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박제
박재우 지음 / 부크럼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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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제목이 <웃음 박제>라서 처음에는 하하 호호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책이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는데, 읽다 보니 단순히 웃을 수 있는 책은 아니었다. 농담 같기도, 조언 같기도 한 알쏭달쏭 한 뼈 때리는 농담들이 콕콕 박혀있어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농담들이 가득 담겨있었다.

 

일명 농담집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책은 저자가 군대에 있을 때 매일 농담 한 줄씩 적어서 인스타그램에 올리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는데, 처음부터 반응이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초반에 시큰둥하던 사람들이 200일이 넘도록 빠짐없이 업로드 하는것을 보고 '이거 나중에 농담집으로 발간해도 되겠다.'라는 댓글을 달아주며 차츰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사실 농담집이라고는 하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가벼이 넘길만한 농담거리는 하나도 없는데, 그렇다고 무겁거나 진지하지는 않다. 그저 핵심을 찌를 뿐이다. 일상 속에서 턱턱 숨 막히는 일들이나, 고민하던 일들 혹은 무심히 넘어갔던 일들을 '왜?'라는 물음과 함께 툭툭 건드리는 방식으로 짤막하게 서술되어 있을 뿐이다.

 

이 농담집의 유머 아닌 유머는 세상을 다른 각도로 바라보는 저자의 시각에서 비롯되었다고도 볼 수 있는데, 평소 이건 왜 이렇고, 저건 왜 저럴까라는 의문을 가지고 매일 조금씩 다른 각도로 바라보다 보니, 그것이 농담집으로까지 이어졌고 실제 본인의 현실도 달라지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이처럼 농담은 세상을 다른 각도로 바라보는 재미라고 생각한다는 저자의 농담집의 매력은 무엇인지, 또 그가 말하는 웃픈 농담의 실체를 지금부터 만나보려 한다.

 

=====
<체스>

 

내가 느낀 건데, 대화는 체스랑 비슷한 것 같ㅇ...
아 전략적으로 하는 거구나?
아니, 네 차례 때 하는 거라고.

1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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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듯 묘한 비틀림 한 번이 강력한 펀치를 선사하는 문장이었는데 문장이 내포하는 의미를 살펴보는 거 한번, 문장이 쓰인 그 자체를 살펴보는 거 한번 이렇게 다각도로 살펴보기를 추천한다. 

 

이 대화의 화자가 마지막에 한 말만 놓고 보면 일반적인 사람들이 생각하는 범주에서 약간 벗어나는 대답이다. 하지만 색다른 농담이자 유머로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의 대답이다.

 

하지만, 앞에 '같ㅇ...'와 같은 말줄임표 다음에 친구가 성급하게 한 대답들을 천천히 살펴보고 나면 마지막 말은 어딘가 친구에게 하는 농담인 듯, 농담 같지 않은 뼈 있는 충고와 같이 느껴진다.

 

이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친구 입장이었다면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애매하고 난감한 상황이 아니었을까? 어쩌면 다시는 친구의 말을 끊지 말아야겠다는 반성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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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부자들이 보는 돈=돈
가난한 자가 보는 돈=Don't

5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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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보면 말장난인데, 여기에서 웃픈사람 손! 공감 가는 사람들도 손! (나도 나도) 핵심을 찌르는 유머가 아닐 수 없다. (ㅠㅠ)

 

 


=====
<볼펜>

 

아이에서 어른이 되면
연필보다 볼펜을 더 많이 쓰게 된다.

 

그건
이제 실수하면 고칠 수 없는 시기가 찾아왔다.
라는 뜻인가 보다.

57페이지 中
=====

 

어딘가 짠하고 마음이 아파지는 유머다. 어쩌면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나'라서 연필이 아닌 볼펜의 입장이라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흔하게 굴러다니는 연필과 볼펜을 두고 이런 농담을 건넬 수 있는 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

 

지우개로 벅벅 지우며 고쳐나갈 수 있었던 그때를 건너, 이제는 한번 쓰면 고칠 수도 지울 수도 없는 시기지만 누군가는 또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세상이 좋아져서 볼펜으로 쓴 것을 지우거나 고칠 수 있는 '수정 테이프'가 있노라고! (수정 테이프 만세! ㅋㅋㅋ)

 

 


어떤 유머는 조목조목 따지며 뼈 때리는 농담도 있지만, 어떤 것들은 삶에서 고민하던 것들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기도 하는 그의 농담들.

 

저자처럼 때론, 삶을 살아가면서 세상을 조금 다른 각도로 바라보면 어떨까? 그 생각들이 더해지고 더해져, 퍽퍽하고 메마른 삶 속에 자신이 만든 유머로 혼자 큭큭거리며 웃는 날들이 더해지다 보면 어느새 긍정적인 생각들도 가득 차게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저자가 그러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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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크리스마스 캐럴 : 반인간선언 두번째 이야기
주원규 지음 / 네오픽션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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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캐럴'하면 즐거움과 행복한 분위기를 가장 먼저 떠올리기 마련인데, 그런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제목을 가진 이 책은 그와 반대로 읽는 내내 섬뜩함과 잔인함이 느껴졌다. 크리스마스 날이 주는 특유의 발랄한 느낌은 물론, 여기저기 울려 퍼지는 캐럴마저도 음울하고 구슬프게 느껴지게 만든 이 책 <크리스마스 캐럴>.

 

서브타이틀이 말하는 반인간선언의 전말과 그들이 겪은 일련의 일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끔찍한 현실과 맞닿아 있었는데, 현실 속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혹은 일어나고 있는 진실의 단면을 다루고 있어 더 잔혹하게 느껴졌다.

 

아직 채 성인이 되지도 못한 아이들이 왜 그토록 잔인해져야 했는지, 생존을 위해 그들은 과연 어디까지 자신을 내몰아야 하는지, 악은 무엇이고 인간의 내면에 자리한 이기심과 욕망들은 과연 무엇으로 증명하고 제지를 가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었다.

 

살기 위해, 복수를 위해, 자신을 지키기 위해 괴물이 되어야만 했던 그, 주일우. 그가 인간이길 포기하고 반인간선언을 한 것은 아마도 크리스마스 날의 아침 쌍둥이 동생 주월우가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그날부터 였을 것이다.

 

이미 부패된 얼굴과 여기저기 폭행으로 상처가 가득했던 퉁퉁 불은 몸으로 물탱크에서 발견된 쌍둥이 동생 주월우. 원인도, 이유도, 가해자도 알지 못한 채 주일우는 그렇게 동생을 보내야만 했다. 그리고 얼마 후 눈을 부릅 뜬 채 함께 살고 있던 할머니마저도 세상을 떠나고 만다.

 

임대 주택에서 지체장애가 있는 쌍둥이 동생 주월우와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던 주일우는 먹고살기 위해 돈이 필요했다. 월세는 벌써 반년째 밀려있었고, 전기, 수도, 개별난방비 모든 게 밀려있었다. 설상가상 아버지란 인간이 갖다 쓴 카드 빚이 이 연좌제처럼 치매에 걸린 할머니 몫으로 돌아왔다. 잘못하면 거리로 쫓겨날 판국에 일반 아르바이트로는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열흘만 제대로 움직이면 목돈을 만질 수 있는 철거용역 업체 일은 그에게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었다. 오직 할머니와 월우만 생각하며 부수고 부수고 부수는 일에만 전념하며 일을 마무리 짓고 돌아온 후 그는 가족을 모두 잃었다.

 

월우가 죽은 이후 일우는 월우의 죽음의 이유를 찾다가 마침내 용의자로 생각되는 이들을 쫓아 교도소까지 들어가게 되는데, 그들은 일명 일진으로 불리는 문자훈, 백영중, 최누리, 손환으로 교도소 내에서도 악명이 높은 이들이었다. 

 

월우가 죽기 전인 크리스마스이브날 수화기를 통해 전해져오던 문자훈 일당의 목소리와 폭력을 가하던 음성, 그리고 갑작스레 말도 안 되는 소란으로 일당 모두가 교도소로 숨어버렸다는 것을 근거로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그들을 쫓아 교도소행을 택한 일우.

 

소년원 내의 상담교사인 조순우를 거쳐, 교도소 내 교정 교사이며 일명 미친개로 불리는 한희상과의 대거리는 물론, 자신의 안위를 위해 일진 패거리들이 불러들인 또 다른 악마 고방천과 맞서면서 마침내 서서히 일우는 그 진실에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자신들의 또 다른 비밀을 숨기기 위해 끝까지 회피하던 문자훈 일당들의 숨은 비밀은 무엇이고, 또 교화라는 목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던 교도소라는 집단의 권력 위에 앉아있던 한희상의 행태, 살기 위해 일진 패거리에 속해있지만 을중에 을로 성폭력을 당하고 있던 손환이 숨기고 있던 엄청난 비밀, 더불어 천사의 탈을 쓴 진정한 악마의 모습을 엿보면서 왜 주일우가 반인간선언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법위에 앉아있는 이들, 사회 시스템도 어떤 어른도 보듬고 보살펴주지 않는 사회 속에서 굶주림과 부패, 폭력 속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청소년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그 어떤 곳에서도 제대로 된 인간다움을 느낄 수 없었던 차가운 현실 속에서 일우가 살아남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괴물이 되는 방법 밖에는 없었을 것이다.

 

돈과 권력을 가지지 못한 자들이 겪는 현실의 냉혹함과 처절함은 일우뿐만 아니라, 월우와 손환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는데,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하고 그냥 그대로 당하고 버텨내야만 한다는 점이 그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현실이며 민낯이었다. 

 

소설을 읽는 내내 속이 울렁거릴 만큼 피 튀기는 폭력과 험한 욕설이 난무하고 끝없는 무자비함에 지쳐갈 때쯤 서서히 그들의 숨겨진 진실과 그 속에 자리한 피해자와 가해자 드러났는데, 그 어디에도 월우를 제외한 그 누구도 온전한 피해자는 없었다. 그저 인간의 욕망과 이기심으로 버무려진 피비린내 나는 괴물들만 자리하고 있었다. 

 

자신의 즐거움과 욕구 충족, 권력을 드러내기 위한 그들의 처절한 사투는 후에 대반전을 가져오는데, 유유히 빠져나가는 또 다른 가해자의 모습에 허무함과 황당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것이 현실 세계에서도 음지의 어느 곳에서는 벌어질 수 있는 일, 혹은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는 점에서 굉장한 충격과 안타까움을 주었다.

 

무엇보다 다양한 모습의 가면을 쓰고 곳곳에 이들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에서 소름이 돋았는데, 때론 선량한 모습으로, 때론 친구의 모습으로, 때론 권력자의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어떤 자든 권력과 힘 있는 자 앞에서는 또 다른 을이 된다는 것은 공통점이었는데, 폭력으로 시작한 이들의 시작이 어떤 끝맺음을 맺을지는 책으로 직접 확인해 보기 바란다.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발악을 하다 최후의 순간에 외친 문자훈의 한마디는 이야기의 복선이자 끝을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앞서 손환이 그린 그림의 붉은 산과 더불어 매우 중요한 단서가 된다. 이는 유유히 빠져나간 범인을 가리키고 있었는데, 이를 통해 대략 진범을 눈치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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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야. 내 말 믿어! 그날 저녁, 월우를 공원으로 끌고 가 두들겨 팬 건 맞아. 하지만 죽이진 않았어. 진짜야. 공원에 쓰러진 월우를 누가 차에 태우고 간 걸 봤어. 차 번호 기억해. 월우 데리고 간 차 번호 기억한다고!

224페이지 中
=====

 

작가의 말까지 읽고 난 후에도 긴 여운이 남았는데, 특히 월우가 불렀던 캐럴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
창밖을 보라, 창밖을 보라
흰 눈이 내린다.
창밖을 보라, 창밖을 보라
한겨울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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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게 불러야 할 캐럴이 이토록 처절하고 구슬프게 들리는 건, 말갛게 웃던 월우의 모습이 떠올라서 일지도 모르겠다. 지체장애가 있음에도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만큼 자신의 사정을 인지하고 있었던 월우. 지체장애인 자신과 치매인 할머니의 생계를 위해 이리저리 돈을 벌기 위해 바빴던 일우를 알고 있었기에 손환의 요청에도 그토록 자신의 상황을 일우에게 말하기를 거부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그런 월우가 폭력과 폭행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웃는 모습을 고수하고 있었던 이유 역시도 어쩌면 힘들게 자신과 할머니를 위해 고생하던 일우에게 더는 짐이 되고 싶지 않아 끝까지 웃는 모습만을 고수했는지도 모르겠다.

 

폭력으로 시작해 폭력으로 막을 내리는 이 소설 속에서 과연 정의란 무엇인지 묻고 싶다. 더불어 끝끝내 밝혀지지 않은 마지막 한 명의 범인을 결국 일우는 알게 되었을지 또 그 범인은 어떻게 되었는지도 궁금하다. 이 모든 것을 알고 있던 손환의 행방도 궁금해지는 밤이다. 

 

추후 영화로도 개봉한다고 하니 영화에서는 어떤식으로 표현했을지 원작과 비교해 보는것도 좋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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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 보며 사는 것이 뭐가 어때서 - 행복한 인생을 살게 하는 이치, '눈치'에 관한 40편의 에세이
임세화 지음 / 모모북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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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을 보는 순간 저자의 기개가 느껴졌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아우라에서 나름의 자기 소신과 중심이 꽉 잡힌 사람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기 때문이다. 보통 '눈치 보고 살지 마! 네가 원하는 대로 살아!'라는 말을 타인에게 쉽게 내뱉고는 하지만, 막상 그런 말을 하는 사람조차도 여러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살곤 하는데, 이런 사람들에게 오히려 눈치 보며 당당하며 살라고 말하는 것 같아 자못 씩씩함도 느껴졌다.

 

흔히 '눈치'라고 하면 왠지 부정적 이미지가 강해,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대입하기는 꺼리면서도 또 막상 그 범주에서는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오히려 그것을 역으로 '눈치 보는 게 뭐가 어때?'라고 스스럼없이 말함으로써 되려 긍정적으로 다가오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래서인지 어떤 이유로 저자는 이렇게 말을 한 건지, 어떤 이야기가 담겨있을지 무척 궁금해졌다.

 

이 책에는 '눈치'를 주제로 한 총 40편의 이야기가 에세이 형태로 담겨있었는데, 중간중간 작가의 실제 경험담을 통해 부정적이었던 '눈치 보기'가 어떻게 긍정적인 '눈치 보기'로 변화했는지 그 과정도 살펴볼 수 있었다.

 

친구 사이, 가족 사이, 연인 사이, 선후배 등과 같은 관계 속에서, 혹은 학교에서, 가정에서, 회사와 같은 우리의 일상 곳곳에 숨어있는 '눈치'. 안 볼 수도 없고 피할 수도 없어서 더 난감한 눈치를 저자는 어떻게 긍정적 요소로 바꾸어 행복한 삶에 적용할 수 있었던 걸까?

 

당당하게 '눈치'보며, 내 인생을 사는 법을 지금부터 살펴보려 한다.

 

의외로 아주 어릴 때부터 집안 사정상, 친척 집에서 머물며 눈치를 봐오던 저자는 대학생이 되어서도 소심한 눈치 보기로 주눅 들고 움츠러든 모습이었다. 덕분에 호구가 되거나 사람들에게 상처받는 일들도 많았는데 대학생활을 통해 겪은 그러한 다양한 일들은 오히려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어느 순간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자각과 함께 서서히 자신의 태도를 바꾸어 나가기 시작하는데, 어릴 때부터 쌓아온 '눈치'를 무기 삼아 상대방의 심리를 파악하여 이를 통해 사전에 감지한 위험을 대비하고, 말 못 하는 타인의 사정을 헤아려 배려할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하게 되는데, 이러한 저자의 성장 담은 그래서 더 깊이 와닿았다.

 

타인과 어우러져 살아가야 하는 사회이기에 좋든, 싫든 봐야만 하는 '눈치'를 저자는 어떻게 활용하여 당당함과 행복한 삶을 가질 수 있게 되었는지 그 방법도 살펴보고 의미 있는 문장들도 살펴보려 한다. 어차피 봐야만 하는 눈치라면 보다 당당하게! 자신감 있게! 삶을 살아가는데 적극적으로 활용해 보면 좋을 것 같다.

 

특히 꽤 오랫동안 존재감 없이 소심하게 눈치만 봐오던 아이가 자신의 삶에 가장 취약점이던 것을 장점화하여 가장 큰 무기로 성장한 방법은 경험에서 얻은 큰 자산이기에 더 궁금하고 기대가 되었다.

 

=====
나는 언제나 친구의 이야기를 듣는 입장이었다. 그러다 한 번은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너는 왜 너의 얘기를 안 해? 맨날 내 얘기만 하잖아. 네 얘기도 좀 해봐"



여러 번 물어보는 친구와 마음이 잘 통할 거란 생각에 홀라당 넘어가 울컥하며 나의 이야기를 꺼냈다. 어렵게 꺼낸 이야기에 그 친구는 우리 집에 대해 쉽게 말하기 시작했다.
"그걸 네가 왜 신경 써. 우리는 그런 거 신경 안 써도 돼. 알아서 하시겠지, 뭐 그렇게 신경을 써."
대수롭지 않게 취급당했다.
(...)
몇 번을 생각해 봤지만, 그때의 말과 표정, 눈빛에 이미 내 마음에는 상처가 나 나버렸다.
(...)
나는 아팠고, 더욱 입을 닫아버렸다.

공감 갔던 이야기 (21페이지 中)
=====

 

40여 편의 에세이 중에 가장 공감 갔던 이야기 중 하나였는데, 어쩌면 우리 주변에서 가장 흔하게 자주 일어나는 일이 아닐까 싶다. '나는 아니겠지'라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자신의 이야기일 수도 있는 이 일화를 한 번쯤은 깊이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본인이 고민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될 수도 혹은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타인의 이야기에 쉽게 생각 없이 아무 말이나 내뱉는 사람이 혹시 당신은 아닌가요? 공감 능력 결여, 배려 부족, 눈치 없음이라는 단어가 절로 떠오르는 이 이야기를 살펴보며 '눈치'의 중요성과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하는 일화였다.

 

눈치를 통해 나를 다독이고 마음의 중심을 잡는 법에 대한 다양한 문장들도 눈에 띄었는데, 기억에 남는 문장들을 몇 가지 남겨보려 한다.

 

=====
내 인생에서 주인공은 '나'이다.

(...)

자신이 중심에 없다고 힘들어할 필요도, 비교할 이유도 없다. 더욱이 스스로가 지켜야 할 내 자리를 다른 이에게 줄 필요는 없다. 내 자리는 내가 지키자. 생각보다 타인은 조연과 단역에는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다.

44페이지 中
=====

 

'눈치'를 봄에 있어 가장 먼저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을 우리는 어쩌면 가장 뒤에 두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이며 눈치를 볼 때도 가장 우선시해야 할 것은 '나'임을 잊지 말자.

 

 


=====
마음을 내어 배려한 사람은 잘못이 없다. 배려 받는 방법을 잘 못 배운 사람들이 잘못이다. 그것은 100퍼센트 명확하다. 다만 그런 사람들에게 나의 마음을 갈아 넣으며 배려까지 한 것은 내가 부족해서이다. 자신이 받는 마음이 어떤 건지, 배려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그 정도까지의 배려는 과했고, 아까운 일이었다.
(...)
하지만 명심해야 한다. 안타깝고 부족했지만, 절대로 마음을 내어 배려한 내 잘못은 아니라는 것을.

71페이지 中
=====

 

책의 전반부에는 '나'를 다독이는 글들을 많이 만나볼 수 있었는데, 우리가 '내 잘못이야'라고 흔하게 생각하는 일들에 대한 일화가 많았다. 저자는 분명하게 말한다. '네 잘못이 아니라고.'

 

 


=====
어떤 사람들은 종종 '별것도 아닌 일에 힘 빼지 마라. 별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힘들어하냐.'라고 말한다. 그들 스스로가 직접 겪으면 어떨까? 자신에게 그 일이 벌어지고, 자신의 일이 되면 별것도 아닌 일이 아닌 자신의 전부가 될 수도 있다.
(...)
그러니 내가 아파하는 일을 남이 어떻게 평가하는가에 '나는 왜 이렇게 아파하는 것일까?' 자책하며 자신을 몰아넣지 말자. 당신이 내 아픔을 다 아는 것도 아니면서 왜 그렇게 말을 하는 것인가?라고 따끔하게 한마디 해버리자.

92페이지 中
=====

 

언젠가 누군가에게 꼭 시원하게 내지르고 싶었던 말이라 더 와닿는 문장이었다. 별거 아닌 일이 누군가에겐 별거인 일일 수 있다. 타인의 의미 없는 한마디에 자책과 상처로 얼룩져 자신을 나무라지 말자. 그럴 땐 따끔한 한마디로 깔끔하게 마무리 짓자.

 

 


=====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는 사람이라면, 50퍼센트만 말을 해도 이미 나의 이야기를 이해하고 흡수했을 것이다. 반대로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라면, 100퍼센트를 다 말해주어도 나의 이야기는 소귀에 경 읽기일 뿐이다. 모든 것을 말하려고 하기보다 50퍼센트만 말했을 때 논쟁 없이 아름답게 마무리될 수 있다.
(...)
직장 생활에서는 말을 적게 하는 쪽이 현명한 법이다. 직장 생활을 잘하고 싶다면 하고 싶은 말의 50%는 버리고 말해보는 것은 어떨까?

138페이지 中
=====

 

직장 생활에서 가져야 눈치로 저자는 말조심을 꼽았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초년생부터 베테랑 직장인 모두 공감 가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
누군가의 무례를 자기 잘못이라고 스스로에게 화살을 쏘아대지 말자. 한 번 한 번 질문을 던지다 보면 결국 나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저 사람들은 때때로 자신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무례한 생각과 무례한 행동을 저지른다.
(...)
무지한 사람들의 무례함에 굳이 자신을 탓할 필요도, 후회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상대의 무례함에 감정은 지우고 솔직함은 채워라. 무례한 그들은 각자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문제이고, 나는 나의 마음을 잘 다독여 지켜 가면 된다.

191~192페이지 中
=====

 

살다 보면 어느 장소, 어떤 순간에 타인으로부터 무례함을 느낄 때가 있다. 무례한 사람들은 그저 그 정도밖에 안되는 사람들이다. 무례한 사람들에 대해 큰 의미를 가지지 말자. 때로 속상함과 억울한 감정이 들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잘 다독여서 내 감정을 잘 갈무리하자. 누구나 한 번씩 겪는 일이기에 더 와닿았던 문장이었다.

 

 


눈치를 잘 활용하는 방법들이 담긴 문장들도 확인해 볼 수 있었는데, 나의 자존감도 지키고 당당해질 수 있는 활용법들이라 기억에 두면 좋을 것 같다.

 

=====
누군가와 잘 지내고 싶다면 나의 눈치를 잘 성장시켜보자. 자신이 눈치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면, 자신의 마음을 살펴 자신이 바라는 것은 무엇인지, 불편한 것은 무엇인지 적어보길 바란다. 자신과 잘 지내지 못한다면 그 누구와도 잘 지낼 수 없다. 잘 지내는 듯 보여도 허울뿐인 관계이다. 나의 마음을 눈치챌 수 있게 되었다면, 상대의 마음을 살펴보자.
(...)
'타인에게 사랑받는 소통의 기술'이란 결국 '센스 있게 눈치 보는 기술'이지 않을까.

172페이지 中
=====

 

사실 이 기술은 오랜 경험과 내공이 밑바탕이 되어야만 가능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하루아침에 센스 있게 눈치 보는 기술이 짠하고 나타날 리는 없다. 나 자신을 비롯해 타인에 대한 관심과 관찰력에서부터 시작해 보자.

 

 


=====
배려라는 것은 눈치가 없으면 할 수 없는 것이다. 상대방을 마주 보고 함께 걸으며 상대방의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고 그의 입장에 서고 나서야 최적의 배려를 할 수 있다. 나의 최적의 배려는 분명 다시금 나에 대한 배려로 되돌아올 것이다. 그것을 확신하고 눈치 있게 배려하자.

18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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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배려=눈치'라고 생각한다. 배려는 도와주거나 보살펴 주려고 마음을 쓰는 것을 의미한다. 더불어 배려는 베푸는 사람이 느끼는 게 아니라, 배려를 받는 사람이 배려라고 느껴야 제대로 완성되는 것이다. 눈치 있는 배려만큼 잘 어울리는 문장이 또 있을까?

 

 


=====
좋은 눈치로 인한 빠른 판단은 상황을 나의 것으로 가져와 주도할 수 있게 해준다. 상대와 상황에 맞추어 분위기를 전환하거나 이끌어갈 수 있다. 이러한 경험은 정신적 자산이 되어 단단한 자존감을 만들어 낸다. 건강한 자존감은 결코 한순간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한 번 한 번의 좋은 눈치가 모여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이다.

216~21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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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유리한 상황으로 만드는 판단력과 눈치는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것만큼 강력한 무기가 또 있을까? 저자의 경험담 중에서 인테리어 공사 중 문제가 생겼을 때, 결혼식 전 양복을 맞추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차근차근 상황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해결하는 부분을 보고 굉장히 멋지다는 생각을 했다. 언성을 높이지 않으면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은데 나 역시도 배우고 싶은 '눈치'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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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탓하고 환경을 탓한다는 것은 결국 '내 잘못으로 받아들일 용기가 없다는 것'이다. (...) 아무리 희망이 없는 상황일지라도 나의 가능성으로 나의 행복을 스스로 만들어 가면 그만이다. 굳이 누가 이랬고 저랬고 할 필요가 없다.
나의 것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자신의 행복을 쟁취할 수 있다. 
(...)
한탄하고 핑계 댈 시간에 내가 더 준비하면 된다. 어차피 남에게 잘 보이려고 사는 인생은 아니지 않은가. 누가 어떻게 생각하든, 누가 뭐라고 하든 내가 행복해지면 된다. 처음에는 어려울 수도 있다. 다만 정말 행복을 원한다면, 남의 탓을 하기보다 이기적이라고 할 정도로 행복을 쟁취하겠다는 집념을 가져라.

22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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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상황이나 타인으로 인해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힘든 일을 겪을 수도 있다. 저자는 툭툭 털어내고 오히려 더 집념을 가지고 독하게 극복하라고 말한다. 남을 탓하고 주저앉아 있을 시간에 온전히 상황을 빨리 받아들이고 내 인생을 개척해 나가는 것이 더 빨리 행복을 쟁취할 수 있다 말한다. 어쩌면 고난을 가장 빨리 극복하는 방법은 되새기기보다 앞으로 나아가기 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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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추억을 놓기가 어려웠다. 과거를 생각하면 힘들었던 기억이 많지만, 내가 버리지 못했던 물건들은 내가 '홀로서기'를 하며 '온전한 나'로서 모아갔던 물건들이었기 때문에 도저히 놓을 수가 없었다.
(...)
남편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비로소 깨달았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나자 '버린다.'라고 했지만 '놓지 못했던 나'를 볼 수 있었다. 그것을 인정하고 나니 더 좋은 것으로 채워주고 싶었던 남편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

24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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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장은 나 역시 경험한 깨달음 중 하나다. '추억을 끌어안고 살았던 나'를 놓아주니, 그 자리에 새로운 내가 채워지기 시작했다. 염려했던 것에 비해 생각보다 시원하고 오히려 마음이 가뿐해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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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적인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찼다. 나를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시시때때로 들었다. 그럴 때일수록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 책을 읽든 노래를 듣든 영화를 보든 대화를 하든. 그 속에서 나를 찾아가야 한다. 일단 움직이기 시작하면 걱정은 줄어들고 용기는 늘어난다.

27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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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부정적 감정이 들기 시작하면 안으로 숨어들기 마련이다. 그럴 때 반대로 무엇이든 시작해 보자. 몸을 움직이고,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시작해 보면 조금씩 긍정의 기운이 스며들기 시작한다. 큰 힘 들이지 않고 생각보다 효과가 좋은 방법이니 꼭 한 번쯤 시도해 보자.

 

 

그동안 부정적 느낌이 강했던 '눈치'가 이렇듯 긍정적 효과가 있다니 새삼 놀라웠다. 어쩌면 우리가 '눈치'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부정적 이미지를 씌웠던 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마치 나의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도 모르는 사이 나의 잘못이라고 자책하고 상처 주었던 것처럼 말이다.

 

사회생활을 잘하려면 눈치가 필요하다. 누군가와 관계를 오랫동안 유지하는데도 눈치는 필수 요소 중 하나다. 타인을 배려하고 상대방의 기분을 파악하여 상황을 잘 이끌어감으로써 긍정적 시너지를 내기 때문이다. 눈치는 타인과 나의 관계를 유연하게 만드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나의 상황이나 원하는 바를 이루는데도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이렇듯 수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는 '눈치'를 우리는 왜 그동안 부정적 시각으로만 바라봤을까? 앞으로는 눈치껏, 센스 있게 삶을 살아가면 어떨까?

 

책을 다 읽고 나니 제목에서 느껴지던 당찬 기세는 오랜 시간 '눈치'를 통해 얻은 저자의 당당한 자신감과 자존감, 행복한 삶에서 비롯된 것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 애쓴 저자의 노고와 노력이 엿보여서 더 마음이 갔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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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 칼로, 붓으로 전하는 위로
서정욱 지음 / 온더페이지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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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자화상을 그리는 것으로 유명한 화가라고만 알고 있던 프리다 칼로. 이번에 그녀의 삶과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책을 접하게 되면서 그녀가 그린 그림들이 가지고 있는 의미와 그녀가 겪은 수많은 고통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스스로를 위로했는지를 확인해 볼 수 있었다. 

 

보통 사람은 경험하지 못할 고통 속에서 그림을 통해 자기 위안과 위로를 했던 그녀의 삶은 그림을 통해 그대로 투영되었는데, 그래서인지 그녀의 그림은 유독 더 아픔을 가진 이들에게 깊숙이 다가오는 것 같다.

 

이 책에서는 프리다 칼로의 인생 전반과 삶의 고통을 통해 꽃피운 화가로서의 삶, 그리고 그림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던 그녀의 내면과 가치관 등을 재미있는 해설과 함께 만나볼 수 있었다. 단순히 그림을 소개하는 책이 아니라 그녀의 삶 전체를 들여다보고 이것이 그녀의 세상에, 그림 속에 어떤 식으로 표현됐는지 또 당시 그녀의 심정은 어떠했는지를 설명해 주고 있어 깊이 있게 이해하는데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독특한 그림 너머, 반복적으로 표현되는 자화상의 시그니처 같은 일자 눈썹, 그녀 내면에 오래도록 자리 잡고 있던 고통과 생명에 대한 애틋함은 물론, 그녀가 나고 자란 멕시코 대지에서 얻는 에너지들이 가감 없이 표현된 그림들에서 그녀의 열정과 애정, 사랑이 엿보였다.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
유복한 집안에서 네 자매 중 셋째 딸로 태어나 한때 전도유망한 의사를 꿈꾸며 사랑하는 남자친구 알레한드로 고메스 아리아스와의 평범한 일상을 누리던 그녀. 여느 날과 같이 남자친구와 함께 버스를 타고 가던 중 일어난 버스와 전차의 충돌사고는 그녀의 삶을 한순간에 바꿔놓았다.

 

이 사고로 큰 부상을 입은 프리다 칼로를 포기한 이들을 남자친구인 알레한드로가 설득한 끝에 그녀는 결국 수술을 받을 수 있었고, 기적적으로 살아나게 된다. 이 사고는 그녀 인생에서 여러 의미로 큰 터닝 포인트가 되는데, 평생 그녀를 괴롭힌 고통의 시작점이자 미술적 천재성이 세상에 빛을 보게 된 계기가 된다.

 

 


<그녀의 고통>
이 사고는 여러모로 그녀에게 여러 가지 고통을 안겨주게 되는데, 그 첫 번째 고통은 후유증을 꼽을 수 있다. 사고 이후 35번 이상의 수술을 받으며 계속적으로 육체는 망가져 갔고, 진통제를 달고 살아야 할 만큼 안 아픈 날이 없었다. 거듭되는 수술은 또 다른 후유증을 낳으면서 죽는 날까지 심하게 고통받는다.

 

두 번째 고통은 유산을 꼽을 수 있다. 그렇게 원했던 아이를 세 번이나 유산하는 일을 겪게 되는데, 몸이 만신창이라 의사들이 말리는데도 불구하고 아이를 가지고 싶었던 그녀는 끊임없이 노력하지만 결국 이루지 못한다. 

 

세 번째 고통은 남편인 디에고 리베라의 바람기를 꼽을 수 있다. 결혼할 당시 21살의 차이에 이혼 경험이 두 번이나 있었던 그는, 프리다 칼로와 결혼한 이후에도 그 바람기가 수그러들지 않는다. 남편의 바람기로 마음고생이 심했던 그녀의 심정을 그림에서도 엿볼 수 있다.

 

네 번째 고통은 가장 친하게 지냈던 친동생과 남편이 부적절한 관계를 가짐으로써 엄청난 배신감을 느낀 것을 꼽을 수 있다. 원래부터 그림 그릴 때 모델로 쓰는 누드모델들과 바람기가 심했던 디에고 리베라였는데, 프리다 칼로의 친동생이 모델이 되면서 그녀와도 부적절한 관계를 이어나가게 된다. 그런데 하필 이때가 아이를 유산하고 몸도 좋지 않을 때였다. 이 당시 가까운 두 사람에게 프리다 칼로는 얼마나 많은 배신감과 모멸감을 느꼈을까?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이것 역시도 그림을 통해 그 당시 그녀의 심정을 엿볼 수 있었다. 

 

이렇듯 그녀는 자신의 육체적 고통은 물론 정신적 고통들을 그림을 통해서 스스로를 위로하게 되는데, 때론 직설적으로, 때론 생각지 못한 독특한 표현방식들로 자신만의 생각과 느낌들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책의 구성>
책의 전개 방식은 이러한 그녀의 삶과 그림을 한데 묶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순차적으로 전개되는데, 그녀의 기분이나 상황에 따라 그렸던 그림들이 하나하나 소개되면서 디테일한 소개 글이 이어지는 형태다. 이것은 마치 전시회에서 전문 도슨트에게 디테일한 설명을 듣는 느낌이었는데, 혼자서 감상할 때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세세한 표현이라던가, 색감, 표정, 애매모호하거나 숨겨져있던 다양한 형태의 사물은 물론, 작가의 의도나 당시의 상황을 잘 설명해 주고 있어 남다른 재미와 집중력을 높여주었다.

 

 


<자세히 들여다보기>

 

<사고(1926년 9월 17일(1926)>



사고의 순간을 스케치한 그림으로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끔찍했던지 차마 채색화로 그리지는 못하고 드로잉으로만 남긴 작품. 그 후 다시는 그 사건을 그리지 않았다고 한다.

 

▶해설
맨 아래에는 붕대에 칭칭 감겨 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리고 그녀 위에서 바라보고 있는 얼굴은 그 순간을 기억하는 자신을 나타내었다. 뒤에 있는 건물은 그녀가 계속 누워 지내던 곳이며 그림 윗부분에 버스와 전차가 충돌해 승객들이 밖으로 튕겨 나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 사고의 순간을 묘사한 것도 확인해 볼 수 있다. 해는 하늘에 떠 있고 화면 전체는 어질어질하다.

 

 

<벨벳 드레스를 입은 자화상(1926)>



자신을 떠나려는 남자 친구 알레한드로에게 전하는 그림으로, 자신을 사랑해 달라고, 떠나지 말아 달라고 애원하는 그림이다. 적극적이고 필요하다면 먼저 부딪치는 스타일이었던 프리다 칼로는 그림을 통해 마법을 부려 알레한드로가 다시 찾아오게 만든다.

 

▶해설
하얀 살결의 프리다 칼로가 눈에 확 들어오는 그림으로, 하얀 얼굴, 기다란 목, 팬 가슴 그리고 아래에 있는 하얀 손이 연결되며 감상자를 뽀얀 속살로 유혹한다. 머리는 곱게 빗어 윤기가 흐르고 오른쪽으로 살짝 튼 얼굴에는 프리다 칼로답지 않은 수줍음이 엿보인다. 지금 프리다 칼로는 알레한드로를 유혹하고 있는 모습이다. 몸에 달라붙는 벨벳 드레스는 가슴의 굴곡과 유두 자국이 도드라지며 눈빛, 표정과 포즈뿐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유혹하려는 것을 확인해 볼 수 있다. 그녀는 이렇게 남자 친구를 잡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미구엘 리라의 초상(1927)>



프리다 칼로가 화가의 길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었을 때 그것을 안 미구엘 리라는 프리다 칼로에게 자신의 초상화를 그려줄 것을 부탁한다.

 

▶해설
가운데 검은색 넥타이를 매고 있는 검은 양복을 입고 있는 사람이 미구엘 리라로, 옆으로 살짝 튼 그의 모습이 어딘가 어색해 보이는데 이것은 프리다 칼로가 다다이즘 작품을 만들고 싶어 의도한 작품이다. 미구엘 리라는 왼손에 바람개비를 들고 있는데 왜 들고 있냐고 물으면 이유는 없다. 바람개비 뒤에는 책이 펼쳐져 있고 오른쪽에는 TU라고 써있으며 왼쪽에는 열대 과일 구아버가 그려져 있다. 다다이즘 작품이라면 역시 이유는 없어야 하나 당시 프리다 칼로는 다다이즘 작가이기보다 다양한 방식을 시도해 보는 미래 작가일 뿐이었다.


미술사가들은 바람개비는 어린 시절을 상징하는 것이고, TU라는 철자와 구아버는 그가 출판한 2권의 책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책 뒤에 회색 옷을 입은 여자는 머리에 황금빛 후광이 그려져 있는데 대천사 미카엘을 말하며, 미구엘과 이름이 비슷해서 그려놓은 것으로 보인다. 대천사 후광 위에는 하얀 말이 그려져 있는데 다다이즘이란 용어는 어린이들이 갖고 노는 목마에서 나온 것이라, 그려놓은 게 아닐까 생각한다.

 

 

<알레한드로 고메스 아리아스의 초상(1928)>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는 그 순간을 함께 했던 유일한 사람인 남자친구 알레한드로. 치명적인 부상으로 포기하려 했던 의사를 설득해 그녀를 살린 사람이었던 그를 프리다 칼로는 가슴에 묻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 그림을 완성 후 한동안 보이지 않는 곳에 감춰 두었던 그녀는 24년이 흐른 후 프리다 칼로가 45살이 되던 해에 다시 꺼내 알레한드로에게 작품을 보냈다고 한다. 이것이 프리다 칼로가 세상을 떠나기 2년 전의 일이라고 하니 절절했던 당시 그녀의 마음이 느껴지는 듯하다.

 

▶해설
주홍색 배경 앞에 반듯하게 앉아 있는 알레한드로는 잘생겼고, 당당했으며, 자기 의견을 물 흐르듯 표현해 상대방을 압도하는 카리스마 느껴진다. 모르는 것이 없는 박식한 학자였고, 어떤 운동이든 잘하는 만능 스포츠맨이었으며, 항상 매너가 좋던 신사였던 그. 그런 알레한드로에게 하얀 셔츠에 검은 넥타이와 조끼, 그리고 회색 재킷을 입힌 것은 프리다 칼로가 기억하는 마음속 알레한드로를 표현한 것이다.

 

 

<추억(심장, 1937)>



28살의 프리다 칼로는 남편 디에고 리베라가 크리스티나 칼로와 육체적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크리스티나는 프리다 칼로와 친밀하게 지내던 바로 아래 친여동생이었다. 둘의 관계는 프리다 칼로가 디에고 리베라의 아이를 가지고 싶어 무리한 시도를 하다가 세 번이나 유산을 한 직후에 알게 된 일로 프리다 칼로가 정말 힘들 때 두 사람이 배신을 한 것이다. 그때의 심정이 그려진 작품이 바로 이 <추억(심장)>이다.

 

▶해설
심장이 너무 아파 몸 밖으로 빼놓고 싶을 정도였던 프리다 칼로는 칼로 심장을 잘라 꺼내버린다. 그리고 어느 바닷가에 버리는데 잘라낼 때의 고통보다 몸에 붙어 있는 심장에서 오는 고통이 더 컸기 때문이다. 작품의 왼편 아래에는 가슴에서 떨어져 나온 심장이 아직도 피를 흘리고 있는데 여인의 가슴에서 나왔다기에는 심장의 사이즈가 크게 보이는 것을 확인해 볼 수 있는데, 이것은 프리다 칼로의 통증의 크기를 표현한 것이다.

 

얼굴이 없는 두 개의 옷과 한 명의 사람 모두는 프리다 칼로를 나타내는 것으로, 얼굴이 없는 부분은 과거의 그녀를 나타낸다. 왼편의 교복을 입은 프리다 칼로는 어린 시절 동생 크리스티나와의 추억이 어려 있던 시절의 나 자신을 말하며, 이제는 배신감으로 잊고 싶기에 중간에 있는 현재의 프리다 칼로와 팔짱을 끼지 않은 것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오른쪽 멕시코 전통 드레스를 입은 프리다 칼로는 남편 디에고 리베라에게 한창 사랑받을 때의 그녀로 그때의 추억을 상징한다. 가운데 얼굴이 있는 프리다 칼로는 현재의 자신으로 그녀는 아직 남편에게 사랑받을 기회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에 오른쪽의 그녀와는 아직 팔짱을 끼고 있는 것을 확인해 볼 수 있다.

 

 

<두 명의 프리다(1939)>



프리다 칼로가 자신을 둘로 나누어 그린 작품으로, 당시 이 작품이 소개되었을 때 미술 전문가들은 '대단한 초현실주의 작품이다'라며 깜짝 놀랐다고 한다.

 

▶해설
왼쪽 빅토리아 풍의 하얀 드레스를 입은 프리다 칼로는 현재의 그녀로 겉모습에 더해 마음 상태까지 그려놓았다. 그녀는 지금 심장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겪고 있는데, 심장에 연결된 핏줄에서는 아무리 막으려고 해도 피가 계속 떨어진다. 그럼에도 그녀의 얼굴은 무덤덤한데 너무 많은 고통을 겪으면서 스스로 고통에 굴복하고 싶지 않아선지 대부분의 사진이나 자화상에서 모두 표정이 무덤덤하게 표현되었다고 한다.

 

오른쪽의 프리다 칼로는 현재의 프리다 칼로를 위로하는 프리다 칼로로 그녀가 힘들 때마다 위로해 주던 마음속의 프리다 칼로를 상징하는 것이다. 그녀는 현실의 프리다 칼로의 손을 꼭 잡아주고 자신의 건강한 심장에서 나오는 피로, 아픈 프리다 칼로에게 피를 공급해 주고 있다. 

 

 

이처럼 자세한 설명을 통해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혹은 알지 못했던 그림 속의 사물이나 표현들에 대한 의미를 확인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그녀가 사용한 색의 의미라던가, 외부를 그릴 때는 항상 해를 그린다는 점, 생명의 탄생을 표현하는 데는 거침이 없었다는 점, 상처나 자극, 자신의 내면이나 고통에 대해서는 가시나 피, 낮과 밤 등으로 표현했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었다.

 

더불어 대부분의 그림들은 자화상의 형태로 그려졌으며, 상황이나 내면의 모습을 그림에 그대로 표현함으로써 그녀가 얼마나 고통을 받고 있는지, 어떤 것으로 상처를 받고 있는지도 알 수 있었다. 또한 어느 누구에게도 이해받을 수 없는 고통을 그림 속 또 다른 자아를 통해 위로받고 어루만지는 것을 통해 참 강한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온몸이 부서질듯한 평생의 고통 속에서도 아기를 갖기 위해 노력하고, 스스로 붓을 쥐고 자신만의 생각과 가치관을 그림을 통해 보여주었던 프리다 칼로. 

 

아마 버스 사고 이후 그림은 그녀의 삶 그 자체였을지도 모르겠다. 신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고스란히 그림 속에 담아 스스로를 위로하고 다시 희망을 찾아가는 과정이 그대로 담겨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보자면 놀라울 만큼 파격적이고, 적나라한 표현들이 가득하지만, 그 속에 담긴 열정과 의미만큼은 그 어떤 작품들에도 뒤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래서 그녀의 그림을 감상하는 이들이 그녀의 그림을 보고 많은 위로와 희망을 얻는지도 모르겠다.

 

너무 많은 고통에 지쳤거나 힘이 들어 주저앉고 싶은 순간, 프리다 칼로의 작품을 감상해 보자. 수많은 고통 속에서도 끊임없이 삶을 향해 나아갔던 그녀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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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희 - 난설헌의 사라진 편지, 제42회 여성동아 장편소설상 수상작
류서재 지음 / 파소출판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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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다양한 책을 읽어왔지만, 우리나라 역사서에 기록된 이들에 대한 위인전은 생각보다 많이 접해보지 못한 것 같다. 그저 초중고의 기본 교과과정을 통해 듣고, 배워온 겉핥기 식의 정보만 알고 있을 뿐이다. 특히 역사 관련해서는 암기 위주의 교과과목 중 하나였기에 특별히 재미있거나 흥미를 가지진 못 했던 것 같다. 그래선지 더 우리나라 역사에 대한 내용이나 인물에 대해서는 특히 더 박하게 대했던 것 같다. 

 

그러다 성인이 되면서 다양한 경험들을 통해 역사 부분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일부러 전시회나 박물관 등을 찾아가거나 책을 읽는데도 거리낌이 없다. 흥미가 생기고, 재미가 붙으니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알게 되는 내용들이 새롭게 다가온다.

 

이 책을 선정한 이유도 그러한 흥미와 궁금함이 한몫했는데, 무엇보다 한국사에서 여성으로서 이름을 널리 알린 몇 없는 인물 중 하나임에도 생각보다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소설이기는 하나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인물을 바탕으로 쓰인 글이기에, 약간이나마 엿보고 싶은 궁금증이 일었다.

 

조선 중기 5문장 가로 유명한 집안의 딸로 태어나 8살에 광한전 백옥루 상량문을 지을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보였지만 일찍이 27세에 요절한 허초희. 우리에게는 허난설헌으로 더 잘 알려진 그녀의 일생과 그녀가 남긴 시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는 이 책에서 그녀의 기구한 삶은 물론, 그녀가 남긴 다양한 문장들로 만나볼 수 있었다.

 

팩트 위에 허구가 실려있지만 그녀가 짧은 생 동안 겪은 시집살이나, 허 씨 일가의 글에 대한 재능, 그들이 나눈 시문들은 거짓이 아니기에, 보는 내내 대견함과 먹먹함이 동시에 일었다. 특히 더 여성에게 가혹했던 조선시대, 온 가족이 문장가이며 천재적인 능력을 타고났음에도 제대로 실력을 꽃피워보지도 못하고 한순간에 생을 마감하게 된 그녀의 삶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녀 부모님의 만남부터, 출생, 어릴 적 모습, 첫사랑, 결혼과 시집살이, 마지막 순간, 그리고 허균이 그런 누이의 글을 모아 출간하기까지의 여정이 담겨 있는 이 책을 통해 그녀의 삶과 더불어 찬란했던 문장들을 만나보길 바란다.

 

허초희는 조선 중기 문(文)으로 유명한 집안의 딸로, 아버지 허엽, 맏형 허성, 둘째 형 허봉, 셋째 허난설헌, 막내 허균까지 5명 모두가 문장가로 이름을 떨치면서 5문장 가로 불리게 되었다. 이 책에서는 맏이인 허성에 대한 내용은 많이 언급되지 않는데, 책을 읽고 나서 찾아보니 실제 허성은 유일한 이복형제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 소설 속에서는 둘째 허봉과 허균이 주로 등장한다.

 

초희는 어렸을 때부터 남달랐다고 언급되어 있는데, 걸음마를 떼는 순간부터 끊임없이 마을을 돌아다니거나 뒤주에서 책을 읽다 잠드는 등 유난히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한 것으로 서술되어 있다. 아마 집안사람들 모두가 유난히 책을 읽거나 시문을 쓰는 것을 즐겨 했던 것들이 자연스럽게 영향을 받지 않았나 싶다.

 

더불어 이러한 딸의 행동에 있어 제지를 하기보다 오히려 아들과 동등하게 대해주는 집안 분위기도 한몫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신분제에 엄격하고 여성과 남성을 같은 선상에 두지 않았던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었을 때, 오히려 허 씨 집안의 이러한 모습들은 다른 이들이 보았을 때 이상하게 여겨졌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딸임에도 글을 쓰고 읽는 것은 물론, 마음껏 서책을 읽도록 독려해 주고 아이가 쓴 글을 어떠한 편견도 없이 인정과 칭찬을 해주는 점들이 그렇다. 더불어 세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성격이나 스타일을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아버지 허엽과 어머니 김 씨 부인의 육아 방식도 남다르게 느껴진다. 

 

초희는 당시 여성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남성들만이 갖는 다른 이름을 갖고 싶다 아버지에게 조르기도 하는데, 허엽은 이를 너무나도 쉽게 허하여 준다.

 

당시 남성들은 태어날 때 지은 이름, 어릴 때 부르는 별호, 어른이 되는 자, 시를 짓게 되면 시호, 혼인하면 짓는 당호, 벼슬을 가지면 갖게 되는 이름 등 다양한 이름을 갖게 되는데, 반면 여성들은 부르기 쉬운 이름을 짓거나 고향을 이름 삼아 짓는 이름(예: 청주댁, 금산댁), 김 씨 부인, 이 씨 부인 이라고 성을 이름으로 대신 부르거나 자식을 낳으면 누구 어머니라는 식으로만 불리는 점을 언급하며 관례를 치른 남자처럼 '자'도 갖고 싶다고 말한다.

 

이에 아버지 허엽이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며 나누는 대화가 인상적인데, 얼마나 딸을 아끼고 사랑했는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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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엽: 글자를 알면 생각을 가지게 되고 생각을 가지게 되면 상대방에게 따지게 되어 있다. 여자는 시시비비를 따지면 안 되느니라. 그게 세상 사람들의 생각이다.
초희: 남자들의 생각이겠지요. 그건 옳지 않아요.
허엽: 그래? 옳지 않다면 바꾸어야지.
초희: 아버지. 지어주세요.
허엽: 이름을 짓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나 오직 집안사람들만이 네 이름을 부를 것이다.
초희: 나중에는 세상 사람들이 부르게 될 거예요.
허엽: 하하하. 먹을 가는 것보다 네 말을 듣는 것이 더 후련하다. 시름이 없어졌어.

129~13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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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엽은 '난설헌(난설은 고결하고 뛰어난 문재를 가진 여자를 의미)'이라는 시호를 지어주고, 후원에 방을 따로 마련해 주는 것은 물론, 난설헌이라는 당호까지 써서 처마 밑에 달아준다. 더불어 '자'는 스스로 지어보라며 권유하고, 중국 시인 번부인의 이름을 딴 '경번'이라 지었다는 말에 좋다는 말로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어머니 김 씨 부인도 딸 초희에게 '난설헌' 글자가 새겨진 은 수저를 주며 응원을 아끼지 않는데, 밥 먹일 걱정을 먼저 하며 서책 속에 빠져들어도 끼니를 거르지는 말라며 염려하는 마음을 내보인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허엽은 문(文)에는 차등이 없다며 좋은 스승도 초희에게 붙여준다. 서자이지만 추후에 문제가 되지 않을 사람으로 이달을 초희의 스승으로 붙여준다.

 

초희는 그렇게 어릴 때 아버지와 형제들의 틈에서 서책을 접하고 읽고 쓰면서 자연스럽게 문(文)을 접하게 되고, 스승인 이달과 남동생 허균을 통해 보다 넓은 세상을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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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운문도 압축된 산문이지. 모두 이야기이다. 허나 이야기만 해서는 안 된다. 이야기의 본질을 꿰뚫어야 한다. 스님이 일상생활에서 깨달음을 얻듯이 순간적인 느낌을 잡아라. 그것이 화두를 놓지 않는 의식이다. 그러니 생각하기에 게으르지 마라. 가야금 줄처럼 적당히 팽팽하고 좋은 긴장은 몸에 이로우니. 몸에도 현이 있다.  줄을 잘 고르고 음을 내라. 너는 문자로 음을 내야 할 것이다.

스승 이달의 가르침(137~13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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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문장가의 네 명의 아이들은 각기 성격과 스타일이 남달랐는데, 후반부로 갈수록 특히 허균과 함께 하는 시간들이 많아지면서 허균의 사상과 그의 문필 스타일도 엿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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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이. 나는 성현의 말을 인용하지 않고도 많은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는 글을 쓰겠어. 여름 장마처럼 거세고 파도처럼 분연히 일어서는 문장으로 말이야.

19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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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더더기 없고 힘 있는 문체의 글이 허균이라면, 섬세하고 그림을 그리듯 화려한 컬러가 입혀진듯한 초희의 글에서는 읽는 것만으로도 절로 상상이 덧대어지는 힘이 있었다. 특히 연작시를 많이 쓴 그녀는 유선사에서 신선세계를 통해 자신이 이루고 싶은 소망이나 꿈들을 담아내곤 했는데, 사실적 표현과 풍부한 상상력을 엿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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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깔린 높은 산봉우리에 부용꽃이 촉촉하고
붉은 언덕 구슬 나무는 이슬에 젖어있네.
경판각 염불 마친 스님은 선정에 들고
재 끝낸 법당에는 학도 소나무로 돌아가네.
넝쿨 우거진 오래된 벽에는 도깨비가 울고
안개 낀 가을 연못에는 촉용이 누워있네.
밤이 되며 향 등은 돌을 밝히고
흐린 달 동쪽 숲에는 종소리만 울리네.

<차중씨견성암운> 둘째 오빠의 <견성암> 시에 차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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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끈 풀어내어 비단 치마를 매고
설도가 만든 담황색 종이 열 폭에 파란 구름을 염색하네.
천 년 옥청궁 단 위의 약속
웃으며 세 마리 새를 날려 양군에게 부치네.
<유선사 86> 신선세계에게 노니는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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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그녀는 스승님을 통해, 또 허균과 무륜당이라는 세상을 통해 점차 자신만의 문장을 발전시켜 나가던 중 무륜당에서 어울리던 왕 견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러던 중 모함에 빠지면서 그녀를 짝사랑하던 김성립과 그의 아버지 김첨의 농간에 휘말리면서 마음에도 없는 김성립과 혼례를 올리게 된다.

 

자신보다 뛰어난 文을 가진 아내에 대한 무력감, 계속해서 떨어지는 과거시험, 그럼에도 자신이 돋보이기를 원하는 욕망에 사로잡힌 김성립과 며느리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시어머니 송씨 부인 속에서 모진 시집살이를 하던 초희. 기생과 바람나 후처를 데려와도 그저 여자이기에 모든 것을 감내해야 했던 삶을 오랜 시간 견디며 살아간다.

 

어디 한군데 마음을 둘 곳도, 기댈 곳도 없이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이어지던 시집살이 속에서 세 아이마저 잃으면서 몸도 많이 허약해지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버지 허엽은 실종되고, 임금에게 올린 상소로 인해 역모로 몰린 둘째 허봉은 유배후 사망했음을 뒤늦게 알게 되면서 모든것을 내려놓은 초희는 어느 날 잠자듯 그렇게 세상을 떠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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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얼굴을 보세요. 병자의 얼굴이 아닙니다. 사람의 몸은 병에 걸리면 괴로워하게 되어있는데 저 얼굴에는 병색이 없습니다.

43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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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 자신이 쓴 시를 모두 불태우려 했던 것을 가까스로 마동이 일부를 건져냈는데, 모든 세상의 미련과 끈을 놓아버린 그녀였기에 어쩌면 자신이 온 마음을 다해 쓴 시도 모두 태워버리려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자는 듯 평온했던 그녀의 마지막 모습이 어쩌면 그것을 증명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릴 때부터 사랑을 받으며 마음껏 자신의 세계를 표현하며 살았던 그녀였기에, 새장에 갇혀 사는 듯 갑갑한 시집살이는 어쩌면 더 모질고 고되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한순간에 사랑하는 이를 잃고, 사랑하는 친정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졌으며, 세 명의 아이들도 하늘나라로 보내고, 그나마 마음 풀 시마저 쓸 수 없게 되면서 모든것을 놓아버린 그녀의 삶. 27세의 젊은 나이는 그래서 더 안타깝고 먹먹하게 다가왔다.

 

실종된 아버지를 찾다가 뒤늦게 누이의 죽음을 알고 찾아온 허균이 그런 누이의 시문들을 거두어 서책을 내고자 명나라까지 간 것은 어쩌면 그런 누이의 한을 풀어주고자 함은 아니었을까? 시대를 잘못 타고난 비운의 천재 화가이자, 시인이며, 문장가였던 허난설헌.

 

실제 허균에 의해  발행한 그녀의 문집은 당대와 사후에 명나라와 일본에서 크게 인정받았으나 조선과 중국 양국에서 오랜 기간 표절 의혹이 존재해 왔다고 하는데, 그녀의 삶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대조적이었던 어린 시절과 결혼생활, 어쩌면 그녀가 남긴 시화들은 그녀가 품고 있던 마음의 소리를 엿볼 수 있는 유일한 창구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기회가 된다면 그녀의 작품들을 다시금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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