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가 - 인생의 절반쯤 왔을 때 깨닫게 되는 것들
리처드 J. 라이더.데이비드 A. 샤피로 지음, 김정홍 옮김 / 북플레저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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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향해 가는 길을 찾는 법!"



누구나 행복한 삶을 원하지만, 정작 방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런 이들에게 저자는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가'라고 물으며, 자신의 경험담을 통해 행복으로 가는 방법을 독자 스스로 떠올릴 수 있도록 돕는다.


이를 통해 행복으로 가는 길은 어쩌면 미니멀리즘과도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가득 채워져 있던 인생 가방을 계속해서 정리하고 또 필요한 것들을 채워 넣으며 조금씩 내 취향과 내 행복으로 채워나가는 것이 비슷하게 느껴져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 같다.


우리는 행복을 찾는다는 핑계로 계속해서 무언가를 내 삶에 채우기 급급한데, 어쩌면 행복은 지속적으로 내 삶을 이루고 있는 것들을 되돌아보고,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을 구분해 내는 것이 아닐까 한다.



총 1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저자의 경험에서 비롯된 진정성을 바탕으로 행복한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다.


그저 결과만을 쫓기 바쁜 현대인들에게, 행복한 삶을 위해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와 생각, 과정을 즐기는 방법을 제시한다.


이를 통해 과유불급으로 살아온 우리들의 삶을 돌아보고, 진정한 행복을 찾는 길을 발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또 지금부터 자신의 인생 가방을 중요한 순간마다 새로 꾸려나갈 수 있는 용기와 실천력을 발휘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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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가지면 덜 가질수록 더 많은 것을 얻는다."


사람들은 대부분 이 말을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하지만 편리함과 안락함을 포기하거나 희생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삶을 단순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가방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따져보고 그것들을 정말 원하는지, 그리고 반드시 가지고 가야만 하는지 결정을 내려야 한다.

6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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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해서 행복한 것은 아니다. 때로 이것은 짐이 되기도 하는데, 가진 것이 진짜 행복으로 다가오기 위해서는 단순화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나의 인생 가방 안에 무엇이 있는지, 그것이 정말 필요한 것인지,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지를 걸러내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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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을 다시 꾸리는 일은 더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 사이에서 올바른 균형을 찾아가는 작업이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지금 짊어진 짐이 도대체 어떤 것인지 살펴보고, 그것이 당신의 선택을 잘 반영하고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6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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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가방을 다시 꾸리는 것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여행 가방을 싸는 것에 비유해 생각해 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어느 목적지를 향해 나아갈 것인지, 그 목적에 맞는 짐을 잘 꾸렸는지를 잘 생각해 보면 지금 나의 인생 가방에 더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을 걸러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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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야 할 일들, 그리고 사람들이 내게 기대하는 것들에 너무 얽매여 있어서 무엇이 중요한지 우선순위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살다 보니 내가 진심으로 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잊어버리고 말았어요. 그러다가 전립선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됐겠습니까? 이제 더 이상 '시간의 양'은 중요하지 않게 돼버렸어요. '시간의 질'에 따라 삶의 가치가 달라진다는 것을 깨달은 겁니다."

(...)

"저는 하루 일과를 세심하게 짭니다. 귀를 기울이기 위해 매순간 하던 일을 멈추고 나 자신에게 묻곤 합니다. 이 모든 행동이 내 삶의 목적을 이루어주는가? 그렇게 하루하루 정해진 일과에 몸을 맡기고 따라가다 보면 질서와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이 살아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우주 안에서 내가 지금 있는 곳이 어딘지도 점점 분명해지지요."

225~22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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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의 시선이나 세상살이에 몸을 내맡긴 채로 정신없이 살아가다 보면 정작 내가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 또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잊고 살기 마련이다.


그러다 우리가 '아차' 싶을 때는 보통 이미 죽음 앞에 다다랐거나 중병에 걸려 건강을 잃게 되는 순간으로 그때는 너무 늦었거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때다.


너무 늦기 전에 행복을 찾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통해 내가 지금 무엇을 원하는지, 지금 내가 하는 행동들이 내 목적에 맞게 움직이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시간을 어떻게 보냈느냐에 따라 삶의 가치가 달라지므로, 종종 멈춰 서서 내 삶의 이정표를 점검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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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나이보다 더 빨리 늙고 삶의 생기를 잃어가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짊어진 짐이 너무 무겁기 때문이다. 리처드 그렉은 "짐을 가볍게 한다는 것은 제 손으로 삶을 정돈 하는 것, 외적 혼란으로부터 탈출하는 것, 삶의 주된 목적과 무관한 많은 소유물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했다.

23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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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가방을 다시 꾸리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더 젊고 건강하게 인생을 살기 위함도 있다. 감당하지도 못할 것들을 욱여넣고 살다 보면 당연히 나이보다 더 빨리 늙고 생기를 잃을 수밖에 없다.


인생 정리는 꼭 죽음 앞에서만 행해지는 것이 아니다. 살면서 종종 불필요한 삶을 정돈하고, 혼란스러운 것들을 벗어던지는 행위를 실천해야 나의 목적과 방향에 맞게 나아갈 수 있다.


그러므로 너무 많은 고민, 걱정, 염려 그리고 감당하지 못할 사람, 일 등 수많은 것들을 종종 정리하며 살아가자. 그것이야말로 진짜 내 삶을 사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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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깨달은 것은 마침내 '나다운 나'가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생애의 대부분을 누군가가 되려고 노력해 왔다. 하지만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세상에 드러내는 것이 곧 참된 삶의 예술이라는 사실을 드디어 깨닫게 되었다. 다시 가방을 꾸리면서 나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마음과 영혼의 행복한 시간을 위하여 다른 일을 줄일 것

●내가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해 다른 불필요한 것들을 버릴 것

●자신에게 'Yes'라고 말하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No'라고 말하는 법을 배울 것

●인간관계를 새롭게 넓히기보다는 지금의 관계를 좀 더 새롭고 창조적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

●밖에 있는 최상의 것을 잡으려 애쓰기보다는 지금 내가 갖고 있는 것들 안에서 아름다움과 만족을 찾을 것

●긴 안목으로 볼 것, 그리고 인내를 배울 것


(...)

또한 매일매일이 축복에 감사해 한다. 감사의 세 가지 주제는 다음과 같다.


재능을 소중히 여길 것

현재를 받아들일 것

가진 것을 나눌 것

247~24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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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다운 나'를 위해 위의 6가지를 실천하고, 감사의 세 가지 주제를 삶에 적용해 보자. 몇 가지 항목은 처음에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차차 적응하다 보면 이것들이 얼마나 삶에 효용성과 시간 활용의 효율성을 가져다주는지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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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을 다시 꾸려보자

그런 다음 느낌이 어떤지 보자

고칠 점은 고치자

필요할 때마다 가방을 다시 꾸리자


여행을 다시 떠날 준비가 되었다면 이제 떠나자.

25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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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꾸린 가방을 인생 끝까지 가져갈 필요는 없다. 그렇게 되면 불필요한 내용들이 너무 많이 담겨있어 오히려 효율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가방은 언제든 필요할 때마다 다시 꾸리면 된다. 고칠 점은 고치고, 필요한 것은 추가해 내 목적성에 맞게 꾸리면 된다. 그리고 또다시 삶을 뚜벅뚜벅 걸어나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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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시간관념에 타임아웃을 끼워 넣으면 라이프스타일에 커다란 변화가 생긴다.

(...)

중요한 것은 시간을 사용하는 방법이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 아주 여러 가지라는 점을 깨닫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일종의 문화적인 흐름이다. 사는 방법을 자주 들여다볼수록 구시대의 장벽이 더 이상 우리에게 맞지 않으며, 하루빨리 치워버려야 한다는 사실이 더욱 선명하게 떠오른다.

26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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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너무 타임라인 안에서만 살아간다. 그래서인지 잠자는 시간을 제외한 시간 외에 우리가 공식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휴식시간은 없다.


생각해 보면 시간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수백만 가진데, 우리는 너무 한정된 방법으로만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이제부터는 나의 일상 안에 타임아웃을 끼워 넣어보자. 염려했던 것보다 일상은 더 단단히 유지될 것이며, 불필요한 것들에 허비하는 소모 시간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때때로 마음의 여유를 얻을 수 있는 시간은 더 많은 것들을 제공해 줌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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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삶에 변화를 주어야 한다. 일상의 패턴에서 과감히 벗어나야 한다.

27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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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아웃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으로 일상의 패턴에서 과감하게 벗어나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평소 자신이 걸었던 길, 일어나는 시간, 먹었던 음식 등 하지 않았던 것들에 도전해 봄으로써 우리는 새로운 삶의 활기와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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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아웃은 우리에게 자신의 감정을 정화할 수 있는 시간과 자기 안에 흐르는 음악에 귀 기울일 여유를 가져다 준다.

27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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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아웃의 장점을 나열하자면 무수히 많지만, 가장 큰 장점은 바로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다는 점이다. 내 감정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면서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나의 지금 마음 상태는 어떠한지 살펴봄으로써 스트레스의 취약성에서 벗어날 수 있다.


아무리 멘탈이 강한 사람이라도 마음이 외치는 소리를 계속 무시하다 보면 결국 탈이 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타임아웃을 통해 건강한 멘탈과 여유를 가져보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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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잃었다는 사실을 아는 것, 그것이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첫 걸음이다. 길을 잃었다면 적어도 당신은 길을 찾고 있는 중이다. 설사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 해도.

28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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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의 상태를 안다는 것은 곧 해결책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 현재 길을 잃었다고 해서 너무 상심하지 말자. 길을 잃었다는 사실을 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당신은 잘하고 있는 거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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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새로운 상황을 발견의 기회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용기와 수용이 필요하다. 새로운 것과 마주칠 용기가 있어야 하고, 배워야 한다는 사실을 수용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관광객과 탐험가의 자세가 다른 점이다. 관광객들은 그저 인생이라는 관광지를 방문해서 명단에 나온 장소만 둘러볼 뿐이다. 하지만 탐험가는 삶을 체험하고, 삶의 모든 것에 온 가슴과 머리를 다해 몰두한다. 둘의 차이는 결국 기꺼이 길을 잃어버릴 의지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다.

31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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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때로 생각지 못한 상황을 직면할 때가 있다. 그럴 때 관광객의 자세로 대하느냐 아니면 탐험가의 자세로 대하느냐에 따라 우리 삶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만약 탐험가의 자세로 용기와 수용의 태도를 취한다면 당신은 새로운 발견의 기회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때로 길을 잃어봐야 새 길을 찾을 수 있음이다.




미니멀리스트에게 있어 미니멀라이프란 무조건 버리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들에게 물건이란 꼭 필요한 것은 남기고 불필요하다 여겨지는 것들은 비워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단조로운 삶을 말한다.


어쩌면 우리 삶도 이와 같은 태도가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싶다. '행복'을 바란다면서 정작 자신에게 있어 행복이란 무엇인지 전혀 생각해 보지 않고 무조건 행복의 요건들만 끌어모으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쯤 돌아볼 시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반찬이 다르듯, 행복의 조건 또한 다를 텐데, 어쩌면 다들 그렇게 같은 것만 바라보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어설픈 행보만 이어갔는지 모를 일이다.


저자가 말하는 행복 찾는 법을 통해 현재 내가 지금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이 필요한지를 천천히 돌아보고 나의 인생에 진정한 '황금기'를 위한 행복 찾기를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당신의 '오늘'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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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에 새기는 쇼펜하우어 인생고전 라이팅북 1
박찬국 편역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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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모호하고 어려운 여느 철학자와는 다르게, 쇼펜하우어는 현실적이고 명쾌한 말들로 인생의 조언을 건네는 철학자로 유명하다. 그래서인지 그의 잠언들을 읽을 때면 마치 정신 차리라며 철썩 내리치는 듯한 느낌을 받고는 하는데, 그런 그의 잠언이 담긴 국내 최초 필사책이 나왔다고 해서 만나보았다.


요즘에는 책을 읽고 기억에 남는 문장들을 오래 간직하고 싶어 필사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 책은 도움이 될만한 구절과 필사할 수 있는 페이지가 따로 마련되어 있어 별도의 준비물은 필요 없을 듯해 보인다.


전체적인 디자인도 심플하고 깔끔해서 소장용이나 선물용으로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많은 여백을 활용해 손으로 쓰고 마음에 새기며 쇼펜하우어의 문장들을 머리와 가슴에 담아보면 좋겠다.



총 5부로 구성된 이 책은, 쇼펜하우어의 철학이 담긴 100편의 잠언들과 저자의 해설, 그리고 그 잠언들을 필사할 수 있는 페이지를 담고 있다.


전체적으로 빽빽하게 구성되어 있지 않아 공감이 가는 명언들을 충분히 음미하고 되새길 수 있으며, 그래서 책을 읽을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는 사람들조차 이 책은 쉽게 접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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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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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철학자. 염세주의 철학자로 유명하며, 인간과 삶의 본질을 꿰뚫는 독특하고 심오한 사상을 남겼다.


니체와 비트겐슈타인과 같은 철학자들, 프로이트와 융을 비롯한 심리학자들이 쇼펜하우어에게서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음악에서는 바그너와 구스타프 말러가 쇼펜하우어에게 심취했었으며,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토마스 만, 헤르만 헤세, 카프카를 비롯한 문학의 수많은 거장들이 쇼펜하우어로부터 영감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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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새기면 좋을 인생 명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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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인간과 인생에 대한 쇼펜하우어의 예리하고 심원한 통찰을 담은 주옥같은 잠언들을 모은 책으로, 특히 공감이 가거나 마음에 남았던 문장들 위주로 기록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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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직접적으로 인간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명랑한 마음이다. 명랑한 마음은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며, 그 모든 것을 보충하고도 남음이 있다. 젊고 아름답고 부유하고 게다가 존경까지 받는 사람일지라도 그가 행복한가 불행한가는 명랑한 마음을 갖고 있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

반면에 어떤 사람이 명랑한 마음만 가지고 있으면 그가 젊든 늙었든, 키가 크든 작든, 부자든 가난뱅이든 그는 행복한 인간이다.

3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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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필사 책을 살펴보면, 행복에 관련된 내용들을 많이 만나볼 수 있었는데, 행복해질 수 있는 첫 번째 방법으로 '명랑한 마음'을 꼽아보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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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쾌한 일을 사소한 일로 취급하면서 무시하는 것은 행복한 삶을 위한 훌륭한 방법이다.

4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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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해지기 위한 두 번째 방법은 불쾌한 일은 사소한 일로 취급해버리는 것이다. 살면서 더러 불쾌하거나 불행한 일을 겪기도 하는데, 이럴 때 우리는 그 일을 오래도록 되새기며 스스로를 불행의 구렁텅이에 밀어 넣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이 글을 되새겨기며, 불쾌한 일을 사소한 일로 넘겨버리자. 그러면 일순간 마음의 고요가 찾아올 것이고 이후 행복한 상태를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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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란 자신을 고문하는 것이다.

4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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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 번쯤 후회하는 일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우리는 후회를 통해 지나간 일을 반성하고 또 성장하며 앞을 향해 나아간다. 그런데 만약 후회가 이런 용도가 아닌 다른 용도로 활용되고 있다면 이제 그만 멈춰서 생각해 봐야 할 때다.


만약 후회와 자책이 길어지거나, 반복되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그것은 그저 자신을 학대하고 고문하는 것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다. 그러니 부디 후회를 통해 자신을 갉아먹는 행위는 그만두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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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현재만이 실재하며 확실한 것이라는 사실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과거에 대한 불평으로 혹은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현재의 귀중한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

4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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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에 존재하지 않는 과거나 미래를 걱정하느라 현재의 시간을 허비하는 어리석은 행위는 이제 그만 두자. 현재를 잘 살아내야 지나간 과거에 대한 미련도, 다가올 미래에 대한 두려움도 없앨 수 있다.


그러니 부디 '오늘' 이 시간을 귀하고 최선을 다해 살아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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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야 할 일이라면 기꺼이 하고, 견뎌야 하는 일이라면 기꺼이 견뎌내라.

5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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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이런저런 일로 삶을 마주 보는 일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 그럼에도 마주 봐야 하는 이유는 더 나은 삶, 더 나은 나를 위해서다.


매일 미루고 회피만 하다 보면 결국 이후에는 해야 할 일과 해결해야 할 일만 남을 수밖에 없다. 건강한 내일과 매일의 삶을 위해 이제는 기꺼이 오늘을 마주 보며 해야 할 일과 견뎌야 하는 일을 감수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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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현명함 다음으로 용기다.

5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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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에 불나방처럼 달려든다고 해서 무조건 행복한 것은 아니다.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현명한 지혜와 그것을 실행할 용기를 가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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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일반적으로 자기 자신하고만 완전하게 일치할 수 있다. 친구나 애인과는 그렇게 될 수 없다. 각자의 개성이나 기분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아무리 적은 것이라도 불협화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따라서 건강 다음으로 최고의 보배인 마음의 참되고 깊은 평화와 완전한 평온은 오직 고독 속에서만 발견할 수 있다.

10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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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지만, 실상 완전히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사회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완벽하게 자신과 일치할 수 있는 이는 이 세상 유일한 하나 '자기 자신뿐'이다. 때문에 완전한 평화와 평온은 오직 홀로 있는 시간인 '고독' 속에서만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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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고슴도치 같은 존재다.

따라서 너무 가까이하면 위험하고 그렇다고 해서 모두를 멀리하면 춥고 외롭다고 느낀다.

10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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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게 들여다보기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적당한 거리를 마련해 주는 것이 '예의'라고 보았습니다. 즉 '서로 너무 가까이하지도 말고 너무 멀리하지도 않는 것'이 고슴도치 같은 우리 인간들이 그나마 서로 조화롭게 살 수 있는 방도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쇼펜하우어는 예의라는 것이 인간들 사이의 갈등을 줄이는 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행복한 삶을 위해서 가장 좋은 것은 혼자 사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예의를 지켜도 인간이 기본적으로 이기적인 존재인 한, 인간들 사이의 갈등은 불가피하고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관계하면서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121~122페이지 中)


*****


가까운 사이일수록 많이 허물어지는 '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하는 문장이다. 왜 친하지 않은 사이보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쉽게 틀어지고 관계가 어긋나는지 알 수 있는 문장이다.


더불어 크게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다면 오히려 요즘 같은 1인 시대가 더 평온하고 행복한 삶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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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열이 없는 삶은 지루하고 시들하다.

그러나 정열이 지나치면 삶은 고통이 되기 쉽다.

따라서 정열과 욕망을 갖되 그것들의 노예가 되지 않을 정도로 지성의 여유를 가진 자만이 행복하게 될 수 있다.

11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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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밸런스를 적절히 잘 유지해야 행복한 삶에 이를 수 있다는 말로 해석되는 문장이다. 무엇이든 과한 것은 좋지 않기에, 정열과 욕망은 적당히 즐기고 필요한 순간에는 자신만의 고삐를 그러쥐어 조절할 수 있는 지성과 여유가 필요함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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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불행은 타인과의 비교에서 시작된다.

13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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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라! 모든 불행은 타인과의 비교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부모님, 가족, 친구 심지어 자기 자신조차 누군가와 비교하기 시작하면 만족을 얻기 힘들다.


불행해지고 싶지 않다면 타인과의 비교는 저 멀리 던져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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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의 반응에 예속되어 있는 인간은 노예다.

13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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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의 추겨 세워주는 칭찬과 격려, 험하게 던지는 말이나 행동에 너무 기대지 말자. 그런 반응에 휘둘리기 시작하면, 당신은 그들이 부리는 아바타로 사는 노예나 다름없다.


자신의 삶을 살고 싶은가? 그렇다면 남들이 뭐라고 하든 나만의 속도와 방식으로 삶을 이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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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눈에 자신이 어떻게 비칠까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가치를 올바르게 평가하는 것이 우리의 행복에 더 많이 기여한다.

14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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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은 나의 입체적인 모습 전체를 알기 어렵다. 그렇기에 보이는 부분만 보는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기보다, 나를 가장 잘 알고 있는 내 기준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마땅히 옳다.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것을 해야 행복에 더 가까워지는지는 나만의 가치 평가에 따라 다르게 매겨질 수밖에 없다. 타인이 어떻게 보는지 신경 쓰기보다, 내가 행복해지는 바른 방향을 향해 나아가 보자. 그게 정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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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느끼는 온갖 비애와 걱정의 절반은 나에 대한 타인의 생각에 신경을 쓰는 데서 비롯된다. 만약 우리가 그런 것에 더 이상 신경을 쓰지 않는다면 사치는 지금의 10분의 1로 줄어들 것이다.

14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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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을 신경 쓰는 회로를 꺼버린다면 생각보다 사치하는 비용이 확 줄어들 수도 있다. 외적인 것을 비롯해 감각 회로까지 포함해 많은 것이 간편해지고 간소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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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눌 때, 아무리 호의에서 나온 말이라고 해도 그 사람을 고치려고 하는 지적은 삼가야 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쉽지만, 교화시키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15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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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이것은 곧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고유의 생각이나 관념이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는 말과도 같다.


그렇기에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타인에게 함부로 지적하는 말은 하지 말자. 당신이 상대를 고치려 한 호의의 말이 되려 화살촉이 되어 상처로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제나 말조심! 개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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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끊임없이 남의 눈치를 보는 것은 모든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좋은 평판을 받고 싶어 하는 허영심 때문입니다.

16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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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게 들여다보기

자존감의 결여는 우리 내면의 노예근성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우리가 남들의 호의적인 평가에 신경을 쓰고 그것 때문에 일희일비하는 것은 우리 내면의 노예근성에서 온전히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161페이지 中)


*****


타인에게 유달리 의지하고 신경 쓰는 사람들을 보면,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이 많다. 우쭐하는 생각과 우울한 생각이 드는 한 끗 차이가 결국 타인의 평가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이런 허무하게 날아갈 허영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내면의 노예근성에서 벗어나는 것이 필요한데, 그러기 위해서는 타인에게 의지하려는 마음에서 벗어나는 것과 더불어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구심점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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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곳인지 전혀 모르고 들어온 이 험난한 곳이 곧 우리의 인생이다.

17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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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200퍼센트 공감되는 문장이었다. 우리 모두는 이곳이 어떤 곳인지 전혀 모르고 이곳에 뚝 떨어졌다. 그리고 이내 하나하나 경험하며 험난한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것이 인생이고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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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라는 것을 한번 세밀하게 살펴보라.

그 모든 것이 코미디처럼 우스꽝스럽지 않은가!

그것은 현미경을 통해 본 물 한 방울, 곧 세균들로 우글거리는 물 한 방울이나 맨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진드기로 가득 찬 치즈 한 조각과 같다. 이들 미세한 벌레와 세균들이 작은 공간에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서로 싸우는 모습은 우리에게 웃음을 자아낸다!

18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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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문장이다. 1인칭 시점이 아니라, 3인칭 시점에서 보면 세상의 모습은 그저 헛웃음 나는 블랙 코미디에 지나지 않다.


그렇기에 때론 3인칭 시점에서 세상을 관망하며, 소소한 것은 떨쳐버리고 넓은 마음으로 삶을 살아가 보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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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육신은 압력이 없어지면 터지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삶에서 고뇌와 실패와 노고의 중압이 사라지게 된다면, 인간은 끝없는 방종에 빠져 자신을 파괴하게 될 것이다.

(...)

인간에게는 항상 다소의 걱정과 괴로움과 불행이 필요하다.

19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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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게 들여다보기

우리는 갖가지 욕망에 시달립니다. 우리가 삶에서 느끼는 고통 대부분은 욕망이 충족되지 못한 데서 비롯됩니다. 인간의 욕망은 아무리 채워도 채울 수 없는 밑 빠진 독과 같습니다.


쇼펜하우어는 우리가 다른 사람을 부러워할 필요는 없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의 삶을 잘 들여다보면, 누구에게나 사는 건 고통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쇼펜하우어는 인간에게는 적당한 고통과 고난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인간이 바라는 것이 즉시 충족되는 상태는 오히려 지옥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13페이지 中)


*****


인간에게 있어 너무 풍족한 상태는 되려 방종과 타락을 가져올 뿐이라고 말하는 쇼펜하우어의 말에서 고통과 걱정, 괴로움의 존재 이유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때문에 어쩌면 이러한 불행은 인간이 스스로 자초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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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눈으로 보면 세상은 고통이지만

관조의 눈으로 보면 세상은 아름다움이다.

24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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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관점에 따라 똑같은 세상도 다르게 보이는 세상! 욕망의 눈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관조의 눈으로 볼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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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무엇을 원하는 욕망 자체가 고통이다. 고통은 욕망 자체에서 오는 것이지 욕망의 대상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욕망의 대상이 우리의 욕망을 만족시켜 줄 것처럼 믿고 있지만, 사실은 욕망을 끊을 때만 참된 만족을 얻는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욕망을 끊음으로써만 우리는 고뇌의 세계에서 해탈할 수가 있다.

26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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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다! 우리는 욕망하기 때문에 고통스럽고, 욕망하기에 늘 불행하다 느낀다. 욕망하는 대상은 아무 잘못이 없다. 그저 욕망하는 우리의 감정이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뿐이다.


만족감과 행복감을 느끼고 싶다면, 무엇을 갖고자 하는 욕망, 이루고자 하는 욕망을 끊어내면 된다. 이것이 곧 해탈이자 비움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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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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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의 필사책을 읽으며,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행복해지는 방법이 멀리 있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해지기 위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들, 마음에 새기며 오랫동안 노력해야 할 일들의 리스트를 차곡차곡 쌓아본다. 그리고 용기를 가지고 실행할 수 있는 실행력도 한 방울 떨어뜨려본다.


주변을 전혀 신경쓰지 않고 무감각하게 살아갈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나 자신이 중심이 되어, 적당히 나를 컨트롤하고 타인의 말과 행동에서 적당히 벗어날 수 있는 요령쯤은 익혀두면 좋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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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의 사서함 Letter Book 2 - 11:00 p.m - 06:00 a.m.
Archive99 지음 / 인사이드아트 / 2024년 3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소개하기에 앞서, 처음 이 책을 받던 순간을 먼저 회상해 보고자 한다. 여느 날과 같이 도착한 택배의 겉 포장지를 벗겨내자 내 손에 툭 떨어진 누런색의 포장봉투 하나.

처음에는 '뭐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봉투의 겉면에 쓰여있는 'Archive99'라는 문구도 낯설었고, 포장되어 있는 형태가 어떤 제품(사은품이나 이벤트성 제품)을 담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보통 책 제목을 기억하지 저자의 이름은 잘 기억하지 않기에 더 그랬다)

그래서 궁금증을 안고 조심스럽게 다시 한번 누런 봉투를 개봉해 보았는데, 이번에는 블랙 색상의 크라프트 단추 박스 형태가 눈에 들어왔다.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져들던 중, 다른 면을 뒤집어 보고서야 그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누런색의 포장봉투에 쓰여있던 글자는 저자의 이름이고, 검은색 크라프트 단추 박스로 밀봉되어 있던 것은 바로 <익명의 사서함> 책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모든 사실을 알고 나서 혼자 북치고 장구치던 모습이 어이없기도 하고, 선물같이 다가온 책 때문에 즐겁기도 했는데, 이 에피소드 덕분에 한동안 택배가 오면 약간 기대하게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총 6개의 챕터로 구성된 이 책은, 늦은 밤, 새벽, 그리고 아침이 다가오는 순간 사서함으로 도착한 200여 통의 진심을 담은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감성이 절정에 다다르는 시간대에 작성된 편지들이라선지 내용들을 살펴보면, 온갖 감정들이 널뛰는 것을 고스란히 목격할 수 있는데, 아침에 다시 보면 이불킥 할 것 같은 감성적인 내용부터, 끓어오르는 분노나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고스란히 쏟아내는 글을 통해 내면에 숨겨져 있는 솔직함도 엿볼 수 있었다.

더군다나 익명성이라는 도구를 활용해 남기는 사서함의 내용이라 더 가감없는 표현과 직설적인 표현들이 남겨진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본다.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털어놓기 어려운 이야기, 나만 간직해야 하는 이야기, 더 이상 전할 수 없는 무수한 이야기들은 그렇게 해가 저문 시간대에 남겨져 고스란히 사서함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하나하나 읽다 보면 사랑, 슬픔, 기쁨, 분노, 그리움, 다짐 등의 다양한 감정들을 목격할 수 있었는데, 이 감정들의 대상이 되는 사람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던 건 단연 사랑하는(혹은 사랑했던) 이에게 보내는 내용이 압도적이었다.

간혹 나 자신에게 보내거나, 부모님에게 보내는 편지들도 있었는데, 유독 이 책에 담긴 사서함들에는 과거에 연인이었거나 현재 연인, 혹은 썸 타는 이를 향해 사랑한다는 고백을 전하거나, 서운했던 것을 토로하거나, 슬픔&기쁨을 고스란히 내비치며 전하는 마음들이 많았다.

내용은 한 줄로 짤막하게 전하는 글도 있었고, 대부분은 한 면 정도 할애해 적었는데, 때때로 마주 보는 면을 모두 꽉꽉 채울 만큼 길게 남기는 글도 있었다.

저마다 주변 사람들에게 털어놓지 못하는 말들을 이렇듯 익명성을 이용해 꾹꾹 적어 내려가며, 이때 이들의 마음이 어땠을까를 생각해 보게 된다. 그리고 나의 긴긴밤, 새벽시간을 떠올려 보게 한다. 더불어 다시 아침이면 머리끝까지 쌓여있던 감정들을 툭툭 털어내고 시작하는 하루가 어땠을까 돌아보게 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저마다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상황과 감정 속에 담겨있는 이야기들이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 또다시 나만의 일기장을 펼쳐들어 비슷한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써 내려갈지도 모르겠다.

살면서 감정이 격해지거나 삶이 힘들다 느껴지는 순간, 익명이 보장되는, 혹은 나만 볼 수 있는 일기장에 감정을 써 내려가보면 어떨까? 그렇게 글쓰기로 나의 감정을 갈무리함으로써 하루를 마감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지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 책에 담긴 익명의 사서함 글 중 유독 기억에 남았던 편지글 하나를 남기며 이 글을 마무리 지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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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가는 대로 살자는 신념을 가지고 살아왔던 저인데,
시련이라는 것을 겪자, 마음이 한 번에 와장창 무너져 버리네요.

모든 사람이 살아가며 다 한 번쯤은 겪는 경험이라지만,
지나가기까지 기다리는 그 시간이 이렇게나 힘든 일이었나요?

(...)
'금방 지나간다, 한순간의 감정이다,
언젠가는 분명 잊혀진다. 이 모든 게 다 경험이다.'
주변에서는 계속해서 긍정적인 말들을 전해주지만,
정말 아무렇지 않게 되는 게 가능할지,
가능하다면 그게 과연 언제가 될지 상상도 가질 않아요.

(...)
'오늘 하루도 잘 견뎠다.'
자기 전, 스스로에게 말해줄 수 있는 유일한 위로의 문장입니다.
8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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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순간을 지나고 있을 때 혹자는 '누구나 한 번쯤 겪는 일이야' '그것 또한 지나갈 거야'라고 쉽게 말하지만, 겪고 있는 당사자로서는 그저 괴롭고 힘들 뿐이다.

그럴 때 나를 버티게 해주는 유일한 힘은 스스로에게 건네는 '오늘 하루도 잘 견뎠다'라는 말 한마디가 아닐까 싶다. 모든 순간,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말이자 공감되는 말이라 옮겨 적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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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자세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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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R코드를 통해 익명의 사서함에 접속하는 것은 물론, 편지글을 읽으며 들을 수 있는 플레이 리스트도 함께 제공하고 있었다.




각 챕터마다 사서함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리스트를 제공하고 있었는데, 기억에 남거나 간직하고 싶은 사서함의 내용은 Keep 부분에 별도로 표시해 둘 수도 있었다.



익명으로 편지를 보낼 수 있는 사서함 홈페이지와 참고할 수 있는 SNS 주소는 아래를 참고하면 된다.



*홈페이지-https://www.archive99.kr/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archive99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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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지 못하는 사람들 - 우리의 인간다움을 완성하는읽기와 뇌과학의 세계, 2024 세종도서
매슈 루버리 지음, 장혜인 옮김 / 더퀘스트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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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지 못하는 사람들'을 통해 깨달은 '읽는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한 사유"



다양한 책을 읽으며, 읽는 방식이 책마다, 장르마다, 사람마다 조금씩 다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적은 있어도 읽는 그 자체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이 책을 읽으며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이고, 인간답게 살게 해주는 장치인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더불어 읽는 행위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는데, 말 그대로 '그냥' 읽는 행위와 기억과 문해력을 바탕으로 '제대로' 내용을 파악하며 읽기의 다름에 대해서도 돌아보게 되었다.


또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자기만의 방식으로 읽는 사람들과 질병 등의 이유로 읽지 못하는 사람들을 통해 '읽는다는 것'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도 알게 되었다.


읽는다는 것이 보통 1인칭으로 이루어지기에, 타인의 읽는 방식을 알기가 쉽지 않은데, 각자의 방식으로 읽기를 통해 살고, 나아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읽기' 또한 공기처럼 우리 삶에 소리 없이 스며들어 있는 것이구나를 깨닫게 된다.



총 6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다양한 방식으로 읽는 사람들과 여러 이유로 읽지 못하는 사람들의 사례를 통해 읽기란 무엇이고, 읽는 것이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담고 있다.


덕분에 평소 나의 읽기 습관도 돌아보고, 읽는 행위가 우리 일상에 꽤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도 알 수 있었다. 언젠가부터 읽는다는 것을 당연한 것처럼 생각해왔는데, 이 또한 당연한 것이 아님을 깨우치는 계기도 되었다.


책 제목을 보고 처음에는 읽지 못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내심 궁금했는데, 책을 읽으며 꽤 많은 의미를 담고 있구나 알 수 있었다.


저자는 읽는다는 것을 가장 인간다운 열망으로 표현했는데, 어쩌면 그래서 우리는 읽는 행위를 인식하지 못하고 살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 책을 읽고 읽는다는 것, 읽고 이해한다는 것, 읽지 못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또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읽기를 시전하는 방식을 돌아보며 놀라운 읽기의 세계와 읽기의 중차대함을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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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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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는 평범하지 않은 독자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다양한 신경학적 조건이 활자를 이해하는 능력에 끼치는 영향을 살펴본다.


그리고 변칙적이고 예외적인 읽기 형태에 주목하면서 익숙해 보이는 읽기를 새롭게 생각해 보게 한다.


혹자는 일반 독자가 왜 읽기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표할 수도 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의 읽기 방식을 이해하는 일은 자신의 읽기 방식을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단계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읽기 방식을 알게 되면 이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방식으로 읽기의 본질을 성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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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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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읽기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기 위해 이 책을 집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더불어 나만의 독특한 읽기 습관이 다른 사람과 다르다고 느껴서였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읽기가 단순한 활동이라고 생각하지만 자세히 보면 단일한 공통점이 없는 다양한 활동을 포함하는 용어다. 저자는 비전형적인 읽기 방식을 한데 모아 읽기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다채로운 현상임을 밝히려고 했다.


읽기가 언어기호를 해독하고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으로 한정된 과정이라고 보는 좁은 관점을 넘어, 사람들이 텍스트와 만나는 다양한 방법으로서 읽기를 더 넓게 정의해야 한다고 전한다.


잘 읽는 독자도 독특한 방식으로 읽는 독자에게 배울 점이 있다. 일상적인 읽기 방식은 리아 프라이스의 말처럼 '잘 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이 책에 소개된 사례에서 보다시피 우리는 읽기라는 과정에 대해 아직 잘 알지 못한다.


읽기 과정은 지각 자체에서 시작된다. 독특한 읽기 방식을 살펴보면 텍스트와의 만남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읽기 과정의 여러 가지 측면에 비로소 주목할 수 있다. 사람들은 주의력, 감정, 기억, 지각, 몸, 감각, 심상을 통해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텍스트를 수용한다.


저자는 '전형적인 독자'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전하며, 저마다 독특한 방법으로 책을 읽는 수많은 독자가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이 점에서 모든 독자는 비전형적이다. 신경 다양적 독자의 사례는 읽기 방법에는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음을 알려주고, 다른 사람과 비슷하거나 다른 자신만의 취향을 되돌아보게 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자신의 읽기 과정에 영향을 끼치는 여러 가지 측면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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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난독증

인지와 해독에 문제가 있어 읽지 못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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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독증'이라는 말은 그리스어 dys-(어려움)와 lexis(언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인지와 해독에 문제가 있어서 능숙하게 읽지 못하는 어려움을 가리키는 의학 용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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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는 말하기와 달리 우리 뇌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읽기는 신경 가소성에 크게 의존하는 후천적 기술이자, 훨씬 이전에 다른 인지 작업을 위해 설계된 회로를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는 능력이다. 읽기가 수많은 감정적, 인지적, 언어적, 지각적, 생리적 과정을 동기화하며 일어나는 복잡한 행위라는 사실을 고려할 때, 읽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전혀 놀랍지 않다. 누구나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이 더 놀랍다.

66~6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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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적으로 읽기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새삼 읽기가 꽤 복잡한 행위를 통해 이루어지는 활동이라는 것을 알고 보니, 이것 또한 기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너무 일상적인 행위여서, 선천적으로 타고난 말하기처럼 읽기 또한 그러했다고 착각하며 살았던 것이다. 생각해 보면 말은 태어날 때부터 자연스럽게 했지만, 읽기는 학습을 통해 꾸준히 노력해서 얻어낸 성과물인데, 읽기라는 행위를 너무 하찮게 취급한 것은 아니었나 반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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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차이가 삶에 끼치는 영향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였다.

(...)

"난독증 환자는 적대적이지는 않더라도 비판적인 환경에서 자주 이방인 취급을 받는다. 조롱 받고 오해받고 불이익을 당하고 발전 기회를 빼앗긴다."

6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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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읽기 차이가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주목했다는 말은 곧, 이전까지는 읽기 차이가 얼마나 삶에 영향을 미치는지 알지 못했다는 말과도 같다.


따지고 보면 글을 이해하지 못하고, 해석하지 못하는 어려움을 가장 크게 겪는 것은 당사자였을 텐데, 이것으로 멸시와 차별 대우를 받은 사람들을 생각해 보면 '읽는 행위'가 등급을 매기는 수단이 되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

난독증 수기에는 필연적으로 '멍청이'라는 말이 나온다.

(...)

언어라는 암호를 해독할 수 없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순간부터 난독증 학생은 '멍청이' '바보' '백치' '천치' 같은 말을 들으며 난독증 자아를 형성한다. 치부를 들킨 학생은 반 아이들과 멀어진다. 난독증 수기에서는 아이들이 낙인에 얼마나 취약한지 짚는다. 유명인조차 이런 낙인에서 벗어날 수 없다.

8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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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독증 수기를 통해 난독증이라는 낙인이 찍히는 순간 어떤 취급을 받게 되고, 어떤 상황에 놓이게 되는지를 알 수 있다.


어쩌면 무지에서 비롯된 행동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당하는 입장에서는 얼마나 고통스럽고 피하고 싶은 일이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그저 안타깝다. 이들에게는 읽지 못한다는 것이 천추의 한으로 남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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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아이들처럼 읽지 못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바로 당신이 돌연변이나 괴물이라는 뜻이다." 읽는 법은 몰라도 주변부로 밀려났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난독증 서사의 주된 감정은 필연적으로 수치심이다. 난독증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읽기가 어렵기 때문이 아니라 불안, 어색함, 당혹감, 굴욕감 같은 불편한 감정과 얽혀 있기 때문이다.

8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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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어떤 행위를 하지 못하는 것에서 그친다면 그것은 불편한 것에서 끝난다. 하지만 집단에서 멀어지고, 돌연변이 취급을 받으며 감정이 다치는 것까지 확장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타인에게 그런 취급을 받는 것도 억울한데, 스스로 느끼는 감정 또한 얼마나 당혹스럽고 굴욕적일까 생각하면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삶에 중요한 행위인지를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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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은 읽기라는 과제 자체보다 이들에게 장애가 있다고 손가락질하는 환경 때문에 생긴다. 난독증 환자에게 다른 독자는 지옥이다.

8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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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장애가 있다고, 읽지 못한다고 손가락질 받지 않는다면 읽지 못하는 행위에 대해 크게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은, 환경은 읽지 못하는 난독증 환자들을 그냥 두지 않는다.


그래서 난독증 환자들에게 있어 다른 독자는 지옥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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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은 색안경이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증언했다.

(...)

색안경을 쓰자 읽기 능력이 곧바로 개선되었다.

(...)

색안경을 사용하자 초점 시야가 넓어지고 눈부심과 그림자가 줄었으며, 글자가 덜 움직이고, 미세한 흰색 입자나 눈이 흩날리는 듯하던 시간이 줄어 진이 덜 빠졌다.

(...)

색안경이 일부 독자에게는 분명히 도움이 됐다. 하지만 수많은 증언에도 불구하고 색안경의 이점을 과학적으로 입증하지는 못했다.

(...)

특수 설계된 렌즈가 매력적이긴 하지만, 난독증과 관련된 인지적 언어 처리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검증된 교육치료법이다.

110~11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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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독증을 해결하는 방안으로 색안경을 통해 다르게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을 제안하기도 한다. 그런데 사람마다 증상이 다르고 개선 효과가 달라 렌즈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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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자폐증

자폐증이 보여주는 읽기의 다른 감각과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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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적 읽기는 책과 만나는 모든 사람이 보이는 표면 읽기의 또 다른 형태로 이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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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독증 어린이는 빠르면 18개월이라는 매우 어린 나이에 읽기를 시작한다.

(...)

과독증 어린이는 말을 배우기도 전에 글을 읽는 경우가 많다.

(...)

과독증은 다른 형태의 문해력으로 발전할 수 있는 읽기 유형이다.

134, 14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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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증 스펙트럼 안에 과독증의 포함 여부는 분분하게 갈리지만, 일반적인 성장 기준으로 봤을 때 조금 다른 형태로 구분된다는 점에 있어서 이해가 필요한 부분이란 생각이 든다.


과독증은 읽기 능력이 과하게 발달된 형태를 말하는 것으로, 일반적인 표면 읽기와는 조금 다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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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적 읽기는 일반적인 읽기 방식과 다를 뿐 아니라 그 한계를 넘어서기도 한다.

(...)

어떤 자폐인은 사진 기억, 곧 사진에 가까운 기억을 통해 다른 사람보다 더 빨리 읽을 뿐 아니라 더 많이 기억할 수 있다.

15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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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증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 중에는 특정 능력이 유독 발달되어 있는 아이들이 있는데, 그들을 보면 읽기 방식, 기억하는 능력 등 받아들이는 능력 또한 다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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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자폐인 독자는 매체를 내용만큼 중시한다. 사진 기억은 단어 너머에 있는 것을 포착한다. 이들은 책 페이지의 접힌 모서리나 여백처럼 포착된 모든 표면을 이야기 자체만큼 잘 기억한다. 표면 읽기 독자의 한 가지 특징은 다른 사람들이 중요하지 않다고 무시하는 불필요한 요소에 집착하는 것이다.

15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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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인들의 기억능력이나 읽기 능력은 일반 사람들과는 많이 다르다. 단어 너머의 기억들을 포착하여 자신만의 방식으로 기억하고 정리하여 사진처럼 담아둔다.


이들에게 있어 기억은 표면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대상이 된다. 그래서 때로는 불필요한 것에 집착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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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면 읽기 독자는 줄거리만큼이나 물성을 중시한다.

(...)

표면 읽기 독자는 세부 사항에 지나칠 정도로 집중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교정하는 독자가 된다.

(...)

표면 읽기는 그 용어에서 알 수 있듯이 해독이나 이해가 전혀 필요하지 않다. 실제로 자폐인은 글자의 의미보다는 감각적 특성에 주목하며 글자를 기호가 아닌 형태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15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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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인들은 자신만의 의미와 인식 방법으로 글자를 기억하기 때문에 일반인들의 상식이나 방법으로 접근하면 그들의 언어는 이해할 수 없다.


그들이 내뱉는 말이나 표현력은 그들에게는 그 자체로 언어고 의미이지만, 다른 이의 입장에서는 공허한 울림으로 다가올 뿐이다. 그렇기에 일반인의 기준에서 자폐인들은 읽지 못하는 사람들로 인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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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면 읽기 독자는 읽기 방법이 얼마나 다양한지를 계속 보여준다. 앞에서 살펴봤듯 자폐인 독자는 줄거리를 파악하기 위해 책을 읽지는 않는다. 미시적인 수준에서 각각의 단어에 더 관심을 가질 수도 있고 거시적인 수준에서 한 번에 여러 권의 책을 읽을 수도 있다. 먼저 미시적인 수준을 살펴보면, 게를란드는 반짝이는 신조어를 찾아다녔다. 거시적인 수준을 살펴보면, 자폐인은 하나의 텍스트 안팎을 누비거나 한 번에 여러 가지 텍스트를 넘나들기도 한다. 

155~15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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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인들의 독서 방법에 대한 내용으로, 이들이 독서를 하는 방식은 일반인들과는 많이 다르다. 단순히 줄거리를 파악하기 위해 읽기보다, 단어 자체의 조합이나 형태에 푹 빠져 책을 읽을 수도 있고, 책 자체의 어떤 느낌이나 모양, 형태에 빠져 자신만의 기준으로 책을 읽을 수도 있다.


이처럼 자폐인들은 책을 읽되, 일반인들의 상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책을 읽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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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적 읽기 관행을 통해 책에서 일반적이지 않은 측면을 중시하는 텍스트 참여 형태를 살펴봤다. 책이 주는 감각적 만족감, 매혹적인 형태, 책에 푹 빠져 있을 때의 위안, 추출할 수 있는 데이터, 혼란스럽고 예측 불가능한 세상에서 찾을 수 있는 안정감 같은 측면 말이다. 비자폐인 독자와 똑같지는 않아도 자폐인 독자도 책과 만나며 즐거움을 느낀다.

16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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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인을 통해 우리는 읽기의 또 다른 형태를 배운다. 그동안에는 너무 당연한 듯이 내용을 파악하기 위한 읽기만 행해왔는데, 책 모양 그 자체를 읽거나 책 안에 담긴 그림이나 사진을 읽거나, 텍스트로 쓰인 글자의 형태를 읽어보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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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실독증

어느 날 갑자기 읽기 능력이 사라진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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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독증은 더 이상 손글씨나 인쇄된 언어를 읽을 수 없지만 보거나 말하는 등의 다른 일은 계속할 수 있는 신경학적 증후군이다.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이 용어는 문자 그대로 '말이 아닌' '말 없는'이라는 뜻이다. 읽기 능력 상실은 보통 뇌졸중, 종양, 머리 손상, 퇴행성 질환으로 인한 뇌 손상 때문에 일어난다.

(...)

실독증은 글을 읽을 줄 아는 성인에게 영향을 끼친다. 평생 책을 읽어온 사람이 갑자기 읽은 것을 하나도 이해할 수 없는 상태가 되기 때문에 후천적 문맹이라고도 한다. 이처럼 읽기 장벽은 문해력을 얻을 수도 있지만, 잃을 수도 있다는 뼈아픈 교훈을 준다.

16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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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독증은 어느 날 갑자기 질병이나 사고로 읽기 능력을 상실한 사람을 일컫는 말로, 후천적 문맹이라고도 불린다. 평소 책이나 글자를 잘 읽다가 어느 날 갑자기 읽을 수 없다는 것은 얼마나 큰 재앙처럼 느껴질까?


삶에 무언가 큰 것이 하루아침에 지워져 버린 것만 같은 느낌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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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 수 없게 된 사람을 설명할 용어가 마땅치 않기 때문에 이 장에서는 이런 환자를 문해력 상실인이라고 부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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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능력을 잃는다는 것은 단순히 학습한 기술을 잃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이것은 존엄성을 상실한다는 뜻이며 부분적 인격 또는 불완전한 인격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다.

(...)

읽기 능력을 잃은 사람은 더 이상 자신을 '완전한 인간'이라고 느끼지 못한다.

17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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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당연한 듯이 가지고 있던 원래 능력을 어느 날 갑자기 상실한다는 것은, 스스로 불완전함을 느끼기에 충분한 상황이다.


그렇기에 스스로 글자를 읽거나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은 곧 존엄성의 상실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냥 무언가 학습한 기술을 잃은 것으로 치부하기에는 '읽기'는 너무 큰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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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하게도 읽지는 못하지만 쓰기는 할 수 있는 환자, 곧 쓰기 장벽은 없고 읽기 장벽만 있는 환자를 만났다. 이 질환은 실서증(뇌 특정 부위의 이상으로 글씨를 쓰지 못하는 질환) 없는 실독증 또는 순수 실독증으로 불린다.

(...)

글자는 읽을 수 있지만 단어는 읽을 수 없는 환자(글자맹 아닌 단어맹)도 있었으며 그 반대의 경우(단어맹 아닌 글자맹)도 있었다.

182~18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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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 수는 있는데, 읽지는 못한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앞을 보지 못하는 실명하고는 또 완전히 다른 느낌이라는 생각이 든다.


읽는 것과 쓰는 것은 한 묶음인데, 둘 중 하나의 상실이 다른 쪽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감히 짐작도 되지 않는다. 읽고 이해하지는 못해도, 기계처럼 들리는 말을 그냥 의미 없이 쓰는 것으로 이해하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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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사람은 문맹에서 문해로의 발전이 일방향적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사고방식을 고려하면 평생 읽을 수 있다가 갑자기 읽을 수 없게 되는 일이 왜 트라우마가 되는지, 문해력 상실 상태에서 오는 독특한 고통은 무엇인지 이해가 될 것이다.

19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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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와 쓰기, 그리고 이해하는 것을 보통 하나의 꾸러미라고 생각하기에 이것 중에 하나를 잃는다는 것은 크나큰 상실이자 고통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갑자기 다가온 읽기의 상실은 청천벽력과도 같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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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독증은 읽기가 지적 활동일 뿐 아니라 생리적 활동이며, 미세하지만 결정적인 수많은 신체적 교환이 제대로 이뤄져야 하는 체화된 행동이라는 점을 드러낸다. 주의력, 시각, 언어 처리 등 읽기 과정의 어느 단계에서라도 문제가 생기면 읽기 효율성이 저하되거나 심지어 읽지 못하게 될 수 있다. 따라서 읽기 장벽은 우리에게 읽기란 어떤 것인지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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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장벽은 누구의 삶에나 끼어들 수 있다.

19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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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하게 독서의 과정만 생각해 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독서 중 주의력이 흐트러지거나 시각적인 문제가 발생하는 등 읽는 데 어떠한 문제가 발생하게 되면 우리는 읽는 효율성이 급격히 떨어지거나 아예 읽지 못하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이처럼 읽지 못하는 상태, 즉 실독증은 단순히 읽지 못하는 것을 뛰어넘어 우리 삶을 뒤흔드는 문제로도 생각할 수 있다. 더불어 이것은 언제든 우리 모두에게 다가올 수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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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공감각자

같은 페이지를 다르게 느끼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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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각자는 책의 내용 자체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감각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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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각자는 다른 독자들은 느끼지 못하는 감각질을 경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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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자면 공감각적 측면에서 독자들은 모두 같은 책을 보는 것이 아니다.

21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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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들은 느낄 수 없는 것을 보고,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이들을 우리는 공감각자라고 한다. 이들은 책의 내용에서는 전혀 찾아보기 어려운 감각들을 선연하게 느끼며 오감으로 책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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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독자들과 공감각자들의 가장 큰 차이는 다른 사람이 볼 수 없는 색을 지각한다는 점이다. 공감각자는 단어를 읽거나 듣거나 그저 떠올리기만 해도 머릿속에서 색을 본다. 또한 이런 색을 정밀하게 묘사한다.

21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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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각자들은 다른 사람이 볼 수 없는 색을, 자신만의 인식 방식으로 뚜렷하고 정밀하게 보고 묘사할 수 있다. 이것이 보통의 독자들과 다른 차이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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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각자는 일반 독자와 같은 글자를 보는 동시에 자신만 지각할 수 있는 색채 효과를 지각한다. 후광, 윤곽, 얇은 막, 배경 등이다.

21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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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각자들이 느끼는 색은 단순한 컬러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 속에 존재하는 후광, 윤곽, 얇은 막, 배경 등 다양한 질감과 형태로 나타난다.


영화나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버라이어티 한 입체감이 어쩌면 이들 눈에 펼쳐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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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각에는 명확한 경계가 없다. 색을 보는 경이로운 경험이 책 안팎에서 모두 일어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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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각자는 책을 읽을 때 글자에 다양한 색이 덮여 있다고 지각하는 서지학적 이중의식을 경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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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각자는 일반적인 사람과 달리 알파벳 전체를 시각화할 수 있다. 일부 공감각자는 공간에 알파벳이 배열된 심상이나 알파벳의 형태를 습관적으로 떠올리며 스캔한다.

221~22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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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현실에서 구현할 수 있는 것은 입체카드 정도다. 그런데 공감각자들은 이보다 더 뚜렷하고 현란한 형태의 색과 표현을 책 안팎에서 보고 있는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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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각자들의 다양한 사례들은 임의의 글자 조합에 대한 엉뚱한 반응 정도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이런 반응이 인간관계에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이를테면, 아이의 이름을 지을 때 부모가 느끼는 색의 이름에 맞춰 이름을 짓는다거나, 색이 약한 이름을 가진 사람에 대해서는 편견을 갖게 되는것, 혹은 자신이 조화로운 색을 나타내는 이름을 선호하는 것으로 '언어적 인종차별'을 가지기도 한다.


이처럼 그 사람을 보는 방식에 영향을 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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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살펴봤듯 공감각은 텍스트를 수용할 때 우리가 알아 차라지 못하는 역할을 하며 기쁨부터 혐오감까지 다양한 반응을 일으킨다. 공감각은 읽기를 돕거나 방해할 수 있으므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많은 경우 색은 공감각자가 텍스트에 집중하는 데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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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과도한 연상작용은 상상 속에서 읽을 때 읽기 장벽을 만들어낼 잠재적 위험이 있다.

228~22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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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란함과 화려함을 동반한 입체적 시각 구현이라는 장점 속에도 나름의 단점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 공감각자가 컬러에 대해 가지고 있는 느낌에 따라 인간관계에 영향을 주기도 하고, 특정 컬러를 가진 사람에 대해 편견을 갖거나, 혹은 특정 언어 혹은 컬러를 선호하는 언어적 인종차별을 하기도 한다는 점은 놀라우면서도 새삼스럽지 않게 다가온다.


또 이러한 능력이 때로 텍스트를 깊이 인식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과도한 연상작용으로 인해 오히려 방해요소로 작용한다는 점을 통해 무엇이든 장단점이 있음을 알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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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해 보이는 독자도 실제로는 A를 보고 녹색, 차가운 촉감, 불쾌한 맛을 동시에 느끼는 다중 공감각자일 수 있다. 처음에는 이런 반응이 이상하게 보이더라도 공감각은 거의 모든 사람이 인식하는 심상의 극단적인 형태일 뿐이다. 따라서 마음속에서 지각이 해석의 한 형태로 작용하는 공감각자를 이해하면 모든 독자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을 더욱 정교하게 파악할 수 있다.

(...)

신경 다양적 독자의 증언은 신경전형성을 넘어서는 폭넓은 읽기 경험은 물론 읽기라는 행위의 풍부한 감각적, 인지적 복잡성을 드러낸다. 같은 페이지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23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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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의 행위를 단순히 줄거리 파악하기로 한정 짓기보다, 다양한 감각을 활용한 읽기 방식을 차용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 같다. 나만이 느끼는 촉감, 컬러, 이미지 구현 등을 통해 4D 형태로 페이지를 읽어나간다면, 완전히 다른 이야기로 다가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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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환각과 심상

읽기의 위험한 동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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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각 읽기는 서사 이미지를 받아들이고 변환하는 마음의 역할을 드러내며, 독특한 단어 지각부터 글자, 단어, 문장, 책, 심지어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유령 독자까지도 보게 된다.

24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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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병은 '가장 골치 아픈 광기'라고 불렸던 치명적인 정신질환으로, 조현병이 발생하면 인지장애, 정서적 위축, 환각 등이 나타나 책에 집중하기 어려워진다.

266~26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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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느끼고 보는 것은 '읽는'것을 방해한다. 또렷이 하나에 집중할 수 없기에 이들에게 읽는 행위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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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 환각은 마음 읽기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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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살펴볼 환각 독자는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텍스트를 본다. 뇌의 시각 피질, 특히 읽기와 관련해 시각적인 단어 형태를 인식하는 영역이 과도하게 활성화되면 개별 글자가 보이거나 벨사살왕의 연희 이야기처럼 벽에 전체 문장이 나타나는 등 어휘 환각이 일어난다. 해독이 아닌 선행 부호화(해독할 글이나 자극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병리적 정신 과정)라 할만한 텍스트 환각은 적어도 독자의 머리 바깥에는 읽을 것이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도 읽기가 가능함을 보여준다.

28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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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보는 환각은 스스로 만들어내는 자극에 의해 나타나는 현상으로, 남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무언의 텍스트가 보이는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텍스트를 자신만 볼 수 있기에 오히려 주변을 살펴보거나 인지하는데 오히려 둔감해질 수 있는 여지도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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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각이 보이는 일부 독자는 허구와 현실 세계를 구분하는 것을 어려워하며, 뇌가 텍스트 해석에 끼치는 영향을 보여준다. 모든 독자가 자신이 읽고 있는 내용이 진짜인지 확신하지는 못한다.

28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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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각이 만들어내는 자극이 반복되다 보면 허구와 현실을 구분 짓기 매우 어려워질 것이다. 때문에 환각 속에 자리하는 텍스트 또한 진짜 여부를 가리기 어려워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읽는 것, 이것을 과연 읽는 사람이라 칭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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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치매

‘나’의 바탕이 되는 기억과 서사가 사라진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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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나 알츠하이머병 같은 뇌질환을 겪는 사람은 책에 집중하거나 정보를 유지하기 어려워한다. 단기 기억력 감퇴, 집중력 저하, 언어능력 저하를 동반하는 점진적인 인지저하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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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기에 장애를 일으키는 가장 큰 원인은 치매에 걸리면 전반적인 인지저하로 이어지는 다양한 증상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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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를 유발하는 원인은 여러 가지지만 가장 흔한 원인은 알츠하이머병이다. 이 질병은 끊임없이 진행되며 결국 인지력을 모두 파괴하는 신경퇴행성 뇌질환이다.

29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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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에 꼭 필요한 요소들을 점진적으로 잃어가는 치매나 알츠하이머병을 앓게 되면 책에 집중하거나 읽는 것이 사실상 어렵다.


다른 질병보다 왜 유독 읽기가 어려운지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읽기의 구조를 이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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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장애는 우리 행동이 기억에 얼마나 많이 의존하는지, 뇌기능에 변화가 일어나면 이런 능력이 얼마나 쉽게 사라지는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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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지각하고 생각하고 느낀 것을 기억으로 바꾼다. 곧 부호화 단계다. 우리는 부호화된 경험은 기억하고 나머지는 잊는다. 따라서 대부분 사람에게 책을 읽는다는 것은 문장을 해독하고 기억에 부호화해서 저장하는 과정 전체를 의미한다.

293~29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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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라는 요소가 사라졌을 때 처할 수 있는 위험요소가 생각보다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억을 통해 인지하고, 인지한 것을 바탕으로 우리는 사고하고 행동한다.


그런데 기억장애가 발생하는 순간, 이 모든 과정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도 매우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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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환자의 읽기는 전체 서사를 이해하는 것부터 한 페이지, 문장, 구문에 빠져들어 그저 계속 읽어나가는 것까지 다양하다. 책에 얹힌 글자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손가락으로 글자를 따라가거나, 이해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그저 책을 곁에 두는 것에 만족하기도 한다.

29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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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의 중증도에 따라 전체 서사를 이해하고 연결 짓는 정도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느 부분에서 읽기가 중단될지는 시간문제일 뿐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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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상실은 읽기를 어렵거나 심지어 불가능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렇다고 정반대 상황이 낫다는 것은 아니다. 범상치 않은 기억력 역시 읽기를 방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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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기억은 읽기 능력에 해를 입히기도 하는데, 과잉기억 증후군이라는 질환은 오늘날 매우 뛰어난 자전적 기억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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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질병의 경우 멈춤 버튼 없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재생되는 홈 비디오와 비슷하다. 그래서 끊임없이 흐르는 기억 때문에 개인적이지 않은 다른 문제에는 집중하기가 어렵다.

299~30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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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상실과 기억과잉 모두 읽기에는 그다지 적절치 않는 상황이다. 기억상실은 머릿속에 남는 것이 없어 더 이상 전진할 수 없고, 기억과잉은 방해요소가 너무 많아 더 이상 전진할 수 없다.


이러나저러나 기억은 부족해도, 과해도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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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환자만 읽은 내용을 잊지는 않는다. 그리스어로 '기억이 없는'이라는 뜻의 기억상실증을 겪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다. 하지만 치매가 여러 가지 인지 영역에서 결함을 일으키는 반면 기억상실증은 기억에만 영향을 끼친다. 기억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사람은 책을 읽을 가망이 없어 보인다.

(...)

하지만 기억상실증도 기억을 완전히 지우지는 못한다. 기억상실증에 관한 초기 연구에 따르면 기억상실증에 걸려도 말하기, 쓰기, 읽기 능력은 유지된다. 또한 개인적 경험은 잊어도 사실 정보와 기술은 기억한다. 다시 말해 기억상실증이 항상 3장에서 살펴본 실독증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30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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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잃는 것에 있어 치매환자와 기억상실증은 엄연히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치매환자로, 이들은 단순히 기억만 잃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억상실증은 기억만 없는 것으로 다른 것에는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런데 치매환자의 경우 인지 영역까지 손상을 입게 되면서 읽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진다.


그렇기에 '기억을 잃는'것에도 상황에 따라 읽기 능력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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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상실증에 걸려도 소설 읽기를 완전히 포기할 필요는 없다. 물론 줄거리가 기억나지 않는다면 긴 서사를 따라가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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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움을 위한 읽기까지는 기대하기 어렵겠지만 기능적 문해력은 기억상실증 환자에게 여전히 필수적이다.

305~30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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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상실증에 걸려도 어느 정도 읽기는 가능함을 알 수 있다. 물론 기능적 문해력은 필요하겠지만, 단편 책을 통해 반복 학습하면 회복할 수 있는 여지는 충분하다고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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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력이 저하된 사람이 읽기를 확고한 취미로 삼기란 분명히 어렵다. 치매 환자는 주의력 저하, 단기 기억력 저하, 대화를 어려움 등을 겪는다. 모두 읽기에 도움이 되지 않는 증상이다. 치매는 한 사람이 읽기 같은 평소 좋아하던 활동에서 멀어지게 하고 삶에 악영향을 끼친다.

30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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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환자의 읽기를 통해 기억력과 인지력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낀다. 읽기에 필요한 요소들을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전체적인 맥락을 파악하기 위한 기억력, 내용을 인지하고 이해할 수 있는 인지력이 있어야만 책 한 권을 제대로 읽을 수 있음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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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자를 읽을 수 없는 문제가 대수롭지 않게 느껴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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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금까지 살펴봤듯 독자 스스로가 활자 읽기를 기계적인 기술로 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원래 읽을 수 있었던 많은 독자는 읽기를 계속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중요한 속성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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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책을 읽어온 사람은 읽을 수 없게 된 자신의 새로운 정체성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한다.

323~32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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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를 온전히 누릴 수 있었을 때는 읽기의 중요성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잃어버린 후에는 읽기가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는지, 삶의 존엄성을 지켜주는 하나의 매개체였는지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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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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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독증, 과독증, 실독증, 공감각, 환각, 치매 등 여섯 가지 읽기 장벽을 통해 반대로 여러 가지 읽기 방식을 살펴볼 수 있었다. 평소 읽기의 방식에 대해 단순하게만 생각했는데, 막상 이렇게 하나하나 자세히 살펴보고 나니, 오히려 그 어떤 것보다 다변화를 추구할 수 있는 영역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 읽기라는 것이 그저 거저 얻어지는 것도, 단순하지만도 않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덕분에 한 권의 책을 제대로 마스터하기 위해 어떤 것이 필요하고, 어떤 감각들을 잘 활용해야 하는지도 알 수 있어 유익한 시간이었다.


그저 줄거리나 텍스트, 기호를 해석하고 이해하는 선을 넘어, 오감을 이용하여 텍스트와 만나면 보다 풍성하고 다채로운 경험은 물론 나만의 읽기 방법을 완성할 수 있음도 깨달았다.


너무 익숙해서, '읽는 존재'로서 산다는 것의 의미를 미처 자각하지 못했는데, 읽지 못하는 사람들의 사례를 통해 읽을 수 있다는 것의 기쁨과 중요성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된다.


이를 계기로 앞으로는 읽는 시간을 더 즐기며 다채로운 읽기 방식을 도입해 보려 한다. 또 한 명의 별난 독자로, 읽기를 탐구하며 살아가 보면, 더 넓은 관점의 읽기가 가능해지지 않을까 하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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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가게 글월
백승연(스토리플러스) 지음 / 텍스티(TXTY)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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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며 문득 오래전에 글로 나누던 학창 시절의 모습이 떠올랐다. 한창 아날로그적인 감성이 가득하던 그때, 편지글을 주고받으며 생각과 마음을 나누고, 교환일기를 통해 작고 사소한 일상을 나누며 우정을 키웠던 그 시절.


그 묵직했던 편지들을 이사할 때도 빠뜨리지 않고 가지고 다닐 만큼 꽤 소중히 했었는데, 이제는 모두 정리하고 남아있는 건 하나도 없다. 물건으로 남겨두기 보다 이제는 마음속에 추억으로 간직하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했기에 몇 년 전 모두 정리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즉각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수단이 많아져 편지가 많이 사라졌지만, 그럼에도 한 번씩 집배원 아저씨를 통해 우편물이 날아들 때면 그때의 그 반가운 마음이 떠올라 여전히 설렘으로 다가온다.


누군가에게 글을 쓴다는 것, 편지를 통해 조금 느리게 마음을 전한다는 것의 의미를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떠올려 본다.



편지가게 '글월'에서 아르바이트생으로 근무하는 효영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 이야기는 실제 존재하는 '글월'이라는 가게에 소설적 허구 내용을 입혀 사실이 아니지만 사실인 것 같은 느낌의 전개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를테면 소설 속에 등장하는 펜팔 시스템을 예로 들 수 있는데, 글월에서는 펜팔 시스템을 통해 모르는 사람끼리 펜팔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이를 소설 속에 공개적으로 오픈하기 위해 펜팔 응모글을 모았고 여기에서 선정된 편지글을 소설 속에 녹여내면서 자연스럽게 글월의 시스템을 보여주었다.


단순히 문구를 파는 가게라고 하기에는 조금 부족하다 느껴지는 '편지'를 위한 공간, '글월'에서 쓰는 즐거움과 공간이 주는 편안함을 느껴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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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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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월 가게 사장 가족>

■강선호: 35세 / 글월의 사장

■은소희: 35세 / 선호 아내 / 대기업 연구원

■강하준: 7세 / 아들

■강하율: 1살 / 딸


<주요 등장인물>

■우효영: 28세 / 글월 아르바이트생

■우효민: 33세 / 효영의 언니


<글월 가게 손님들>

■차영광: 29세 / 웹툰 작가 / 글월의 맞은편 연화 아파트 5층에 산다

■성민재: 39세 / 대기업 회계사 / 소설가를 꿈꿨지만 현실적인 선택을 했다

■권은아: 46세 / 연희동 호박 부동산 사장 / 글월 1층 빵집 사장의 아내

■금원철: 58세 / 연희 초등학교 교장 / 아내를 병으로 떠나보내고 종종 글월에 오는 단골손님

■정주혜: 25세 / 연희동 우체국 직원

■문영은: 26세 / 싱어송라이터 / 자기의 이름을 건 라디오 프로그램을 운영 중 / 본가인 연희동에 왔다가 글월을 발견하게 됨

■송은채: 28세 / 효영의 대학 동기로 배우를 꿈꾸며 고군분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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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월의 의미와 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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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월의 의미: 편지를 높여 부르는 말!


■글월에서 쓰는 업무일지

사진 설명을 입력하세요.

온라인으로 공유하며 그때그때 상황을 서로 확인한다. 여기에는 날짜, 날씨, 근무자, 매출, 방문자수, 재고, 필요한 비품, 특이사항 등을 기재하고 있다.


■펜팔 서비스

글월은 일정 금액을 내고 펜팔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데, 익명의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누군가의 편지를 가져갈 수 있는 시스템이다.


나이, 성별 상관없이 다양한 사람들과 마주할 수 있어 신선함을 느낄 수 있는 동시에, 모르는 이에게 내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다는 점에서 되려 자신이 위로를 받기도 한다.


소설을 읽다 보면 나만 알 수 있는 펜팔 내용과 그들이 직접 남긴 손글씨를 만나볼 수 있는데, 이것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기자기한 손글씨를 비롯해, 그림을 그려 넣거나 딱 떨어지는 글씨를 통해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하며 읽는 재미가 있다.


■펜팔 답장 알림 서비스

사진 설명을 입력하세요.

펜팔의 답장이 도착하면 문자를 통해 알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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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월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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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희동 글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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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을 입력하세요.

창에 담긴 아늑함을 보고 있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더 이상 불안하거나 초조하지 않았다.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것만으로도 잘하고 있다는 위로를 받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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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 풍경만큼이나 효영의 마음에 들어온 것이 또 하나 있었다. 바로 잘 익은 살구색 같은 글월 내부의 페인트 색이었다.

2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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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영은 봄날 글월의 아침을 사진으로 담았다. 전면의 창을 향해 한번, 측면의 창을 향해 한 번. 초봄의 맑은 하늘을 보고 있으면 햇살에도 향이 느껴졌다. 잘 말린 이불에서 나는 보드라운 향, 곱게 빗은 어린아이의 정수리에서 나는 향, 새싹이 돋기 시작하는 보들보들한 흙에서 나는 향. 달콤하거나 상큼하거나 아무튼 그런 향.

3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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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성수동 글월

현대적 느낌의 성수동 글월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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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 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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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보다 똑똑하고 자랑스러웠던 언니 효민이 사기를 당하면서 집안의 가세는 급격히 기울게 된다. 학원을 차리자는 동료의 말에 온 가족의 돈을 끌어다 투자했지만, 사기를 당하면서 언니는 엄마에게 전화해 잘 있다는 말만 남긴 채 잠적하게 된다.


때문에 뒤처리는 가족이 온전히 질 수밖에 없었는데, 아빠는 주 6일을 운영하던 세탁소 일을 일요일까지로 늘리고 엄마는 외삼촌에게 빌린 돈을 갚기 위해 반찬 배달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된다. 여기에 더해 설상가상으로 엄마는 배달을 하다 계단에서 넘어지면서 고관절을 다쳐 수술까지 하게 된다.


이에 효영은 엄마의 병간호를 위해 영화 촬영을 포기하면서 영화감독의 꿈도 접게 된다. 언니의 증발로 효영 역시 자기 작품에 대한 확신이 사라진 것이다.


그때쯤 언니의 편지가 집으로 오기 시작했는데, 봉투에는 언제나 '효영에게'라는 글씨가 적혀있었다.


효민의 편지는 짧게는 2주에 한번, 길게는 한 달에 한 번꼴로 왔는데, 효영은 한 번도 열어보지 않았다. 하지만 아빠는 세 통의 편지가 쌓이자 아예 효영의 책상 위에 그것을 올려두었고 효영은 봉투를 반으로 접어 휴지통에 버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하지만 언니는 계속해서 답장도 받지 못할 편지를 보냈고 다섯 번째 언니의 편지가 왔을 때 효영은 언니의 편지를 피해 스물여덟 살에 첫 가출을 감행하게 된다.


그렇게 서울로 올라온 효영은 대학 동문인 선호의 도움으로 그가 운영하는 '글월'에 아르바이트생으로 일하게 된다. 편지라면 지긋지긋했던 효영이 편지 가게인 '글월'에서 일하게 된 데에는 사실 '글월'이 편지를 뜻하는 말이란 걸 몰랐기 때문이다.


어찌 됐든 그렇게 시작된 아르바이트는 예상보다 순조로웠고 글월에서 차곡차곡 시간을 채워갈수록 효영은 그 공간을 좋아하게 된다.


그렇게 계절을 하나씩 하나씩 보낼쯤 부모님을 통해 언니 효민의 소식을 조금씩 듣게 되는데, 그녀가 현재는 강원도 쪽에서 학원 강사로 일한다는 것과 그곳의 주소까지 어느새 알게 된다.


답장 생각이 없던 효영이지만, 어릴 적 둘이 함께 했던 순간의 사진을 발견하게 되면서 이 사진을 웹툰 작가 영광에게 부탁해 그림으로 그려 언니에게 보내는 것으로 답장을 대신하게 된다.


그러다 어느 날 술을 먹고 내친김에 속마음을 솔직하게 내려 적은 편지가 언니에게 발송된 것을 알게 되면서 편지를 회수하기 위해 다급하게 언니가 있는 속초로 영광과 함께 가게 된다.


그곳에서 이미 편지를 개봉해 읽고 있던 언니를 발견하게 되고 이 만남을 계기로 둘은 묵혔던 앙금을 풀게 된다. 이후 속초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는 영광으로부터 그들의 가족사와 동생 상현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고, 그렇게 효영과 영광은 가까운 사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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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에는 효영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펜팔을 주고받는 사람들의 남모를 사연과 글월에 방문하는 단골손님들의 이야기도 함께 만나볼 수 있는데, 편지가 주는 따뜻함과 감동도 함께 느낄 수 있다.


모르는 익명의 누군가에게 전하는 오늘, 이 순간의 진심과 나의 기분들이 편지에 담겨 전해지면서, 그것이 또 다른 이에게 위로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편지가 주는 매력을 다시 한번 상기하게 된다.


여기에 더해 가까운 이에게는 전할 수 없는, 날것 그대로의 속마음을 모르는 이에게 털어놓는다는 관점에서는 속 시원함과 대나무숲의 역할도 하는듯하다.


지금은 많이 잊힌, 편지라는 매개체를 통해 소통할 수 있는 '글월'이라는 공간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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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과연 수익을 낼 수 있을까? 오래 지속 가능할까?라는 의문을 제기하게 만들었던 '글월'은 점차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성장하기 시작하는데, 이와 더불어 함께 성장하는 효영의 모습도 만나볼 수 있다.


매거진 <HIM>이라는 군인 잡지 에디터 이지상의 눈에 띄면서 선호는 잡지 인터뷰를 하게 된다. 또 본가인 연희동에 들렸다가 글월을 방문하게 된 싱어송라이터 문영은의 라디오에 펜팔의 사연이 소개되면서 더 큰 이목을 끌게 된다.


여기에 더해 꾸준히 인스타그램을 통해 소통했던 것이 소소하게 입소문을 타면서 젊은 세대들도 이곳에 들려 편지지를 사거나 펜팔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방문객은 물론 매출도 늘게 된다.


그렇게 글월은 동쪽 성수동에 다른 컨셉의 2호점을 내게 되면서 승승장구하게 된다. 하루 앞도 짐작할 수 없었던 효영은 정직원이 되고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내면서 팝업스토어를 성공시키는 것은 물론, 성수동 글월에서 근무하면서 이제는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자신의 일을 즐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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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남는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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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영은 문득 누군가의 옆에 무해하게 남는다는 것이 귀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도록 옆에 있어도 괜찮은 것들은 결국 나를 바꾸려는 의지가 없는 것들이었다.

13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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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이 흘러도 오래도록 내 옆에 남아 있는 것들을 살펴보면,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고 받아들여주는 것이 대다수다.


그렇기에 그것들은 귀하고 무해한데, 생각보다 많지 않아서 서글픈 한편, 가지고 있는 것들만이라도 오래도록 함께 할 수 있기를, 하고 바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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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하늘로 보내고 나니까 혼잣말이 많아지더라고요. 근데, 혼잣말은 너무 공허해서 편지를 쓰기 시작한 거예요. 애써 나온 말이니까 정착한 곳이 있으면 했거든요. 편지에라도요."

15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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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것을 잃고 난 뒤의 공허함은 무엇으로도 붙잡기 어렵다. 이에 원철은 그 마음을 편지에 고이 담아 당사자가 아닌 익명의 누구에게라도 닿기를 고대한다.


그렇게 '진심'이 담긴 어떤 울림이 많은 이들에게 전해지며, 그 파문은 생각보다 널리 퍼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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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글이라는 건 과거라는 우물에서 길어 올린 물 한 동이라는 재료가 필요했다. 서툴고 부끄러워도 물 한 동이를 퍼내야 다음 할 말이 차올랐다. 그렇게 과거라는 우물을 정화한 사람은 현실에서도 자기 마음을 투명하게 볼 줄 알았다.

20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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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라는 건 무에서 무언가를 창조하기 참 어려운 수단이라는 생각이 든다. 조금 서툴고 부끄러워도 추억하고 경험한 과거의 무언가를 떠올려야만 결국 다음 할 말이 이어진다는 점에 있어 나를 돌아보는 거울이자, 또 다른 나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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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편지가 화답을 받는 건 아니었다. 펜팔 편지를 집어 가서 답장하지 않는 경우도 흔했다. 모르는 사람과 반복적인 관계를 맺는다는 게 피로한 현대인들이 여전히 많았다. 익명인 사람과 편지를 나눈다는 건 조금쯤 설레고 조금쯤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안개를 걷는 것과 비슷했다. 나와 결이 맞는가, 나의 고민이 진심으로 전해지는가. 이렇게 각자의 기준으로 안개를 걷어 가며 인연을 만드는 것이었다.

21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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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익명의 누군가와 펜팔을 주고받는다는 건, 과거 펜팔을 하며 느꼈던 감정과는 조금 결이 다르다고 느낀다. 특히 반복적인 관계를 맺으며 피로함을 느낀다는 점에 있어 귀찮음과 부담스러움이라는 감정이 왠지 추가된 기분이다.


과거 내가 느꼈던 것처럼, 펜팔이 다시금 약간의 설렘과 조금쯤 걱정스러운 마음이 버무려져 안갯속을 걷는 미스터리한 스릴과 재미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도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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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 담긴 아름다움은 종종 무언가에 가려지기 마련이잖아요. 피곤함과 권태, 염세적인 마음 같은 걸로요. 영광 씨가 만드는 창작물은 딱딱하게 굳은 마음을 풀어 줘서, 사람들이 다시 주위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게 도와줄 거예요."

24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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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예술 하는 사람들이 느낄 감정을 대변하는 말이자, 이들을 잘 다독여주고 위로해 주는 문장이라는 생각이 드는 글이라는 생각에 가져와봤다.


과학의 발달로 어느 무엇보다 완벽하게 창조될 것들을 두고 내가 왜 필요한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면, 효영의 말에서 존재의 이유를 다시금 상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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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영아, 인간관계는 이 정물하고 똑같아. 자기가 서있는 위치에서 보이는 면이 다라고. 인간한테 투시 같은 능력은 없어. 그러니까 그런 걸 초능력이라고 부르는 거지."

"무슨 얘기가 하고 싶은 건데."

"그러니까, 말 안 하면 모른다고."

31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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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에도 '말 안 해도 다 알겠지'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큰 오산이라 말하고 싶다. 관계는 사람은 말하지 않으면 제대로 이어지지 못한다. 내 속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로지 말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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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뭘 하고 싶은지만 잊어버리지 않으면 돼. 그럼 좀 더디고 쩔룩대도 다 제 갈 길 가더라고."

37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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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인생을 헤매는 이유는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기 때문이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고 있다면, 조금 늦더라도 결국 끝에 도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바로 내가 뭘 하고 싶은지를 먼저 찾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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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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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만이 주는 따뜻함이 있다.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쓰며 마음을 전하는 글에서, 위트가, 사랑이, 웃음이, 슬픔이 배어있다.


메일이나 메시지, 톡으로 전하지 못하는 감성이 편지를 통하면 배가 된다. 그래서 손글씨로 전하는 편지는 귀하고 또 낯설면서 새롭다.


쓰는 펜의 종류에 따라, 컬러에 따라, 종이의 재질에 따라 달라지는 멋은 어떤 것도 흉내 낼 수 없다. 그래서 어쩌면 나는 그토록 오랫동안 수많은 편지들을 소중히 간직했었나 보다.


이제는 손글씨를 직접 쓸 일이 거의 없어 필체마저 사라졌지만, 이 책을 계기로 다시 손글씨를 연습해 봐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의 진심과 감상을 붙잡아두기 위해, 나를 되돌아보기 위해 나쁘지 않은 선택지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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