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송세월
김훈 지음 / 나남출판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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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륜이 느껴지는 제목, 글, 일상!"


노년에 다다라 살아온 세월을 돌아보면 누구나 한 번쯤 느끼게 될 감정을 사자성어로 표현하면 바로 이렇게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허송세월.

순간의 감정처럼 잠깐 스쳐 지나가는 사람도 있을 테고, 혹자는 한 평생을 그렇게 느끼게 될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노년에 이르러 일상에서 느낀 크고 작은 깨달음을 이 책에 담았는데, 대중적인 느낌은 아니다.


총 3부로 구성된 이 책은, 저자가 살아온 삶의 흔적, 가치관, 종교관 등의 자기주장이 강한 글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래선지 약간 매니악적 느낌이다. 비슷한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이 공감할 법한 이야기이거나, 같은 종교를 가진 사람에게 조금 더 편안하게 다가갈 글들이 많다.

그럼에도 몇몇 부분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숙제처럼 이어져 오고 있는 이슈들도 있어 공감이 가는 부분들도 있다.

순수했던 어린 시절을 지나 찬란한 청춘을 보내고, 안정적인 중장년층을 거쳐 이제는 노년에 이르러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며 적어 내려간 저자의 글은 그래서 어떤 부분에서는 회고록 같은 느낌도 있다.

산책하는 호수 공원의 풍경, 하나 둘 저물어 가는 지인들, 삶과 죽음을 넘나들었던 병실에서의 모습, 가까이에서 지켜봤던 새의 모성, 술과 담배에 관한 애증 어린 이야기, 인간 정서의 밑바닥에 고인 냄새들에 관한 이야기 등 주제와 내용 모두에서 풋풋함보다는 진한 연륜이 느껴진다.

저자는 <뒤에>를 통해 많은 독자들과 사귀기보다는 개별적 독자와 사귀며, 글을 써서 세상에 말을 걸때 나의 독자는 한 명뿐이라고 말하는데, 나 역시 책을 읽으면서 약간의 폐쇄적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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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적 개방성을 갖춘 글 안에 많은 독자들을 맞아들이려는 소망을 갖지 못한다. 나는 나의 사적 내밀성의 순정으로 개별적 독자와 사귀고, 그 사귐으로 세상의 목줄들이 헐거워지기를 소망한다. 글을 써서 세상에 말을 걸 때 나의 독자는 당신 한 사람뿐이다. 나의 독자는 나의 2인칭(너)이다.
331페이지 <뒤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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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의 1020 세대들이 만약 이 책을 읽는다면, 저자가 살아온 시대를 다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는데, 답은 '글쎄'였다.

어쩌면 3040세대들이 살아온 시대도 그들은(1020세대) 다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가고 있어서가 아닐까 한다.


산문글 속에 과거부터 현재까지 적용되는, 어쩌면 우리 모두 공감할 만한 소재들을 몇몇 가져와봤다.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나 특정 사고에 너무 치우친 것들은 제외하고, 언젠가 우리도 겪게 될 이야기이거나 지금 겪고 있는 이야기들을 통해 공감대를 형성해 보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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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말하기를 늙은이들의 몸에는 보통 대여섯 가지의 만성질환이 자리 잡고 있는데, 여러 병증 사이에 경계가 무너지고 뒤섞여서 무슨 병인지 진단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
의사가 또 말하기를 늙은이의 병증은 자연적 노화현상과 구분되지 않아서 치료가 어렵다고 했다. 늙은이의 병은 본래 스스로 그러한 것이어서 딱히 병이라고 할 것도 없고 병이 아니라고 할 것도 없다는 말이었는데, 듣기에 편안했다. 늙음은 병듦을 포함하는 종합적 생명현상이다.

생, 로, 병, 사가 본래 각각 독립된 범주가 아니라 한 덩어리로 뒤엉켜 동시에 굴러가면서 삶의 기본 풍경을 이루는 것이라고 나는 늘 느끼고 있었는데, 노환에 대한 의사의 의학적 소견도 삶에 대한 나의 느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3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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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과 다르게 나이 듦에 있어 관점이 바뀌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병증이 아닐까 한다. 어느 커트라인을 넘어서고 나면, 병증은 그냥 함께 살아가는 친구처럼 여겨진다.

한 덩어리로 얽히고설켜, 그 자체가 삶이고 인생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선지 병원에서도 특별히 '무슨 병'이라고 딱 꼬집어서 이야기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저자는 이러한 노인의 병듦에 대해 '병듦을 포함하는 종합적 생명현상'이라고 표현했는데, 어쩌면 노인의 삶 속에 큰 우주가 숨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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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죽기 위해서는 미리 정리해 놓을 일이 있다. 내 작업실의 서랍과 수납장, 책장을 들여다보았더니 지금까지 지니고 있었던 것의 거의 전부가 쓰레기였다. 이 쓰레기 더미 속에서 한 생애가 지나갔다. 똥을 백자 항아리에 담아서 냉장고에 넣어 둔 꼴이었다.

나는 매일 조금씩, 표가 안 나게 이 쓰레기들을 내다 버린다. 드나들 때마다 조금씩 쇼핑백에 넣어서 끌어낸다.
5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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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 이상하게 움켜쥐려는 특성이 강해진다. 그래선지 과거에 시골집을 방문해 보면 쓰레기들이 여기저기 귀한 취급을 받으며 처박혀 있던 것을 자주 목격하고는 했다.

사실 돌이켜보면 다 별것 아닌 것들인데, 왜 그리도 손에서 놓지를 못했는지 모를 일이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비단 이것은 노인에게만 적용되는 내용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도 적용되는 내용이다. 아낀다는 이유로, 선물 받았다는 이유로, 아깝다는 이유로 우리는 똥을 백자 항아리에 담아서 냉장고에 넣어두고 모시며 살고 있다.

저자는 가벼운 죽음을 위해 이제 조금씩 자신의 물건을 정리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제, 노인이 아닌 우리도 이런 정리가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한다.

입지 않는 옷, 쓰지 않는 잡동사니, 읽지 않는 책, 추억이 담긴 물건들은 이제 그만 놓아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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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현대사에서 '내 새끼'를 앞세운 이 갑질의 전통은 유구하고, 밥술이나 먹게 되자 이 갑질은 더욱 권력화되고 일상화되었다. 얼마나 많은 청년들이 '내 새끼' 갑질 앞에서 미끄러지고 넘어졌겠는가. 끗발 없는 부모 밑에서 태어나서, 그날그날 힘들게 살아가는 젊은이들은 이 더러운 세상에 만정이 떨어져서 아기를 낳지 않는다.

남의 자식을 짓밟고 '내 새끼'를 밀어붙이는 이 고위층 갑질의 역사가 계속되는 한, 저출산 정책에 수십 조를 퍼부어도 그 결과는 모두 헛것이다. 이미 헛것이 되었다. 이제 "아이가 타고 있어요"도 점차 사라지고 "힘센 꼰대가 간다"만 남을 판이다.
25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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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논점을 벗어난 빗겨난 정책과 임시방편처럼 늘어놓는 말들만 듣다가 뭔가 속 시원한 해답을 듣는 느낌이 들어 반가운 마음에 가져와 본 문장이다.

나에게만 소중한 '내 새끼'만 앞세우는 갑질과 권력 앞에 내동댕이 쳐지는 끗발 없는 아이들의 현실을 고스란히 적어내려간 문장을 읽으며, 어쩐지 멀지 않은 미래가 절로 그려지는 느낌이다.

자꾸만 죽어나가는 젊은이들, 더 이상 아이를 낳지 않는 사람들 속에서 내 배불리는 권력만 움켜쥐고 사는 게 과연 현명한 방법인지 다시 한번 묻고 싶다.

아무것도 남지 않는 허허벌판의 모습이 이렇게도 선연하게 그려지는데, 그럼에도 여전히 내 밥줄, 내 새끼, 내 것만 챙기며 배불리는 이들이 그때는 과연 무슨 핑계를 대며 빠져나갈까?


***

이 책을 읽으며 문득 '인생무상'이라는 사자성어가 떠올랐다. 어차피 다 내려두고 떠날 텐데 뭘 그리 아등바등 거리며 소유하려 애쓰고 남들보다 더 앞서가려 애썼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결국 그렇게 애써봤자 남겨지는 건 내 만족보다 비교와 우위와 같은 감정들뿐인데 말이다. 오히려 그 시간을 나를 더 알아가는 데 썼더라면 적어도 살아가는 매일매일이 나를 알아가는 기쁨 내지는, 행복감으로 충만했을 텐데 말이다.

멀게 느껴지지만, 실은 아주 금방 다가올 노년이 불필요한 물건이나 사사로운 감정들로 채워지지 않기를 바라며, 지금부터라도 일상을 보다 값진 것으로 채워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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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오래 보았다
김영롱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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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세 치매 할머니와 손녀의 일상을 통해 사랑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던 가슴 따뜻한 가족 이야기"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면서, 세대 차이가 벌어지고 가정이 점차 붕괴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 현실을 고려해 봤을 때,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현재'의 이야기는 동화속에나 존재할 법한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지금에 이르게 된 경위와 과정을 살펴보다 보면, 단순히 동화 같은 이야기가 아님을, 쉽지 않은 여정이었음을 금세 파악할 수 있다.

'긴 병에 효자 없다'라는 말이 있는데, 실제로 경험해 본 사람들은 이 말에 깊이 공감할 것이다. 저자의 집 또한 처음 4년간은 이 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하지만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과 더불어 실천으로 옮김으로써 저자는 상황을 전환시켜 지금에 이를 수 있었다.


총 3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94세 치매 할머니와 엄마, 그리고 저자가 함께 사는 3대의 일상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는 사랑, 눈물, 상처, 포기, 진심, 화해 등이 함께 포함되어 있다.

저자는 자신이 기억하는 유년 시절부터 할머니와 함께 유튜브를 시작하고 달라진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삶을 이 책에 담아냈는데, 읽다 보면 보통의 가족의 모습부터 어려움을 극복하고 새로운 가족의 모습으로 탈바꿈한 모습까지 모두 만나볼 수 있다.

처음에는 고령의 치매 할머니와의 따뜻한 추억담 정도가 실려있을 것이라고 막연히 추측하며 읽기 시작했는데, 읽다 보니 여느 가정과 별반 다르지 않은 우리네 이야기를 담고 있어 읽는 내내 여러 감정이 교차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더불어 진짜 가족이란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해봄과 동시에 어쩌면 우리는 가족이라는 울타리만 생각하고 각각의 사람 그 자체를 들여다보지 못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됐다.

또 특정 질병에 있어 잘못된 편견과 생각에 사로잡혀 있느라 정작 질병을 앓고 있는 '그 사람'에 대해서는 뒤로 미뤄두고 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보통 집 안에 긴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있는 경우 그 집안의 분위기는 어둡고 날카롭다. 가족끼리는 항상 다툼이 잦고, 보호자들은 늘 지쳐있으며, 환자는 그런 보호자를 보며 더 위축이 된다. 그리고 병은 더 깊어진다.

저자의 집 역시 마찬가지였다. 장장 4년을 모녀가 매일 말다툼을 하며 보냈다. 하지만 가볍게 시작한 유튜브로 인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모녀의 사이는 물론 치매로 인해 세상과 단절되어 가던 할머니마저 다채로운 일상을 매일 경험하게 되면서 새로운 모습들을 보여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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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가족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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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머니
-이름: 노병래
-나이: 94세(1931년 12월 12일 5남매 중 막내로 출생)
-고향: 충청남도 서천군 기산면
-자녀: 5남매(수복이, 남복이, 재섭이, 숙희, 선희)
-특이사항: 치매를 앓고 있음


■엄마
-할머니를 가장 빼닮은 딸이었지만, 다섯 자식 중 가장 존재감이 없었던 넷째.
-가족 중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한 천덕꾸러기 신세였음
-군에서 재섭이 삼촌이 갑작스레 사망하게 되면서 프랑스 미술 유학을 포기하게 됨. 이로써 계획했던 삶이 망가짐


■김영롱(저자)
-외할머니가 애지중지 키운 손녀 딸
-어릴 때부터 할머니 껌딱지로 추억이 많음
-할머니, 엄마, 저자가 한 집에서 살고 있음
-어릴 때 부모님은 이혼함
-가볍게 시작한 유튜브로 인해 사랑하는 방법을 새롭게 깨닫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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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수난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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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둘째 딸 남복의 죽음
할머니 나이 마흔한 살에 고등학생이던 둘째 딸 남복이 뇌 수막염으로 사망하게 된다. 똑똑하고 집안일을 가장 많이 도와줬던 딸이었기에 할머니의 상심은 매우 컸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은 병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점차 증상은 나빠지기 시작했고, 신장에 있던 염증 세포가 머리로 올라가 뇌 수막염으로 번지면서 병은 손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그렇게 남복은 이렇다 할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딸의 장례를 치러줄 돈조차 없어서 화장을 하자마자 남복의 유골함은 이름 모를 야산에 묻히게 된다.


2. 유일한 아들인 재섭의 죽음
11년 뒤, 군 복무만 마치면 미술을 전공해 제대 후 화가로 활동을 하거나 교단에 설 계획이던 앞날이 창창했을 재섭은 갑작스레 부대에서 눈을 감게 된다.

새것만 입히고 좋은 것만 먹이며 키운 유일한 아들이었던 그가 갑작스럽게 군에서 사망하게 되면서 할머니는 또 한 번 시련을 겪게 된다.

심지어 군에서는 죽음의 사인을 밝히지 않는다면 재섭을 국가유공자로 등록시켜주겠다며 거래를 제안하게 된다.

할아버지는 없는 살림에 합의를 받아들이게 되고, 이로써 다음날 바로 재섭은 국립 대전 현충원에 묻히게 되고, 이 일로 가족들의 삶도 망가지게 된다. 프랑스 미술 유학을 꿈꾸던 숙희(엄마)의 삶 또한 망가지게 된다.

삼촌의 죽음 이후 할머니는 '참 독한 여자, 기 센 여자, 웬만한 남자도 이기는 여자 대장부'라는 별명이 생기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삼촌이 돌아가시고 몇 년 뒤, 저자가 태어나게 된다.


3. 할아버지의 죽음
할아버지의 통통한 배에서 만져지던 덩어리는 암덩어리로, 3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은 후 할아버지는 급격히 쇠약해지게 된다. 그리고 정확히 3개월째 되던 날 가족 곁을 떠나게 된다.

장례를 치르고 3일 뒤 할아버지 곁을 지켰던 자식들은 다시 일터로 돌아갔고, 할머니만 남은 집에는 점차 사람들의 발길도 끊기기 시작한다.

할머니의 눈빛에서는 서운함과 슬픔이 가득했는데, 그렇게 몇 년 사이 할머니는 모든 집안 행사를 이끌던 어른에서 쓸데없는 집안 행사까지 챙기려 하는 꼬장꼬장한 노인이 되어 있었다.


4. 할머니의 수술과 우울증, 그리고 치매
할아버지의 죽음 이후 할머니는 점차 생활 반경이 좁아졌는데, 어느 날 삼촌의 보훈 급여를 찾으러 우체국에 다녀오던 날 바지에 소변을 보며 길에서 쓰러지게 된다. 심장 혈관이 막힌 게 원인이었다.

결국 할머니는 수술까지 받게 되었고, 심장 수술 이후 오래 누워 있다 보니 아픈 무릎은 더 안 좋아졌다. 비슷한 시기에 아슬아슬 했던 청력도 급격히 나빠지면서 총 세 개의 보청기를 맞춰드렸지만 어지럽다는 이유로 착용을 거부하는 통에 결국 두 손 두발 다 들게 된다.

또한 귀가 어둡다 보니 용기 내어 외출한 날에도 생판 모르는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는 일이 잦았다. 그렇게 할머니는 점차 사람들과도 멀어졌고 홀로 있는 시간이 길어지게 되면서 서서히 우울증이 오고 있었다. 그러나 저자는 알아채지 못했다고 한다.

할머니의 세계는 점점 좁아지더니 어느새 작은 섬과 같아졌는데, 특별한 날에만 사람들이 배를 타고 와서 축제를 벌이는 섬처럼 느껴졌다.

저자는 그제야 알았다. 할머니의 치매는 세상과의 소통이 멈춰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던 뇌가 웅크리면서 시작된 병이자 지독한 외로움에서 시작된 병이라는 걸.

할머니의 치매가 시작된 이후 엄마와 저자는 줄곧 4년을 싸워댔다. 그리고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상황을 바꿔보기 위해 가벼운 마음으로 유튜브를 시작하게 된다.


5. 할머니의 신우요관암
어느 날 할머니의 소변에서 피가 보이기 시작했고, 검사를 통해 신우요관암임을 알게 된다. 의사는 고령의 할머니에게 수술을 권하지 않았는데, 가족들과 상의한 끝에 항암 치료나 수술 모두 진행하지 않는 쪽을 택한다.

90세가 넘은 노인이 항암을 진행할 경우, 체력이 버티지 못해서 돌아가실 수도 있다는 경험자들의 조언과 자신이 암이라는 사실을 알자마자 빠르게 상태가 악화됐던 할아버지 간병 경험을 토대로 내린 결정이었다.

모녀는 그냥 갓 지은 따뜻한 밥과 익숙한 잠자리가 있는 집에서 할머니와 지금처럼 지내기로 마음먹는다.


6. 할머니의 섬망 증상
환시, 환청, 불면, 이상행동 등 처음 겪어보는 섬망 증상은 가족들에게 있어서는 고문을 받는 기분이 들 정도로 심각했다.

그렇게 48시간의 정신없는 섬망 소동을 겪고 난 후 두 번의 섬망이 또 다녀갔다. 2주 간격으로 나타났던 두 번째, 세 번째 섬망을 마주했을 때 모녀는 더 이상 당황하거나 절망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그 후 더 이상의 섬망 증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맞닥뜨린 섬망 증상은 보호자까지 나동그라지게 만들 정도로 지치게 만들었다. 하지만 원인을 파악하게 되면서 비로소 안정을 찾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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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적인 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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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굴곡진 할머니의 삶과 더불어 자신과 할머니 사이의 추억들을 하나하나 풀어놓으며 이들 가족의 역사를 하나하나 되짚어 나간다. 그리고 그 속에는 가족들 사이에서 상처받고 사랑이 고팠던 엄마가 있다.

끈끈하고 애틋한 할머니와 손녀 사이와는 달리, 멀찍이 떨어져 부딪히기 바쁜 엄마와 할머니의 사이는 저자가 중재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어릴 적부터 깊이 쌓아온 갈등의 골은 깊었고, 꼬인 실타래는 도저히 풀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저자가 유튜브를 시작하게 되면서 서서히 이들의 오해와 앙금은 사라지게 된다.

가까이 있음에도 깊이 들여다보지 못했던 얼굴을 영상을 통해 마주하게 되면서 이들은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한다. 사랑하는 마음은 있지만, 사랑하는 방법을 몰라 물리적으로 가까워질 수 없었던 이들이 마침내 얼굴을 맞대고 살을 부비며 고맙다는 말을 나눌 수 있게 된 것이다.

더불어 모녀 사이도 많이 달라졌는데, 할머니의 치매가 시작된 이후 줄곧 4년을 싸워댔던 날을 청산하고, 어느새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 몫을 하며 의지하고 협력하는 사이가 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유튜브는 삼대뿐 아니라 친척들의 마음도 움직이게 되면서, 그간 코로나로 인해 발길이 끊어졌던 친척들이 하나둘씩 할머니와 인사를 나누기 위해 집에 방문하게 된다.

지난했던 4년을 보내고 유튜브를 시작하게 되면서 집안에는 활기가 돌기 시작했는데, 그렇다고 해도 평소의 일이 줄어들거나 간호하는 일상이 달라진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어느새 웃음꽃이 피기 시작했고, 일상에서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감정들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며 나누게 된다.

저자는 이제 감추고 피하려고만 했던 할머니의 죽음도 마주하며 더 나은 죽음을 위해 어떻게 하면 좋을까를 고민한다. 치매라는 병을 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살아있음에, 체온을 나눌 수 있음에 감사하며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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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남았던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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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이 말을 할 때 씁쓸하면서도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슬프면 슬픈 대로, 좋으면 좋은 대로.' 때로는 흘려보내고 때로는 간직하며 살면 살아진다는 말. 지독한 슬픔도, 넘치는 기쁨도 한데 섞여 하나의 삶이 된다는 말. 나는 이 문장이 "그래도 살라"는 말로 들린다.
(...)
이제 할머니의 말에서 빠진 단어 하나를 채워보려고 한다. 할머니는 사는 것도 포기하지 않았지만 사랑하는 것도 포기하지 않았다. 기억이 흐릿해지고 있는 94세 할머니가 이처럼 자신의 반짝이는 표현력으로 사람들에게 "그래도 살라"고 말할 수 있었던 이유는 조카든, 남편이든, 자식이든, 손녀든 사랑하며 살았기 때문이 아닐까.
(...)
"슬프면 슬픈 대로 살고, 좋으면 좋은 대로 (사랑하며) 살다 보면 당신들도 이렇게 오래 살아요."

아마 할머니가 하고 싶었던 말은 이런 말이었을 거다.
49~5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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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의미를 되새겨주는 말이 아닐까 싶다. 특히 (사랑하며)라는 말이 추가되면서, 가족은 모름지기 슬프면 슬픈 대로, 좋으면 좋은 대로 '함께' 살아나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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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과 애착 없이 자란 삶이 단단한 반석 위에서 뻗어 난 삶만큼이나 깊이 뿌리를 내리려면 홀로 애써야 할 게 많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기댈 곳 없었던 엄마는 긴 시간 동안 자신의 인생을 외로이 감당해야 했다. 상처를 견뎌내기 위해서 아마 평생을 노력해야 했을 거고, 혼자서라도 바로 서려고 스스로 많은 걸 터득해갔을 것이다. 엄마가 할머니의 작은 행동들에 불에 덴 듯한 반응을 보였던 건, 온 힘을 다해 바로 서게 된 자신이 그때마다 흔들렸기 때문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5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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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중간에서 중립자로써 엄마의 상처 또한 보듬을 줄 알았다. 어느 한편에 서기보다 엄마가 왜 어떤 상처와 눈물을 마음에 품고 살았는지 이해했고 그대로 받아들였다.

때문에 엄마와 할머니의 갈등을 억지스럽게 화해하려 하는 섣부른 시도는 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엄마의 상처를 들어주었다.

이 시간 덕분에 어쩌면 엄마를 더 잘 이해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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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는 엄마와 나, 그리고 할머니의 얼굴에서 웃음을 앗아갔다. 우리는 셋이지만 마치 거울을 보고 무표정하게 서 있는 한 사람 같았다. 서로의 말을 들어줄 마음도, 온기를 내어줄 여유도 없었기에 함께이지만 홀로였던 채로. 이 4년 동안 우리가 과연 가족이었을까?
10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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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위태로운 가족의 모습을 살펴보면, 이 모습과 똑 닮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숫자가 중요하지는 않다. 마치 거울을 보고 무표정하게 서 있는 한 사람 같은 모양새가 있을 뿐이다.

치고받고 싸우고, 서로를 상처 주고 할퀼 때만큼은 서로가 서로에게 있어 가족이 아니었을 것이다. 아마 각기 다른 피해자만 존재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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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한 영상을 돌려보다 보니 알 수 있었다. 치매는 할머니의 일부일 뿐인데, 나는 치매만 쳐다보다가 '우리 할머니'를 잊고 있었다. 할머니의 정체성과 감정은 내가 보고자 하면 언제든 나올 준비가 되어 있었다. 다만 내 신경이 온통 이상행동과 실수에 몰려 있어서 알아채지 못했던 것이었다. 보려고 하지 않았던 것. 그게 바로 문제였다.
11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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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가 바로 이것이 아닐까? 그래서 보통은 질병만 바라보느라, 어느새 그 속에 자리한 사람은 잊는다.

질병에 걸렸어도, 여전히 정체성과 감정은 고스란히 남아있는데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사람으로 취급하는 우리가 잘못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에 반성의 시간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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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밈없는 영상들은 내게도 좋은 영향을 미쳤다. 영상을 편집하는 과정에서 같은 장면만 수십 번 보다 보니 그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할머니의 작은 몸짓과 눈빛, 표정 하나하나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편집은 할머니가 내게 미처 전하지 못한 마음, 일상에서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감정을 이해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 주기도 했다. 4년간 묵혀왔던 갈증이 조금씩 해소되는 것 같았다.
122~12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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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은 추억을 반추하는 도구가 되기도 하지만, 현재를 되짚어 보고 상대를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기도 하는 듯하다.

만약 몇 년 더 앞서 유튜브라는 매개체가 활성화되었다면, 나 역시 비슷한 의도를 가지고 수없이 많은 영상을 남겼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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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던 대소변 묻은 빨래가 이틀에 한번, 삼 일에 한 번이 되더니 두어 달이 지나자 거의 사라졌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

약 4개월 뒤, 뇌신경과 진료를 받으러 갔다가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그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치매 노인의 자존감과 우울감은 인지능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자존감이 올라가고 우울감이 낮아지면 그렇지 않을 때보다 인지능력 검사에서 점수가 높게 나온다는 것이었다. 살아 갈 이유가 생기는 것도 치매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했다.
(...)
할머니에게 필요했던 것은 곧 기억에서 사라질 경고와 주의가 아니라 사는 걸 재미있게 만들어줄 활력, 자존감을 높여줄 칭찬과 대화, 우울감을 낮춰줄 웃음이었다.
12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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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에 사로잡히면 우리는 병에 집중하느라 정작 사람은 등한시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사람에 집중하고 보니, 병도 호전을 보이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존감을 높여주고, 삶의 활력을 주는 일상. 여기에 더해 칭찬과 대화를 통한 웃음이야말로 우리 삶에 진정한 치료제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건강한 사람도 웃음을 잃는 순간 우울과 불안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어쩌면 이것은 우리가 삶에서 잊지 말아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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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삼대가 지금처럼 웃으며 지낼 수 있게 된 건, 자신의 아픈 상처만 들여다보던 이들이 서로의 상처로 시선을 돌리면서 '저 사람도 얼마나 아팠을까?'를 헤아려보기 시작한 뒤부터였다.

몇 십 년에 걸쳐 생겨버린 상처가 아물기까지 우리에겐 분명 수많은 시행착오와 노력이 필요했다. 그러니 우리 가족은 동화의 한 장면에서 튀어나온 사람도,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도 아니다. 우리는 태어난 김에 만나 서로를 어느새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 가족이자, 함께 성숙해져가는 과정에서 행복을 느끼는 세 명의 여성들이다.
13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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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4년이 힘겨웠던 건 '나'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아픈 상처만 돌아보느라 정작 타인을 돌아볼 여유도 배려도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눈을 돌려 서로의 상처를 돌아보기 시작하면서 이들은 어느새 잃어버렸던 웃음을 되찾게 된다. 더 보듬고 헤아리며 서로를 위로하고 의지하는 진정한 가족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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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같았으면 하루 웃고 넘어갔을 일을 매일 기뻐할 수 있게 된 변화는 생각보다 놀라운 일이었다. 웃는 게 좋아서 더 웃을 만한 일들을 찾아서 해볼수록 우리 가족의 관계도 조금씩 단단해졌으니까. 한때 할머니의 깜빡임은 우리에게 참 슬픈 일이었지만, 이제는 우리가 사랑하는 할머니의 가장 예쁜 모습이 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치매의 가장 아름다운 면이기도 하다.
168~16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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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깜빡임에 대해 관점을 달리하면서, 오히려 웃을 일이 두 배, 세배가 되었다고 말하는 저자의 말에서 다시 한번 깨달음을 얻는다.

우리 삶도 그렇지 않을까? 의미가 없던 일에 의미를 더하고, 가치를 부여하는 순간 우리 삶은 보다 다채로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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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확실히 알았다. 엄마와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우리 가족을 감싸고 있는 온기가 사라지지 않도록 할머니를 온 마음 다해 사랑하는 일이라는 걸.

다가올 이별을 생각했던 그 시간을 계기로 일상은 더욱 소중해졌다. 풀이 죽어 있던 할머니 앞에 다시 삼각대가 놓이고 내가 조잘거리며 끊임없이 수다를 떨자 할머니는 다시 웃기 시작했다. 그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아직 할머니를 만질 수 있다.
19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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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에 걸렸어도 여전히 할머니는 살아 계신다. 숨을 쉬고, 온기를 느끼며, 사랑할 수 있다. 그 점에 감사하며 주어진 시간을 아낌없이 보듬으며 사랑하겠다고 말하는 저자의 말에 힘찬 응원을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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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는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로 자주 비유된다. 언제 끝이 날지 알 수 없는 터널에 들어서면 누구든지 두려움을 갖게 되기 마련이다.
(...)
그러나 지금 우리는 터널 중간 어디쯤에서 웃으며 걷고 있다. 그 변화의 시작은 할머니에게서 아직 사라지지 않은 것들을 지켜주려고 노력하면서부터 찾아왔다.

할머니는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흐릿해지고 있고, 어쩌면 우리 삼대가 지나는 터널의 끝이 아름답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 여정이 절망스럽지만은 않다는 것. 중간에 꽃밭도 있고 해가 들어오는 공간도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부터 나는 그 끝이 두렵지 않게 되었다.
22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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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라는 병을 하나의 덩어리로 놓고 봤을 때는 그저 끝없는 터널을 지나는 기분이었는데, 그것을 하나씩 쪼개두고 할머니 맞춤형으로 전환하니 새로운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전한다.

덕분에 저자는 유튜브를 통해 할머니와 많은 것들을 나누며 함께 하고 있다. 더불어 언젠가 맞이하게 될 끝도 더 이상 두렵지 않게 되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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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다큐프라임 <내 마지막 집은 어디인가> 2부를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노인을 배제한 채 노인의 일을 정하지 말라."

노인의 안전을 보장하는 동시에 그들의 존엄성도 지키기 위해 우리가 정말 고민해 봐야 하는 문제는 이것이다. 보호자 또는 요양 시설이 노인의 삶을 어디까지 결정할 수 있을지 폭넓게 논의해야 한다. 치매의 진행 단계와 노인의 건강 상태에 따라서 각기 달라질 이 균형이 잘만 잡힌다면 요양원, 사회제도와 지원, 사회적 인식은 자연스럽게 올바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 거라고 믿는다. 뜨거운 감자가 천천히 식어가듯 말이다.

나는 그 고민의 첫 발걸음이 '만약 나라면'이라는 말로부터 출발했으면 좋겠다.
23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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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다잉에 관련된 부분은 늘 뜨거운 감자였다. 존엄을 지키며 죽음을 맞이하는 것, 그리고 그 방법이나 범주가 어디까지 허용되는가는 자칫 살해로 이어질 수 있어 더 조심스럽다.

하지만, 분명한 건 우리가 멀게만 생각하는 죽음과 노인은 우리 모두에게 언젠가 다가올 일들이다. 그렇기에 노인(혹은 나)을 배제하고 죽음을 논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대한민국이기에 언젠가 노인문제와 요양 시설, 죽음에 대한 문제가 다른 나라에 비해 더 급격히 밀려들어올 것이다.

그러기 전에 이제부터라도 '만약 나라면'이라는 시각에서부터 시작해 고민해 봐야 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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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도 한 사람의 마지막을 함부로 단정 지을 권리는 없다. 마지막을 앞둔 노인에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꾸만 어두워지는 삶에서 위태롭게 빛나고 있는 그 반짝임을 어떻게 지켜줘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과 노력이다.
24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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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이제 서슴없이 대화를 통해 서로의 일상과 감정을 묻고 나눈다. 심지어 죽음에 대한 문제까지도 의견을 나눈다.

함부로 단정 짓거나 끝을 내기보다, 지금의 생각과 감정을 존중해 주며, 위태로운 삶이 꺼지지 않도록 가까이에서 지켜주고 보듬으려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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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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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가족이기에 어쩌면 절망 속에서 빠져나오기가 더 어려웠을 것이다. 오래 알았던 만큼 상처도 컸을 것이고, 눈물도 많이 흘렸을 것이다.

보통은 저자가 4년간 치열하게 엄마와 다퉜듯, 그렇게 마지막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저자는 유튜브라는 매개체 덕분에 전환점을 맞이할 수 있었다.

매일 가까이 붙어살면서도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했던 얼굴과 감정을 살펴볼 수 있었고, 덕분에 타인이 가진 상처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긴 세월을 보내며 포기하고만 살았던 관계 회복을 이뤄냈고, 또 절절한 화해도 했다. 스킨십이 어색했던 할머니와 엄마가 어느새 서슴없이 고마움과 사랑을 전할 수 있는 모녀 사이가 되었다.

멀어졌던 친척들과도 다시 가까워졌으며, 병에 잠식되어 있던 시선을 할머니에게 돌릴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덕분에 아직까지 남아있는 할머니의 희미한 정체성과 감정을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살펴보고 나니, 저자에게 있어 유튜브는 그 무엇보다 소중한 것의 가치를 일깨워 주는 존재가 아니었나 싶다. 가족의 의미를 되돌아볼 수 있게 해준 것은 물론 의미 있는 화해를 돕고, 또 상도 받으며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일상을 보낼 수 있도록 도와주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먼 훗날에는 유튜브에 기록된 영상들을 보며 할머니를 떠올릴 수 있는 좋은 추억까지 만들어 주었으니 일석삼조가 아닐까 싶다.

절망 속에서 다시 찾은 이들 가족의 웃음과 평온이 오래도록 이어지기를 바라며, 앞으로도 좋은 추억들을 많이 나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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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껏 살고 있습니다 - 나만의 취향으로 가꾸는 작은 공간
지은 지음 / 상상출판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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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을 찾고 가꾸며 비로소 발견한 나에 대한 기록!"


이 책을 읽으며 '취향'이란 뭘까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 됐던 것 같다. 더불어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가까이에 두고 싶은 것들, 내가 편안함을 느끼는 것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자꾸 되짚어 보고, 돌아보게 되었다.

또 내 사정이나 상황과는 상관없이 취향을 통해 나를 발견하고, 사랑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점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나 역시 저자와 같은 과정을 밟아나가며 서서히 나의 취향을 하나 둘 찾아나갔던 사람 중 하나이기에, 어떤 면에서는 공감 가는 부분도 꽤 많았는데, 그래서 더 집중하며 살펴봤던 것 같다.


총 4장으로 구성된 이 책에는, 독립을 시작으로 몇 년마다 이사를 하면서 서서히 자신의 취향을 알아가는 일련의 과정들이 담겨있다.

처음에는 경제적인 부분과 협소한 공간의 제약,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독립을 하게 되면서 취향을 알아간다는 것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하지만 홀로 나만의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며, 마침내 나 자신과 친숙해지는 과정을 거치고, 세상에 대한 눈을 뜨게 되면서 저자는 '나만의 취향'이라는 것을 가지게 된다.

녹록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그럼에도 그 과정이 있었기에 저자는 내가 원하는 삶, 내가 바라는 행복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다.

지금은 제주에서 자신만의 삶의 방식으로 살고 있다는 저자의 이야기를 통해 나를 둘러싼 공간, 물건, 사람 등을 살펴보고 그것들이 각각 가지는 의미와 취향을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한다.

더불어 이것을 기회로 나에게 별 의미 없는 것들은 비워내고, 더 가치 있고 의미 있는 것들로 내 주변과 하루를 채워나가면 더 좋지 않을까 한다.


*****



내가 머무르는 공간에는 내 시선과 취향이 묻어나기 마련이다. 얼마나 오래 머물렀느냐에 따라 소유주의 체취는 더 많이 묻어나기 마련인데, 그래서 어떤 의미로는 내 공간은 나를 대변하는 곳이라는 생각도 든다.

당신의 공간은 지금 어떤 느낌인가? 클래식한가? 모던한가? 코지 한가? 아니면 아기자기함과 귀여움이 공존하는가? 어쩌면 텅 빈 공간일 수도?

지금 이 순간부터 자신의 공간을 둘러보며, 내가 사랑하고 애정 하는 것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또 어떤 공간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더 시선이 머무르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그리고 저자의 취향 발견 기록들을 천천히 따라가보자. 어쩌면 어느 순간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취향을 발견하거나 혹은 그동안 내 취향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내 취향이 아니었음을 알게 될지도 모른다.


*****



=====
어쩌면 취향은 나를 알아 가려고 노력한 시간이 만들어 준 선물 같다. 나의 경험을 모아 만든 하나의 작은 세계 같기도 하다. 나는 그곳에 있을 때 안온하다.
(...)
지금의 나는 남들과 비슷하다는 데서 오는 안정감을 얻기보다 나만의 것이 있다는 작은 기쁨을 누리는 게 더 즐겁다. 누가 알아줄 만한 멋진 취향이 아니어도 상관없지 않을까? 그저 나만의 취향으로 인해 내 일상이 조금 더 재밌어지길, 단단해지길 바랄 뿐이다.
그런 마음으로 오늘도 나를 들여다보고 좋아하는 것들을 마음껏 좋아해 본다.
2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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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를 알아가려고 노력해야만 그제야 취향은 서서히 본 모습을 드러낸다. 만약 자신의 취향을 아직까지 잘 모르겠다면, 어쩌면 그 이유가 여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조금 더 나에게 관심을 가져보자. 더 자주, 가까이에서 나를 관찰하고, 친밀해지려 노력해 보자.


<저자의 취향 살펴보기>

1. 다이소에서 산 작은 유리컵

=====
다이소에서 컵을 살 때까지만 해도 그저 저렴하고 귀여운 유리컵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최근에 이 컵이야말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컵의 두께가 딱 좋다. 너무 두꺼워서 둔해 보이지도 않고, 너무 얇아서 꽉 쥐면 깨져 버릴 것 같은 느낌도 없다. 두께가 알맞으니 컵이 입에 닿을 때의 느낌도 괜찮다. 무게도 마음에 든다.
(...)
그러니까 이 컵은 두께도, 무게도, 디자인도 아주 적당하다.
(...)
7년째 쓰고 있지만 70년은 거뜬히 함께할 수 있을 듯하다.
62~63페이지 中
=====

처음에는 그저 저렴하고 귀여워 보이는 디자인을 보고 가벼운 마음으로 구매했는데, 막상 사용하면서 이것이야말로 자신의 취향을 저격한 제품임을 알게 된 저자의 이야기가 어쩐지 귀엽게 다가온다.


2. 빈티지 의자와 조명

=====
오랜 세월을 버티며 갈수록 멋이 드는 빈티지 제품을 좋아한다.
(...)
지금 내 방에는 빈티지 의자와 조명이 있다. 의자는 덴마크 빈티지다. 단순한 디자인에 끌려서 가족으로 들이게 되었다. 만졌을 때 매끈한 느낌도 좋고, 견고하지만 가볍게 들 수 있는 무게라 마음에 든다. 군데군데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지만 그마저도 멋처럼 느껴지는 게 빈티지 의자의 매력이다.
(...)
또 하나는 천장등으로 사용하는 무라노 조명이다. 디자인으로만 보면 완벽한 내 취향은 아니지만, 투명한 느낌과 마블 무늬가 마음에 들었다. 사진으로 볼 때마다 가까이서 볼 때보다 가까이서 직접 볼 때 더 예쁜 조명이다.
63~6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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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좋아하는 제품들을 하나씩 열거하며 이렇게 자세히 설명할 정도라니. 얼마나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 눈에 보일 정도다.


3. 무인양품 시디플레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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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양품 특유의 여백 있는 디자인을 좋아해서 문구류, 패브릭, 가전, 주방용품, 정리 용품 등 다양한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벽걸이 시디 플레이어를 가장 애용한다. 이 제품의 색상은 옅은 회색이다. 색이 진했다면 금방 질려 버렸을 텐데 색이 튀지 않으니 시디플레이어보다 CD에 눈길이 간다.

CD를 재생시키면 음반이 돌아가는 모습이 그대로 보이기 때문에 듣는 재미뿐 아니라 보는 재미도 있다. 사용법도 직관적이다.
(...)
음질은 무난한 편이지만 나에게 시디플레이어의 음향은 그리 중요한 부분이 아니다. 오히려 CD가 돌아가며 나는 잡음에서 아날로그 감성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65페이지 中
=====

이 제품의 설명을 읽는 내내 자꾸만 눈길이 갔다. 이런 제품이 있었나? 싶어 따로 검색도 해 볼 정도였다. 심플한 디자인에 사용법도 직관적이고, 특히 CD가 돌아가는 모습은 말 그대로 예뻤다.

음질이 좋은 것도 좋지만, 때론 음질보다 더 우선하는 나만의 가치들이 있는 것 같다. 이 CD 플레이어는 그런 사람들의 우선 가치를 자극하는 제품이 아닐까 한다.


4. 스티커

=====
다이어리 꾸미기, 줄여서 '다꾸'는 내 취미 중 하나이다.
(...)
나에게 스티커는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이기에 정말 마음에 드는 디자인은 2장 산다. 한 장은 고이 보관해 두고 한 장은 아껴 가며 사용한다.
(...)
다꾸를 할 때는 대략적인 그날의 콘셉트를 정하고 어울리는 스티커를 골라 일기장에 붙인다.
(...)
여러 번 뗐다 붙였다를 반복하며 전체적인 조화를 살피고, 흡족하면 그제야 일기를 쓴다. 종이를 꾸미느라 힘을 다 빼서 정작 일기는 부실하지만, 스티커를 떼서 흰 종이를 꾸미는 과정에서 스트레스가 날아가니 한결 가볍게 잠들 수 있다.

스티커가 잔뜩 붙어 뚱뚱해진 일기장은 언뜻 한 권의 그림책처럼 보인다. 내가 공들여 만들어 낸 한 권의 세계를 넘겨 보는 일이 좋아서 앞으로도 계속 다꾸를 할 것 같다.
66~6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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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까지만 해도 다꾸가 사람들에게 취미생활로 꽤 각광받고 있던 터라 얼마나 다양한 다꾸가 존재하는지는 익히 알고 있었는데, 저자 또한 다꾸를 취미로 삼으며 꽤 즐기고 있는듯하다.

스티커에 얽힌 개인적인 이야기를 잠깐 해보자면, 내 경우는 예쁜 스티커를 모으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모으기만 한다. 내가 소유한 제품에 덕지덕지 스티커를 붙이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어쩌면 붙이는 것보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마모되고 떨어지며 남기는 흔적을 싫어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신기한 것, 예쁜 것, 선물 받은 것 등등 이것저것 모아뒀던 것만 해도 한가득이었는데 언젠가 비우기로 결심한 날 한꺼번에 모아 비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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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리와 함께한 리리네 집에서 나는 머리로 상상하고 두 손을 움직여 내 공간을 꾸리는 행복과 소중히 가꾼 공간에서 추억을 쌓아 가는 행복을 동시에 느꼈다. 내 생각이 맞았다. 애정을 가지고 집을 가꿀 때 집도 나에게 행복을 주었다.
10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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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이든 공간이든, 사람이든 애정을 주지 않으면 그 무엇도 나에게 행복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애정을 가지고 가꾸는 순간부터 그 대상이 되는 모든 것들은 나에게 의미가 되고, 가치 있는 그 무엇이 된다.

저자는 그것을 집을 가꾸고, 고양이를 키우면서 배우게 되었던 것 같다.


=====
이층집에서 일 년을 살고 이사를 해야 할 시점이 왔다. 동네에 매물이 없어서 반경을 꽤 넓혀 보았지만 어딜 가도 빈집이 없다는 말만 돌아왔다. 포기하는 심정으로 들어간 마지막 부동산에서 지금의 집을 만났다.
(...)
서쪽으로 난 창문 밖으로 길게 늘어선 나무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나무가 보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 집을 선택했다.
(...)
일 년 뒤쯤이었나, 제주 곳곳에서 귤 밭 방풍수로 조성했던 삼나무를 잘라내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
설마 했는데 우리 집 앞 귤밭에 있던 방풍수도 곧 사라졌다. 매일 창을 열고 나무를 보며 기쁨을 느꼈기에, 잘려나간 나뭇가지가 쌓여 있는 모습을 보는 게 마음 아팠다.
(...)
며칠이 지나고 노을빛이 평소보다 강한 느낌에 창을 열었을 때, 그제야 빛을 받아 반짝이는 귤 밭이 눈에 들어왔다. 해를 가리던 나무가 사라지자 노을이 방을 주홍빛으로 물들였고, 집 안에서 멀리 산방산까지 보이는 뷰를 갖게 되었다.
(...)
순전히 운이 좋아 이런 풍경을 갖게 되니 얼떨떨했다. 그날 이후, 어떤 일이든 속단하지 않기로 했다. 어떤 슬픔이 어떤 기쁨을 데려올지, 어떤 기쁨이 어떤 슬픔을 데려올지 모르니.
143~14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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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과 운이 겹쳐 만나게 된 집, 그 속에서 저자는 속단하지 않는 법을 배우게 된다. 살아감에 있어 어떤 일들이 우이에게 선물처럼 다가올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저 주어진 상황을 감사히 받아들이고 순간을 즐거이 지내다 보면, 언젠가 선물 같은 날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예컨대, 슬픔을 따라온 기쁨의 모양새일 수도 있고, 반대로 기쁨을 따라온 슬픔의 모양새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설사 그것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언정, 그 모든 날들은 우리 삶에 선물 같은 날들이 되어 줄 것이다.


=====
나는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고요하게 생각에 잠길 수 있는 나만의 시간이, 잠시 할 일로부터 떨어져 말랑해질 시간이 꼭 필요했다. 멍하니 있는 시간에는 과거의 일에 집착하지도, 오지 않은 미래를 꿈꾸지도 않았다. 그저 현재에 머물렀다. 내 모든 감각이 생생하고 선명해질 때마다 살아 있다는 건 이런 느낌이구나,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으며 알게 된 나에 대한 소중한 정보이다.
(...)
멍하니 있는 시간을 갖게 된 후에 긍정적인 생각을 하거나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른다는 걸 이제는 안다.
153~15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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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쉬는 방법이 제각각이듯, 취향 또한 그러하다. 내가 어떤 취향을 가진 사람인지를 알게 되면 내 스스로가 나를 컨트롤하기 좋다.

어떤 상황에 어떤 방법으로 쉼을 주어야 하는지, 에너지를 얻고 싶을 때는 어디에서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등등. 이처럼 내가 나를 잘 알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큰 장점으로 작용한다.

지금부터라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천천히 생각해 보자. 쉴 때는 혼자 시간을 보내야 하는 사람인지, 아니면 야외에서 누군가와 몸을 부딪히며 에너지를 발산해야 하는 사람인지, 아니면 잠을 자며 충전의 시간을 가져야 하는지, 혹은 맛있는 것을 먹으며 회복력을 얻어야 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내가 나를 알면, 나를 행복으로 이끌고, 긍정의 기운으로 이끌어 주는 방법 또한 더 알기 쉬워질 것이다.


=====
결국 내가 정의 내린 '잘 사는 삶'은 살아 있음을 느끼며 사는 삶이다. 세상의 아름다움에 자주 감탄하고, 작은 일에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모습을 떠올리자 어린아이들이 생각났다.
(...)
처음 만난 세상이 그저 재밌고 신기해서 짧은 길을 지나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리는 어린아이. 내가 되고 싶어 하는, 산다는 걸 느끼며 자주 행복해하는 사람이 바로 그런 아이들이라고 생각했다.
(...)
무감각한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기에 세상을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은 마음을 잃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생각이 이어져 나만의 좌우명을 하나 만들었다. '세상을 처음 만난 어린아이처럼 살자'. 이 말은 산다는 걸 느끼며 살자는 나의 다짐이다.
169~17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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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잘 사는 삶'에 대한 정의 또한 여러 가지 일 것이다. 누군가는 경제적으로 부유한 것을 두고 잘 사는 삶이라고 말할 수도 있고, 또 어떤 이들은 성취에 목적을 두고 성취를 이뤄내는 것에서 잘 사는 삶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타인의 기준이 아닌, 나만의 '잘 사는 삶'의 기준을 먼저 찾아보자. 나만의 잘 사는 삶의 기준을 찾게 되면 그것에서 만족과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삶의 방향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시디플레이어를 통해 알게 된 브랜드 '무인양품'의 단정한 느낌이 마음에 들어서 나의 집도 비슷한 느낌이길 바랐다. 물건을 살 때도 긴가민가할 때마다 이 제품이 무인양품에 있다면 어울릴까 생각하며 힌트를 얻었다. 이런 시간을 거치며 내가 단정하고 여백이 있는 공간을 꿈꾼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단정하기만 한 공간은 심심해서 싫었다. 어릴 적에는 드라마 <달콤한 나의 도시> 속 '오은수'의 집을 좋아했다. 그 집은 여백 없이 가구와 소품이 아기자기하게 채워진 귀여운 분위기의 집이었고 단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단정한 것도 좋지만 아기자기한 것도 내 취향이었다. 결국 '단정하지만 군데군데 아기자기하게 꾸민, 사랑스러움이 한 스푼 들어간 집'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206페이지 中
=====

이 대목을 읽으며, 여러 의미로 공감이 갔다. 나 역시 취향이 비슷해서 약간 모순적이지만 뭔가 한가지로만 만족이 되지 않는 이 느낌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깔끔하고 단정하기를 바라지만, 그렇다고 그냥 깔끔한 것은 뭔가 심심하고 재미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종종 아기자기한 무언가로 공간을 채우고는 하는데, 이 취향은 아마 남들은 모르는 나만이 가진 감정이자 느낌이 아닐까 한다.


=====
여러 식물을 키워 본 결과 나에게 가장 잘 맞는 식물은 행잉 플랜트였다. 아직 한 번도 벌레가 생긴 적이 없고 무탈하게 잘 자라 주기 때문이다.
(...)
내 성향과 취향이 반영된 우리 집의 키워드는 어느새 원목, 지브리, 자연, 책, 고양이가 되었다.
(...)
누구나 집을 꾸미고 사진을 찍어 공유하는 시대이다 보니 예쁜 집 사진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
하지만 예쁜 집과 나를 닮은 집은 조금 다르다. 나를 닮은 집은 다른 사람을 흉내 내서 만들 수 없고, 나와의 대화를 통해서만 완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껏 내가 살 집을 가꾸며 느낀 것도 무엇보다 '나를 아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가끔 내가 좋아하는 물건들이 취향껏 배치된 방을 보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꽉 찬 행복이 느껴진다. 앞으로도 다른 것보다 '공간에서 행복하게 웃음 짓는 내 모습'을 한 번 더 떠올려 보며 집을 가꿔 나갈 생각이다.
211~212페이지 中
=====

취향을 알려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직접적인 경험을 해보는 것이다. 그저 생각만으로도 나는 이걸 좋아해, 이건 내 취향이야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나 역시 직접적인, 다양한 경험을 통해 내 취향을 알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실패해도 괜찮다. 오히려 실패를 거쳐야 진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제대로 골라낼 수 있다.

더불어 실패가 꼭 취향과 맞지 않다는 것과 연결되는 것도 아니니 취향을 알려면 일단 직접 뛰어들어 보자.

그리고 난 후, 저자처럼 식물을 좋아하는지, 식물 중에 어떤 것과 내가 잘 맞는지를 구분해 내면 된다. 그렇게 성향과 취향이 어우러지면 나만의 키워드가 완성되고 그것들이 어떤 모양새로 내 공간을 가득 채운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곧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자 시간이 아닐까 한다.


=====
제철 음식을 챙겨 먹고, 내가 머무를 집 안을 청소하고, 침구를 자주 교체하고, 모처럼 장만한 귀여운 소품을 어디에 배치할까 고민해 보는 그런 작은 일들이 결국 행복해지기 위한 노력이자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었다.

그걸 깨달은 지금의 나는 나와 내 일상을 뒷전에 두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급한 일을 처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잠깐 기지개를 켜고 어깨가 굽지 않도록 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스스로에게 말해 준다. 충분한 시간 동안 질 좋은 수면을 취하는 일은 더 중요하다고, 무리하지 말라고 스스로에게 말해 준다.
(...)
급한 일과 중요한 일을 혼동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중요한 건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행복이라는걸, 우리가 행복하려면 소중한 일상을 윤이 나게 관리해야 한다는 걸 이제는 안다.
218~221페이지 中
=====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와닿았던 부분 중 하나다. 우리는 종종 중요한 일과 급한 일을 혼동하며 살아간다. 그래서인지 일상을 너무 하찮게 여기며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가 행복하려면, 특별한 이벤트 때만을 고집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우리가 보내는 수많은 일상을 보다 가치있게 보내야 한다. 여기에는 특별한 방법이나 비결은 없다. 그저 매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윤이 나게 관리하는 게 전부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 흐트러지거나 뒷전으로 미루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이를테면, 자고 난 후 이부자리를 정리하거나 음식을 먹은 후 깨끗하게 설거지를 하는 것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오늘 하루만 미루자는 생각이 한번 들이치면, 후에는 걷잡을 수 없이 이 일들은 뒤로 미뤄지며 일상을 흩트려놓는다. 급하지는 않지만, 우리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앞으로는 이런 사소한 일상을 부디 놓치지 않길 바란다.

이런 작고 하찮은 일상이 곧 우리의 행복과 직결되는 것임을, 나를 사랑하는 최고의 방법임을 잊지 말자!


****


이 책을 읽고 난 후 비로소 타인의 기준이나 취향이 아닌, 나의 취향과 기준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와 행복을 알 수 있었다. 요즘의 우리 사회는 SNS로 인해 언젠가부터 진정한 나를 잃어버린 삶을 살아가고 있는듯하다.

내 기준에서 행복하기보다, 타인에게 어떻게 하면 행복해 보일까를 더 우선적으로 고민하고 생각하는 시대를 살게 된 것이다. 여기에서 결국 남는 건 공허함뿐임에도 중독성을 끊지 못하고 끝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내가 나로서 있을 수 있는 시간을 조금 더 귀하게 여겨보면 어떨까? 일상을 흘려버리기보다, 나와 맞닿아 있는 작고 사소한 것들이 조금 더 귀를 기울여 정성을 쏟아보면 어떨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우리 인생은 내가 온전히 나의 삶을 살기에도 부족할 만큼 짧다. 더 이상 쓸데없는 것에 시간을 허비하기보다, 취향껏 내가 기쁘고 행복할 일들로 가득 채워보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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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고 간편한 예술통조림 101 - 예술 취향 스타터팩
팀통조림 지음 / 팀통조림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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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음악, 미술, 희곡, 국악 네 장르에서 취향을 찾고 즐기는 법!"



4가지 예술(클래식 음악, 미술, 희곡, 국악) 장르를 한 캔에 압축시켜 전해준다는 재미있는 발상에 이끌려 읽게 된 책인데, 솔직히 처음에 이 책을 마주했을 때는 기대보다 훅 떨어지는 표지 디자인에 실망스러웠다.


예술을 논한다면서 정작 그 예술을 담고 있는 모양새가 어째 대학교재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냥 보기에는 재미없고 지루해 보이는 공부를 위한 딱 그런 교재 느낌이었다.


스르륵 넘겨보니 내지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요즘 책 디자인에 신경 쓰는 출판사들이 많아 특히 더 눈에 차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도 일단 페이지를 넘겨 읽기 시작했는데, 내용은 생각보다 꽤 재미있었다.


다만, 역시나 편집이나 구성이 딱 교재 느낌이어서 한숨이 절로 나왔다. 4가지 명확한 주제가 있고 그에 따라 디자인이나 편집을 다채롭게 채웠으면 훨씬 더 시선도 끌고 재미는 배가 되었을 것 같은데 텍스트로만 꽉꽉 채운 것은 많이 아쉬웠다.


그럼에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역시 쉽게 풀어쓴 내용과 또 평소 궁금하지만 미처 누군가에게 물어보기 애매한 내용들이 담겨 있어 집중하며 읽게 되었던 것 같다.



총 4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클래식 음악, 미술, 희곡, 국악 예술에 대한 기초지식과 더불어 기본 용어, 입문 시 유의사항, 자주 묻는 질문 외에 흥미 있어 할 만한 내용들을 함께 담고 있다.


특히 해당 전공자나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비전공자나 비직종자가 취향이나 취미를 위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쉽고 알차게 내용이 채워져 있었다.


1장 클래식 파트에서는 16~19세기 서양 예술 음악에 한정해서 얘기하고 있는데, 그 내용에 대해 확인해 볼 수 있다.

2장 미술 파트에서는 전시 감상에 초점을 맞춰서 내용을 다루고 있었다.

3장 희곡 파트에서는 독립적인 문학작품으로서의 희곡과 그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었다.

4장 국악 파트에서는 우리와 밀접하지만 동시에 멀게도 느껴지는 국악에 관한 쉬운 설명서를 담고 있었다.


4가지 장르 중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부분은 미술 분야였는데, 전반적인 미술에 대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직접적인 예시들을 시각적으로 함께 확인할 수 있어 더 흥미롭게 다가왔던 것 같다.


반면, 국악분야는 낯설어서인지 조금 지루하게 다가왔는데, 역사적인 내용들에 대한 비중이 많았고 텍스트로만 서술되어 있어 명확히 이해하기가 좀 어려웠다. 그럼에도 몰랐던 히스토리를 알 수 있어 유익한 시간이었다.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알아두면 좋을 상식이나 인상 깊었던 몇몇 내용들을 위주로 정리해 보았다. 혹여 예술에 관심이 있거나, 이색 취미를 가지고 싶다면 맛보기용으로 발을 담가봐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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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클래식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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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음악이란?

클래식의 정식 명칭은 영어로 Classical Music. 사실 이것도 정식으로는 고전음악으로 번역할 수 있다.


'클래식 음악'은 보통 서양 예술음악 전체를 말하는 것이지만, 학술권에서는 특정 사조에 기반한 당시의 음악만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음악가들 사이에선 보통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을 중심으로 하는 18세기 무렵의 곡들을 '고전주의 시대' 음악이라고 한다.


당시의 '고전', 쉽게 말해 교과서와 같다고 생각되었던 작품들이 시대를 계승해 오늘날까지 이어졌고, 그 과정에서 '고전'이라고 불릴만하거나 옛 서양에서 만들어진 음악 작품들이 통틀어 클래식 음악이라고 불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 외에도 14세기나 20세기 할 것 없이 서양 예술음악을 기반으로 하는 음악을 통틀어 '클래식' 음악이라고 하는 것이다.



■음악 형식 톺아보기(소나타, 협주곡, 연습 곡)

음악 형식 용어들은 그 종류도 다양하고, 쉽게 이해되지도 않아서 모두를 열거하긴 어렵다.


크게 짜임새에 따라, 악기 구성과 편성에 따라, 성격과 용도에 따라 분류해 보면 다음과 같다. 짜임새는 음악의 요소들이 곡 안에서 어떤 형식을 가졌는지를 말하고, 악기 구성과 편성은 말 그대로 어떤 악기가 연주하는지를, 성격과 용도는 그 곡의 특성이나 캐릭터를 말한다.


클래식 음악은 제목만 보고도 음악이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예상할 수 있다.


***


※톺아보다

샅샅이 톺아 나가면서 살피다.



■도레미는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음이름과 음계)

우리가 아는 '도레미파솔라시도'는 11세기 경인 중세 때의 유럽에서 탄생했다. 사람들은 '도레미'가 탄생하기 전까지는 노래의 음을 이름으로 부르지 않았다. 대충 "우리 이 음에선 이 정도의 높이로 부르는 거다? 그렇게 합의하는 거다?" 하고 맞춰본 뒤, 노래 가사 위에다 기준점 몇 개만 적어둘 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노래 하나를 배우는 데에도 많은 시간이 들어서, 성가 전체를 배우려면 10년이라는 기간을 들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때 귀도 다레초라고 하는 수도자가 수많은 음들의 기준을 설정하는 기준선을 한두 개에서 4개로 늘리고, 각 음에는 이름을 붙이자는 새로운 제안을 한 것이다. 그리고 그 이름들은 모두 성가에서 부르는 여섯 소절의 첫 음절로 따오게 된다.


웃, 레, 미, 파, 솔, 라가 가사로 붙는 각 소절의 시작음이 차례대로 올라갔기 때문에 그 음의 이름이 곧 그 가사가 된 것이다.


그런데 아직은 우리가 아는 '도레미파솔라시'랑은 조금 거리가 있다. 우선 첫 음이 '도'가 아니라, '웃'이라서, '도레미' 대신 '웃레미'가 된 것이다. '웃'이라는 발음 때문에 이름을 말하기 어려워서, 17세기에 이르러서는 하느님이라는 뜻의 'Dominus'에서 따온 '도'로 바뀌게 된다.


또, 맨 처음엔 '도레미파솔라'까지만 있었던 반면 17세기가 되어선 맨 마지막 음인 '시'가 추가된다. 이로써 11세기에는 6개의 음이었고, 17세기에는 7개의 음으로 이루어진 음 세트를 뜻하는 '음계'가 만들어졌다.


우리는 음악을 더 쉽고 빠르게 공유하기 위해 음의 높이를 각각의 계이름으로 부르는데, 귀도 다레초가 음이름을 만들어 내기 전엔 성가를 익히는 데에 무려 10년이 걸렸다면, 그 이후엔 5개월로 단축됐다고 하는 걸 보면 더 실감 나게 다가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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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미술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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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이 우리를 기다리는 곳


1. 미술관

보통 1년 단위로 어젠다를 계획한다. 연간 전시 중에는 시기와 상관없이 늘 볼 수 있는 상설전시, 소장품 및 대여를 통해 구성된 기획 전시, 혹은 다른 미술관의 전시 기획과 내용을 가져와 이루어지는 순회 전시가 있다.


2. 갤러리

보통 화랑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갤러리는 사업성을 띠는 공간이다. 오늘날엔 비영리적 성격의 전시도 열리곤 하지만 미술관과는 달리 작품을 사고파는 영리성이 목적이다.


3. 아트페어

다양한 갤러리를 압축적으로 구경할 수 있는 곳이다. 국내, 혹은 세계 각지에서 모인 갤러리들이 자신의 미술품을 들고 와 각자의 부스를 운영하며 판매하는 대규모 행사라고 말할 수 있다.


4. 비엔날레

비엔날레는 2년마다 열리는 행사로 비엔날레가 열리는 지역의 다양한 크고 작은 전시공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전시가 진행된다.


국가관에서 그 해에 선발된 각 국가의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게 주 행사다. 비엔날레의 전시는 굉장히 동시대적이고 때로는 어려운 이슈를 다루기도 한다.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인 논의를 제기하기도 한다. 때문에 전 세계적인 관심사이며, 국가의 경계를 넘어 미술계를 연결하는 장이 된다.


5. 그 외 새로운 대안

을지로, 홍대 용산 등에 새로운 공간을 모색하기도 한다. 또 다양한 문화 예술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도 최근 주목받고 있는 추세다. 오래된 공장이나 건물을 리모델링하는 등 건축적으로 새로운 시도와 함께 공연, 쇼핑, 식사, 독서 등 다양한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기획된 공간이라는 점에서 그야말로 '복합적'이라 할 수 있다.



=====

3장. 희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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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곡이란?

누군가 읽고 즐길 수 있는 장르이자 연극의 원문이 되는 글이고 다양한 삶을 보여주는 무대 위의 배우들이 한 명의 인물이 되기 위한 기초 자료이기도 하다.


하지만 희곡은 연극 상연을 위한 텍스트인 것만은 아니다. 우리의 삶과 세계를 담고 있는 서사 장르이므로 그 자체로 고유한 문학이다.


대신, 희곡의 3요소라는 '대사', '지문', '해설'이 강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 타문학과 큰 타이점이라고 꼽을 수 있다.



■희곡의 대사, 지문을 다 읽어야 할까?

대답을 먼저 하자면, '네 다 읽어야 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 왜 이런 질문을 던지느냐고? 희곡은 대사의 발화자가 명확히 표시되어 있으니, 대사만 읽으면 될 것 같고 나머지 지문, 해설, 그리고 주석은 그저 넘겨도 될 것 같은 마음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희곡의 구성은 대사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극의 배경과 시공간의 흐름, 변화를 묘사하는 기능은 대사뿐만 아니라 지문, 해설도 갖고 있다. 희곡의 텍스트는 극의 형상화, 상연, 서사의 전개를 개진할 수 있도록 촘촘히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사만 휘릭- 읽고 지나가기보다 지문, 해설, 인물의 이름까지 모두 중요한 구성 요소임을 인식하는 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개인의 독서 습관과 경향은 다르므로, 희곡도 다른 문학을 읽을 때의 습관으로 만나면 된다.


어느 이론가의 말을 인용하자면 "희곡에 쓸모없는 문장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희곡에서 내 마음에 쏙 드는 글자나 문장을 발견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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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국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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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이 뭘까?

국악은 나라의 음악이라는 의미다. 오늘날 우리가 '국악'이라는 용어로 우리의 음악을 부르게 된 것은 일제강점기의 영향이 크다고 볼 수 있다.


국악이라는 용어는 조선시대에도 사용된 적은 있으나, 우리의 음악을 지칭할 때는 주로 음악의 용도에 따라 제례 음악은 아악, 중국에서 유래된 음악이면 당악, 조선에서 자체적으로 만들어낸 음악은 향악으로 구분하며 불렀다.


반면, 일본은 자국의 음악을 국악(일본어로는 고쿠가쿠)이라 지칭했는데, 일제의 식민지가 된 조선의 음악도 이 안에 속하게 되었다. 더불어, 당시에는 서양음악을 의미하는 양악이라는 용어도 존재하였는데, 양악과 대조하는 용어로서 국악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는 해석도 있다.


이 두 가지 이유가 대표적으로 '국악'이라는 용어가 사용된 이유로 보고 있다. 이렇게 시작된 국악이라는 용어의 사용은 광복 이후에도 이어진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교육기관으로 알려진 서울대에서도 1959년에 음악대학 안에 국악과라는 이름으로 과를 설립한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부터는 국악과라는 학과명 대신에 한국음악과라는 명칭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국악이라는 용어가 일제의 잔재라는 연구와 용어 자체가 20세기 후반까지의 전통음악만 지칭할 수 있는 한정된 용어라는 의견들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새로운 창작곡도 포괄할 수 있는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한국음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오늘날 국악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용어이기도 하다.



■국악 들을 때의 팁! 호흡을 느껴보자!

공연장뿐만 아니라, 음원을 들을 때도 이 팁은 언제든지 활용할 수 있다. 바로 연주자의 호흡을 느끼는 것이다.


호흡을 느끼는 첫 번째 순서는 바로 연주자에게 집중하는 것이다. 연주자의 긴장과 이완을 함께 따라가면, 그 호흡을 함께 한다고 볼 수 있다.


호흡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박자를 알아두면 많은 도움이 된다. 국악에서 박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장단을 먼저 이해하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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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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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한 권으로 완벽하게 각 장르를 단시간에 모두 섭렵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적어도 각 장르가 지금에 이르게 된 경위와 또 잘 몰랐던 이야기들과 용어, 누군가에게 물어보기 애매했던 질문들을 만나볼 수 있어 유익한 시간이었다.


특히 보통 특별히 궁금해하지 않고 그냥 그렇다고 하니깐 그렇다고 알고 있는 것들을 제대로 알 수 있기란 의외로 쉽지 않은데, 그런 것들을 알아갈 수 있어서 좋았다.


예컨대, '도레미파솔라시'에 대한 기원과 국악이라는 용어가 지금에 이르까지의 이야기 같은 것들은 어디에서도 쉽게 들을 수 없는 이야기가 더 흥미로웠다.


또 국악이 의외로 역사, 정치, 종교와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은 놀라웠다. 희곡은 문학작품 중에서도 유독 관심에서 멀리 있는 장르인데, 이번 기회를 통해 조금 더 가까이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됐다.


미술은 최근 들어 무료 전시도 많이 늘어났고, 찾아보면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는데, 기회가 닿는 대로 더 자주 방문해서 경험을 최대한 많이 쌓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됐다. 직접 작품을 보고 경험하는 것만큼 내 취향을 제대로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보다 폭넓게 취향을 알아가는 데에는 나름대로 큰 용기가 필요하다. 아주 작고 사소한 것에도 움츠러들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우리가 선뜻 다가서기 어려워하는 작은 에티켓이나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전해주고 있어 미지의 예술 영역으로 한 발 뗄 수 있는 용기를 전해준다.


예술 그까짓 거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일단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 시작하다 보면, 내 취향을 찾는 것은 물론 즐기는 수준에까지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만 지원받아 직접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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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자키스 지음, 박상은 옮김 / 문예춘추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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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과 극의 다른 삶을 살아가는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


책을 읽으면서 책 속에서 자주 언급되는 책들은 어딘가 모르게 자꾸 나의 신경을 자극한다. '대체 무슨 이야기를 품고 있길래 이토록 많이 언급되는 것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래서 읽을 책 목록에 담아두고는 시간이 될 때마다 아껴둔 사탕을 꺼내 먹듯 한 권씩 꺼내 읽어보고는 한다. 이 책도 그런 책 중 하나였는데, 내가 생각했던 이미지와는 다르게 생각보다 쉽게 읽히는 것에 한번 놀랐고, 또 생각보다 깊이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에 있어 또 한 번 놀랐다.

단순히 모험담을 담고 있는 이야기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실상 삶에 대한 철학과 사는 방식에 대한 고찰을 하게 만드는 책으로, 궁극적으로는 모두 행복을 향한 발걸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총 26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주인공인 '나'와 자유로운 영혼인 '조르바'와의 만남부터 이별(죽음)까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여기에는 정반대 삶을 살아가는 이 둘의 격렬한 부딪힘과 더불어 어느새 동화되어 가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극명히 다른 삶, 다른 시대를 살아온 두 사람이 우연히 한 카페에서 마주치면서 크레타 섬으로 동행하게 되고, 이로써 이들은 서로의 삶과 삶의 방식을 공유하게 된다.

대부분은 자유로운 삶을 살았던 조르바의 이야기를 주인공인 '내'가 듣는 형태를 취하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지식인이자 '최후의 인간'인 나는 그런 자유로움을 동경하게 된다. 더불어 어느 순간 나는 마음의 빗장을 풀게 되면서 마음속에 꽁꽁 싸매두고 있던 이념과 갈등으로부터 해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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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그리스인 조르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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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는 1917년 친구 길오르고스 조르바와 갈탄 광산을 운영하다 실패한 경험을 바탕으로 집필하게 된 자전적 소설로, 두 남자의 모험담을 그리고 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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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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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지식인이자 이성적 인간의 표본
-서른다섯 살
-책과 잉크를 통해 세상을 살아온 사람

■알렉시스 조르바
-원시적인 인간이자 본능에 충실한 인간의 표본
-예순다섯 살
-스스로를 모험을 즐기는 신드바드라고 여김
-순간순간 현재를 즐기는 삶을 살아옴
-다양한 여성들과 만남과 이별을 경험함
-몸으로 직접 겪은 삶을 살아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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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살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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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느 날 친구가 자신을 두고 책벌레라고 놀리는 소리를 듣고 분노를 느끼게 되는데, 그 단어는 그동안 내가 살아온 삶에 대한 모든 혐오감이 그 한 단어로 의인화 된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느새 그 말은 내 안에서 조용히 싹을 틔우고 자라나 내가 종이 뭉치를 내던지고 행동하는 삶으로 뛰쳐나갈 구실을 찾게 만든다. 그러던 중 마침내 간절히 바라던 기회가 찾아왔고, 리비아와 마주 보는 크레타의 해안으로 가게 된다.

그곳에서 나는 막노동자나 농부 같은 소박한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며 책벌레라는 종족과는 아예 인연을 끊어버릴 작정을 하게 된다. 아예 삶의 방식을 바꾸리라 마음먹은 것이다.

그렇게 피레에프스 항구에서 크레타행 배를 기다리던 중 카페에 잠시 대기 중이던 나는 유리창을 통해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던 한 남자를 만나게 된다. 그는 자신에게 어디로 가냐고 묻고는 이내 자신도 함께 크레타로 데려가 달라는 제안을 하게 된다.

그는 알렉시스 조르바로, 별명은 '빵집 주걱'이라 소개했다. 외적으로는 예순 정도의 야위고 키가 크며 눈이 반짝이는 형상을 하고 있었는데, 특이했던 점은 산투르라는 악기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조르바와의 대화를 통해 나는 그가 생동하는 가슴, 격렬한 입담, 대자연과 어우러진 위대한 야생의 영혼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는데, 그야말로 그동안 찾아 헤맸으나 만나지 못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로써 나는 조르바에게 크레타 섬에 함께 가는 것을 허락하게 된다. 

그렇게 배를 타고 크레타 마을에 도착한 나는 마을의 장로인 마브란도니를 만나 인사를 나눈 후 둘은 오르탕스 부인의 여관에 짐을 풀고 그곳에서 함께 묵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크레타 섬에서의 여정이 시작된다. 나는 과거 외할아버지가 여행객들에게 수많은 이야기를 듣는 것에 집착했던 것처럼, 조르바의 여행이야기를 듣는 것에 집착하게 되는데 그가 입을 열면 온 마케도니아가 내 눈앞에 펼쳐지는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조르바는 그렇게 매일 저녁 나를 그리스, 불가리아, 콘스탄티노플로 데려갔다.

나는 크레타에서 이루어야 할 두 가지 목표가 있었는데, 첫 번째는 붓다에게서 벗어나고, 형이상학적 근심을 일으키는 모든 문장을 멀리하여 부질없는 불안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고, 두 번째는 지금 이 순간부터 인간과 직접적이고 분명한 관계를 맺는 것이었다.

크레타에서 내가 임대한 갈탄 광산에서 조르바는 관리자로써 갱도를 파는 동안, 나는 '붓다' 원고를 펼쳐 내 몫의 갱도를 파기 시작했다. 일상 속에서 영감이 떠오르거나 심적 불안이 도사릴 때면 나는 하루 종일 글을 쓰며 마음을 비워냈다.

여기에는 안도, 자부심, 혐오감 등의 감정이 뒤섞여 있었는데,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쓰는 것에 몰두했다. 이 원고를 마무리하고 잘 묶어서 봉인하는 순간 나는 자유의 몸이 되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도 조르바는 매일을 본능에 충실하며 살아갔는데, 항상 절제하며 살아가는 내가 답답해 보였는지 종종 본능에 충실하라며 나를 떠밀고는 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이성에 묶여 그 유혹을 뿌리쳤다.

조르바는 낮에는 갱도에서 일을 하고, 밤이면 이성과 밤을 보내거나 아니면 나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는 했는데, 그의 이야기에 이유를 물을 때면, '그놈의 왜요, 왜요!'라며 화를 내기도 했다.

삶의 모든 순간을 몸으로 체득한 조르바는 그 모든 상황을 말로 다 풀어내는 것이 쉽지 않았던 것에 비해, 이성적 판단과 책을 통해 삶을 살았던 나는 오히려 그가 말하는 삶의 모습이 되려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이다.

이처럼 둘은 살아온 방식이 극과 극으로 달랐고 그래서 더 나는 조르바에 대해 더 호기심과 호감을 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였는지, 잘 알지도 못하는 조르바가 이성을 위해 자신의 돈을 펑펑 써도, 나는 크게 화를 내거나 실망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가 없는 빈자리가 크게 느껴져 빨리 돌아오라는 전보를 치는 이해 못 할 행동을 한다.

조르바는 돈을 더 크게 벌기 위해 갱도를 파는 일을 함과 동시에 케이블 철도 건설을 추진하지만, 결국 이것은 폭망하게 되고 이를 계기로 이들은 갱도와 관련된 사업을 접게 된다.

나는 이 일로 모든 것을 잃게 되지만, 그럼에도 나는 여기에 연연하지 않고, 오히려 조르바에게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달라는 요청을 하는 동시에, 춤추는 법을 가르쳐달라는 요청을 하기도 한다.

모든 일을 그르친 순간에야 영혼의 인내력과 용기를 시험하는 일이 얼마나 즐거운지 깨닫게 되면서, 나는 비로소 충만한 기쁨과 자유를 알게 된 것이다. 그렇게 나는 자유와 함께 마음껏 놀게 된다.

이후 나와 조르바는 각자의 삶을 향해 나가가기로 하고, 이별을 고하게 된다. 처음에 몇 년간은 엽서를 통해 안부를 전하기도 했지만, 조르바가 발견한 것을 보러 오라는 요청을 거절한 뒤부터는 조르바와도 연락이 끊기게 된다.

그리고 나는 꿈을 통해 친구들의 죽음을 직감함과 동시에 하나 둘 비보를 전해 듣게 된다. 친밀하지만 어딘가 비밀스러운 친구처럼 보였던 스타브리다키의 죽음 후 또 몇 년이 지난 뒤 조르바의 죽음 또한 예견하게 된다.

그리고 문득 나는 조르바에 대한 글을 써야 할 것 같은 강렬한 기운을 느끼지만, 글을 쓰면 왠지 그의 죽음을 인정하는 것만 같아 계속해서 미루게 된다.

하지만 결국 성스러운 힘에 이끌려 나는 불쑥 종이를 꺼내 들고 조르바의 말과 행동을 기록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조르바에 대한 일대기는 몇 주 만에 완성된다. 그리고 이내 조르바의 죽음에 대한 소식 또한 듣게 된다.

그는 자신을 영원히 기억해 달라는 유언과 함께 자신이 아꼈던 산투르를 함께 남기면서 이야기는 끝을 맺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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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남았던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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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적할 때, 혹은 주머니가 텅 비었을 때 산투르를 연주하면 늘 기운이 나곤 했지. 산투르를 연주할 때는 옆에서 말을 걸어도 안 들리고, 들린다 해도 말을 할 수가 없지. 아무리 해도 소용없어. 입이 안 열린다네!"
(...)
"오, 아직도 모르겠나? 열정, 열정 때문일세!"
2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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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로만 따져보면, 서른다섯 살의 '나'와 예순다섯 살의 조르바는 마치 서로의 영혼이 바뀐듯하다. 본능에 충실하고 열정이 가득한 조르바에 비해 이성적이고 차분한 나는 완전히 극과 극의 모습을 취하고 있다.

모든 풍파를 몸으로 견디며 경험해온 조르바는 예순다섯 살이 된 지금까지도 열정에 휩싸여 살아간다. 한 번도 열정을 제대로 경험해 보지 못한 나는 그래서 어쩌면 더 조르바에게 끌렸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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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짐승이라고! 잔인하게 굴면 굴수록 자넬 존중하고 무서워하는 게 인간일세. 친절을 베풀면 눈깔을 파내려 들지. 거리를 두게, 보스! 기를 세워주지 말란 말이야. 우리는 모두 평등하다는 둥, 동등한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둥 이런 소리를 했다간 당장 '자네의' 권리부터 짓밟고 나설 걸세. 자세의 빵을 빼앗고 굶어 죽게 할 거라고. 사람들과 거리를 두게, 보스. 다 자네를 위해 하는 말일세!"
8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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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으로 부딪히며 세상을 살아온 조르바는 인간은 짐승이라 말한다. 그러면서 평등과 존중, 동등한 권리를 내세워 타인에게 선의를 베풀려는 나에게 거리를 두라며 강하게 어필한다.

어쩌면 이 조언이야말로 현실을 제대로 살아보지 못한 나에게 하는 가장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조언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는 한 번도 직접적이고 분명한 인간관계를 맺어본 적이 없는 인물이기에 더 날카롭게 다가오는 조언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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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무엇도, 그 누구도 믿지 않네. 오직 나, 조르바를 믿지. 조르바라는 인간이 다른 인간보다 더 나아서가 아닐세, 눈곱만큼도 나은 점이 없지! 다른 놈들과 똑같은 짐승인걸! 하지만 조르바만이 내가 지배할 수 있고 꿰뚫어 볼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서 그렇다네, 나머지는 다 유령에 불과해. 나는 내 두 눈으로 보고, 두 귀로 듣고, 이 내장으로 소화하네. 그 외의 것은 다 유령이야. 내가 죽으면 다 같이 죽는 걸세. 이 조르바의 세계도 몽땅 가라앉는다고!"
8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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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적인 나에 비해 현실적인 면을 많이 가지고 있는 조르바의 이 말은 가슴에 비수처럼 날아든다. 타인의 말이나 행동보다 나 자신을 우선적으로 믿는 것이 왜 중요한가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다른 인간보다 나아서가 아니라, 내가 지배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나 자신뿐이며, 내가 존재해야 다른 것도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온전히 내가 지배할 수 있는 유일한 것!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이 아닐까? 그래서 내가 경험하고, 보고, 느끼는 것이 소중하고 중요한 것이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쓸데없이 유령 같은 타인의 말에 너무 많이 신경 쓰고 휘둘리고 있는듯하다. 어쩌면 주인공인 '나'가 그런 우리를 대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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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람은 학교 문턱을 밟아본 적도 없으니, 분명 사상 또한 왜곡되지 않았으리라. 다만 세상만사를 모두 경험했겠지. 그리하여 생각이 트이고 마음은 너그러워지고 그러면서도 본래의 기개가 조금도 꺾이지 않았으리라. 우리가 너무 복잡해 풀 수 없다고 여기는 문제도 그는 고르디아스의 매듭을 끊은 알렉산더 대왕처럼 단칼에 베어내는 것이다. 온몸의 무게를 실어 두 발을 땅에 단단히 붙였기 때문에 겨냥이 빗나갈 염려도 없다.
(...)
우리 배운 이들은 그저 하늘을 나는 머리가 빈 새에 불과한 것이다.
9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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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조르바를 보며 자신과 조르바에 대해 비교 분석한 문장으로, 지식인인 자신을 머리 빈 새에 비유한 것에 비해 조르바는 심지가 곧고 속이 꽉 찬 인물로 비유하고 있다.

삶을 온몸으로 경험한 자와, 책을 통해 머리로만 세상을 경험한 자의 특성을 신랄하게 표현한 문장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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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라는 것이 얼마나 단순하고 소박한 것인지 다시 한 번 실감했다. 포도주 한 잔, 구운 밤, 초라한 작은 화로, 파도 소리면 충분했다. 그리고 행복이 바로 여기, 이 순간에 와 있다는 것을 느끼는 데에도 단순하고 소박한 마음 하나면 충분했다.
11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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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멀리서만 찾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다. 그런데 조르바와 함께 지내며 나는 비로소 행복이 그리 멀리 있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더불어 행복 그 자체가 얼마나 소박하고 단순한 것이지도 함께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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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바로 골칫거리일세."
조르바가 말을 이었다.
"죽음은 오히려 평온하지. 산다는 것-그게 어떤 의미인 줄은 아나? 허리띠를 풀고 골칫거리를 찾아 나선다는 뜻일세!"
14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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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장을 읽는데 절로 '정답'이라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죽음은 평온하다. 고로 살아가는 것에서 평온을 찾는 것이 오히려 잘못된 생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됐다.

그렇다면, 그냥 그 자체를 받아들이면 어떨까? 골칫거리를 찾고 있는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조금은 현실이 덜 불행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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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가 바로 최후의 인간이다!"
나는 울부짖었다. 그것이 바로 그의 비밀이며 엄청난 의미라는 걸 알았다. 붓다야말로 스스로를 비워낸 '순수한' 영혼이었던 것이다. 그의 내부는 공허하며 그가 바로 그 공허 자체였다. '네 육신을 비워라, 네 영혼을 비워라, 네 가슴을 비워라!' 그는 외친다. 그의 발이 닿는 곳마다 물은 흐르지 아니하고 잔디는 자라지 아니하고 아이는 태어나지 않으리라.
(...)
'붓다'를 쓰는 일은 사실 더 이상 문학적 행위가 아니었다. 내 안에 도사린 엄청난 파괴력과의 생사를 건 전투이자 내 심장을 갉아먹는 거대한 부정과의 싸움이었고, 이 싸움에 내 영혼의 구원이 달려 있었다.
195~19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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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붓다'를 대변하는 인물이다. 고로 나는 지식인이고 아는 것이 많지만 내부는 공허함 그 자체라 말할 수 있다.(어찌 보면 내면을 수련하는 종교인을 대변하는 인물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주인공인 '나'는 안도, 자부심, 혐오감, 성적 쾌락 등을 비우기 위해 계속해서 붓다를 써 내려간다. 행동하지 않고 털어내기 위해 계속 써 내려가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이성을 끌어모아 붓다를 완성하여 봉인하는 순간, 그토록 갈망하던 자유를 얻을 것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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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함께 지냈던, 인간의 온기로 충만했던 그 시절을 회상했다. 조르바와 함께 있으면 시간은 더 이상 예전의 시간이 아니었다. 외부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수학적 나열도, 풀 수 없는 내면의 철학적 문제도 아니었다. 마치 따뜻하고 결 고운 모래처럼 나는 시간이 내 손가락 사이로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걸 느낄 수 있었다.
(...)
"그는 내 안에서 떨고 있던 추상적인 생각에 형체를 주고 온기와 사랑, 생명을 주었다. 그가 없는 지금, 나는 다시 떨고 있구나."
나는 종이 한 장을 꺼낸 뒤 일꾼을 불러 급히 전보를 치게 했다.
"지금 당장 돌아오기 바람."
22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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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바와 함께 지내면서 나는 비로소 사람의 온기를 느끼게 된다. 느끼는 것을 마음껏 표출하고, 또 경험하며 살아있음을 느끼게 된 것이다.

때문에 케이블 철도 건설을 위해 자재를 사러 잠시 조르바가 다른 마을로 떠났을 때 나는 더 절절히 느끼게 된다. 그가 곁에 없는 것이 얼마나 공허하고 쓸쓸한지를 말이다.

이처럼 나에게는 조르바가 곁에 있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렇기에, 그가 이성을 유혹하는 데 자신의 돈을 펑펑 썼다고 이실직고했음에도 나는 화를 내기보다 오히려 빨리 돌아오라는 말을 대신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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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마음먹기에 달렸다네."
그가 말했다.
"믿음이 있나? 그렇다면 낡은 문에서 떼어낸 나뭇조각도 성스러운 유물이 되지. 믿음이 없다면? 성스러운 십자가를 통째로 갖다 준대도 벌레 먹은 문설주만도 못할 걸세."
32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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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핵심 문장이 바로 여기에 있다. '마음먹기에 달렸다'라는 말은 쉽게 주고받는 말이지만, 그만큼 가볍게 여기는 말이기도 하다.

지금부터라도 나 자신에 대한 믿음,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에 대한 믿음을 가져보면 어떨까? 마음먹기에 따라 그 길은 고속도로가 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진흙탕의 길이 되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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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가 부러울 뿐이었다. 그는 내가 펜과 잉크만으로 배우고자 했던 것을 피와 살로 싸우고, 죽이고, 입 맞추며 살아왔다. 내가 의자에 죽치고 앉아 고독을 벗 삼아 하나씩 해결하려 했던 문제를 그는 산속의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칼로 베어버린 것이다.
32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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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반부에 들어서면 본격적으로 '내'가 조르바를 보며 자신의 마음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붓다'를 쓰며 마음의 평정을 찾으려고 노력하지만, 결국 나는 그를 보며 부러워했음을 알 수 있다.

온몸으로 부딪히며 생을 살아온 그의 긍지와 신념, 경험을 예순다섯 살 된 노인에게서 느끼면서 나는 서서히 그에게로 동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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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연히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오두막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나는 붓다 원고를 펼쳐들었다. 원고는 마무리되어 있었다. 마지막 부분에서 붓다는 꽃이 만개한 나무 아래에 누워 있었다. 한 손을 들어 자신을 이루는 다섯 요소-흙, 물, 불, 공기, 정신-에게 해체 명령을 내렸다.

이 고뇌의 상에 더 이상 시달릴 필요가 없었다. 나는 이미 그것을 넘어섰으며, 붓다에게 바치는 나의 찬미 또한 끝난 셈이었다-그리하여 나 또한 손을 들어 내 안의 붓다에게 사라질 것을 명령했다.

나는 서둘러 언어의 도움을 받고 그 퇴치 능력을 빌려 붓다의 몸과 정신과 영혼을 해체했다. 그리고 가차 없이 마지막 문장을 휘갈기며 최후의 탄성을 내뱉은 뒤 붉은 연필로 내 이름을 크게 적었다. 이제 완성됐다.
34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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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를 완성함으로써 나는 그토록 자신을 옭아매던 것으로부터 탈피하게 된다. 그리고 몸과 정신과 영혼을 해체함으로써 드디어 자유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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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생각에는 말입니다. 조르바-제가 틀릴 수도 있지만-이 세상에는 세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 말마따나, 자기 자신의 삶을 살며 먹고, 마시고, 사랑을 나누고, 돈을 벌고, 유명해지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삶은 살지 않고 다른 사람을 위해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모든 사람들은 하나라고 생각하며 그들을 깨우치고 할 수 있는 한 깊이 사랑하며 봉사하는 것이지요. 마지막으로, 전 우주의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인간, 동물, 나무, 별, 이 모든 것들을 하나로 여기고, 우리 모두가 하나의 끔찍한 투쟁에 뛰어들었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무슨 투쟁이냐고요? ...... 물질을 정신으로 만드는 투쟁이지요."
39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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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두 가지 종류의 인간상을 '나'와' '조르바'를 대신해서 표현하고 있는데, 소설 속에서 '나'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더해 세 가지 종류의 인간상에 대해 말하고 있다.

가장 이상적인 인간상을 꼽자면 마지막을 이야기하겠지만, 대체적으로 현실 속에 존재하는 인간상은 아마 첫 번째와 두 번째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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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적으로는 완전히 패했을지 모르나 자기 자신의 내면을 점령한 사람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긍지와 기쁨을 누린다. 표면상의 재앙이 지상 최고의 확고부동한 행복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41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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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갱도와 케이블 철도가 폭삭 주저앉으며 외적으로는 완전히 패했다. 가진 모든 것을 잃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오히려 긍지와 기쁨을 얻었다.

조르바와 함께 하며 '붓다'를 완성했고, 이로써 자기 내면의 자유를 얻었으며, 덕분에 온전히 자기 내면을 점령할 수 있었다.

나는 고로 확고부동한 행복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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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물개, 화냥년, 암염소, 걸레 같은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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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바의 대사를 따라가다 보면, 위와 같은 여성을 비하하는 단어들에 눈에 띈다. 그리고 이런 말 뒤에는 "하느님, 그녀를 축복하소서!"와 같은 말이 잇따라 연결되는데,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다른 의미로 다가올 것 같다.

단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나이 든 여성이나 몸을 파는 여성들을 낮잡아 보거나 비하하는 발언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런데 뒤에 마치 '아멘'과 같은 느낌으로 붙는 문장들을 떠올려봤을 때는, 그 시대에 천대받던 여성들의 지위와 시대상을 거침없이 나타낸 단어라는 생각도 든다.

조르바가 이토록 마구잡이식으로 부르는 호칭들의 대상은 보통 전쟁 속 남성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여성들이나 남편을 잃고 과부가 된 여성들, 그리고 자신의 욕정을 풀어주는 여성들을 지칭한다.

저자가 어떤 마음으로 이 단어들을 거침없이 썼는지는 모르겠으나 읽는 독자 입장에서는 껄끄럽게 다가오는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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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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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의 극과 극의 인물을 대치시켜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이 소설은 과연 어떤 삶이 옳은가라는 판단보다, 저마다 살아가는 방식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주인공인 '나'는 지식인으로 이성을 중시하며 신념을 중요하게 여기던 인물이다. 반면, 조르바는 본능에 충실하며 오늘의 행복을 좇는 인물이다.

중 후반부에 들어서면 '나'는 조르바를 통해 자신이 살아온 방식이 전부가 아니며, 있는 그대로를 느끼고 표현함으로써 행복에 더 가까워질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무조건적으로 욕망과 감정을 억제하는 것만이 정답이 아님을 알게 된다.

이렇듯 보다 본능에 가까워지는 모습을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르바와 같은 인생을 살지는 않는다.

하지만, 신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를 믿고 구원함으로써 인생을 보다 당당하고 의미 있게 살아가는 조르바의 모습은 분명 우리에게 어떤 깨달음을 전한다.

기쁘면 웃고, 슬프면 울며, 감정을 주체할 수 없을 때는 춤을 추는 등 현재의 감정과 행복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가짐은 우리가 놓치고 있는 삶의 진정한 가치일지도 모르겠다.

숭고한 이념을 추구하는 이성적인 삶이든 가장 기본적인 욕구에 충실한 짐승의 삶이든 우주와 하나가 되고자 하는 목적(행복에 이르는 길)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므로, 방법이야 어찌 됐든 나만의 행복을 향한 길을 나아가면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 조르바가 추구했던 카르페디엠(지금 이 순간을 즐겨라) 만은 놓치지 말길 바란다. 다시 오지 않을 이 순간은 영원히 아닌, 찰나이기에 마음껏 사랑하고 행복을 만끽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만약 지나친 도덕이나 금욕주의, 타인의 시선에 얽매여 이 소설의 주인공처럼 진짜 내 삶을 살아가지 못하고 있다면, 조르바의 충고를 새겨들어보자.

그리고 주인공이 '붓다'를 버린 것처럼 나를 옭아매고 사로잡고 있는 고귀한 이념을 끊어내보자. 그러면 보다 가까이에서 행복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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