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 예찬 - 위대한 사상가들의 실패에 대한 통찰
코스티카 브라다탄 지음, 채효정 옮김 / 시옷책방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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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에 대한 통찰이라기보다, 전기문에 가까운 이야기 모음집!"


실패에 대한 통찰이라고 해서 처음에는 나름 기대감도 가지고 있었다. 어떤 사상가들을 앞세워 실패에 대해 이야기할까, 또 실패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색다른 통찰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내심 궁금한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1장을 채 벗어나기도 전에, 머릿속에 물음표가 뜨기 시작했다. 통찰이라고 하면 보통 어떤 것에 대한 깨달음이 주를 이룰 거라 기대하기 마련인데, 실상 담겨있는 내용들을 살펴보면 각 장마다 대부분의 페이지를 채우고 있는 것은 사상가들의 삶에 대한 내용이다.

여기저기서 내용을 가져와 덧붙인 스크랩 같은 내용들이 덧대어 있었다. 실패 사례를 설명하기 위한 예시라는 명분으로 내용들을 가져와 덧붙인 것 같은데, 생각보다 방대하고 저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내용과 상관없는 내용들도 꽤 포함되어 있었다.

여기에 더해 각 장마다 최소 2~3명 이상의 사상가의 삶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어, 오히려 전기문에 가깝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 정도였다. 또 구성 방식이 오로지 텍스트로만 점철되어 있어, 눈빠지도록 그냥 글자만 줄줄이 읊어야 하는 상황이 지속되어 집중력도 자꾸만 뚝뚝 떨어졌다.

뭔가 정제되지 않은 책이라는 느낌과 함께 저자가 과연 제대로 소화하고 쓴 책이 맞는 건가 하는 의심이 드는 그런 책이었다.


총 4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실패에서 얻는 이로운 점에 대해 담고자 여러 사상가의 삶을 스토리로 엮어 전달하고 있다.

각 장에서는 대표되는 인물 외에 몇몇의 사상가들의 삶과 그들이 살아가면서 무수히 겪은 실패의 이야기를 전하며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실패에서 얻은 통찰력을 함께 전하고자 한다.

책이 전개되는 방식은 가장 바깥에 있는 원에서부터 점차 내밀하게 안쪽으로 향하는 방식으로 전개되는데, 이를테면, 물리적 실패, 정치적 실패, 사회적 실패, 생물학적 실패 순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핵심 내용을 먼저 확인하고자 한다면, 책의 맨 뒤쪽 표지에 정리되어 있는 내용을 먼저 확인하는 것이 가장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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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말하는 실패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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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전적으로 사무엘 베케트풍의 책으로, '더 잘 실패하기'보다 더 나은 것을 제안하는 것, 즉 '더 심하게 실패하기'를 지향한다.

이를 통해 실패 자체를 위한 실패가 아니라 실패가 낳은 겸손, 그리고 실패가 촉발하는 치유 과정에 대해 말하며 실패를 잘 활용하는 법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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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략 요약 내용 살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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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타락한 세상에서
-실패의 종류: 물리적 실패
-대표 사상가: 시몬 베유
-실패 예찬 키워드: 서투름

■2장. 정치적 실패의 폐허 속에서
-실패의 종류: 정치적 실패
-대표 사상가: 마하트마 간디
-실패 예찬 키워드: 불완전성

■3장. 위너와 루저
-실패의 종류: 사회적 실패
-대표 사상가: 에밀 시오랑
-실패 예찬 키워드: 루저

■4장. 궁극의 실패
-실패의 종류: 생물학적 실패
-대표 사상가: 세네카
-실패 예찬 키워드: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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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살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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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잘 사는' 인생에 있어서 실패가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갖는지를 이야기하기 위해 여러 사상가의 이야기를 가져왔다. 이들의 실패담을 소개하고, 그들이 실패를 어떻게 극복하고 성공할 수 있었는지를 조명하며 실패의 영향력과 선순환에 대해 4장으로 나누어 다룬다.

소개된 이들 중 마하트마 간디의 경우, 그동안 알던 내용과는 다른 내용들이 많아 조금 충격적으로 다가왔는데 이에 대해서는 아래 별도로 다룰 예정이다.

저자는 우리가 실패를 거듭할수록 깎여나가고 다듬어지며, 겸손해지고 궁극적으로 더 나은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이 책을 통해 실패란 무엇이고, 이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겠다.


1장. 타락한 세상에서 (물리적 실패: 서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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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유의 신체적 불안전성은 나이가 들수록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점점 더 큰 고통을 야기하며 베유 곁에 머물게 될 터였다. 하지만 고통스러울수록 통찰력은 더 커졌고, 베유는 엄청난 고통을 겪었기에 그 통찰력은 엄청난 경지에 이르렀다.
(...)
일평생 시몬 베유는 근본적으로 서툴렀고 물리적인 세상에 대처하며 상당한 노력을 해야 했다.
(...)
베유의 서투름은 그 매력의 일부분이었다.
34,3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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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투름은 실패의 기이한 형태이고, 이 실패는 당신의 것인 동시에 당신 것이 아니다. 이 실패가 당신의 것인 이유는 실패하는 사람이 당신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아무 어려움 없이 달성하는 일을 당신은 운동 협응이 부족하여 성취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실패는 당신이 완전히 통제할 수 없는 당신의 일부분 탓이므로 엄밀히 말하면 당신의 실패가 아니다. 그러나 당신은 그 결과로 고통을 받는다. 베유가 평생 그랬듯이 자신의 잘못은 그다지 없는데도 말이다.
4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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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실패와 조우함으로써 우리가 얻는 이점이 또 있다. 그 실패를 경험할 때는 당신만 산산이 부서지는 게 아니라 당신의 온 우주도 산산이 부서진다. 실패는 당신의 개인적 존재 규정의 반대편에 있는 무만 드러내는 게 아니라 세상 안에 존재한다는 것 자체의 결손까지 드러내 준다.
(...)
우리는 종종 무언가가 고장 났을 때 비로소 그 존재를 깨닫곤 한다.
(...)
어떻게 보면 그 물건들의 존재가 느껴지고 완전히 보이기 시작하는 것은 이 물건들이 실패했을 때만이다. 그 물건들은 그 안에서 상당한 무가 기어들어 온 후에야 비로소 보이는 것이다.
57~5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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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든 게 흠결 없이 작동하는 세상에는 점점 주의를 덜 기울일 것이다. 평소와 다른 일이 아예 일어나지 않고 아무것도 망가지지 않으면, 점점 두꺼워지는 익숙함의 베일이 외부 세상을 덮고 그 베일에 가려서 우리는 눈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이런저런 물건을 사용하고 이런저런 작동을 수행하면서 부지불식간에 우리 삶은 전부 일상적인 틀에 박혀 있게 된다.
(...)
달리 말해 실패보다 더 나쁜 것이 있다면 그건 실패의 부재다. 실패를 우리를 찌르고 그러는 가운데 우리를 현실과 접촉시킨다. 그 접촉이 비록 무자비하고 고통스럽다 해도, 실패는 어느 정도의 긴급성을 띠고 와 우리 가운데 가장 도취된 자의 취기조차 가시게 한다. 실패를 얼마나 많이 경험하든 간에 실패는 늘 새로움을 유지하고 있다.
(...)
실패는 우리에게 새로운 관점을 부여한다. 실패를 경험한 사람 앞에서 세상은 다시 태어난다. 이전의 추정은 산산이 부서지고 확신은 흐려지며 좋은 평판을 누리던 진실은 망신 당한다.
(...)
실패 안에서 세상은 자신을 우리에게 완전히 개방하고 비밀을 일부 드러낸다. 실패는 우리 인식을 명민하게 하고 시야를 명료하게 하여 사물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게 해준다. 실패가 없는 세상에서 우리는 현실에 대한 접근을 중단하고, 어떤 것을 과거 어느 지점에서 기록된 대로 아무 생각 없이 보고 끝없이 재생하며 생명 없는 눈으로 바라본다. 그런 세상은 더 이상 진짜가 아닐 것이다. 우리도 진짜가 아닐 것이다.
59~6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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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에서는 시몬 베유를 앞세워 서투름에 대한 실패를 예찬하고 있다. 서투름으로 인해 베유가 겪었던 고통과 삶에 대해 그리며 우리가 겪는 물리적 실패에 대해 함께 이야기한다.

사물의 실패는 나뿐만 아니라 온 우주가 산산이 부서지는 경험이라 말하며 이로 인해 세상 안에 존재하는 결손까지 드러난다 말한다.

이 덕분에 물리적 실패는 우리가 세상에 존재하는지 미처 몰랐던, 잊고 있었던 물건들의 존재를 상기시켜주고 또 주의를 기울일 수 있도록 돕는다고 말한다.

이런 실패가 있기에 우리는 늘 새로운 관점을 가질 수 있으며 이로 인해 감춰져 있던 것들을 비로소 제대로 마주하고, 있는 그대로 인식할 수 있도록 돕는다고 말한다.


2장. 정치적 실패의 폐허 속에서(정치적 실패: 불완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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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는 '사건들 속에서 우주를 설명하고자 하는 이론이 아니라 의미를 찾으려는 시도다'라고 쓴다. 과학적 이론이나 철학적 개념을 위해 목숨을 걸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자기 신념을 위해 죽은 사람은 셀 수 없이 많다.

모든 성숙한 종교를 규정하는 것은 사람들의 삶 속에 지치지 않고 의미를 가져다준다는 능력이기 때문에, 정치인들은 종교적인 사람들로부터 최대한 많은 것을 훔치고자 하는 유혹을 느꼈다. 정치 세력은 종교의 해석학적 기능의 일부를 취하여 자체가 위신과 권위와 통제력을 강화하고 싶어 한다.
10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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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인 사람들이 관련성을 잃어가기 시작할 때 정치적인 사람들은 주저하지 않고 끼어들어 스스로가 배타적인 의미의 근원임을 예시한다. 그게 바로 정치 자체가 종교의 한 형태가 되는 방식이다. 그리고 이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
사람들은 그에게서 나오는 것은 무엇이든 심지어 가장 어리석은 허튼소리마저도 게걸스럽게 삼킬 것이고 그를 구원자로 상상할 것이다.

정확히 이것이 <의지의 승리>에 나오는 것이다.
10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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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가 도래하는 데 필요한 것 중 하나는 강력한 겸손함이다.
12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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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민주주의자가 되는 것은 달리 말해, 함께 사는 문제에 관한 한 당신이 당신 앞에 있는 사람보다 더 나을 것도 더 똑똑할 것도 없다는 걸 이해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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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민주주의적 정권들은 종종 완벽을 주장하는 반면에 민주주의 국가들은 그 중심에 불완전성을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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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적으로 사는 것은 불완전성을 포용하는 것, 실패를 다루는 것, 일반적으로 인간 사회에 관한 망상을 거의 갖지 않는 것이다. 거의 신성함에 가까운 그런 겸손함만이 진정한 민주주의를 가능케 할 것이다.
12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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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가진 어려움을 더욱 악화시키는 것은 옛 신들의 죽음으로 사람들이 영적 고아가 되었고, 그래서 정치적 방향 감각을 잃어버린 세상에 산다는 점이다. 우리의 급진적인 세속화는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의 영적인 욕구를 해결하고 우주에 대한 소속감을 주며 삶에 의미를 더한 준거의 틀을 산산이 부서지게 만들었다. '신의 죽음'은 모든 걸 바꾸었다. 특히 신과 크게 관련은 없어 보이는 것들을 바꾸었다.
13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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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에 '굶주렸'을 때 사람들은 음모론 중에서도 가장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것조차 삼켜버릴 거라고 <푸코의 진자>에서 어떤 이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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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만들어내는 스토리가 얼마나 미친 소리든 간에 방향 감각을 잃은 관중은 게걸스럽게 받아먹을 것이다.

우리에게 이야기가 필요한 이유는 본질적으로 서사적인 의미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집단적 의미가 더 이상 신성한 이야기들에서 생성되지 않을 때 그 의미를 우리는 가장 신성 모독적인 곳에서 찾을 것이다. 이를테면 포퓰리스트 정치에서.
(...)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 하나,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법을 아는 것이다. 그들이 이것저것 섞어 만든 이야기가 매혹적이면 매혹적일수록 그들이 대중을 정서적으로 통제할 기회가 많아진다. 그래서 포퓰리스트 정치가들은 과장된 표현을 할 때가 많다.
138~13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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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실패는 그 작용 방식이 물건의 실패보다 더 교묘하며 더 치명적이다. 우리가 정치적 재앙을 목격할 때마다 그와 함께 우리의 일부분도 죽는다.
(...)
정치적 실패는 종종 그 뒤에 시체더미가 남을 뿐 아니라 우리를 지적으로 무력화시키고 타락시킨다. 무엇보다도 수치스러운 것은 모든 게 말해지고 행해지고 나서도 과거로부터 배우지 못한다는 것이다.
(...)
인간은 모두 필멸하는 존재지만 이 세상의 히틀러와 스탈린은 결코 진정으로 죽지 않고 이름만 달라졌을 뿐이다. 우리는 그들의 잔학 행위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일이 다시 자행되는 것을 막지는 못한다. 그 반대다.
20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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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기 때문에 정치적 통일체로부터 떨어져 나오려는 노력에는 우리의 본성에 역행하고 우리를 분해하는 일이 따른다. 그러나 우리가 치유되려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다.
(...)
급진적 정치 프로젝트(유토피아 정부, 전체주의 국가, 피비린내 나는 혁명)가 실패했을 때 우리가 직면하는 상실과 파멸의 광경을 충분히 주의 깊게 들여다본다면 또렷한 경고를 듣게 될 것이다. "자신이 소망하는 바를 조심하라!" '미덕의 공화국' '계급 없는 사회' '이상적인 국가' '완벽한 지역사회'
(...)
정치적 현실로부터 거의 완전히 떨어져 나와서 스스로를 무효로 만드는 세상이다.

유토피아의 문제점은 실현하기 불가능하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해 근본적으로 이질적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심각하게 불완전한 피조물이다. 체면상 우리는 이 개념을 우리가 세상에서 정치적으로 추구하는 모든 것 안에 놓아야 한다. 하지만 반복되는 정치적 실패와 그에 따른 시체 더미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도 품위가 부족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래서 완벽함에 대한 강박적인 욕구와 순수성에 대한 잘못된 추구에서 우리는 결국 그 어느 때보다 불완전함 속에 뒤죽박죽이 된다. 허구를 현실로 착각하는 것은 순진할 뿐 아니라 매우 위험하다.
(...)
이러한 실패는 우리를 겸허하게 만들며, 우리는 다른 어떤 것보다 아무것도 아닌 것에 더 가깝다는 중요하고 단순한 교훈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완벽하고 모든 것이 되려고 노력하다 보면 우리는 실제로 우리 손이 닿을 수 있는 것을 성취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된다.
202~20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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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의 해석학적 기능의 일부를 취하여 그 힘을 키운 정치의 역사에서부터 시작해 이것이 가지는 힘과 영향력에 대해 이야기하며 추후 이것이 민주주의를 차용하게 되면서 어떤 식으로 변화되었는지까지 다루고 있다.

더불어 급진적인 세속화로 인해 영적인 부분이 사라지면서 의미를 잃어버린 사람들을 꾀어낸 포퓰리스트 정치에 대해서도 함께 다룬다.

여기에 더해 정치적 실패가 가져오는 재앙과도 같은 문제점에 대해 함께 다루며, 히틀러와 스탈린과 같은 지도자를 꼽는다. 이로 인해 우리는 무력화되고 타락된다 말하며 이런 경험들은 세대가 바뀌고 시간이 지나도 학습되지 않으며, 지속적으로 반복된다 말한다.

이러한 실패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정체적 통일체로부터 떨어져 나와 스스로 무효로 만드는 세상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말하며, 우리 스스로 불완전한 피조물임을 인정하고, 이것 안에서 정치적인 부분을 염두에 두는 것이 맞지만 사람들은 결코 그렇게 하지 않기에 문제가 된다 말한다.


3장. 위너와 루저(사회적 실패: 루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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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저는 궁극의 사회적 실패다. 한 지역사회 안에서 루저와 실패를 규정하는 방식은 결코 순수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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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들은 특히 루저를 구축하는 데 능하다. 루저들은 아메리칸 드림과 함께 그 어둡고 수치스럽고 추한 면도 가지고 오는 것 같다.
20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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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조직된 사회에서는 저마다 고유한 '루저'유형을 만들어 낸다.
20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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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오게네스는 루저였을지는 몰라도 스스로 원해서 철학적 소명의 문제로 루저가 된 것이었다. 디오게네스의 기이한 행동이 아무리 가증스러워도 아테네인들은 기꺼이 동조하는 시늉을 했다. 그것이 아테네인들이 사회적 실패를 규정하고 관여한 방식 중 하나였다.

오늘날 루저가 되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다. 우리는 루저들 가까이 가는 건 싫어하면서도 루저들에게 집착하는데, 아마도 우리 자신이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 겁을 먹기 때문일 것이다. 루저가 되는 것은 우리가 자신을 보는 방식과 사회 속에서 우리 자리를 보는 방식을 형성한다.
(...)
실패는 우리는 동요시키고 불안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무언가는 우리 사회가 루저로 여기는 사람들과 우리가 관계를 맺는 방식에서 드러난다.
20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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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있어 실패는 실패하는 사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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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자가 되는 건 실천이나 지능,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다. 실패자라는 것은 당신이 누구냐의 문제지 당신이 무엇을 하느냐, 말하느냐, 생각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마치 당신이 그렇게 될 운명인 것처럼 실패는 떨쳐버릴 수 없는 아우라다. 특정 생활방식 선택의 요소가 수반돼야 할 수도 있으나, 북미, 유럽 등 오늘날 많은 '문명화된' 세계에서 루저가 된다는 건 저주받은 일이다. 당신이 무엇을 생각하고 말하고 행하는 지와는 상관없이 실패로부터 당신을 구할 수 있는 것이라곤 전혀 없다. 당신이 지옥불에 떨어지는 건 존재론적이다.
20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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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랑은 미치지 않기 위해, 자신이나 타인을 죽이지 않기 위해 글을 쓴 것이다.
(...)
시오랑은 글을 쓰면서 죽음을 벗어나기를 계속 반복했다.
21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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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랑은 실패와 사랑에 빠져 있었다. 실패의 유령은 시오라의 초기 저서들부터 모든 작품에 출몰한다. 시오랑은 평생 동안 실패로부터 벗어나는 일이 결코 없었다.
(...)
끝내 실패로 남는 건 개인에게만 국한되는 일이 아니라 사회, 민족, 국가 또한 그럴 수 있다고 시오랑은 믿었다. 특히 국가를.
21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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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조건 자체도 또 하나의 실패한 프로젝트다. 시오랑은 <태어났음의 불편함>에서 '더 이상 인간이고 싶지 않다'며 '실패의 또 다른 형태를 꿈꾸고' 있다고 쓴다. 우주는 하나의 큰 실패이고 삶 자체도 그렇다. "근본적 실패가 되기 전의 삶은 죽음과 시조차 제대로 바로잡아줄 수 없는 취향의 실패다."라고 시오랑은 말한다. 실패는 세상을 구약성서의 변덕스럽 신처럼 다스린다.
21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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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저가 루저인 것은 그러한 판정을 통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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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신학 교리인 예정설은 지옥행과 관련된 존재론을 구체적으로 다룬다. 우리 사회 안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루저들과 관계 맺는 방식은 '선택된 자들'이 '버려진 자들'을 취급하던 방식을 떠오르게 한다.
21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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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는 '하는 일에 기반해서가 아니라 전적으로 신의 의지에 기반해서 발생한다'고 칼뱅은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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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자는 생각이나 말이나 행동 때문이 아니라 누군인지 때문에 버려진 자인 것이다. 타락은 개인의 청렴이나 실천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다. 타락한 사람은 우리 언어로 말하자면 완전한 루저다.
22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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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랑은 인간 혐오자였던 것으로 유명하지만 그가 끝없는 이해심을 가졌던 인간 유형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루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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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랑은 자신의 젊은 시절을 되돌아볼 때면 늘 부드러움과 황홀함이 섞인 기분으로 자신이 로마에 있을 때 숙고했던 위대한 루저들과 끝없는 극적인 실패를 떠올렸다.
22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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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된 자들이 버려진 자들을 필요로 하듯 성공한 사람들은 실패한 사람들을 필요로 한다. 성공한 사람들은 루저를 맹렬히 경멸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세상 다른 무엇보다 필요로 하는 것이 있다면 그건 주위에 루저들을 두는 것이다. 현자들이 말하듯이 내가 성공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가 않다-남들이 실패해야 한다. 내가 구원받는 것은 정확히 남이 구원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남들이 비참해하는 광경이 없으면 내 성공은 결코 완전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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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저들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다면 성공한 사람들은 치명타를 맞을 것이다.
231~23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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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랑은 실패한 우주에서는 루저의 삶만이 살 가치가 있는 유일한 삶이라는 깊은 신념이 있는 사람이었다.
252~25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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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저의 모습은 우리에게 닥칠 수 있는 최악의 상황, 즉 타락, 해체, 파멸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에 불안하다. 의식적이지는 않더라도 본능적으로 우리는 사회 질서가 항상 불안정하기 때문에 그런 일이 항상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심연은 언제든지 저편에서 우리를 찌를 수 있다. 루저는 분명히 존재해야 하며 어딘가에는 있어야 하지만 너무 가까이 있으면 안심할 수 없다.
25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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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콧 샌디지는 19세기 미국에서 실패에 대한 불안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연구했다. 그는 '실패'와 '루저'의 시작은 소박했다고 관찰한다. 이 단어들은 원래 특정한 사건과 상황을 의미했다. 예를 들어 1852년에 나온 아동 도서에 따르면 실패는 '빚을 갚지 못하는 것'이었고, '루저'는 무언가를 잃은 사람 이상의 극적인 의미는 아니었다.
(...)
모든 것이 빠르게 달라졌다. 수십 년 만에 '실패'는 '파산으로 인한 자본 손실'에서 '낭비된 인생의 기회 상실'로 그 의미가 바뀌면서, 살면서 겪는 하나의 사건보다 훨씬 더 크고 위협적인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 비즈니스 세계를 재편한 실패는 사회 전반과 사람들의 정신과 마음속으로 스며들어 자신과 자신의 위치를 바라보는 시각을 형성했다.
(...)
그 이후로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실패는 정상화되고 내면화되었다. 우리는 단지 그것에 익숙해졌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실패, 즉 그것에 긍정적으로 중독되어 버렸다. 정작 우리 자신의 실패는 잘 보지 못한다. 다른 사람의 실패를 주시하느라 바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자신의 실패가 가장 심각하다.
(...)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콘크리트>의 주인공 루돌프의 말처럼 "우리는 우리보다 더 불행한 사람을 통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우리가 다시 쓰러질 때까지.

그것이 우리 실패의 원인이다. 사회적 성공에 대한 우리의 채워지지 않는 갈증, 순위 매김과 서열에 대한 우리의 집착, 최대한 많은 돈을 벌려고 하는 우리의 강박은 쓰면 쓸수록 우리 내면을 파산시킬 것이다. 걸어 다니는 껍데기들, 우리의 삶은 화려한 만큼 속이 비어있다. 우리는 심각하게 병들었고 치료가 절실하다.

이론적으로 치유는 비교적 간단한 일이어야 한다. 많은 것을 할 필요가 없어야 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 바로 이 점이 특별성을 더하는 것이다. 오스카 와일드가 관찰한 것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가장 어렵고 가장 지적인 일이다."
(...)
우리가 진보를 이루려면 우리는 우선 완전히 멈추어야 한다. 강박적으로 바쁜 상태로는 결코 우리 자신을 실현하기는 커녕 발견하지도 못할 것이다.
(...)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은 우리가 뒤로 한 걸음 결정적인 발걸음을 옮겨 그대로 서서 우리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게 해준다. 우리의 고요함과 거리 두기 덕분에 우리는 우리가 처한 상황을 보다 진실된 관점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내면에 가지고 다니는 그 끔찍한 공허감을 이해했을 때 우리는 회복되기 시작했음을 알게 될 것이다.
286~28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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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로 다루는 실패는 사회적으로 문제시 되고 있는 '루저'에 대한 것으로, 이것의 의미가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부터 시작해 오늘날 그 의미가 사람들에게 얼마나 크게 작용하는지를 함께 다루고 있다.

루저가 된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식과 사회 속에서 루저로 자리 잡았을 때 완전히 실패자로 낙인찍히는 상황들을 자세하게 다루며, 루저의 의미를 되짚어 본다.

루저는 어떤 문제가 있어서 루저가 되는것이 아닌 '존재'의 문제로 다뤄진다 말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낙인찍히는 순간 그냥 지옥불에 떨어지는 것이라 봐도 무방할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스스로 루저가 되기를 자처한 디오게네스를 보면 어떤 의미에서는 매우 용감한 사람이 아니었나 싶다. 더불어 실패와 사랑에 빠진 시오랑은 인간 조건 자체, 삶, 우주 모두가 실패라고 보았으며 그런 실패를 오히려 즐기며 아무것도 안 하는 것으로 인생을 보냈다.

오늘날 우리의 현실을 보면 루저라는 개념은 상대적이며, 이분법적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 이유를 살펴보면 성공의 개념을 '나의 기준'에 두지 않고, 상대의 실패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성공한 사람들은 완전한 나의 성공을 위해 남들이 실패하기를 원하고, 또 그런 실패자들을 가까이 둠으로써 자신의 위신을 더없이 높이는 방법을 활용한다.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당연한 것처럼 나보다 못한 사람, 실패한 사람들을 보며 힘을 얻고 다시 일어선다고 말하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것은 매우 잘못된 생각이다. 이것은 어쩌면 성공에 대한 집착, 갈증, 강박 등이 쌓이고 쌓여 만들어낸 허상이 아닐까 한다.

때문에 어쩌면 시오랑이 실천한 실패한 우주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삶이 지금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해결책이 아닐까 싶다. 일단 멈춰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그것을 통해 주변을 돌아보고 우리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

그 치유의 시간을 통해 누군가를 루저라 폄하하고 상하 구분을 지어 더 높은 곳에 자리하려는 공허함과 허상을 치유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4장. 궁극의 실패(생물학적 실패: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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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밀한 실패의 형태, 즉 다른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을 정도로 심오한 '우리 것'이 있다. 궁극적인 실패, 즉 우리 자신의 죽음에 직면했을 때 경험하는 실패에 비할 것은 없다.

이 마지막 원은 매우 촘촘하고 개인화된, 세상에서 오직 한 사람, 즉 당신에게만 맞는다. 가족, 친구, 의사 등 다른 사람들이 동행할 수 있지만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혼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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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와 문화를 막론하고 우리가 어떻게 죽는가는 우리가 어떻게 사는가, 그리고 우리 삶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준다.
292 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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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는 평생 동안 죽음이 우리 존재에 미치는 특별한 힘, 즉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 우리의 삶과 행동 방식을 어떻게 형성하는지 이해하고자 노력했다. 톨스토리에게 죽음은 단순한 관조가 아니라 자신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치유할 수 있기를 바랐던 산산이 부서지는 몰입적인 경험이었다. 톨스토이는 모든 등장인물과 함께 죽고 또 죽으며 궁극적인 실패에 대비했다.
29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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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실패를 통해 존재의 얽힘에서 벗어나 더 나은 이해를 얻고 더 깨달은 삶을 살기 위해 실패를 활용할 수 있다. 실패는 특히 밧줄보다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실패를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과 세상,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의 위치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것은 전부 배우게 된다. 그리고 특히 우리 자신과 세상을 초월하는 것, 우리 존재가 발생하는 심연의 끝자락에 대해 배우게 된다.

실패는 다른 어떤 경험보다도 눈이 떠지는 경험이다. 물리적 세상에서 삶이 발생할 덕분에 우리는 존재의 구조와 우리 자신의 내면에 생긴 균열을 보기 시작한다. 사물이 그 기능을 수행하지 못할 때 그 것들은 우리 주변 세상의 근본적인 위태로움을 드러낸다. 그렇게 우리는 심연을 처음 맛보게 된다. 실패는 또한 인간 역사가 타인을 정복하고 지배하고 제거하려는 지속적인 분투에 불과하다는 것, 우리의 정치 기관들이 불안정하고 완벽하지 못하다는 것을 드러내 준다. 또 한 번 실패를 맛본 것이다. 실패 덕분에 우리는 또한 사회의 요구가 그 구성원들에게 얼마나 비합리적일 수 있는지, 그 기대가 얼마나 엉뚱할 수 있는지, 그 판단이 얼마나 피상적일 수 있는지 볼 수 있게 된다. 실패는 그 모든 것의 헛됨과 뻔함을 드러내고 그 과정에서 우리에게 심연의 더 나은 맛을 보게 해준다. 마지막으로 실패는 우리에게 우리가 생물학적으로 무에 가까운지, 그리고 하루하루 죽음과 얼마나 가까워지는지 보여준다. 이것은 더 이상 엿보기가 아니라 심연을 제대로 정면에서 바라본 것이다. 심연은 투우사의 눈빛으로 돌아보면 말없이 우리를 고정시킨다.
37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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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실패라고 구분 짓는 가장 내밀한 그 형태는 바로 죽음이 아닐까 싶다. 어느 누구도 죽음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데, 때문에 홀로 맞이해야 하는 이 죽음을 실패라고 간주하고 포기해버리면, 더 이상 답이 없다.

오히려 죽음을 실용적인 문제로 보면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우리 삶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지 등을 고려해 보는 것이 훨씬 더 나은 삶을 제공할 것이다.

톨스토이는 자신이 쓰는 이야기 속 등장인물에 죽음을 투영하며 궁극적인 실패에 대비했는데, 우리 역시 이러한 마음가짐이 필요해 보인다.

실패는 다른 어떤 경험보다도 눈이 떠지는 경험을 제공한다. 우리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심연을 맛보게 해줌으로써 세상에 존재하는 비합리적이고, 엉뚱하고, 피상적인 판단력 등을 제대로 마주 볼 수 있게 해준다.

더불어 죽음과 얼마나 가까워지는지를 제대로 깨달음으로써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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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적인 이야기: 마하트마 간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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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전기 작가가 묘사했듯이 '아주 영리한 전술가이자 전략가'였던 이 완벽주의자는 어떤 이를, 특히 자신의 공적 페르소나에 관한 일을 우연에 맡겼다면 결코 자신을 용서하지 못했을 것이다. 간디의 겉모습은 죄다 일등급 연기였으며, 그 연기가 자발적으로 보였다면 그건 그가 굉장히 재능 있는 배우였기 때문이었다.
16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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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성직자 간디, 비폭력주의자 간디로만 알고 있었는데, 전기처럼 자세하게 기록된 이 책에서 다룬 간디를 보며 내가 알고 있는 간디가 아주 일부였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이었다.

무성욕, 무소유 등으로 대표되는 간디라는 이름 뒤에 더 큰 재력과 사람들이 있었음을, 그리고 그런 간디의 실체를 보며 역시 사람은 한쪽 면만 보아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머릿속에 새겨 넣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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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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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실패라고 하면, 안 좋은 것 부정적인것으로만 생각하는데 성공이라는 이름 뒤에는 수많은 실패가 자리하고 있음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특히 크고 중대한 사안일수록 실패가 밑거름이 되었을 가능성이 큰데, 그 덕분에 지금의 우리는 꽤 많은 것들을 누리며 살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4가지 실패에 대해 다루는데, 하나하나 살펴보면 어느 누구도 이 실패와 떨어져 생각해 볼 수 없을 만큼 우리 삶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실패를 어떻게 다루느냐는 어찌 보면 우리 인생에 중차대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저 실패했으니 순응하고 포기해 버릴 것이냐 아니면 피할 수 없으니 잘 활용해 보자는 심정으로 대할 것이냐에 따라 인생 곡선은 완전히 달라질 수밖에 없다.

저자는 그래서 '실패'에 집중한다. 수많은 사상가들의 실패 이야기를 통해 이들이 실패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삶에 어떻게 적용했는지를 스토리로 풀어내면서 예시를 든다. 마치 우리 삶도 이와 같은 이야기로 풀어낼 수 있다는 듯이 말이다.

저자는 우리가 실패를 거듭할수록 더 다듬어지고 겸손해지면서 궁극적으로 더 나은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실패가 있기에 더 나은 사람, 더 나은 인생을 그릴 수 있다 말한다.

우리의 삶, 인생 이야기는 아직 진행 중이기에 이제부터라도 실패를 통해 나만의 '진주'를 발견해 보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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