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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서점 북두당
우쓰기 겐타로 지음, 이유라 옮김 / 나무의마음 / 2025년 8월
평점 :
"고서점 북두당과 고양이들의 사연을 통해 '이야기'가 지닌 매력과 힘을 흥미롭게 그려낸 소설!"
일본의 여느 소설처럼 잔잔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을 거라 예상하고 읽었는데, 의외로 이 소설은 보통의 일본 소설에서 잘 보이지 않는 날카로운 면모와 글쓰기에 대한 의미와 통찰에 대해 담고 있어 좀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적인 느낌이 아예 배제된 것은 아니었는데, 일단 화자로 '고양이'를 앞세우고 있었고, '고서점'을 배경으로 두고 있어 일본스러운 느낌은 그대로 느껴졌다.
또 일본적인 '신화'나 '미신'에 대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어 흔히 접하는 일본 소설의 감성적인 면모와 예스러움, 그리고 기묘함은 그대로 유지한 듯했다.
하지만 이야기하고자 하는 방향성이나 풀어가는 방식이 여타 일본 소설과는 달라 확실히 차별성이 느껴지는 소설이었다.
총 9장으로 구성된 이 소설은, 아홉 번째 생을 살고 있는 검은 고양이 쿠로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가 아홉 번의 생을 살며 겪었던 이야기를 비롯해, 마지막 생에서 북두당을 만나게 된 사연, 그리고 북두당의 주인 기타호시 에리카와 그 외 그곳에서 머물고 있는 네 마리의 고양이에 대한 사연까지 다루며 '작가'와 '글쓰기', 그리고 '이야기'에 대한 내용을 흥미롭게 담아냈다.
어쩌면 단순히 인간을 불신하고 경멸하는 쿠로가 북두당을 만나 행복한 묘생으로 아홉 번째 생을 마무리했다는 전개로 따뜻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로 끝맺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안에 여러 작가의 삶과 창작의 고통, 고양이들이 진명을 가진다는 의미 등에 대한 에피소드를 더 추가하여 '글쓰기'에 대한 어려움과 이야기가 주는 힘과 의미를 한층 더 부각시켰다.
그리고 어쩌면 저자 자신의 경험담일 수도 있는 내용을 담아 독자들이 '이야기'에 대해 더 생각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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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및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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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두당
-기타호시 에리카가 주인으로 있는 고서점
-작가와 함께 생을 살았던 네 마리의 고양이가 함께 머물고 있음
-북두당에는 저주의 주술이 걸려있음
■쿠로
-세 번째 생에서 만난 주인을 특별하게 여기고 있음
-그 외 나머지 생에서는 비참한 묘생을 보냄
-인간에 대한 불신이 큼
-평생 진명(진정한 이름)을 얻지 못함
-스스로 세 번째 생에서 만난 주인의 이름을 빌려 '긴노스케'라 부름
-현재 '아홉 번째' 마지막 생을 살고 있음
-기대 없이 독립적이고, 본능적으로 사는 것이 목표
■기타호시 에리카
-고서점 북두당의 주인으로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음
-고양이들에게 '마녀'로 불림
-고양이와 의사소통이 가능함
-자신보다 고양이가 우선인 사람
-여태껏 스물일곱 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지냈음
-평생 북두당에서 책에 둘러싸여 책에 홀린 채 살아가야 하는 저주에 걸림
-특별한 정체를 숨기고 30년마다 모습을 바꿔가며 150년 동안 북두당에서 살고 있음
■루루
-암컷 고양이
-담갈색과 흰색이 섞인 무늬
-인간처럼 두발로 걸으며, 서점 재고 관리를 맡고 있음
-여섯 번째 생을 살고 있는 중
■키누
-암컷 고양이
-흰색과 검은색, 갈색이 어우러진 삼색 무늬
-일곱 번째 생을 살고 있는 중
■카아
-수컷 고양이
-오렌지빛 털에 갈색 줄무늬가 선명
-기무라에 의해 사망함
■치비
-수컷 고양이
-검은색과 흰색 무늬가 대칭을 이루고 있음
■지이노
-하얀 털을 가지고 있음
-카아 사망 후 북두당에 들어온 고양이
■간자키 마도카
-북두당에 자주 오는 단골손님 중 하나
-일곱 살에 쿠로와 처음 알게 됨
-아주 어릴 때부터 책 읽는 것을 즐겨함
-작가를 꿈꾸지만 어떤 이유로 포기하게 됨
■기무라
-30대 중반으로 북두당의 단골 중 한 명
-기타호시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어 주말마다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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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략 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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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에는 "고양이는 아홉 생을 산다"는 속담이 있는데, 이처럼 이 소설에 등장하는 고양이들도 모두 아홉 번의 생을 산다.
이 중 전생에 일본의 대문호 나쓰메 긴노스케(나쓰메 소세키)와 함께 살았던 검은 고양이 쿠로는 여덟 번의 비참한 묘생을 끝내고 마침내 아홉 번 생을 살게 된다.
앞선 생을 모두 기억하고 있는 쿠로는 인간에 대한 불신과 혐오가 뿌리 깊이 박혀 있어, 누군가에게 기대거나 의지하기보다 스스로 살아가기를 택한다.
하지만 태어난 시골을 떠나 도시로 오자마자 어떤 강력한 이끌림에 휩쓸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북두당 앞에 당도하게 되고, 이로써 인간과 가까이하지 않겠다는 신념은 무너지게 된다.
하지만 쿠로는 처음부터 끝까지 당당하고 까칠한 면모를 보이며 기존 고양이들과는 다른 행보를 보이는데, 이 덕분에 어쩌면 멈춰 있던 운명의 수레바퀴가 이 이야기 이후에는 변화를 보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게 만든다.
쿠로가 도시에 당도하자마자 강력하게 이끌린 이곳은 고서점 '북두당'으로, 고양이들의 언어를 알아 듣고, 고양이들에게 '마녀'라 불리며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는 기타호시 에리카가 주인으로 있는 곳이다.
또 이곳에는 네 마리의 고양이가 함께 살고 있는데, 이들은 루루, 키누, 카아, 치비로 모두 전생에 작가와 함께 산 인연이 있는 고양이들이다.
이들은 처음부터 자신의 진명과 작가들과 살았던 삶에 대해 에리카에게 이야기하며 마음을 활짝 열었지만, 쿠로만큼은 이 모든 것을 비밀에 부치고 죽는 날까지 이야기하지 않았다.
신비한 고서점 북두당과 서점을 운영하는 주인 에리카는 특별한 비밀을 품고 있는데, 이것은 후반부에서 쿠로가 죽음에 다다랐을 때 밝혀지게 된다.
한편 북두당에 머물렀던 고양이들은 죽음을 앞두고 아마테라스(일본 황실의 황조신이자 신들의 군주)를 꼭 한번 마주하게 되는데, 이때도 쿠로의 까칠한 성격은 유감없이 발휘된다. 덕분에 이전까지와는 다른 미약한 변화의 조짐이 포착됨과 동시에 이 다음의 이야기를 기대하게 만든다.
북두당에는 많지 않은 단골손님들이 몇몇 있는데, 대표적인 인물로는 동네에 사는 아주 어릴 때부터 이 서점을 이용했던 '간자키 마도카'와 에리카에게 호감을 가지고 주 1회 방문했던 '기무라'를 꼽을 수 있다.
이들의 전혀 다른 행보도 눈여겨볼 만한데, 특히 마도카와의 에피소드 속에 등장하는 쿠로의 색다른 모습은 웃음을 자아냄과 동시에 절박함이 느껴진다. 여타 대상과는 다른 유일무이한 모습을 보여줬던 쿠로의 복잡한 심정과 마도카의 성장담을 주의 깊게 지켜보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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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남은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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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번째' 생에 이르러서야 겨우 깨달았다. 살아간다는 건 결국 허무한 일이라는 것을.
인간이라는 종족은 산다는 것을 괜히 복잡하게 생각한다. 배불리 먹고 실컷 자는 것만으로도 대부분의 동물은 충분히 만족스러워한다.
(...)
그런데도 인간은 대개 돈이 필요하다느니, 살아가는 보람이 어쩌니 하며 쓸데없이 키를 재고, 자꾸만 뭔가를 더 바란다. 진심으로 고통받고 있는 인간이 그들 중 얼마나 될지 솔직히 의심스럽다.
1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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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번의 생을 반복한 쿠로는 이제 시니컬한 태도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살아간다는 것이 허무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은 그는 복잡하게 사는 인간들이 조금은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고양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인간 세상에 대한 견해지만, 또 한편으로는 틀린 말도 아닌지라 우리가 고통이라 말하는 것들이 사실 진짜 고통일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게 됐다.
너무 재고, 따지느라 우리 스스로를 고통에 빠뜨린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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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름한 가로등 불빛 아래서 책에 몰두해 있던 그 모습. 문학인지 뭔지에 온통 마음을 빼앗긴 채 그 외의 모든 걸 내던져도 좋다는 듯한 그 태도. 정신없이 글자를 좇으며 누군가가 만들어낸 상상의 세계 속에서 꿈을 꾸고 동경을 품는 그 뜨거운 눈빛.
그 모습은 어쩔 수 없이 나를 집으로 들였던 그 신경질적인 사내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7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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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카가 독서하는 모습을 보고 유일하게 자신이 주인으로 섬기고 싶었던 그를 떠올린 쿠로. 어쩌면 그래서 작가이기를 포기한 그녀를 돕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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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이라는 세계를 이해하면 할수록 인간이란 존재는 지독히 어리석게 느껴진다. 그저 먹고 자며 살아가기만 해도 충분할 텐데, 굳이 스스로를 괴롭게 만들고, 몸부림치며 심지어는 자신의 생명을 갉아먹기까지 한다. 정말이지 이해하기 힘든 생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고통을 견디며 창작을 향해 나아가는 인간들의 얼굴은 어쩐지 눈부시다. 그 사내가 그랬던 것처럼.
13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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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이라는 세계에 대해 느끼는 양가감정을 표현한 문장으로, 이 때문에 어쩌면 쿠로는 자신이 지켜 온 삶의 태도를 잠시 내려놨는지도 모르겠다.
누구에게도 자신을 만지도록 두지 않던 쿠로가 먼저 다가서고, 아양을 떨고, 누군가를 돕기 위해 나서는 일은 모두 창작이라는 세계를 이처럼 깊이 이해했기 때문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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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북두당이야. 다른 데랑 달라. 내가 어떤 과거를 살았든, 다른 누가 어떤 삶을 살았든, 전혀 상관없어. 중요한 건 단 하나, 지금뿐이야."
19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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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두당의 다른 고양이들과 끝까지 다른 삶을 살았던 쿠로지만 유일하게 그가 북두당에 북며들은 순간을 꼽자면 바로 이 순간이 아닐까 한다.
계속 나는 '아홉 번째 생이야'를 남발하던 쿠로.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는 과거 누구와 어떤 삶을 살았든 현재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일까? 그는 자신의 입으로 위와 같이 이야기한다. "중요한 건 단 하나, 지금뿐이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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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에게 글을 쓴다는 행위는 곧 치유다. 마음의 상처를 글이라는 형태로 바꾸어 바깥으로 끌어내고, 그것을 객관적으로 마주하며 천천히 받아들이는 과정. 그렇게 먼저 자신을 치유하고, 언젠가는 또 다른 누군가의 마음에도 가닿게 된다. 그리하여 글쓰기는 마음의 안녕과 평온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 된다.
279~28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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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단순히 아홉 번의 생을 사는 고양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 아니다. 그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면 글을 쓰는 행위에 대한 이야기를 돌려 돌려 하고 있는데, 북두당의 주인 에리카, 북두당의 단골손님 마도카, 그리고 북두당이 머무는 고양이들이 과거 함께 살았던 작가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에리카의 손을 빌려 자신의 이야기를 쓰게 만든 쿠로가 그렇다.
이들은 내면에 다들 깊은 상처를 간직하고 있는 인물들로, 글을 쓰는 행위를 통해 자신은 물론 또 다른 누군가의 마음까지 치유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 책에는 글쓰기와 아주 밀접한 장소에서 오랜 시간 살고 있지만, 정작 자신의 글은 쓰지 못하는 형벌을 받는 이와 그리고 집안 사정으로 자신의 꿈을 접은 소녀, 그 외 형편없는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꿈을 위해 끝까지 글을 썼던 여러 작가들의 모습이 그려지면서 이야기란 무엇이고, 글쓰기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지를 색다른 방법으로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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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충동을 타인의 마음에 정면으로 부딪쳐 평생 지워지지 않을 깊고 선명한 흔적으로 남기는 일. 그런 공격성마저 내포한 표현 방식에 매료되어 기꺼이 그 가시밭길을 선택하는 바보 중의 바보들. 글을 쓴다는 건 어쩌면 그런 일인지도 모른다.
37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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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중의 바보'와 같은 다소 격한 표현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해 깊은 애정을 담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문장이다.
후반부에 들어서면 글 쓰는 것에 대해 망설임과 두려움을 갖고 있던 이들이 하나둘 정면으로 부딪히는 모습들을 목격하게 되는데, 이를 보다 보면 이들이 살아온 흔적과 내면에서 뚫고 나오는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고 써 내려가는 모습들이 절로 그려진다.
그래서 그것을 지켜본 쿠로는 이렇게 표현한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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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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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등장하는 몇 가지 키워드를 살펴보면, 이 책이 단순히 고서점 혹은 고양이들의 이야기만을 담고 있는 소설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북두당에는 전생에 위대한 작가들과 함께 살았던 고양이들만 모이도록 인과 되어 있다는 것
▶그런 고양이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책방 주인
▶괴성=책의 신
▶유명한 작가들이 대거 등장
▶어린 시절부터 단골손님이었던 마도카가 작가를 꿈꾸다는 점
이런 내용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읽는 행위'에서 그치지 않고 '쓰는 행위'로까지 연결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북두당에 머무는 고양이들의 전생 이야기를 통해 그들과 함께 했던 작가들이 창작활동을 하는 데 있어 얼마나 큰 고통을 겪었는지 풀어내면서 그들은 왜 글을 쓰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게 한다.
나는, 우리는 왜 고통을 인내하면서까지 글을 쓰는가?
개인적으로는 끝까지 시니컬했던 쿠로가 아마테라스를 만난 이후의 이야기가 더 궁금해졌다. 쿠로로 인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 수레바퀴가 과연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기대를 품게 했기 때문이다.
특히 유토피아이자 주술적 감옥이었던 '북두당'의 봄과 그곳을 150년 동안 지키고 있던 에리카의 성장이 어떤 식으로 꽃피울지 짐작이 되지 않아 더 기대감을 품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고양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대를 이어 '작가'들에 대한 삶의 기록을 남겨왔던 북두당. 이후에는 과연 어떤 변화를 맞이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