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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를 듣는 소년
루스 오제키 지음, 정해영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3년 4월
평점 :
어느날 갑자기 들리지 않던 세상의 모든 소리들이 들려온다면 어떨까? 신기할까? 아니면 두려울까? 처음에는 이런 재미있는 상상과 질문으로 읽기 시작한 소설이었는데,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여러 감정과 생각들이 순식간에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갑자기 들려오는 사물들의 소리를 통해 환상적이고 상상력을 마구 자극하는 메타버스 공간을 선사하기도 하지만, 그 이면에 담긴 삶의 의미와 통찰에 대한 깨달음은 결코 가볍지 않았기 때문이다.
살면서 가끔 우리는 '내가 사는 이 세상이 진짜일까?', '이게 맞나?', '진짜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스스로 되뇔때가 있다. 그 질문의 본질은 현실에 대한 만족 혹은 불만족에서 기인한 믿기 어려운 현실 혹은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을 표현할 때 떠올리곤 하는데, 평온하지 않은 상태를 뜻하기도 한다.
이 책에서도 이와 같은 질문을 통해 진짜 삶과 의미, 본성에 대해 깨달으며 점차 성장해가는 모습을 확인해볼 수 있는데, 철학적이지만 한편으로는 실질적인 질문이기도 한 이 질문들을 통해 슬픔과 괴로움, 상실속에서 벗어나 넓은 세상, 우주로 힘차게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야기는 '소년'의 관점과 '소년의 책'의 관점이 번갈아가며 전개되는데, 대부분의 이야기는 책의 관점에서 전개된다. 소년의 책은 소년을 졸졸 따라다니며 가장 민망한 순간까지도 기록하고 전부 이야기 함으로써 우리에게 소년이 태어나기 전의 일부터, 그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상황과 감정상태까지 세세하게 전달한다. 덕분에 우리는 소년의 입으로 전해듣지 못하는 디테일한 모든 상황을 세세하게 관찰하고 들여다볼 수 있다.
책은 소년과의 대화를 그대로 보여주기도 하고, 3인칭 관점에서 모든것을 낱낱이 서술하기도 하며, 때로 책 자신의 의견을 전해주기도 한다. 덕분에 다양한 관점과 객관적인 시각에서 삶과 사물, 사람에 대해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는데 이를 통해 어떤 깨달음을 얻게 되는 순간들이 불쑥불쑥 나타난다.
스토리를 살펴보면, 가난하지만 꽤 행복했던 단란한 세가족에게 어느날 갑작스레 불행이 닥친다. 다정하고 세심했던 아빠이자 남편인 켄지가 공연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중 트럭 사고로 사망하게 된것이다. 그때 나이 열두살이었던 베니는 또래에 비해 항상 작은 소년이었고, 발육이 더뎠지만 아버지가 죽고, 어머니의 체중이 불기 시작한 그 해 성장이 거의 멈췄다. 그리고 이내 베니는 일년이 지난이후부터 아빠의 목소리를 듣는것을 시작으로 점차 온갖 물건들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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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들이 곧바로 들리기 시작한건 아냐. 아빠가 죽고 1년쯤 지났을 때까지는 그냥 아빠 목소리뿐이었어. 그냥 밤에 침대에 누워 있을 때 화장장에서 그랬던 것처럼 나를 부르는 정도였어.
6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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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목소리들은 꿈속에서도 나타났어. 그렇게 시작된 거야. 마치 한 목소리가 문을 열자, 나머지가 따라 들어온 것 같았어. 꿈은 문과 같아. 또 다른 현실로 들어가는 관문 같은 거지. 그리고 일단 그 문이 열리면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6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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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기둥이자 윤활유 같은 역할을 했던 켄지의 죽음은 이 가정에 혼란과 슬픔을 남기게 되면서 서서히 이들의 일상은 무너져 간다. 이 상황을 잘 이겨내보고자 나름 애는 쓰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상황은 악화되어 간다.
1월에 열네 살이 된 베니는 중학교의 마지막 학년, 점점 더 많은 물건들의 목소리를 듣기 시작하면서 치료사, 상담사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나중에는 병원에도 가게 된다. 엄마 애너벨은 남편의 유품, 재택 근무로 일하면서 쌓인 자료들, 각종 소품과 취미등을 계속 쌓아가면서 사물에 갇혀사는 일상을 보내게 되는데 꼭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외부와는 단절된 생활을 이어나가게 된다.
사춘기에 접어든 베니는 점점 더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혼란속에 일탈을 감행하게 되고 그렇게 집을 벗어나 도달한 곳은 어릴적 좋아했던 공공도서관이다. 그곳에서 그 동안 자신을 괴롭히던 각종 소리들이 무한한 정적을 유지하는 것을 알게 되면서 계속해서 공공도서관을 방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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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그가 혼자 책을 읽을 때는 마치 책 함께 읽는 날에 아이들이 조용하고 고요해지는 것처럼, 머릿속의 모든 목소리들이 점점 조용하고 고요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것은 놀라운 발견이었고, 더 놀라운 것은 이후에도 오랫동안 심지어 일과를 마치며 책을 카트에 반납하고 도서관 정문을 통과해 거리로 나간뒤에도 목소리가 조용한 상태를 유지한다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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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소리가 지워지고 물속에 잠긴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책장에 쓰인 말들이 그의 머릿속 목소리에게 뭔가 생각할 거리, 조용히 숙고할 거리를 준것 같았다. 그렇게 여름이 지나가고 있었다.
19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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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 베니는 정신과 병원에 입원당시 주웠던 쪽지를 곳곳에서 발견하게 되고 이를 마치 하나의 계시라고 생각하며 지령을 읽고 따라하기 시작한다. 마치 보물찾기를 하는듯, 막연하지만 우연찮게 발견하게 된 쪽지는 어쩌면 당시 베니에게 작은 기쁨이자 희열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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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그의 주변에서 우주가 재배열되는 것처럼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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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령을 읽는 것은 하나의 계시였다. 그는 깨어난 것 같았다. 한때 그가 혼돈을 보았던 곳에서 이제는 질서를 인식하게 되었고, 한때 질서처럼 보였던 것이 이제 혼돈이 되었지만 그 방식이 이상하고 흥미로웠다. 앨리스는 이런 현실과 병동에서 사물들의 존재방식을 통제하는 비밀스러운 규칙들의 키를 쥐고 있었다.
16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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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혼자만의 고요한 시간속에서 다양한 책을 읽고, 오로지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다 앨리스(=알레프)와 B맨(=슬라보이=보틀맨)을 만나게 되면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반면 엄마 애너벨은 생계를 위해 아날로그 시대의 끝을 상징하는 직업을 붙잡고 씨름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러다 쇼핑을 하던 중 우연히 쇼핑 카트 안으로 떨어진 책 한권을 구매하게 되고 이것을 읽게 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이것은 <정리의 마법: 잡동사니를 치우고 삶을 혁신하는 고대 선불교의 기술>이라는 책으로 정리와 비움에 대해 서술하고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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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단순히 잡동사니 물건을 정리하는 것에 대한 내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일본 최고의 정리 컨설턴트 중 한 명이기도 한, '아이콘'이라는 이름의 일본 승려가 쓴 정신적 잡동사니를 정리하는 선불교적 방식에 대한 내용이었다.
8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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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와 엄마 애너벨은 이렇듯 각자 삶의 전환점을 맞을 기회들을 포착하지만, 중간중간 나름의 고충과 어려움은 계속해서 뒤따르고, 그러다 포기하고 절망하고 싶은 순간들도 문득문득 다가온다. 그러나 새롭게 인연을 맺게 된 이들 덕분에 다시금 일어나 두발로 세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세상에 나홀로 버티는 것 같은 외로움과 절박함속에서 그들의 작은 선의는 삶의 희망을 가지게 만들어 준다.
가족이라는 인연이 끊어질 최악의 상황은 새로운 기회의 포문을 여는 계기가 되기도 하는데, 굳건히 잠겨있던 내면의 사슬을 끊고 자유의지로 일어선 이들의 모습은 삶의 의지를 다시 다지는 첫발을 내디딘 모습처럼 보였다. 마치 우주비행사가 우주에 첫발을 내디딘 것처럼.
그들은 사랑하는 가족을 갑작스레 잃게 되면서 마치 대재앙 스노글로브에 갇혀 혼란에 빠진 상태였는지도 모른다. 우주 속 넓은세상과 나의 세상이 투명한 유리벽에 가로막혀 끊임없이 좁아드는 압박감속에 하루하루를 견디며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마침내 나를 압박하고 괴롭게 만들던 유리벽이 깨지면서 진짜 나를 맞이하게 되었을 것이다. 깨짐으로 인해 알게 된 진짜 세상을.
어렸기에 세상의 중심이었을 아빠의 죽음은 소년에게는 커다란 상실감을 가져다 주었을것이다. 그리고 아내이자 엄마인 애너벨은 그보다 더 많은 책임감과 슬픔을 느꼈을것이다. 하지만 아들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에 미처 슬픔을 표현할 시간도 없었을것이다. 더군다나 그와의 끝이 말다툼으로 끝나버린 상황이라 그녀에게는 죄책감까지 더해지면서 오히려 더 주변을 둘러볼 겨를이 없었을거란 생각도 든다.
이 책은 끝이라고 말하는 죽음으로 시작하지만,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또다른 시작으로 연결되어 다양한 삶의 이면을 보여준다. 인종, 종교, 사는 모습, 직업, 경제력, 삶의 가치 등 우리가 수없이 비교하고 기준으로 삼았던 것들의 진정한 가치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한다.
이외에도 책에 등장하는 인물과 물건의 소리를 통해 이 책만에서만 느낄 수 있는 생생한 입체감이 드러나는데, 특히 괴짜같은 다양성을 지닌 인물들의 특성이 유독 눈에 띈다. 한국, 미국, 일본의 혼혈이면서 깔끔하게 정리를 잘하는 베니, 클라리넷 연주를 하면서 생계를 이어가지만 섬세하고 재능이 많아 이것저것 할줄 아는게 많았던 켄지, 똑똑하고 매력넘치던 애너벨은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는것에 능력이 출중하지만 남편 켄지가 사망하면서 이내 수집벽으로 변모해버린다.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노숙자이지만 유명한 시인인 B맨, 중독으로 정신병동을 입퇴원하지만 스노글로브를 만드는 예술가인 알레프, 매번 공개열람실 맞은편에 앉아 타자를 치고 있는 어떤 여성, 나쁜 아들이라 '노 굿 선'으로 불리지만 정작 도움이 필요할때는 손을 내밀어주는 노굿 등 한가지 기준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다양성을 두르고 있는 이들의 모습은 반짝반짝 빛이 난다.
입체적인 인물들 외에도 책을 매개로 담고 있는 교훈과 상상력, 선불교책에서 얻는 비움과 버림의 미학에 관한 깨달음 등은 한번쯤 생각해 봄직한 내용들이다.
삶과 다르게 책이 전하는 이야기를 통해 다른 관점으로도 바라볼 수 있었는데, 우리네 삶이 태어나서 죽을때까지의 일방통행이라면, 책이 전하는 '이야기'는 거꾸로 사는 삶인 덕분에 삶을 거꾸고 되짚어가며 살펴볼 수 있는 기회도 얻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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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이야기는 결코 처음부터 시작되지 않아, 베니. 이야기는 그런 면에서 삶과 다르지. 삶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사는 거야. 처음부터 알 수 없는 미래까지 말이야. 하지만 이야기는 나중에 말하는 거야. 말하자면 이야기는 거꾸로 사는 삶이지.
4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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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이야기가 쓰이는 책 속 이야기의 실체 혹은 책 관점에서의 이야기도 들어볼 수 있었는데, 흥미로운 부분들이 꽤 많았다. 무생물이 마치 살아있는 생물일때 느낄법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 마치 대화하는 느낌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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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게도 몸은 있지만, 우리의 몸은 세상을 경험하기 위한 기관이 결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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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신의 타자가 융합되는 무아의 황홀감을 느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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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를 구체화하기 위해 당신들에게 의존하며 당신들이 존재하기에 우리가 존재한다. 그래서 우리는 책장을 넘기는 당신의 손가락을 인지하고 책장 사이에 쏟아진 쌉쌀한 커피의 맛이나 톡쏘는 소스의 맛, 짭짤한 정액의 맛을 말로 묘사할 수 있지만, 이런 감각들을 당신처럼 혀로, 피부로, 몸속에서 경험하지 못한다.
뭔가 빠졌다는 허전함을 느끼지 않기 힘들다.
5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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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때로 사랑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누군들 안 그렇겠는가? 따지고 보면 우리는 미친 듯 당신들을 사랑한다. 당신들의 집착을 표현하기 위해 헌신적으로 일하는 우리는 누군가에게 깊은 인상을 받고 구속받는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이 같은 생각들이 게으른 비유들이며, 그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우리가 만들어낸 공상이라는 것을 이해한다.
공상이라면 우리 책들이 아주 잘하지. 하지만 진짜 이야기들, 즉 일어난 이야기들은 당신들의 영역에 속한다.
5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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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가 사물의 소리를 듣기 시작하면서 목소리를 구분하고 이해하는데 능숙해지는 시점에 서술한 내용은 베니의 성장을 보여줌과 동시에 사물과 다른 인간에 대한 통찰력을 보여주고 있는것 같아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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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동안 나는 어조와 목소리를 이해하는 데 능해졌다. 하지만 사람의 경우는 조금 힘들었는데, 사람들은 거짓말과 농담을 하고 감정을 숨기고 진심이 아닌 헛소리를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내게 자연스럽게 다가오지 않아서 처음 글 읽는 법을 배우고 음절을 소리내어 읽어야 할 때처럼 연구하고 연습해야 했다. 우선 사람들의 말소리를 익힌 다음 기계적으로 암기해야 했다.
사물들은 정직해서 더 쉬웠다. 그것이 사람과 사물 간의 차이였다. 사물들은 거짓말을 하거나 놀리거나 장난치지 않았다. 감정을 숨기지도 않았다. 어떤 사물이 행복하거나 슬프거나 지루하거나 화가났으면 단박에 알 수 있었다.
27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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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하고 감정을 숨기지 않는 사물들에 비해, 감정을 숨기고 진심이 아닌 헛소리를 하는 사람을 나란히 한 선상에 놓아두고 보니 왠지 부끄러운 기분이 드는건 왜일까?
똑똑하고 아는것이 많을뿐만 아니라, 친절하고 이타적인 B맨이 진짜 어른의 모습으로 베니에게 전하는 위로와 격려의 말도 기억에 남았는데, 몸이 불편하고 비록 가진 것이 없어도 불평하지 않고 타인을 위해 먼저 손 내밀줄 아는 그의 모습에서 다시한번 감명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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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지어!" 노인이 말했다. "철학적 질문을 생각해내! 그리고 자네가 둘 다 할 수 없는 게 사실이라면, 그때 가서 진짜 미쳤다고 결론 내려도 늦지 않네."
29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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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질문이야. 아주 철학적이고"
"뭐가요?"
"진짜란 무엇인가"
"하지만 진짜가 뭔지 모르겠다고 말했잖아요."
"모르는 게 당연하지! 그래서 그게 훌륭한 질문인 걸세."
30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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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프가 베니에게 전하는 말도 강렬하게 다가왔는데, 어쩌면 우리가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말이 바로 이 말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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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너야, 베니 오. 그게 문제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말은 듣지마"
46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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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불교의 정리책에서 얻은 교훈도 큰 깨달음을 주었는데, 진정한 본성과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는것의 가치와 중요성을 되짚어 보게 하는 문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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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것이라고 생각했던 모든것이 한순간 휩쓸려 가버릴 수 있다면,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게 된다.
'진짜란 무엇인가?'
해일은 우리에게 무상함이 진짜임을 일깨워주었다. 이것이 우리의 진정한 본성을 깨닫게 하고 있다.
이미 깨졌다.
이것을 알면 우리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있고 서로를 있는 그대로, 완전하게, 무조건적으로 기대나 실망없이 사랑할 수 있다. 그러면 삶이 훨씬 더 아름답지 않을까?
58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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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내용도 확인해볼 수 있었는데, 늘 개인 열람실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타이핑을 치던 작가의 말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인터넷이 활성화되어 있지 않던 시절, 활자로만 만날 수 있었던 말은 '글'로써 우리의 곁에 자리하고 있어 경계가 있었다. 그런데 인터넷이 활성화되면서 '말'은 무분별하게 남발되었고 규율과 제약없이 풀어지면서 악성댓글과 무자비한 인신공격으로 세상에 퍼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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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세상에서는 더 이상 말을 묶어둘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 같아. 개인적으로 난 동의하지 않아. 말은 종이에 귀속되는 걸 좋아하지. 경계를 필요로 해. 어떤 규율과 제약이 없으면, 말은 기분 내키는 대로 아무렇게나 지껄이고 다닐 거야. 하지만 내가 좀 구식인가 싶기도 해."
68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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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며 세상과 교감하고 관계를 맺는 것이 소리로 투영되면 어떨까 라는 재미있는 상상을 해보았다. 일단 처음은 신기하고 흥미로울것 같다. 그 다음은 글쎄, 시끄러워서 귀를 틀어막거나 아니면 오히려 이를 활용해 더 재미있는 상황을 만들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물건들이 또 침묵을 지키고 있는것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베니에게 그랬듯 물건들이 속삭이진 않지만 가만히 귀기울여보면 우리 주변에 있는 물건들이 저마다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듯 무언가 소리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컴퓨터를 켜면 윙~하며 돌아가는 모터소리를 내고, 자판을 두드리면 타닥타닥 소리를 낸다. 책장을 넘기면 파라락 하는 소리를 내고, 컵에 물을 담으면 퐁퐁퐁 하는 소리를 낸다.
무시하고 지나쳤던 일상의 소리들에 귀기울여 오케스트라 연주를 하듯 지휘봉을 휘둘러보면 어떨까? 퐁퐁~ 윙~ 타닥타닥! 어쩌면 나만의 멋진 연주가 탄생할지도 모른다. 이처럼 세상을 살아가는 기준을 나에게 두고, 나만의 음악, 나만의 인생을 개척해보자. 그렇게 하나씩 음을 쌓고 소리를 섞어가면서 살아가다보면 삶을 보다 유쾌하고 긍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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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항공관제사와 같다. 아니, 지구상의 온갖 재즈 연주자들로 이루어진 브라스 빅밴드의 리더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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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뒤로 빗어 넘기고 말쑥한 정장 차림으로 지휘봉을 들고 온갖 열정적인 물건들에 둘러싸여서 말이다. 한 번의 빠르고 아름다운 순간을 위해, 모든 목소리들이 당신의 지휘봉을 내리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음악을 만들어낼 것이냐 미칠 것이냐. 그것은 순전히 당신에게 달려있다.
14~1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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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주변에 아무도 없다고 여기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어릴적 동화책을 읽어주던 사서, 맞은편 열람실에 늘 자리하고 있던 일면식도 없던 작가, 오며가며 만났던 부랑자와 비슷한 또래의 여자 아이, 옆집에 사는 뚱한 소년 노굿 등이 필요한 순간 나타나 이들 모자에게 도움을 준것처럼.
희망은 기적처럼 다가온다. 그리고 기적은 늘 가까이에 있다. 우리가 세상에 귀 기울이면 기적은 서슴없이 다가와 또다른 기회를 제공해줄것이다. 마치 애너벨이 마음을 열어 새 삶에 한발 나아갔듯, 수많은 기회를 내것으로 만드는 또한 오로지 나의 선택에 달려있다. 그리고 그것을 쟁취하는것 역시 나의 선택에 달려있다. 마음을 열고 세상의 소리에 귀 기울여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