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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올리버
올리버 색스.수전 배리 지음, 김하현 옮김 / 부키 / 2025년 8월
평점 :
"지적인 대화를 넘어 마음이 공명했던 올리버와 수전의 뭉클한 우정 편지!"
이 책과 함께 도착한 노란색의 종이에는 '편집자의 말'이 빽빽이 담겨 있었는데, 그녀가 쓴 글 중 유독 기억에 남은 말이 있다. 바로 '부러웠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 서평을 쓰고 있는 나 역시 같은 말을 하고 싶다. 진정으로 그런 친구를 둔 두 사람이 너무 부러웠다.
학문적 교류는 물론, 감각과 취향, 삶, 심지어 같은 증상에 대한 공유 등을 통해 열정과 유대감, 위로, 힘을 나눴던 두 사람은 역전된 상황에서조차 시기와 질투보다는 서로를 보듬고 북돋우기 바빴다.
총 3부로 구성된 이 책은, 올리버와 수전이 10년간 나눈 150여 통의 편지글을 엮어 만든 책으로, 깊은 우정을 바탕으로 한 먼저 떠난 올리버를 추억하고 기리는 회고록이기도 하다.
이들은 다양한 주제로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는데, 수전이 마흔여덟 살에 훈련을 통해 기적적으로 극복한 입체맹을 시작으로 학문, 취향, 열정, 감각 등 그 범위는 점차 확대된다.
둘은 나이, 성별, 경력, 유명세를 뛰어넘어 지적 호기심, 특별한 취향 등을 거침없이 나누며 깊은 우정을 쌓아가게 되는데, 그 과정을 함께하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그들의 감정과 열정에 절로 동화되는 기분이 든다. 더불어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부러운' 감정이 함께 든다.
상황이 역전되어 내 몸이 망가져가는 상황에서조차 이들은 활발한 교류를 이어 나가며 멋진 삶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보여주는데, 그 흔한 질투심이나 시기 같은 감정들은 털끝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특히 올리버의 경우 여러 시련 앞에서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는데, 나는 그를 보며 반성의 마음과 열정의 불꽃을 동시에 피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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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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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색스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 옥스퍼드 대학 퀸스칼리지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신경과 의사, 교수로 활동했다.
독특한 신경학적 문제를 겪는 환자들의 사연을 따뜻한 시선과 아름다운 언어로 담아낸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화성의 인류학자>, <뮤지코필리아> 등이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았다.
2015년 안암이 간으로 전이되어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10여 년간 친구이자 동료 과학자인 수전 배리와 이 책에 실린 편지들을 주고받았다.
■수전 배리
프린스턴대학에서 생물학 박사학위를 받고, 미시건 대학 재활의학과 조교수를 거쳐 마운트 홀리 요크 칼리지 생물학 및 신경과학 교수로 재직했다.
어릴 때 사시 교정 수술을 받았으나, 45세에 시력 훈련을 받고서야 난생처음 입체시로 세상을 보기 시작했다. 이 경이로운 시각적 모험을 글로 써서 올리버 색스에게 보내면서 두 사람 사이에 우정이 싹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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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연결 고리가 된 '입체시'에 대해 알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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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체시란?
양쪽 눈이 서로 약간 다른 각도로 본 두 영상(망막상)을 뇌에서 통합해, 깊이감(입체감, 거리감)을 느끼는 능력을 말한다. 쉽게 말해, 오른쪽 눈과 왼쪽 눈이 조금씩 다른 그림을 보고, 그 차이를 뇌가 계산해서 '가까움'과 '멀어짐'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입체시가 중요한 이유는 물체와의 거리 판단(운전, 계단 오르내리기, 물건 잡기), 스포츠 활동(공의 속도와 위치 파악), 정밀 작업(바느질, 미세 수술 등)에 활용되기 때문이다.
입체시가 손상되면 사시(두 눈이 같은 방향을 보지 못함)나 시력 차이가 큰 약시(게으른 눈)에서는 입체시가 떨어진다. 이런 경우 평면적으로만 사물을 보게 되고, 깊이감을 느끼기 어렵다.
■책의 내용과 연결 지어 살펴보기
사물이 내뿜는 빛은 망막을 통해 뇌에 2차원으로 전송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계는 3차원이다. 그래서 뇌는 움직이는 2차원의 정보로 3차원의 입체를 만들어 낸다. 태양빛은 항상 위에서 쏟아져서 명암이 지고, 눈은 두 개라서 위치를 미묘하게 다르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디어 올리버>의 발신자 수는 어렸을 때 사시가 있었다. 두 눈의 초점이 맞지 않으므로 수의 뇌는 한쪽 눈의 정보를 의도적으로 무시했다. 그래서 수는 사물이 2차원으로 보이는 입체맹이 되었다. 뇌의 입체맹은 특정 시기가 넘으면 극복할 수 없다고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수는 마흔여덟 살에 훈련을 통해 기적적으로 입체맹을 극복했다. 학계에 보고된 바가 없었던 이 사례는 올리버 색스와의 교류를 통해 <스테레오 수>라는 불후의 칼럼이 된다. 수가 바라보는 세상이 평면에서 입체(스테레오)로 변모하는 일대기가 이 서간에서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후에도 그들의 지적 교류는 멈추지 않는다. 수는 신경생물학자기도 했다. 두 사람은 자연계에 존재하는 다양한 감각으로 화두를 돌리고, 서간을 통해 그들의 시야는 점차 넓고 깊어진다.
둘은 150통의 편지를 주고받으며 지적 존재에 대해 가장 깊이 이해한 두뇌의 교류를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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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내용 깊이 들여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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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가 시작되었을 때 수전은 50대였고, 올리버는 70대였다. 둘은 전부 합쳐서 150통이 넘는 편지를 썼는데, 마지막 편지는 올리버가 세상을 떠나기 3주 전에 주고받았다.
수전과 올리버를 연결시켜준 그 첫 번째 편지를 수전은 사실 부치지 않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 그 편지를 올리버에게 보냈고, 덕분에 오랜 시간 둘은 많은 것을 주고받으며 깊은 우정을 나누게 된다.
첫 편지를 보낼 때만 해도 수전은 이 편지가 자신의 생각과 일, 심지어 정체성에 이렇게까지 오래도록 영향을 미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작은 시도가 많은 것을 바꿔놓게 된다.
수전이 올리버에게 보낸 그 편지는 마흔여덟 살까지 사시에 입체맹이었던 수전의 '시력 일지'로, 특정 시기가 넘으면 극복할 수 없다고 알려져 있던 입체맹을 갑작스레 극복하게 된 경험과 놀라운 체험에 대해 담고 있었다.
이에 대해 올리버는 수전의 우려와는 달리 매우 흥미롭지만 의미 있게 받아들여 주며 열정적으로 응해 준다. 그런 그의 응원에 힘입어 수전은 지속적인 훈련을 통해 확실히 입체맹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며, 새로운 세상을 경험한 체험들을 세상에 내놓을 용기를 낼 수 있게 된다.
또 지속적으로 주고받는 편지를 통해 다양한 부분에서 깊은 유대감을 느끼게 되면서, 자신과 같은 경험을 하는 사람들을 위한 다양한 책도 쓰게 된다.
하지만 인생사 '호사다마(좋은일에는 흔히 나쁜 일이나 방해가 많이 따름)'라고 했던가? 올리버의 오른쪽 눈에 암점과 섬광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급기야 10년 뒤에는 이로 인해 목숨까지 잃게 된다.
수전의 시력이 놀라울 만큼 향상되는 동안 올리버는 반대로 시력을 잃게 되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둘은 서로 같은 경험을 공유하게 되면서 더 끈끈한 동료애가 생기게 된다.
입체맹으로 고생하던 수전은 훈련을 통해 입체시를 회복했고, 올리버의 도움 덕분에 이를 완전히 극복하게 된다. 하지만 반대로 이번에는 그가 중심시를 잃게 되면서 입체시마저 잃게 된 것이다.
이후 올리버는 고관절이 부러지는 등 여러 사고를 겪게 되지만, 그럼에도 그는 끝까지 글쓰기를 멈추지 않고 지속해 나간다.
후에는 안암이 간으로까지 전이되면서 결국 사망에 이르렀지만, 그 와중에도 그는 끝까지 열정과 격려, 지지를 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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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남은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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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의 책을 읽고 또 이렇게 직접 만나 보니, 그가 나를 두 눈과 뇌가 달린 흥미로운 사례로 취급하는 차가운 연구자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올리버는 새로 얻은 시력이 내게 얼마나 큰 의미인지 잘 알았다. 우리 둘 다 이러한 감각에서 남다른 기쁨을 느꼈고, 덕분에 나는 이 똑똑하고 점잖은 남자와 깊은 유대감을 쌓을 수 있었다.
44~4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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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전은 앞서 경험한 의사들로 인해 올리버에게 편지를 쓰면서도, 책으로 먼저 만나본 그가 사실은 그런 사람이 아닐까 봐 내심 불안해한다.
하지만 올리버는 그가 쓴 책처럼 따뜻하고 똑똑하며 점잖은 사람이었고, 덕분에 수전은 새로운 경험과 감각을 마음껏 기뻐하며 나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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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체시로 세상을 보자 물체 사이의 공간이 손에 만져질 듯 뚜렷하게 느껴졌다. 나는 이 새로움이 무척이나 놀랍고 기뻤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를 많은 사람에게, 심지어 시과학자들에게조차 제대로 설명할 수 없어서 답답했다. 그러나 올리버는 처음부터 이 느낌을 이해했다.
45~4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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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 느낌을 이해하고 공감해 준 올리버였기에, 수전은 처음부터 마음을 활짝 열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론상으로는 알지만 이미 입체시를 경험하며 살아온 이들은 절대 이해하지 못할 그 놀라운 변화를 올리버는 진심으로 이해해 주었고 또 공감해 주었던 것이다.
이런 둘이었기에 올리버가 떠나기 전까지 가장 친한 벗으로 오랜 시간 우정을 나눌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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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경험이 일반적인 믿음이나 확고한 정설과 반대될 때 우리는 어떻게 할까? 자기 경험을 편향적이고 결함 있는 것으로 치부해 버릴까, 아니면 권위에 의문을 제기할까? 올리버가 내 편지를 더없이 진지하게 받아 준 덕분에, 나는 자신감을 가지고 내 경험을 신뢰할 수 있었다.
(...)
내 이야기를 검토하고 정리하고 결국 책으로 낼 수 있었던 건 올리버와 꾸준히 편지를 주고받은 덕분이었다. 그렇게 나는 환자에서 주체로, 다시 저자로 변신했다.
8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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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수전은 처음에 자신의 놀라운 경험들에 대해 스스로 책을 출판할 용기를 갖지 못한다. 자신과 같은 사례를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을뿐더러, 자신을 치료했던 의사마저 소홀히 넘겼던 일 때문에 더 그랬다.
하지만 올리버는 오히려 그런 자신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고, 자신감을 북돋아 주는 것은 물론 여러 아이디어들을 제공하며 수전이 스스로 일어날 수 있도록 돕는다.
덕분에 입체맹 환자에서 이를 극복한 주체자로, 이어서 저자로 변신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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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경험은 대부분 요즘 교수님이 하는 경험과 정반대입니다.
(...)
제 모습이 거울 속에, '거울 너머에' 있다는 감각이 전혀 없습니다. 교수님은 하와이의 높은 절벽에서 아래를 내려다볼 때 급작스러운 충격/공포/경외감/현기증을 느꼈다고 하셨지요. 저는 현재 고소공포증이 어지간히 심해서,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온갖 상황을 상상하면 몸에 자동 반응이 나타나곤 했습니다만, 이제는 위험할 만큼 높이에 무감합니다.
201~20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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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나누는 편지글을 살펴보면, 완전히 입장이 바뀐 둘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수전은 자신이 마흔여덟 해 동안 겪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며 조심스레 안부를 묻는다.
반면, 올리버는 그런 자신의 상황을 누구보다 잘 이해해 줄 수전을 통해 자신의 처지를 덤덤히 풀어놓는다.
누군가에게는 기적 같은 경험이, 누군가에게는 말년에 최악의 고통스러운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이것에 굴하지 않았다.
이런 고통마저 함께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음에 감사했고, 그런 자신의 상황마저 글감으로 활용하며 글을 쓰는 데 열중했던 그가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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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는 오늘 자신이 "아웃팅" 당했다고 말했다. 자신이 시력을 상실했음을 공개적으로 말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
올리버처럼 나도 내 개인적인 이야기를 사람들 앞에 공개했고, 그 결과 치부가 노출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
그래서 올리버가 자신의 사적인 이야기를 공개할 때 양가감정을 느끼는 이유도 이해가 갔다. 눈 근육을 수술받은 뒤 대다수 사람은 내가 사시임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러나 올리버는 1996년에 있었던 댄의 첫 우주선 탑승 기념 파티에서 처음 만났을 때, 내가 언급하기도 전에 내 눈이 사시임을 간파했다. 나의 비밀은 처음부터 올리버에게 들통나 버렸고, 결국 나는 올리버의 격려에 힘입어 그 비밀로 사람들을 도울 수 있게 되었다.
20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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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동안 편지를 통해 우정을 쌓은 이들은, 마치 쌍둥이처럼 치부조차 골고루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이 때문에 이들은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처지와 상황을 너무 잘 이해하게 되었다.
어쩌면 그래서 수전은 그가 시력을 잃은 후에 하는 부탁을 서슴없이 들어주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가 그러했듯이, 이번에는 수전이 올리버에게 힘이 되어 주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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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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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와 수전은 20년이라는 나이 차가 무색하리만치 닮은 점이 많았다. 이뿐 아니라 입체시를 잃는 경험까지 동일하게 접하게 되면서 누구보다 큰 유대감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올리버는 수전에게만큼은 솔직하게 자신의 병이 진행되는 상황들을 덤덤히 털어놓았고, 수전 역시 이에 대해 자신의 경험담을 유쾌하게 풀어내며 그가 잘 견딜 수 있도록 도왔다.
취향도 비슷해, 수영과 음악, 동식물 등에 대한 내용을 호기롭게 나누며 상대방이 좋아할 법한 선물도 자주 건넸다. 또 열정과 호기심, 성실함도 남달랐는데, 관심 가는 것에 꽂히면 집요하게 파고들어 끝을 보았다.
이들은 말로 하기보다 글로 쓸 때 생각이 더 잘 풀리는 공통점도 가지고 있었는데, 이 때문에 이들은 편지를 자주 주고받으며 자신의 생각은 물론 아이디어와 영감을 발전시켜 나갔다. (때론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이런 특성 때문인지 올리버는 자신이 죽어가는 상황에서조차 모든 것들을 글감의 소재로 삼아 지속적으로 글을 써 내려갔고, 수전 역시 그와 소통하는 편지를 통해 떠올린 영감들을 또다시 그와 나눴다.
어찌 보면 가장 취약하고 약한 부분을 서로 끌어안아 주고 보듬어 주면서 10년의 우정을 함께 한 것이다. 이런 둘의 우정을 지켜보다가 문득 "진정한 친구란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사람마다 각기 다른 정의와 해답을 가지고 있겠지만, 적어도 이 책을 읽고 난 후 느낀 '진정한 친구'란, 있는 그대로 상대방을 수용해 주고 마음을 헤아려 주는 것, 격려와 지지를 아끼지 않는 것, 좋은 변화의 방향으로 이끌어 주는 것 등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어떤 상황이나 환경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고 호기심과 열정으로 가득한 삶을 살았던 올리버와 수전처럼, 우리도 폭넓은 사고와 감각을 일깨워 생산적인 삶을 살아보면 어떨까 한다.
여기에 더해 이들처럼 멋진 우정을 나눌 수 있는 친구까지 있다면 금상첨화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