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민박집 서사원 일본 소설 2
가이토 구로스케 지음, 김진환 옮김 / 서사원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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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식간에 홀딱 빠져드는 일본식 판타지 세계를 만났다. 요괴라고 하면, 괴상하게 생긴 무서운 존재라는 생각이 들기 마련인데, 이 책에서 만난 요괴들은 캐릭터는 강하지만 어쩐지 정감이 간다.


전통 일본식 가옥에 일본풍의 배경, 여기에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자주 등장하는 요괴까지! 읽는 내내 몽환적이면서 아름다운 일본의 시골 풍경 속을 노니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더해 기묘한 민박집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의도치 않은 기상천외한 모험을 떠나게 될 것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통로와 미로 같은 공간을 한없이 걷고 또 걸으며 무한의 숨겨진 ‘아야시 장'의 내부를 탐색할 수 있을 것이다.



총 4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요괴 판타지 소설로, 요즘은 흔하게 볼 수 없는 소재라 참신함과 신선함이 느껴진다. 낡은 목조건물을 기준으로 인간과 요괴의 세상이 구분되는 이 기묘한 ‘아야시 장'이라고 부르는 민박집은 그래서 더 특별하게 다가온다.


처음에는 요괴들로 구분되는 이들의 묘사 내용을 보고 움찔하기 바빴는데, 철문 저편에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 또한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구나 싶어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또 저주받은 눈 때문에 사람들과 멀리하고 외톨이처럼 지냈던 '슈'가 민박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조금씩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희망을 엿볼 수 있었다.


덕분에 민박집의 주인인 '스에노'의 바람처럼 어쩌면 조만간 사람과 요괴가 공존하는 날도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품을 수 있게 되었다.


성장 스토리는 물론 따뜻함과 감동까지 전하는 이 이야기를 통해 색다른 여름밤의 정취를 느낄 수 있기를 바라며, 이제 매일 기상천외한 일들이 벌어지는 '아야시 장'으로 모험을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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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및 등장인물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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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박집 '아야시 장'

-사람과 요괴, 바깥세상과 안쪽 세계를 이어주는 이상한 민박집

-민박이 있는 이 도시는 요괴 만화의 일인자인 미즈키 시게루(일본 요괴 만화의 창시자)의 고향으로, 그 인연을 계기로 요괴를 지역 관광 상품에 십분 활용하고 있음.


■야모리 슈

-상대방을 노려보면 몸 상태를 망가뜨리는 '저주의 눈'을 가진 소년

-어릴 때 부모님이 돌아가시면서 먼 친척 부부와 함께 지냄.

-평소 선글라스를 쓰고 다니며, 이런 탓에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주로 홀로 생활함

-고등학교 진학을 계기로 아야시 장으로 이사를 오게 됨


■야모리 스에노

-아야시 장의 사장이자 슈의 친할머니

-요괴 같은 웃음 소리를 내며 웃는 게 특징.


■쿠스노키 미노리

-슈와 같은 고등학교에 다니는 선배

-슈에게 해체 직전인 요괴 연구 동호회에 들어올 것을 권유한 것을 계기로 인연을 이어가게 됨


■코노스케

-귀여운 요괴 햄스터로 슈의 조력자


■손츠루 님

-정체불명인 아야시 장의 수호신

-미궁의 복잡하게 뒤얽힌 구조는 손츠루 님의 힘으로 만들어진 구조


■선생님

-아야시 장에서 장기 숙박 중인 만화가.

-하츠코이 키라리라는 필명으로 활동 중.

-모두 그를 선생님이라 부른다.

-20대 중반 정도의 어깨 길이 머리카락, 완벽한 이목구비, 180센티미터의 큰 키를 가지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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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살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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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부모님이 돌아가시면서 먼 친척 부부와 함께 지내던 슈는 고등학교 입학을 기점으로 친할머니가 사는 동네로 전학을 가기로 마음먹는다.


그곳은 사카이미나토시로, 요괴를 관광도시로 삼는 작은 시골 마을이었다. 친할머니가 이곳에서 민박집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지내며 근처의 고등학교에 진학할 예정이었던 것이다.


슈는 조금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씻을 때와 잘 때를 제외하고는 선글라스를 절대 벗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주변에는 눈에 문제가 있어서라는 핑계로 끼고 있었지만 실상은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절대 벗을 수 없었다.


첫 번째는 선글라스를 끼면 이형의 존재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원망이나 시기심의 마음을 품고 상대방을 노려봤을 때 상대방의 몸을 망가뜨리는 능력을 제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연히 선글라스가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해 준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에는 학교에 핑계를 대고 선글라스를 끼고 다니고 있었지만, 이미 저주에 대한 소문이 퍼져 계속 슈를 따라다니고 있던 터라 소문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그러던 차에 할머니의 권유를 받게 되면서 슈는 사카이미나토로 이사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렇데 홀로 할머니가 운영한다는 민박집에 도착했지만 마중 나오는 이도, 반겨줄 할머니도 만날 수 없었다.


다행히 그 민박집에서 장기 투숙을 하고 있다는 만화가 '선생님'이 그가 머물 곳을 안내해 주어 며칠을 보낼 수 있었다. 그렇게 약 일주일이 흐른 후 슈는 출입이 금지된 철제문이 열려있는 것을 목격하고 호기심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별생각 없이 그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좁은 통로로 이어진 길은 끝도 없이 이어져 있었는데, 생전 처음 보는 공간, 새롭게 이어지는 공간은 걷다가 슈는 결국 길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렇게 무작정 앞을 향해 걷다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던 중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떨어뜨리게 되고 그러다 말하는 이상한 쥐 한 마리를 발견하게 된다.


그 쥐는 자신이 정글리안 햄스터라며 이름은 코노스케라고 소개하며, 슈를 가까이에서 지켜봤다면서 그의 이름과 신상에 대해서도 이미 알고 있음을 밝힌다. 귀여운 외형과 어딘가 친근감이 들었던 코노스케가 싫지 않았던 슈는 함께 출구를 찾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한 건물 안에서 네모난 오동나무 상자를 발견하게 되고 그 안에 있는 까만 머리카락을 확인하자마자 걷잡을 수 없이 여러 갈래로 분열하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그것을 피하다 어느새 인간계 쪽의 '큰길'이 아닌 요괴들이 생활하는 '뒷골목' 쪽으로 튕겨나가게 되는데, 순간 인간계와는 완전히 다른 아야시 장의 모습에 슈는 깜짝 놀라게 된다.


그리고 이곳에서 마침내 그렇게 찾던 할머니를 만나게 된다. 할머니는 까만 머리카락이 '눈썹'이라 불리는 마통모라고 말하며 이 민박집의 수호신인 '손츠루 님'에게 도움을 청한다. 덕분에 무사히 털은 회수하여 봉인되었고, 부서진 집은 다시 원상복구가 되면서 이 일은 일단락된다.


이후 할머니는 슈에게 야모리 집안은 대대로 '밤을 지키는 일족'으로 퇴마사 일을 하며 살아왔으며, 할머니 또한 원래 퇴마사였다고 밝힌다. 그러다가 요괴들이라 죽일 듯 미워하며 사는 것에 신물이 나서 쉰 살에 여기에 민박집을 열고 사이좋게 지내기 위해 애써왔다는 설명을 끝으로 이제는 요괴들에게 인기 있는 숙박업소가 되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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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할미 꿈은 언젠가 사람과 요괴의 구분 없이 공존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겨. 아야시 장은 그걸 위해 사람과 요괴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하라고 만든 곳이여."

6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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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로 슈는 지금까지 자기가 겪었던 기묘한 일들을 어느 정도 납득하게 된다. 슈가 호기심에 들어갔던 철제문은 정식으로 숙박 등록을 마친 사람들에 한 해 뒷골목 쪽 요괴들이 사는 로비 쪽으로 직행하게 되어 있으며, 반대로 허가받지 못한 사람이 들어가면 미궁처럼 복잡한 곳으로 흘러가게 된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또 슈의 저주받은 눈에 대해서도 듣게 된다. 슈는 야모리 집안의 피를 이어받아 기본적으로 요괴를 감지하는 강한 영력을 가지고 있는데, 여기에 더해 원래 엄마 쪽 집안에 씌였던 귀신이 엄마가 죽고 나서 갓난아이였던 슈한테 옮겨가면서 우엉종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엉종은 각자 자아를 가진 75마리의 요괴가 모여 만들어진 귀신에 씌인 사람을 뜻하는 것으로, 이 경우 씌인 사람한테 사시의 힘이 주어진다고 한다. 사시의 힘은 상당한 질투심이나 원망을 품고 상대방을 노려보게 되면 몸에 이상을 일으키는 것으로 슈가 그동안 겪었던 저주의 힘이기도 하다.


할머니는 특수한 먹물을 슈의 손목에 떨어뜨려 손목에 표시되는 숫자를 보여주었는데, 그 숫자는 74로 나머지 한 마리는 앞서 만났던 코노스케라고 알려준다.


그리고 억지로 쫓아내기 보다 이 민박집에서 요기를 쐬다 보면 자연스레 의식을 되찾고 적당한 계기로 한 마리씩 떨어져 나갈 것이라며 이 민박집으로 불러들인 이유도 설명해 준다. 더불어 요괴를 쫓기 위해서는 체력을 키워야 하고 그래서 고등학생이 된 지금 슈를 불러들일 수 있었다 말해준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혼자 모든 것을 짊어지며 살아왔던 손자에게 미안했던 할머니는 이를 계기로 그동안 슈가 몰랐던 것들을 하나씩 차분히 알려준다. 여기에는 할머니의 둘째 아들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는데, 삼촌의 경우 영력이 전혀 없었다고 전한다.


마지막으로 할머니는 까만 뿔테에 모서리가 둥근 사각 렌즈가 들어간 안경을 선물로 주며, 이 안경이 사시의 힘을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게 막아줄 것이라고 말한다.


덕분에 선글라스보다 눈에 띄지 않아 편하게 학교생활을 할 수 있게 된 슈는 고마워하지만, 할머니는 청구서를 내밀며 안경값 백만 엔을 아르바이트를 하며 갚아 나가라고 말한다.


그렇게 슈는 할머니가 운영하는 민박집 '아야시 장'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았던 요괴들의 모습도 서서히 익숙해지면서 친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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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괴와 지낸 기억은 사람의 머릿속에서 오래 보존되지 못하거든. 그래서 이 민박집을 나가면 요괴와 지낸 추억이 마치 어젯밤 꿈처럼 금세 희미해지다 사라져버려. 기억에서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은 뇌가 알아서 그럴듯한 해석으로 얼버무리지."

8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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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민박집에 머무는 인간들이 철문을 통해 요괴들과 만날 때가 있었는데, 다녀오고 나면 마치 꿈처럼 금세 희미해져 문제 될 것은 전혀 없었다.


그렇게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내던 중 어느 날 한 학년 위인 쿠스노키 미노리가 해체 직전인 요괴 연구 동호회 멤버로 들어오라 제안하게 된다. 이 일을 계기로 슈는 그녀와 인연을 이어가게 되고 서서히 에피소드가 하나씩 시작된다.


각 에피소드는 민박집인 '아야시 장'의 양면을(인간계의 '큰길'과 요괴들이 사는 '뒷골목')을 중심으로 마치 모험을 떠나듯 펼쳐지는데, 새로운 인연과의 만남, 이별들이 더해지며 이야기가 점차 풍성해진다.


그리고 이런 사건들을 하나씩 해결해 나가며 슈는 조금씩 성장해 나간다. 때때로 서툴거나 실수를 하기도 하지만, 민박에 오가는 손님들을 향한 진심 어린 마음과 그들을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이 더해져 결과적으로는 해피엔딩이 된다.


미노리가 '아야시 장'에 집착했던 이유와 어린 요타가 몇 년 만에 한을 풀고 타타리못케(올빼미가 어릴 때 죽은 아이의 혼을 일시적으로 몸속에 받아들여줌)에서 벗어나는 감동적인 이야기, 카사바케의 긴 여행이야기, 첫사랑에게 고백하기로 마음먹은 아메온나(=비의 요괴) 시즈쿠에 대한 이야기 등은 독자들로 하여금 재미와 감동을 느끼게 한다.


이 모든 과정을 겪어나가며 슈는 함께 한다는 것, 친구의 의미, 죽음, 가족, 우정, 사랑, 책임 등 수많은 감정과 관계를 마주하게 된다.


덕분에 중요한 순간, 발 빠른 행동력과 결정을 통해 '아야시 장'을 지켜냄과 동시에 할머니의 장례까지 무사히 치를 수 있게 된다. 여기에 더해 하나밖에 남지 않은 가족인 삼촌과의 관계도 회복하게 된다. 또 철문 저편에 있는 요괴들과도 더 친밀해지면서 아야시 장의 새로운 주인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된다.


이 모든 것은 네 달 만에 이루어진 일로, 추리하듯 모험하듯 에피소드들을 따라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슈와 그의 친구들을 응원하게 된다. 더불어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후속 이야기도 궁금해진다.


이를테면 아직까지 드러나지 않은 슈의 우엉종의 존재들과 손츠루 님과 슈가 보여줄 합작품의 모습, 새롭게 찾아올 손님들과 펼쳐질 새로운 이야기들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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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남은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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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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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라는 사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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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건 시간을 서로 어떻게 느끼는지가 아녀. 압도적인 차이가 나는 사람과 요괴의 시간이 지금 이 순간만큼은 분명하게 겹치고 있다는 거, 그게 가장 중요허지."

20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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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장은 우리 삶에도 적용해 보면 좋을 문장이라는 생각이 들어 가져와보았다. 나이, 인종, 성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 너와 내가 함께 시간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 그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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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초든 60년이든 지나간 시간은 전부 과거잖어. 니가 해야 할 일은 영원한 시간을 살아가는 요괴 손님들의 방대한 기억 속에 선명한 흔적을 남기는 것이여. 아야시 장에 머물렀던 기억을 문득 떠올리고 그때 참 즐거웠다는 생각이 들만한 접객을 해야 하는 겨. 그러면 틀림없이 손님들은 다음에 또 와줄 테니께. 그게 곧 미래를 이어나가는 일 아니겄어?"

20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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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의 시간을 살지 않더라도, 누군가의 삶에 선명한 흔적을 남긴다는 것은 곧 누군가에게 특별한 기억을 심어줬다는 의미가 아닐까?


최선을 다하지만, 그것이 상대에게 있어 특별함으로 다가온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기에, 할머니의 이 말은 어쩌면 더 의미 있게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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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말이지. 이 눈 때문에 쭉 외롭게 살았어."

(...)

"그런데 요즘 들어 이런 생각이 들어. 내가 외톨이였던 원인은 눈도, 하물며 선글라스도 아니고 나 자신한테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

246~24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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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에서 슈는 어쩌면 눈을 핑계로, 선글라스를 핑계로 사람들과 멀리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만약 현재 외롭다는 생각이 든다면, 슈처럼 먼저 상대에게 다가가보는 용기를 내어보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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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말이여, 슈한테 민박집을 이어받으라고는 말 못 혀. 지금까지 어떻게 살든 내버려든 할미가 무슨 염치로 그런 소릴 하겄어. 그래도 널 요괴들하고 만나게 해주고 싶었어. 니 인생의 선택지에 요괴와 함께 살아가는 길도 생각해 줬으면 했던 거."

28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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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에 대한 할머니의 미안함과 진심이 느껴졌던 문장이다. 손자에게 더 많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던, 더 많은 선택지를 주고 싶었던 할머니의 사랑이 느껴져 더 애달프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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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 니 이름은 부모님이 고민하고 고민해서 지은 이름이여. '모일 집'이라는 글자는 많은 새가 날개를 쉬는 나무를 상징하니께. 슈라는 이름에는 좋은 벗들이 자연스레 많이 모여드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혔어. 물론 사람이든 요괴든 상관없이 말이여."

28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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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에 일찍 부모님을 여의면서 슈는 정작 자기 자신에 대한 중요한 내용은 알지 못한 채 성장한다. 그리고 저주의 눈으로 인해 더 고립되면서 외롭게 성장한다. 하지만 할머니를 만나게 되면서 비로소 자신은 알지 못했던 가문의 사정과 삼촌이 있다는 사실, 그리고 자신을 사랑으로 품었던 부모님의 사랑까지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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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의 생활이 불안하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슈의 몸 속에는 아직도 73마리나 되는 요괴가 씌어 있고, 민박집 일도 모르는 부분이 많아 얼마나 실수하게 될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슈는 혼자가 아니다.

코노스케가 있고, 미노리가 있다. 선생님도 있다. 무뚝뚝하긴 해도 조카를 위해 움직여주는 삼촌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야시 장의 접객을 기대하며 찾아주는 손님들이 있다.

30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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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껏 외롭게 살아온 슈가 스스로 그 벽을 허무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할머니의 민박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많은 일들을 겪었고, 또 많은 이들과 함께 하며 마침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덕분에 슈는 만나자마자 이별하게 된 할머니의 장례를 치르면서도 굳건히 버틸 수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할머니가 바라 마지않던 일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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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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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괴가 등장하는 판타지 소설이지만, 웃어넘길 만큼 가볍거나 유치하지 않다. 오히려 술술 읽히지만 그 속에는 감동과 묵직한 가족애, 우정, 삶의 지혜가 엿보인다.


항상 혼자라고 생각했던 슈에게 있어 가족이 생긴다는 것, 친구가 생긴다는 것, 누군가 함께 할 사람이 있다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큰 변화이자 인생의 전환점이라고 말할 수 있다.


덕분에 저주의 눈이 저주가 아닌 것이 되었고, 함께 한다는 것의 기쁨을 알았으며,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줄 사람들을 얻었다.


만약 이런 일련의 사건을 겪고도 끝까지 마음을 열지 못했거나 민박집을 이어가기를 포기했다면 진작 이 이야기는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슈는 스스로 변화하기를 택했다.


덕분에 할머니의 진심을 알았고, 삶의 이정표도 생기게 된다. 슈의 성장세가 이 스토리의 가장 큰 핵심이지만 곳곳에 자리한 에피소드들 역시 무시하기에는 아까운 재미와 감동을 품고 있다.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기괴한 이형의 존재들이지만, 그들이 그려가는 낭만과 사랑, 우정에 대한 에피소드는 찐이니 직접 책을 통해 확인해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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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의 휴식 컬러링북 - 색칠할수록 행복해지는 색칠할수록 행복해지는 컬러링북
전선진 지음 / 마음책방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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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한여름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은 여럿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사람 없는 곳에서 조용히 홀로 지내는 것을 더 선호한다.

과거에는 시끌벅적하게 친구들과 보내거나, 여행을 가는 것으로 무더위를 잠시 피하고자 했는데, 다녀오면 어쩐지 더 지치는 느낌이라 언젠가부터는 덥고 사람 많을 시기에는 오히려 밖으로 나가는 것을 꺼리게 되었다.

그리고 찾은 무더운 여름을 보내는 방법은 생각보다 꽤 많았는데, 책 쌓아놓고 읽기(만화책, 소설책 등등), 시원한 아이스크림 먹으며 뒹굴거리기, 에어컨과 선풍기 동시에 돌린 후 낮잠 자기 등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무언가 집중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으로 뜨개질 하기, 낱말 맞추기, 퍼즐 맞추기, 게임하기, 컬러링북 색칠하기를 추가하면 어떨까 한다.


마음 책방에서 책을 받을 때면 항상 정성이 가득 느껴진다. 어떤 출판사는 애정 없이 책을 그저 마케팅 용도로만 생각해, 독자 역시도 같은 식으로 취급하는 담당자들도 있는데, 이곳은 한 권 한 권 애정을 가지고 있는 게 느껴진다. (애정이 없으면 귀찮아서라도 이렇게 챙겨서 보내주기 어려웠을 듯)

덕분에 늘 즐겁게 첫 페이지를 열 수 있다. 출판사 이름 그대로 마음이 느껴진다. 이번에는 가짓수가 조금 더 늘어났는데, 활용도 높은 메모지와 보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엽서, 그리고 손 편지, 달콤한 티백이 함께 동봉되어 있었다. 이 중에서 엽서는 밝고 에너지가 느껴지는 일러스트로 채워져 있어 가까이에 두고 보면 좋을듯하다.


총 4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여름에 만나볼 수 있는 꽃과 여름휴가를 주제로 스케치 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봄을 보내고 여름을 맞이하는 꽃, 더위에 지친 마음을 달래주는 꽃, 뜨거운 햇살 아래 더 선명한 꽃, 여름철 내내 만날 수 있는 꽃으로 파트를 나누어 소개되고 있는데, 한 여름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배경들이 많아 은근히 스케치를 보는 맛이 있다.

여기에 더해 여름에 만나볼 수 있는 꽃과 꽃말, 개화시기들도 함께 표기되어 있어 우리가 잘 몰랐던 꽃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도 가져볼 수도 있다.

뜨겁고 강렬한 여름을 테마로 하고 있는 만큼 내용이나 꽃들도 여지없이 화려하고 시원한 여름 풍경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데, 여기에 나만의 색을 입혀 꽃과 동물, 풍경들에 색을 입혀주면 어떨까 한다.

페이지를 살펴보면, 좌측에는 컬러까지 입혀져 있는 디자인이, 우측에는 동일한 디자인의 스케치가 확인된다. 완성된 페이지를 통해 얼마나 화려하고 강렬한지 한눈에 확인이 가능하다.

눈으로 익혔다면, 이제 직접 스케치에 생명력을 불어넣을 시간이다. 어떤 색으로 어떻게 옷을 입히느냐에 따라 여름 추억은 색다르게 변신하게 될 것이다.

컬러링북이기에, 마음에 드는 꽃이나 디자인이 있는 페이지부터 순서 상관없이 색칠해 나가면 된다. 느낌 따라, 기분 따라, 취향 따라 스케치는 점점 다른 형태로 물들어 갈 것이다.



약 30종의 꽃 중에서 어떤 꽃에 먼저 색을 입혀 볼까 고민이 된다면, 곳곳에 함께 자리하고 있는 동물이나 풍경 천천히 살펴보고 원픽을 꼽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될 것이다.
칠하다 보면 종종 컬러감에 대한 욕심이 생기기도 하는데, 덕분에 평소 관심도 없던 색연필, 사인펜, 크레파스, 수채화 물감, 마카 등에 관심을 가지게 될지도 모르겠다.


귀여운 그림들에 매혹되어 정신없이 색을 칠하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훌쩍 저물어 있음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겠다.여러 사건사고로 이불 밖은 위험한 요즘, 방콕하며 소소한 즐거움을 만끽해 보면 어떨까 한다. 이왕이면 맛있는 간식도 잔뜩 준비해두면 금상첨화가 될 것이다.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만 지원받아 직접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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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 예찬 - 위대한 사상가들의 실패에 대한 통찰
코스티카 브라다탄 지음, 채효정 옮김 / 시옷책방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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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에 대한 통찰이라기보다, 전기문에 가까운 이야기 모음집!"


실패에 대한 통찰이라고 해서 처음에는 나름 기대감도 가지고 있었다. 어떤 사상가들을 앞세워 실패에 대해 이야기할까, 또 실패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색다른 통찰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내심 궁금한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1장을 채 벗어나기도 전에, 머릿속에 물음표가 뜨기 시작했다. 통찰이라고 하면 보통 어떤 것에 대한 깨달음이 주를 이룰 거라 기대하기 마련인데, 실상 담겨있는 내용들을 살펴보면 각 장마다 대부분의 페이지를 채우고 있는 것은 사상가들의 삶에 대한 내용이다.

여기저기서 내용을 가져와 덧붙인 스크랩 같은 내용들이 덧대어 있었다. 실패 사례를 설명하기 위한 예시라는 명분으로 내용들을 가져와 덧붙인 것 같은데, 생각보다 방대하고 저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내용과 상관없는 내용들도 꽤 포함되어 있었다.

여기에 더해 각 장마다 최소 2~3명 이상의 사상가의 삶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어, 오히려 전기문에 가깝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 정도였다. 또 구성 방식이 오로지 텍스트로만 점철되어 있어, 눈빠지도록 그냥 글자만 줄줄이 읊어야 하는 상황이 지속되어 집중력도 자꾸만 뚝뚝 떨어졌다.

뭔가 정제되지 않은 책이라는 느낌과 함께 저자가 과연 제대로 소화하고 쓴 책이 맞는 건가 하는 의심이 드는 그런 책이었다.


총 4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실패에서 얻는 이로운 점에 대해 담고자 여러 사상가의 삶을 스토리로 엮어 전달하고 있다.

각 장에서는 대표되는 인물 외에 몇몇의 사상가들의 삶과 그들이 살아가면서 무수히 겪은 실패의 이야기를 전하며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실패에서 얻은 통찰력을 함께 전하고자 한다.

책이 전개되는 방식은 가장 바깥에 있는 원에서부터 점차 내밀하게 안쪽으로 향하는 방식으로 전개되는데, 이를테면, 물리적 실패, 정치적 실패, 사회적 실패, 생물학적 실패 순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핵심 내용을 먼저 확인하고자 한다면, 책의 맨 뒤쪽 표지에 정리되어 있는 내용을 먼저 확인하는 것이 가장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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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말하는 실패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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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전적으로 사무엘 베케트풍의 책으로, '더 잘 실패하기'보다 더 나은 것을 제안하는 것, 즉 '더 심하게 실패하기'를 지향한다.

이를 통해 실패 자체를 위한 실패가 아니라 실패가 낳은 겸손, 그리고 실패가 촉발하는 치유 과정에 대해 말하며 실패를 잘 활용하는 법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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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략 요약 내용 살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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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타락한 세상에서
-실패의 종류: 물리적 실패
-대표 사상가: 시몬 베유
-실패 예찬 키워드: 서투름

■2장. 정치적 실패의 폐허 속에서
-실패의 종류: 정치적 실패
-대표 사상가: 마하트마 간디
-실패 예찬 키워드: 불완전성

■3장. 위너와 루저
-실패의 종류: 사회적 실패
-대표 사상가: 에밀 시오랑
-실패 예찬 키워드: 루저

■4장. 궁극의 실패
-실패의 종류: 생물학적 실패
-대표 사상가: 세네카
-실패 예찬 키워드: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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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살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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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잘 사는' 인생에 있어서 실패가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갖는지를 이야기하기 위해 여러 사상가의 이야기를 가져왔다. 이들의 실패담을 소개하고, 그들이 실패를 어떻게 극복하고 성공할 수 있었는지를 조명하며 실패의 영향력과 선순환에 대해 4장으로 나누어 다룬다.

소개된 이들 중 마하트마 간디의 경우, 그동안 알던 내용과는 다른 내용들이 많아 조금 충격적으로 다가왔는데 이에 대해서는 아래 별도로 다룰 예정이다.

저자는 우리가 실패를 거듭할수록 깎여나가고 다듬어지며, 겸손해지고 궁극적으로 더 나은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이 책을 통해 실패란 무엇이고, 이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겠다.


1장. 타락한 세상에서 (물리적 실패: 서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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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유의 신체적 불안전성은 나이가 들수록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점점 더 큰 고통을 야기하며 베유 곁에 머물게 될 터였다. 하지만 고통스러울수록 통찰력은 더 커졌고, 베유는 엄청난 고통을 겪었기에 그 통찰력은 엄청난 경지에 이르렀다.
(...)
일평생 시몬 베유는 근본적으로 서툴렀고 물리적인 세상에 대처하며 상당한 노력을 해야 했다.
(...)
베유의 서투름은 그 매력의 일부분이었다.
34,3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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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투름은 실패의 기이한 형태이고, 이 실패는 당신의 것인 동시에 당신 것이 아니다. 이 실패가 당신의 것인 이유는 실패하는 사람이 당신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아무 어려움 없이 달성하는 일을 당신은 운동 협응이 부족하여 성취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실패는 당신이 완전히 통제할 수 없는 당신의 일부분 탓이므로 엄밀히 말하면 당신의 실패가 아니다. 그러나 당신은 그 결과로 고통을 받는다. 베유가 평생 그랬듯이 자신의 잘못은 그다지 없는데도 말이다.
4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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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실패와 조우함으로써 우리가 얻는 이점이 또 있다. 그 실패를 경험할 때는 당신만 산산이 부서지는 게 아니라 당신의 온 우주도 산산이 부서진다. 실패는 당신의 개인적 존재 규정의 반대편에 있는 무만 드러내는 게 아니라 세상 안에 존재한다는 것 자체의 결손까지 드러내 준다.
(...)
우리는 종종 무언가가 고장 났을 때 비로소 그 존재를 깨닫곤 한다.
(...)
어떻게 보면 그 물건들의 존재가 느껴지고 완전히 보이기 시작하는 것은 이 물건들이 실패했을 때만이다. 그 물건들은 그 안에서 상당한 무가 기어들어 온 후에야 비로소 보이는 것이다.
57~5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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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든 게 흠결 없이 작동하는 세상에는 점점 주의를 덜 기울일 것이다. 평소와 다른 일이 아예 일어나지 않고 아무것도 망가지지 않으면, 점점 두꺼워지는 익숙함의 베일이 외부 세상을 덮고 그 베일에 가려서 우리는 눈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이런저런 물건을 사용하고 이런저런 작동을 수행하면서 부지불식간에 우리 삶은 전부 일상적인 틀에 박혀 있게 된다.
(...)
달리 말해 실패보다 더 나쁜 것이 있다면 그건 실패의 부재다. 실패를 우리를 찌르고 그러는 가운데 우리를 현실과 접촉시킨다. 그 접촉이 비록 무자비하고 고통스럽다 해도, 실패는 어느 정도의 긴급성을 띠고 와 우리 가운데 가장 도취된 자의 취기조차 가시게 한다. 실패를 얼마나 많이 경험하든 간에 실패는 늘 새로움을 유지하고 있다.
(...)
실패는 우리에게 새로운 관점을 부여한다. 실패를 경험한 사람 앞에서 세상은 다시 태어난다. 이전의 추정은 산산이 부서지고 확신은 흐려지며 좋은 평판을 누리던 진실은 망신 당한다.
(...)
실패 안에서 세상은 자신을 우리에게 완전히 개방하고 비밀을 일부 드러낸다. 실패는 우리 인식을 명민하게 하고 시야를 명료하게 하여 사물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게 해준다. 실패가 없는 세상에서 우리는 현실에 대한 접근을 중단하고, 어떤 것을 과거 어느 지점에서 기록된 대로 아무 생각 없이 보고 끝없이 재생하며 생명 없는 눈으로 바라본다. 그런 세상은 더 이상 진짜가 아닐 것이다. 우리도 진짜가 아닐 것이다.
59~6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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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에서는 시몬 베유를 앞세워 서투름에 대한 실패를 예찬하고 있다. 서투름으로 인해 베유가 겪었던 고통과 삶에 대해 그리며 우리가 겪는 물리적 실패에 대해 함께 이야기한다.

사물의 실패는 나뿐만 아니라 온 우주가 산산이 부서지는 경험이라 말하며 이로 인해 세상 안에 존재하는 결손까지 드러난다 말한다.

이 덕분에 물리적 실패는 우리가 세상에 존재하는지 미처 몰랐던, 잊고 있었던 물건들의 존재를 상기시켜주고 또 주의를 기울일 수 있도록 돕는다고 말한다.

이런 실패가 있기에 우리는 늘 새로운 관점을 가질 수 있으며 이로 인해 감춰져 있던 것들을 비로소 제대로 마주하고, 있는 그대로 인식할 수 있도록 돕는다고 말한다.


2장. 정치적 실패의 폐허 속에서(정치적 실패: 불완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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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는 '사건들 속에서 우주를 설명하고자 하는 이론이 아니라 의미를 찾으려는 시도다'라고 쓴다. 과학적 이론이나 철학적 개념을 위해 목숨을 걸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자기 신념을 위해 죽은 사람은 셀 수 없이 많다.

모든 성숙한 종교를 규정하는 것은 사람들의 삶 속에 지치지 않고 의미를 가져다준다는 능력이기 때문에, 정치인들은 종교적인 사람들로부터 최대한 많은 것을 훔치고자 하는 유혹을 느꼈다. 정치 세력은 종교의 해석학적 기능의 일부를 취하여 자체가 위신과 권위와 통제력을 강화하고 싶어 한다.
10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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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인 사람들이 관련성을 잃어가기 시작할 때 정치적인 사람들은 주저하지 않고 끼어들어 스스로가 배타적인 의미의 근원임을 예시한다. 그게 바로 정치 자체가 종교의 한 형태가 되는 방식이다. 그리고 이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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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그에게서 나오는 것은 무엇이든 심지어 가장 어리석은 허튼소리마저도 게걸스럽게 삼킬 것이고 그를 구원자로 상상할 것이다.

정확히 이것이 <의지의 승리>에 나오는 것이다.
10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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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가 도래하는 데 필요한 것 중 하나는 강력한 겸손함이다.
12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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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민주주의자가 되는 것은 달리 말해, 함께 사는 문제에 관한 한 당신이 당신 앞에 있는 사람보다 더 나을 것도 더 똑똑할 것도 없다는 걸 이해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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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민주주의적 정권들은 종종 완벽을 주장하는 반면에 민주주의 국가들은 그 중심에 불완전성을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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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적으로 사는 것은 불완전성을 포용하는 것, 실패를 다루는 것, 일반적으로 인간 사회에 관한 망상을 거의 갖지 않는 것이다. 거의 신성함에 가까운 그런 겸손함만이 진정한 민주주의를 가능케 할 것이다.
12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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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가진 어려움을 더욱 악화시키는 것은 옛 신들의 죽음으로 사람들이 영적 고아가 되었고, 그래서 정치적 방향 감각을 잃어버린 세상에 산다는 점이다. 우리의 급진적인 세속화는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의 영적인 욕구를 해결하고 우주에 대한 소속감을 주며 삶에 의미를 더한 준거의 틀을 산산이 부서지게 만들었다. '신의 죽음'은 모든 걸 바꾸었다. 특히 신과 크게 관련은 없어 보이는 것들을 바꾸었다.
13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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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에 '굶주렸'을 때 사람들은 음모론 중에서도 가장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것조차 삼켜버릴 거라고 <푸코의 진자>에서 어떤 이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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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만들어내는 스토리가 얼마나 미친 소리든 간에 방향 감각을 잃은 관중은 게걸스럽게 받아먹을 것이다.

우리에게 이야기가 필요한 이유는 본질적으로 서사적인 의미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집단적 의미가 더 이상 신성한 이야기들에서 생성되지 않을 때 그 의미를 우리는 가장 신성 모독적인 곳에서 찾을 것이다. 이를테면 포퓰리스트 정치에서.
(...)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 하나,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법을 아는 것이다. 그들이 이것저것 섞어 만든 이야기가 매혹적이면 매혹적일수록 그들이 대중을 정서적으로 통제할 기회가 많아진다. 그래서 포퓰리스트 정치가들은 과장된 표현을 할 때가 많다.
138~13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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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실패는 그 작용 방식이 물건의 실패보다 더 교묘하며 더 치명적이다. 우리가 정치적 재앙을 목격할 때마다 그와 함께 우리의 일부분도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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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실패는 종종 그 뒤에 시체더미가 남을 뿐 아니라 우리를 지적으로 무력화시키고 타락시킨다. 무엇보다도 수치스러운 것은 모든 게 말해지고 행해지고 나서도 과거로부터 배우지 못한다는 것이다.
(...)
인간은 모두 필멸하는 존재지만 이 세상의 히틀러와 스탈린은 결코 진정으로 죽지 않고 이름만 달라졌을 뿐이다. 우리는 그들의 잔학 행위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일이 다시 자행되는 것을 막지는 못한다. 그 반대다.
20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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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기 때문에 정치적 통일체로부터 떨어져 나오려는 노력에는 우리의 본성에 역행하고 우리를 분해하는 일이 따른다. 그러나 우리가 치유되려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다.
(...)
급진적 정치 프로젝트(유토피아 정부, 전체주의 국가, 피비린내 나는 혁명)가 실패했을 때 우리가 직면하는 상실과 파멸의 광경을 충분히 주의 깊게 들여다본다면 또렷한 경고를 듣게 될 것이다. "자신이 소망하는 바를 조심하라!" '미덕의 공화국' '계급 없는 사회' '이상적인 국가' '완벽한 지역사회'
(...)
정치적 현실로부터 거의 완전히 떨어져 나와서 스스로를 무효로 만드는 세상이다.

유토피아의 문제점은 실현하기 불가능하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해 근본적으로 이질적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심각하게 불완전한 피조물이다. 체면상 우리는 이 개념을 우리가 세상에서 정치적으로 추구하는 모든 것 안에 놓아야 한다. 하지만 반복되는 정치적 실패와 그에 따른 시체 더미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도 품위가 부족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래서 완벽함에 대한 강박적인 욕구와 순수성에 대한 잘못된 추구에서 우리는 결국 그 어느 때보다 불완전함 속에 뒤죽박죽이 된다. 허구를 현실로 착각하는 것은 순진할 뿐 아니라 매우 위험하다.
(...)
이러한 실패는 우리를 겸허하게 만들며, 우리는 다른 어떤 것보다 아무것도 아닌 것에 더 가깝다는 중요하고 단순한 교훈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완벽하고 모든 것이 되려고 노력하다 보면 우리는 실제로 우리 손이 닿을 수 있는 것을 성취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된다.
202~20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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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의 해석학적 기능의 일부를 취하여 그 힘을 키운 정치의 역사에서부터 시작해 이것이 가지는 힘과 영향력에 대해 이야기하며 추후 이것이 민주주의를 차용하게 되면서 어떤 식으로 변화되었는지까지 다루고 있다.

더불어 급진적인 세속화로 인해 영적인 부분이 사라지면서 의미를 잃어버린 사람들을 꾀어낸 포퓰리스트 정치에 대해서도 함께 다룬다.

여기에 더해 정치적 실패가 가져오는 재앙과도 같은 문제점에 대해 함께 다루며, 히틀러와 스탈린과 같은 지도자를 꼽는다. 이로 인해 우리는 무력화되고 타락된다 말하며 이런 경험들은 세대가 바뀌고 시간이 지나도 학습되지 않으며, 지속적으로 반복된다 말한다.

이러한 실패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정체적 통일체로부터 떨어져 나와 스스로 무효로 만드는 세상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말하며, 우리 스스로 불완전한 피조물임을 인정하고, 이것 안에서 정치적인 부분을 염두에 두는 것이 맞지만 사람들은 결코 그렇게 하지 않기에 문제가 된다 말한다.


3장. 위너와 루저(사회적 실패: 루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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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저는 궁극의 사회적 실패다. 한 지역사회 안에서 루저와 실패를 규정하는 방식은 결코 순수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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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들은 특히 루저를 구축하는 데 능하다. 루저들은 아메리칸 드림과 함께 그 어둡고 수치스럽고 추한 면도 가지고 오는 것 같다.
20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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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조직된 사회에서는 저마다 고유한 '루저'유형을 만들어 낸다.
20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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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오게네스는 루저였을지는 몰라도 스스로 원해서 철학적 소명의 문제로 루저가 된 것이었다. 디오게네스의 기이한 행동이 아무리 가증스러워도 아테네인들은 기꺼이 동조하는 시늉을 했다. 그것이 아테네인들이 사회적 실패를 규정하고 관여한 방식 중 하나였다.

오늘날 루저가 되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다. 우리는 루저들 가까이 가는 건 싫어하면서도 루저들에게 집착하는데, 아마도 우리 자신이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 겁을 먹기 때문일 것이다. 루저가 되는 것은 우리가 자신을 보는 방식과 사회 속에서 우리 자리를 보는 방식을 형성한다.
(...)
실패는 우리는 동요시키고 불안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무언가는 우리 사회가 루저로 여기는 사람들과 우리가 관계를 맺는 방식에서 드러난다.
20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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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있어 실패는 실패하는 사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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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자가 되는 건 실천이나 지능,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다. 실패자라는 것은 당신이 누구냐의 문제지 당신이 무엇을 하느냐, 말하느냐, 생각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마치 당신이 그렇게 될 운명인 것처럼 실패는 떨쳐버릴 수 없는 아우라다. 특정 생활방식 선택의 요소가 수반돼야 할 수도 있으나, 북미, 유럽 등 오늘날 많은 '문명화된' 세계에서 루저가 된다는 건 저주받은 일이다. 당신이 무엇을 생각하고 말하고 행하는 지와는 상관없이 실패로부터 당신을 구할 수 있는 것이라곤 전혀 없다. 당신이 지옥불에 떨어지는 건 존재론적이다.
20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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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랑은 미치지 않기 위해, 자신이나 타인을 죽이지 않기 위해 글을 쓴 것이다.
(...)
시오랑은 글을 쓰면서 죽음을 벗어나기를 계속 반복했다.
21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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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랑은 실패와 사랑에 빠져 있었다. 실패의 유령은 시오라의 초기 저서들부터 모든 작품에 출몰한다. 시오랑은 평생 동안 실패로부터 벗어나는 일이 결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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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실패로 남는 건 개인에게만 국한되는 일이 아니라 사회, 민족, 국가 또한 그럴 수 있다고 시오랑은 믿었다. 특히 국가를.
21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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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조건 자체도 또 하나의 실패한 프로젝트다. 시오랑은 <태어났음의 불편함>에서 '더 이상 인간이고 싶지 않다'며 '실패의 또 다른 형태를 꿈꾸고' 있다고 쓴다. 우주는 하나의 큰 실패이고 삶 자체도 그렇다. "근본적 실패가 되기 전의 삶은 죽음과 시조차 제대로 바로잡아줄 수 없는 취향의 실패다."라고 시오랑은 말한다. 실패는 세상을 구약성서의 변덕스럽 신처럼 다스린다.
21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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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저가 루저인 것은 그러한 판정을 통해서다.
(...)
오래된 신학 교리인 예정설은 지옥행과 관련된 존재론을 구체적으로 다룬다. 우리 사회 안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루저들과 관계 맺는 방식은 '선택된 자들'이 '버려진 자들'을 취급하던 방식을 떠오르게 한다.
21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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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는 '하는 일에 기반해서가 아니라 전적으로 신의 의지에 기반해서 발생한다'고 칼뱅은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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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자는 생각이나 말이나 행동 때문이 아니라 누군인지 때문에 버려진 자인 것이다. 타락은 개인의 청렴이나 실천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다. 타락한 사람은 우리 언어로 말하자면 완전한 루저다.
22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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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랑은 인간 혐오자였던 것으로 유명하지만 그가 끝없는 이해심을 가졌던 인간 유형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루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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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랑은 자신의 젊은 시절을 되돌아볼 때면 늘 부드러움과 황홀함이 섞인 기분으로 자신이 로마에 있을 때 숙고했던 위대한 루저들과 끝없는 극적인 실패를 떠올렸다.
22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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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된 자들이 버려진 자들을 필요로 하듯 성공한 사람들은 실패한 사람들을 필요로 한다. 성공한 사람들은 루저를 맹렬히 경멸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세상 다른 무엇보다 필요로 하는 것이 있다면 그건 주위에 루저들을 두는 것이다. 현자들이 말하듯이 내가 성공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가 않다-남들이 실패해야 한다. 내가 구원받는 것은 정확히 남이 구원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남들이 비참해하는 광경이 없으면 내 성공은 결코 완전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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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저들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다면 성공한 사람들은 치명타를 맞을 것이다.
231~23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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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랑은 실패한 우주에서는 루저의 삶만이 살 가치가 있는 유일한 삶이라는 깊은 신념이 있는 사람이었다.
252~25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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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저의 모습은 우리에게 닥칠 수 있는 최악의 상황, 즉 타락, 해체, 파멸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에 불안하다. 의식적이지는 않더라도 본능적으로 우리는 사회 질서가 항상 불안정하기 때문에 그런 일이 항상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심연은 언제든지 저편에서 우리를 찌를 수 있다. 루저는 분명히 존재해야 하며 어딘가에는 있어야 하지만 너무 가까이 있으면 안심할 수 없다.
25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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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콧 샌디지는 19세기 미국에서 실패에 대한 불안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연구했다. 그는 '실패'와 '루저'의 시작은 소박했다고 관찰한다. 이 단어들은 원래 특정한 사건과 상황을 의미했다. 예를 들어 1852년에 나온 아동 도서에 따르면 실패는 '빚을 갚지 못하는 것'이었고, '루저'는 무언가를 잃은 사람 이상의 극적인 의미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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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빠르게 달라졌다. 수십 년 만에 '실패'는 '파산으로 인한 자본 손실'에서 '낭비된 인생의 기회 상실'로 그 의미가 바뀌면서, 살면서 겪는 하나의 사건보다 훨씬 더 크고 위협적인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 비즈니스 세계를 재편한 실패는 사회 전반과 사람들의 정신과 마음속으로 스며들어 자신과 자신의 위치를 바라보는 시각을 형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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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로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실패는 정상화되고 내면화되었다. 우리는 단지 그것에 익숙해졌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실패, 즉 그것에 긍정적으로 중독되어 버렸다. 정작 우리 자신의 실패는 잘 보지 못한다. 다른 사람의 실패를 주시하느라 바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자신의 실패가 가장 심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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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베른하르트의 <콘크리트>의 주인공 루돌프의 말처럼 "우리는 우리보다 더 불행한 사람을 통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우리가 다시 쓰러질 때까지.

그것이 우리 실패의 원인이다. 사회적 성공에 대한 우리의 채워지지 않는 갈증, 순위 매김과 서열에 대한 우리의 집착, 최대한 많은 돈을 벌려고 하는 우리의 강박은 쓰면 쓸수록 우리 내면을 파산시킬 것이다. 걸어 다니는 껍데기들, 우리의 삶은 화려한 만큼 속이 비어있다. 우리는 심각하게 병들었고 치료가 절실하다.

이론적으로 치유는 비교적 간단한 일이어야 한다. 많은 것을 할 필요가 없어야 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 바로 이 점이 특별성을 더하는 것이다. 오스카 와일드가 관찰한 것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가장 어렵고 가장 지적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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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진보를 이루려면 우리는 우선 완전히 멈추어야 한다. 강박적으로 바쁜 상태로는 결코 우리 자신을 실현하기는 커녕 발견하지도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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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안 하는 것은 우리가 뒤로 한 걸음 결정적인 발걸음을 옮겨 그대로 서서 우리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게 해준다. 우리의 고요함과 거리 두기 덕분에 우리는 우리가 처한 상황을 보다 진실된 관점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내면에 가지고 다니는 그 끔찍한 공허감을 이해했을 때 우리는 회복되기 시작했음을 알게 될 것이다.
286~28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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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로 다루는 실패는 사회적으로 문제시 되고 있는 '루저'에 대한 것으로, 이것의 의미가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부터 시작해 오늘날 그 의미가 사람들에게 얼마나 크게 작용하는지를 함께 다루고 있다.

루저가 된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식과 사회 속에서 루저로 자리 잡았을 때 완전히 실패자로 낙인찍히는 상황들을 자세하게 다루며, 루저의 의미를 되짚어 본다.

루저는 어떤 문제가 있어서 루저가 되는것이 아닌 '존재'의 문제로 다뤄진다 말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낙인찍히는 순간 그냥 지옥불에 떨어지는 것이라 봐도 무방할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스스로 루저가 되기를 자처한 디오게네스를 보면 어떤 의미에서는 매우 용감한 사람이 아니었나 싶다. 더불어 실패와 사랑에 빠진 시오랑은 인간 조건 자체, 삶, 우주 모두가 실패라고 보았으며 그런 실패를 오히려 즐기며 아무것도 안 하는 것으로 인생을 보냈다.

오늘날 우리의 현실을 보면 루저라는 개념은 상대적이며, 이분법적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 이유를 살펴보면 성공의 개념을 '나의 기준'에 두지 않고, 상대의 실패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성공한 사람들은 완전한 나의 성공을 위해 남들이 실패하기를 원하고, 또 그런 실패자들을 가까이 둠으로써 자신의 위신을 더없이 높이는 방법을 활용한다.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당연한 것처럼 나보다 못한 사람, 실패한 사람들을 보며 힘을 얻고 다시 일어선다고 말하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것은 매우 잘못된 생각이다. 이것은 어쩌면 성공에 대한 집착, 갈증, 강박 등이 쌓이고 쌓여 만들어낸 허상이 아닐까 한다.

때문에 어쩌면 시오랑이 실천한 실패한 우주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삶이 지금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해결책이 아닐까 싶다. 일단 멈춰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그것을 통해 주변을 돌아보고 우리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

그 치유의 시간을 통해 누군가를 루저라 폄하하고 상하 구분을 지어 더 높은 곳에 자리하려는 공허함과 허상을 치유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4장. 궁극의 실패(생물학적 실패: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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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밀한 실패의 형태, 즉 다른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을 정도로 심오한 '우리 것'이 있다. 궁극적인 실패, 즉 우리 자신의 죽음에 직면했을 때 경험하는 실패에 비할 것은 없다.

이 마지막 원은 매우 촘촘하고 개인화된, 세상에서 오직 한 사람, 즉 당신에게만 맞는다. 가족, 친구, 의사 등 다른 사람들이 동행할 수 있지만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혼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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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와 문화를 막론하고 우리가 어떻게 죽는가는 우리가 어떻게 사는가, 그리고 우리 삶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준다.
292 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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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는 평생 동안 죽음이 우리 존재에 미치는 특별한 힘, 즉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 우리의 삶과 행동 방식을 어떻게 형성하는지 이해하고자 노력했다. 톨스토리에게 죽음은 단순한 관조가 아니라 자신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치유할 수 있기를 바랐던 산산이 부서지는 몰입적인 경험이었다. 톨스토이는 모든 등장인물과 함께 죽고 또 죽으며 궁극적인 실패에 대비했다.
29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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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실패를 통해 존재의 얽힘에서 벗어나 더 나은 이해를 얻고 더 깨달은 삶을 살기 위해 실패를 활용할 수 있다. 실패는 특히 밧줄보다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실패를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과 세상,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의 위치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것은 전부 배우게 된다. 그리고 특히 우리 자신과 세상을 초월하는 것, 우리 존재가 발생하는 심연의 끝자락에 대해 배우게 된다.

실패는 다른 어떤 경험보다도 눈이 떠지는 경험이다. 물리적 세상에서 삶이 발생할 덕분에 우리는 존재의 구조와 우리 자신의 내면에 생긴 균열을 보기 시작한다. 사물이 그 기능을 수행하지 못할 때 그 것들은 우리 주변 세상의 근본적인 위태로움을 드러낸다. 그렇게 우리는 심연을 처음 맛보게 된다. 실패는 또한 인간 역사가 타인을 정복하고 지배하고 제거하려는 지속적인 분투에 불과하다는 것, 우리의 정치 기관들이 불안정하고 완벽하지 못하다는 것을 드러내 준다. 또 한 번 실패를 맛본 것이다. 실패 덕분에 우리는 또한 사회의 요구가 그 구성원들에게 얼마나 비합리적일 수 있는지, 그 기대가 얼마나 엉뚱할 수 있는지, 그 판단이 얼마나 피상적일 수 있는지 볼 수 있게 된다. 실패는 그 모든 것의 헛됨과 뻔함을 드러내고 그 과정에서 우리에게 심연의 더 나은 맛을 보게 해준다. 마지막으로 실패는 우리에게 우리가 생물학적으로 무에 가까운지, 그리고 하루하루 죽음과 얼마나 가까워지는지 보여준다. 이것은 더 이상 엿보기가 아니라 심연을 제대로 정면에서 바라본 것이다. 심연은 투우사의 눈빛으로 돌아보면 말없이 우리를 고정시킨다.
37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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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실패라고 구분 짓는 가장 내밀한 그 형태는 바로 죽음이 아닐까 싶다. 어느 누구도 죽음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데, 때문에 홀로 맞이해야 하는 이 죽음을 실패라고 간주하고 포기해버리면, 더 이상 답이 없다.

오히려 죽음을 실용적인 문제로 보면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우리 삶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지 등을 고려해 보는 것이 훨씬 더 나은 삶을 제공할 것이다.

톨스토이는 자신이 쓰는 이야기 속 등장인물에 죽음을 투영하며 궁극적인 실패에 대비했는데, 우리 역시 이러한 마음가짐이 필요해 보인다.

실패는 다른 어떤 경험보다도 눈이 떠지는 경험을 제공한다. 우리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심연을 맛보게 해줌으로써 세상에 존재하는 비합리적이고, 엉뚱하고, 피상적인 판단력 등을 제대로 마주 볼 수 있게 해준다.

더불어 죽음과 얼마나 가까워지는지를 제대로 깨달음으로써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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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적인 이야기: 마하트마 간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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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전기 작가가 묘사했듯이 '아주 영리한 전술가이자 전략가'였던 이 완벽주의자는 어떤 이를, 특히 자신의 공적 페르소나에 관한 일을 우연에 맡겼다면 결코 자신을 용서하지 못했을 것이다. 간디의 겉모습은 죄다 일등급 연기였으며, 그 연기가 자발적으로 보였다면 그건 그가 굉장히 재능 있는 배우였기 때문이었다.
16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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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성직자 간디, 비폭력주의자 간디로만 알고 있었는데, 전기처럼 자세하게 기록된 이 책에서 다룬 간디를 보며 내가 알고 있는 간디가 아주 일부였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이었다.

무성욕, 무소유 등으로 대표되는 간디라는 이름 뒤에 더 큰 재력과 사람들이 있었음을, 그리고 그런 간디의 실체를 보며 역시 사람은 한쪽 면만 보아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머릿속에 새겨 넣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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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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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실패라고 하면, 안 좋은 것 부정적인것으로만 생각하는데 성공이라는 이름 뒤에는 수많은 실패가 자리하고 있음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특히 크고 중대한 사안일수록 실패가 밑거름이 되었을 가능성이 큰데, 그 덕분에 지금의 우리는 꽤 많은 것들을 누리며 살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4가지 실패에 대해 다루는데, 하나하나 살펴보면 어느 누구도 이 실패와 떨어져 생각해 볼 수 없을 만큼 우리 삶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실패를 어떻게 다루느냐는 어찌 보면 우리 인생에 중차대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저 실패했으니 순응하고 포기해 버릴 것이냐 아니면 피할 수 없으니 잘 활용해 보자는 심정으로 대할 것이냐에 따라 인생 곡선은 완전히 달라질 수밖에 없다.

저자는 그래서 '실패'에 집중한다. 수많은 사상가들의 실패 이야기를 통해 이들이 실패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삶에 어떻게 적용했는지를 스토리로 풀어내면서 예시를 든다. 마치 우리 삶도 이와 같은 이야기로 풀어낼 수 있다는 듯이 말이다.

저자는 우리가 실패를 거듭할수록 더 다듬어지고 겸손해지면서 궁극적으로 더 나은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실패가 있기에 더 나은 사람, 더 나은 인생을 그릴 수 있다 말한다.

우리의 삶, 인생 이야기는 아직 진행 중이기에 이제부터라도 실패를 통해 나만의 '진주'를 발견해 보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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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느실, 외갓집 가는 길 - 2024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 창작 발간 기금 사업 선정
김경순 지음 / 바른북스 / 2024년 6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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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은 이름이자 단어이며, 강한 힘을 지닌다. 마법사가 외는 어떤 주문보다도 혹은 영혼이 응하는 어떤 주술보다도 강하다.
-찰스 디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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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부터 어떤 '그리움'이 묻어난다. 이제는 기억 속에만 남아 옛 것이 되어 버린 것들, 지금 사람들은 모르는 그 정겨움과 애틋함이 어떤 식으로 소환될지 기대가 된다.

잊고 살았던 그 시절의 이야기를 이 책을 보며 다시 떠올려 본다. '맞아, 그땐 그랬지'하며 소중했던 그 시간들에 잠시 젖어본다. 마치 앨범을 들춰보듯, 이제는 다시 만나볼 수 있는 그 시간들을 반추해 본다.

어릴 적 자라면서 들어왔던 이야기들, 특별한 날이면 가족과 함께 먹었던 음식과 장소 등 추억 속에만 남아있던 이야기들이 다시 널을 뛴다. 덕분에 콩닥콩닥 다시 그때로 돌아간 듯 설렘과 기대감이 부푼다.

어쩌면 그때 그 추억이 있기에, 지금의 나는 잘 살아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추억을 먹고 힘든 순간을 버텨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총 5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저자의 그리운 고향인 충북 음성에 두고 온 추억과 경험에 대한 이야기로 당시 느꼈던 자연, 사람, 추억, 경험들에 대한 내용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읽다 보면, 나의 추억 속에도 존재하는 교차지점이 드문드문 발견되는데 그럴 때면 반가운 마음이 이는 동시에 저도 모르게 추억 소환이 된다.

그리고 이내 그때의 분위기, 맛, 향, 느낌 등이 절로 피어난다. 여전히 그 장소가 존재하는지 궁금해진다. 어쩌면 이 책을 읽는 다른 독자들도 비슷하게 느끼지 않을까 한다.

저자의 추억 속 이야기와 나의 이야기가 교차되는 지점을 포인트로 몇 가지 에피소드들을 꼽아보았다. 나에게는 고향은 아니지만, 어릴 적 경험 속에 존재하는 기억들 위주로 꼽아보았다.

이것을 계기로 잊힌 그리운 나날들을 한 번쯤 되새길 수 있는 기분 좋은 하루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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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멍가게, 강원 상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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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상회 앞 평상은 비어 있는 때가 없다.
(...)
우리 동네 역말의 정중앙을 관통하는 큰길 중간쯤, 강원 상회가 있다. 강원 상회는 노부부가 오랜 세월을 운영한 구멍가게다. 두 분 모두 몇 년 전 돌아가시고 지금은 빈 가게다.
(...)
할아버지는 손재주가 좋으셔서 고장 난 연탄보일러 수리를 잘하기로 동네에서 소문난 분이셨다.
(...)
참 장난기가 많은 분이었다.
(...)
그때 우리 부부는 가게 일로 깜깜한 밤이 돼서야 집에 돌아오던 때가 많았다. 아이들은 배가 고프면 강원 상회에서 외상으로 과자를 사 먹거나, 라면을 사다 끓여 먹곤 했다.
(...)
가게에는 언제나 할머니가 계셨는데 방에서 잘 나오지 않으셨다.
(...)
지금 생각해 보면 관절염으로 다리가 불편하셔서 그랬던 듯도 하다.
(...)
강원 상회는 내게 정말 고마운 곳이다. 이 동네로 이사를 오고 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둘째를 임신하게 되었다. 입덧이 심해 아무것도 먹지 못할 때, 강원 상회에서 사 온 막걸리로 메스꺼움을 달랬다.
(...)
몸과 마음이 힘든 나에게는 여간 고마운 곳이 아닐 수가 없었다.
12~1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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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시골에 살아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동네에 하나씩 존재하는 구멍가게에 대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 동네에 존재하는 유일무이한 가게였기에 동네 사람들의 사랑방 노릇을 톡톡히 했던 그곳은 그래서 소중했고, 많은 추억이 어려있다.

나의 어린 시절을 되돌아봤을 때 떠오르는 구멍가게는 두 곳인데, 하나는 시골 할머니 집에 갈 때면 찾아갔던 구멍가게와 또 어릴 때 옆 마을에 있던 구멍가게가 떠오른다.

할머니 댁에 있던 구멍가게는 명절이면 받은 용돈을 소비하러 가는 곳이었는데, 그곳에서 내가 구매했던 목록은 대체로 부루마블과 같은 게임이었다.

두 번째로 기억나는 옆 마을에 존재했던 구멍가게는 아이스크림과 같은 군것질거리가 먹고 싶을 때면 가던 곳이었는데, 땀을 뻘뻘 흘리며 자전거를 신나게 밟아 가던 것이 기억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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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빵집 옆에 만둣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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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주머니는 늘 가벼워 잘 열리지 않았는데 그래도 간혹 주머니를 푸실 때가 있었다. 그것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빵을 사 주실 때였다. 그때 빵집은 나무 의자 몇 개 놓인 허름한 천막집이었다.
(...)
시장 중간에 있던 그 집은 뿜어져 나오는 하얀 김 냄새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배를 요동치게 했다. 엄마의 손을 놓쳤던 그날도 나는 빵집 앞에서 정신을 놓고 말았다.

지금이야 언제든 마트에 가면 원하는 물건을 살 수 있지만 그 시절에는 모든 생활용품이나 식료품들을 5일장에서 해결해야만 했다.
(...)
음성 빵집 지척에 있는 '영화 만두'는 우리 집 아이들이 좋아하는 만두 맛집이다. 명절이나 김장을 하는 날이면 미리 김치만두와 고기만두를 넉넉히 주문해 놓는다.
(...)
영화 만두는 사실 친정 엄마를 생각나게 하는 집이다. 엄마가 돌아가신 지 벌써 10년이 지났지만 그날을 생각하면 지금도 명치끝이 아리다. 그날은 어느 겨울의 끝이었다. 그날따라 엄마가 보고 싶었다. 큰딸아이와 함께 영화 만두에서 김치만두와 찐빵을 사서는 읍내에서 5리쯤 되는 친정집으로 향했다.
(...)
그날 도랑 벽에 머리를 심하게 부딪치는 바람에 엄마는 뇌를 다치고 말았다. 그 후 치매로 병원과 요양원을 전전하다 끝내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셨다.
(...)
그러고 보니 음성 빵집과 영화 만두는 모두 어머니를 소환하고 추억하게 만드는 집이었다.
(...)
이렇게 어깨가 움츠러들고 옷깃을 여미게 되는 날이면 나도 모르게 빵집으로 발길이 향한다. 유독 커다란 솥뚜껑이 열리는 그 순간을 좋아한다. 뿜어져 나오는 김 속에서 몽실한 찐빵을 만나는 그 순간은, 아마도 장터에서 엄마와 내가 허기를 달래던 그 먼 추억을 소환하는 일이기 때문이리라.
21~2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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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에피소드에서는 추억을 소환하게 만드는 키워드가 여럿 발견되었다. 5일장, 빵집, 만두, 뚜껑을 열었을 때 하얀 김 냄새 등.

어릴 적 엄마 손을 잡고 5일장에 갈 때면 그렇게 신날 수가 없었다. 이것저것 구경하고 맛있는 길거리 음식을 즉석에서 먹는 맛이란 요즘 말로 '개꿀'이었다.

당시에도 그렇고 요즘에도 뚜껑을 열었을 때 하얀 김을 내뿜는 가게를 볼 때면 나도 모르게 걸음이 멈춰 선다. 이런 경우 보통 옛날씩 빵집이나 혹은 만둣집일 경우가 많은데,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다.

재래시장은 이런 맛이 있는 것 같다. 시선으로 잡아끄는, 즉석에서 먹는, 추억을 소환하는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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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새댁들의 정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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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아기가 있는 집에 들어서면 언제나 마당에 빨랫줄 가득 하얀 기저귀가 펄럭였다. 그 풍경은 싱그러움과 달콤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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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정말 남편은 '바깥사람'이었고 아내는 '안사람'이었다. 나를 비롯한 주변의 아내들은 모두 집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살림만 하면 되었다. 아이를 기르는 일은 고된 일이 분명하지만 세 아이를 키우면서도 힘들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것은 아마도 그 시절 함께 아이를 키우며 좋은 인연으로 이어진 사람들 때문일 것이다. 그때는 지금만큼 통신매체가 발전하지 못했던 때라 아기 엄마들은 서로의 경험을 주고받으며 육아에 대한 궁금증을 풀곤 했다. 그렇게 정보를 공유했던 곳이 바로 아기 옷을 파는 곳이었다.
(...)
베비라와 아가방은 시장통에 있던 가게였다. 그런데 그 가게들이 아가방만 남기고 꽤 여러 해전에 문을 닫았다. 그만큼 아기 옷을 찾는 사람들의 수요가 줄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명백을 이어 오던 아가방마저 얼마 전에 문을 닫고 말았다.
(...)
그것을 반증하듯 전국의 학교 수가 줄고, 산부인과와 소아과가 사라지는 추세이다. 음성에도 산부인과와 소아전문 병원이 없어진 지 오래다. 유치원의 원생 수도 워낙에 적다 보니 각 유치원마다 두세 개 반에 불과하다.
(...)
지금은 옛날이야기가 되어 버린 말이 있다. "자기가 먹을 건 다 갖고 태어난다.", "낳아 놓기만 하면 알아서 크게 마련이다" 지금의 신혼부부들은 이 말을 절대 신뢰하지 않는다.
31~3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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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추억을 소환하는 단어들을 만났다. 어쩐지 신나는 기분으로 읊어보다가 이제는 다시 만나볼 수 없는 말과 단어들이라는 생각에 갑자기 서글퍼진다.

예전에는 아가옷 하면 입에 착 붙던 몇몇 브랜드가 있었는데 바로 베비라와 아가방이었다. 여기저기 쇼핑몰, 마트, 시장 등에서 자주 목격되던 브랜드들이었는데 이제는 어느새 모두 사라져버렸다.

더불어 이제 옛말이 되어 버린 말도 발견할 수 있었는데, "자기가 먹을 건 다 갖고 태어난다.', '낳아 놓기만 하면 알아서 크게 마련이다'라는 말은 정말 어릴 때 여기저기서 어른들이 많이 또 자주 하던 말이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에게 이런 말 하면 바로 욕먹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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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1987, 샛별 레스토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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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별 레스토랑'은 비원보다 한참 후에 생겨난 가게였다.
(...)
'비원'은 얼마 지나지 않아 폐업을 하고 '샛별'이 유일한 경양식 가게로 그 명맥을 이어 갔다. 우리 가족이 샛별 레스토랑을 가는 날은 특별한 날이었다.
(...)
읍내에 샛별 레스토랑이 들어서자 아이들의 졸업식 후 풍경도 달라졌다. 그 전에는 졸업식이 끝나면 가족 단위로 중국집을 찾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샛별 레스토랑이 생긴 후부터는 그곳에서 밥을 먹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했다.
(...)
샛별 레스토랑의 돈가스는 음성 사람들에게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았다. 우리 가족도 아이들의 졸업식 날이나 생일날은 꼭 그곳을 찾았다.
(...)
샛별 레스토랑은 중앙의 단체석만 빼면 자리마다 작은 칸으로 나누어져 있다. 게다가 각 칸에 커튼도 달려 있어 다른 사람들로부터 방해를 받지 않는다. 그러니 그곳은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도 제격이었다.

우리 부부는 가끔 옛날이 그리울 때면 샛별 레스토랑을 찾아간다. 남편은 양도 많고, 고기가 부드러운 그 집 돈가스를 좋아한다.
95~9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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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에피소드를 읽으며 나의 추억 속에도 존재하는 경양식 레스토랑이 불현듯 떠올랐다. 지금도 그때의 맛, 분위기, 향 등이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특별한 날 참 많이도 갔던, 내가 좋아했던 장소중 하나였다.

2~3층 높이의 나무로 된 멋들어진 내부 인테리어는 물론, 칸칸이 나뉘어 있던 좌석, 그리고 돈가스를 주문하면 먼저 나오던 수프까지.

지금 만약 이런 경양식 레스토랑이 운영되는 곳이 있다면 꼭 한번 방문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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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짜장면의 추억, 동화 반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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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시골 읍내의 중국집들은 학교 졸업식이 있는 날이면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
한바탕 눈물로 이별의 졸업식을 마치고, 읍내에는 자랑스러운 졸업장과 꽃다발을 손에 든 학생들로 거리가 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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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가족 단위의 사람들이 삼삼오오 찾아가는 곳은 대부분 중국집이었다. 우리 가족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버지를 제외하고 어머니와 언니, 오빠들 모두 함께였다.
(...)
아직도 그 집, 동화 반점은 영업 중이다. 지금은 그때보다 규모가 훨씬 축소되었다.
(...)
입는 것도 먹는 것도 넉넉하지 않던 그 시절, 짜장면은 분명 우리를 행복하게도 설레게도 해 주던 음식이었다. 지금은 비만을 부르는 음식이라 하여 다이어트 하는 사람들에게 외면을 받기도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나에게는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음식 중 하나다. 어쩌면 짜장면 한 그릇에 부자가 된 듯 행복해하던 자식의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엄마가 그리워서인지도 모르겠다.
114~11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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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다! 경양식 레스토랑 이전에는 중국집이 있었다. 졸업식, 입학식 등 특별한 날이면 온 가족이 모여 중국집을 방문하고는 했는데, 그때 먹었던 자장면은 정말이지 너무 맛있었다.

자장면에 탕수육까지 추가해서 먹는 날이면 그날은 정말 최고의 하루일 만큼 행복한 날이었는데, 문득 그때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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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장미 꽃집에 대한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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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그 집이 그런 집인 줄 알지만 그때는 까마득히 몰랐다. 30년 전쯤이었을까? 정말 향기 나는 꽃들이 만발한 꽃집인 줄 알았다. 그러니 그 집 앞을 무던히도 잘 지나다녔을 게다.
(...)
그러고 보니 그 집은 누군가 죽음을 맞아야만 찾게 되는 집이었다. 물론 그때도 잔디를 팔긴 했지만 대개는 꽃상여를 더 많이 팔았다. 근방에 꽃상여집이 그 집밖에 없어 그 집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남편과 들른 그날도 누군가를 싣고 떠날 만반의 준비가 된 꽃상여가 가게 안을 환하게 밝혀 주었다.
(...)
사실 그날 묻고 싶었다. 가게 이름을 '장미 꽃집'으로 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말이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
이제 그 집에서는 꽃이 뜨문뜨문 피어난다. 장례식장과 화장터와 납골당이 더 이상 꽃상여를 필요치 않게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세월은 모든 것들을 바꿔 놓았다. 시나브로, 꽃상여는 먼 추억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는 중이다. 지금은 상여보다는 잔디를 주로 취급하는 곳이 되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음성 사람들에게 그 집은 '꽃집'이다. 고단했던 이생의 삶을 배웅해 주던 꽃상여였다.
(...)
죽은 이를 위로해 주고 마지막을 가장 아름답게 만들어 주었던 것이 꽃상여였음을 우리는 안다. 그러니 그 집은 꽃집이 맞다. 사람 향이 고운 '장미 꽃집'이 맞다.
184~18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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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꽃상여를 보기 어렵지만, 나의 어릴 적에는 가끔 어쩌다 목격할 정도는 되었다. 물론 그때도 흔한 일은 아니었지만, 꽃상여를 둘러맨 어른들이 노래를 불렀던 것이 드문드문 기억난다.

그 가락이 구슬프면서도 반복되는 말이라 더 기억에 남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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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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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이제 흐느실이라고 하는 외갓집에 더 이상 방문할 수 없다고 한다. 물에 잠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릴 적 경험했던 추억과 기억들은 여전히 떠올리며 추억할 수 있다.

우리 또한 마찬가지다. 소중한 사람들과 나눴던 장소, 시간, 경험들을 마음껏 떠올리며 추억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들을 가끔씩 떠올리며 다시 살아갈 힘과 용기를 얻을 수 있다.

'고향'하면 왠지 모르게 애틋하고 따뜻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어쩌면 이런 추억을 담고 있어서는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일을 위해 오늘 '따뜻한 추억'을 하나씩 만들어보면 어떨까. 어쩌면 그것이 먼 훗날 우리는 데워주는 또 다른 추억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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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시간_끄적끄적
LUMELA 지음 / 좋은땅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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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없이 끄적인 글의 모음집인 이 책은 어떤 것으로 정의 내리기 어렵다. 시도, 에세이도, 웹툰도, 그렇다고 일기 등 그 어떤 것으로도 정의 내리기 어려워 혼란스러울 수도 있을 것 같다.


여기에 더해 자신의 상념에 대해 쓴 글들을 다듬지 않고 그냥 엮어 낸 책이라 더 그렇게 느껴진다. 특정 종교에 대한 내용, 혼자만의 생각 등이 버무려져 말 그대로 자기 자신을 위한 책인듯한 느낌이다.


타인은 이해하기 어려운 자기만의 언어로 표현되어 있어, 이 책을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왜 이 책을 읽어야 하는가'에 대해 의문이 들지도 모르겠다.



목차는 계절적 느낌으로 구분하여 정리되어 있는데, 겨울을 제외한 가을, 봄, 여름 순으로 표기되어 있다. 내용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시, 웹툰, 에세이, 일기, 편지 등이 뒤죽박죽 섞여있는 형태다.


웬만하면 직접 그린 웹툰의 경우 가볍고 재밌게 읽을 법도 한데, 스토리가 빈약해 그냥 귀여운 그림만 감상하고 넘어가게 된다.



이 책은 '서른 살'이 된 시인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로 시작해 '미래의 남편에게' 전하는 말로 끝을 맺는다. 내용을 살펴보면, 서른 살이 아니라 십 대의(요즘 십대들은 더 성숙해서 초등학생이 쓸법한 내용처럼 느껴진다) 글처럼 유치하고 장난스럽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이 책에 담긴 글들은 기분이 멜랑꼴리 할 때마다 쓴 글로, 일명 멜랑꼴리 일기장 '자유시간 끄적끄적'이라 칭하고 있다.


소개 글에는 위로나 쉼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쓰여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위로나 쉼보다 '혼자 보고 넣어두었으면 더 좋았을 글'이라는 생각이 더 앞선다.


중간에 갑자기 생뚱맞게 들어가 있는 웹툰은 저자가 직접 그린 캐릭터들로 채워져있다. 대표 캐릭터는 '얌뱅이'로, 어렸을 때부터 깨작깨작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서 그리다가 탄생하게 된 첫 번째 캐릭터라고 한다. 더불어 얌뱅이는 저자의 어릴 적 친구들이 지어준 별명이기도 하다는 말이 덧붙여있다.


남들은 어떤 식으로 끄적이는지, 떠오르는 상념이나 생각들을 어떤 식으로 표현하는지 궁금하다면 이 책에서 확인하면 될 것 같다. 그만큼 아무 제한도 없고, 말 그대로 자유롭게 구성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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