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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딩엄마 파란만장 인생 분투기 - 반드시 지켜주겠다는 약속
차이경 지음 / 이야기장수 / 2025년 8월
평점 :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파란만장 인생 이야기!"
처음에 제목을 보고는 '파란만장하지 않은 인생이 어디 있어?'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페이지를 펼쳐 들고 보니, 영화보다 더 극적인 인생이 이 책 한 권에 담겨있었다. 흔히 말하는 '인생이 영화보다 더 영화 같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주인공이 바로 여기 있었던 것이다.
솔직히 처음에는 '고딩엄마'라는 단어가 썩 좋게 들려오지는 않았다. 책임지지도 못할 짓을 저질러 놓고 '고딩엄빠'라는 이름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프로그램을 포함해서 내세울 만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거의 1세대(이게 맞는 표현인지는 모르겠다)라고 말할 수 있는 1980년대 '고딩엄마'로 살아온 저자의 인생을 담았다고 하니 한편으로는 얼마나 힘겨운 날들을 보냈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 안쓰러운 마음도 일었다.
총 3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저자의 파란만장한 삶을 담고 있는 에세이로, 준비도, 정보도 없이 덜컥 아이를 출산하게 된 '고딩엄마'의 성장담과 인생사를 담고 있다.
특히 저자의 삶을 통해 시대상의 변화와 관계, 상황, 그리고 성장까지 한눈에 볼 수 있어 어떤 면에서는 한 사람의 인생사가 아니라 한국사를 한눈에 펼쳐놓고 본 기분마저 들었다.
이 책에는 '이런 일까지 겪었다고?'라고 말할 정도로 삶 전반을 다 담아냈는데, 그럼에도 지루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아마도 속도감 있게 전개되는 스토리 때문이 아닐까 싶다.
시대적 배경 때문일까? 저자가 학업도 포기하고 고딩엄마로 살아가면서 겪은 힘든 상황들을 살펴보면, 현시대와는 다르게 '우울감'이나 개인적으로 힘든 감정에 대해서는 크게 언급되지 않는다.
어쩌면 배고픔과 굶주림, 쫓겨날 위기, 시댁 어른들의 폭언과 폭력, 아이를 뺏길 뻔한 상황들과 같이 현실적인 부분에서 워낙 큰 사건들을 겪어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저자는 '고딩엄마'가 아이를 훌륭하게 키워 낸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자신의 삶을 바로잡는 것은 물론, 큰 병을 겪고도 몇 번이나 다시 일어서고, 남편의 뒷바라지와 시부모와 친정엄마의 케어, 그리고 둘째 아이까지 무사히 돌보며 함께 성장한 모습을 보여준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그 무엇도 소홀히 하지 않은 삶을 산 것이다.
자신을 가장 힘들게 했던 시어머니의 사망을 끝으로 이야기는 끝이 나는데, 어쩌면 이것을 기점으로 진정한 3막이 시작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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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살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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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덟 살 고등학생의 나이로 저자는 덜컥 임신을 하게 된다. 어느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상태로 시간은 흐르고 그러다 고3의 화창한 어느 봄날,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지게 된다.
그때가 주민등록증을 발급받기 위해 동사무소에 제출할 서류를 받아놓고 나서였는데, 이 일로 주민등록증 발급은커녕 8일을 반 혼수상태에서 아이를 출산하게 된다.
마침 동생과 자신을 보러 온 엄마가 이를 발견하고 집에서 얼떨결에 아이를 받아내게 되면서 첫째 아이는 그렇게 집에서 출산하게 된다.
이때 임신중독증으로 몸이 붓는 등 꽤 고생을 많이 했는데, 먹고 살 일이 막막했던 터라 병원은 못 가고 집안에서 그냥 누워 지내는 것으로 별다른 조치 없이 보내게 된다.
그 집은 단칸방으로 엄마가 재혼하면서 동생과 둘이 살 수 있도록 구해 준 집이었는데, 임신과 출산 그리고 갑자기 생긴 아이의 아빠로 인해 넷이 함께 생활하게 된다.
이 일을 알게 된 시댁 어른들은 다짜고짜 찾아와 아기를 입양 보내자는 말부터 꺼냈고, 이를 거절하자 이후에도 여러 차례 찾아와 모진 말을 내뱉으며 상처를 준다. (참고로 시댁은 매우 부유한 집이었음)
당시 저자는 시집 식구도 친정 식구도 아무도 믿을 수 없었다고 이야기하는데, 핏덩이 하나만 처리하면 모두가 정상으로 돌아갈 거라고 믿는 어른들의 태도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이후에도 저자는 시댁 어른들로부터 수많은 수모와 폭행, 욕설 등을 당하게 된다. 심지어 자신의 막내아들이 이런 상황에 놓인 것은 모두 저자의 탓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런데 실상은 이미 남편은 폭력 사건으로 학교를 그만둔 지 오래인 상황이었다.
그나마 간간이 친정엄마가 새아버지 몰래 도와주고는 있었지만, 고등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않은 두 젊은 엄마 아빠가 자력으로 생활을 이어나가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래서 쫓기듯 이사한 것이 수십 차례였고, 굶주림에 시달리는 것은 일상이었다. 다행히 아기가 순하고 착해서 별달리 보채는 것은 없었지만, 종종 분유가 떨어지거나 한겨울 냉방에서 보내는 일도 허다했다.
이 와중에 백일 때는 시댁의 술수에 휘말려 아기를 뺏길 위기에 처하기도 하지만, 결국 끝까지 아기를 지켜낸다. 그러다 남편이 정신을 차리게 되면서 대학에 가기로 마음을 먹게 되고, 이로써 시댁 어른들의 도움으로 공부해서 대학에 합격하게 된다.
대학을 다니는 한동안 남편의 외도로 마음이 들끓이기도 했지만, 어쨌든 그렇게 남편이 대학을 졸업한 이후 바로 취업하게 되면서 아이가 여섯 살이 되던 해 결혼식도 올리게 된다.
덕분에 아이의 출생신고와 저자의 주민등록 신고까지 모두 마무리 지을 수 있게 된다. 그러면서 조금씩 안정세를 찾는 모양새를 띄기는 했지만, 그 이후에도 삶은 호락호락하지 않게 흘러간다.
새아버지는 바람이 나서 재산을 가지고 도망쳤고, 이 일로 친정엄마는 도망간 남편을 잡겠다고 차를 사고 주변에 돈을 빌렸지만, 그 빚을 다 딸에게 전가하게 되면서 저자는 둘째를 임신한 상태로 또 힘든 나날을 보내게 된다.
시어머니가 풍으로 병원에 입원했을 때는 먼 거리를 걸어 병원까지 식사를 챙겨주게 되는데, 이것이 어느새 온 가족 식사를 챙겨주는 일이 된다. 하지만 이 일로 잠시 인정받게 되면서 시어머니와의 관계가 가까워지기도 한다.
남편은 어느 날 입영통지서를 받게 되는데, 면제를 받기 위한 저자는 온갖 노력을 하지만 모두 무산되고 둘째 출산까지 한 달간의 유예만 받아들여진다.
저자는 둘째를 낳은 후 심한 빈혈로 인해 한동안 병원에 꼼짝없이 누워 있어야만 했는데, 이때 남편은 뇌 쪽에 종양이 발견되면서 그토록 바라던 병역면제를 판정받게 된다.
이 외에도 좀 살만해질 즈음 저자는 희귀 난치성 질환이라 불리는 '크론병' 진단을 받게 되고, 큰 아이는 귀가 중에 큰 교통사고를 당하게 된다. 시어머니는 앞서 진단받은 치매와 중풍에 이어 폐암에 걸리게 되면서 결국 사망하게 된다.
그렇다고 나쁜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 와중에 우연히 참여한 주부백일장 대회에서 장원에 당선되면서 문학소녀의 길을 가게 됐고, 덕분에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까지 합격하는 기쁨도 맛보게 된다.
남편도 대학원에 입학하게 되면서 한때는 가족 모두가 공부하는 학생이기도 했는데, 그러다가 또다시 현실적인 문제들에 부딪히며 저자는 결국 대학을 자퇴하게 된다.
하지만 운전면허증을 따고, 글을 쓰는 등 끊임없는 활동을 통해 자기 계발을 하게 되면서 어느새 떳떳한 엄마이자 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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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남은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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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비싼 건 아니다. 어릴 땐 천하게 키우라고 했어. 젊을 때 고생은 사서라도 하라는 말이 있다. 괜찮다. 넌 꼭 잘 살 거다. 네가 지금 고생한 거 나중에 다 돌려받을 거니까 아무 걱정 하지 말아라. 넌 꼭 잘될 거다."
15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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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댁 식구들 중에 유일하게 저자를 다독여 주며 '잘 될 거라고' 이야기해 준 사람은 큰 고모가 유일하다. 없는 살림에도 아이 생일 선물을 사 와 인사를 건네고 '아무 걱정 하지 말라고' 말하는 큰 고모님 덕분에 저자는 그나마 시댁 식구들에 대한 미움을 덜 가질 수 있지 않았을까?
작은 아기를 끌어안고 마당 한가운데서 시부모님한테 폭행과 폭언을 듣는데도 그냥 보고만 있던 동네 주민들과 남편의 형제들의 모습과는 너무나 대조되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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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뭐 하느라 여태 그 모양인 거니? 어떻게 하면 이렇게 나락에서 벗어나질 못하는 거야?"
(...)
언제나 가장 날카로운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가까운 사람들이었다. 차라리 남들은 성실하지만 제대로 일이 풀리지 않는 남편을 안타까워하고 마음으로라도 도와주려고 했다.
33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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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집안에서 6남매 중 막내로, 유달리 더 외로움을 타는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어쩌면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이처럼 상처 주는 말들을 듣고, 제때 부모로부터 애정을 받지 못해서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보다 못한 가족'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말이 아님을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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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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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처럼 '파란만장한 인생 분투기'를 다루고 있는 이 책을 읽다 보면, 영화 저리 가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인생 산 넘어 산이라더니 어쩜 이리도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는지 그저 답답할 따름이다.
청춘 시절에 한 번쯤 우스갯소리로 '인생=고난'이라는 말을 하곤 하는데, 이 말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니구나 싶은 생각도 든다.
저자는 이 책에 끊임없이 밀려오는 인생의 파도를 그저 덤덤하게 풀어냈는데, 개인적으로는 당시 속마음은 어땠는지 묻고 싶다.
'그때 이혼하고 싶지 않았는지', '왜 끝까지 남편과 함께 하게 됐는지', '시댁 식구들이 많이 밉진 않았는지', '어떤 힘으로 버텼는지', '대학을 자퇴했을 땐 아쉽지 않았는지' 등등.
묻고 싶은 질문들이 너무 많다. 80년대의 삶을 돌아보면 경제적으로 결코 넉넉하지 않은 시대다. 또 고등학생의 임신이나 출산이 호락호락 넘어가던 시절도 아니다.
끝에 다다라 부부가 중졸이라고 해도 납득할 법한데, 이들은 그렇게 인생의 종지부를 찍지 않았다. 필요성을 느껴 열심히 공부했고, 그렇게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졸업장을 따게 된다. 그리고 원하는 대학교에 입학도 하게 된다.
희귀병에 걸려 좌절하기도 하지만, 아이들을 위해 다시 일어섰고, 그 와중에 기회가 있을 때마다 도전을 이어가며 열심히 인생을 살아간다.
분명 그냥 내려놓고 싶은 날도 수없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그 모든 날들을 견디고 버텨냈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을 가장 힘들게 했던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게 된다.
이야기는 그렇게 끝맺게 되지만 아마 이후부터는 또 새로운 인생 챕터가 시작되지 않을까 한다. 그리고 그 인생 이야기에는 가족이나 타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저자 자신의 이야기가 더 많이 자리하게 되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