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오래 보았다
김영롱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94세 치매 할머니와 손녀의 일상을 통해 사랑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던 가슴 따뜻한 가족 이야기"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면서, 세대 차이가 벌어지고 가정이 점차 붕괴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 현실을 고려해 봤을 때,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현재'의 이야기는 동화속에나 존재할 법한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지금에 이르게 된 경위와 과정을 살펴보다 보면, 단순히 동화 같은 이야기가 아님을, 쉽지 않은 여정이었음을 금세 파악할 수 있다.

'긴 병에 효자 없다'라는 말이 있는데, 실제로 경험해 본 사람들은 이 말에 깊이 공감할 것이다. 저자의 집 또한 처음 4년간은 이 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하지만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과 더불어 실천으로 옮김으로써 저자는 상황을 전환시켜 지금에 이를 수 있었다.


총 3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94세 치매 할머니와 엄마, 그리고 저자가 함께 사는 3대의 일상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는 사랑, 눈물, 상처, 포기, 진심, 화해 등이 함께 포함되어 있다.

저자는 자신이 기억하는 유년 시절부터 할머니와 함께 유튜브를 시작하고 달라진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삶을 이 책에 담아냈는데, 읽다 보면 보통의 가족의 모습부터 어려움을 극복하고 새로운 가족의 모습으로 탈바꿈한 모습까지 모두 만나볼 수 있다.

처음에는 고령의 치매 할머니와의 따뜻한 추억담 정도가 실려있을 것이라고 막연히 추측하며 읽기 시작했는데, 읽다 보니 여느 가정과 별반 다르지 않은 우리네 이야기를 담고 있어 읽는 내내 여러 감정이 교차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더불어 진짜 가족이란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해봄과 동시에 어쩌면 우리는 가족이라는 울타리만 생각하고 각각의 사람 그 자체를 들여다보지 못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됐다.

또 특정 질병에 있어 잘못된 편견과 생각에 사로잡혀 있느라 정작 질병을 앓고 있는 '그 사람'에 대해서는 뒤로 미뤄두고 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보통 집 안에 긴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있는 경우 그 집안의 분위기는 어둡고 날카롭다. 가족끼리는 항상 다툼이 잦고, 보호자들은 늘 지쳐있으며, 환자는 그런 보호자를 보며 더 위축이 된다. 그리고 병은 더 깊어진다.

저자의 집 역시 마찬가지였다. 장장 4년을 모녀가 매일 말다툼을 하며 보냈다. 하지만 가볍게 시작한 유튜브로 인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모녀의 사이는 물론 치매로 인해 세상과 단절되어 가던 할머니마저 다채로운 일상을 매일 경험하게 되면서 새로운 모습들을 보여주게 된다.


=====
3대 가족을 소개합니다
=====

■외할머니
-이름: 노병래
-나이: 94세(1931년 12월 12일 5남매 중 막내로 출생)
-고향: 충청남도 서천군 기산면
-자녀: 5남매(수복이, 남복이, 재섭이, 숙희, 선희)
-특이사항: 치매를 앓고 있음


■엄마
-할머니를 가장 빼닮은 딸이었지만, 다섯 자식 중 가장 존재감이 없었던 넷째.
-가족 중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한 천덕꾸러기 신세였음
-군에서 재섭이 삼촌이 갑작스레 사망하게 되면서 프랑스 미술 유학을 포기하게 됨. 이로써 계획했던 삶이 망가짐


■김영롱(저자)
-외할머니가 애지중지 키운 손녀 딸
-어릴 때부터 할머니 껌딱지로 추억이 많음
-할머니, 엄마, 저자가 한 집에서 살고 있음
-어릴 때 부모님은 이혼함
-가볍게 시작한 유튜브로 인해 사랑하는 방법을 새롭게 깨닫게 됨


=====
할머니의 수난시대
=====

1. 둘째 딸 남복의 죽음
할머니 나이 마흔한 살에 고등학생이던 둘째 딸 남복이 뇌 수막염으로 사망하게 된다. 똑똑하고 집안일을 가장 많이 도와줬던 딸이었기에 할머니의 상심은 매우 컸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은 병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점차 증상은 나빠지기 시작했고, 신장에 있던 염증 세포가 머리로 올라가 뇌 수막염으로 번지면서 병은 손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그렇게 남복은 이렇다 할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딸의 장례를 치러줄 돈조차 없어서 화장을 하자마자 남복의 유골함은 이름 모를 야산에 묻히게 된다.


2. 유일한 아들인 재섭의 죽음
11년 뒤, 군 복무만 마치면 미술을 전공해 제대 후 화가로 활동을 하거나 교단에 설 계획이던 앞날이 창창했을 재섭은 갑작스레 부대에서 눈을 감게 된다.

새것만 입히고 좋은 것만 먹이며 키운 유일한 아들이었던 그가 갑작스럽게 군에서 사망하게 되면서 할머니는 또 한 번 시련을 겪게 된다.

심지어 군에서는 죽음의 사인을 밝히지 않는다면 재섭을 국가유공자로 등록시켜주겠다며 거래를 제안하게 된다.

할아버지는 없는 살림에 합의를 받아들이게 되고, 이로써 다음날 바로 재섭은 국립 대전 현충원에 묻히게 되고, 이 일로 가족들의 삶도 망가지게 된다. 프랑스 미술 유학을 꿈꾸던 숙희(엄마)의 삶 또한 망가지게 된다.

삼촌의 죽음 이후 할머니는 '참 독한 여자, 기 센 여자, 웬만한 남자도 이기는 여자 대장부'라는 별명이 생기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삼촌이 돌아가시고 몇 년 뒤, 저자가 태어나게 된다.


3. 할아버지의 죽음
할아버지의 통통한 배에서 만져지던 덩어리는 암덩어리로, 3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은 후 할아버지는 급격히 쇠약해지게 된다. 그리고 정확히 3개월째 되던 날 가족 곁을 떠나게 된다.

장례를 치르고 3일 뒤 할아버지 곁을 지켰던 자식들은 다시 일터로 돌아갔고, 할머니만 남은 집에는 점차 사람들의 발길도 끊기기 시작한다.

할머니의 눈빛에서는 서운함과 슬픔이 가득했는데, 그렇게 몇 년 사이 할머니는 모든 집안 행사를 이끌던 어른에서 쓸데없는 집안 행사까지 챙기려 하는 꼬장꼬장한 노인이 되어 있었다.


4. 할머니의 수술과 우울증, 그리고 치매
할아버지의 죽음 이후 할머니는 점차 생활 반경이 좁아졌는데, 어느 날 삼촌의 보훈 급여를 찾으러 우체국에 다녀오던 날 바지에 소변을 보며 길에서 쓰러지게 된다. 심장 혈관이 막힌 게 원인이었다.

결국 할머니는 수술까지 받게 되었고, 심장 수술 이후 오래 누워 있다 보니 아픈 무릎은 더 안 좋아졌다. 비슷한 시기에 아슬아슬 했던 청력도 급격히 나빠지면서 총 세 개의 보청기를 맞춰드렸지만 어지럽다는 이유로 착용을 거부하는 통에 결국 두 손 두발 다 들게 된다.

또한 귀가 어둡다 보니 용기 내어 외출한 날에도 생판 모르는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는 일이 잦았다. 그렇게 할머니는 점차 사람들과도 멀어졌고 홀로 있는 시간이 길어지게 되면서 서서히 우울증이 오고 있었다. 그러나 저자는 알아채지 못했다고 한다.

할머니의 세계는 점점 좁아지더니 어느새 작은 섬과 같아졌는데, 특별한 날에만 사람들이 배를 타고 와서 축제를 벌이는 섬처럼 느껴졌다.

저자는 그제야 알았다. 할머니의 치매는 세상과의 소통이 멈춰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던 뇌가 웅크리면서 시작된 병이자 지독한 외로움에서 시작된 병이라는 걸.

할머니의 치매가 시작된 이후 엄마와 저자는 줄곧 4년을 싸워댔다. 그리고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상황을 바꿔보기 위해 가벼운 마음으로 유튜브를 시작하게 된다.


5. 할머니의 신우요관암
어느 날 할머니의 소변에서 피가 보이기 시작했고, 검사를 통해 신우요관암임을 알게 된다. 의사는 고령의 할머니에게 수술을 권하지 않았는데, 가족들과 상의한 끝에 항암 치료나 수술 모두 진행하지 않는 쪽을 택한다.

90세가 넘은 노인이 항암을 진행할 경우, 체력이 버티지 못해서 돌아가실 수도 있다는 경험자들의 조언과 자신이 암이라는 사실을 알자마자 빠르게 상태가 악화됐던 할아버지 간병 경험을 토대로 내린 결정이었다.

모녀는 그냥 갓 지은 따뜻한 밥과 익숙한 잠자리가 있는 집에서 할머니와 지금처럼 지내기로 마음먹는다.


6. 할머니의 섬망 증상
환시, 환청, 불면, 이상행동 등 처음 겪어보는 섬망 증상은 가족들에게 있어서는 고문을 받는 기분이 들 정도로 심각했다.

그렇게 48시간의 정신없는 섬망 소동을 겪고 난 후 두 번의 섬망이 또 다녀갔다. 2주 간격으로 나타났던 두 번째, 세 번째 섬망을 마주했을 때 모녀는 더 이상 당황하거나 절망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그 후 더 이상의 섬망 증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맞닥뜨린 섬망 증상은 보호자까지 나동그라지게 만들 정도로 지치게 만들었다. 하지만 원인을 파악하게 되면서 비로소 안정을 찾게 된다.


=====
대략적인 줄거리
=====

저자는 굴곡진 할머니의 삶과 더불어 자신과 할머니 사이의 추억들을 하나하나 풀어놓으며 이들 가족의 역사를 하나하나 되짚어 나간다. 그리고 그 속에는 가족들 사이에서 상처받고 사랑이 고팠던 엄마가 있다.

끈끈하고 애틋한 할머니와 손녀 사이와는 달리, 멀찍이 떨어져 부딪히기 바쁜 엄마와 할머니의 사이는 저자가 중재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어릴 적부터 깊이 쌓아온 갈등의 골은 깊었고, 꼬인 실타래는 도저히 풀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저자가 유튜브를 시작하게 되면서 서서히 이들의 오해와 앙금은 사라지게 된다.

가까이 있음에도 깊이 들여다보지 못했던 얼굴을 영상을 통해 마주하게 되면서 이들은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한다. 사랑하는 마음은 있지만, 사랑하는 방법을 몰라 물리적으로 가까워질 수 없었던 이들이 마침내 얼굴을 맞대고 살을 부비며 고맙다는 말을 나눌 수 있게 된 것이다.

더불어 모녀 사이도 많이 달라졌는데, 할머니의 치매가 시작된 이후 줄곧 4년을 싸워댔던 날을 청산하고, 어느새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 몫을 하며 의지하고 협력하는 사이가 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유튜브는 삼대뿐 아니라 친척들의 마음도 움직이게 되면서, 그간 코로나로 인해 발길이 끊어졌던 친척들이 하나둘씩 할머니와 인사를 나누기 위해 집에 방문하게 된다.

지난했던 4년을 보내고 유튜브를 시작하게 되면서 집안에는 활기가 돌기 시작했는데, 그렇다고 해도 평소의 일이 줄어들거나 간호하는 일상이 달라진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어느새 웃음꽃이 피기 시작했고, 일상에서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감정들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며 나누게 된다.

저자는 이제 감추고 피하려고만 했던 할머니의 죽음도 마주하며 더 나은 죽음을 위해 어떻게 하면 좋을까를 고민한다. 치매라는 병을 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살아있음에, 체온을 나눌 수 있음에 감사하며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
기억에 남았던 문장들
=====

-----
할머니는 이 말을 할 때 씁쓸하면서도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슬프면 슬픈 대로, 좋으면 좋은 대로.' 때로는 흘려보내고 때로는 간직하며 살면 살아진다는 말. 지독한 슬픔도, 넘치는 기쁨도 한데 섞여 하나의 삶이 된다는 말. 나는 이 문장이 "그래도 살라"는 말로 들린다.
(...)
이제 할머니의 말에서 빠진 단어 하나를 채워보려고 한다. 할머니는 사는 것도 포기하지 않았지만 사랑하는 것도 포기하지 않았다. 기억이 흐릿해지고 있는 94세 할머니가 이처럼 자신의 반짝이는 표현력으로 사람들에게 "그래도 살라"고 말할 수 있었던 이유는 조카든, 남편이든, 자식이든, 손녀든 사랑하며 살았기 때문이 아닐까.
(...)
"슬프면 슬픈 대로 살고, 좋으면 좋은 대로 (사랑하며) 살다 보면 당신들도 이렇게 오래 살아요."

아마 할머니가 하고 싶었던 말은 이런 말이었을 거다.
49~51페이지 中
-----

가족의 의미를 되새겨주는 말이 아닐까 싶다. 특히 (사랑하며)라는 말이 추가되면서, 가족은 모름지기 슬프면 슬픈 대로, 좋으면 좋은 대로 '함께' 살아나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
안정과 애착 없이 자란 삶이 단단한 반석 위에서 뻗어 난 삶만큼이나 깊이 뿌리를 내리려면 홀로 애써야 할 게 많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기댈 곳 없었던 엄마는 긴 시간 동안 자신의 인생을 외로이 감당해야 했다. 상처를 견뎌내기 위해서 아마 평생을 노력해야 했을 거고, 혼자서라도 바로 서려고 스스로 많은 걸 터득해갔을 것이다. 엄마가 할머니의 작은 행동들에 불에 덴 듯한 반응을 보였던 건, 온 힘을 다해 바로 서게 된 자신이 그때마다 흔들렸기 때문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59페이지 中
-----

저자는 중간에서 중립자로써 엄마의 상처 또한 보듬을 줄 알았다. 어느 한편에 서기보다 엄마가 왜 어떤 상처와 눈물을 마음에 품고 살았는지 이해했고 그대로 받아들였다.

때문에 엄마와 할머니의 갈등을 억지스럽게 화해하려 하는 섣부른 시도는 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엄마의 상처를 들어주었다.

이 시간 덕분에 어쩌면 엄마를 더 잘 이해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
치매는 엄마와 나, 그리고 할머니의 얼굴에서 웃음을 앗아갔다. 우리는 셋이지만 마치 거울을 보고 무표정하게 서 있는 한 사람 같았다. 서로의 말을 들어줄 마음도, 온기를 내어줄 여유도 없었기에 함께이지만 홀로였던 채로. 이 4년 동안 우리가 과연 가족이었을까?
102페이지 中
-----

가장 위태로운 가족의 모습을 살펴보면, 이 모습과 똑 닮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숫자가 중요하지는 않다. 마치 거울을 보고 무표정하게 서 있는 한 사람 같은 모양새가 있을 뿐이다.

치고받고 싸우고, 서로를 상처 주고 할퀼 때만큼은 서로가 서로에게 있어 가족이 아니었을 것이다. 아마 각기 다른 피해자만 존재하지 않았을까?


-----
촬영한 영상을 돌려보다 보니 알 수 있었다. 치매는 할머니의 일부일 뿐인데, 나는 치매만 쳐다보다가 '우리 할머니'를 잊고 있었다. 할머니의 정체성과 감정은 내가 보고자 하면 언제든 나올 준비가 되어 있었다. 다만 내 신경이 온통 이상행동과 실수에 몰려 있어서 알아채지 못했던 것이었다. 보려고 하지 않았던 것. 그게 바로 문제였다.
118페이지 中
-----

아마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가 바로 이것이 아닐까? 그래서 보통은 질병만 바라보느라, 어느새 그 속에 자리한 사람은 잊는다.

질병에 걸렸어도, 여전히 정체성과 감정은 고스란히 남아있는데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사람으로 취급하는 우리가 잘못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에 반성의 시간을 가져본다.


-----
꾸밈없는 영상들은 내게도 좋은 영향을 미쳤다. 영상을 편집하는 과정에서 같은 장면만 수십 번 보다 보니 그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할머니의 작은 몸짓과 눈빛, 표정 하나하나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편집은 할머니가 내게 미처 전하지 못한 마음, 일상에서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감정을 이해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 주기도 했다. 4년간 묵혀왔던 갈증이 조금씩 해소되는 것 같았다.
122~123페이지 中
-----

영상은 추억을 반추하는 도구가 되기도 하지만, 현재를 되짚어 보고 상대를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기도 하는 듯하다.

만약 몇 년 더 앞서 유튜브라는 매개체가 활성화되었다면, 나 역시 비슷한 의도를 가지고 수없이 많은 영상을 남겼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
매일 하던 대소변 묻은 빨래가 이틀에 한번, 삼 일에 한 번이 되더니 두어 달이 지나자 거의 사라졌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

약 4개월 뒤, 뇌신경과 진료를 받으러 갔다가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그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치매 노인의 자존감과 우울감은 인지능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자존감이 올라가고 우울감이 낮아지면 그렇지 않을 때보다 인지능력 검사에서 점수가 높게 나온다는 것이었다. 살아 갈 이유가 생기는 것도 치매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했다.
(...)
할머니에게 필요했던 것은 곧 기억에서 사라질 경고와 주의가 아니라 사는 걸 재미있게 만들어줄 활력, 자존감을 높여줄 칭찬과 대화, 우울감을 낮춰줄 웃음이었다.
128페이지 中
-----

병에 사로잡히면 우리는 병에 집중하느라 정작 사람은 등한시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사람에 집중하고 보니, 병도 호전을 보이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존감을 높여주고, 삶의 활력을 주는 일상. 여기에 더해 칭찬과 대화를 통한 웃음이야말로 우리 삶에 진정한 치료제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건강한 사람도 웃음을 잃는 순간 우울과 불안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어쩌면 이것은 우리가 삶에서 잊지 말아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가 아닐까 한다.


-----
우리 삼대가 지금처럼 웃으며 지낼 수 있게 된 건, 자신의 아픈 상처만 들여다보던 이들이 서로의 상처로 시선을 돌리면서 '저 사람도 얼마나 아팠을까?'를 헤아려보기 시작한 뒤부터였다.

몇 십 년에 걸쳐 생겨버린 상처가 아물기까지 우리에겐 분명 수많은 시행착오와 노력이 필요했다. 그러니 우리 가족은 동화의 한 장면에서 튀어나온 사람도,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도 아니다. 우리는 태어난 김에 만나 서로를 어느새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 가족이자, 함께 성숙해져가는 과정에서 행복을 느끼는 세 명의 여성들이다.
138페이지 中
-----

처음 4년이 힘겨웠던 건 '나'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아픈 상처만 돌아보느라 정작 타인을 돌아볼 여유도 배려도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눈을 돌려 서로의 상처를 돌아보기 시작하면서 이들은 어느새 잃어버렸던 웃음을 되찾게 된다. 더 보듬고 헤아리며 서로를 위로하고 의지하는 진정한 가족이 된 것이다.


-----
예전 같았으면 하루 웃고 넘어갔을 일을 매일 기뻐할 수 있게 된 변화는 생각보다 놀라운 일이었다. 웃는 게 좋아서 더 웃을 만한 일들을 찾아서 해볼수록 우리 가족의 관계도 조금씩 단단해졌으니까. 한때 할머니의 깜빡임은 우리에게 참 슬픈 일이었지만, 이제는 우리가 사랑하는 할머니의 가장 예쁜 모습이 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치매의 가장 아름다운 면이기도 하다.
168~169페이지 中
-----

할머니의 깜빡임에 대해 관점을 달리하면서, 오히려 웃을 일이 두 배, 세배가 되었다고 말하는 저자의 말에서 다시 한번 깨달음을 얻는다.

우리 삶도 그렇지 않을까? 의미가 없던 일에 의미를 더하고, 가치를 부여하는 순간 우리 삶은 보다 다채로워질 것이다.


-----
이제 확실히 알았다. 엄마와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우리 가족을 감싸고 있는 온기가 사라지지 않도록 할머니를 온 마음 다해 사랑하는 일이라는 걸.

다가올 이별을 생각했던 그 시간을 계기로 일상은 더욱 소중해졌다. 풀이 죽어 있던 할머니 앞에 다시 삼각대가 놓이고 내가 조잘거리며 끊임없이 수다를 떨자 할머니는 다시 웃기 시작했다. 그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아직 할머니를 만질 수 있다.
191페이지 中
-----

치매에 걸렸어도 여전히 할머니는 살아 계신다. 숨을 쉬고, 온기를 느끼며, 사랑할 수 있다. 그 점에 감사하며 주어진 시간을 아낌없이 보듬으며 사랑하겠다고 말하는 저자의 말에 힘찬 응원을 보내고 싶다.


-----
치매는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로 자주 비유된다. 언제 끝이 날지 알 수 없는 터널에 들어서면 누구든지 두려움을 갖게 되기 마련이다.
(...)
그러나 지금 우리는 터널 중간 어디쯤에서 웃으며 걷고 있다. 그 변화의 시작은 할머니에게서 아직 사라지지 않은 것들을 지켜주려고 노력하면서부터 찾아왔다.

할머니는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흐릿해지고 있고, 어쩌면 우리 삼대가 지나는 터널의 끝이 아름답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 여정이 절망스럽지만은 않다는 것. 중간에 꽃밭도 있고 해가 들어오는 공간도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부터 나는 그 끝이 두렵지 않게 되었다.
229페이지 中
-----

치매라는 병을 하나의 덩어리로 놓고 봤을 때는 그저 끝없는 터널을 지나는 기분이었는데, 그것을 하나씩 쪼개두고 할머니 맞춤형으로 전환하니 새로운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전한다.

덕분에 저자는 유튜브를 통해 할머니와 많은 것들을 나누며 함께 하고 있다. 더불어 언젠가 맞이하게 될 끝도 더 이상 두렵지 않게 되었다고 말한다.


-----
EBS 다큐프라임 <내 마지막 집은 어디인가> 2부를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노인을 배제한 채 노인의 일을 정하지 말라."

노인의 안전을 보장하는 동시에 그들의 존엄성도 지키기 위해 우리가 정말 고민해 봐야 하는 문제는 이것이다. 보호자 또는 요양 시설이 노인의 삶을 어디까지 결정할 수 있을지 폭넓게 논의해야 한다. 치매의 진행 단계와 노인의 건강 상태에 따라서 각기 달라질 이 균형이 잘만 잡힌다면 요양원, 사회제도와 지원, 사회적 인식은 자연스럽게 올바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 거라고 믿는다. 뜨거운 감자가 천천히 식어가듯 말이다.

나는 그 고민의 첫 발걸음이 '만약 나라면'이라는 말로부터 출발했으면 좋겠다.
238페이지 中
-----

웰다잉에 관련된 부분은 늘 뜨거운 감자였다. 존엄을 지키며 죽음을 맞이하는 것, 그리고 그 방법이나 범주가 어디까지 허용되는가는 자칫 살해로 이어질 수 있어 더 조심스럽다.

하지만, 분명한 건 우리가 멀게만 생각하는 죽음과 노인은 우리 모두에게 언젠가 다가올 일들이다. 그렇기에 노인(혹은 나)을 배제하고 죽음을 논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대한민국이기에 언젠가 노인문제와 요양 시설, 죽음에 대한 문제가 다른 나라에 비해 더 급격히 밀려들어올 것이다.

그러기 전에 이제부터라도 '만약 나라면'이라는 시각에서부터 시작해 고민해 봐야 하지 않을까 한다.


-----
누구에게도 한 사람의 마지막을 함부로 단정 지을 권리는 없다. 마지막을 앞둔 노인에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꾸만 어두워지는 삶에서 위태롭게 빛나고 있는 그 반짝임을 어떻게 지켜줘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과 노력이다.
245페이지 中
-----

저자는 이제 서슴없이 대화를 통해 서로의 일상과 감정을 묻고 나눈다. 심지어 죽음에 대한 문제까지도 의견을 나눈다.

함부로 단정 짓거나 끝을 내기보다, 지금의 생각과 감정을 존중해 주며, 위태로운 삶이 꺼지지 않도록 가까이에서 지켜주고 보듬으려 노력한다.


=====
마무리
=====

가까운 가족이기에 어쩌면 절망 속에서 빠져나오기가 더 어려웠을 것이다. 오래 알았던 만큼 상처도 컸을 것이고, 눈물도 많이 흘렸을 것이다.

보통은 저자가 4년간 치열하게 엄마와 다퉜듯, 그렇게 마지막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저자는 유튜브라는 매개체 덕분에 전환점을 맞이할 수 있었다.

매일 가까이 붙어살면서도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했던 얼굴과 감정을 살펴볼 수 있었고, 덕분에 타인이 가진 상처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긴 세월을 보내며 포기하고만 살았던 관계 회복을 이뤄냈고, 또 절절한 화해도 했다. 스킨십이 어색했던 할머니와 엄마가 어느새 서슴없이 고마움과 사랑을 전할 수 있는 모녀 사이가 되었다.

멀어졌던 친척들과도 다시 가까워졌으며, 병에 잠식되어 있던 시선을 할머니에게 돌릴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덕분에 아직까지 남아있는 할머니의 희미한 정체성과 감정을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살펴보고 나니, 저자에게 있어 유튜브는 그 무엇보다 소중한 것의 가치를 일깨워 주는 존재가 아니었나 싶다. 가족의 의미를 되돌아볼 수 있게 해준 것은 물론 의미 있는 화해를 돕고, 또 상도 받으며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일상을 보낼 수 있도록 도와주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먼 훗날에는 유튜브에 기록된 영상들을 보며 할머니를 떠올릴 수 있는 좋은 추억까지 만들어 주었으니 일석삼조가 아닐까 싶다.

절망 속에서 다시 찾은 이들 가족의 웃음과 평온이 오래도록 이어지기를 바라며, 앞으로도 좋은 추억들을 많이 나갔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