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를 사랑하는 직업 마음산책 직업 시리즈
요조 (Yozoh) 지음 / 마음산책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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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몇 가지 즐겨보던 프로그램에 패널로 등장하면서 뮤지션으로 알고 있던 요조. 그러나 언젠가부터 연예인에 특별히 관심이 없어지면서 찾아보기보다 보이면 보이는 대로, 들리면 들리는 대로 즐기게 되면서 내 기억 속에서 잠시 사라졌던 그녀.

 

그럼에도 간간이 그녀가 독립서점을 열어서 운영 중이라는 소식과 더불어 유튜브 파도타기로 그녀 지인의 유튜브에 등장한 모습을 잠시 들여다보기도 하면서 마치 가끔 연락하는 지인처럼 소식을 접했던 그녀였는데, 최근에 읽었던 책에 그녀의 책이 언급되면서 내심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무심결에 선택한 그녀의 산문집을 우연찮게 손에 쥐게 되면서 내가 몰랐던 그녀의 일상과 취향, 가족과 지인들, 속에 담아둔 사정까지 알게 되었다.

 

이 책은 뮤지션이자 작가, 동네 서점 주인인 요조가 그녀의 시선에 담긴 일상과 사람들을 자신만의 언어로 담고 있는 에세이집이다.

 

 

음악에 대한 자신만의 생각, 갑작스러운 사고로 동생을 잃은 이야기, 채식주의에 대한 자신만의 견해, 책과 책방, 음악에 이르기까지 얽혀있는 다방면의 예술가들과의 관계, 책방 운영에 대한 현실적인 이야기, 일상에서 느낀 소소하지만 큰 깨달음 등 요조의 일상에서 이루어지는 것들을 그녀만의 느낌과 감성으로 풀어냈다.

 

읽다 보면 요조의 성격과 취향, 스타일을 가늠해 볼 수 있는데, 생각보다 털털하고, 생각보다 상처가 많으며, 생각보다 엉뚱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떡볶이를 너무 좋아하는 그녀, 밤하늘의 별 보는 것을 무서워했던 그녀, 한때 동생의 죽음으로 인해 지하철을 타지 못했던 그녀, 혼맥에 황태채구이를 즐겨먹는 그녀 등등.

 

그녀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 자리한 일상을 살펴보며, 소소하지만 특별한 하루 속에 자리한 깨달음을 따라가보자.

 

그녀가 그녀 주변의 사람들을 부르는 호칭은 어딘가 남다르게 다가온다. 가족을 비롯해 지인들을 다정하게 '00~야'라고 부르기보다 '홍길동'은 식의 조금 딱딱해 보이지만, 애정이 묻어있는 이름 혹은 별칭으로 호칭한다.

 

그래서인지 읽으면서 이런 호칭들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다. 실명을 정확히 알 수 없기에 어떤 것들은 진짜 이름인지 그녀만의 애칭인지조차 분간하기 힘든 것들도 있는데, 그녀가 부르는 호칭대로 불러보며 이미지를 상상해 볼 따름이다.

 

▶남친: 이종수
▶어머니: 백기녀
▶아버지: 신중택
▶친구: 위아래
▶위고출판사대표/친구: 조소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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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시도 때도 없이 자는 얼굴을 생각하며 지내고 있는 것처럼 모두가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있다. 그러면서 하루씩 하루씩을 견디고 있다. 다들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나는 위아래와 조소정의 자는 얼굴을 상상하면서 가만히 궁금해졌다.

7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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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이 서로의 자는 얼굴을 보고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어느새 자신 주변 사람들의 자는 얼굴을 생각하게 된 저자. 깨어 있는 모습과는 확연히 다른 사랑하는 사람의 자는 얼굴은 때로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연약하고 무해해 보이는 자는 얼굴은 수만 가지의 상황과도 직결된다. 의료진들의 지쳐 쓰러져 자는 잠, 누군가의 죽음 앞에 드리운 잠, 불면증이 시달리다 겨우 든 잠 등.

 

눈뜨자마자 맞는 아침에 무력감을 느낀 저자는 문득 사람들의 자는 얼굴을 떠올리며 그들은 잠들기 전 어떤 하루를 견디며 보냈을까를 떠올려 보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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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복잡한 아픔들에 주로 모른다는 말로 안전하게 대처해왔다. 빼어나고 노련하게. 그리고 예의 바르게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손사래도 치고, 뒷걸음도 친다. 그 와중에 김완이나 고승욱 같은 사람은 모르는 채로 가까이 다가간다. 복잡한 아픔 앞에서 도망치지 않고. 기어이 알아내려 하지도 않고 그저 자기 손을 내민다. 모른다는 말로 도망치는 사람과 모른다는 말로 다가가는 사람. 세계는 이렇게도 나뉜다.

9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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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장을 읽으며 문득 누군가의 복잡한 아픔 앞에 나는 어떤 태도를 취했나 생각해 보게 한다. 그리고 이내 모른다는 말로 도망치는 것보다 모른다는 말로 다가가는 게 훨씬 더 어렵다는 것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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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인척 관계로 할아버지를 경험해 보지 못했고 다른 할아버지들과 다정한 라포를 형성해 보는 데도 실패한 나는 어른이 되면서 나조차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자연스럽게 할아버지들을 슬금슬금 피하며 사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다 얼마 전, 한 할아버지랑 마주 앉아 같이 저녁 식사를 했다.

(...)

이 할아버지는 친구 박승호 때문에 알았다.

(...)

작년 여름, 박승호는 '울 아버지 전시회 하는데 올래?" 하고 나풀나풀 한 톤으로 말했다.

(...)

할아버지의 이어지는 이야기를 들으며 이종수는 "으아, 저도 선생님 손자가 되고 싶네요!" 하고 말했다. 실은 나도 속으로 비슷한 생각을 했다. 손자가 되어서 "할아버지" 하고 불러보고 싶다고. 그래도 이 글을 쓰면서 할아버지, 할아버지, 할아버지, 할아버지 원 없이 적었으니 되었다.

101~10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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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이 이야기를 통해 어릴 적 몇몇의 경험으로 특정 대상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강하게 박혀있는 상황에서도, 특별한 긍정적 경험을 그 위에 쌓게 되면 이것 또한 바뀔 수 있구나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하는 일화 중 하나였다.

 

만약 과거의 경험으로 인해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것이 있다면, 새로운 경험이나 긍정적 인식으로 덮어버리면 어떨까? 그 덕에 어쩌면 새로운 시너지와 더 나은 생각들을 일깨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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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가 끝나고 나를 기다리고 있던 신봉수와 홍대까지 걸어왔다. 어떻게 그런 연기가 나왔냐고 내가 놀라워하자 신봉수는 요즘 정말 외로웠다는 의외로 간단한 대답을 내놓았다. 극중 인물의 마음에 자신을 담아낸 그의 얼결의 용기에 나는 감명을 받았다.

 

"어쩜 그렇게 다들 연기해 본 적도 없으시면서 잘하시던지. 진짜 놀랐어요. 배우처럼 다듬어진 톤은 아니었지만 그래서 뭔가 더 정말 같았어요. 아까의 우리들을 보자니 예술이란 것이......"

 

나는 그의 말을 이었다.
"참 흔한 거였어요."
"맞아요."

112~11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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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렵게만 생각하는 예술이 사실 어쩌면 의외로 흔하고 일상적인 것을 담아내는 행위인지도 모르겠다. 이들이 희곡을 읽으면서 자신의 처지와 생각을 담아낸 것처럼.

 

덕분에 매끄럽진 않지만 오히려 더 현실감 돋는 느낌을 받은 것은 아니었을까? 가짜 같지 않은 진짜 같은 느낌! 예술은 그런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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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의 남은 인생을 내 주변의 멋진 사람들을 흉내 내면서 살고 싶다.'
이 말을 벌써 몇 번째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
나는 거칠게 세 사람을 따라 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그 세 사람은 내가 평소에 비웃고 놀리는 데 주력해 왔던 자들이다.

 

1. 장강명의 스톱워치 워킹
그의 스톱워치 사용 사례는 비단 작업할 때뿐이 아니었는데, 녹음을 마치고 다 같이 뒤풀이하는 자리에서도 스톱워치를 켜는 장강명을 본 적이 있다.
(...)
그러던 어느 날, 나에게 어떤 위기가 있었다. 이른바 마감 폭탄이었다. 우연히 일렬로 정렬하듯이 동일한 마감일에 우르르 줄을 섰다.

 

극단적인 스트레스에 사로잡힌 채로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몇 시간이고 트위터 타임라인만 들여다보았다. 그러다 더 이상 물러날 수 없는 지경에 다다르고 내가 무슨 짓을 해도 하루를 24시간 이상으로 늘릴 수는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받아들이던 날 아침에, 지푸라기를 잡는다는 심정으로, 나는 스톱워치를 켰다.

 

결론만 간단하게 말하자면 나는 원고들을 다 끝내는 데 성공했다.

 


2. 김홍란의 채식 인생
김홍란은 오래전부터 페스코 베지테리언(육류는 먹지 않고 생선, 동물의 알, 유제품은 먹는 채식 유형) 이었다. 한번은 '천진 포자'라는 만둣집에 함께 간 적이 있었는데, 가끔 고기만두가 사무치게 먹고 싶어진다고 말하며 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만두를 허겁지겁 먹었다. 나는 김홍란에게 뭐 하러 그렇게 고생을 사서 하냐고 말했다.

 

김홍란은 무슨 귀한 비밀이라도 되는 듯이 목소리를 죽이고 이른 말을 했다.
"정말 비건처럼 먹게 되잖아? 그럼 응가에서 냄새가 안 나."

 

몇 권의 책의 도움을 받아 2018년 12월부터 김홍란처럼 고기를 끊었다. 초창기에는 비건식을 고수하다가 도저히 내 끼니 환경으로는 비건을 유지하기 쉽지 않아 비건을 지향하는 페스코 베지테리언으로 지금까지 제법 잘 지내고 있다. 그리고 비건식을 고수하던 초창기 내가 가장 열심으로 했던 일이 화장실에 가서 킁킁거리는 일이었다.

 

 


3. 허세과의 일본 제품 불매
왜 일본 제품을 불매하는 것인지 물어보자 허세과는 차분하고 길게 본인의 생각을 이야기했는데 그 이야기를 요약, 정리하자면 이렇다.

 

'일본 강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분들을 향한 일본 정부의 태도에 무척 화가 난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사실이 속상하다. 별것 아닐 수 있지만 일본 제품의 소비를 거부하는 것으로 나는 나의 의견을 표명하고 싶다.'

 

그때부터 나도 허세과의 고독한 무브먼트를 따라 했다. 뭐랄까 나의 동참은 정치적 의도라기보다는 그저 허세과를 응원하고픈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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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엉뚱해 보이지만, 어딘가 모르게 결연함과 의리, 현실감이 돋는 이야기다. 단순히 놀리는 것에 그치고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 저자는 가까이 있는 지인들을 깊이 있게 관찰하고 관심을 가짐으로써 이들이 가진 장점을 자기 것으로 만든 것이다.

 

덕분에 결론은 모두 해피엔딩이다.

 

요즘 말로 하면 벤치마킹 후 이점을 자신의 것으로 만듦으로써 장점을 극대화한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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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중요한 것은 서울이 그래서 과연 실제로 얼만큼 아름다운지가 아니다. 나는 서울을 아름답다고 느끼는 나에게 주목하고 있다. 서울에 올 때마다 그래서 서울의 여기저기를 기웃거릴 때마다 '내가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라며 서른네 살이 되도록 살았다'는 간단하게 뭉뚱그려진 사실 하나가 조금씩 조금씩 자세하고 분명해지고 있다.

(...)

멀고 수려한 섬에서 몇 년 살고 나서야 서울에서 내내 살았던 내 지난 삶을, 이 아무것도 아닌 시절을 '아름답다'는 감정 아래에서 이렇게 흥미진진하게 바라보고 있다. 아름다움은 이토록 재미있다.

13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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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떠나봐야 집의 소중함을 알 수 있듯이, 저자의 제주와 서울을 오가는 이중생활은 바쁘고 호들갑스럽게 돌아간다고 느껴졌던 원래 살던 도시 서울을 더 아름답게 볼 수 있도록 해주었다.

 

별거 아닌 작고 소중한 일상을 하나씩 인식하게 되면서 풍성하고 새롭게 다가오는 느낌은 얼마나 새롭고 흥미진진할까?

 

익숙함에 속아 진짜 소중한 것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새삼 주변을 다시 돌아보게 되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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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구겨진 얼굴들을 보며 이제 절대로 '저렇게까지 흥분할 일이야?'하고 생각하지 않는다. 죽고 싶을 만큼 매일같이 겪는 불평등과 차별들, 아무리 좋게 말해도 듣지 않고 변하지 않아 결국 얼굴이 꾸깃꾸깃 구겨진 채로 거리에 나온 노동자들과 여성들, 장애인들, 그 밖의 약자들.

 

언제 어디서든 어떤 구겨진 얼굴을 마주했을 때 '얼굴을 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당신의 얼굴이 이렇게 구겨지도록 만들었는지를 묻는 것. 최대한 자주 그 구겨진 얼굴을 따라 옆에 서는 것. 책방을 운영하면서 힘들고 귀하게 배운 태도이다.

17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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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경험해 보지 않으면 흔히들 '왜 저래?'가 절로 나오는 얼굴 찌푸리게 만드는 상황들은 사실 깊게 다가가보면 수없는 차별과 불평등 속에 내던져진 사람들의 끊임없는 외침이 불러온 모습들이다.

 

그렇게 자리한 구겨진 얼굴은 어느새 당연한 것처럼 자리 잡아 원래 그런 모습처럼 느껴지곤 하는데, 그런 그들을 마주한 사람들은 너무 쉽게 얼굴 피라며 아무 말이나 내뱉는다.

 

저자는 책방을 운영하며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님을, 현실은 생각보다 낭만적이거나 평화롭지 않음을 절절하게 깨닫는다. 덕분에 구겨진 이들에게 무엇을 물어야 하는지를, 어떻게 그들을 대해야 하는지를 제대로 배웠다고 말한다.

 

 

경험의 정도는 다르겠지만, 이 책을 읽으며 모두 저마다의 고난과 아픔, 그리고 그 속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삶의 의지를 불태우며 살아가고 있구나를 실감할 수 있었다.

 

드러 낼 수 없는 것, 드러나지 않는 것들을 마음속에 한 움큼 움켜쥐고 한발 한발 나아가며, 자신만의 삶의 궤적을 그러나가는 모습은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음도 알 수 있었다.

 

더 가치 있는 삶, 더 나은 삶을 위해 가까이 있는 멋진 사람들을 흉내도 내보고, 좋아하는 것들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눠보기도 하며, 넘을 수 없을 것 같던 아픔에서 한 발짝 나아가 보는 일련의 행위들은 어쩐지 자꾸만 응원과 격려를 하게 만든다.

 

어쩌면 이것은 또 다른 나 혹은 주변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리게 해서일지도 모르겠다. 이는 곧 저자처럼 익숙함에서 벗어나 일상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고, 사소하지만 소중한 나날들로 채워보면서 하루를 꽉 채워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나만의 감각으로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부드럽게 매일매일 그렇게 쌓아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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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에게 - 오늘을 껴안는 한뼘 편지
김민 지음 / 도서출판이곳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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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대로 기대를 하며 처음 받아든 이 책의 첫 느낌은 '불쾌함'이었다. 구깃구깃 찌그러지고 일그러진 앞 뒷면의 책 표지는 내 마음까지 일그러지게 만들었는데, 마치 중고책을 보낸 듯한 느낌이었다. 더불어 이 책을 교환하고자 문의하는 과정에서 말할 수 없는 불쾌함과 짜증까지 더해지면서 완전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정치권에서 최근 가장 많이 쓰는 말, '내로남불'. 딱 이 말이 어울리는 상황이었다. 해당 책을 제공한  플랫폼에서는 서평을 위해 제공되는 책이라 곧 죽어도 교환이 안된단다. 여기에 더해 책을 읽을 수 없을 정도의 파손이면 차라리 인증 사진을 보내고 서평을 쓰지 말라는 어이없는 답변까지! (회수도 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저기요~ 책이 읽을 수 없을 정도의 파손상태면, 그건 책이 아니라 쓰레기를 보낸 거거든요!"

 

내 마음속 답답한 외침을 꾹꾹 눌러 담은 채, 새 책을 버젓이 팔고 있는 인터넷 서점을 가만히 노려본다. 그리고 이내 서평을 위한 책을 굳이 구분해서 관리하는 이유가 궁금해진다.

 

어차피 훼손되어 못 파는 책, 서평이라는 구실로 꿩먹고 알먹고 해보자는 심산일까? 앞서 해당 사이트의 엉망진창 대응에 이미 며칠을 소비하고 신경을 썼던지라 이들의 이런 대응은 그저 기가 찰뿐이었다. 그러면서 이 책을 쓴 저자는 과연 알고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각종 서평에 참여해서 책을 받아보면, 책에 대해 얼마나 애정과 정성을 담고 있는지가 극명하게 갈리는데, 정성을 담은 곳들의 경우 별도의 박스를 제작해서 아예 선물처럼 담아 주시는 곳도 있고, 책을 한 번 더 포장지에 싸서 손글씨로 쓴 메모와 작은 간식까지 담아주시는 경우도 있었다.

 

따지고 보면 별거 아닌데, 책을 제작하고 배포하는 곳에서 꽤나 신경을 쓰고 있구나, 애정을 가지고 있구나, 처음 책을 받아드는 독자들에게도 신경을 쓰고 있구나라는 느낌이 들어 더 열심히 책을 보게 되는 매직을 경험하게 된다.

 

작은 초콜릿과 사탕 한두 개의 문제가 아니라, 그 정성에 탄복하게 되는 것이다. 기실 매번 그런 포장과 손글씨를 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그저 깨끗한 책 한 권을 보내준다면 개인적으로는 그것만으로도 만족한다. 

 

하얗고 깨끗한 첫눈을 밟듯, 그렇게 새 책을 펼치며 작가의 세계를 탐독하는 재미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책을 펼치기도 전에 느끼는 불쾌함이라니.

 

내가 만약 이 책을 쓴 저자라면, 이런 식으로 책이 홍보되는 것이 달가울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나 같으면 '절대 아니'다. 몇 날 며칠을 밤을 새우고 고치고 또 고치며 출간한 새 책이 처음 읽는 독자들에게 이런 식으로 전달되는 방식이라면, 절대 플랫폼에 맡기지 않을 것이다. (출판사가 이런 것을 사전에 생각하고 별도의 책을 전달한 것이라면 또 이야기는 달라진다)

 

어쨌든 플랫폼을 통하지 않고서도 요즘은 홍보할 수 있는 방법이 무수히 많으니(특히 서평단 모집이라면 더 그렇다!) 굳이 플랫폼을 이용해서 이런 식의 불쾌한 방식과 경험을 첫 독자에게 안기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을 것 같다.

 

어쨌든, 책의 첫 페이지를 펼치기도 전에 한참 진을 빼고, 마음은 상할 대로 상한 채로 구석에 처박아 둔 책을 늦은 밤 펼쳐든다. 어찌 보면 의도와는 상관없이 이미 꼴 보기 싫은 책이 되어버린 것을 방치만 할 수 없어 꺼내든 참이다.

 

그렇게 책을 읽게 되었다.

 

 


책 읽기 전, 완전히 마음이 상한 것치고는 페이지를 펼치자마자 책은 술술 읽혔다. 1장만 읽고 잠자리에 들어야지 했는데, 읽다 보니 어느새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있었다.

 

어쩌면 이 책에 담긴 내용들이 지금의 내 상황과 맞물리면서 공감과 힐링을 이끌어 냈고, 그러면서 그때까지도 가라앉지 않던 남은 분노가 서서히 사그라들면서 마지막 페이지까지 도달한 것이 아닐까 싶다.

 

아이러니하지만, 이 책 덕분에 내 침대로 내가 사랑하지 않는 감정을 끌고 오지 않고 잠들 수 있었다.

 

 


이 책은 삶이라는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모든 이들에게 저자가 보내는 응원이자, 당신 또한 세상에 없던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지은이'라는 것을 일깨우는 편지로, 시의 형식을 빌려 전하고 있다.

 

또한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지은이'인 모두가 삶의 주인공이라는 것을 한 번 더 환기시키며, 삶의 의미를 잃거나 고난이 찾아오는 순간 센 물살에 휩쓸리지 않도록 튼튼한 다리 역할이 되어 주는 다정한 말을 담고 있다.

 

본격적인 책 탐구에서는 위에 언급한 이 책을 수령하는 과정에서 겪은 나만의 경험과 이야기에서 느낀 부정적 감정을 새롭게 상쇄시킨 문장도 함께 소개해 볼 예정이다.

 

 


=====
(...)
살아있는 모두가 지은이죠.
저마다의 삶에 깃든 문장이 모여 세상이라는 이야기가 되지요

 

당신도 하나뿐인 이야기의 주인이죠
이야기는 '흐름'으로 생명을 얻어요.
뜻밖의 사건이 있어야 하고
바라지 않은 만남과 이별을 통해 나아가죠.
시작과 끝을 선택할 수 없지만 그 사이의 모든 장면을 결정할 수 있어요.

 

기쁨으로만 채워진 삶이 없듯이
불행으로만 가득한 삶도 없어요.
매 순간 삶은 그저 반짝이고 있죠.

 

(...)
신의 뜻대로, 당신의 뜻대로 하나뿐인 이야기를 이어가세요.

지은이에게 (12~14페이지 中)
=====

 

1장, 첫 페이지에 자리한 시였는데, 이 시를 읽으며 '그래, 지금 내가 주인공인 또 하나의 이야기를 쓰고 있는 거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예상치 못한 뜻밖의 사건 전개가 있기에 이 이야기에 재미가 덧씌워지는 것이고, 삶이라는 이야기가 풍성해지는 거구나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비록 시작과 끝은 내가 선택할 수 없었지만, 중간에 이루어지는 과정은 내 선택에 의해 여러 장면을 만들어 냈는데, 정당한 요청을 통해 어처구니없는 '거절'의 답변을 받았고, 두드려도 절대 바뀌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얻었다. 그래서 나만의 방식으로 그 서사를 풀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냉가슴 앓으며 어쩌면 더 오래 마음속에 담아두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부딪히고 경험하며 상대를 알고 나를 아는 시간을 가졌다.

 

 


=====
흉터를 지우면 아무것도 남지 않을 테지요.
얼룩을 빼버리고 나면 백지만 남을 테지요.

 

당신의 날들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지우고 싶은 기억이 없었던 거라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일과
부르지 못하게 된 이름들이 아니었다면
당신은 이곳에 있지 않을 테지요.
당신은 당신이 아닐 거예요.

 

그렇게 바람이 불었던 것은
먼 여행을 떠나는 당신의 날개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였죠.

 

그렇게 많은 비가 내린 이유는
당신에게 깃든 초록의 생명을 일깨워주기 위해서였죠.
(...)

 

그렇게까지 많은 일이 생겼던 이유는
한 가지 색으로 무지개를 그릴 수 없기 때문이었죠.
당신의 삶을 세상의 빛으로 물들이기 위해서였죠.
무지개를 만드는 사람 (21~22페이지 中)
=====

 

삶은 좋은 일과 안 좋은 일이 뒤섞여 풍성한 경험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가끔 너무 지치고 고단한 날이면, 그날만큼은 지우개로 박박 지워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하지만 그런 날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고, '현재의 내'가 만들어졌음을 기억하자.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는 나를 더 성장시키고 발전시키기 위함임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덕분에 처음 이 책의 서평단으로 신청한 과거의 시간을 더 이상 지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세상의 경험 한 스푼을 배우고, 이 책을 얻었으니 말이다.

 

 


=====
바친다는 말에는 후회가 깃들어요.
바쳤다는 마음은 희생을 전제하죠.

 

당신은 삶을 누렸을 뿐이에요.
당신이 선택한 인생이었고
당신이 만들어온 길이었어요.
헌신이 아닌 '누림'이었죠.

 

바침을 누림으로 여기면
지금까지의 모든 순간이
당신의 지금을 지탱해 줄 거예요.
세상이 당신의 이야기를 지지할 거예요.

 

꽃 말고는 바치지 마세요.
당신의 빛을 망치지 말아요.
꽃 말고는 바치지 말라 (38~39페이지 中)
=====

 

한 끗 차이의 관점이 세상을 보는 시야를 바꿔주는 것임을 제대로 일깨워주는 문장이다. 드라마를 보면 '자식을 위해 내 인생을 바쳤다'라고 말하는 어머니의 대사를 들을 때면 뭔가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 시를 통해 그 이유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 말에 스며든 부정적 감정인 '후회'와 '희생'이 그렇게 느끼도록 한 것이었다. 이제부터는 '내 인생을 누렸다'라고 말해보자. 꽃을 제외한 그 무엇도 '바칠'것은 없다. 그저 누릴 뿐이다.

 

 


=====
타인은 나보다 나를 잘 알 수 없어요.
타인은 나보다 나를 신경 쓰지 않아요.

 

타인의 말을 해석하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마세요.
칼로는 비를 막을 수 없는 법이죠.
말로 싸우려 들 필요 없어요.
침묵을 우산 삼아 흘려보내세요.

 

타인의 해석은
당신의 존재를 설명할 수 없어요.
타인의 말로 이야기를 망치지 않는다 (73페이지 中)
=====

 

나 역시 더 이상의 무의미한 논쟁은 끝내기로 마음먹었다. 그들에게 적선한 셈 쳤고, 더 이상 나의 귀중한 시간을 불필요한 곳에 낭비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 이들에게 백번 말해도 통하지 않음을 이미 깨달은 것이다.

 

그들은 나를 이해할 수 없고, 나의 이러한 외침을 신경 쓰지 않는다. 덕분에 똑같은 문제는 매번 반복되고, 계속해서 지속된다. 그들은 제자리에 머물겠지만, 나는 그렇게 한발 앞으로 나아간다.

 

오늘만큼은 그런 나의 모습을 칭찬해 주고 싶다. 문제가 되는 근본에 다가가 해결하려 노력하는 모습을, 끝까지 최선을 다해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모습을.

 

 


=====
유쾌하지 않은 이를
저녁 식사에 초대하지 마세요.
(...)
저녁은 소중한 이들과 함께 하세요.

 

사랑하지 않는 이를
침대로 끌고 와서는 안돼요.
(...)
잠자리에서만은 생각하지 마세요.

 

지혜롭지 않은 이를
당신의 서재에 들이지 마세요.
불만만 늘어놓는 사람이나
아픈 곳을 건드리는 사람 중에
당신 삶에 도움이 되는 이는 없어요.

 

사이라는 말은 적당한 거리를 전제해요.
사이좋게 지내려면 적당한 틈이 있어야 하죠.
나를 지키는 마지노선 (103~104페이지 中)
=====

 

깊이 공감하는, 금번 나에게 도움이 되었던 시구다. 때때로 내 감정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 곤란할 때도 있지만, 이 시구를 떠올리며 마음을 바로잡고자 한다.

 

인간관계나 사회생활에서 불편한 사람은 점심시간을 내어주는 것으로 족하다. 저녁시간만큼은 나의 소중한 이들과 함께 하자.

 

내가 사랑하지 않는 것들은, 아예 집 밖에 두고 오는 것이 최선이다. 그러나 미처 떨쳐내지 못한 것들이 있다면, 적어도 침대안까지 허락하지는 말자.

 

나의 삶에 나를 아프게 하는 사람, 불만만 늘어놓거나 불행의 길로 이끄는 사람들은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으로 나의 행복을 찾자.

 

 


=====
머리를 싸매도 수가 없을 때에는
신발 끈을 조이고 나아가는 거예요.
(...)
머뭇거릴수록 힘들어지기 마련이죠.
그러니까 그냥 해버리는 거예요.
안 되면 어때서요. 그만큼 나아간 거죠.

 

(...)
숨을 고르고 여기서부터 다시
거리낌 없이 나아가는 거예요.

 

마땅히 닿아야 할 그곳까지요.

 

결과를 기다리는 대신 과정을 누리며 시작을 계속하는 거예요.
목적 없는 삶을 목표로 계속해서요.
그냥 해버리는 거야. (216~217페이지 中)
=====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그냥 해버리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았다. 조금만 있다가 할까?라는 생각이 스며드는 순간 그것은 언제가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기보다, 그냥 해버리는 것!

 

이것이 핵심이 아닌가 싶다. 대부분의 시간 속에 우리는  '그냥 해버리는 것'을 못해 흘려버리는 시간이 은근히 많다. 결과를 고민하기보다 그냥 저질러보자.

 

그렇게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어느새 저만큼 나아간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삶의 한가운데 다가온 모순 투성이와 부조리함은 짐짓 사람을 나락의 끝으로 몰아넣기도 한다. 진실이나 사실 여부와는 상관없이 그저 힘과 권력, 시스템과 잘못된 관행이 그렇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그럴 때, 그런 것들에서 나를 꺼낼 수 있는 방법은 결국 나 자신이다. 나의 시간을 나의 기준에 맞춰 사용하고,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는 사람과는 거리를 두며, 나를 다독일 수 있는 장소와 저녁시간만큼은 오로지 나를 위해 쓰는 것이다.

 

그리고 세상을 보는 관점을 달리해, 나쁜 경험조차 풍성한 경험으로 만드는 자세는 나를 성장으로 이끌어 줄 것이다. 나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나 자신이므로, 내 판단에 근거해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하자.

 

그저 불쾌한 책 혹은 공감과 깨달음을 줬던 또 하나의 책 중 하나로 남을 뻔했던 책이 앞선 불쾌한 경험들로 인해 새롭게 다가왔다.

 

나에겐 이 서평을 쓰기에 앞서 여러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대충 소개 글만을 보고 서평을 쓰거나, 극단적으로 쓰지 않기를 선택하거나, 적당히 한 두 페이지만 읽고 쓰는 것과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러나 나는 끝까지 읽는 것을 선택했고, 이렇게 인생의 한 페이지를 잘 마무리하는 기회도 갖는다. 이후에 또 얼마나 같은 상황과 경험을 맞닥뜨릴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마음을 담아 건네는 이들의 정성과 고마움만큼은 확실히 인지할 것 같다.

 

정성을 담은 마음은 언제나 나를 기껍게 만든다. 그래서 그런 마음을 건네준 이들의 책은 앞으로 더 열심히 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책은 독자와 저자뿐만 아니라, 이것을 건네는 과정에 자리한 이들의 마음도 담고 있음을 부디 놓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만 지원받아 직접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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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으로 간 고등어
조성두 지음 / 일곱날의빛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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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으로 간 고등어>라는 독특한 제목을 가지고 있는 이 책은 꽤 긴 우리의 역사 속에 자리한 삶을 고등어에 비유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산'과 '고등어'가 연관성이 전혀 없어 보임에도 소설을 읽는 내내 전혀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의 150년 역사 위에 약간의 픽션이 더해진 소설은 삼대 여인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읽다 보면 파란만장한 가족사와 시대상, 그리고 눈물겨운 모성애가 심금을 울린다.

 

가장 혼란기였던 전쟁과 약탈, 혼란의 시대 속에서도 꽃피우는 사랑, 그리고 그 속에서 어여쁘게 태어난 자식을 지켜내며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는 지독한 모성애는 시대가 변해도 절대 변하지 않는 불문율처럼 느껴질 정도다.

 

그리고 이것은 마치 정해진 수순처럼 딸에서 딸로, 그리고 또 딸로 이어지며 자식이었을 때는 이해하지 못했던 어머니의 깊은 사랑과 의미가 계속해서 이어진다.

 

여기에는 먹고사는 방법 또한 동일하게 되풀이되는데 바로 고등어를 손질하고 간을 하는 간잡이로써 드러난다. 비릿한 냄새가 코를 찔러 멀리하고만 싶었던 그 향이 어느새 나와 내 자식을 먹여 살리는 도구가 된 것이다.

 

이외에도 삼대에 걸쳐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키워드들이 몇 가지 있는데 앞서 언급한 어머니, 그리고 고향, 역사, 천주교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세대를 거듭해 오면서도 끝까지 이어져오는 이 키워드들이 이들 가족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또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지 생각하며 읽는다면, 이들의 삶을 이해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 같다.

 

책 한 권에 담기에는 꽤 긴 우리의 역사를 담고 있는 이 소설에는 삼 대 여인의 인생을 통해 당시의 우리의 삶과 현장 모습을 실감 나게 담고 있다.

 

그래서인지 읽다 보면 마치 현장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당시의 시대적 모습과 상황들이 눈에 보이듯 그려지는데, 천주교 박해로 숲속 깊은 곳에 숨어살고 있는 이들의 모습이라던가, 복작복작 붐비는 비린내가 진동하는 포구의 구석진 집 여기저기에 널려있는 고등어 같은 것들이 바로 그것이다.

 

또 산 정상 낭떠러지를 바로 아래 둔 경사지에 작은 굴을 파서 그 안에 웅크리고 있는 초향의 모습이라던가, 휘황찬란한 음식점의 화려함과 대조되는 남녀의 격한 싸움 현장도 눈에 선하다.

 

그리고 그런 현장들을 계속해서 따라가다 보면 세월의 흐름과 시대의 변화도 함께 느낄 수 있는데, 이상하게 몇 가지는 변하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지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의 종교가 그러하고, 딸에서 딸로 이어지는 인생사와 어머니의 모성, 마지막으로 고향으로의 회기도 마찬가지다. 

 

특히 도드라지는 것은 어머니로 대표되는 '여성'의 삶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남성은 옆에서 그저 거드는 형상을 취하고 있는데, 전쟁과 박해, 피난, 질병, 독립운동, 강제징집 등의 사유로 그들 모두는 잠시 머물다 사라진다.

 

그래서 여성들은 안살림과 바깥 살림 모두를 책임지며 아이들을 훌륭하게 키워내고 먹고살기 위해 각종 일들을 도맡아 하게 된다.

 

이를 통해 여성의 위치나 지위가 다소 위축되었던 시절마저 꿋꿋이 자신의 신념과 삶을 위해 앞으로 나아갔던 여성의 모습을 비롯해 한 아이가 어머니로 성장해 나가는 성장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하나의 관전 포인트가 될 것 같다.

 

 


1866년대를 시작으로 1960년대 초까지를 집중적으로 다루며 다사다난 하고 고단했던 날들에 대해 거침없이 서술하고 있는 이 소설을 읽다 보면 여러 소설과 동화, 설화 및 영화 등의 작품들이 문득문득 떠오른다.

 

소설의 첫 화자인 산골소녀 초향의 첫사랑인 성원과의 이야기에서는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가 떠오르고, 초향의 두 번째 남자 춘삼과의 이야기에서는 <우렁 각시 이야기>라는 설화가 떠오른다. 또 유화의 대학시절의 모습에서 영화 <택시운전사>와 <1987>를 떠올리게 한다. 

 

또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병인박해, 3.1운동,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만주사변, 상하이사변, 중일전쟁, 6.25 등과 같은 시대별 굵직굵직한 역사를 담고 있어 꽤나 익숙하게 다가온다.

 

당시 조선의 어머니와 딸들이 겪어야 했던 수많은 고초와 고단한 인생사를 통해 우리의 역사와 현재 우리의 모습을 되짚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또 어머니가 고등어에 빗대어 딸에게 전하는 깊은 사랑도 함께 느껴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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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어의 중의적 표현 살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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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어는 1대 주인공 '초향'과 봇짐장수의 아들인 '원이'와의 사랑의 매개체로 처음 등장한다. 산속 깊은 곳에 숨어 살던 이들에게 고등어는 쉽게 맛볼 수 없는 대표적인 단백질 공급원으로 매우 귀한 식재료였다. 원이는 자신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 고등어를 초향의 어머니에게 건네고 맛있는 한 끼를 얻어먹는 것으로 인연을 맺는다.

 

■춘삼은 유독 초향이 고등어를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춘삼이 모르는 과거 속 초향에게 박힌 고등어는 원이 그 자체다. 그러므로 초향에게 고등어는 원이를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라고 말할 수 있다.

 

■살아남기 위해 이들 삼대는 모두 고등어 간잡이를 한다. 고등어는 이들의 생활력을 상징하는 것이자 먹고살기 위한 수단을 나타내기도 한다.

 

■고등어는 떠살이로 평생을 계속해서 헤엄친다. 곧 정지하는 순간이 죽는 시간인데, 초향의 삶에 빗대어 표현하는 장면을 확인할 수 있다.

 

■주인공들은 고등어를 자신들의 처지에 빗대어 자주 언급하는데, 등 푸른색을 건강하고 밝은 상징으로 이야기하기도 하고, 때론 푸르딩딩하게 멍든 상처 받은 모습에 빗대어 이야기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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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엿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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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6년 천주교의 박해로 지리산 자락에 있는 산골에 숨어든 천주쟁이들이 조용히 옹기를 굽고 화전을 일구며 숨어 사는 곳을 산중 사람들은 소학골이라고 부른다.

 

그곳에 한 소년이 고등어를 들고 등장하면서 산골소녀 초향과 인연을 맺게 된다. 그는 등짐장수 아들이자 간잡이 마당댁의 아들로 열네 살 최성원이다. 둘은 한 달에 한 번씩 성원이 마을에 들릴 때마다 초향의 집에 들러 고등어를 건네고 밥 한 끼를 얻어먹으며 예쁜 만남을 이어나간다.

 

열두 살 초향과 열네 살 성원이 살짝 어색하고 뻘쭘하지만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사랑을 키워나가는 장면들은 간지러운 설렘을 안겨준다. 그리고 그 장면들은 황순원의 <소나기>를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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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호기심의 그가 무심결에 내 손에 낀 공깃돌을 짚은 건데, 내 손끝을 타고 벌어진 나의 입에서는 하얀 쪽니가 드러났다. 고지박(박)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심장 둘, 똑 떨어지는 소리가 꼭 닮았다.

1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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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게 때리는 비바람에 겨우 견디고 있는 그, 동시에 소년을 힘껏 받으며 선 소녀는 서로 하나의 버팀목이 되었다. 둘이자 하나. 연속 컷으로 찰칵찰칵! 그와 함께 세상은 우렁우렁.

1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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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손이 닿거나, 비바람을 버티기 위해 몸이 닿은 순간 초향은 심장이 떨어지는 소리가 마치 박 깨지는 소리처럼 들리고, 세상이 우렁우렁한 느낌이 들었다고 표현하고 있는데, 간질간질하고 설레는 장면을 사랑스럽게 표현한 장면들이다.

 

그렇게 둘은 결혼을 약속하게 되지만, 어쩐지 원의 어머니는 이에 극렬하게 반대하며 심한 거부감을 표한다. 당시 천주교에 대한 인식이 좋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결혼을 위해 원이 개종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약속을 며칠 앞두고 이들이 살고 있던 마을은 발각되어 풍비박산이 난다. 이에 초향의 부모님은 원이 있는 곳으로 초향을 홀로 보내게 되면서 겨우 목숨을 건지게 된다. 어렵사리 도착한 원의 집에서는 험난한 시집살이가 시작되고, 끊임없는 생트집 가운데 온갖 생선들을 다루는 법을 배우게 된다.

 

그러던 중 초향은 임신을 하게 되고 이때 사돈의 처형 소식을 들은 시아버지 최서봉은 빠르게 손을 써서 초향이 부모님의 시신을 거둘 수 있도록 돕는다. 이때 우연히 아내인 간잡이 마당댁이 외동아들인 원의 결혼을 막기 위해 밀고하면서 초향의 집이 풍비박산이 난 것이 밝혀지면서 초향은 유산을 하게 되고 이후 이들의 곁을 떠나게 된다.

 

그렇게 부모님의 고향인 경상북도 청송으로 향한 그녀는 오랜 여정에 쓰러지게 되고 우연히 이를 발견한 노총각 박춘삼이 그녀의 목숨을 구해주게 된다.

 

그녀는 몸을 추스르자마자 산 정상 바로 아래 경사지에 자리를 잡고 거기서 홀로 머물게 되는데, 결혼을 거의 포기했던 노총각 춘삼은 그녀를 보고 반하게 되면서 아내로 삼고 싶어 몸이 단다. 그때 초향의 나이 만 열세 살, 박춘삼의 나이는 서른세 살이었다.

 

그러나 초향은 마음이 없었기에 그 상태로 몇 년을 보내게 된다. 그러던 중 어느 혹독한 겨울날 또 한 번 춘삼이 얼어 죽어가던 초향을 구하는 일이 발생하면서 초향은 그에게 두 번의 목숨을 빚지게 된다. 이 일을 계기로 초향은 세상의 흉을 잊기로 마음먹고 자신에게 정성을 다한 춘삼과 혼인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렇게 초향이 청송에 온 지 14년이 지나고 이듬해 봄 둘은 조용히 혼례를 치른다. 그리고 혼인과 동시에 산속 생활도 정리하게 된다. 이후 무려 11년이 지나 늦둥이가 기적같이 태어나게 되는데, 이름은 박송이, 세례명은 엘리사벳으로 이때 초향의 나이 서른여덟 살, 남자는 환갑을 바라보는 쉰여덟 살이었다.

 

이후 직종을 바꾸면서 한동안 팍팍했던 삶도 펴지고 가정에 평화가 찾아오는듯 했으나 그들의 성장이 그 분야의 오랜 질서인 상규를 흔들게 되면서 한순간에 모든 것이 무너지게 된다. 이 때문에 춘삼은 멍석말이 수십 대와 과징금 성격의 벌금을 내게 되면서 가세는 기울게 된다.

 

이 일로 시아버지 최서봉이 초향의 소재를 알게 되면서 잊고 살던 원이와 재회하게 되는데, 원은 초향이 떠나자 망나니가 되어 한동안 초향만을 미친 듯이 찾아다니다가 콜레라에 걸려 곧 죽을 폐인의 상태에 접어들게 된 것이다. 또 아내 마당댁도 중풍으로 드러누우면서 이 가정 역시 풍비박산이 나게 된다.

 

최서봉은 아들을 위해 마지막으로 큰 결심을 하고 마침내 나귀가 끄는 작은 수레에 아들을 싣고 가마니로 덮어 마지막으로 초향이 사는 곳으로 향하게 되는데, 면목이 없어 도착해서도 한동안 멀찍이 서서 지켜보기만 한다.

 

그러다 수업을 마치고 돌아온 송이가 그들 부자를 발견하게 되면서 어머니에게 이 소식을 전하게 되고, 마침내 이들의 상봉이 이루어지게 된다. 원이는 마지막 순간 그렇게 염원하던 사랑하는 사람을 해후하고 눈을 감게 된다.

 

원이를 보내고 이내 몸이 좋지 못했던 춘삼마저 시름시름 앓다 이듬해 사망하게 되면서 초향은 딸의 미래를 위해 경성으로 이사하게 된다. 요즘으로 치면 한강로 용산에 자리를 잡게 되는데, 오로지 딸을 제대로 교육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초향은 살아남기 위해 고등어 간잡이의 경험으로 돌아가게 되고, 엄마 마리아가 전수해 준 요리법과 시어머니에게 배운 생선 다루는 방법을 활용해 생선가게와 식당을 병행한다.

 

이후 초향의 딸인 송이의 시점, 송이의 막내딸 고유화의 시점으로 계속해서 이야기는 연결된다. 세대가 변하며 이들의 모습 또한 다양하게 변화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송이가 살아가는 시대는 엄마 초향의 시대보다 조금 더 자유로운 시대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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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부귀천 구분의 사라짐, 그리고 하얀 민들레.. 시절은 이미 개혁(1894~96년 갑오개혁)이 공포되었다. 곧 조혼 금지, 연좌제 폐지, 과부의 재혼 허용과 신분제 폐지가 그것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현실은 칙령과 달리 세습에 붙잡혀 있었다. 그럼에도 사회 일부는 꿈틀대고 있었다.

11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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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으로 인해 여러 제한들이 사라지는 시기였고, 여자도 남자를 고를 수 있는 시대가 된다. 이에 송이는 경성 생활 2년 차에 벌써 사내들의 유혹에 유연하게 대응했는데,  그중 특히 대비되는 두 남자 사이에서 출렁이는 배처럼 오갔다.

 


■첫 번째 남성: 고석훈(세례명-고요한)
-송이보다 두 살 어림
-착함과 순수 이상이 매력
-사제가 되려는 사람이라 고매한 도덕성의 향기가 엿보인다.

 

■두 번째 남성: 민영민
-송이보다 세 살 많다고 했으나 실은 일곱 살이 많음
-세도가인 민씨 일가의 자제
-일본 유학도 마친 그는 아버지 민영창의 여러 첩실 중 하나가 낳은 아들이다.
-송이는 정구 선수인 민애린의 소개로 만나게 되었다고 알고 있지만, 실은 그가 사촌 여동생에게 부탁한 것이다.

 

아리따운 외모는 물론 정구 선수로 활동했기에 누구보다 자유롭고 매력적이었던 송이는 결국 자신의 이런 빼어남 때문에 결국 탈이 나고 마는데, 이 일 덕분에 반항적인 모습도 사그라들게 되고 어느새 어머니가 그토록 이야기하던 향기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일제강점기, 힘 있는 자들에 의해 자행되던 폭행과 폭력, 그리고 무자비한 상황 속에서 여러 고초와 안전이 위협당하는 일도 겪지만, 어머니인 초향의 기지와 생활감으로 이들 모녀는 다시 한번 새로운 변화의 봄을 맞이하게 된다.

 

이후 수많은 경험 속에서 영글어진 송이와 남편은 상하이로 이주하며 독립운동과 피난길에 오르면서 큰 고초를 겪기도 한다. 이때 역시 어머니가 된 송이의 생활력 덕에 이들 가족은 독립운동과 전쟁통에서도 무사히 지낼 수 있게 된다.

 

마지막 주인공인 송이의 막내딸 고유화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이야기 속에는 앞선 이야기보다 훨씬 더 버라이어티 한 상황이 전개된다. 중일전쟁의 시작과 제 2차 세계대전, 그리고 본격적인 독립운동, 6.25전쟁, 광복 등이 뒤섞이면서 장소의 이동도 많고 상황도 급전개 된다.

 

전쟁통에 불결한 환경과 식수 오염 등으로 첫째 아이를 잃고, 난징-우한-장사-광저우-류저우-충칭으로 이동하면서 아버지는 독립운동 투사로, 어머니는 홀로 피난길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여러 번의 우여곡절을 겪는다.

 

특히 전쟁통에 태어난 막내 유화는 실어증, 청력 문제, 말더듬, 뇌의 퇴화 등 수많은 문제를 겪고도 기적같이 살아난다. 둘째 딸 현아 역시도 폐결핵을 앓아 죽을 위기에 처하기도 하지만, 다행히 그녀를 좋아하던 미국 오하이오주 출신의 오브라이언 매킨리 주니어가 페니실린을 구해주면서 목숨을 구하게 된다.

 

이들 가족은 이외에도 수많은 고난 속에서 가족들이 하나둘 목숨을 잃게 되는데, 어느 순간 함께 어려움을 극복한 이들이 새롭게 가족이 되면서 안정감을 찾게 된다.

 

끝날 것 같지 않은 전쟁 통을 지속적으로 겪어 온 유화의 삶에서는 파란만장했던 그녀의 가족사와 시대상, 그리고 대한민국의 해방 전후의 모습들을 고스란히 만나볼 수 있는데, 들끊는 전쟁과 해방 사이에서 내외부적으로 매우 어수선함을 확인할 수 있다.

 

매 순간이 전쟁과 피란사로 불안과 위험에 노출되어 있던 유화의 삶이었지만, 세대가 거듭될수록 업그레이드된 어머니의 생활력 덕에 국내로 들어온 이후 이들의 삶은 꽤나 풍족한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가족의 구성력 또한 확대되면서 한국, 미국, 일본의 다문화 국적의 사람들이 모인 가정을 이루게 됨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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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 깊었던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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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이야기를 먹고 산다. 사람도 이 생물처럼 각자 이야기 있는 사람끼리 꼬이고 새로운 것들이 만들어지는 게고. 그러니 이왕이면 향기 있는 사람을 만나거라. 기왕이면 등이 푸른 사람을. 할 수만 있다면 가슴에 푸른 반점이 있는 살아있는 인생을 고르렴."

13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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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역시도 고등어에 비유한 문장 중 하나인데, 어머니가 딸에게 인연을 만나는 데 있어 당부하는 말 중에 하나다. '이야기'는 자기만의 스토리와 뿌리가 있는 사람, 즉 내실 있는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며, 악취가 아닌 향기가 있는 사람을 만나라고 말한다. 또 등이 푸르고 가슴에 푸른 반점이 있는 사람은 곧 싱싱하게 살아있는 사람, 건강한 사람을 일컫는 말이라고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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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이야. 사람이 그렇다. 겉을 보지 말고 중심과 내력을 봐야 한다! 에미는 이 말을 하고 싶었다. 바로 사람이 밭에 감춘 보화라는 말씀을. 생선도 고르는데 사람도 골라야지! 필요하면 내 모든 것을 걸고 그 보물인 사람을 사야지! 시간을 묵혀 두고라도 그런 내력 밭을 기다리는 게 우선이다!
(...)
한 사람을 만나는 것은 그 사람을 키운 전후 많은 이들의 묻힌 이야기를 파내는 것이야. 인연이란 따라서 그들 배후 긴 이야기와 만나는 것이니!"

148~14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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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신 여성이었던 송이가 쉽게 연애하고 사람을 판단하는 것을 두고 어머니 초향은 자신이 어머니에게 배운 것을 고스란히 딸에게 전한다. 

 

그러면서 인연을 만나는 것에 있어 조금 더 신중하라며 강하게 당부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마치 대작의 대하드라마를 한 편 본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아마 한 세기를 넘어선 한국사를 통틀어 삼대를 걸쳐 둘러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한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가족을 지키기 위해 헌신한 어머니의 이야기. 이것은 마치 구전처럼, 어머니에서 딸로 이어지며 무한한 사랑과 고통의 여운을 남긴다.

 

제 한 몸 지키기도 쉽지 않은 아리따운 십 대의 나이에 인연을 만나고, 아이를 낳고, 가족을 지키며 생계까지 꾸려가는 모습들을 보며 어쩌면 지금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힘은 바로 이런 어머니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또다시 그때와는 다른 형태로 위기를 맞고 있는 현실을 바라보며, 그때 어머니들이 가졌던 긍지와 자부심으로 버티던 깡과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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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알베르 카뮈 전집 개정판 1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책세상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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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알베르 카뮈의 책을 읽어보고 싶어 도서관의 책 목록을 뒤지던 중 '알베르 카뮈 탄생 110주년'을 맞아 새로운 책 개정판을 발견하게 되면서 읽게 되었다.

 

처음에는 강렬한 책표지 컬러가 시선을 사로잡아 단숨에 읽어 나갈 수 있겠다 싶었는데, 생각보다 꽤 시간이 걸렸다.

 

처음에는 주인공의 시니컬함에 뒤에 뭔가 있겠지 하는 생각으로 읽어 나갔는데, 2부에 들어서면서 갑자기 달라지는 템포와 어리둥절하게 흘러가는 상황에 중간중간 한참을 머뭇거리며 시간을 소요하게 되었던 것 같다.

 

스토리로 보자면 더할 나위 없이 별거 없는 단순함의 극치인데, 이 상황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꽤나 부조리함 투성이다. 1부의 내용이 내 의지대로 흐르는 강물에 몸을 맡긴 형태라면, 2부는 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배에 갇혀 강물에 내맡겨진 형국이다.

 

처음 알베르 카뮈의 책을 읽는 거라 살짝 당황스러운 면도 없지 않아 있었는데, 다행히 뒤 페이지에 담긴 미국판 서문과 해설, 작가 연보, 옮긴이의 말 등을 통해 다방면으로 작가의 의도와 이 글이 쓰인 배경, 그리고 줄거리에 대한 새로운 시각 등을 통해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1부와 2부의 내용을 간단히 살펴보면, 1부에서는 그날 그날의 별 의미 없는 뫼르소의 생활 묘사가 주를 이룬다. 여기에는 어떤 거짓이나 꾸밈이 없다. 어머니의 죽음에서부터 살인 사건을 저지르기까지 18일간의 일상적 생활이 오늘, 어제, 토요일, 아침, 저녁 등 시간의 변화와 흐름이 뚜렷하게 표시되면서 기록된다.

 

2부는 1부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는데, 1부의 끝에 살인을 저지르면서부터 상황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법정에서 그 생활과 행동의 의미가 타자에 의해 해석되고 1년여에 걸친 감옥 생활과 재판 과정에서는 시간이 정지된 듯 시간 개념이 흐려진다.

 

 


꽤 계획적이고 체계적으로 작품을 써 내려간 알베르 카뮈의 작품 중 ' 1단계 부조리'에 속하는 초기작이자 무명작가인 그를 단번에 프랑스 문단의 신화로 만든 불멸의 역작인 이 작품을 먼저 읽어보게 된 것은 참 다행스러우면서 잘 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작품을 시작으로 이후의 그의 작품들을 통해 알베르 카뮈의 작품세계를 하나씩 만나보면서 그가 왜 그렇게 유명한 작가인지, 왜 그토록 그의 작품이 자주 입에 오르내리는지 알아가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한다.

 

그전에 이 작품을 읽으며 느꼈던 나의 감상평과 나만의 해석을 이제부터 기록해 보고자 한다. 그때가 아닌 지금의 상황이었으면 어땠을까를 자꾸만 되짚어 보면서 읽게 되는 <이방인>을 살펴보며, 주인공 뫼르소의 선택과 행동에 대해서도 함께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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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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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전쟁에 징집되었다가 사망한 뒤, 어머니와 할머니 밑에서 가난하게 자랐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선생님의 각별한 총애를 받으며 재능을 키우고,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대학교에 갈 기회를 얻는다.

 

알제 대학교 재학 시절 장 그르니에를 만나 사상적 스승으로 여기고 그의 권유로 공산당에 가입하지만 이후 탈퇴한다.

 

교수가 되려고 했으나 건강 문제로 교수 시험에 응시하지 못하고 일간지 기자로 일한다. 1942년 <이방인>을 발표하면서 이름을 알렸으며, 이후 다채로운 작품 활동을 펼친다. 1957년에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지만, 3년 뒤인 1960년 1월 4일 자동차 사고로 생을 마친다.

 

그 밖에 자세한 연보는 이 책의 뒤 페이지의 '작가 연보'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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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며 드는 궁금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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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뫼르소도 평범한 사람들과 같은 야심을 가지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학업을 포기해야 했을 때 모든 것이 부질없다 느끼게 되었고, 이후 그는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자리 잡게 된다. 이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를 이토록 무심하고 시니컬하게 바꾸어 놓은 구체적인 동기가 무척 궁금해진다.

 

■같은 거주지 안에 파트너를 상실한 세 남자의 우연한 연대도 시선을 끄는 부분이다. 살짝 뒤틀린 듯 보이지만, 실상은 외로움과 각자의 사정으로 목마름을 느끼고 있던 이들에게 무심한 듯 말을 건넨 뫼르소 덕분에 이들은 친구이자 이웃을 얻게 된다. 만약 뫼르소가 살인자가 되지 않았다면, 이들의 우연 같은 인연은 어떻게 이어졌을까?

 

■법정에 자리한 이들은 정작 당사자인 뫼르소는 제쳐두고 자신들만의 법정을 이어나간다. 이들에게 진짜 중요한 것은 무엇이며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는 것일까 문득 궁금해졌다. 이 법정에는 정의도, 사실도, 피해자도, 문제의 본질도 빠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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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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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뫼르소(몽피스)
-선박 회사 사무원
-일상생활을 즉흥적으로 영위
-살인 전: 육체적 감각을 통해 접촉하는 자연 세계와 일체감을 느끼며, 삶에 있어 소외감을 느끼지 않음
-살인 후: 재판을 받으면서 그와 그의 행동들은 타인에게 해석의 대상이 됨. 법정은 그의 인간성을 '설명'하기 위해 모든 행동의 동기를 찾아내려고 함.

 

▶뫼르소 부인
-뫼르소의 엄마
-삼 년 전에 양로원에 들어왔음
-노환으로 사망

 

▶관리인
-엄마의 관 옆에서 함께 하룻밤을 지샘
-양로원에서 일한 지 오 년 되었음
-예순네 살이며 파리 태생

 

▶양로 원장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단, 키가 작은 늙은이
-상황에 따라 말을 덧붙여 대세의 흐름에 유리한 형태로 진술

 

▶토마 페레스
-양로원에서 사귄 엄마의 남자친구
-엄마의 죽음으로 슬퍼하는 그를 배려해 이번만 예외로 장지까지 함께 따라가는 것이 허락됨

 

▶레몽 생테스
-창고관리인
-같은 층에 사는 이웃
-동네에서는 그가 여자들을 등쳐 먹고 산다고들 한다.
-대체로 그는 사람들에게 전혀 호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
-뫼르소는 그가 하는 이야기가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살라마노 영감
-같은 층에 사는 이웃
-피부병을 가지고 있는 스패니얼 품종의 개와 늘 함께 함
-열한 시와 오후 여섯시 하루에 두 번씩 영감은 개를 데리고 나와 산책함

 

▶마송
-레몽의 친구의 친구로 아내와 함께 바닷가에 살고 있음

 

▶마리
-뫼르소의 여자친구이자 결혼까지 약속한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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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 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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뫼르소는 어느 날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부고 소식을 전보로 받게 된다. 회사에는 이틀간 휴가를 쓰겠다고 말한 후 긴 80킬로미터 떨어진 마랭고에 있는 양로원으로 향한다.

 

뜨겁고 무더운 여름 날씨 속에서 엄마의 관 옆에서 하루를 꼬박 보낸다. 매우 피곤하고 뜨거운 상태로 비몽사몽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열을 식힐 겸 바다로 향하고 그때 평소 관심이 있던 마리를 우연히 만나게 되면서 연인 사이가 된다.

 

그리고 같은 층에 사는 이웃인 레몽&살라마노 영감과 우연히 몇 마디 나누게 되면서 친구이자 이웃이 된다. 그들은 비슷한 시기 파트너를 상실하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되면서 적어도 그들에게는 조금 더 돈독한 형태로 관계가 형성된다.

 

이때 레몽은 자신의 친구가 사는 바닷가로 함께 가자는 제안을 하게 되고 이때 여자친구인 마리와 함께 휴가를 가게 된다. 그곳에서 레몽과 관련 있는 아랍인을 우연찮게 살인하게 되면서 그는 살인자로 법정에 서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형태로 진행되면서 그는 모든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사형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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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자세히 들여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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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모르겠다. 양로원으로부터 전보를 한 통 받았다. '모친 사망, 명일 장례식, 근조.' 그것만으로는 아무런 뜻이 없다. 어쩌면 어제였는지도 모르겠다.

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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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문장의 시작이 강렬하게 다가온다. 엄마의 죽음 앞에 뫼르소는 슬픔이나 연민과 같은 감정보다 그저 전보를 받았다는 사실에만 집중해 말한다. 심지어 그 날짜조차 정확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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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장은 엄마가 죽지 않은 것이나 거의 마찬가지다. 장례식을 치르고 나면 기정사실이 되어 만사가 다 공식적인 모양새를 갖추게 될 것이다.

1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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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장례식을 치르지 않은 현재는 엄마가 죽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말로 무심하지만 상당히 정직한 발언으로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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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나 다름없는 일요일이 또 하루 지나갔고, 이제 엄마의 장례가 끝났고, 나는 다시 일을 하러 나갈 것이고, 그러니 결국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을 했다.

3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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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대한 일상이 점점이 묘사되는 상황을 살펴보면, 감정이 배제된 그저 무의미한 일상을 덤덤히 서술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 속에서 갑작스레 벌어진 엄마의 죽음 또한 그의 삶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의 이런 무덤덤하고 냉소적이며, 미적지근한 반응은 계속해서 이어지는데, 전반적으로 그의 삶에 자리 잡은 패턴처럼 보인다.

 

이것은 다음의 문장들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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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삶이란 결코 달라지는 게 아니며, 어쨌건 모든 삶이 다 그게 그거고, 또 나로서는 이곳에서의 삶에 전혀 불만이 없다.

5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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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마리가 찾아와서, 자기와 결혼할 마음이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고 마리가 원한다면 우리가 결혼할 수도 있을 거라고 말했다.

5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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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또다시 나에게 자기와 친구가 되고 싶으냐고 물었다. 내가 아무래도 좋다고 말했더니 그는 만족해하는 눈치였다.

4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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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있어 애인의 청혼도, 직장 동료의 위로도, 직장에서의 승진 권유조차도 그에게는 큰 의미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아예 감정 없는 인간은 아닌 것이 몇몇 문장에서 드러나는데, 이를테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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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아내는 마침 마리와 웃고 있었다. 나는 아마 그때 처음으로 내가 결혼을 하게 되겠다고 진정으로 생각한 것 같다.

6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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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장이 차장 검사에게 증인에 대한 질문이 없느냐고 묻자 검사가 외쳤다. "아! 없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 목소리가 어찌나 강렬하고 나를 보는 그 눈초리가 의기양양한지, 여러 해 만에 처음으로 나는 바보같이 울음이 터져 나올 것만 같은 심정이었다. 왜냐하면 내가 그 모든 사람에게 얼마나 미움을 사고 있는지를 느꼈기 때문이다.

11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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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보이는 데로 이야기하는 그의 화법은 조금 냉소적으로 보이기는 해도 거짓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누군가에는 상처가 될 수도 있으며,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하는 화법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제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의 엄마의 부고를 주변인들이 들어 알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그를 가엽게 여기고 있는 상황이었고, 그가 무심하게 던지는 말을 상대방은 자기 좋을 대로 해석하면서 그와 조금은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문제가 발생한 건 레몽의 제안으로 마리와 함께 간 바닷가에서 우연히 살인을 저지르게 되면서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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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다렸다. 불로 지지는 듯한 태양의 열기가 내 두 뺨으로 확 번졌고 땀방울들이 내 눈썹 위에 고이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은 내가 엄마의 장례를 치르던 그날과 똑같은 태양이었고, 그날처럼 머리가 아팠고, 이마의 모든 핏줄이 한꺼번에 다 피부 밑에서 펄떡거렸다.

 

불로 지지는 것 같은 그 뜨거움을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서 나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나는 그게 어리석은 짓이며, 한 걸음 몸을 옮겨본 댔자 태양을 떨쳐 버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한 걸음, 단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러자 이번에는 아랍인이, 몸을 일으키지는 않은 채 칼을 뽑더니 태양 빛 속에서 나를 향해 쳐들었다. 빛이 강철 위에서 반사되었고, 번쩍하는 긴 칼날 같은 것이 내 이마를 쑤셨다.

7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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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했던 그의 일상에 파문이 일어난 것은 그렇게 시작된다. 뜨거웠던 그 여름, 엄마의 장례를 치르던 그날과 같은 태양을 마주한 그는 태양을 피하기 위해 한 발을 내디뎠으나 그로 인해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음을 뒤늦게 알게 된다.

 

레몽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아랍인이 뫼르소에게 긴 칼날을 들이대면서 순간적으로 가지고 있던 총구를 그를 향해 발사하게 되었고, 이내 아랍인이 죽음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이 문장을 보면서 개인적으로는 정당방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는데, 이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나 진술은 더 이상 서술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아랍인이 칼날을 이마에 내리꽂은 것인지 아니면 칼날의 빛이 태양에 반사된 것인지는 정확히 내용을 알기는 어렵다.

 

어쨌든 칼날을 쳐드는 순간 위협이 되는 것은 맞으므로 정당방위라는 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법정에서는 이에 대한 어떤 진술도 언급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살인자라는 이름으로 여러 번의 진술을 하게 되고, 이내 법정에 서게 되지만 언급되는 말들은 엄마의 죽음에 관련 내용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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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감정이 어떤지 살펴보는 습관 같은 건 없기 때문에 그 점에 대해 알려주기는 어렵다고 대답했다. 아마도 나는 엄마를 사랑했겠지만 그러나 그런 것은 아무 의미도 없었다.

8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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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맡은 국선 변호사마저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에 관해 궁금해하는데,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던 날 마음이 아팠느냐는 질문을 한다.

 

그에 대해 그는 어느 날과 동일하게 자신이 보고 느끼는 그대로의 감정을 정직하게 그대로 진술한다. 하지만 이 답을 들은 변호사는 매우 흥분하며 예심판사의 방에서든 어디서든 그런 말은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라고 다그친다.

 

이에 대해 뫼르소는 자기만의 솔직한 의견을 내놓지만 변호사는 그런 그를 이해하지 못했고 오히려 원망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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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나는 그에게, 내가 원래 육체적 욕구에 감정이 방해받는 일이 많은 천성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엄마의 장례식이 있던 날, 나는 매우 피곤했고 졸렸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잘 알 수 가 없었다.
(...)
그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고 오히려 나를 원망하고 있었다. 나는 내가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고, 조금도 다를 바 없다고 그에게 분명히 말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게 다 결국은 별 소용이 없는 짓이었다. 나는 귀찮아서 그러는 걸 포기하고 말았다.

84~8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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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이렇게 되자, 뫼르소는 또 한 번 모든 것이 귀찮아졌고 그저 그런 설명조차 이어나가기를 포기하고 만다.

 

뫼르소가 사람을 죽인 일과 관련해서 딱 한 번 제대로 된 질문을 예심판사로부터 듣게 되는데, 이것마저도 결론적으로는 그 자신의 신념과 믿음을 강요하기 위한 행위였음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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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생각할 때 나의 자백 가운데는 오직 한 가지 모호한 부분이 있으니, 그건 바로 둘째 발을 쏘기 전에 짬을 두고 기다렸다는 사실이다. 그 밖의 내용은 다 이해가 되는데, 바로 그 점을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그에게 그처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것은 잘못이라고, 그 마지막 문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셈이었다.

8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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뫼르소 자신에게는 사실 이 질문마저 의미 없고 중요하지 않은 문제였지만, 유일하게 사건과 관련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예심판사의 이런 유의미한 질문 또한 결국 부질없어지게 되는데, 그 이유는 그의 믿음에 대한 강요와 태도 때문이었다. 

 

그는 신을 믿느냐면 분개하다가 이내 "당신처럼 영혼이 메마른 사람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라고 말함으로써 자기 기준에 맞춰 상대방을 판단하는 것으로 심문의 목적을 잃어버리게 된다.

 

더불어 뫼르소가 한 행동을 후회하느냐고 묻는데, 이에 대해 뫼르소 자신은 진정한 후회라기보다는 차라리 좀 귀찮다 싶은 느낌이라고 대답하게 되면서 상호 간에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게 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뫼르소는 세상을 바라보는 자기의 관점을 고수하게 되는데, 여기에 살인자라는 이름이 덧씌워지며 결국에는 오해를 쌓게 되고, 심지어는 반성하지 않는 살인자가 되어 사형까지 구형 받게 된다.

 

그의 이러한 태도는 감옥에 투옥되어 있는 와중에도 바뀌지 않는데, 오히려 그런 자신의 상황을 그저 수긍하고 받아들이게 되면서 시간의 흐름조차 까마득하게 느끼며 분별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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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시작된 것은 오직, 마리가 처음이자 단 한번뿐인 면회를 온 다음부터였다. 그녀의 편지를 받은 날부터 바로 그날부터, 나는 감방이 내 집이고 내 삶이 그 속에서 멈추어버렸다는 것을 느꼈다.

9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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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결국 그 무엇에든 익숙해지는 법! 그는 그렇게 처음에는 불편하게 여겼던 감옥생활에 서서히 적응해 나가기 시작한다.

 

처음 몇 달 동안은 힘들었다. 가령 여자에 대한 욕정이 고통 거리였다. 젊으니까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간수장의 '자유란 바로 그런 거거든요. 당신네들에게서 그 자유를 빼앗는 거예요.' 라는 말에 뫼르소는 욕정을 통제당하는 것이 결국 벌을 받는다는 것에 동감하면서 수긍하게 된다.

 

다음은 담배 문제였는데, 담배를 피울 수 없는 것이 고통이었다. 그러나 나중에 그것도 벌의 일부임을 깨닫게 되는데, 그때쯤에는 벌써 담배를 피우지 않는 습관이 들어서 그 벌은 그에게 더 이상 벌이 아니게 된다.

 

또 잠도 문제였다. 처음에는 밤에 잠을 잘 자지 못했고 낮에는 한숨도 못 잤다. 차츰 밤에 잘 자게 되었고 낮에도 잘 수 있었다. 그렇게 잠자는 시간, 기억하기, 사건 기사 읽기, 그리고 빚과 어둠의 교차로, 시간은 지나갔다.

 

그러한 문제점들을 제외하면 그는 그다지 불행하지 안 않다. 하지만 문제는 오로지 시간을 보내는 일이었다.

 

그렇게 실감할 수 없는 시간을 무료하게 보내며 열한 달 동안 수십 번의 예심을 치르며 마침내 중죄 재판소 법정에 선 그는 당사자인 자신을 빠진 법정을 그저 관람객으로써 바라보게 된다.

 

이 사건의 본질은 무시되고, 상관없는 어머니의 장례식이 언급되면서 수많은 증인들의 증언이 이어진다. 양로원 원장, 장의사 직원, 토마스 페레스, 셀레스트, 마리, 마송, 살라마노, 레몽까지.

 

그들의 진술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다른 관점을 가지게 했고, 이것을 이끈 것은 상대편 검사 측이었다. 상황이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으며 진실은 무시되었다. 

 

더불어 뫼르소에게 유리한 증언들은 그 누구도 제대로 듣지 않았다. 특히 레몽의 경우 증인이 포주 노릇을 업으로 하고 있다는 것과 그의 공범자요 친구로 치부되어 가장 저질의 치정 사건으로, 피고인이 도덕적으로 기형적 인물이라는 점 때문에 더욱 위중하다는 것으로 치부되면서 완전히 묵살당한다.

 

오죽하면 뫼르소 측의 변호사가 "도대체 피고인은 어머니의 장례를 치렀다고 해서 기소된 것입니까, 아니면 살인을 했다고 해서 기소된 것입니까?"라고 말할 정도였지만, 재판의 초점은 어머니의 장례에 맞춰져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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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는 그 두 범주의 사실들 사이에 어떤 심오하고 비장하고 본질적인 관계가 있음을 감지하지 않을 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12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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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장례식을 주요 쟁점으로 삼는 검사 측의 의견을 살펴보면 어처구니없고 황당한 의견을 매우 장황하고 있어 보이게 포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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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나도 한마디 참견을 하고 싶었다. 그러면 변호사는 "가만있어요. 그편이 당신 사건에 더 유리해요"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사람들은 나를 빼놓은 채 사건을 다루고 있는 것 같았다. 모든 것이 나의 참여 없이 진행되었다. 나의 의견을 묻는 일 없이 나의 운명이 결정되고 있었다.

123~12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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뫼르소는 자신 역시 이 재판에 참여하고 싶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 자신이 재판에 참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뫼르소는 자신의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방관자가 되어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내 재판장은 그가 프랑스 국민의 이름으로 공공 광장에서 목이 잘리게 될 거라고 말한다.

 

진실 여부와는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이루어진 재판, 그리고 사형수로 판결이 나면서 뫼르소는 이제 아무 생각이 없게 된다. 진종일 상고 생각을 할 때도 있었지만, 이내 모든 것을 단념하고 그녀 누워서 하늘만 바라볼 뿐이다.

 

그렇게 사형 선고를 받은 후 부속 사제는 계속 면회를 신청하지만 뫼르소는 계속 거절을 한다. 그러다 갑자기 찾아온 부속 사제의 존재는 어쩐지 짐스럽고 성가시다.

 

그러다 당신을 위해서 기도하겠다며 자신의 신념과 믿음을 강요하는 그에게 화가 난 뫼르소는 목이 터져라 고함을 치기 시작하는데, 덕분에 그렇게 그는 마음속에 담아둔 말들을 숨이 막힐 만큼 송두리째 쏟아붓게 된다. 그리고 그가 나가고 나자 뫼르소는 다시 평정을 되찾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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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치 그 커다란 분노가 나의 고뇌를 씻어주고 희망을 비워버리기라도 했다는 듯 신호들과 별들이 가득한 이 밤을 앞에 두고 나는 처음으로 세계의 정다운 무관심에 마음을 열고 있었다.

15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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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부속 사제와의 만남은 죽음을 앞두고 그가 마지막으로 마음속에 눌러 담고 있던 말들을 내뱉은 속 시원한 순간이 아닐까 싶다.

 

그는 사형수였지만, 페이지의 마지막까지 그가 죽는 순간은 만나볼 수 없다. 그저 그렇게 1급 살인자가 되어 독방에 머물면서 죽을 날만을 기다리는 형태로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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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감상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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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며 황당하고 어이없던 결말에 몇 가지 물음들이 끊임없이 머릿속을 부유했는데, 그 질문들을 스스로 하나하나 답하면서 왜 제목이 '이방인'인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는 왜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상태로 재판에 서서 어이없는 이유로 사형수가 된 것일까?', '그는 왜 완전한 외톨이가 되어 사회에서 '이방인이 된 것일까?'

 

엄마의 장례식장에서도 눈물을 보이지 않을 만큼 덤덤하고 냉소적이었던 그는 재판에서 차장 검사의 외침에 꽤나 미움을 사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왈칵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고 말한다.

 

일상을 그냥 물 흐르듯 살던 그가 우연히 휩쓸린 단 한 번의 파도로 완전히 무너진 순간이 어쩌면 이 부분이 아닐까 싶다. 덕분에 그는 자신이 이 사회의 외톨이이자 완전한 이방인임을 깨닫게 된다.

 

그가 이렇듯 이방인이 되는 과정은 살인자로 감옥에 갇히고 심문 과정을 거치면서 서서히 드러나는데, 보통의 사람들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으레 하는 거짓말 혹은 자신의 감정을 은폐하거나 과장해서 드러내는 행동을 뫼르소는 전혀 하지 않음으로써 그는 이 사회에 속할 수 없는 이방인이 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솔직하고 정직하게 이야기함으로써 그의 모든 의견은 묵살당하는데 거기에 더해 적은 말수에 침묵, 무미건조한 성격이 더해지며 점점 오해가 오해를 낳게 된다. 그러면서 그의 상황은 완전히 다른 결말에 다다르게 된다.

 

사람들은 없는 말이라도 그가 반성한다, 뉘우친다는 말을 하기를 은근히 강요한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귀찮은 일이라 여긴다고 답하면서 유죄 선고를 받게 된다.

 

그는 자신의 감정에 솔직했고, 가식이 없었기에 결국 죽음을 맞게 된다. 그 덕에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이방인이 되었고, 바다 위를 떠도는 부표처럼 여겨지게 된다.

 

사형수가 되어서도 변하지 않는,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는 그의 결연한 거부의 자세를 지켜보면서, 나중에는 정직성에 대한 용맹한 기개로까지 느껴졌다.

 

자신의 목숨이 위협당하는 순간에도 끝까지 거짓말 따위는 하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를 과연 우리는 지켜낼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대부분은 '절대 노'라고 말할 것이다. 그래서 쉽지 않은 그의 신념에 한편으로는 응원하고 싶은 마음까지 든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자신들이 원하는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일순간 상황을 몰아 큰 대역 죄인으로 만든 뫼르소의 재판처럼 우리 사회에서는 이런 부조리가 없는지를 살펴보게 된다.

 

또 장례식장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고 해서, 슬퍼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자신의 판단 기준에 맞춰 타인을 끼워 맞추고 재단하는 현실의 부조리함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타인에게 보이기 위한 감정의 호소, 짜 맞추기식의 거짓말, 상황에 따른 마음 없는 위로와 말들이 난무한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어쩌면 이 모든 것들은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이 모든 것들이 피로함과 무의미한 것으로 다가올 수 있음을 인지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뫼르소 역시 한때는 보통의 사람들과 비슷한 야심을 가지던 때도 있었지만 학업을 포기하는 것을 계기로 모든 것에 무심해지기 시작한다.

 

그 만의 사정과 가치관의 변화로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진 것이다. 그것을 누구도 편파적으로 몰아가거나 옳다 그르다로 판단할 수 없음에도 재판에 선 그의 정직하고 성실한 발언에 대해 왜곡하고 몰아가면서 결국 그를 동떨어진 개체로 만들어버렸다. 그럼에도 그는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지켜나가며 주어진 운명조차도 충실히 받아들인다.

 

그가 살인자라는 팩트는 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가 그를 응원하게 되는 것은 그것을 밝혀나가는 과정이 너무도 부조리했기 때문이다. 억울한 1명을 만들지 않기 위해 1년간 진행된 수많은 심문과 재판이 이상한 방향으로 나가면서 허위로 가득한 거짓들로만 가득 차게 된다.

 

거기에 당사자인 뫼르소는 없었다. 그리고 그의 편에 서서 진실을 이야기했던 증인들도 없었다. 이 부조리는 세기를 넘어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현재에도 진행 중이다. 그렇기에 어쩌면 오랫동안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이 사랑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책을 읽는 동안 수많은 질문과 궁금증에 사로잡혀 페이지를 넘겼다. 그러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그 질문들의 답을 하나 둘 찾을 수 있었다.

 

또 시대와 상황의 전환에 따라 이 책의 내용에서는 뫼르소가 마치 섞이지 못하는 이방인처럼 느껴지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어쩌면 반대로 흔한 상황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사회와 관계, 사람, 일 등에 무기력함과 회의감을 느끼는 요즘 사람들의 모습에서 그것을 느낀다.

 

어떤 부분에 관점을 두고 읽느냐에 따라 새로운 질문과 사회 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책 <이방인>.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꼭 필요한 필독서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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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너 1 베어타운 3부작 3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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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가 만만치 않은 분량의 소설을 쓰는 작가이기에 처음에는 마음의 각오를 다져야 하지만, 읽다 보면 빠져들게 되는 프레드릭 배크만의 소설은 현실과 크게 동떨어지지 않은 소재를 담고 있어 늘 눈길을 끈다.

 

현실 어딘가에서 늘 벌어지는 '우리들'의 이야기이기에 그의 소설을 읽을 때면 여러 감정을 동시다발적으로 느끼게 한다. 그럼으로 인해 반성과 함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을 얻게 되기도 한다.

 

이번 이야기는 산속 깊은 마을에 숲을 두고 인접한 두 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오랜 토박이들이 머물고 있기에 경험할 수 있는 정겨움과 더불어 폐쇄성이 어떤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지 함께 확인해 볼 수 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을 파악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스스로 인물 관계도를 그려보는 것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그려지는 인물의 친밀도와 관계를 하나하나 짚어보면서 사건의 개요와 상황을 파악하다 보면 어느새 스토리는 물론 전반적인 내용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마을(베어 타운과 헤드) 별로 나누어 구분하고 여기에서부터 인물의 관계를 이어나가는 방법을 추천한다.

 

스웨덴 북부의 두 작은 마을 베어 타운과 헤드는 경쟁관계이자 앙숙관계로 유명한 곳으로, 숲과 호수뿐인데다가 여러모로 쇠락해 가는 곳이지만, 유일하게 하키만큼은 두 마을의 희망이자 최고의 스포츠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의 한일전과 같이 서로와의 경기에서 승리하는 것만이 유일한 기쁨인 이 두 마을의 얽히고설킨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아름답고 평화롭게만 보였던 이 두 마을에 유례없는 폭풍우가 몰아치게 되면서 이야기는 다시 시작되는데, 떠난 사람들이 하나 둘 돌아오게 되면서 그날의 숨겨진 진실이 하나 둘 드러나기 시작한다.

 

여타 소설과는 다르게 처음부터 이 소설은 대략적인 소설의 결말과 이야기를 미리 풀어놓고 서서히 진실에 접근해 가는 방식을 취하는데, 하나하나 파헤쳐 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어떻게 잃었는지, 이것을 통해 우리에게 어떤 것을 남겼는지 확인할 수 있을듯하다.

 

 


총 2권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 중 내가 읽은 부분은 <위너 1>권으로, 본격적인 스토리가 전개되기 이전의 상황과 배경을 알 수 있는 편이다.

 

베어 타운과 헤드를 이루고 있는 숲과 호수, 두 마을에 살고 있는 주요 인물들의 직업과 가족관계, 이웃 간의 유대관계 및 두 마을이 서로에게 가지고 있는 불만과 상황들은 물론, 아이스하키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중점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더불어 2년 전 갑작스럽게 벌어진 불미스러운 사건에 대한 전말과 이 사건으로 영향을 받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

 

공생이 아닌 각자도생을 꾀하게 된 두 마을에 숨겨진 또 다른 이야기도 맛보기로 만나볼 수 있는데, 1권의 후반부에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어, 2권에서 본격적으로 내용을 확인해 볼 수 있을 듯하다.

 

외줄타기를 하듯 어딘가 위태롭게 마주하고 있는 두 마을의 이야기를 통해 충격적인 사건의 전말과 이것이 과연 어떤 결론으로 이어질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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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서술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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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에 결론까지 모두 서술한 뒤에 살을 덧붙이는 형태로 서술된다.

■세세한 인물 묘사와 상황, 사건들이 차근차근 하나씩 덧되는 식으로 서술된다.

■중간중간 벌어질 일들을 미리 예고한 뒤에 복선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가는 형태로 서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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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벌어질 모든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누군가가 등장해 그를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막았더라면.

20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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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을 수도 있어요. 어디를 봐야 하는지 제대로 알기만 하면."
그녀는 노인의 말을 믿지 않는다. 그게 패착이다.

25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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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어 타운 vs 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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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어 타운
▷상징색: 초록색
▷부유한 마을
▷매달 새로운 후원자가 등장한다.
▷아이스링크의 보수공사를 마침
▷베어 타운의 가장 규모가 큰 공장과 슈퍼마켓은 또다시 직원을 뽑고 있다.


■헤드
▷상징색: 빨간색
▷가난한 마을
▷후원자가 점점 줄고 있다.
▷아이스링크의 지붕이 무너지기 일보 직전
▷헤드의 사업체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병원은 해마다 인원을 감축하고 있다.


평범한 숲속의 두 마을이고, 어떤 사람들 눈에는 작은 시골 동네로 보일 수 있지만, 이들은 서로를 증오하고 또 증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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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점적으로 봐야 하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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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마야 안데르손이 파티에서 하키 선수인 케빈 에르달에게 성폭행을 당했던 사건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
▷얽혀있는 사람과 인물관계 살펴보기
▷사건의 결말과 당시 상황 전개 살펴보기
▷개인과 마을에 끼친 영향과 파급력 확인하기

 

■마야의 성폭행 사건과 거울처럼 닮아있는 마테오의 누나에 대한 이야기
▷안데르손 가족과 비슷한 상황과 경험을 했지만, 완전히 다른 결말과 상황에 이르게 한 배경은 무엇인가
▷누나를 죽음에 이르게 한 배경은 무엇이며 하키맨은 누구인가
▷종교에 심취한 부모가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
▷가족 분위기가 자녀의 미래에 끼치는 영향

 

■최고의 선수였던 아맛이 한순간에 바닥으로 추락했다 다시 일어서는 이야기
▷폐쇄적인 동네의 토박이 사이에서 이방인이었던 아이가 섞여들기 위해 한 노력이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
▷꿈과 추락의 한 끗 차이를 불러온 사기꾼과 좋은 어른의 차이 
▷어머니가 가진 위대한 사랑의 힘

 

■자신의 정체성을 찾았지만 그 외의 모든 것을 잃어버린 벤야민 오비크(벤이)의 이야기
▷마야의 성폭행 사건과 어떤 식으로 연루되었는지
▷그가 베어 타운을 떠나 찾고자 한 것은 무엇이고 어떤 것을 깨달았는지
▷돌아온 이후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페테르 안데르손의 이름으로 행해졌다는 부정부패의 정황과 진실
▷베어 타운 하키 전 단장이었으나 2년 전 그 사건 이후 모든 것을 내려둔 그가 벌였다는 사건의 전말은?
▷기자인 아버지와 기자인 딸이 파헤치는 베어 타운 의회와 하키단 사이의 유착과 비리에 대한 진실은 무엇일까?

 

■검은 양복을 입은 일당들은 누구이며 이들의 정체는 무엇인가
▷아이인 티무가 어떻게 이들의 우두머리가 될 수 있었는지
▷검은 양복을 입은 일당들의 진짜 정체는 무엇인지 파헤쳐 볼 것

 

■라모나가 이 두 마을에서 갖는 의미
▷버려진 아이들을 거둬들여 돌봐주고 중립적인 입장에 서서 중재 역할을 했던 라모나의 죽음이 의미하는 것은?
▷라모나와 페테르의 관계의 진실은 무엇일까?

 

■각 마을에 끈끈하게 얽힌 관계성
▷대다수가 함께 선수로 뛰고, 또 함께 소방서에서 근무하며, 그 아이들은 하키팀에서 또 함께 뛰는 등 이들만이 가는 끈끈함과 유대성이 갖는 의미
▷폐쇄성 짙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돌발 상황을 대처하는 이들만의 방법

 

■사업가인 프락이 벌이는 이해 못 할 행동들의 의미
▷의도적으로 두 마을의 불화를 조장하고 부채질하는 행위를 하는 이유
▷앞에서는 베어 타운을 위한 답시고 하는 모종의 행동들은 과연 누구를 위한 행동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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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적인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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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대에서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 연결돼 있지. 좋은 싫든."

19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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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의 가장 핵심이자 두 마을에 대해 함축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최고의 문장이다.

 

이 마을에 대해 알기를 원한다면, 모든 사람과 모든 것이 관계, 의리, 빚이라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 어떻게 서로 연결되어 있는지 알아야 한다. 이곳 사람들의 끈끈함과 생존력은 이와 같은 것에서 비롯됐지만 이는 곧 서로에게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2년 6개월 전 어느 겨울날, 마야는 파티에서 케빈 에르달에게 성폭행을 당했고 비슷한 일을 마테오의 누나도 당했다. 그리고 결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나타난다.

 

이 일로 관련된 아이들은 모두 떠났다. 마야는 빛에서, 벤이는 어둠에서 해답을 찾기 위해 떠났다. 그리고 케빈과 그 가족은 이 도시를 '그냥'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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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집을 뜻하는 단어는 여러 개라야 한다. 하나는 거기에 남아 있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용도로, 또 하나는 우리가 잃어버린 공간을 가리키는 용도로.

14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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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주는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문장이다. 따뜻함, 안락함, 포근함, 쉬는 공간, 가족이 함께 머무르는 공간 등.

 

이 소설에서 '집'은 누군가에겐 쉴 수 있는 공간이자 믿어주는 가족을 가리킨다. 그런 한편 또 다른 누군가에겐 되찾을 수 없는 사람이자 공간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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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도울 수 있는 경우에, 도울 수 있을 때, 도울 수 있는 데까지 돕는다.

4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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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에서 각각 조산사와 소방서에서 근무하는 한나-요니 부부의 직업관을 가장 잘 표현한 문장이 아닐까 싶다. 남을 돕는 직업을 가진 이들의 숙명과 같은 직업의식과 상황을 대변한 문장에서 이들의 진심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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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어 타운에서 사람들이 제거한 것은 포식동물이 아니라 골치 아픈 문제였다. 그로부터 몇 년 뒤에 마야가 케빈의 방에서 뛰쳐나왔을 때 대부분의 사람은 포식자가 아니라 그녀를 공격하려고 했다. 케빈이 아니라 그녀가 그냥 사라져 버리면 훨씬 수월하게 두루두루 상황이 해결될 테니까. 마야가 그 골치 아픈 문제였다.

7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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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가 가해자로 바뀌는 양상을 엿볼 수 있는 문장이다. 아주 작은 시골마을에서 벌어진 성폭행 사건에서 중요한 건 피해자나 진실이 아니다. 사람들이 열광해 마지않는 '하키'다. 

 

때문에 문제 제기를 한 마야가 '골치 아픈 문제'가 되었고, 사람들은 그녀를 공격하려고 했다. 자신들이 사랑한 하키 선수를 공격했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가족들의 믿음과 라모나의 도움으로 다행히 상처를 치유할 수 있었고, 덕분에 미래를 다시 한번 꿈꿀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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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가 함께 선수로 뛰었던 사이라 소방서는 라커 룸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중 한 명과 싸우면 그들 전부와 싸우는 셈이다.

40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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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는 요니와 어렸을 때부터 함께 자란 친구의 90퍼센트가 대책 없는 바보들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는데, 지금 그들의 아이들이 대부분 하키팀에서 뛰고 있다.

40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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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쇄적인 마을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는 대목이다. 세대를 이어 끈끈하게 연결되어 오는 모습과 더불어 이들이 가지는 소속감과 연대감을 확인해 볼 수 있는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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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비아스는 바닥에 눕는다. 지금까지 수천 번 그랬듯 동생은 침대에서 재운다. 형은 평소처럼 곯아떨어지기 직전에 하품과 함께 진실을 전한다.

"너는 뭐든 되고 싶은 대로 될 수 있어. 테디베어. 뭐든."

41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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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사람들뿐만 아니라 가족끼리의 우애도 매우 끈끈하고 우애가 깊은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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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처음 알게 된 사실 중 하나. 새끼 곰의 40퍼센트가 생후 1년 내에 죽는데, 대부분 자기 아비를 제외한 다른 수컷에게 죽임을 당한다는 것이었다.

 

그때 파티마는 깨달았다. 누군가 그녀의 자식을 위협한다면 그녀도 곰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그래서 그녀는 아들도 다른 집 아이들처럼 근심 걱정 없는 천진난만한 곰으로 자랄 수 있는 권리를 위해 싸웠다.
(...)
빙판 위에서는 고통 없이 자유로웠으니 그거면 충분했다. 어렸을 때는 부잣집 아이들이 유리했는데 중학교 이후부터는 오로지 실력이었다. 이기기만 하면 모두가 아이를 사랑했다. 아이는 이내 거기에 익숙해졌다.

18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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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대 사람들은 하키를 귀족 계급처럼 간주했다. 알맞은 집안에 태어난 사람만 하키에 발을 담글 수 있길 바랐다. 어린 아이들마저도 토박이와 이방인을 구분할 수 있도록, 이곳 사람들이 수많은 전통이며 관계며 전문용어를 갖춘 전혀 별개의 언어를 개발한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었다.

18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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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박이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방인이었던 아맛과 아맛의 엄마 파티마는 아이를 지키기 위해 하키를 시켰고 모든 경기에서 이김으로써 실력으로 자신의 자리를 가지게 된다.

 

작고 폐쇄적인 마을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해, 이들이 살아남기 위해 붙잡아야 했던 것은 '하키'라는 이름 뒤에 숨은 공동체의 소속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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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이 마을의 남자들이 이미 감옥을 만들었다는 것을, 누나에게 절대 벗어날 수 없는 족쇄를 씌웠다는 것을 안다. 마테오는 이제 겨우 열네 살이지만, 하느님의 종복인 부모님이 누나의 복수를 시도할리 없으니 그가 나서야 한다.

43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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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테오는 종종 소설에 등장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존재감을 확인할 수 없다. 어느 누구도 그를 눈여겨보거나 말을 건네지 않는다. 파탄 난 가정, 종교에 심취한 부모님, 마을 사람들의 집단적인 어떤 행위로 목숨을 잃은 누나.

 

열네 살 홀로 세상을 살아가기에는 아직 너무 어린 나이다. 무언의 복수를 결심하는 마테오의 독백을 종종 목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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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는 나이와 장소를 막론하고 똑같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미워하고 그리워하고 밀쳐내지만 사는 동안 서로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우리는 남자가 되려고 하지만 사실 방법을 모른다. 여기 사는 우리의 이야기는 모든 곳에 사는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와 같다. 우리는 이야기의 주도권을 우리가 쥐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경우는 당연하게도 거의 없다. 이야기들이 원하는 곳으로 우리를 데려갈 따름이다. 해피엔드로 끝나는 이야기도 있고, 제발 거기만은 아니길 바라는 바로 그곳에서 끝나는 이야기도 있다.

32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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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의미에서는 가족, 점차 넓혀나가면서 마을, 운명공동체로 엮이는 모든 것들은 서로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성장하고 발전해 나간다.

 

베어 타운과 헤드는 서로 미워하고 밀쳐내지만 사실은 서로를 사랑하는 방법을 몰라서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서로가 주도권을 쥐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폭풍과 같은 상황이 벌어지면 어쩔 수 없이 이끄는 대로 따라야만 하는 상황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끝에는 생각지 못한 죽음이 기다리기도 하고,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해피엔딩의 순간을 맞이하기도 한다.

 

 

2년 6개월 전의 사건은 마을 사람들에게 꽤나 큰 충격을 안겨다 준다. 각 개인은 물론 마을 사이의 관계가 틀어져 증오하고 미워하는 마음만 남는 상황에 이른다. 이후 큰 폭풍이 몰아치게 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는데, 본격적인 이야기는 2권을 통해 확인이 가능할 듯하다.

 

두 마을 사람들이 몇 년간 쌓아 올린 아픔과 불신을 어떻게 해소해 나갈지, 또 1권에서 언급된 여러 사건과 상황들이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지켜보는 재미도 있을듯하다.

 

쉽게 누군가를 미워하고 혐오하는 갈등의 시대에 살고 있는 지금의 우리들에게 위너가 담고 있는 이야기들은 어쩌면 완전히 반대되는 이야기이면서 한편으로는 완전히 닮은 꼴의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벼락처럼 닥친 불행 앞에서 우리는 서로를 향해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 또 어떻게 다독이며 살아가야 하는지 배울 수 있는 책이 아닐까 싶다.

 

핵심과제를 풀어나가는 과정은 2권을 통해서 따로 확인해 볼 예정이다. 이를 통해서 이들에게 진정한 위너는 누구인지 프레드릭 배크만이 이 책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의미는 무엇인지 찾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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