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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에게 - 오늘을 껴안는 한뼘 편지
김민 지음 / 도서출판이곳 / 2023년 11월
평점 :
나름대로 기대를 하며 처음 받아든 이 책의 첫 느낌은 '불쾌함'이었다. 구깃구깃 찌그러지고 일그러진 앞 뒷면의 책 표지는 내 마음까지 일그러지게 만들었는데, 마치 중고책을 보낸 듯한 느낌이었다. 더불어 이 책을 교환하고자 문의하는 과정에서 말할 수 없는 불쾌함과 짜증까지 더해지면서 완전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정치권에서 최근 가장 많이 쓰는 말, '내로남불'. 딱 이 말이 어울리는 상황이었다. 해당 책을 제공한 플랫폼에서는 서평을 위해 제공되는 책이라 곧 죽어도 교환이 안된단다. 여기에 더해 책을 읽을 수 없을 정도의 파손이면 차라리 인증 사진을 보내고 서평을 쓰지 말라는 어이없는 답변까지! (회수도 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저기요~ 책이 읽을 수 없을 정도의 파손상태면, 그건 책이 아니라 쓰레기를 보낸 거거든요!"
내 마음속 답답한 외침을 꾹꾹 눌러 담은 채, 새 책을 버젓이 팔고 있는 인터넷 서점을 가만히 노려본다. 그리고 이내 서평을 위한 책을 굳이 구분해서 관리하는 이유가 궁금해진다.
어차피 훼손되어 못 파는 책, 서평이라는 구실로 꿩먹고 알먹고 해보자는 심산일까? 앞서 해당 사이트의 엉망진창 대응에 이미 며칠을 소비하고 신경을 썼던지라 이들의 이런 대응은 그저 기가 찰뿐이었다. 그러면서 이 책을 쓴 저자는 과연 알고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각종 서평에 참여해서 책을 받아보면, 책에 대해 얼마나 애정과 정성을 담고 있는지가 극명하게 갈리는데, 정성을 담은 곳들의 경우 별도의 박스를 제작해서 아예 선물처럼 담아 주시는 곳도 있고, 책을 한 번 더 포장지에 싸서 손글씨로 쓴 메모와 작은 간식까지 담아주시는 경우도 있었다.
따지고 보면 별거 아닌데, 책을 제작하고 배포하는 곳에서 꽤나 신경을 쓰고 있구나, 애정을 가지고 있구나, 처음 책을 받아드는 독자들에게도 신경을 쓰고 있구나라는 느낌이 들어 더 열심히 책을 보게 되는 매직을 경험하게 된다.
작은 초콜릿과 사탕 한두 개의 문제가 아니라, 그 정성에 탄복하게 되는 것이다. 기실 매번 그런 포장과 손글씨를 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그저 깨끗한 책 한 권을 보내준다면 개인적으로는 그것만으로도 만족한다.
하얗고 깨끗한 첫눈을 밟듯, 그렇게 새 책을 펼치며 작가의 세계를 탐독하는 재미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책을 펼치기도 전에 느끼는 불쾌함이라니.
내가 만약 이 책을 쓴 저자라면, 이런 식으로 책이 홍보되는 것이 달가울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나 같으면 '절대 아니'다. 몇 날 며칠을 밤을 새우고 고치고 또 고치며 출간한 새 책이 처음 읽는 독자들에게 이런 식으로 전달되는 방식이라면, 절대 플랫폼에 맡기지 않을 것이다. (출판사가 이런 것을 사전에 생각하고 별도의 책을 전달한 것이라면 또 이야기는 달라진다)
어쨌든 플랫폼을 통하지 않고서도 요즘은 홍보할 수 있는 방법이 무수히 많으니(특히 서평단 모집이라면 더 그렇다!) 굳이 플랫폼을 이용해서 이런 식의 불쾌한 방식과 경험을 첫 독자에게 안기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을 것 같다.
어쨌든, 책의 첫 페이지를 펼치기도 전에 한참 진을 빼고, 마음은 상할 대로 상한 채로 구석에 처박아 둔 책을 늦은 밤 펼쳐든다. 어찌 보면 의도와는 상관없이 이미 꼴 보기 싫은 책이 되어버린 것을 방치만 할 수 없어 꺼내든 참이다.
그렇게 책을 읽게 되었다.
책 읽기 전, 완전히 마음이 상한 것치고는 페이지를 펼치자마자 책은 술술 읽혔다. 1장만 읽고 잠자리에 들어야지 했는데, 읽다 보니 어느새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있었다.
어쩌면 이 책에 담긴 내용들이 지금의 내 상황과 맞물리면서 공감과 힐링을 이끌어 냈고, 그러면서 그때까지도 가라앉지 않던 남은 분노가 서서히 사그라들면서 마지막 페이지까지 도달한 것이 아닐까 싶다.
아이러니하지만, 이 책 덕분에 내 침대로 내가 사랑하지 않는 감정을 끌고 오지 않고 잠들 수 있었다.
이 책은 삶이라는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모든 이들에게 저자가 보내는 응원이자, 당신 또한 세상에 없던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지은이'라는 것을 일깨우는 편지로, 시의 형식을 빌려 전하고 있다.
또한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지은이'인 모두가 삶의 주인공이라는 것을 한 번 더 환기시키며, 삶의 의미를 잃거나 고난이 찾아오는 순간 센 물살에 휩쓸리지 않도록 튼튼한 다리 역할이 되어 주는 다정한 말을 담고 있다.
본격적인 책 탐구에서는 위에 언급한 이 책을 수령하는 과정에서 겪은 나만의 경험과 이야기에서 느낀 부정적 감정을 새롭게 상쇄시킨 문장도 함께 소개해 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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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있는 모두가 지은이죠.
저마다의 삶에 깃든 문장이 모여 세상이라는 이야기가 되지요
당신도 하나뿐인 이야기의 주인이죠
이야기는 '흐름'으로 생명을 얻어요.
뜻밖의 사건이 있어야 하고
바라지 않은 만남과 이별을 통해 나아가죠.
시작과 끝을 선택할 수 없지만 그 사이의 모든 장면을 결정할 수 있어요.
기쁨으로만 채워진 삶이 없듯이
불행으로만 가득한 삶도 없어요.
매 순간 삶은 그저 반짝이고 있죠.
(...)
신의 뜻대로, 당신의 뜻대로 하나뿐인 이야기를 이어가세요.
지은이에게 (12~1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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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첫 페이지에 자리한 시였는데, 이 시를 읽으며 '그래, 지금 내가 주인공인 또 하나의 이야기를 쓰고 있는 거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예상치 못한 뜻밖의 사건 전개가 있기에 이 이야기에 재미가 덧씌워지는 것이고, 삶이라는 이야기가 풍성해지는 거구나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비록 시작과 끝은 내가 선택할 수 없었지만, 중간에 이루어지는 과정은 내 선택에 의해 여러 장면을 만들어 냈는데, 정당한 요청을 통해 어처구니없는 '거절'의 답변을 받았고, 두드려도 절대 바뀌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얻었다. 그래서 나만의 방식으로 그 서사를 풀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냉가슴 앓으며 어쩌면 더 오래 마음속에 담아두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부딪히고 경험하며 상대를 알고 나를 아는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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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터를 지우면 아무것도 남지 않을 테지요.
얼룩을 빼버리고 나면 백지만 남을 테지요.
당신의 날들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지우고 싶은 기억이 없었던 거라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일과
부르지 못하게 된 이름들이 아니었다면
당신은 이곳에 있지 않을 테지요.
당신은 당신이 아닐 거예요.
그렇게 바람이 불었던 것은
먼 여행을 떠나는 당신의 날개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였죠.
그렇게 많은 비가 내린 이유는
당신에게 깃든 초록의 생명을 일깨워주기 위해서였죠.
(...)
그렇게까지 많은 일이 생겼던 이유는
한 가지 색으로 무지개를 그릴 수 없기 때문이었죠.
당신의 삶을 세상의 빛으로 물들이기 위해서였죠.
무지개를 만드는 사람 (21~2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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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좋은 일과 안 좋은 일이 뒤섞여 풍성한 경험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가끔 너무 지치고 고단한 날이면, 그날만큼은 지우개로 박박 지워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하지만 그런 날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고, '현재의 내'가 만들어졌음을 기억하자.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는 나를 더 성장시키고 발전시키기 위함임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덕분에 처음 이 책의 서평단으로 신청한 과거의 시간을 더 이상 지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세상의 경험 한 스푼을 배우고, 이 책을 얻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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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친다는 말에는 후회가 깃들어요.
바쳤다는 마음은 희생을 전제하죠.
당신은 삶을 누렸을 뿐이에요.
당신이 선택한 인생이었고
당신이 만들어온 길이었어요.
헌신이 아닌 '누림'이었죠.
바침을 누림으로 여기면
지금까지의 모든 순간이
당신의 지금을 지탱해 줄 거예요.
세상이 당신의 이야기를 지지할 거예요.
꽃 말고는 바치지 마세요.
당신의 빛을 망치지 말아요.
꽃 말고는 바치지 말라 (38~3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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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끗 차이의 관점이 세상을 보는 시야를 바꿔주는 것임을 제대로 일깨워주는 문장이다. 드라마를 보면 '자식을 위해 내 인생을 바쳤다'라고 말하는 어머니의 대사를 들을 때면 뭔가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 시를 통해 그 이유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 말에 스며든 부정적 감정인 '후회'와 '희생'이 그렇게 느끼도록 한 것이었다. 이제부터는 '내 인생을 누렸다'라고 말해보자. 꽃을 제외한 그 무엇도 '바칠'것은 없다. 그저 누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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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은 나보다 나를 잘 알 수 없어요.
타인은 나보다 나를 신경 쓰지 않아요.
타인의 말을 해석하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마세요.
칼로는 비를 막을 수 없는 법이죠.
말로 싸우려 들 필요 없어요.
침묵을 우산 삼아 흘려보내세요.
타인의 해석은
당신의 존재를 설명할 수 없어요.
타인의 말로 이야기를 망치지 않는다 (7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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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더 이상의 무의미한 논쟁은 끝내기로 마음먹었다. 그들에게 적선한 셈 쳤고, 더 이상 나의 귀중한 시간을 불필요한 곳에 낭비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 이들에게 백번 말해도 통하지 않음을 이미 깨달은 것이다.
그들은 나를 이해할 수 없고, 나의 이러한 외침을 신경 쓰지 않는다. 덕분에 똑같은 문제는 매번 반복되고, 계속해서 지속된다. 그들은 제자리에 머물겠지만, 나는 그렇게 한발 앞으로 나아간다.
오늘만큼은 그런 나의 모습을 칭찬해 주고 싶다. 문제가 되는 근본에 다가가 해결하려 노력하는 모습을, 끝까지 최선을 다해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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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하지 않은 이를
저녁 식사에 초대하지 마세요.
(...)
저녁은 소중한 이들과 함께 하세요.
사랑하지 않는 이를
침대로 끌고 와서는 안돼요.
(...)
잠자리에서만은 생각하지 마세요.
지혜롭지 않은 이를
당신의 서재에 들이지 마세요.
불만만 늘어놓는 사람이나
아픈 곳을 건드리는 사람 중에
당신 삶에 도움이 되는 이는 없어요.
사이라는 말은 적당한 거리를 전제해요.
사이좋게 지내려면 적당한 틈이 있어야 하죠.
나를 지키는 마지노선 (103~10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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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공감하는, 금번 나에게 도움이 되었던 시구다. 때때로 내 감정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 곤란할 때도 있지만, 이 시구를 떠올리며 마음을 바로잡고자 한다.
인간관계나 사회생활에서 불편한 사람은 점심시간을 내어주는 것으로 족하다. 저녁시간만큼은 나의 소중한 이들과 함께 하자.
내가 사랑하지 않는 것들은, 아예 집 밖에 두고 오는 것이 최선이다. 그러나 미처 떨쳐내지 못한 것들이 있다면, 적어도 침대안까지 허락하지는 말자.
나의 삶에 나를 아프게 하는 사람, 불만만 늘어놓거나 불행의 길로 이끄는 사람들은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으로 나의 행복을 찾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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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싸매도 수가 없을 때에는
신발 끈을 조이고 나아가는 거예요.
(...)
머뭇거릴수록 힘들어지기 마련이죠.
그러니까 그냥 해버리는 거예요.
안 되면 어때서요. 그만큼 나아간 거죠.
(...)
숨을 고르고 여기서부터 다시
거리낌 없이 나아가는 거예요.
마땅히 닿아야 할 그곳까지요.
결과를 기다리는 대신 과정을 누리며 시작을 계속하는 거예요.
목적 없는 삶을 목표로 계속해서요.
그냥 해버리는 거야. (216~21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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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그냥 해버리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았다. 조금만 있다가 할까?라는 생각이 스며드는 순간 그것은 언제가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기보다, 그냥 해버리는 것!
이것이 핵심이 아닌가 싶다. 대부분의 시간 속에 우리는 '그냥 해버리는 것'을 못해 흘려버리는 시간이 은근히 많다. 결과를 고민하기보다 그냥 저질러보자.
그렇게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어느새 저만큼 나아간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삶의 한가운데 다가온 모순 투성이와 부조리함은 짐짓 사람을 나락의 끝으로 몰아넣기도 한다. 진실이나 사실 여부와는 상관없이 그저 힘과 권력, 시스템과 잘못된 관행이 그렇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그럴 때, 그런 것들에서 나를 꺼낼 수 있는 방법은 결국 나 자신이다. 나의 시간을 나의 기준에 맞춰 사용하고,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는 사람과는 거리를 두며, 나를 다독일 수 있는 장소와 저녁시간만큼은 오로지 나를 위해 쓰는 것이다.
그리고 세상을 보는 관점을 달리해, 나쁜 경험조차 풍성한 경험으로 만드는 자세는 나를 성장으로 이끌어 줄 것이다. 나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나 자신이므로, 내 판단에 근거해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하자.
그저 불쾌한 책 혹은 공감과 깨달음을 줬던 또 하나의 책 중 하나로 남을 뻔했던 책이 앞선 불쾌한 경험들로 인해 새롭게 다가왔다.
나에겐 이 서평을 쓰기에 앞서 여러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대충 소개 글만을 보고 서평을 쓰거나, 극단적으로 쓰지 않기를 선택하거나, 적당히 한 두 페이지만 읽고 쓰는 것과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러나 나는 끝까지 읽는 것을 선택했고, 이렇게 인생의 한 페이지를 잘 마무리하는 기회도 갖는다. 이후에 또 얼마나 같은 상황과 경험을 맞닥뜨릴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마음을 담아 건네는 이들의 정성과 고마움만큼은 확실히 인지할 것 같다.
정성을 담은 마음은 언제나 나를 기껍게 만든다. 그래서 그런 마음을 건네준 이들의 책은 앞으로 더 열심히 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책은 독자와 저자뿐만 아니라, 이것을 건네는 과정에 자리한 이들의 마음도 담고 있음을 부디 놓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만 지원받아 직접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