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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 없는 작가
다와다 요코 지음, 최윤영 옮김 / 엘리 / 2025년 8월
평점 :
"종잡을 수 없는 먼 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온 느낌!"
<영혼 없는 작가>라는 제목에 이끌려 읽게 된 책인데, 같은 말이지만 다른 의미로 영혼 없이 두둥실 어딘가를 떠돌다 온 느낌이 드는 책이었다.
장소, 관념, 언어, 시대, 단어, 개념 등 그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그저 떠오르는 어떤 소재에 대해 그냥 써 내려간 느낌이 드는 책!
형식과 장르 구분에서 벗어나 어떤 것에도 속하지 않은 상태의 글을 계속 읽다보니, 이것이 어떤 느낌에 대한 글인지, 아니면 사유인지, 상상인지 알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처음에는 좀 낯설고 이상한 느낌이 들었는데, 읽다 보니 어느새 모든 것을 훌훌 벗어던지고 그 자체로 글자 속을 자유롭게 유영하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러다가 종내에는 길을 잃고 방황하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는데, 뭔가 애매하고 알쏭달쏭한 느낌이 들어 어떻게 서평을 써야 할까 내심 고민이 되기도 했던 책이다.
그런 생각이 이어질 때쯤 반짝 눈에 들어오는 글귀를 가끔 만나기도 했는데, 그럴 때는 아주 오랜만에 쉴 수 있는 그루터기를 만난 기분이 들어 내심 안도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총 3개의 파트로 구성된 이 책은, 어떤 형식과 소재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경계를 넘나들며 상상, 느낌, 경험, 사유 등에 대해 나열한 에세이다.
그래서인지 적응하는 데 시간이 조금 걸렸는데, 그럼에도 끝까지 완벽하게 작가의 세계관을 이해하지는 못한듯 하다.
타인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니, 이해를 못하면 못하는 대로,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범위 내에이 책에 대해 소개하고 기록하려 한다.
무엇보다 글감의 소재와 대상들에 대한 스펙트럼이 너무 넓어 그것을 모두 작가의 세계관에 맞춰 받아들일려고 하면 가랑이 찢어질 것 같아 언어의 세계에서 말 그대로 떠돌다가 돌아왔다.
만약 언어의 세계 속에서 예측 불가능한 매력과 통념을 뒤흔드는 이색적인 경험을 맛보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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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다와다 요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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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어와 일본어로 글을 쓰는 작가.
<영혼 없는 작가>는 몸과 언어의 이동을 경험하며 낯설게 감각한 세계의 정경을 펼쳐 보인다. 작가는 말에서 소리를 채집하고, 소리를 몸으로 통과시키고, 몸을 다시 말로 변신시키는, 이 섞임과 깨짐의 사유로 언어와 문화의 '사이'를 예민하게 포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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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남은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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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문장들은 나를 그루터기에 앉혀 잠시 쉴 수 있게 해준 문장들 중 일부다. 첫 번째는 공감 가는 문장이었고, 두 번째는 언어유희가 돋보이는 글이었다.
책 읽는 사람 오른쪽에 앉은 여자는 책 읽는 사람을 보지 않는다. 여자는 내내 오른쪽만 보고 있다. 그러지 않으면 자신의 호기심을 억제하지 못하리라는 듯이 말이다. 옆 사람의 책을 몰래 같이 읽는 것은 전철 승객으로서는 가장 파렴치한 행위로 간주된다. 여자가 그 책을 도서관에서 보았다면 그 내용에 전혀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전철을 타고 이동하는 동안 사람들은 보통 때라면 결코 읽지 않았을 책에 관심을 갖게 된다.
전철에 터질듯이 사람들이 많이 있어도 거기에서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는 결코 좁지 않다. 책의 페이지들은 책 읽는 사람의 몸에 무한히 큰 공간을 만들어준다.
10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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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을 이용해 본 사람이라면 한번쯤 경험해볼 만한 내용이라 읽으면서 내내 웃음이 새어나왔다.
멍 때리고 앉아 있다 보면 옆 좌석에 앉아 무언가를 보고 있는 사람에게 자꾸만 시선이 가는 나를 발견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억지스럽게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는 했는데, 그런 모습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라 더 웃음이 새어 나왔다.
희한하게 그럴때는 평소 전혀 관심이 없던 것들조차 호기심으로 다가오곤 하는데, 그런 디테일을 잘 잡아낸 문장 덕분에 더 집중해서 읽게 되었던 것 같다.
반대로 미어터질 것 같은 지하철 속에서도 책에 빠져들면 시공간을 초월하게 된다. 사면에 둘러싸여 있는 공간도, 맞닿아 있는 사람들도 이 순간에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 그저 페이지 속에 존재하는 것들에 집중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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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수 있어요. 다른 언어에서는 디스크가 허리 디스크와 상관이 없을 수도요. 하지만 영어에서는 척추 안에 디스크가 들어 있어요. 사람들이 살면서 취하는 모든 몸의 자세가 그 안에 다 저장된답니다. 그리고 디스크가 허리에서 튀어나와 신경 줄을 마찰하면 매번 고통스러운 음악이 연주되지요.
26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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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의 동음이의어를 적절하게 활용해 언어유희적으로 표현한 문장으로, 청각과 시각적 요소가 쉽게 그려지는 단락이다.
마치 애니메이션처럼, 몸의 자세가 삐뚤어지면 디스크가 허리에서 튀어나와 신경 줄을 '팅팅' 튕기고, 그 때문에 고통에 찬 신음이 음악처럼 연주되는 모습이 그려져 디스크(Disk)라는 단어가 더 머리에 콕 박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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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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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쓴 책 전체 내용을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앞서 나에게 그루터기처럼 찾아왔던 기발한 문장들과 같은 느낌들 때문에 아마 독자들이 '재출간을 열렬히 요청한 책'이 되지 않았나 싶다.
이 책에 대한 이미지는 나에게 있어 '마르크 샤갈'의 그림처럼 다가왔는데, 꿈 속에서 두둥실 떠다니며 마음껏 하늘을 날아다니는 느낌과 같았다.
어딘가 불안하면서도 자유로운 느낌, 그 자체였다. 어떤 것은 따라잡지 못해 불안했고, 또 어떤 것은 기발함과 창의성에 무릎을 탁 치며 한껏 즐기기도 했다.
이 작가는 일본어와 독일어 이중 언어로 글을 쓴다고 하는데, 그래서일까 사고하고 언어를 글로 풀어내는 데 있어 조금 더 경계가 없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 어쩌면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작가 본연의 사고나 체계가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어쨌든 그 때문에 모든 벽을 허문 상태로 자리한 다양한 언어와 문화, 그리고 사고를 접할 수 있었다.
가끔 '꼭 이렇게 써야만 해!'라는 사고에 사로잡혀 한 글자도 전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완전히 자유로운 나체 상태로 펼쳐진 <영혼 없는 작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