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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송세월
김훈 지음 / 나남출판 / 2024년 6월
평점 :
"연륜이 느껴지는 제목, 글, 일상!"
노년에 다다라 살아온 세월을 돌아보면 누구나 한 번쯤 느끼게 될 감정을 사자성어로 표현하면 바로 이렇게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허송세월.
순간의 감정처럼 잠깐 스쳐 지나가는 사람도 있을 테고, 혹자는 한 평생을 그렇게 느끼게 될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노년에 이르러 일상에서 느낀 크고 작은 깨달음을 이 책에 담았는데, 대중적인 느낌은 아니다.
총 3부로 구성된 이 책은, 저자가 살아온 삶의 흔적, 가치관, 종교관 등의 자기주장이 강한 글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래선지 약간 매니악적 느낌이다. 비슷한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이 공감할 법한 이야기이거나, 같은 종교를 가진 사람에게 조금 더 편안하게 다가갈 글들이 많다.
그럼에도 몇몇 부분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숙제처럼 이어져 오고 있는 이슈들도 있어 공감이 가는 부분들도 있다.
순수했던 어린 시절을 지나 찬란한 청춘을 보내고, 안정적인 중장년층을 거쳐 이제는 노년에 이르러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며 적어 내려간 저자의 글은 그래서 어떤 부분에서는 회고록 같은 느낌도 있다.
산책하는 호수 공원의 풍경, 하나 둘 저물어 가는 지인들, 삶과 죽음을 넘나들었던 병실에서의 모습, 가까이에서 지켜봤던 새의 모성, 술과 담배에 관한 애증 어린 이야기, 인간 정서의 밑바닥에 고인 냄새들에 관한 이야기 등 주제와 내용 모두에서 풋풋함보다는 진한 연륜이 느껴진다.
저자는 <뒤에>를 통해 많은 독자들과 사귀기보다는 개별적 독자와 사귀며, 글을 써서 세상에 말을 걸때 나의 독자는 한 명뿐이라고 말하는데, 나 역시 책을 읽으면서 약간의 폐쇄적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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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적 개방성을 갖춘 글 안에 많은 독자들을 맞아들이려는 소망을 갖지 못한다. 나는 나의 사적 내밀성의 순정으로 개별적 독자와 사귀고, 그 사귐으로 세상의 목줄들이 헐거워지기를 소망한다. 글을 써서 세상에 말을 걸 때 나의 독자는 당신 한 사람뿐이다. 나의 독자는 나의 2인칭(너)이다.
331페이지 <뒤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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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의 1020 세대들이 만약 이 책을 읽는다면, 저자가 살아온 시대를 다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는데, 답은 '글쎄'였다.
어쩌면 3040세대들이 살아온 시대도 그들은(1020세대) 다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가고 있어서가 아닐까 한다.
산문글 속에 과거부터 현재까지 적용되는, 어쩌면 우리 모두 공감할 만한 소재들을 몇몇 가져와봤다.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나 특정 사고에 너무 치우친 것들은 제외하고, 언젠가 우리도 겪게 될 이야기이거나 지금 겪고 있는 이야기들을 통해 공감대를 형성해 보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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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말하기를 늙은이들의 몸에는 보통 대여섯 가지의 만성질환이 자리 잡고 있는데, 여러 병증 사이에 경계가 무너지고 뒤섞여서 무슨 병인지 진단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
의사가 또 말하기를 늙은이의 병증은 자연적 노화현상과 구분되지 않아서 치료가 어렵다고 했다. 늙은이의 병은 본래 스스로 그러한 것이어서 딱히 병이라고 할 것도 없고 병이 아니라고 할 것도 없다는 말이었는데, 듣기에 편안했다. 늙음은 병듦을 포함하는 종합적 생명현상이다.
생, 로, 병, 사가 본래 각각 독립된 범주가 아니라 한 덩어리로 뒤엉켜 동시에 굴러가면서 삶의 기본 풍경을 이루는 것이라고 나는 늘 느끼고 있었는데, 노환에 대한 의사의 의학적 소견도 삶에 대한 나의 느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3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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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과 다르게 나이 듦에 있어 관점이 바뀌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병증이 아닐까 한다. 어느 커트라인을 넘어서고 나면, 병증은 그냥 함께 살아가는 친구처럼 여겨진다.
한 덩어리로 얽히고설켜, 그 자체가 삶이고 인생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선지 병원에서도 특별히 '무슨 병'이라고 딱 꼬집어서 이야기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저자는 이러한 노인의 병듦에 대해 '병듦을 포함하는 종합적 생명현상'이라고 표현했는데, 어쩌면 노인의 삶 속에 큰 우주가 숨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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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죽기 위해서는 미리 정리해 놓을 일이 있다. 내 작업실의 서랍과 수납장, 책장을 들여다보았더니 지금까지 지니고 있었던 것의 거의 전부가 쓰레기였다. 이 쓰레기 더미 속에서 한 생애가 지나갔다. 똥을 백자 항아리에 담아서 냉장고에 넣어 둔 꼴이었다.
나는 매일 조금씩, 표가 안 나게 이 쓰레기들을 내다 버린다. 드나들 때마다 조금씩 쇼핑백에 넣어서 끌어낸다.
5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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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 이상하게 움켜쥐려는 특성이 강해진다. 그래선지 과거에 시골집을 방문해 보면 쓰레기들이 여기저기 귀한 취급을 받으며 처박혀 있던 것을 자주 목격하고는 했다.
사실 돌이켜보면 다 별것 아닌 것들인데, 왜 그리도 손에서 놓지를 못했는지 모를 일이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비단 이것은 노인에게만 적용되는 내용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도 적용되는 내용이다. 아낀다는 이유로, 선물 받았다는 이유로, 아깝다는 이유로 우리는 똥을 백자 항아리에 담아서 냉장고에 넣어두고 모시며 살고 있다.
저자는 가벼운 죽음을 위해 이제 조금씩 자신의 물건을 정리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제, 노인이 아닌 우리도 이런 정리가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한다.
입지 않는 옷, 쓰지 않는 잡동사니, 읽지 않는 책, 추억이 담긴 물건들은 이제 그만 놓아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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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현대사에서 '내 새끼'를 앞세운 이 갑질의 전통은 유구하고, 밥술이나 먹게 되자 이 갑질은 더욱 권력화되고 일상화되었다. 얼마나 많은 청년들이 '내 새끼' 갑질 앞에서 미끄러지고 넘어졌겠는가. 끗발 없는 부모 밑에서 태어나서, 그날그날 힘들게 살아가는 젊은이들은 이 더러운 세상에 만정이 떨어져서 아기를 낳지 않는다.
남의 자식을 짓밟고 '내 새끼'를 밀어붙이는 이 고위층 갑질의 역사가 계속되는 한, 저출산 정책에 수십 조를 퍼부어도 그 결과는 모두 헛것이다. 이미 헛것이 되었다. 이제 "아이가 타고 있어요"도 점차 사라지고 "힘센 꼰대가 간다"만 남을 판이다.
25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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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논점을 벗어난 빗겨난 정책과 임시방편처럼 늘어놓는 말들만 듣다가 뭔가 속 시원한 해답을 듣는 느낌이 들어 반가운 마음에 가져와 본 문장이다.
나에게만 소중한 '내 새끼'만 앞세우는 갑질과 권력 앞에 내동댕이 쳐지는 끗발 없는 아이들의 현실을 고스란히 적어내려간 문장을 읽으며, 어쩐지 멀지 않은 미래가 절로 그려지는 느낌이다.
자꾸만 죽어나가는 젊은이들, 더 이상 아이를 낳지 않는 사람들 속에서 내 배불리는 권력만 움켜쥐고 사는 게 과연 현명한 방법인지 다시 한번 묻고 싶다.
아무것도 남지 않는 허허벌판의 모습이 이렇게도 선연하게 그려지는데, 그럼에도 여전히 내 밥줄, 내 새끼, 내 것만 챙기며 배불리는 이들이 그때는 과연 무슨 핑계를 대며 빠져나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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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며 문득 '인생무상'이라는 사자성어가 떠올랐다. 어차피 다 내려두고 떠날 텐데 뭘 그리 아등바등 거리며 소유하려 애쓰고 남들보다 더 앞서가려 애썼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결국 그렇게 애써봤자 남겨지는 건 내 만족보다 비교와 우위와 같은 감정들뿐인데 말이다. 오히려 그 시간을 나를 더 알아가는 데 썼더라면 적어도 살아가는 매일매일이 나를 알아가는 기쁨 내지는, 행복감으로 충만했을 텐데 말이다.
멀게 느껴지지만, 실은 아주 금방 다가올 노년이 불필요한 물건이나 사사로운 감정들로 채워지지 않기를 바라며, 지금부터라도 일상을 보다 값진 것으로 채워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