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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 칼로, 붓으로 전하는 위로
서정욱 지음 / 온더페이지 / 2022년 11월
평점 :
독특한 자화상을 그리는 것으로 유명한 화가라고만 알고 있던 프리다 칼로. 이번에 그녀의 삶과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책을 접하게 되면서 그녀가 그린 그림들이 가지고 있는 의미와 그녀가 겪은 수많은 고통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스스로를 위로했는지를 확인해 볼 수 있었다.
보통 사람은 경험하지 못할 고통 속에서 그림을 통해 자기 위안과 위로를 했던 그녀의 삶은 그림을 통해 그대로 투영되었는데, 그래서인지 그녀의 그림은 유독 더 아픔을 가진 이들에게 깊숙이 다가오는 것 같다.
이 책에서는 프리다 칼로의 인생 전반과 삶의 고통을 통해 꽃피운 화가로서의 삶, 그리고 그림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던 그녀의 내면과 가치관 등을 재미있는 해설과 함께 만나볼 수 있었다. 단순히 그림을 소개하는 책이 아니라 그녀의 삶 전체를 들여다보고 이것이 그녀의 세상에, 그림 속에 어떤 식으로 표현됐는지 또 당시 그녀의 심정은 어떠했는지를 설명해 주고 있어 깊이 있게 이해하는데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독특한 그림 너머, 반복적으로 표현되는 자화상의 시그니처 같은 일자 눈썹, 그녀 내면에 오래도록 자리 잡고 있던 고통과 생명에 대한 애틋함은 물론, 그녀가 나고 자란 멕시코 대지에서 얻는 에너지들이 가감 없이 표현된 그림들에서 그녀의 열정과 애정, 사랑이 엿보였다.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
유복한 집안에서 네 자매 중 셋째 딸로 태어나 한때 전도유망한 의사를 꿈꾸며 사랑하는 남자친구 알레한드로 고메스 아리아스와의 평범한 일상을 누리던 그녀. 여느 날과 같이 남자친구와 함께 버스를 타고 가던 중 일어난 버스와 전차의 충돌사고는 그녀의 삶을 한순간에 바꿔놓았다.
이 사고로 큰 부상을 입은 프리다 칼로를 포기한 이들을 남자친구인 알레한드로가 설득한 끝에 그녀는 결국 수술을 받을 수 있었고, 기적적으로 살아나게 된다. 이 사고는 그녀 인생에서 여러 의미로 큰 터닝 포인트가 되는데, 평생 그녀를 괴롭힌 고통의 시작점이자 미술적 천재성이 세상에 빛을 보게 된 계기가 된다.
<그녀의 고통>
이 사고는 여러모로 그녀에게 여러 가지 고통을 안겨주게 되는데, 그 첫 번째 고통은 후유증을 꼽을 수 있다. 사고 이후 35번 이상의 수술을 받으며 계속적으로 육체는 망가져 갔고, 진통제를 달고 살아야 할 만큼 안 아픈 날이 없었다. 거듭되는 수술은 또 다른 후유증을 낳으면서 죽는 날까지 심하게 고통받는다.
두 번째 고통은 유산을 꼽을 수 있다. 그렇게 원했던 아이를 세 번이나 유산하는 일을 겪게 되는데, 몸이 만신창이라 의사들이 말리는데도 불구하고 아이를 가지고 싶었던 그녀는 끊임없이 노력하지만 결국 이루지 못한다.
세 번째 고통은 남편인 디에고 리베라의 바람기를 꼽을 수 있다. 결혼할 당시 21살의 차이에 이혼 경험이 두 번이나 있었던 그는, 프리다 칼로와 결혼한 이후에도 그 바람기가 수그러들지 않는다. 남편의 바람기로 마음고생이 심했던 그녀의 심정을 그림에서도 엿볼 수 있다.
네 번째 고통은 가장 친하게 지냈던 친동생과 남편이 부적절한 관계를 가짐으로써 엄청난 배신감을 느낀 것을 꼽을 수 있다. 원래부터 그림 그릴 때 모델로 쓰는 누드모델들과 바람기가 심했던 디에고 리베라였는데, 프리다 칼로의 친동생이 모델이 되면서 그녀와도 부적절한 관계를 이어나가게 된다. 그런데 하필 이때가 아이를 유산하고 몸도 좋지 않을 때였다. 이 당시 가까운 두 사람에게 프리다 칼로는 얼마나 많은 배신감과 모멸감을 느꼈을까?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이것 역시도 그림을 통해 그 당시 그녀의 심정을 엿볼 수 있었다.
이렇듯 그녀는 자신의 육체적 고통은 물론 정신적 고통들을 그림을 통해서 스스로를 위로하게 되는데, 때론 직설적으로, 때론 생각지 못한 독특한 표현방식들로 자신만의 생각과 느낌들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책의 구성>
책의 전개 방식은 이러한 그녀의 삶과 그림을 한데 묶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순차적으로 전개되는데, 그녀의 기분이나 상황에 따라 그렸던 그림들이 하나하나 소개되면서 디테일한 소개 글이 이어지는 형태다. 이것은 마치 전시회에서 전문 도슨트에게 디테일한 설명을 듣는 느낌이었는데, 혼자서 감상할 때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세세한 표현이라던가, 색감, 표정, 애매모호하거나 숨겨져있던 다양한 형태의 사물은 물론, 작가의 의도나 당시의 상황을 잘 설명해 주고 있어 남다른 재미와 집중력을 높여주었다.
<자세히 들여다보기>
<사고(1926년 9월 17일(1926)>

사고의 순간을 스케치한 그림으로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끔찍했던지 차마 채색화로 그리지는 못하고 드로잉으로만 남긴 작품. 그 후 다시는 그 사건을 그리지 않았다고 한다.
▶해설
맨 아래에는 붕대에 칭칭 감겨 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리고 그녀 위에서 바라보고 있는 얼굴은 그 순간을 기억하는 자신을 나타내었다. 뒤에 있는 건물은 그녀가 계속 누워 지내던 곳이며 그림 윗부분에 버스와 전차가 충돌해 승객들이 밖으로 튕겨 나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 사고의 순간을 묘사한 것도 확인해 볼 수 있다. 해는 하늘에 떠 있고 화면 전체는 어질어질하다.
<벨벳 드레스를 입은 자화상(1926)>

자신을 떠나려는 남자 친구 알레한드로에게 전하는 그림으로, 자신을 사랑해 달라고, 떠나지 말아 달라고 애원하는 그림이다. 적극적이고 필요하다면 먼저 부딪치는 스타일이었던 프리다 칼로는 그림을 통해 마법을 부려 알레한드로가 다시 찾아오게 만든다.
▶해설
하얀 살결의 프리다 칼로가 눈에 확 들어오는 그림으로, 하얀 얼굴, 기다란 목, 팬 가슴 그리고 아래에 있는 하얀 손이 연결되며 감상자를 뽀얀 속살로 유혹한다. 머리는 곱게 빗어 윤기가 흐르고 오른쪽으로 살짝 튼 얼굴에는 프리다 칼로답지 않은 수줍음이 엿보인다. 지금 프리다 칼로는 알레한드로를 유혹하고 있는 모습이다. 몸에 달라붙는 벨벳 드레스는 가슴의 굴곡과 유두 자국이 도드라지며 눈빛, 표정과 포즈뿐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유혹하려는 것을 확인해 볼 수 있다. 그녀는 이렇게 남자 친구를 잡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미구엘 리라의 초상(1927)>

프리다 칼로가 화가의 길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었을 때 그것을 안 미구엘 리라는 프리다 칼로에게 자신의 초상화를 그려줄 것을 부탁한다.
▶해설
가운데 검은색 넥타이를 매고 있는 검은 양복을 입고 있는 사람이 미구엘 리라로, 옆으로 살짝 튼 그의 모습이 어딘가 어색해 보이는데 이것은 프리다 칼로가 다다이즘 작품을 만들고 싶어 의도한 작품이다. 미구엘 리라는 왼손에 바람개비를 들고 있는데 왜 들고 있냐고 물으면 이유는 없다. 바람개비 뒤에는 책이 펼쳐져 있고 오른쪽에는 TU라고 써있으며 왼쪽에는 열대 과일 구아버가 그려져 있다. 다다이즘 작품이라면 역시 이유는 없어야 하나 당시 프리다 칼로는 다다이즘 작가이기보다 다양한 방식을 시도해 보는 미래 작가일 뿐이었다.
미술사가들은 바람개비는 어린 시절을 상징하는 것이고, TU라는 철자와 구아버는 그가 출판한 2권의 책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책 뒤에 회색 옷을 입은 여자는 머리에 황금빛 후광이 그려져 있는데 대천사 미카엘을 말하며, 미구엘과 이름이 비슷해서 그려놓은 것으로 보인다. 대천사 후광 위에는 하얀 말이 그려져 있는데 다다이즘이란 용어는 어린이들이 갖고 노는 목마에서 나온 것이라, 그려놓은 게 아닐까 생각한다.
<알레한드로 고메스 아리아스의 초상(1928)>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는 그 순간을 함께 했던 유일한 사람인 남자친구 알레한드로. 치명적인 부상으로 포기하려 했던 의사를 설득해 그녀를 살린 사람이었던 그를 프리다 칼로는 가슴에 묻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 그림을 완성 후 한동안 보이지 않는 곳에 감춰 두었던 그녀는 24년이 흐른 후 프리다 칼로가 45살이 되던 해에 다시 꺼내 알레한드로에게 작품을 보냈다고 한다. 이것이 프리다 칼로가 세상을 떠나기 2년 전의 일이라고 하니 절절했던 당시 그녀의 마음이 느껴지는 듯하다.
▶해설
주홍색 배경 앞에 반듯하게 앉아 있는 알레한드로는 잘생겼고, 당당했으며, 자기 의견을 물 흐르듯 표현해 상대방을 압도하는 카리스마 느껴진다. 모르는 것이 없는 박식한 학자였고, 어떤 운동이든 잘하는 만능 스포츠맨이었으며, 항상 매너가 좋던 신사였던 그. 그런 알레한드로에게 하얀 셔츠에 검은 넥타이와 조끼, 그리고 회색 재킷을 입힌 것은 프리다 칼로가 기억하는 마음속 알레한드로를 표현한 것이다.
<추억(심장, 1937)>

28살의 프리다 칼로는 남편 디에고 리베라가 크리스티나 칼로와 육체적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크리스티나는 프리다 칼로와 친밀하게 지내던 바로 아래 친여동생이었다. 둘의 관계는 프리다 칼로가 디에고 리베라의 아이를 가지고 싶어 무리한 시도를 하다가 세 번이나 유산을 한 직후에 알게 된 일로 프리다 칼로가 정말 힘들 때 두 사람이 배신을 한 것이다. 그때의 심정이 그려진 작품이 바로 이 <추억(심장)>이다.
▶해설
심장이 너무 아파 몸 밖으로 빼놓고 싶을 정도였던 프리다 칼로는 칼로 심장을 잘라 꺼내버린다. 그리고 어느 바닷가에 버리는데 잘라낼 때의 고통보다 몸에 붙어 있는 심장에서 오는 고통이 더 컸기 때문이다. 작품의 왼편 아래에는 가슴에서 떨어져 나온 심장이 아직도 피를 흘리고 있는데 여인의 가슴에서 나왔다기에는 심장의 사이즈가 크게 보이는 것을 확인해 볼 수 있는데, 이것은 프리다 칼로의 통증의 크기를 표현한 것이다.
얼굴이 없는 두 개의 옷과 한 명의 사람 모두는 프리다 칼로를 나타내는 것으로, 얼굴이 없는 부분은 과거의 그녀를 나타낸다. 왼편의 교복을 입은 프리다 칼로는 어린 시절 동생 크리스티나와의 추억이 어려 있던 시절의 나 자신을 말하며, 이제는 배신감으로 잊고 싶기에 중간에 있는 현재의 프리다 칼로와 팔짱을 끼지 않은 것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오른쪽 멕시코 전통 드레스를 입은 프리다 칼로는 남편 디에고 리베라에게 한창 사랑받을 때의 그녀로 그때의 추억을 상징한다. 가운데 얼굴이 있는 프리다 칼로는 현재의 자신으로 그녀는 아직 남편에게 사랑받을 기회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에 오른쪽의 그녀와는 아직 팔짱을 끼고 있는 것을 확인해 볼 수 있다.
<두 명의 프리다(1939)>

프리다 칼로가 자신을 둘로 나누어 그린 작품으로, 당시 이 작품이 소개되었을 때 미술 전문가들은 '대단한 초현실주의 작품이다'라며 깜짝 놀랐다고 한다.
▶해설
왼쪽 빅토리아 풍의 하얀 드레스를 입은 프리다 칼로는 현재의 그녀로 겉모습에 더해 마음 상태까지 그려놓았다. 그녀는 지금 심장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겪고 있는데, 심장에 연결된 핏줄에서는 아무리 막으려고 해도 피가 계속 떨어진다. 그럼에도 그녀의 얼굴은 무덤덤한데 너무 많은 고통을 겪으면서 스스로 고통에 굴복하고 싶지 않아선지 대부분의 사진이나 자화상에서 모두 표정이 무덤덤하게 표현되었다고 한다.
오른쪽의 프리다 칼로는 현재의 프리다 칼로를 위로하는 프리다 칼로로 그녀가 힘들 때마다 위로해 주던 마음속의 프리다 칼로를 상징하는 것이다. 그녀는 현실의 프리다 칼로의 손을 꼭 잡아주고 자신의 건강한 심장에서 나오는 피로, 아픈 프리다 칼로에게 피를 공급해 주고 있다.
이처럼 자세한 설명을 통해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혹은 알지 못했던 그림 속의 사물이나 표현들에 대한 의미를 확인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그녀가 사용한 색의 의미라던가, 외부를 그릴 때는 항상 해를 그린다는 점, 생명의 탄생을 표현하는 데는 거침이 없었다는 점, 상처나 자극, 자신의 내면이나 고통에 대해서는 가시나 피, 낮과 밤 등으로 표현했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었다.
더불어 대부분의 그림들은 자화상의 형태로 그려졌으며, 상황이나 내면의 모습을 그림에 그대로 표현함으로써 그녀가 얼마나 고통을 받고 있는지, 어떤 것으로 상처를 받고 있는지도 알 수 있었다. 또한 어느 누구에게도 이해받을 수 없는 고통을 그림 속 또 다른 자아를 통해 위로받고 어루만지는 것을 통해 참 강한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온몸이 부서질듯한 평생의 고통 속에서도 아기를 갖기 위해 노력하고, 스스로 붓을 쥐고 자신만의 생각과 가치관을 그림을 통해 보여주었던 프리다 칼로.
아마 버스 사고 이후 그림은 그녀의 삶 그 자체였을지도 모르겠다. 신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고스란히 그림 속에 담아 스스로를 위로하고 다시 희망을 찾아가는 과정이 그대로 담겨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보자면 놀라울 만큼 파격적이고, 적나라한 표현들이 가득하지만, 그 속에 담긴 열정과 의미만큼은 그 어떤 작품들에도 뒤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래서 그녀의 그림을 감상하는 이들이 그녀의 그림을 보고 많은 위로와 희망을 얻는지도 모르겠다.
너무 많은 고통에 지쳤거나 힘이 들어 주저앉고 싶은 순간, 프리다 칼로의 작품을 감상해 보자. 수많은 고통 속에서도 끊임없이 삶을 향해 나아갔던 그녀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