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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어머니
이명직 지음 / 좋은땅 / 2023년 3월
평점 :
품절
한국 사회의 '재산상속'에 대한 어두운 이면이자 현실을 적나라하게 담고 있는 <엄마와 어머니>. 우리 부모님 세대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배다른 이복남매가 얽힌 가족사까지 더하여 마치 드라마 한 편을 본 듯한 기분을 선사한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통해 다시금 권선징악, 사필귀정, 인과응보라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더불어 우리가 어릴 적 보던 백설공주, 콩쥐팥쥐, 신데렐라 등의 동화 속 흔한 계모의 이미지와 함께 역시 악인은 벌을 받고 끝나는 해피엔딩을 바라게 된다. 특히 후반부에 접어들수록 두 손 모아 제대로 된 마침표로 끝맺음을 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은 비단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영화나 드라마보다 더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우리네 현실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이 소설 같지 않은 소설을 통해 우리 사회의 재산을 둘러싼 상속문제와 인간의 본성과 욕망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또 남의 것을 탐내기 보다 스스로 노력해서 얻는 성과와 성취의 맛에 대해 더 알아갈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 책은 개인적으로 배다른 오 남매 중 장손인 이태종을 중심으로 내용을 바라보는 게 가장 적당하지 않을까 싶다. 실질적으로 가장 큰 피해자이자 책임을 지고 가야 하는 당사자이지만, 한편으로는 이들이 재산 싸움을 벌이는 재산에 대해서 개인의 욕심과는 가장 거리가 먼 인물이자 가정과 사회적으로 가장 안정된 삶을 살고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책에서 서술되는 배다른 오 남매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그들이 엄마 혹은 어머니를 바라보는 시각과 그들 사이에 얽히고설킨 사연들을 통해 나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각 인물에 대입해 보며 소설을 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가 될 것 같다.
본격적인 소설 이야기에 앞서 오 남매에 대해 간단히 정리해 보았다. 이들의 기본적인 관계성을 살펴보고 소설의 내용도 집중도 있게 살펴보자.
■이태빈
-태종보다 3살 위 친누나
-정실부인인 우에다 모모코가 낳은 첫 딸
-능력 없는 남편으로 인해 현재 부산 시장에서 생선을 팔면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한때 동생 이태종이 경제적인 도움을 주었으나 남편이 오히려 이를 남발하여 바람피우고 다른 여자 사이에서 아이를 낳았다는 소리를 들은 이후 이제는 경제적 지원을 끊었다.
■이태종(장손)
-정실부인인 우에다 모모코가 낳은 첫째 아들
-크리스마스 장식품을 제조 수출하는 중소기업 사장
-아내 김세화, 딸 아해린, 아들 이세종
-현재 여의도 주상복합아파트 37층에서 거주 중
-5년 만에 연간 미화 100만 불 수출, 창업한지 10년에 공장을 세웠으며, 35년이 지난 지금은 직원 수가 200명에 연간 3천만 불의 수출을 달성하여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3천만 불 수출 탑을 수상한 건실한 중소기업 대표다.
■이태수
-후처였으나 호적상 정실부인이 된 사금자의 첫째 아들
-미국에서도 유명한 내과 의사이며 그가 설립한 병원의 병원장
-가족들로부터 멀리하겠다는 일념을 가지고 미국 유학 후 그곳에서 미국 아내 결혼해 아들 앤드류와 함께 35년째 생활 중이다.
■이정빈
-후처였으나 호적상 정실부인이 된 사금자의 첫째 딸
-LA 북쪽 변두리에 살면서 대학에서 아동 병리학 교수로 재직 중
-미국에서 남편과 이혼하고 아들과도 따로 살고 있다.
-현재 형편이 좋지 않음
■이선빈
-후처였으나 호적상 정실부인이 된 사금자의 막내딸
- 교수로 한국에서 생활 중
-남편하고 별거 중
-엄마 사금자와 가장 닮은 딸로, 현재 과거보다 100배 이상 오른 예지동 상가건물의 명의신탁을 맡고 있다.
■이성열
-이태종 외 4명 자녀의 아버지
-성종 임금의 둘째 아들 계성군의 17대 장손
-장자로 상속하는 재산을 담보로 종로구 예지동에 상가건물 구매
■우에다 모모코
-태종과 태빈의 친엄마, 일본인
-우에다는 태종의 아버지 이성열의 정실부인
■사금자
-이태빈, 이태종의 의붓어머니이자 이태수, 이정빈, 이선빈의 친엄마
-태빈과 태종에게는 '또 어머니'로 불림
-청주 사 씨로 1920년 함경북도 기흥군에서 영주의 외동딸로 태어났으며 그녀는 그곳에서 여자 고등여학교를 졸업하여 공무원 생활 2년 차에 같은 부서에서 과장으로 근무 중이던 유부남 이성열을 만나게 되었다.
-사금자는 태종의 일본인 친엄마 우에다 모모코를 일본으로 내쫓은 장본인이다.
-남편이 죽은 후 태종의 적금과 예지동 상가건물을 문서위조로 자신의 명의로 돌려 편취함. (예지동 상가건물의 지분은 1/2 태종, 1/4 남편, 1/4 사금자)
■자영이 엄마
-사금자와 의자매를 맺고 있는 관계로 60년간 친구이자 언니 동생 하는 사이
-현재는 서울 오장동에서 함흥 냉면 식당을 운영 중
-사금자는 부산에서 살던 시절 곤란할 때 그녀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는 오장동 건물에 있는 냉면 식당을 저렴하게 세를 주고 있음
■자영이
-뉴욕 대학에서 3년간 포스트 닥터로 연구 활동을 한 후 미국에서 체육학과 교수로 활동함
-엄마와 사금자를 알뜰히 챙김
■사금자 간병인
-52살의 조선족 간병인으로 약 2년간 사금자를 간병함
-정빈과 선빈 사이에서 사금자의 병실 정보통 역할을 맡음
■정한국
-당시 무진회사 지점장으로 근무(국민은행 전신)
-당시 40대 중반으로 사금자의 내연남으로 추측
-예치동 상가건물의 명의를 사금자로 돌리는데 협조하고 조력한 인물
-이성열을 죽음으로 몬 인물
사금자의 사망 소식부터 시작되는 소설의 스토리를 가만히 따라가다 보면 과거 그들 사이에 얽힌 속 사정들을 속속들이 확인할 수 있다. 그들 부모님 세대에서부터 얽혔던 이야기와 다섯 남매의 이야기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데, 읽다 보면 감정이 널을 뛴다.
정실부인의 자리와 재산까지 탐하고 그 자리를 꿰찬 사금자의 인생은 불륜에서 시작해 온갖 악행과 도망으로 채워져있다. 그리고 그녀의 죽음엔 수많은 미스터리와 비밀이 숨겨져 있다.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사망은 이 이야기의 전반을 뒤덮고 있는 자식들 간의 재산 다툼의 본격적인 서막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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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이성열의 결정은 일본인 처를 일본으로 밀항하게 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
그녀가 두고 간 집과 많은 귀중품들은 모두 사금자의 몫이 되었다. 이때가 이태종의 나이가 열 살이고 이태빈은 열세 살 그리고 이태수는 일곱 살이었다.
1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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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금자의 꾀에 정실부인인 우에다 모모코를 내쫓고 첩을 서류상 정실부인으로 입적하게 되면서 정실부인의 자식인 태빈과 태종은 오히려 뒷전으로 밀려나 자라게 되고, 오히려 사금자의 맏아들 태수는 가장 귀한 아들로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라나게 된다.
이런 환경은 오히려 자식들을 집과 멀어지게 만드는데, 성인이 된 이후 각자의 삶으로 뿔뿔이 흩어져 살게 만드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특히 더 이들이 멀어지게 된 계기에는 아버지의 갑작스런 사망 후 소유하고 있던 태종의 적금과 문중에서 장자를 통해 내려오는 재산의 건물이 한순간에 사라졌다가 사금자가 개인 재산으로 갈취하면서 도망자 신세가 된 것이 큰 역할을 하게 된다.
미스터리한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 이후 편취한 온갖 재산을 자신의 명의로 돌린 사금자는 태종의 고발을 눈치채고 일찍이 미국으로 도피한다. 그렇게 23년을 미국 여기저기를 떠돌며 살다가 어느 날 몸에 이상이 생겨 반신불수가 되고 제대로 몸을 가눌 수 없게 되면서 미국 생활을 청산하고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렇게 한국에 있는 요양병원에 입원하게 되면서 다시 사금자의 입국 상황이 알려지게 되고 그동안 미국으로 도피하면서 잠시 스톱 상태였던 그녀에 대한 조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죽음을 앞두고 사금자는 꿈에서 호통치는 남편을 만나는 것은 물론, 그동안 자신이 쌓은 과업에 대해 돌아보게 되면서 자신이 오래전 편취한 태종의 적금과 예지동 상가건물을 되돌려 줄 결심을 한다. 그러나 이미 그동안 100배나 오른 건물 시세에 오랫동안 이 건물을 관리하고 있던 막내딸 선빈은 자신이 혼자 독식할 생각에 증여를 강요하고, 다른 쪽에서는 이 건물을 이용해 한몫 챙길 생각에 다른 마음을 품고 남매들을 회유하는 정빈이 있다.
이들의 재산상속을 향한 집념과 의지는 지독한데, 재산을 상속받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것도 거리낌 없이 행한다. 이 대상에는 온갖 질병(협심증, 신장병, 폐렴, 그리고 간경화 질환)을 앓으면서 죽음을 앞둔 그의 어머니도 예외는 아니다.
병실에서 소리를 지르거나 독설은 기본이고, 아무도 몰래 수면제를 쓰거나 녹음기를 설치하고, 문서를 위조하거나 사람을 매수하는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해 자신에게 유리한 증거와 방법을 모색한다.
추후 어머니 사금자가 죽고, 지난한 그들의 긴 법정 싸움 끝에 마침내 결말에 다다른다. 여기에는 판사의 판결문과 실제 법정 안에서 이루어지는 상황적 묘사가 디테일하게 묘사되는데, 현실감이 느껴져 나도 모르게 두 손 꼭 모으고 '제발'이라는 말을 절로 하게 된다.
그리고 이내 그들의 가족으로서의 인연과 과거는 끝을 맺게 되는데, 어쩐지 끝맺음은 개운치가 않다. 아직 이 소설 속에서 확인해야 할 몇 가지 떡밥과 제대로 된 죄를 받지 않고 죽는 순간마저 자신의 목적을 이루고 간 것만 같은 얄미운 사금자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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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이곳에 묻히기 위해서는 조상님들의 허락이 필요하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일까? 종부로서 조상의 재산을 탐했고, 종손의 재산을 가로챘으며, 남편을 억울하게 죽게 했고, 본처를 일본으로 도망치게 했으며, 의붓자식을 괄시했으며, 자신이 난 자식들에는 온갖 정성과 희생을 아끼지 않았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그녀의 죄는 끝나지 않았다. 그런대도 자영이 엄마에게 남편 곁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은 그래도 남편에게 떳떳함이 있었던가? 아니면 자영이 엄마가 태종에게 요청하면 이곳에 묻힐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던 것일까? 사금자는 영리한 여자였으며, 언제나 도전의식이 강한 여자였다.
28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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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인지 이것마저도 현실과 너무 닮아서 더 속이 터지는 부분도 있는데, 이 책의 제목처럼 현실과 이상이 이처럼 영원히 좁혀지지 않을 <엄마와 어머니>와 같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평생 외롭고 도망자의 신세로 살았지만 어쨌든 죽는 순간까지 자신의 욕망을 모두 이룬 사금자. 그리고 그런 엄마를 쏙 빼닮은 이선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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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막내딸 얼굴을 꼼꼼히 올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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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금자는 막내의 얼굴에서 그 옛날 자신을 보는 것 같아서 전신에 소름이 돋아날 정도였다. 선빈은 엄마의 사십 대 중반의 얼굴 바로 그 얼굴이었다. 말하는 모습까지도 똑같았다. 선빈은 영락 없는 사금자의 분신이었다.
(...)
선빈 역시 자신이 늙으면 저렇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한 번 더 엄마의 얼굴을 천천히 내려다보았다. 선빈은 엄마가 안쓰럽고, 불쌍해서 울고 싶었다. 그러나 그건 그거고 지금은 단판 승부가 더 중요했다.
8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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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거울처럼 닮은 이들 모녀의 모습을 보면서 '될 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데 이선빈의 노후도 이와 같지 않을까 짐작만 해본다. 가장 관심과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태수는 정작 가족과 나라를 버리고 먼 이국땅에서 자신만의 둥지를 튼 걸 보면 인생은 아이러니하다는 생각도 든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다시금 첫 페이지로 돌아와보니 사금자가 더욱더 괘씸하게 느껴진다. 더불어 몇 가지 궁금증도 인다.
이정빈이 건설사와 협의한 계약사항은 원하던 대로 이행되었을까? 자신의 불륜을 덮기 위해 남편의 죽음을 방조한 정 지점장과는 또 다른 비밀은 없을까? 병실에서 일어난 일을 정빈과 선빈 모두에게 공유한 간병인에게 다른 의도는 없을까? 선빈은 왜 아무도 몰래 엄마 사금자에게 수면제를 먹게 했을까? 그 외 사금자가 한국과 미국에 보유하고 있던 부동산은 어떻게 되었을까? 일본으로 쫓겨난 태종과 태빈의 엄마 우에다 모모코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왜 한 번도 금쪽같은 자식들을 보러 오지 않았을까?
이 와중에 엄마도 재산도 뺏긴 태종이 건강한 가족과 튼튼한 사업체를 건실하게 운영하고 있는 것을 보면 자기 하기 나름이라는 생각도 든다. 더불어 의사와 교수라는 직업을 가졌음에도 더 많은 욕망을 갈구하는 이들을 보면서 씁쓸한 생각도 든다. 너무 현실적이어서 더 마음이 복잡했던 <엄마와 어머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