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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느실, 외갓집 가는 길 - 2024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 창작 발간 기금 사업 선정
김경순 지음 / 바른북스 / 2024년 6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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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은 이름이자 단어이며, 강한 힘을 지닌다. 마법사가 외는 어떤 주문보다도 혹은 영혼이 응하는 어떤 주술보다도 강하다.
-찰스 디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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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부터 어떤 '그리움'이 묻어난다. 이제는 기억 속에만 남아 옛 것이 되어 버린 것들, 지금 사람들은 모르는 그 정겨움과 애틋함이 어떤 식으로 소환될지 기대가 된다.
잊고 살았던 그 시절의 이야기를 이 책을 보며 다시 떠올려 본다. '맞아, 그땐 그랬지'하며 소중했던 그 시간들에 잠시 젖어본다. 마치 앨범을 들춰보듯, 이제는 다시 만나볼 수 있는 그 시간들을 반추해 본다.
어릴 적 자라면서 들어왔던 이야기들, 특별한 날이면 가족과 함께 먹었던 음식과 장소 등 추억 속에만 남아있던 이야기들이 다시 널을 뛴다. 덕분에 콩닥콩닥 다시 그때로 돌아간 듯 설렘과 기대감이 부푼다.
어쩌면 그때 그 추억이 있기에, 지금의 나는 잘 살아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추억을 먹고 힘든 순간을 버텨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총 5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저자의 그리운 고향인 충북 음성에 두고 온 추억과 경험에 대한 이야기로 당시 느꼈던 자연, 사람, 추억, 경험들에 대한 내용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읽다 보면, 나의 추억 속에도 존재하는 교차지점이 드문드문 발견되는데 그럴 때면 반가운 마음이 이는 동시에 저도 모르게 추억 소환이 된다.
그리고 이내 그때의 분위기, 맛, 향, 느낌 등이 절로 피어난다. 여전히 그 장소가 존재하는지 궁금해진다. 어쩌면 이 책을 읽는 다른 독자들도 비슷하게 느끼지 않을까 한다.
저자의 추억 속 이야기와 나의 이야기가 교차되는 지점을 포인트로 몇 가지 에피소드들을 꼽아보았다. 나에게는 고향은 아니지만, 어릴 적 경험 속에 존재하는 기억들 위주로 꼽아보았다.
이것을 계기로 잊힌 그리운 나날들을 한 번쯤 되새길 수 있는 기분 좋은 하루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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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멍가게, 강원 상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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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상회 앞 평상은 비어 있는 때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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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역말의 정중앙을 관통하는 큰길 중간쯤, 강원 상회가 있다. 강원 상회는 노부부가 오랜 세월을 운영한 구멍가게다. 두 분 모두 몇 년 전 돌아가시고 지금은 빈 가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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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는 손재주가 좋으셔서 고장 난 연탄보일러 수리를 잘하기로 동네에서 소문난 분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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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장난기가 많은 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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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우리 부부는 가게 일로 깜깜한 밤이 돼서야 집에 돌아오던 때가 많았다. 아이들은 배가 고프면 강원 상회에서 외상으로 과자를 사 먹거나, 라면을 사다 끓여 먹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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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에는 언제나 할머니가 계셨는데 방에서 잘 나오지 않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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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해 보면 관절염으로 다리가 불편하셔서 그랬던 듯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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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상회는 내게 정말 고마운 곳이다. 이 동네로 이사를 오고 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둘째를 임신하게 되었다. 입덧이 심해 아무것도 먹지 못할 때, 강원 상회에서 사 온 막걸리로 메스꺼움을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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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마음이 힘든 나에게는 여간 고마운 곳이 아닐 수가 없었다.
12~1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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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시골에 살아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동네에 하나씩 존재하는 구멍가게에 대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 동네에 존재하는 유일무이한 가게였기에 동네 사람들의 사랑방 노릇을 톡톡히 했던 그곳은 그래서 소중했고, 많은 추억이 어려있다.
나의 어린 시절을 되돌아봤을 때 떠오르는 구멍가게는 두 곳인데, 하나는 시골 할머니 집에 갈 때면 찾아갔던 구멍가게와 또 어릴 때 옆 마을에 있던 구멍가게가 떠오른다.
할머니 댁에 있던 구멍가게는 명절이면 받은 용돈을 소비하러 가는 곳이었는데, 그곳에서 내가 구매했던 목록은 대체로 부루마블과 같은 게임이었다.
두 번째로 기억나는 옆 마을에 존재했던 구멍가게는 아이스크림과 같은 군것질거리가 먹고 싶을 때면 가던 곳이었는데, 땀을 뻘뻘 흘리며 자전거를 신나게 밟아 가던 것이 기억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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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빵집 옆에 만둣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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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주머니는 늘 가벼워 잘 열리지 않았는데 그래도 간혹 주머니를 푸실 때가 있었다. 그것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빵을 사 주실 때였다. 그때 빵집은 나무 의자 몇 개 놓인 허름한 천막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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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중간에 있던 그 집은 뿜어져 나오는 하얀 김 냄새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배를 요동치게 했다. 엄마의 손을 놓쳤던 그날도 나는 빵집 앞에서 정신을 놓고 말았다.
지금이야 언제든 마트에 가면 원하는 물건을 살 수 있지만 그 시절에는 모든 생활용품이나 식료품들을 5일장에서 해결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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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 빵집 지척에 있는 '영화 만두'는 우리 집 아이들이 좋아하는 만두 맛집이다. 명절이나 김장을 하는 날이면 미리 김치만두와 고기만두를 넉넉히 주문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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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만두는 사실 친정 엄마를 생각나게 하는 집이다. 엄마가 돌아가신 지 벌써 10년이 지났지만 그날을 생각하면 지금도 명치끝이 아리다. 그날은 어느 겨울의 끝이었다. 그날따라 엄마가 보고 싶었다. 큰딸아이와 함께 영화 만두에서 김치만두와 찐빵을 사서는 읍내에서 5리쯤 되는 친정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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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도랑 벽에 머리를 심하게 부딪치는 바람에 엄마는 뇌를 다치고 말았다. 그 후 치매로 병원과 요양원을 전전하다 끝내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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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음성 빵집과 영화 만두는 모두 어머니를 소환하고 추억하게 만드는 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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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어깨가 움츠러들고 옷깃을 여미게 되는 날이면 나도 모르게 빵집으로 발길이 향한다. 유독 커다란 솥뚜껑이 열리는 그 순간을 좋아한다. 뿜어져 나오는 김 속에서 몽실한 찐빵을 만나는 그 순간은, 아마도 장터에서 엄마와 내가 허기를 달래던 그 먼 추억을 소환하는 일이기 때문이리라.
21~2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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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에피소드에서는 추억을 소환하게 만드는 키워드가 여럿 발견되었다. 5일장, 빵집, 만두, 뚜껑을 열었을 때 하얀 김 냄새 등.
어릴 적 엄마 손을 잡고 5일장에 갈 때면 그렇게 신날 수가 없었다. 이것저것 구경하고 맛있는 길거리 음식을 즉석에서 먹는 맛이란 요즘 말로 '개꿀'이었다.
당시에도 그렇고 요즘에도 뚜껑을 열었을 때 하얀 김을 내뿜는 가게를 볼 때면 나도 모르게 걸음이 멈춰 선다. 이런 경우 보통 옛날씩 빵집이나 혹은 만둣집일 경우가 많은데,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다.
재래시장은 이런 맛이 있는 것 같다. 시선으로 잡아끄는, 즉석에서 먹는, 추억을 소환하는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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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새댁들의 정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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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아기가 있는 집에 들어서면 언제나 마당에 빨랫줄 가득 하얀 기저귀가 펄럭였다. 그 풍경은 싱그러움과 달콤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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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정말 남편은 '바깥사람'이었고 아내는 '안사람'이었다. 나를 비롯한 주변의 아내들은 모두 집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살림만 하면 되었다. 아이를 기르는 일은 고된 일이 분명하지만 세 아이를 키우면서도 힘들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것은 아마도 그 시절 함께 아이를 키우며 좋은 인연으로 이어진 사람들 때문일 것이다. 그때는 지금만큼 통신매체가 발전하지 못했던 때라 아기 엄마들은 서로의 경험을 주고받으며 육아에 대한 궁금증을 풀곤 했다. 그렇게 정보를 공유했던 곳이 바로 아기 옷을 파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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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비라와 아가방은 시장통에 있던 가게였다. 그런데 그 가게들이 아가방만 남기고 꽤 여러 해전에 문을 닫았다. 그만큼 아기 옷을 찾는 사람들의 수요가 줄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명백을 이어 오던 아가방마저 얼마 전에 문을 닫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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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반증하듯 전국의 학교 수가 줄고, 산부인과와 소아과가 사라지는 추세이다. 음성에도 산부인과와 소아전문 병원이 없어진 지 오래다. 유치원의 원생 수도 워낙에 적다 보니 각 유치원마다 두세 개 반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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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옛날이야기가 되어 버린 말이 있다. "자기가 먹을 건 다 갖고 태어난다.", "낳아 놓기만 하면 알아서 크게 마련이다" 지금의 신혼부부들은 이 말을 절대 신뢰하지 않는다.
31~3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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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추억을 소환하는 단어들을 만났다. 어쩐지 신나는 기분으로 읊어보다가 이제는 다시 만나볼 수 없는 말과 단어들이라는 생각에 갑자기 서글퍼진다.
예전에는 아가옷 하면 입에 착 붙던 몇몇 브랜드가 있었는데 바로 베비라와 아가방이었다. 여기저기 쇼핑몰, 마트, 시장 등에서 자주 목격되던 브랜드들이었는데 이제는 어느새 모두 사라져버렸다.
더불어 이제 옛말이 되어 버린 말도 발견할 수 있었는데, "자기가 먹을 건 다 갖고 태어난다.', '낳아 놓기만 하면 알아서 크게 마련이다'라는 말은 정말 어릴 때 여기저기서 어른들이 많이 또 자주 하던 말이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에게 이런 말 하면 바로 욕먹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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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1987, 샛별 레스토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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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별 레스토랑'은 비원보다 한참 후에 생겨난 가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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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원'은 얼마 지나지 않아 폐업을 하고 '샛별'이 유일한 경양식 가게로 그 명맥을 이어 갔다. 우리 가족이 샛별 레스토랑을 가는 날은 특별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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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내에 샛별 레스토랑이 들어서자 아이들의 졸업식 후 풍경도 달라졌다. 그 전에는 졸업식이 끝나면 가족 단위로 중국집을 찾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샛별 레스토랑이 생긴 후부터는 그곳에서 밥을 먹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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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별 레스토랑의 돈가스는 음성 사람들에게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았다. 우리 가족도 아이들의 졸업식 날이나 생일날은 꼭 그곳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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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별 레스토랑은 중앙의 단체석만 빼면 자리마다 작은 칸으로 나누어져 있다. 게다가 각 칸에 커튼도 달려 있어 다른 사람들로부터 방해를 받지 않는다. 그러니 그곳은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도 제격이었다.
우리 부부는 가끔 옛날이 그리울 때면 샛별 레스토랑을 찾아간다. 남편은 양도 많고, 고기가 부드러운 그 집 돈가스를 좋아한다.
95~9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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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에피소드를 읽으며 나의 추억 속에도 존재하는 경양식 레스토랑이 불현듯 떠올랐다. 지금도 그때의 맛, 분위기, 향 등이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특별한 날 참 많이도 갔던, 내가 좋아했던 장소중 하나였다.
2~3층 높이의 나무로 된 멋들어진 내부 인테리어는 물론, 칸칸이 나뉘어 있던 좌석, 그리고 돈가스를 주문하면 먼저 나오던 수프까지.
지금 만약 이런 경양식 레스토랑이 운영되는 곳이 있다면 꼭 한번 방문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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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짜장면의 추억, 동화 반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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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시골 읍내의 중국집들은 학교 졸업식이 있는 날이면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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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바탕 눈물로 이별의 졸업식을 마치고, 읍내에는 자랑스러운 졸업장과 꽃다발을 손에 든 학생들로 거리가 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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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가족 단위의 사람들이 삼삼오오 찾아가는 곳은 대부분 중국집이었다. 우리 가족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버지를 제외하고 어머니와 언니, 오빠들 모두 함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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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그 집, 동화 반점은 영업 중이다. 지금은 그때보다 규모가 훨씬 축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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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는 것도 먹는 것도 넉넉하지 않던 그 시절, 짜장면은 분명 우리를 행복하게도 설레게도 해 주던 음식이었다. 지금은 비만을 부르는 음식이라 하여 다이어트 하는 사람들에게 외면을 받기도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나에게는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음식 중 하나다. 어쩌면 짜장면 한 그릇에 부자가 된 듯 행복해하던 자식의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엄마가 그리워서인지도 모르겠다.
114~11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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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다! 경양식 레스토랑 이전에는 중국집이 있었다. 졸업식, 입학식 등 특별한 날이면 온 가족이 모여 중국집을 방문하고는 했는데, 그때 먹었던 자장면은 정말이지 너무 맛있었다.
자장면에 탕수육까지 추가해서 먹는 날이면 그날은 정말 최고의 하루일 만큼 행복한 날이었는데, 문득 그때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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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장미 꽃집에 대한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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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그 집이 그런 집인 줄 알지만 그때는 까마득히 몰랐다. 30년 전쯤이었을까? 정말 향기 나는 꽃들이 만발한 꽃집인 줄 알았다. 그러니 그 집 앞을 무던히도 잘 지나다녔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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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그 집은 누군가 죽음을 맞아야만 찾게 되는 집이었다. 물론 그때도 잔디를 팔긴 했지만 대개는 꽃상여를 더 많이 팔았다. 근방에 꽃상여집이 그 집밖에 없어 그 집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남편과 들른 그날도 누군가를 싣고 떠날 만반의 준비가 된 꽃상여가 가게 안을 환하게 밝혀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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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날 묻고 싶었다. 가게 이름을 '장미 꽃집'으로 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말이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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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 집에서는 꽃이 뜨문뜨문 피어난다. 장례식장과 화장터와 납골당이 더 이상 꽃상여를 필요치 않게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세월은 모든 것들을 바꿔 놓았다. 시나브로, 꽃상여는 먼 추억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는 중이다. 지금은 상여보다는 잔디를 주로 취급하는 곳이 되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음성 사람들에게 그 집은 '꽃집'이다. 고단했던 이생의 삶을 배웅해 주던 꽃상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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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이를 위로해 주고 마지막을 가장 아름답게 만들어 주었던 것이 꽃상여였음을 우리는 안다. 그러니 그 집은 꽃집이 맞다. 사람 향이 고운 '장미 꽃집'이 맞다.
184~18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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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꽃상여를 보기 어렵지만, 나의 어릴 적에는 가끔 어쩌다 목격할 정도는 되었다. 물론 그때도 흔한 일은 아니었지만, 꽃상여를 둘러맨 어른들이 노래를 불렀던 것이 드문드문 기억난다.
그 가락이 구슬프면서도 반복되는 말이라 더 기억에 남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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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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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이제 흐느실이라고 하는 외갓집에 더 이상 방문할 수 없다고 한다. 물에 잠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릴 적 경험했던 추억과 기억들은 여전히 떠올리며 추억할 수 있다.
우리 또한 마찬가지다. 소중한 사람들과 나눴던 장소, 시간, 경험들을 마음껏 떠올리며 추억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들을 가끔씩 떠올리며 다시 살아갈 힘과 용기를 얻을 수 있다.
'고향'하면 왠지 모르게 애틋하고 따뜻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어쩌면 이런 추억을 담고 있어서는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일을 위해 오늘 '따뜻한 추억'을 하나씩 만들어보면 어떨까. 어쩌면 그것이 먼 훗날 우리는 데워주는 또 다른 추억이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