만, 세계의 기원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관점에서 이 기관은 항문이라 불린다.

158~15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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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항문이 신체의 모든 문제들을 바로잡아준다. 모든 화와 독소를 정화시켜 다시 살아나게 한다. 항문은 인간의 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한쪽 눈을 잃거나 두 눈 모두를 잃는다 해도 여전히 살아갈 수 있다. 팔과 다리가 잘린다 해도, 귀가 막혀버렸다 해도, 여전히 살아갈 수는 있다. 하지만 만약 항문이 막힌다면, 장담컨대 나흘 이상 살지 못할 것이다.

17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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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거부감이 드는 중후반부에 다루는 항문성교에 대한 내용들을 살펴보면, 동성과 이성 상관없이 항문성교가 굉장한 쾌감을 주며 해방감을 준다고 이야기하는데, 다양한 인용 글들을 통해 과거 행해지던 행위나 상식, 인식들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또 항문성교의 현실과 항문에 관한 환상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는데, 프랑스 사람들의 연구 조사 자료를 통해 현실적인 항문성교에 대해 이야기한다. 또 항문에 관한 환상은 복종/지배 게임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이에 대한 여러 욕망과 인식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이에 대한 고정관념에 대한 내용은 물론 방법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어 불편함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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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기할 의무에 직면한 남자로서 자신의 성감대에 항문을 편입시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만에 하나 과감하게 감행해 본다면 억압에서 풀려나 되는대로 몸을 맡기고 엄격한 태도를 벗어던진 채 은밀한 그 밤에 속마음이 읽히도록 내보이는 게 얼마나 멋진지 깨닫게 될 것이다.

28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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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보면 항문성교를 지지하는 모양새로 비치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편견처럼 가지고 있는 유리천장을 깨면 보다 새로운 경험과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는 내용으로도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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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문은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어준다. 항문은 우리가 동물에 속하는 존재이면서도, 항문에 대한 수치심을 통해 우리를 동물과 구분 지어주기 때문이다. 
(...)
의식화된 항문 성애는 우리의 본능을 세련된 에로티시즘으로 변형시킨다. 승화된 항문 성애는 변태적 행위를 예술로 탈바꿈시킨다. 공유된 항문 성애는 사회적 향연에서 한 자리를 차지한다. 어떤 방식이 더 좋고 나쁜지 토론하에 행해지는 항문 성애는 평등 속에서 가능한 유대감을 가치판단 없이 느낄 수 있게 해준다.

309~31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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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밑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들로 하여금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가운데 서로의 생각에 가닿으면서 서로를 격려할 수 있게 해준다.
항문은 상호 불가침의 담보물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이 부드럽고 은밀한 신체 부위는 우리의 취향점이기 때문이다.

31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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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항문에 대해 얼마나 많은 고민과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항문에 대해 가지고 있는 수많은 편견과 음침함을 깨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더 과감하고 노골적인 문장들을 반복적으로 사용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런 정보 없이 맞닥뜨리는 독자 입장에서는 조금 당황스러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조금은 유하고 부드럽게 이야기를 풀어갔으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도 조금 남는다.

 

대부분의 생명체가 가지고 있지만 그 쓰임이나 의미는 다른 항문! 그동안 의식적으로 저 아래 두고 숨겨왔기에 어쩌면 더 폐쇄적으로 다뤄졌는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의식 위로 끌어올려 오픈된 상황에서 이를 다루면 조금은 더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데 수월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모두가 가지고 있는 공통 취향점이자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항문. <애널로그>를 통해 폭넓은 항문의 세계를 탐험해 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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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것에 관하여 병실 노트
버지니아 울프.줄리아 스티븐 지음 / 두시의나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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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작가의 방>이라는 책을 통해 처음 '버지니아 울프'를 알게 되었는데, 그녀의 작업 공간을 둘러보면서 그녀가 남긴 업적은 물론, 매일 아침 글을 쓰는 습관들에 대해 알게 되면서 그녀의 작품들은 어떨지 무척 궁금했다. 그런데 이번에 그녀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 내심 설레는 기분으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사실 이 책은 여타 문학 작품들과는 좀 다른 형태를 띠고 있어 버지니아 울프라는 작가를 이 작품 하나로 판단하기는 좀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추후 그녀의 대표 작품들, 이를테면 <올랜도>, <댈러웨이 부인>, <파도> 등을 통해 그녀의 세계관을 만나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 책은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반대되는 두 입장에서 서술되는 이야기를 1부와 2부로 나누어 담고 있는데, 내용뿐만 아니라 서술되는 방식에 있어서도 두 이야기는 완전히 다른 양상을 지니고 있다. 더불어 딸과 어머니가 쓴 이야기라는 점에서 여러 가지로 재미있는 구성을 지니고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한 가지 아이러니 한 점은 '아픈 사람'과 '간병하는 사람'의 이야기이자 '딸'과 '어머니'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실상 두 사람 사이에는 접점이 없다. 어머니 줄리아는 많은 사람들을 보살피고 간호하며 간병에 관련된 지침서를 남겼지만, 세상을 일찍 떠나는 바람에 평생 몸과 마음이 아팠던 딸을 간병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 두 가지의 이야기는 일치되는 점 없이 서로 각자의 시대를 살아간 어머니와 딸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묘하게 연결되는 것 같은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확연하게 대비되는 두 사람의 문체는 그래서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는데, <아픈 것에 관하여>는 그야말로 온갖 변화무쌍한 이야기들이 모두 들어가 있다.

 

아픈 관찰자가 누워서 보는 세상의 모습과 아픈 몸에 대한 은유와 비유는 물론, 언어, 종교, 동정, 고독, 독서 등의 내용들이 복잡하게 얼기설기 얽혀있다. 광기, 자살, 사후에 관한 생각들과 치과의사, 미국 문학, 오르간 연주자, 뱀과 쥐, 3대 워터퍼드 후작 부인의 인생담 등 예측불허의 수많은 주제와 내용들을 에세이 및 소설 등의 형태로 다양하게 품고 있다.

 

<아픈 것에 관하여>에 실려있는 내용 중 먼저 아픈 몸에 대해 다루고 있는 내용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
문학은 최선을 다해 정신에 관심을 둔다.
(...)
하지만 매일 육체가 겪는 드라마에 대한 기록은 없다.
사람들은 늘 정신의 활동, 거기에 다가드는 생각들, 정신의 숭고한 계획들, 정신이 어떻게 우주를 교화하는지에만 신경 쓴다. 정신이 철학자의 포탑에서 육체를 무시하는 것을 보여준다.
(...)
침실에서 열이나 우울의 공격에 맞서 육체가 이 육체를 노예로 삼은 정신과 벌이는 대규모 전쟁들은 무시된다. 그 이유를 찾으려고 하지도 않는다. 이런 것들을 정면으로 응시하려면 사자 조련사의 용기가, 탄탄한 철학이 대지의 중심에 뿌리내린 이성이 필요한 것이다. 이것들이 부족하니 이 괴물인 육체, 이 기적인 육체적 통증은 곧 우리를 신비주의에 빠져 들거나, 급한 날갯짓과 함께 공상의 황홀 속으로 날아오르게 할 것이다.
(...)
질병은 자주 사랑으로 위장해 똑같이 이상한 술수를 부리니까. 어떤 얼굴들에 성스러움을 입혀서, 우리를 몇 시간이고 귀를 세우고 계단이 삐꺽대는 소리를 기다리게 만든다. 또 떠난 이들의 얼굴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18~1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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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육체에 대해 이처럼 문학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녀는 아픈 몸에 대해 서술하면서 문학이 '육체'를 무시하고 '정신적' 활동에 치우치는 것에 대해 강하게 이견을 제시한다. 또한 심한 육체적 통증을 '대규모 전쟁'에 비유해서 이야기한다. 실로 엄청난 육체적 고통을 받고 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는데, 통증이 심할 때 고통에 맞설 용기가 없어 결국 정신을 놓거나 약물로 인한 정신적 문제가 야기됨을 비유와 인용 글을 통해 추측해 볼 수 있다. 이를테면 '신비주의에 빠져들거나, 공상의 황홀 속으로 날아오르게 한다'고 서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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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하다면 가식적인 친절을 베풀어야 하고 새롭게 노력할 일들이 있다.
(...)
아프면 이런 가식은 중단된다. 당장 침대를 요구하거나, 의자에서 쿠션들 사이에 깊이 파묻혀 앉아 발을 바닥에서 들어 올린다. 우리는 직립 부대원 노릇을 그만두고 탈영병이 된다. 직립 부대원들은 전쟁터로 행군한다. 우리는 막대기에 매달려 냇물에 떠내려간다. 낙엽이 뒹구는 풀밭, 아마도 수년간 처음으로 부담 없이 무심하게 주위를 둘러보고 위를 -예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본다.

2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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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사람과 아픈 사람의 모습을 문학적 표현으로 서술한 부분이다. 아프게 되면 건강한 사람들이 행하는 모든 가식은 중단된다고 말하고 있다. 아픈 사람들이 행하는 행동 패턴과 모습들이 독특하게 서술되어 있는데, 1차원적으로 이해되는 부분이 있는가 하면 비유와 은유를 통해 독특하고 재미있게 서술한 부분들도 확인된다.

 

이를테면 '의자나 쿠션들 사이에 깊이 파묻혀'라는 부분은 으레 아픈 사람들이 보이는 모습으로 자연스럽게 이해되는 부분이다. 반면 '직립 부대원 노릇을 그만두고 탈영병이 된다'는 부분은 건강할 때 직립(꼿꼿하게 바로 서서 다님)으로 꼿꼿이 다니던 사람들이 환자가 되면서 꼬꾸라져 탈영병이 되는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이후 표현들을 통해 직립 부대원(=건강한 사람)과 아픈 사람의 행동 패턴도 함께 전하고 있다. 건강한 사람이 전쟁터에 행군하는 것(=건강하게 돌아다니는 것) 과는 다르게 아픈 사람은 침대에 누워 무심하게 주위를 둘러보고 하늘을 올려다보는 행동을 하며 시간을 흘려보냄을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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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리가 의지하는 것은 시인들이다. 질병은 산문이 요하는 장기전에 싫증 나게 한다. 장에서 다음 장으로 넘어가는 사이 우리는 모든 능력을 지휘하며 이성과 판단력과 기억력을 유지할 수가 없다. 또 자리를 잡으면, 전체 구조가 기반 위에 굳건하게 세워질 때까지 다음에 올 장면에 유의해야 한다.

3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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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아프면 으레 오랫동안 무언가를 기억하거나 행하는 것이 쉽지 않다. 이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문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 '산문'과 '시'만큼 적절한 표현이 또 있을까? 이것은 작가 본인의 경험이자 아파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공감하는 내용일 것이다. 오랜 기간 이성과 판단력과 기억력을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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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하면 의미가 소리를 잠식한다. 지성이 감각을 지배한다. 하지만 아프면 비번인 경찰이 되어 말라르메(시인)나 던(시인)의 애매한 시, 라틴어나 그리스어 구절 밑으로 기어든다. 그 어휘들이 향기를 내뿜고 맛을 증류해서, 마침내 의미가 파악되면 독특한 냄새처럼 혀와 콧구멍을 통해 처음에 감각적으로 다가왔던 것보다 훨씬 풍부해진다.

32~3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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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어려운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건강하면 지성이 감각을 지배하고 의미가 소리를 잠식하지만, 반대로 아프게 되면 반대의 상황에 도래하게 됨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앞서 아픈 사람들이 의지하는 것은 '시인들'이라고 표현한 것과 연결하여 문장을 해석하면 보다 매끄럽게 의미 파악이 가능할 것 같다.

 

아픈 몸에 대해 서술함은 물론이고 다양한 소재와 온갖 내용들이 모두 복잡하게 담겨있어 사실상 하나의 주제를 담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운 글이다. 그래서 하나의 글로 보기보다 각각 숨어있는 은유와 비유는 물론, 숨어있는 소설과 에세이들을 각각 분리하여 찾아보는 것이 어쩌면 색다른 재미를 선사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단순히 아픈 것에 관한 글로 보기보다는 인용과 언급이 넘쳐나는 문학적인 에세이로 보는 것이 더 맞는 글인 것 같다.

 

 

반면 <병실 노트>는 세밀하고 꼼꼼한 기록을 통해 현실적인 간호 방법에 대해 기록하고 있었는데, 오랫동안 환자를 살펴보지 않으면 놓치기 쉬운 실질적이고 디테일한 여러 노하우와 방법들이 기록되어 있었다. 이 내용들은 환자에 대한 애정과 오랜 관찰이 없이는 절대 기록할 수 없는 내용들이 많았는데, 이 기록들을 통해 미처 알지 못했던 사소하지만 중요한 포인트를 확인해 볼 수 있었다. 이를테면 간호하는 사람의 태도, 불빛, 침구 정리하는 법, 부스러기 관리법, 목욕할 때 주의점, 환기, 문병 시 참고사항, 소음 등 간병인이 꼼꼼히 챙겨야 할 사소하지만 중요한 부분들이 대처 방법과 함께 기록되어 있었다.

 

간호 지침이라고 하면 으레 딱딱하고 누구나 아는 흔한 것들을 떠올리기 십상인데, 이 글에서는 단순한 지침, 그 이상의 환자를 위하는 마음이 엿보인다. 그래서 담고 있는 지침이 이후에 실제로 지침서로 활용이 되었던 게 아닐까 싶다. 간호 노트를 살펴보면서 간호 방법들을 배워본다. 그리고 내가 만약 환자일 때 이런 케어를 받을 수 있다면 매우 편안한 병실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도 든다.

 

<간병인의 태도>

◆간병인의 생활은 지루하지 않으며, 숙련될수록 더욱 그렇다. 
◆간병인에게 누구를 보살피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야 한다.
◆환자 개인이 아닌 '케이스'를 사랑하는 것이 진정한 간호 본능인 것 같다. 모든 간병인은 환자를 '케이스'로 보고 모든 타인, 인정 없는 친구, 가장 가깝고 사랑하는 사람 할 것 없이 똑같이 상냥하게 보살펴야 한다.
◆모든 간병인의 필수적인 의무는 명랑해야 하는 것이다. 병실 분위기는 평온해야 한다.
◆힘든 일이 생기고 그걸 병자가 모르는 게 중요하다면, 간병인들은 최선을 다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말아야 한다. 질문을 받으면 '자유롭게 거짓말을 해야' 한다. 암시와 귀엣말은 진실보다 나쁘고, 병자의 상상력은 무한하며, 친한 친구들조차 이 사실을 간과하기 일쑤기 때문이다.

 


<아픈 사람을 돌보는 요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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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을 맴도는 소소한 괴로움들 중, 크기는 가장 작아도 가장 큰 골칫거리인 게 부스러기다.
(...)
가정부는 침대 보를 털었다고, 간병인은 부스러기를 쓸어냈다고 주장하지만 부스러기는 거기에 있고, 간병인이 퇴치하리라 다짐하지 않으면 계속 남을 것이다.
(...)
매 끼니 후 간병인은 손을 침대에 넣고 부스러기가 있는지 만져봐야 한다. 침구를 정리할 때 간병인과 가정부는 털거나 쓸어내는 정도로 만족하면 안 된다.
(...)
아래쪽 시트를 매트리스 위에 매끈하고 반듯하게 편 후 핀으로 고정하는 것이 부스러기를 남기지 않는 최선의 방책이다.

침대 부스러기를 처리하는 방법 (75~7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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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침대의 편안함은 베개가 좌우한다고 생각하고 내 생각도 그렇다.
(...)
간병인은 환자가 선호하는 방식부터 파악해 베개들을 배치해야 한다.

환자를 편안하는 하는 방법1-베개 (7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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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과 물기를 닦는 과정은 조용히 진행되어야 한다. 씻기는 이들의 쓸데없는 말이 병자에게 상처가 된다.
(...)
간병인은 매끄러운 손과 짧은 손톱을 유지하는 데 신경 써야 한다.

목욕할때 주의사항 및 간병인의 몸가짐 (8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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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귀감이자 재료가 될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녀의 간병 일지는 소소하지만 환자의 안위와도 직결되며 회복에도 영향을 미치는 부분이라 어쩌면 우리가 가장 신경써야 할 가장 중요한 부분이 아닐까 싶다.

더불어 가까운 가족이나 지인이 아플 때 이 방법들을 활용해 보면 어떨까? 아마 환자에게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색다른 매력을 지닌 두 개의 작품을 통해 환자와 간병인으로서의 입장을 헤아려보고, 이 두 작품이 지니고 있는 독특한 엄마와 딸의 세기를 넘어선 숨겨진 대화법을 함께 나눌 수 있기를 바라본다. 더불어 환자와 간병인 양쪽의 상반되는 입장을 함께 들여다보고 양쪽 모두를 다양한 관점에서 이해하고 배워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진짜 중요한 것의 가치는 어쩌면 상반된 입장을 함께 담고 있는 책에 모두 담겨있는지도 모르겠다. 경청하고, 인식하고, 배려하고, 예우함으로써 보살핌과 치료의 제대로 된 방향으로 온전히 향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 두 가지의 문학작품을 함께 읽으며, 문득 '만약'을 생각해 보게 된다. 만약 줄리아 스티븐이 일찍 죽지 않고 딸인 버지니아 울프가 아플 때 곁에서 간호를 해줬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적어도 정신적으로는 조금 덜 힘들지 않았을까 짐작만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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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내가 다시 좋아지고 싶어 - 지금껏 애써온 자신을 위한 19가지 공감과 위로
황유나 지음 /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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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한편의 일기 같기도 혹은 기록물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어린 시절부터, 대학생활, 사회생활을 거쳐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고 난 이후의 삶 전반의 모습이 담겨있었는데 그래서 '에세이'이지만 '자서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삶=고통'이라는데 마치 이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저자의 삶은 매 순간 고통이 수반된다. 19가지의 에피소드에는 저자의 성장담과 함께 살아오면서 겪은 삶의 고통과 이에 대해 덤덤히 담고 있는데, 누군가에게는 하나의 에피소드도 겪을까 말까 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한 번쯤은 악을 쓰거나 몸부림치며 발버둥을 쳐도 좋으련만, 저자는 묵묵히 그때의 일들을 담고 고찰하며 조금씩 앞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간다. 누구에게 말하기도 쉽지 않았을 일들이건만, 남의 탓이나 힐난도 없이 이렇게 차분히 글로 담아내었다.

 

어쩌면 이 19개의 에피소드들은 직접 겪어보지 않은 이들에게는 그다지 마음에 와닿지 않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반면 직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해 본 일들에 대해서는 격한 공감을 할지도 모르겠다. 경험이라는 것은 직접적으로 몸과 마음에 새겨지는 것이라 3자 입장에서 느껴지는 것과는 현저히 다를 수밖에 없다.

 

특히 누군가의 인생이 담긴 이야기나 가정사에 대한 부분은 어느 누구도 본인만큼 자세히 알 수 없는 부분이기에 말 한마디 건네는 것도 조심스러운데, 그래서인지 여기에 담긴 에피소드들은 유독 더 무게감이 느껴진다. 소재 또한 쉽게 다뤄질 내용들이 결코 아니었는데,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느낀 것은 이 모든 것을 잘 견뎌내고 지금까지 잘 살아온 저자에게 응원과 격려의 말을 전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에세이에는 다소 자극적인 단어와 이야기들이 중간중간 눈에 띄는데, 아동폭력, 성폭행, 성인 ADHD, 비정규직의 설움, 자살 목격, 음독자살 등과 같은 것들이다. 하나만 겪어도 평생의 트라우마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 모든 것들을 직접 겪어내며 저자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오히려 성장하는 모습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를 통해 삶의 의미란 무엇이고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에 대한 자문을 하게 만든다. 누군가에게 기댈 수도, 도움을 얻을 수도 없는 상황에서 몸으로 부딪히며 깨지고 상처 입으면서 알게 된 세상. 누군가는 값진 경험이라도 할지도 모르지만 이것들을 겪지 않고도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한 이들에 비하면 참 멀리도 돌아온 게 아닐까 싶다.

 

사랑받는 아이였다면, 인정받는 동료나 친구였다면 아니 적어도 보호해 주는 튼튼한 울타리라도 있었다면 조금은 다른 인생을 살고 있지 않았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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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좋은 친구로서, 따뜻한 선배로서, 아픔도 함께 품어주는 지인으로서 곁에 남아 있고 싶다. 좋은 점을 일깨워주는 것, 토닥이며 문득 안부를 묻는 것, 그리고 끄덕이며 공감해 주는 것,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사소한 '구원'이다. 나와 그들을 위한.

2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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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죽음을 목도하고 나면 삶과 죽음에 대한 이념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저자 역시도 우연히 이웃집 사람의 죽음을 목격한 이후 삶이란 무엇이고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이어나간다.

 

위의 글은 어쩌면 우리 모두가 가장 바라거나 꿈꾸는 인간상일지도 모르겠다. 그 대상이 '나'일 수도 있고 혹은 가까이 있는 '지인'이 될지도 모르겠다. 앞선 저자의 삶의 기록들을 살펴보면서 이 문장의 내용은 살면서 가장 바라왔던 일이 아니었을까 싶다.

 

각 에피소드들에서는 저자의 고통과 상처들이 곳곳에서 확인되는데, 우리가 일상에서 흔하게 겪는 일들도 많아 공감되는 부분들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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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을 받기 위해 신경정신과를 찾았다. 세상 시름 한번 겪어보지 않은 것처럼 편안해 보이는 의사는 내 증세와 딱 맞아 떨어지는 병명을 찾아냈다.
'사회불안장애'

3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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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친구'라는 가면은 심리적 약자로서 살아남기 위한 내 유일한 생존 도구이자 무기였다.
'착함'은 남들이 인정하는 나의 정체성이 되었다.

3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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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을 다니다 보면 환자의 고통에 전혀 반응하지 않는 무표정의 의사들을 만날 때가 간혹 있다. 꽃처럼 앉아 AI처럼 말하는 의사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그 어떤 증상보다 더 뼈아프게 다가오곤 한다.

 

흔히 '착한 아이 콤플렉스'라고도 많이 이야기하는데, 누군가와 어울리기 위해, 인정받기 위해 '착함'을 무기로 생존을 이어나가는 이들이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낮은 자존감과 안정감 없는 가정이 사유가 되는 경우가 많다고 알고 있다. 드러나지 않아도 은근히 낮은 자존감으로 마음에 수많은 갈등을 품고 사는 이들에게는 깊이 다가오는 문장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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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예쁜 년아. 너는 얼마나 귀중한 내 손녀인데."

이렇게 대답해 주는 외할머니의 다정함을 상상해 본다. 아쉬움에 담긴 미련일까? 애정의 목마름일까? 아니면 마른 눈물의 간절함일까? 그때 그 자리에서 하지 못한 말을 떠올리며 그 소용없음에 고개를 가로젓는다. 외할머니의 애정을 구하는 유효 기간은 이미 끝났으니까.

12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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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애정의 목마름이 느껴지는 문장도 있었는데, 이 문장을 읽으며 무엇이든 때가 있고 유효기간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적 겪은 트라우마는 유독 깊이 박혀 성인이 된 후에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고 한다. 무심코 내뱉는 어른들의 상처되는 말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문장이었다.

 

각 에피소드들은 단순히 과거에 겪은 일련의 고통스러운 사건들을 회상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것을 통해 배우고 깨달은 삶의 의미와 성찰에 대해서도 담고 있는데 이를 통해 함께 공감하고 위로받으며, 인생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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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이든 일단 저지르고 나면 생각보다 무시무시한 일은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다만 한동안은 내가 이 분야의 바보라는 사실을 감내해야 한다. 서투르게 '실수'하는 기간을 인내해야 나의 장단점이 드러난다, 그리고 보완해야 할 점이 보인다. 정작 필요한 것은 지속적인 관심과 간절함이다. 가랑비에 옷이 젖게 마련이다.

6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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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밥을 먹기 위해서만 사는 것이 아니다. 놀이나 꿈도 인간이 누려야 할 가장 기본적이고도 숭고한 권리 아닌가. '우리는 빵을 원하지만, 장미도 원한다'라는 여성의 날 캐치프레이즈가 담고 있는 의미처럼.

24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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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수의 동작 하나가 이미 아름답다면 공연의 결말이야 아무려면 어떤가. 완벽하게 완성되는 삶은 없다. 아쉬움이 남아야 사랑해 줄 부분이 있지 않은가.

25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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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와닿았던 에피소드도 있었는데, 중간관리자의 고군분투기를 담고 있는 <팀장을 위하여>라는 에피소드였다. 어떤 이들은 관리자가 된다는 것에 큰 로망을 가지고 있는데, 실상 '장'이 된다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나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불쑥 관리자 자리에 앉게 되면 같이 일하는 팀원들도, 또 회사를 대표하는 임원진들도 모두 힘들지만 특히 힘든 것은 본인 자신이다. 쥐꼬리만큼 오른 급여는 상상이상으로 밀려드는 업무와 책임에 짓눌려 아무런 위로가 되지 못한다.

 

이 에피소드에서는 중간관리자로써 겪는 모든 최악의 상황들이 담겨있었는데, 현실적 어려움과 상황들이 리얼하게 담겨있어 공감 가는 포인트가 많았다. 최악의 상황이라고 표현했는데 어쩌면 이 모든 것이 리얼 그 자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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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이라는 과분한 감투를 쓴 값으로 '중간'관리자가 으레 겪게 마련인 매운맛을 아주 호되게 감당해야 했다. 말이 '장'이지 위에서 찍어 누르는 사람이 수두룩했다. 그 기세에 눌려 한없이 엎드리면 밑에서는 또 못 살겠다는 아우성이 치고 올라왔다. 끝내는 깡통처럼 납작 찌부러져 감투니 뭐니 다 패대기치고 싶었다. 나부터 숨 좀 쉬고 보자는 심정에 휘말렸다.
(...)
시간당 급여는 오히려 떨어진 셈이었다. 명예값치고는 무척 혹독했다.

15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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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미팅이 끝나면 날은 벌써 저문 뒤였다. 그때라도 업무를 시작할 수 있으면 다행이었다. 확인 못한 이메일과 결재 서류가 쌓여 노트북은 폭발 직전이고, 연일 늘어지는 안건에 대한 확정 요청도 밀물처럼 닥쳐왔다.

15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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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칼퇴근'은 전설 속에나 등장하는 '무엇'이 되어 있었다.

15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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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뒤, 양옆 평생 선상에 나란히 앉은 다른 팀장과의 알력 싸움은 정말이지 가장 골 썩이는 감정 소모였다.
(...)
어찌 되었건 팀장들의 욕받이 아니면 팀원들의 욕받이 중 하나가 되었다.

16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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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위, 아래, 앞뒤, 좌우 눈치를 보느라 배터리가 방전되고 말았다. 소위 '번아웃 증후군'에 빠지고만 것이다.

16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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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이 된후 겪은 일련의 일들이 시간의 순서대로 기록되어 있었는데, 위아래로 봐야 하는 눈치, 끝나지 않는 업무, 완력 싸움, 그러다 이내 찾아오는 번아웃까지!

 

여기에 현실적인 몇 가지 사례를 더하자면, 여성이라면 한 번쯤 겪었음직한 담배 타임의 따돌림까지. 그리고 남성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공공연한 음담패설은 농담처럼 넘겨야 하는 수모도 빠뜨릴 수 없다.

 

저자는 팀장이 된 이후 계속되는 스트레스와 지속되는 압박, 야근 등으로 인해 하혈을 하고 견디다 못해 회사를 퇴사한 이후 음독자살을 시도, 그리고 강제적으로 정신과 폐쇄병동에 입원하는 일련의 일들을 겪는다.

 

무엇이 우리를 병들게 하고 살아갈 힘을 잃게 만드는지, 누가 가해자이고 피해자인지 한 번쯤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이겨서 상주는 사람 아무도 없는데, 왜 그토록 누군가를 궁지에 몰고 우위에 서려 발버둥을 치는 걸까? 직장 생활에서 공공연히 퍼지고 있는 가장 무섭고 악덕한 예시가 아니었나 싶다.

 

 


이 외에도 직장에서 겪은 성폭력 에피소드는 요즘 뉴스에서 자주 들려오는 여러 이야기들과 맞물려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했는데, 보다 현실적인 대안으로 강경한 법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해본다. 

 

19가지의 에피소드로 이 책은 끝나지만, 저자의 이야기는 앞으로도 계속 쭉 이어질 것이다. 새로 쓰게 될 육아 이야기와 모성을 배워가는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해 또 다른 인간관계와 사회생활, 가정생활들 속에서 생각지 못한 일들을 여전히 겪을 것이고 거기서 삶의 방향을 새롭게 바꿔나갈지도 모르겠다.

 

부디 바라건대 별일 없는 날로 '최고의 하루'를 보내기를 바란다. 행복한 습관이 이루어지는 날을 두 손 모아 응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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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네가 피어날 차례야
바리수 지음 / 부크럼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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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수없이 드는 불안과 부정적 감정들이 휘몰아쳐 잠식당할 때 손잡아 주고, 함께 공감해 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어떨까? 괜찮다고, 다 지나갈 거라고, 폭풍이 지나간 자리에는 꽃이 피어날 거라고 토닥토닥 위로를 건네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 금방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힘차게 앞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삶에 대한 응원과 힘, 위로, 격려를 전하고 있는데 그림 에세이 형태를 빌어 귀여운 캐릭터와 마음이 듬뿍 담겨있는 산문글로 만나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뜬금없는 위로와 격려가 아닌, 작가 개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스토리를 엮고 캐릭터를 만들게 된 동기를 프롤로그에 담고 있어 저자의 경험에 비춘 '진실성'이 돋보이는 책이었다. 그래서인지 '바리수' 캐릭터가 한층 더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3개의 파트로 구성된 책에는 전반적으로 응원과 힘을 주는 글과 만화가 가득한데, '나'의 감정을 중심에 두고 서술되어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타인의 시선이나 감정들보다 오로지 '내'가 갖는 감정과 불안, 초조, 힘듦, 상황들을 재치있는 만화로 표현하고 이를 극복하고 힘을 얻는 모습들은 유쾌함과 위로로 다가온다.

 

우리가 겪고 있는 일상의 여러 상황들을 대입해 보면서 조금은 객관적으로, 가벼이 넘길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어 읽으면서 부정적인 감정이나 생각들을 툭툭 털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뒤를 잇는 산문글을 통해 그 의미를 되새기면서 나를 더 다독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때때로 우리는 너무 바쁘다는 핑계로, 분란을 만들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나의 감정을 무시하거나 내려놓고 타인에게 일방적으로 맞추는 경우가 있다. 그러다 시간이 흐른 후 곪고 곪아서 너덜거리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그때쯤에는 씩씩 거리며 아무리 화를 눌러 담아도 해소되지 않고, 세상은 온통 잿빛 우울한 세상으로 보이게 된다. 상처는 또 다른 상처를 낳고 세상을 미워하면서 도무지 어디에도 마음을 둘 곳이 없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에는 그런 상처투성이의 마음들을 잘 담아내고 있어 더 마음이 가는지도 모르겠다.

 

혹시 마음이 아프거나 뿔이 나 있는 상태라면, 작가의 마음을 대신해 생명력을 불어넣은 '바리수'와 함께 행복한 나, 괜찮은 나, 단단해진 나, 긍정적인 나, 진짜 나를 만나보기를 바란다.

 

읽으면서 마음에 콕콕 와닿았던 문장들이 있어 함께 남겨본다. 비록 현재 울퉁불퉁한 자갈길을 걷고 있더라도 나를 찾아가는 여정의 끝에는 반짝이는 빛이 기다리고 있을 것임을 잊지 말자. 겁먹지 말고 천천히 나의 속도대로 나아가보자.

 

=====
(...)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나에게 실망할 일은 없을 수 있겠지만
새로운 나를 발견할 수 있는 기회도
덩달아 잃어버린다

 

하루하루를 조금 더 살아 봄직하게 만드는 건 앞으로의 날에 새로운 무언가가 있을 거라는 희망이 아닐까?

7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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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야만 하는 일들이 우리의 의식주를 책임져 준다면 좋아하는 일들은 우리에게 활력을 주고
우리를 더 살고 싶게 만들어 줄 테니까.

11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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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리가 무거워서 나아가기가 힘든 정도.
그런 나의 일상에 배영이 필요했다.
(...)
할 일을 생각하지 않고
아무런 부담 없이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기
최소한의 힘을 주며 일상이 나아가게 하기.
제때 숨쉬기.
(...)
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생각을 하는 것과
그것을 실천하는 일은 천지 차이다.
가끔은 힘을 빼며,
그저 하루가 흘러가는 대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괜찮을 때가 있다. 분명.

126~12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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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서야 얼핏 지난날에 읽은 그 문장의 의미를 알 것 같다.
욕심을 포기할 때 내 삶은
나를 더 풍요롭게 하는 감정들로 채워진다.
(...)
나쁜 것을 비워 내면
그 빈자리는 반드시 좋은 것들로 채워진다.

132~133페이지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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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다고 아무것도 모르는 게 아니고
나이가 많다고 많은 걸 아는 것도 아니다.

 

정말로 나이는
그저 살아만 있으면 주어지는 쉬운 숫자다.

21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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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번밖에 살 수 없다면 인문고전을 읽어라
김부건 지음 / 밀리언서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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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얼마나 더 어려워질 것인가, 힘들어질 것인가로 마치 경주하는 듯 뉴스에서는 '힘듦'에 대한 보도가 연일 끊이질 않고 있다. 눈부신 산업 발전과 과학발전의 시대를 살고 있다고 이야기는 하지만, 삶의 모습은 점점 더 퍽퍽해지고 있고, 경제 전망은 예측불가의 상태로 늘 불안 속을 헤매고 있다. 

 

이 상황을 타개해 줄 사람이나 방편을 모색해 보지만, 그 어디에서도 이 상황을 해결해 줄 사람은 보이지 않는듯하다. 국가나 기관, 전문가라고 일컬어지는 사람들조차 개인의 이권과 욕심을 위해 싸울 뿐 다른 것에는 관심이 없다. 그래서 요즘 사람들은 앞이 캄캄하다.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며, 어떤 방향을 향해 나아가야 할지, 관계를 어떻게 맺고 끊어야 할지,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할지 멈춰야 할지 그저 막막할 뿐이다.

 

현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함께 의논하고 조언을 얻을 어른이 없다. 그래서 오로지 혼자의 힘으로 헤쳐나가야만 한다. 처음 겪는 인생의 수많은 고민과 결정들 속에서 주춤거리며 한발 내딛기도 어려운데, 주변 상황은 더 불안하고 위태롭다. 그래서인지 요즘 특히 더 현인들의 말과 글이 담긴 고전들이 더 눈에 띈다.

 

이 책에는 주제별 4개의 파트로 나뉜 총 100개의 인생 문장들을 담고 있는데, 각 주제에 따라 인생의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인문고전과 함께 주옥같은 문장들이 가득 담겨있다. 

 

각 단락의 문장들은 대략 2~3쪽 정도로 단출하게 담겨있어 원하는 주제나 관심사에 따라 펼쳐서 편하게 읽을 수 있고, 처음부터 끝까지 읽지 않아도 단락마다 내용의 끝맺음이 확실하여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구조로 구성되어 있었다.

 

특히 인문고전들의 경우 한자나 뜻풀이에서부터 어렵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에서는 뜻과 음은 물론, 이해하기 쉬운 예시를 통해 조언을 건네고 있어 내용이 쏙쏙 눈에 들어왔다. 무엇보다 우리가 고민하고 있는 문제점들에 대해 다양하게 다루고 있어 여러모로 도움을 많이 얻을 수 있었다.

 

주로 성공, 인간관계, 자기관리,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 등에 대한 내용들이 많았는데, 맹자, 공자, 논어와 같은 옛 현인들은 물론 다양한 분야에 있는 사람들의 글을 함께 인용하여 풀어내고 있어 보다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이는 인문고전을 과거 방식에 국한하여 풀이하지 않고 현대적 시각에 맞춰 재해석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 않나 싶다.

 

개인적으로도 마음에 와닿는 문장들이 많았는데, 정리하면서 다시 한번 되새겨본다. 진정한 어른이 없는 사회, 인문고전을 통해 잃어버린 어른의 조언을 배워본다. 삶을 살면서 안개 낀 듯 앞이 보이지 않을 때, 삶에 대한 회의감이 들 때, 누군가에게 조언을 얻고 싶을 때 이 책과 함께 해보기를 추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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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위야 비불능야
나는 하지 않는 것일 뿐,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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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만 있다면 해낼 수 있습니다. 성공은 거듭 실패를 통해 얻어지는 부산물이며, 한 번도 실패하지 않았다면 한 번도 시도하지 않은 것임을 뜻합니다. 거듭 자신의 무력한 도전 의지와 게으름을 질타해야 할 것입니다.
성공은 지금 당장 바로 시작하는 것에서 비롯됩니다. 지금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없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인가요? 아니면 당연히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을 자꾸 미루며 온갖 핑계를 대는 사람인가요?

26페이지 中

 

▶근본적 '의지'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문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때로 '00 해서 못해요'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어쩌면 해볼 의지가 없었던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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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문출어유곡 천우교목자 미문하교 이입어유곡자
새는 밝은 곳에서 나와 어두운 곳으로 날아가지 않는다.

-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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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은 날아가면서 결코 뒤돌아보지 않는다'고 합니다. 물론 목뼈를 제대로 활용할 수 없는 생체 구조 탓도 있겠지만 이미 지나쳐 버린 행적을 돌아보는 것은 갈 길 바쁜 행로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뜻이겠지요.
배움에는 끝이 없습니다. 과거에 알았던 사실과 지식, 학문적 이론일지라도 시간이 지나면 시대 조류에 언제든 뒤처질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해야 합니다. 늘 배움이 있는 삶과 공부를 통해 깨어 있는 인생을 만들어나가야 할 것입니다.

35페이지 中

 

▶라떼를 일삼는 이들 포함 우리 모두 염두에 두어야 하는 문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대는 점점 더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배움에는 끝이 없다. 과거의 영광에 취해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 이미 저만치 멀어지고 있음을 인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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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불사칙망
배우기만 하고 제대로 생각하지 않으면 얻는 것이 없다.

-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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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은 '일을 살피지 않고 글을 읽는다면 쓸모없는 학문이 된다'라고 피력했습니다. 
깨어 있는 공부, 의식이 살아 있는 배움, 성찰이 있는 학문을 해야 합니다. 배움은 평생 해야겠지만 아무 생각 없이 글로만 익히고 깨우침이 없는 학습은 경계해야 합니다.

59페이지 中

 

▶사실 이런 오류를 범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머리로만 알고 있는 것, 실천하지 않는 것을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 알면 행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배움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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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고이지신
지나간 것을 분석하고 파악하여 새로운 것을 알고 얻는다.

-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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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실패가 모여 큰 성공을 이루는 법입니다.
(...)
자신이 원하는 것에 도전하면서 늘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시도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쌓인 실패는 반드시 더 큰 성공의 밑거름이 되고, 더 좋은 기회가 왔을 때 제대로 잡을 수 있는 판단력도 배가되는 법입니다.
(...)
"우리는 완벽한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다 삶을 헛되이 보내는 사람들을 잘 알고 있다."
(...)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비전은 가슴 뛰는 기대감과 넘치는 의욕을 갖고 도전해야 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과거에 경험한 시행 착오에 대한 정확한 원인 규명이 없다면 똑같은 실수와 실패를 거듭할 수 있음을 상기해야 합니다. 미래에 대한 도전은 늘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시행하되, '완벽주의자보다 경험주의자'가 되어 과거 실패한 경험들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더 큰 성공의 기회로 만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61~62페이지 中

 

▶실패가 두려워 시도하지 않는 것은, 성공의 기회조차 놓치는 일임을 명심하자. 완벽을 위해 다음으로 미루기보다, 어설프더라도 경험을 통해 하나씩 쌓아 올리는 방식이 훨씬 더 인생에 도움이 된다. 완벽주의를 내려놓고 경험주의자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완벽함과 부담감을 먼저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괜히 있는 말이 아니다. 하나씩 블록을 쌓으며 실패를 통해 배워나간다면 성공으로 마무리 지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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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왕불구
이미 지난 과거의 일이므로 따지지 않겠다.

-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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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 할아버지'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재야 교육자 채규철 선생님께서 생전에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는 'F'가 2개 필요하다. 바로 'forget(잊어버려라)'과 'Forgive(용서해라)'이다."
완전무결한 인간은 없으니, 과거의 불행은 되도록 잊고 다른 사람의 잘못과 악행조차 자기 부덕의 소치로 알고 상대를 용서하라는 말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현재입니다. 과거의 불찰로 빚어진 불행이 있다면 누구의 탓이든 그로 인해 현재마저도 불행하게 몰고 가는 일이 없도록 스스로의 마음을 다져야 하겠습니다.

86페이지 中

 

▶때로 과거에 매여 현재를 불행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잊고 용서하자! 현재의 나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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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제 취궐재
제때에 맞춰 강을 건너가지 않으면 배에 실린 물건은 부패하고 말 것이다.

-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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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타이밍입니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습니다.
(...)
시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고, 누구에게나 공평한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좌우됩니다.
(...)
인생은 그에 맞는 때가 있습니다. 무엇을 이루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꾸준히 해나가야 할 것인지 자문자답하는 시간을 가져볼 때입니다.

109~110페이지 中

 

▶공부도 때가 있듯이, 인생 또한 타이밍이다. 그러나 타이밍만 잘 맞췄다고 해서 무조건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알맞은 타이밍을 맞추기 위해서는 사전 준비가 필수임을 명심하자. 이것은 매일의 일상을 어떻게 보냈는지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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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이락
지금 가난할지라도 적극적인 인생으로 즐거워한다.

-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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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무드》에서 말하기를 승자가 즐겨 쓰는 말은 "다시 한 번 해보자!"이고, 패자가 즐겨 쓰는 말은 "해봐야 별수 없다!"입니다. 지금 겪는 가난과 불행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스스로를 단련시키고 일상을 즐거움으로 채워나가야 합니다.

113페이지 中

 

▶평소 나의 말의 습관은 어떠한지 점검해 보자. 당신은 승자인가 패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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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호유항의
변하지 않는 마음을 지닌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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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영화 기획자 앨런 코헨은 "더 이상 의미 있는 것 중에 진정한 안정이란 없다. 모험적이고 흥분되는 것에 더 많은 안정이 있다. 움직이는 것에 생명이 있으며 변화하는 것에 힘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나아감에 있어서 '어제와 다른 성숙한 자신에게 익숙해지라'는 뜻입니다. 겉치레로 자신과 주위를 기만하기보다 내실을 기하고 스스로를 지켜가야 합니다. 이때의 항심이란 결코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 아니라, 잠시 휘둘렸다가도 언제든 다시 자신에게 돌아올 수 있는 마음입니다.

178페이지 中

 

▶'성숙'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보게 하는 문장이다. 변화를 통해 앞으로 나아가지만 내 안에 자리한 삶의 방향성이나 중심만큼은 지켜야 함을 뜻하는 의미로도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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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 화이불류
조화를 이루며 살더라도 결코 휩쓸리지 않는다.

-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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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너무 쉽게 남의 일에 간섭하거나 타인의 간섭으로 잘못 판단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데일 카네기는 "중요한 일을 완성하려고 방법을 강구할 때는 남의 말에 신경 쓰지 말아야 한다. 남들은 항상 불가능하다고 말하지만 나는 오히려 노력할 가장 좋은 기회라고 여긴다"라고 말했습니다.
(...)
자신에게 가해지는 모든 비평과 참견에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으로 쉬이 휩쓸리지 않도록 자기중심을 잘 잡고 나아가야 합니다.

236페이지 中

 

▶삶을 살면서 중요한 순간의 결정은 반드시 자신의 의지와 판단으로 진행해야 함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하는 문장이다. 스스로 할 수 있다는 굳건한 믿음이 있다면, 타인의 부정적인 말은 잠시 흘려버려도 좋다. 결과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고, 타인이 내 인생을 책임져 주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에는 나의 결정을 가장 우선시 하는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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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장전 비일목소지야
큰 집이 무너지려 할 때 나무 하나로는 도저히 버틸 수가 없다.

-문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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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해군 제독 그레이스 호퍼는 "우리에게 가장 큰 피해를 끼치는 말은 '지금껏 늘 그렇게 해왔어'라는 말이다"라며 그릇된 관행이나 불찰, 잘못을 무시하거나 묵인하는 습관을 경계하라고 했습니다. 지금 하는 일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고 변화를 시도하기보다 타성에 젖어 늘 해왔던 대로 이어가려는 습관을 버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314페이지 中

 

▶'늘 그렇게 해왔어'라는 말은 조직문화나 사회에서 가장 흔하게 쓰는말이자 가장 경계해야 하는 말이다. 지금은 변화의 시대다. 잘못된 관행에서 벗어나 이제는 새로운 시각과 변화를 받아들이고 도전해 봐야 할 시기다. 습관을 버리지 못하면 낙후되는 것은 한순간이다.

 

 

절절히 느끼고 있어 마음으로 와닿는 문장들도 있었고, 내심 마음에만 담아두고 있었던 것들은 뜨끔한 마음도 들었다. 내 삶은 나의 것이기에 중심을 잡아가는 것도 또한 나의 몫일 것이다. 좋은 습관을 기르는 것, 때를 보고 타이밍 맞게 실행하는 것, 변화에 맞춰 성장하는 것, 때론 용서하고 잊을 줄도 아는 것, 천천히 경험을 쌓아가며 성공으로 이끄는 것 모두 나의 의지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누구나 공평하게 처음이자 단 한 번 사는 인생이다. 내가 원하는 삶은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게 느껴진다면, 고전에서 답을 찾아보자. 어쩌면 오랫동안 고민해온 문제의 해답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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