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권으로 읽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창석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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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름이나 책 제목은 많이 들어봤는데, 한 번도 그의 작품은 읽어보지 못한듯하다. 왜 유명한지, 어떤 작품을 썼는지 내심 궁금하던 차에 기회가 닿아 이번에 읽게 되었다. 일전에 작가들의 방과 특성을 소개하는 책을 통해 마르셀 프루스트가 대표적인 '와식 작가'로 알려져 있다는 소개 글을 보고 누워서 글을 쓴다는 것에 신기하기도 하고 새롭게 다가왔던 작가 중 하나인데, 와식 생활을 통해 어떤 글을 썼을지 기대감이 한껏 올라갔다.

 

이 책은 마르셀 프루스트의 대표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전 7편 전권을 책 한 권으로 만나볼 수 있는 구성으로, 스토리는 그의 의식에 따라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으며, 과거 속 잃어버린 시간과 감각을 일깨워 사물과 사람, 풍경 등을 세밀하고 디테일하게 묘사한 문체가 특징이다. 그리고 책의 뒷부분에서 부록처럼 추가되어 있는 작가와 작품에 대한 구성 및 소개 글을 담고 있는 것이 인상적인데, 이 작가와 작품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사실 처음 이 책의 첫 페이지를 읽고 조금, 아니 많이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어렵게 느껴지기도 했다. 특정 사물이나 생각, 상황적 묘사가 적나라한 것 이상으로 디테일하게 서술되어 있어, 상황 자체를 파악하기 보다 문체를 쫓아가기 바빴기 때문이다. 마치 물속에서 오랫동안 숨을 참고 버티고 있는 형상으로 글귀를 따라가게 되는 느낌이라 어디에서 끊어야 할지, 어디에서 숨을 쉬어야 할지 난감한 상황에 도래했었다.

 

그래서 작가와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잠시 멈춤의 시간을 가지고 뒤편을 먼저 확인하게 되었는데, 뒤편에 잘 정리되어 있던 작가와 작품의 설명 덕에 한결 어려움을 덜 수 있었다. 더불어 추가적으로 필요하다고 느껴지는 부분은 유튜브와 검색 등을 통해 확인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서평을 쓰기 위해 자료를 정리하면서도 여러모로 고민을 많이 했다. 일반적인 문학작품들과는 괴가 달라, 줄거리를 서술하거나 내용을 담기는 어렵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새삼 왜 마르셀 프루스트의 이 소설을 20세기 소설 중 질적, 양적으로 최고로 평가하는지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더불어 만약 누군가 나에게 어떤 상황이나 생각들을 마르셀 프루스트처럼 서술해 보라고 하면 과연 할 수 있을까 잠시 생각해 봤는데, 절대 그처럼 표현할 수는 없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단어나 어휘, 문장력, 표현력을 이처럼 기하급수적으로 불릴 수도 없을뿐더러, 꼬리에 꼬리를 무는 표현력들은 결코 아무나 할 수 없는 작업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든 그가 죽기 직전까지 누워서 쓴 이 귀하디 귀한 작품을 나와 같이 어려움을 겪는 독자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나름대로 열심히 기록해 보고자 한다.

 

이 작품은 소설을 읽기에 앞서 작가와 그의 배경을 먼저 살펴보는 것이 큰 도움이 되는데, 소설이지만 소설 같지 않은 서술 방식 덕에 일반 소설처럼 무턱대로 접근하다가는 상황 파악은 고사하고 그의 문체에 갇혀 허우적대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으니, 그의 삶을 먼저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다.

 

개인적으로는 그의 삶과 이 소설이 크게 동떨어지지 않다고 느꼈는데, 그의 성장과정에서 비롯된 사상이나 집안 배경, 과거의 기억들에서 비롯된 의식의 흐름을 담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간단히 그의 가계도를 정리해 보았다.

 

 

프루스트 가문의 '아드리앙 프루스트'와 베유 가문의 '잔 베유'가 사랑으로 맺어지면서 프랑스 최악의 시기에 첫째 아들 마르셀 프루스트가 태어나게 된다. 아버지 아드리앙 프루스트가 의학 박사로 콜레라를 차단하는데 성공해서 출세했고, 외가의 외할아버지 역시 유복한 주식 중개인이라 경제적으로는 어렵지 않게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두 가문의 분위기와 상반된 환경은 마르셀을 정신적으로 혼란함과 성숙함의 양가감정을 들게 만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토착적이면서도 보수적인 아버지 쪽과 유태계 프랑스 부르주아의 다정한 어머니 쪽 사이에서 실질적으로는 평생 외가 쪽을 의지처로 삼아 살았다고 하니 여러 면에서 불협화음이 일어났을 것은 자명해 보인다. 그래서인지 그는 세상에서 어머니를 가장 사랑했으며, 가장 비참한 일은 어머니와 떨어지는 것이라고 말할 만큼 약간의 철부지 성향도 보인다.

 

이 책의 제1편 <스완네 집 쪽으로>으로를 읽다 보면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묘사에서도 이러한 특성이 드러나는데, 보수적이고 위압적인 아버지의 특성과 아들을 보듬어 주며 잠자기 전 키스를 해주는 다정한 어머니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와 더불어 마르셀이 얼마나 엄마의 사랑을 갈구하는지, 잠자기 전 키스를 꼭 받고 싶어 벌이는 에피소드는 소설이라기보다 현실감을 강하게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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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있다가 어머니가 주무시러 올라올 때 내가 복도에 가서 서 있기라도 한다면, 그리고 복도에서 어머니에게 또 한 번 저녁 인사를 하기 위하여 그대로 일어나 있는 것을 어머니가 보기라도 한다면, 집안 사람들은 이제는 나를 집에 그냥 두지 않을 것이다. 내일 나를 학교의 기숙사로 보낼 것이다. 그건 확실하다. 하지만 좋다! 설혹 5분 후에 창 너머로 이 몸을 던지지 않으면 안 될지언정, 역시 그렇게 하는 편이 좋다. 내가 지금 바라는 것은 어머니다. 어머니에게 저녁 인사를 하는 거다. 이 욕망을 실현시켜 주는 길에 나는 너무나 깊이 들어갔다. 이제는 되돌아올 수 없다.

3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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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부터 몸이 좋지 않아 병약했고, 그래서인지 예민했으며, 응석 부리는 애정으로 늘 어머니의 사랑을 갈구했다. 이만큼 그에 대해 파악하고 보니 왜 그가 '와식 작가'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가 짐작이 가는 바다.

 

그렇게 일평생 늙어가는 어머니 품에서 서른 살이 넘도록 빈둥거리며 응석받이로 산 그가 자신의 요양을 위해 어머니와 함께 요양지 에비앙에 갔을 때 어머니가 심한 요독증으로 발작 증상을 일으키면서 남동생 로베르가 어머니를 파리로 모셔가게 되고,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사망하게 되면서 그의 시간은 멈춰버린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마침내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하면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집필에 몰두하기 시작한다. 마치 죽기 전에 이 작품을 끝마쳐야 하는 게 소명이라도 되는 것처럼. 몸져누운 상태에서도 원고를 추고하고 가필하고 손질하면서 병약한 몸을 돌보지도 않고 그는 끝끝내 이 작품의 원고를 마무리 짓고, 폐의 종양이 터져 동생의 품에서 "엄마"라는 마지막 말을 남긴 채 눈을 감게 된다. 

 

어쩌면 이 작품은 그의 생에 최초이자 최고로 자신의 의지를 모두 다 바친 인생을 투영한 작품일지도 모르겠다. 무의식과 의식 너머 '나'를 담아 공간과 시간을 뛰어넘어 머릿속에 그려지는 모든 것을 탈탈 털어 쓰고 또 썼을 것이다. 그가 쓴 이 7편의 소설 히스토리를 살펴보다 보면, 처음 소설의 내용과는 다르게 점점 기하급수적으로 내용이 덧붙여져 불어났다고 하는데, 어쩌면 죽음을 앞둔 그가 가슴에 품고 있는 모든 삶과 생각을 다 담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어쩐지 병중에 누워서 막힘없이 술술 써 내려갔을 그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져 복잡한 감정이 인다.

 

1편을 쓰고 어떤 출판사에서도 출간을 해주지 않아 첫 출간을 자비로 진행했던 그. 다행히 큰 성공을 거두면서 유명 인사가 되지만, 그 영광을 오래 누리지도 못하고 생을 마감한 마르셀 프루스트. 오랜 시간 자신의 삶 깊숙이 숨겨져 있던 잃어버린 과거의 기억들을 하나둘 꺼내 보이며 무의식의 기억을 다듬고, 써 내려가며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픽션(허구)을 빌어 끊임없이 자신의 생각과 기억들을 되짚어 기록하고 되새기며 잊힌 그날의 사고, 추억, 느낌들을 하나하나 찾아가는 여정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을 것이다. 살면서 놓쳐버린 그때 그날의 그것을 적확하게 눈에 그리듯 이처럼 완벽하게 표현하는 것은 죽음을 앞둔 그의 더없이 소중하고 경건한 의식행위 중 하나였을지도 모르겠다.

 

그가 써 내려간 7편의 소설은 그의 내면의 심리가 버무려져 하나하나 의식의 흐름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형태로 전개된다. 그래서 그 어떤 표현도 단순하지 않다. 복잡하지만 가만히 지켜보면 저마다의 색이 하나씩 덧입혀져 색을 띠고 형체를 만들어간다. 그만의 세계가 구축되는 것이다. 성실하게 쌓은 그가 그린 세계 속에서 나만의 잃어버린 시간을 함께 발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순서대로 따르지 않아도 좋다. 손이 가는 페이지부터 시작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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