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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내가 다시 좋아지고 싶어 - 지금껏 애써온 자신을 위한 19가지 공감과 위로
황유나 지음 /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 2023년 1월
평점 :
이 책은 한편의 일기 같기도 혹은 기록물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어린 시절부터, 대학생활, 사회생활을 거쳐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고 난 이후의 삶 전반의 모습이 담겨있었는데 그래서 '에세이'이지만 '자서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삶=고통'이라는데 마치 이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저자의 삶은 매 순간 고통이 수반된다. 19가지의 에피소드에는 저자의 성장담과 함께 살아오면서 겪은 삶의 고통과 이에 대해 덤덤히 담고 있는데, 누군가에게는 하나의 에피소드도 겪을까 말까 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한 번쯤은 악을 쓰거나 몸부림치며 발버둥을 쳐도 좋으련만, 저자는 묵묵히 그때의 일들을 담고 고찰하며 조금씩 앞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간다. 누구에게 말하기도 쉽지 않았을 일들이건만, 남의 탓이나 힐난도 없이 이렇게 차분히 글로 담아내었다.
어쩌면 이 19개의 에피소드들은 직접 겪어보지 않은 이들에게는 그다지 마음에 와닿지 않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반면 직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해 본 일들에 대해서는 격한 공감을 할지도 모르겠다. 경험이라는 것은 직접적으로 몸과 마음에 새겨지는 것이라 3자 입장에서 느껴지는 것과는 현저히 다를 수밖에 없다.
특히 누군가의 인생이 담긴 이야기나 가정사에 대한 부분은 어느 누구도 본인만큼 자세히 알 수 없는 부분이기에 말 한마디 건네는 것도 조심스러운데, 그래서인지 여기에 담긴 에피소드들은 유독 더 무게감이 느껴진다. 소재 또한 쉽게 다뤄질 내용들이 결코 아니었는데,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느낀 것은 이 모든 것을 잘 견뎌내고 지금까지 잘 살아온 저자에게 응원과 격려의 말을 전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에세이에는 다소 자극적인 단어와 이야기들이 중간중간 눈에 띄는데, 아동폭력, 성폭행, 성인 ADHD, 비정규직의 설움, 자살 목격, 음독자살 등과 같은 것들이다. 하나만 겪어도 평생의 트라우마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 모든 것들을 직접 겪어내며 저자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오히려 성장하는 모습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를 통해 삶의 의미란 무엇이고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에 대한 자문을 하게 만든다. 누군가에게 기댈 수도, 도움을 얻을 수도 없는 상황에서 몸으로 부딪히며 깨지고 상처 입으면서 알게 된 세상. 누군가는 값진 경험이라도 할지도 모르지만 이것들을 겪지 않고도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한 이들에 비하면 참 멀리도 돌아온 게 아닐까 싶다.
사랑받는 아이였다면, 인정받는 동료나 친구였다면 아니 적어도 보호해 주는 튼튼한 울타리라도 있었다면 조금은 다른 인생을 살고 있지 않았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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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좋은 친구로서, 따뜻한 선배로서, 아픔도 함께 품어주는 지인으로서 곁에 남아 있고 싶다. 좋은 점을 일깨워주는 것, 토닥이며 문득 안부를 묻는 것, 그리고 끄덕이며 공감해 주는 것,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사소한 '구원'이다. 나와 그들을 위한.
2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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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죽음을 목도하고 나면 삶과 죽음에 대한 이념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저자 역시도 우연히 이웃집 사람의 죽음을 목격한 이후 삶이란 무엇이고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이어나간다.
위의 글은 어쩌면 우리 모두가 가장 바라거나 꿈꾸는 인간상일지도 모르겠다. 그 대상이 '나'일 수도 있고 혹은 가까이 있는 '지인'이 될지도 모르겠다. 앞선 저자의 삶의 기록들을 살펴보면서 이 문장의 내용은 살면서 가장 바라왔던 일이 아니었을까 싶다.
각 에피소드들에서는 저자의 고통과 상처들이 곳곳에서 확인되는데, 우리가 일상에서 흔하게 겪는 일들도 많아 공감되는 부분들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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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을 받기 위해 신경정신과를 찾았다. 세상 시름 한번 겪어보지 않은 것처럼 편안해 보이는 의사는 내 증세와 딱 맞아 떨어지는 병명을 찾아냈다.
'사회불안장애'
3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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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친구'라는 가면은 심리적 약자로서 살아남기 위한 내 유일한 생존 도구이자 무기였다.
'착함'은 남들이 인정하는 나의 정체성이 되었다.
3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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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을 다니다 보면 환자의 고통에 전혀 반응하지 않는 무표정의 의사들을 만날 때가 간혹 있다. 꽃처럼 앉아 AI처럼 말하는 의사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그 어떤 증상보다 더 뼈아프게 다가오곤 한다.
흔히 '착한 아이 콤플렉스'라고도 많이 이야기하는데, 누군가와 어울리기 위해, 인정받기 위해 '착함'을 무기로 생존을 이어나가는 이들이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낮은 자존감과 안정감 없는 가정이 사유가 되는 경우가 많다고 알고 있다. 드러나지 않아도 은근히 낮은 자존감으로 마음에 수많은 갈등을 품고 사는 이들에게는 깊이 다가오는 문장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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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예쁜 년아. 너는 얼마나 귀중한 내 손녀인데."
이렇게 대답해 주는 외할머니의 다정함을 상상해 본다. 아쉬움에 담긴 미련일까? 애정의 목마름일까? 아니면 마른 눈물의 간절함일까? 그때 그 자리에서 하지 못한 말을 떠올리며 그 소용없음에 고개를 가로젓는다. 외할머니의 애정을 구하는 유효 기간은 이미 끝났으니까.
12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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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애정의 목마름이 느껴지는 문장도 있었는데, 이 문장을 읽으며 무엇이든 때가 있고 유효기간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적 겪은 트라우마는 유독 깊이 박혀 성인이 된 후에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고 한다. 무심코 내뱉는 어른들의 상처되는 말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문장이었다.
각 에피소드들은 단순히 과거에 겪은 일련의 고통스러운 사건들을 회상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것을 통해 배우고 깨달은 삶의 의미와 성찰에 대해서도 담고 있는데 이를 통해 함께 공감하고 위로받으며, 인생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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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이든 일단 저지르고 나면 생각보다 무시무시한 일은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다만 한동안은 내가 이 분야의 바보라는 사실을 감내해야 한다. 서투르게 '실수'하는 기간을 인내해야 나의 장단점이 드러난다, 그리고 보완해야 할 점이 보인다. 정작 필요한 것은 지속적인 관심과 간절함이다. 가랑비에 옷이 젖게 마련이다.
6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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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밥을 먹기 위해서만 사는 것이 아니다. 놀이나 꿈도 인간이 누려야 할 가장 기본적이고도 숭고한 권리 아닌가. '우리는 빵을 원하지만, 장미도 원한다'라는 여성의 날 캐치프레이즈가 담고 있는 의미처럼.
24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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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수의 동작 하나가 이미 아름답다면 공연의 결말이야 아무려면 어떤가. 완벽하게 완성되는 삶은 없다. 아쉬움이 남아야 사랑해 줄 부분이 있지 않은가.
25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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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와닿았던 에피소드도 있었는데, 중간관리자의 고군분투기를 담고 있는 <팀장을 위하여>라는 에피소드였다. 어떤 이들은 관리자가 된다는 것에 큰 로망을 가지고 있는데, 실상 '장'이 된다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나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불쑥 관리자 자리에 앉게 되면 같이 일하는 팀원들도, 또 회사를 대표하는 임원진들도 모두 힘들지만 특히 힘든 것은 본인 자신이다. 쥐꼬리만큼 오른 급여는 상상이상으로 밀려드는 업무와 책임에 짓눌려 아무런 위로가 되지 못한다.
이 에피소드에서는 중간관리자로써 겪는 모든 최악의 상황들이 담겨있었는데, 현실적 어려움과 상황들이 리얼하게 담겨있어 공감 가는 포인트가 많았다. 최악의 상황이라고 표현했는데 어쩌면 이 모든 것이 리얼 그 자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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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이라는 과분한 감투를 쓴 값으로 '중간'관리자가 으레 겪게 마련인 매운맛을 아주 호되게 감당해야 했다. 말이 '장'이지 위에서 찍어 누르는 사람이 수두룩했다. 그 기세에 눌려 한없이 엎드리면 밑에서는 또 못 살겠다는 아우성이 치고 올라왔다. 끝내는 깡통처럼 납작 찌부러져 감투니 뭐니 다 패대기치고 싶었다. 나부터 숨 좀 쉬고 보자는 심정에 휘말렸다.
(...)
시간당 급여는 오히려 떨어진 셈이었다. 명예값치고는 무척 혹독했다.
15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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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미팅이 끝나면 날은 벌써 저문 뒤였다. 그때라도 업무를 시작할 수 있으면 다행이었다. 확인 못한 이메일과 결재 서류가 쌓여 노트북은 폭발 직전이고, 연일 늘어지는 안건에 대한 확정 요청도 밀물처럼 닥쳐왔다.
15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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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칼퇴근'은 전설 속에나 등장하는 '무엇'이 되어 있었다.
15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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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뒤, 양옆 평생 선상에 나란히 앉은 다른 팀장과의 알력 싸움은 정말이지 가장 골 썩이는 감정 소모였다.
(...)
어찌 되었건 팀장들의 욕받이 아니면 팀원들의 욕받이 중 하나가 되었다.
16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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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위, 아래, 앞뒤, 좌우 눈치를 보느라 배터리가 방전되고 말았다. 소위 '번아웃 증후군'에 빠지고만 것이다.
16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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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이 된후 겪은 일련의 일들이 시간의 순서대로 기록되어 있었는데, 위아래로 봐야 하는 눈치, 끝나지 않는 업무, 완력 싸움, 그러다 이내 찾아오는 번아웃까지!
여기에 현실적인 몇 가지 사례를 더하자면, 여성이라면 한 번쯤 겪었음직한 담배 타임의 따돌림까지. 그리고 남성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공공연한 음담패설은 농담처럼 넘겨야 하는 수모도 빠뜨릴 수 없다.
저자는 팀장이 된 이후 계속되는 스트레스와 지속되는 압박, 야근 등으로 인해 하혈을 하고 견디다 못해 회사를 퇴사한 이후 음독자살을 시도, 그리고 강제적으로 정신과 폐쇄병동에 입원하는 일련의 일들을 겪는다.
무엇이 우리를 병들게 하고 살아갈 힘을 잃게 만드는지, 누가 가해자이고 피해자인지 한 번쯤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이겨서 상주는 사람 아무도 없는데, 왜 그토록 누군가를 궁지에 몰고 우위에 서려 발버둥을 치는 걸까? 직장 생활에서 공공연히 퍼지고 있는 가장 무섭고 악덕한 예시가 아니었나 싶다.
이 외에도 직장에서 겪은 성폭력 에피소드는 요즘 뉴스에서 자주 들려오는 여러 이야기들과 맞물려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했는데, 보다 현실적인 대안으로 강경한 법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해본다.
19가지의 에피소드로 이 책은 끝나지만, 저자의 이야기는 앞으로도 계속 쭉 이어질 것이다. 새로 쓰게 될 육아 이야기와 모성을 배워가는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해 또 다른 인간관계와 사회생활, 가정생활들 속에서 생각지 못한 일들을 여전히 겪을 것이고 거기서 삶의 방향을 새롭게 바꿔나갈지도 모르겠다.
부디 바라건대 별일 없는 날로 '최고의 하루'를 보내기를 바란다. 행복한 습관이 이루어지는 날을 두 손 모아 응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