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지 존스 앤 더 식스
테일러 젠킨스 리드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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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소설임을 알고 읽기 시작했는데, 읽다보면 자꾸만 저자의 설정에 말려들어 실화로 생각하게 되는 이상한 소설인 <데이지 존스 앤 더 식스>. 그래서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이 소설에 등장하는 밴드 이름, 등장 인물들의 이름, 노래등을 확인하려 포털사이트나 유튜브를 검색하게 된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책에서 읽은 노래나 밴드, 등장인물들에 대한 정보는 구할 수 없다. 앞서 말한대로 허구로 만들어진 픽션이기 때문이다. 아마존 프라임 드라마로도 제작되어 이 정보가 간혹 노출되기는 하나 진짜 원하는 정보는 절대 구할 수 없다.

 

이는 이 책을 쓴 작가의 의도이기도 한데, 초반 작가노트부터 풍기는 실화같은 분위기와 인터뷰 형태를 빌어 실존하는 인물들의 이야기처럼 느껴지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500페이지가 넘는 꽤 두터운 분량을 자랑함에도 순식간에 매료되어 이야기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수없이 상충되는 감정속에서 부딪히며 성장해 나가는 이들의 음악이야기와 휴머니즘을 통해 저자가 그리고자 했던 사유를 찾아보길 바란다. 정상의 자리에서 그들은 왜 갑자기 해체를 선언한 것인지, 뮤지션의 삶과 무대의 경계가 어떻게 모호해질 수 있는지, 오래된 상처를 노래하는 것이 어떻게 그 아픔을 새롭게 만들 수 있는지를 직접 확인해 보길 바란다.

 

이 소설의 구성은 이야기의 밑밥이 되는 작가노트를 필두로, 각자 데이지 존스, 던 브라더스로 음악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마침내 <데이지 존스 앤 더 식스>로 함께 밴드를 결성하면서 최고의 순간을 맛본 후 돌연 해체를 선언하게 된 순간까지 그려진다.

 

후반부에는 깜짝 선물이 기다리고 있는데, 소설에 심취해 있느라 미처 깨닫지 못한 순간 저자가 깜짝 등장하여 놀라운 사실 하나를 전해준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이야기가 끝난 순간 옮긴이의 말을 통해 우리는 현실에 당도할 수 있다.

 

장담하건데, 이 소설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들은 이 소설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모호해져 흠뻑 빠져들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내 나처럼 검색이나 유튜브를 통해 검색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되짚어보게 될것이다. 

 

기회만 생기면 약에 손대는 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던 시절, 마약과 술에 찌든 삶은 어찌보면 너무나 당연했다. 괴로워서, 즐거워서, 슬퍼서 등등 여러 이유로 약은 가까이 하기에 너무 좋은 친구였다. 그래서 더 혼란했고 더 열정을 불태울 수 있었다.

 

이와중에 록 음악에 푹 빠진 이들 '데이지 존스'와 '던 브라더스'는 자신의 이야기를 음악으로 마음껏 표출하기를 원했다. 그러던 중 그들은 어떤 사유로 <데이지 존스 앤 더 식스>라는 이름으로 함께 하게 되고, 마침내 정상의 자리에 서게 되는데. 이들이 왜 갑자기 해체를 선언하게 되는지, 또 이 이후의 이야기는 어떻게 전개되는지 록 음악 씬의 한가운데로 함께 들어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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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나는 1970년대 록밴드 '데이지 존스 앤 더 식스'가 대중적 인기를 얻은 과정을 일화 중심에서 명확히 그려내고자 한다.

(...)

데이지 존스 앤 더 식스의 멤버 모두가 참여해 밴드의 역사를 이야기한 최초이자 유일한 기록물이라는 데서 이 책의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8~9페이지 작가노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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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에는 데이지 존스와 던 브라더스가 자라온 환경 및 그들이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담겨있는데, 풍족함 속에 결핍이 있던 데이지 존스와 넉넉하진 않았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선 던 브라더스의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

 

 


<데이지 존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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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지 존스는 1951년에 태어나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 할리우드 힐스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영국의 저명한 화가인 프랭크 존스이고, 어머니는 프랑스 모델 잔 르페브르다. 1960년대 말, 선셋 스트랩에서 사춘기를 보내면서 데이지는 부모의 유명세에서 벗어나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1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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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돈을 다 가진 집에서 태어났으니 원하는 건-예술가든 약물이든 클럽이든-다 가질 수 있었어요. 물 쓰듯 써도 바닥날 일이 없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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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데이지 곁엔 아무도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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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지 아버지도 어머니도 각자 자기만의 세상에 빠져 지내느라 딸은 내팽개쳐 놓다시피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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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아이 곁엔 진심으로 관심을 쏟아주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어요. 하물며 부모까지 그 모양이었으니 아이가 얼마나 큰 상처를 받았을지는 말할 필요도 없겠죠. 하지만 그런 성장 과정으로 말미암에서 아이콘이 된 것 아니겠어요?
(...)
데이지 존스는 뚜렷한 트라우마를 품고 있으면서 고전적으로 아름다운 인물의 표본이었어요.

14~1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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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외모, 재능 등 어느것하나 부족함 없이 모든 것을 손에 쥐고 태어났지만, 그녀에게도 유일한 결핍은 존재했는데 그건 바로 사랑에 대한 결핍이었다. 오히려 가진것이 많았기에 그녀를 이용하려고 할지언정 진심으로 그녀를 위해주고 관심을 쏟아주는 이는 단 한명도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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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새벽 서너 시까지 거기 있었는데, 밤늦게까지 논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네요. 갑자기 살아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어떤 세계의 일부가 된 느낌이었어요.

1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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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어느 클럽을 드나들게 되면서 로큰롤과 사랑에 빠지게 되고 싱어송라이터에 도전해 보지만 사람들은 그녀의 외모를 탐내고 재능을 훔칠지언정 그녀의 음악을 제대로 알아봐주는 이는 아무도 없다. 거기에서 오는 절망과 좌절은 끝도 없는 마약과 약물에 대한 의존으로 변질되고, 이로 인해 한없이 망가져 가는 그녀의 모습은 어쩐지 위태롭게 다가온다.

 

이때 데이지에게 유일한 친구이자 최고의 친구를 만나게 되는데 그게 바로 시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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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지: 이 세상에 날 위해 뭐든 해줄 사람, 내가 뭐든 해주고 싶은 사람이 한 명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 그런 때만 느낄 수 있는 평온함이 있어요. 시몬은 내게 그런 평온함을 느끼게 해준 최초의 사람이었어요.

2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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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 데이지에게 재능을 발휘하라고 격한 사람은 나밖에 없었어요. 다른 사람들은 데이지가 가진 것을 어떻게든 빼먹으려고 안달이었죠.

2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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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함 속에 불안전함을 품고 있던 데이지는 그래서인지 어릴때부터 혼자 습득하고 혼자 노는법을 깨우쳤으며, 일찍이 불면도 겪고 있었다. 열네 살때 처음 담배를 피우고, 밤늦게까지 클럽을 드나들었으며, 가출을 하는 등 외롭고 결핍된 삶을 살았다.

 

부모님이 자기들만의 세상에 사는 동안 혼자 밤늦게까지 엄마의 소설책을 읽는것이 버릇이 되면서 꼬맹이 시절부터 불면을 앓았고 그게 습관으로 굳어져 나중엔 약에 의지하는 지경에 이른다.

 

열일곱살에는 사는 목적이 있는지 자문하게 되면서 다른 사람의 신세를 지고, 집을 떠나 떠돌이처럼 사는 생활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손내밀면 무엇이든 가질 수 있었던 부유하고 아름다웠던 소녀가 부모의 관심에서 멀어지면서 채울 수 없는 공허함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하게 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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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지: 누군가의 뮤즈가 되는 것엔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었어요. 난 뮤즈가 아니에요. 내가 그 위대한 누군가지. 개똥 같은 이야기는 이걸로 끝.

2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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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때부터 혼자 모든것을 감내하며 살아서인지 그녀는 매우 독립적이었고 누군가의 지시를 받거나 밑에 자리하는걸 그다지 좋아하진 않았던 듯 하다. 그저 스스로 군림하고 나답게 사는것을 더 즐겨했던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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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 데이지를 만났을 때 내가 언니였고, 더 똑똑했고, 더 세련됐었어요. 하지만 1970년대 초반, 데이지는 '잇걸'이 되어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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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그러한 당당하고 아름다운 그녀의 모습은 모든 여성들의 선망이 되었고, 마침내 '잇걸'로 자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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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지: 난 곡 쓰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어요. 노래를 부르는 건 괜찮지만 무대 위에서 다른 사람의 노래를 부르는 꼭두각시는 되고 싶지 않았어요. 내가 다 하고 싶었어요. 내가 쓴 곡을 부르고 싶었어요.

 

시몬: 데이지는 거저 얻은 건 전부 다 무시했어요. 돈, 외모, 자기 목소리까지. 사람들이 자기 말을 경청해 주길 바랐어요.

7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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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저 얻은 것에 환멸을 느끼며 자신의 노래를 부르기를 간절히 원했던 데이지는 어느날 테디 프라이스를 만나게 되면서 운명이 바뀌게 된다.

 

 


<'더 식스'의 시초 <던 브라더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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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식스'의 시초는 1960년대 중반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에서 결성된 블루스 록밴드 '던 브라더스'였다. 빌리 던과 그레이엄 던 형제는 1954년 아버지 윌리엄 던 시니어가 떠난 후 홀어머니 말렌 던 밑에서 컸다.

3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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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지와는 다르게 던 형제는 가난한 가정에서 자라난다. 빌리가 일곱 살, 그레이엄이 다섯 살때 아버지가 집을 나가면서 홀어머니 밑에서 컸는데, 아버지가 떠나면서 남긴 낡은 실버톤 기타가 어찌보면 '던 브라더스'가 만들어진 계기라고도 할 수 있다.

 

이들은 이 기타를 가르쳐줄 사람이 없어 독학으로 배우게 되고, 좀더 커선 수업이 끝난 뒤에 늦게까지 남아 합창실의 피아노를 치면서 습득하게 된다. 그러다 빌리가 열다섯 살쯤 엄마가 돈을 모아 그레이엄과 빌리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중고 스트랫(전자 기타 스트라토캐스터)을 사주면서 스트랫은 그레이엄이 갖고, 실버톤은 빌리가 갖게 되면서 곡을 쓰기 시작했고 거기서 모든것이 시작된다.

 

이때 빌리는 곡 만드는 일에 푹 빠졌고 특히 노랫말에 엄청 공을 들이게 된다. 그렇게 형제가 '던 브라더스'로 활동하다가 1967년 십대인 형제는 밴드를 결성하기 위해 드러머에 워런 로즈를, 베이시스트에 피트 러빙을, 리듬 기타리스트에 척 윌리엄스를 영입하게 된다.

 

빌리는 애초에 프런트맨이 되고 싶었는데, 5인조가 갖춰지면서 포지션을 바꿔 보컬을 맡게 된다. 이때부터 이들은 죽어라 연습해서 하루가 다르게 실력이 늘었는데 여러 공연에 초대되면서 인기를 얻기 시작한다.

 

빌리가 열아홉살에 한 결혼식 피로연 연주일이 들어오면서 거기서 호텔 칵테일 바에 있던  한 웨이스트리를 보고 첫 눈에 반하게 되면서 교제를 하게 되는데 그녀가 바로 빌리 던의 아내인 커밀라 던이다.

 

그렇게 조금씩 상승세를 타던 이들에게도 첫 시련이 다가오게 되는데 1969년 12월 1일 미국에 선발 징병제가 도입되면서 척 윌리엄스가 징집 영장을 받게 되면서부터다. 이때 척의 빈자리를 임시로 피트의 동생인 에디 러빙에게 맡기게 되는데, 척이 캄보디아로 징집 된지 6개월도 안되서 사망하게 되면서 에디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그리고 에디 러빙과 함께 키보디스트로 캐런 캐런을 영입하게 되면서 그렇게 이들은 6인조로 굳어지게 되고, '던 브라더스'에서 밴드명은 마침내 '더 식스'로 바꾸게 된다.

 


빌리 던(더 식스의 리드 싱어)
그레이엄 던(더 식스의 리드 기타리스트)
워런 로즈(더 식스의 드러머)
피트 러빙(더 식스의 베이시스트)
에디 러빙(더 식스의 리듬 기타)
캐런 캐런(더 식스의 키보디스트)

 

그렇게 이들은 빌리 던이 쓰는 끝내주는 노래로 마침내 대중들에게 인정을 받기 시작하면서 다양한 곳에서 공연을 하고 인기가 급상승하기 시작한다.

 

이때 멤버들은 인기에 힘입어 팬과 많은 여성들이 주변에 들끓었고, 공연후에는 늘 여자, 술, 약에 취해 지냈는데 이미 결혼한 빌리 역시 약에 취해 이미 너무 망가진 상태였다. 그래서 커밀라가 첫 딸 줄리아를 출산할때도 그런 몰골로 함께 할 수 없었던 빌리는 곁에 있어 주지 못한다.

 

이 일로 크게 혼쭐이 난 빌리는 재활원에서 약물 중독 치료를 받고 마침내 가정으로 돌아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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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는 1974년 겨울에 재활원에 들어갔다. 더 식스는 투어 일정에서 남은 두어 차례의 공연을 취소했다.
(...)
빌리 던은 재활원에서 60일을 보낸 후에야 비로소 딸 줄리아를 만났다.

11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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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을 계기로 빌리는 이후 가정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을 기울이게 되는데, 스스로 평생 가정에 충실할것과 자신의 삶을 딸과 커밀라에게 바칠것을 마음속으로 맹세한다. 그래서 술과 약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무던히 애를 쓰고, 공연이 끝난 직후에는 무조건 집으로 돌아가 술과 마약의 유혹에서도 멀어지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가끔 위태로울때는 미리 알아챈 아내 커밀라가 공연에 함께 동행해주기도 한다.

 

그렇게 빌리는 술과 약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가정을 지키기 위해 꽤 오랜시간 노력하지만 어떤 일의 계기로 이것이 한 순간에 무너지는 때를 맞게 되는데, 이는 한참 뒤의 일이다.

 

 


<데이지 존스 앤 더 식스의 이야기>

 

빌리를 주축으로 구성된 '더 식스' 밴드는 그렇게 승승장구하며 지속적으로 인기를 이어 나간다. 빌리는 계속해서 끝내주는 음악을 만들어냈고, 가사의 내용은 늘 아내 커밀라에게 바치는 노랫말이 많았다. 재활원을 다녀온 이후 철저히 가정을 위해 살겠다는 다짐을 이행함과 동시에 속죄하는 마음을 담았던 것이다.

 

새 앨범에 수록될 <허니콤>도 그런 곡중에 하나였는데, 말랑한 사랑노래지만 곡이 워낙 좋아 대표곡으로 밀 예정이었다. 그러던 중 테디가 이곡을 듀엣곡으로 만들자고 제안하게 되면서 한 때 멤버들간에 혼란이 야기되기도 한다. 록밴드라는 이미지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의견이 야기됐지만 결국 듀엣곡으로 진행하기에 이른다.

 

이때 듀엣을 할 멤버로 같은 레이블 소속인 데이지가 선정되면서 이들의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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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지: 빌리가 노래를 진짜 잘했어요. 진한 호소력이 느껴졌어요. 듣고만 있어도 애특한 마음이 들었어요. 시련을 뚫고 나온 남자의 목소리라고 생각했어요.
(...)
내 목소리가 세련된 신상 청바지라면 빌리의 목소리는 오랜 세월 간직한 청바지 같았어요.우리가 서로의 빈 곳을 채워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스튜디오에 가는 날 얼마나 흥분했는지 몰라요. 내가 비로소 쓸모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14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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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만남 전 서로에 대한 평가는 생각보다 후했다. 좋은 이미지, 설렘으로 기대감에 한껏 부풀었다. 하지만 이것은 아주 짧은 순간에 그쳤다. 만남이후 이들은 늘 으르렁 거렸으며 좋다 나쁘다를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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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지: (빌리 던이란 남자는 데님이 아니면 셔츠를 안 입나?)

빌리: (대책 없는 여자네. 신발 좀 신으라고.)

15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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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들의 관계나 감정과는 다르게 이 둘의 만남이 대외적으로는 대단한 반향을 일으킨다. 그리고 더 식스라는 밴드에도 다양한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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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 해리스(록 음악 평론가): <허니콤>에서 빌리와 데이지 각자의 존재감과 미학적 긴장감은 이후 데이지 존스 앤 더 식스가 완성한 멋진 하모니의 출발점이었습니다.
(...)
그들은 호소력 넘치는 창법으로 '콜 앤드 리스폰스' 노래하면서 낭만적이고 이상적이지만 불확실한 미래를 이야기합니다.

15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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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둘 역시 서로 으르렁 거리면서도 이런 주변의 반응을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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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지: 내가 빌리를 나쁜 새끼라고 생각한 건 중요하지 않았어요. 함께 노래할 때 그런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한 가지 점에서는 나와 통하는 게 있다는 뜻이에요. 신경에 거슬리는데도 자꾸 끌리는 그런 면?
빌리는 가시 같았어요. 더도 덜도 말고 꼭 가시 같았죠.

16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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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시작된 그들의 동행은 마침내 'feat.데이지'에서 '데이지 존스 앤 더 식스'라는 밴드명으로 바꾸기에 이르는데, 다음 새 앨범을 함께 제작하고 활동하기로 한 것이다.

 

이때 데이지는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동등한 권한과 결정권한을 요구했고 이로써 단독으로 모든 결정권한을 가졌던 빌리와 더 식스에게도 변화의 바람이 찾아오게 된다. 새 앨범에 수록된 곡들은 빌리와 데이지가 함께 만들었으며, 다른 팀원들도 적극적으로 앨범에 참여하게 되면서 각자의 개성과 능력을 끌어올릴 수 있었고, 마침내 함께 발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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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지: 빌리는 진정으로 이해했다고 확신했어요. 그도 날 이해했고요. 이런 일은, 그러니까 한 사람과 통한다는 건 불을 가지고 노는 것과 같아요. 이해받는 건 기분 좋은 일이에요. 어떤 사람과 손발이 잘 맞는다고 느끼면, 누구도 넘보지 못할 경지에 오른 것 같죠.

27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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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음악적 교감과 능력은 서로를 감화시키고 더 나은 곡을 만들게 만들었고, 때로는 싸우고 부딪히며 성장해 나가게 된다. 그렇게 어느덧 앨범이 완성단계에 이르러 문득 어떤 사실을 깨달은 빌리는 다짜고짜 데이지를 밴드에서 내보내려 하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이때쯤 커밀라도 그런 빌리의 마음을 눈치채게 되지만, 데이지, 빌리, 커밀라 그 누구도 진실에 대해 함구하며 꿋꿋이 이 위태로운 관계를 이어나간다. 어느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었던 데이지는 이때쯤 뜬금없이 휴가지에서 만난 이탈리아 왕자라고 말하는 사기꾼과 덜컥 결혼하게 되고 더욱더 약에 취해가기 시작한다.

 

예상대로 그들이 함께 만든 <오로라> 앨범은 대박을 치게 되고 이들은 마침내 정상의 자리에 서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데이지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한 자신의 처지를 깨닫게 되면서 자신을 이용만 하는 니콜과 헤어지고 공연에 집중하려 노력한다. 그리고 약물과도 멀어질 결심을 하게 되면서 빌리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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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지: 처음 약에 탐닉하는 이유는 감정을 무디게 하고, 칼끝 같은 감정에서 도망치려는 건데, 얼마 안 가서 약 때문에 오히려 삶이 더 힘들어진다는 것, 약이야말로 모든 감정을 예리하게 고조시키는 것임을 깨닫게 되니까요. 약 때문에 실연의 아픔이 더 고통스러워지고, 즐거운 시간은 더 짜릿해져요. 결국 약발이 떨어져 탈진하고 우울해지면 온전한 정신이라는 것에서 도망치려 했던 이유에 의문을 품게 되는 건 시간문제예요.

43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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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테디가 심장마비로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면서 이들의 불안했던 관계는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많은 사람들에게 많은 의미가 있는 사람이었던 테디였기에 그의 죽음의 무게는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을 불러온다.

 

이 일을 계기로 빌리는 통제불능상태에 빠지게 되고, '데이지 존스 앤 더 식스'는 물론 '더 식스'마저 해체되고 만다. 데이지는 커밀라와의 대화를 통해 마침내 자신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깨닫게 되고 이로써 우리가 앞서 궁금해한 정상에 선 밴드의 해체 이유를 확인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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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지: "벌써 자신의 밑바닥을 보지 말아요. 데이지, 당신이 미처 깨닫지 못해서 그렇지, 당신에겐 무궁무진한 자산이 있어요." 그 말이 가슴에 그대로 박혔어요. 아직 내 삶이 결정된 게 아니라는 것이. 내게 아직 희망이 있다는 것이. 커밀라 던 같은 여자가 날 그렇게 생각한다는 사실이...

커밀라 던은 날 구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거예요.

492~49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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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후 이들은 뿔뿔이 흩어져 각자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데, 그들 각자가 염원했던 것, 바라던 삶의 모습을 후반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시작점은 달랐지만 록밴드 음악에 대한 열정과 사랑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던 이들의 이야기 속에는 사랑, 이별, 환희, 슬픔, 미련, 분노, 앙심, 부인, 포용과 성장등 수많은 이야기가 가득하다.

 

독특한 것은 멤버 전원이 참여한 인터뷰 형태로 서술된 점을 꼽을 수 있는데, 전지적 작가시점과는 또다른 묘미와 재미를 발견할 수 있었다. 디테일한 감정선과 상황묘사를 통해 해당 시점에 독자가 함께하고 있는 현실감까지 느낄 수 있었는데, 어쩌면 이러한 서술방식 덕분에 더 실화같은 느낌이 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저자는 이러한 현실감 돋는 인터뷰 형태의 이야기 말미에, 독자를 놀라게 할 상황과 트릭을 하나 설치해 놓았는데, 이는 직접 책을 통해서 확인해 보기 바란다. 딱 한장면에 직접 저자가 투입된 장면에서 이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다.

 

상상과 현실 그 어디쯤에서 헤매던 독자가 이제 현실로 돌아올 시간이다. 인터뷰를 통해 멤버 전원의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삶을 모두 살펴봤다면, 이후에는 그들이 함께 만들었던 최고의 앨범 <오로라>에 담긴 노래와 가사를 음미할 시간이다. 이 가사들을 하나하나 곱씹다보면 어쩐지 음악사이트 어딘가에 존재할것만 같은 생각이 드는건 비단 나뿐일까?

 

여기에 또 하나 독자를 위한 저자의 선물을 발견할 수 있는데, 바로 커밀라의 메세지다. 딸들을 통해 전하는 통쾌한 복수를 담은 의미심장한 메세지는 여러 생각을 자아내게 한다.

 

이제 정말 마지막의 마지막에 다다랐다. 저자의 '감사의 말'을 지나 '옮긴이의 말'을 통해 제대로 땅에 발을 내디딜 시간이다. 여기에서는 진짜 이 책의 모티브가 된 밴드에 관한 이야기와 이 책이 탄생하게 된 비화가 담겨있다.

 

이 책을 읽으며 그토록 찾아 헤맸던 진짜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비로소 발견하게 된 것이다. 우연히 고릿적 록밴드 플리트우드 맥의 재결성 기념 공연 무대를 보게 되면서 열세 살 여자아이는 상상에 흥미로운 통찰의 씨앗을 뿌리게 된다.

 

바로 <산사태>를 부르면서 스티비를 바라보던 린지의 모습을 보며 '아, 저 둘은 사랑하는 사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비로소 시작된 것이다. 이것이 후에 로큰롤에 관한 책을 쓰겠다고 결심했을 때 비로소 단초가 되었고, 그렇게 <데이지 존스 앤더 식스>는 첫 싹을 틔우게 된다.

 

'옮긴이의 말'을 정독하다보면 비로소 <데이지 존스 앤 더 식스>의 큰 줄거리가 실제 닉스와 버킹엄 커플의 이야기와 굉장히 비슷하다는 점을 발견하게 되는데, 특히 데이지가 합류한 이후 데이지와 빌리 사이에서 벌어지는 미묘한 감정변화와 레코딩 작업이 바로 그것이다.

 

밀어내지만 서로 끌어당기는 상황속에서 협업이 이루어지는 상황적 묘사는 다양한 양가감정을 불러오고 이는 비즈니스와 예술, 책무와 매혹, 반목과 공감의 경계를 흐릿해지게 만든다. 서로의 매력에 감화되었기에 끌렸고, 끌렸기에 노래는 한층 빛을 발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둘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

 

이 모든것을 알고 있었기에 이들은 서로 자신을 기만하는 쪽을 택하면서 부인, 거짓말, 둘러대기를 동원하며 진실과 독대하기를 미룬다. 실제로 플리트우드 맥도 그러했다고 하는데, 이 소설에서 그려지는 수많은 갈등, 반복, 공감, 염원, 희망, 좌절, 분노, 저주, 깨달음, 수용, 이별, 회고 등의 감정들도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오래전 한참 인기를 끌었던 록음악 시절을 현실로 불러들여와 다시 즐길 수 있어 기분좋은 시간이었다. 비록 얼굴을 찌푸리게 하는 술과 마약 중독들의 상황은 불편하게 다가왔지만, 그만큼 더 강력한 긴장감을 불러왔던 것도 사실이다.

 

음악이야기가 그렇듯 이 소설도 음악을 하는 이들에 대한 열정과 사랑, 성장담을 담고 있지만, 이 소설이 유독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허구인듯 사실인듯 애매모호한 상황에 독자를 뚝 떨어뜨려놓는다는 점을 꼽을 수 있을것 같다.

 

모든 상황을 인터뷰 형태를 통해 전달하면서 전해지는 디테일한 묘사는 나도 모르는 새 흠뻑 빠져들게 만든다. 또 중간중간 작가가 만들어 둔 트릭은 생각치 못한 재미를 더해준다. 예상치 못한 전개도 어찌보면 또하나의 매력포인트라고 말할 수 있을것 같다.

 

보통 소설에서 전개되는, 혹은 기대하게 되는 그런 전개는 적어도 이 소설의 텍스트안에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빌리는 가정을 지켰고, 캐런은 자신의 삶을 선택했다. 데이지도 자신만의 멋진 삶을 만들어냈다. 가장 뜨거웠던 시절, 이제는 추억으로만 남은 그때 그 시절의 이야기이기에 어쩌면 우리는 지금 더 아름답게 기억할 수 있는것은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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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을 뒤엎는 돈의 심리학 - 돈을 보는 관점이 그 사람의 인생을 좌우한다
저우신위에 지음, 박진희 옮김 / 미디어숲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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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사회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돈! 돈이 무엇이길래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돈에 울고 웃으며 사는 걸까? 이 책은 다양한 조사와 실험을 바탕으로 돈이 사람들의 심리를 어떻게 자극하는지, 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담고 있는데, 이것을 바탕으로 돈의 심리학에 대해 제대로 확인해 볼 수 있었다.

 

인문학과 과학적 분석 기법으로 확인한 돈의 독심술에는 예상치를 벗어난 새로운 관점도 확인할 수 있었는데, 미묘한 한 끗 차이가 돈과 나의 관계에 있어 주인이 되기도 하고, 노예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나의 상황(소비자인지, 판매자인지)에 따라 돈의 심리를 활용해 소비전략을 공고히 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도 만나볼 수 있었다.

 

성별에 따라 달리 나타나는 소비성향, 돈의 치유 마법, 돈과 권력에 따라 외모조차 달리 보이게 보이는 마법 등 혹 할만한 새로운 심리도 확인할 수 있었다. 돈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 돈이 인간의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파악해 보고 돈이 조종하는 심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부를 끌어들일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 보면 좋겠다.

 

또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의 심리와 인성까지도 확인해 볼 수 있는 방법들이 가득하니 이를 통해 정확한 메커니즘을 파악해 두는 것도 추천해 본다. 그동안 돈에 대해 잘못 알고 있던 부분이 있다면 인식을 바로잡고 돈으로 연결된 사회 네트워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돈의 심리에 대해 파고들어 보자!

 

이 책은 돈이 인간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총 4개의 장으로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돈과 인간 심리, 돈과 사회생활, 돈과 소비 행위, 돈과 행복로 나누어 담고 있다. 각 내용들은 조사와 연구를 바탕으로 입증하는 형태를 띠고 있으며 이를 통해 인간이 돈에 대해 느끼는 행동 범주나 심리의 변화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어떤 결과는 예상했던 결과에 확증을 지어주기도 하고, 또 어떤 것은 놀라운 결과를 들려주기도 한다. 때로는 부정적인 면모가 보이기도 하는데, 오히려 이를 적절히 활용하면 부를 창출하고 돈의 주인이 될 수 있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

 

이 책을 통해 자신의 심리를 파악하는 것은 물론 타인의 심리까지 파악하여 돈의 주인이자 곧 나 자신의 주인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찾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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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별로 알아보는 나와 돈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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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돈과 과연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바로 그 관계가 내가 돈의 주인인지, 노예인지를 결정하는데 돈 쓰는 방식 및 돈과의 관계를 종합해서 아래 5가지 유형으로 어디에 해당하는지 확인해 보자.

 

■안절부절형
돈을 뜨거운 솥 안의 개미처럼 대한다. 이런 유형이 돈을 대하는 태도는 '아무것도 안 하기보단 뭐라도 하는 것'이다. 그들은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나 간다'라는 말은 절대 믿지 않는다. 하지만 이처럼 모든 일에 일일이 반응하는 것은 외부 환경의 영향을 받기 쉬운 상태로 만든다.

 

■햄스터형
"놓치지 않을 거예요."
이런 유형이 돈을 대하는 태도로, 먹이를 쟁여 놓는 햄스터처럼 현금 뭉치나 골드 바를 집에 쌓아 두는 행위 또한 여기서 비롯된다. 보이는 곳에 돈을 두어야만 안심이 되기 때문이다.

 

■행복형
이런 유형은 끊임없이 '소비'하며 행복해한다. 다른 물건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과 새로운 목표는 이내 다시금 흥분감을 일으킨다. 그들은 기분이 안 좋을 때면 물건을 왕창 사는 것으로 자신의 감정을 치료하려고 한다.

 

■허세형
이런 유형은 돈을 술 마시듯 쓴다고 할 수 있다. 주로 남성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데, 기부할 때면 매우 큰 액수를 기부하며 동네방네 소문을 내고 경매할 때는 무조건 높게 불러 일단 차지하고 본다.

 

이런 행동은 타인의 존경과 관심을 받기 위해서 하는 행동일 수 있다. 따라서 주로 자기애가 강한 사람들이 이런 유형에 속한다.

 

■회피형
이런 유형의 사람은 타조처럼 얼굴을 모래에 묻는 한이 있어도 절대 거래 내역을 보려고 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당연히 뭐라도 하는 것보다 쉽고 간편하다. 이런 유형은 돈 관리 방법을 디폴트 값으로 정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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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돈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 지를 이해한다면, 돈에 휘둘리지 않고 더욱 잘 관리할 수 있을 것이다. 돈과 나의 관계를 알고 나면 사재기나 그로 인해 생긴 죄책감 등 건강하지 못한 행동을 미리 예방할 수 있다.

2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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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돈의 심리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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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상상력뿐만 아니라 시야를 좁힌다.
돈은 내 시야에서 타인을 지우고 마치 이 세상에 자신이 최고인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돈은 '본능'을 바꾸는 힘이 있고, 부자가 될수록 안하무인인 사람으로 만든다.

 

◑긍정적 태그가 달린 돈은 기꺼이 즐거움을 누리기 위한 목적으로 소비된다.
만약 반대의 경우인 부정적 태그의 돈이라면 도덕적으로 옳은 일이나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보탬이 되는 곳에 돈을 사용하는 것으로 긍정적 태그가 달리도록 돈 세탁을 할 수 있다. 이 방법을 통해 그 돈에 깃든 슬픔, 자괴감, 초조함 같은 부정적 감정을 씻어낼 수 있다.

 

◑돈과 심리적 거리가 멀면 더 모험적이게 된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위한 결정을 내릴 때 더 모험적이게 되는데, 이는 자기를 위한 결정을 내릴 때는 돈과의 심리적 거리가 가까워 손실 위험이 더욱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느껴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반면 타인을 위한 결정을 내릴 때는 돈과의 거리가 멀어지면서 손실 위험은 추상적이고 하나의 숫자에 불과한 것으로 느껴져 걱정할 여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즉 타인은 나와 같은 두려움을 느낄 거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이와 같은 심리가 적용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물질적 소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때보다 경험적 소비에 관한 대화를 나눌 때 더 즐거워하며 상대방을 더 좋게 평가한다.


이를 통해 특히 처음 만나는 사이나 데이트를 할 때 어떤 내용의 대화를 나눠야 하는지 참고할 수 있다. 여행이나 영화, 읽었던 책에 관한 이야기는 당신의 매력을 높일 것이다. 하지만 차나 옷과 같은 것들에 관한 이야기는 점수를 깎아 먹기 딱 좋은 화젯거리다.

 

◑돈을 대하는 방법

 

첫째, 돈을 돈으로만 생각하지 않는다.
돈은 마음을 표현하기에 가장 편리한 도구다. 돈은 사회적으로 약속된 교환 도구로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전달할 때도 쓰인다. 이때 중요한 것은 돈을 돈으로 보이지 않게 하는 무언가를 변신시키는 것인데, 이를테면 아름다운 꽃다발이나 맛있는 저녁식사 같은 것들로 변신시킬 수 있다.

 

둘째, 자동으로 돈을 관리하는 메커니즘을 만든다.
이를테면 부부간에 공동계좌를 만드는 형태를 취하는 것을 통해 굳이 돈에 관한 이야기를 꺼낼 필요가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돈은 인생의 각종 고통을 줄여주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돈은 사람을 보호해 주고 고통을 덜어주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그 효과를 본 사람들은 일종의 자유를 느낀다. 실제로 부자와 빈자들에 대한 조사를 통해 더 확실하게 확인해 볼 수 있었는데, 조사 결과 고통을 느끼는 정도는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보다 더 크게 나타났다.

 

◑돈은 사람들의 신념을 더 강력하게 만든다.
사람은 신념에 따라 행동한다. 그리고 그 신념은 곧 자기 자신이 되고 어떤 마음으로 살아갈지를 결정한다. 돈은 이러한 자기중심적 경향을 더 강력하게 만드는데, 이를테면 원래 성격이 좋지 않은 사람이었다면 돈은 그 사람의 성격을 더 망친다. 자기애가 넘치는 사람은 훨씬 더 넘치게 하고 심성이 착한 사람이라면 더 착한 사람으로 만들기도 한다.

 

◑돈은 남에게서 받은 상처를 치유하는 기능도 하지만 반대로 타인과의 관계를 망치기도 한다.
이는 돈을 가지고 있음으로써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개선하려는 노력 자체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은 마치 보호막처럼 돈이라는 함정을 멀리할 수 있게 해준다.
애정 결핍은 불안감을 낳는다. 그리고 불안감은 돈에 대한 욕구에 불을 지핀다. 하지만 충분한 사랑은 마치 모든 것을 막는 방패처럼 돈의 매력을 튕겨 낸다.

 

◑돈은 교환의 도구 말고도 그 자체로도 상징성이 크다.
그래서 그걸 떠올리기만 해도 실제로 그 힘을 가진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돈의 응원을 받으면 우리는 자신의 가치를 믿으며 자존감이 높아지면서 죽음에 관한 생각은 자연스레 멀어질 수 있다.

 

◑사람들은 '성공한' 사람들의 키를 그들의 '실제 키보다 큰 것'으로 예측한다.
이는 매우 흥미로운데, 실험을 통해 확인해 본 결과 직급이나 신분이 높아질수록 사람들의 예측치는 더 높아졌음을 확인해 볼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자신의 키가 실질적으로 작거나 유전적, 환경적으로 작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해도 능력을 기르면 타인의 상상 속 자신의 키가 커질 수 있음을 확인해 볼 수 있었다.

 

◑경제 불황기에 여성들이 화장품을 더 많이 사는 이유는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것'이다.
경제 불황기에 립스틱과 아이라이너, 새 옷들이 더 많이 팔리는 아이러니 현상은 바로 이와 같은 여성들의 심리가 반영된 것으로 심리학자들은 이와 같은 비합리적 현상에 대해 '립스틱 경제'라고 부른다.

 

경제 상황에 대한 스트레스는 화장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여성의 행동에서 유발하며 이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높이려는 경향을 보임을 확인해 볼 수 있었다.

 

◑기부에도 '뷰티 프리미엄'이 존재한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외적으로 더 나은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한다. 그래서 기부도 얼굴을 따지며 하기 마련인데, 이를 통해 생김새는 모든 문제에서 우위를 차지함을 확인해 볼 수 있다. 단, 심사숙고 끝에 기부를 결정하는 사람들은 예외다.

 

◑소비자들은 특정 상황에서 일부러 더 비싼 상품을 구입하며, 그 배경에는 비싼 가격이 품질을 보증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자리 잡고 있다.
몇 가지 실험을 통해 이를 확인해 볼 수 있었는데, 이를 통해 저렴한 가격의 상품이라고 더 잘 팔리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은 상품을 얻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릴수록 비싼 물건을 선택할 확률이 더 높았고, 권력 거리가 큰 국가의 사람일수록 가격이 곧 품질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상품 가격에 대한 묘사를 통해 그 사람의 형편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저렴한', '비싸지 않은', '저렴하지 않은', '비싼' 4종류의 구분을 통해 이것을 어떻게 인지하느냐에 따라 가격적 민감도와 형편을 확인해 볼 수 있었다.

 

A. 저렴한 < 비싸지 않음 < 저렴하지 않음 < 비싼
B. 저렴한 = 비싸지 않음 < 저렴하지 않음 = 비싼
C. 저렴한 < 비싸지 않음 < 저렴하지 않음 = 비싼
D. 저렴한 = 비싸지 않음 < 저렴하지 않음 < 비싼
E. 위 4가지가 다 가능할 것 같다.

 

여기서 A를 골랐다면 보통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판단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며, B를 골랐다면 가격에 민감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C를 골랐다면 가격에 민감하고 가정 형편이 평범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으며, D를 골랐다면 가격에 민감하지 않으며 가정 형편이 넉넉한 편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E를 골랐다면 연구자감의 직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만약 상품의 가격이 저렴할수록 좋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저렴하지 않은'과 '비싼'은 비슷한 의미라고 여기게 되고, 반대로 값이 점점 비싸질수록 '비싸지 않은'이나 '저렴한' 상품을 비슷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렇듯 상품 가격에 대한 묘사를 통해 그 사람의 형편을 추측해 볼 수 있다.

 

◑촉각은 물건을 사고 싶은 욕구를 부추긴다.

촉각을 중요시하는 이러한 성향은 소비 습관에도 영향을 주는데, 촉각을 통한 기억은 그 물건을 사고 싶은 마음을 부추기는데 한몫하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촉각은 인간관계에서도 적용되는데 실제 시식을 권할 때 살짝 어깨를 건드리는 것만으로도 시식은 물론 구매까지 연결되는 걸 확인해 볼 수 있었다.

 

촉감의 힘은 실제로 만져보지 않아도 그 촉각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소비자들이 그 상품에 혹하게 만드는데, 대표적인 예가 스타벅스의 '고양이 발 컵'의 완판 사례다. 

 

만약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고 있다면 상품 소개 글이나 사진을 통해 그 상품을 만졌을 때의 느낌이나 재질 등을 자세하게 묘사해 보는 것을 추천해 본다. 반대로 소비자라면 충동구매를 방지하기 위해 주머니에 손을 넣고 쇼핑해 보면 어떨까?

 

◑시간을 돈으로 환산하는 생각은 그 사람의 사회적 관계를 망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은 물론 지속될수록 행복의 크기도 줄어든다.
시간은 곧 돈이라는 생각은 흘러가는 시간을 소중히 여길 수 있게 만들어 준다. 하지만 늘 이런 생각에 얽매여 있으면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행복을 놓치고 만다. 친구를 만나거나 봉사활동하기, 가족과 행복한 시간 보내기 등 돈을 벌지 못하는 일은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한다.

 

◑행복해지고 싶다면 물건보다는 경험을 사라.
행복해지고 싶다면 물건을 사기보단 경험을 사라. 경험은 시간을 꽃으로 만들어 우리가 그것을 음미할 수 있게 함으로써 더 크고 지속적인 행복을 남긴다. 또한 경험을 통해 채색된 우리의 인생은 쉽게 퇴색하지 않는다. 한 사람의 인생은 무엇을 가졌느냐가 아닌 무엇을 했느냐로 정의된다는 것을 기억하자.

 

◑돈 관리 방식이 한 가정의 지출 방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조사를 통해 부부간에 '공동 계좌'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실용성 상품'에 대한 거래를, '단독 계좌'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쾌락성 상품'을 더 선호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친화력이 높은 사람일수록 연 수입이 더 낮다.
실험을 통해 학력과 직업 등 기타 조건이 비슷할 때 친화력이 높은 사람일수록 연 수입이 더 낮은 것을 확인해 볼 수 있었는데, 이러한 현상은 남성에게서 더욱 명확히 나타났다. 이를 통해 친화력은 돈을 버는 것에 큰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히려 친화력이 높은 사람일수록 돈 버는 데는 불리했는데, 이는 친화력이 낮을수록 돈 버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며 친화력이 좋은 사람들은 사회적 관계를 돈 버는 것보다 더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즉, 돈 버는 것을 얼마나 중요시하는지가 수입의 크기를 결정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미움받는 사람이 사랑받는 사람보다 수입이 더 높다.
이러한 경향은 남성에게서 유독 더 쉽게 발견되는데 실험 결과 남자의 경우 미움 지수가 1점 오를수록 연 수입이 6958.08달러 더 올랐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학력과 지능 이외의 것도 수입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준다.

 

◑불평등이 심각한 지역에 사는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보다 더 인색하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에 대해 연구진은 이 같은 환경에서 생활하는 부자들은 자신이 대부분의 사람과는 다른 사회 특수 계층에 속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자신들이 가진 특권을 놓칠까 봐 전전긍긍하기 때문에 손에 쥔 돈과 권력을 더욱 놓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부자일수록 비도덕적인 행위를 할 가능성이 더 크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부자들은 일반 사람들보다 더 자기중심적이며 개인의 이익을 우선으로 생각하고 남보다 자신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사실 부자가 아니더라도 돈을 보거나 상상하기만 해도 사람들은 더 이기적으로 변하고 이것이 심한 경우 비도덕적인 행동으로 이어진다는 것도 발견할 수 있었다.

 

다양한 실험을 통해 돈이 많은 사람은 탐욕을 긍정적으로 생각했으며, 이러한 신념은 이익을 위해 거짓말을 하는 행동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위의 사항들을 살펴보면 평소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던 '친화력'이 오히려 돈과 관련된 심리에서는 부정적 요소로 확인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돈의 영향력이 미친다는 점은 신기하면서도 놀랍게 다가왔다. 그리고 돈이 사람의 본래 신념을 더 강하게 하고 치유의 효과를 가져오는 점에서는 그 위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리고 유독 남성에게 더 도드라지게 나타나는 심리들을 통해 성별에 따라 받는 영향이 다르게 나타날 수도 있다는 점도 알게 되었다. 앞서 친화력이 높은 사람일수록 연수입이 더 낮은 현상과 미움받는 사람이 더 수입이 높은 부분을 통해 남성이 더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행복해지고 싶다면 물건보다 경험을 사라는 말은 인생 명언처럼 느껴졌는데, 좋은 사람들과 '경험'을 나누며 긍정적 시너지를 함께 나누는 것도 좋은 방법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외로 예상을 벗어났던 부분은 부자들에 대한 심리를 지목한 부분이었는데, 부자일수록 부도덕한 행위를 일삼을 가능성이 높고 또 이를 개인의 이익을 위해 정당화한다는 점에서 뉴스에 나오는 일들이 그냥 나온 것만은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또 사회적 불평등에 따라서 부자들의 인식이 달라지는 점도 흥미롭게 다가왔다. 사회 구성원들의 빈부격차가 너무 크게 벌어지면, 오히려 부자들은 더 인색해진다는 점을 통해 왜 새삼 시간이 지날수록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도드라지는지 알 수 있는 계기도 되었다.

 

이를 통해 발전도 중요하고 부자가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느 정도 서로 간에 견제와 통제를 할 수 있는 선에서 이루어지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보니 생각보다 돈이 가지는 가치와 영향력이 훨씬 더 크다는 생각이 든다. 돈을 생각하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위력을 발휘하고, 또 간단한 접촉이나 촉각을 야기하는 설명만으로도 소비를 하고 영향을 발휘한다고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좀 무섭게도 느껴진다.

 

반면 상황에 따라 잘 활용하면 유용하게 써먹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내가 어떤 위치에 있느냐, 혹은 남성이냐 여성이냐, 소비할 것이냐 판매할 것이냐에 따라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지 고민해 보고 조금 더 신중한 결론을 내린다면 보다 현명한 소비와 돈의 주인으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다.

 

나도 미처 눈치채지 못했던 돈의 심리에 대한 정보도 얻고, 또 상식처럼 알고 있던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을 수 있어서 유용한 시간이었다. 이 기회에 마냥 본능에 충실하기 보다 조금 더 신중히 나의 감정을 컨트롤하고 점검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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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같이 뛰어내려 줄게 (여름 낙서 에디션) - 씨씨코 에세이
씨씨코 지음 / 다산북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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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낙서 에디션' 버전이라 그런지 표지부터 여름을 떠올리게 하는 그림들이 가득했다. 파도를 연상시키는 파란색 띠지와 수박, 닻, 거북이, 파인애플, 선글라스, 튜브 등 어쩐지 당장 휴가를 떠나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 책은 처음에 제목이 유독 시선을 끌었는데, 읽기 전에는 여름 느낌의 표지 덕에 바닷속에 함께 풍덩 뛰어내리는 것이 연상되었다면, 책을 읽고 난 후의 느낌은 이보다 훨씬 무게감을 가졌다. 인생을 함께 걸어가 줄 든든한 지원군을 얻은 느낌이랄까?

 

책이 담고 있는 내용 또한 이와 다르지 않았는데, 전체적인 느낌은 살면서 겪는 희로애락의 순간들을 아기자기한 낙서와 함께 일기장에 꾹꾹 적어내려간 것을 엿보는 느낌이었다. 아니, 어쩌면 공책 귀퉁이에 끄적여놓은 메모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인생이 버겁다 느껴지는 순간, 의미 없는 생각들에 사로잡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어지는 순간 다시금 꺼내보면서 추억도 떠올리고, 생각도 정리하면서 위로와 위안을 받게 되는 메모같이 느껴졌다.

 

억지스럽지 않아서, 진지하지만 위트가 있어서 울고 웃으며 읽게 되는 문장들은 한 겨울에 마시는 따뜻한 코코아처럼 스며들었고, 한 여름 땡볕 아래 시원하게 내리는 소나기처럼 시원하게 다가왔다. 덕분에 내가 지금 원하는 대로 잘 살아가고 있구나라는 확신도 얻게 되었다.

 

울고 싶을 때 마음껏 울 수 있게 해주는 것, 힘든 순간 힘내라고 말하기 보다 곁을 지키며 함께 뛰어들어주겠다 말하는 위로만큼 따뜻하고 뜨거운 위로가 또 있을까? 어쩐지 제대로 된 위로를 받은 느낌이다.

 

살면서 문득 이불킥하게 되는 순간, 내가 원하는 삶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되는 순간, 내 인생은 왜 이러냐며 억울함이 드는 순간같이 맘처럼 풀리지 않는 인생을 살고 있다면 이 책을 통해 사느라 저만치 미뤄둔 삶의 이유와 소중함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어쩌면 나다움과 내가 원하는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게 될지도 모르겠다. 혹은 공허함을 가득 채워주는 위로라는 연료 덕에 조금은 살맛 나는 '오늘'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특히 이 책의 제목이자 가장 마지막에 수록된 글은 유독 더 마음에 와닿았는데, 나도 이런 위로를 건넬 수 있는 사람이 되어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더불어 이런 친구를 곁에 두고 있다면 세상 든든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래 기록한 문장들은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음직한 생각들과 개인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삶의 가치, 뜨거운 위로를 담고 있는 문장들 위주로 정리해 보았다. 많은 문장들이 눈에 들어왔지만 특히 더 공감 가는 내용을 위주로 뽑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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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보고 따졌다. 중도 하차도 없는 삶인데 적어도 주기 전에 내 의사는 물어보고 줘야 했던 거 아니냐고. 내가 달라고 한 적도 없는 인생을 받아서 꾸역꾸역 살아야 하는 게 억울했다. 나한테 태어나고 싶냐고 안 물어봤잖아... 요!

17~1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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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는 게 막 억울하다 느껴질 때 드는 감정들이 그대로 느껴지는 문장이다. 씩씩대며 하늘에 대고 따지는 모습도 연상된다. 그러면서도 마지막 반말에서 존댓말로 연결되는 부분은 어쩐지 웃음을 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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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고 나니 우리에게는 꿈만 꾸면서 살 수 있는 여유와 사치가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꿈보다는 생존이 더 어울리게 됐다는 것도, 그리고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다. 꼭 이루지 못해도 꼭 확실하지 않아도 그저 막연하게 꿈만 생각하며 보낼 수 있는 시절의 소중함 말이다.

2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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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리고 나서야 깨닫게 되는 소중함. 그 소중함의 가치를 우리는 되돌아보고 나서야 항상 깨닫는다. 어쩌면 그래서 우리는 항상 어른이 된 뒤에야 뒤늦게 꿈만 꿀 수 있었던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고 추억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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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오르락내리락하게 만들어진 게 인생인데, '넌 왜 그렇게 생겨먹었냐'고 매번 욕했으니 인생님도 쪼금 억울했겠다.
(...)
드디어 받아들이기로 했다.
인생은 본래 울퉁불퉁한 거라고. 꼭 드라마랑 비슷한 것 같다. 세상에 있는 드라마를 다 통틀어도 드라마 시작부터 끝까지 매화마다 감정선이 일정하고 똑같은 경우는 없다.
(...)
이제 나에게 힘든 일이 찾아오면 지금 내 인생 드라마에서 몇 번째 에피소드쯤 왔나 생각해 본다.
(...)
그랬더니 신기하게 조금 여유가 생겼다. 힘든 일이 생겨도 여기가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63~6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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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삶만 꿈꾸며 살다 보면 삶의 특정 단면만 그리워하다 불행해진다. '왜 그렇게 생겨먹었냐?', '내 삶은 왜 이럴까? 원망하고 불평하다 진짜 소중한 것들을 그냥 흘려보낼지도 모른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내 삶을 존중하고 받아들여보면 어떨까? 어쩌면 생각보다 꽤 괜찮은 삶이라고, 조금은 살맛 나는 세상이라고 느껴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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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보다 주관적으로 살면서 지극히 주관적인 희망을 가지고 살 거다. 처절한 상황이 오더라도 말도 안 되는 희망을 내 의지로 만들어 살아낼 거다.

7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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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희망이 보인다'라고 표현하지만, 희망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이다. 내가 희망을 가지기로 했다면 모두 다 희망이다. 말이 되든 안 되든 상관없이 내가 가지기로 했다면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고 판단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태어나서 자기 자신이 아닌 사람으로 살아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는데, 객관적으로 본다는 것이야말로 애초에 말이 안 되는 거 아닌가.

 

누가 머라고 하든 때로 눈치 없고 당당하게 희망을 그려보자. 희망을 가지는 것은 내 선택이고 내 의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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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어른들을 만나보니 나이를 먹는다고 꼭 현명해지는 건 아님을 느낀다. 학교 다닐 때도 학년이 올라간다고 해서 머리에 든 게 저절로 늘지 않더니 인생 역시 똑같은가 보다. 인생 역시 끊임없이 공부하지 않으면 겉모습만 어른인 것이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성숙함은 저절로 단 한 조각도 쌓이지 않는다.

8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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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정의에 대해 깊이 공감 가는 문장이다. 일상에서 쉽게 만나는 어른들의 모습을 살펴보면 진짜 어른인지 의심 가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는데, 나이만 먹은 무늬만 어른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어릴 때 생각했던 지혜로운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나이를 먹는 만큼 끊임없는 인생 공부가 뒷받침되어야 함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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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도 이 중고거래랑 비슷한 것 같다.

 

꼭 있는 것처럼 나를 유혹하지만 사실 이 세상에는 파격적인 지름길도 완전 공짜도 존재하지 않는다. 반드시 대가가 있다. 가격이 너무 과하게 싸면 사기인 핸드폰처럼, 살아가면서 지름길처럼 보이는 인생의 선택도 사실은 더 나락으로 가는 길일지도 모른다.

 

지금은 느린 것 같아도 차근차근 단계를 밟고 가는 게 나를 더 빨리 내가 원하는 곳에 데려다주고, 호구처럼 손해만 보는 것 같아도, 착하게 사는 게 인생의 좋은 것들을 얻어내는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10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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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결괏값은 나중에야 알 수 있어서, 때론 당장 눈앞의 이익이나 지름길을 선택하는 오류를 범할 때가 종종 있다. 꽃길이라며 굳게 믿고 걸었던 그 길이 사실 알고 보면 흙탕물이었음을 누가 짐작이나 했을까? 돌아가는 것 같고,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 같아 종종거리는 마음에 늘 불안감을 갖고 살았는데 오히려 그 길이 남들보다 앞서가는 길이었음을 알게 되는 희열을 그 누가 알 수 있을까?

 

어쩌면 내 속도대로, 차근차근 단계를 밟고 가는 것이 최고의 지름길이 아닐까 싶다. 시간을 들인 만큼 쌓은 인생의 내공은 그만한 가치를 가지고 있기에 생각한 것 이상의 열매를 가져다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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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면 좀 울어도 된다고 하고

힘들면 좀 힘들어해도 된다고 했으면 좋겠다.

그러면 언젠가 괜찮아질 때쯤 괜찮아지겠지.

16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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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몇 사람들을 통해 번진 힐링 포인트를 꼽자면 바로 이 지점이 아닐까 싶다. 마냥 견디라고만 했던 과거와는 다르게 '마음껏 울어', '힘들어해도 괜찮아'라는 말.

 

속시원히 마음의 짐을 털어내고 난 뒤의 개운함을 과거의 그들은 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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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요즘 힘들다고 했다.
(...)
유일하게 하고 싶은 건 아무도 없는 무인도에 가서 하늘을 바라보다 조용히 세상에서 사라지는 거라며 당장 뛰어내리고 싶다고 했다.

 

친구의 두 손을 꼭 붙잡으며 힘내라고, 그래도 열심히 해보자고, 너는 할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대신 이렇게 말했다.

 

"내가 같이 뛰어내려 줄게."

 

근데 어차피 뛰어내릴 거, 그러기 전에 네가 꼭 하고 싶었던 거 하고 와.
먹고 사느라 바빠서 못 본 드라마들, 전부 다 질릴 때까지 보고 와.

 

사람들 눈치 보느라 망설였던 꿈, 그거 후회 없이 좇아가 보고 와.
멀리서 보며 좋아했던 사람한테 밥이라도 한 끼 먹자고 하고 와.

 

울면서 다녔던 그 회사, 때려치우고 네가 좋아하는 여행도 다녀와.

(...)
그러고 나서도 살기 싫으면 내가 너랑 같이 가줄게.

 

근데 그 옥상에서 우리 치킨 하나만 배달시키자. 너는 딸기 라테 좋아하니까 내가 딸기 라테도 시켜 줄게. 우리 그거 질릴 때까지 그 옥상에서 거하게 먹고 그다음에 뛰어내리자.
(...)
아, 맞다. 미안한데 나 치킨 너무 좋아해서 질리려면 한 700년 정도 걸릴 것 같아.
(...)
같이 먹고 있다 보면 어느새 또 지나가고 행복한 날이 와 있을 거야.

286~28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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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힘든 순간, 함께 뛰어내려준다는 친구의 말 한마디가 건네는 무게감이 쿵 가슴에 내려앉았다. 세상에서 사라지기 전에 마음껏 해보고 싶은 거 다 해보고 그러고도 살기 싫으면 함께 가주겠다는 말만큼 큰 위로가 또 있을까?

 

그리고 나서도 옥상에서 좋아하는 것들 함께 먹으며 곁에 있겠다는 친구의 말은 어쩐지 펑펑 눈물이 날 만큼 삶의 용기를 북돋아 준다. '괜찮아질 거야', '모두 다 그러면서 살아'라는 허황되고 냉정한 말보다 어쩌면 우리는 가슴 따뜻해지는 이런 공감과 위로를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떠날 인생이라면 해보고 싶은 거 다 해보고, 먹고 싶은 거 다 먹으면서, 내 기억에 오래도록 남는 인생으로 살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유한한 삶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어쩌면 조금 더 과감하고 용기 있는 한 발짝이 아닐까 싶다.

 

희망을 갖는 것도, 용기를 갖는 것도 모두 내 선택이다. 어떤 삶을 살 것인지, 일상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 돌이켜보게 하는 문장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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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레슨 인 케미스트리 1~2 - 전2권
보니 가머스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앞서 읽었던 샘플북의 마지막 놀라운 한 문장은 절묘한 끊기 신공을 자랑했는데, 덕분에 언젠가 꼭 완독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이 책을 완독하기에 이른다.

 

나를 그토록 궁금하게 만든 마지막 문장은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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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37분 뒤에 죽었다.

레슨 인 케미스트리 1권 (15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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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문장이었는데, 티키타카가 절묘하게 잘 어우러졌던 캘빈과 엘리자베스의 행복한 시절을 뒤로하고 난데없이 캘빈이 37분 뒤 죽었다는 문장은 너무 뜬금없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왜 갑자기 죽었을까라는 궁금증과 함께 잘 풀려가던 둘의 관계나 화학자로서의 직업적 상황은 어떻게 되는 걸까라는 의문도 들었다.

 

더불어 1권 초반에 등장한 엘리자베스의 딸인 매들린에 관해서도 너무 궁금했다. 그리고 마침내 이 모든 상황들을 마침내 확인해 보게 된 것이다.

 

시대적 배경인 1950~1960년대 미국에서 여성의 위치는 그저 가정주부 혹은 우아하게 차려입고 차나 즐기며 수다를 떠는 이미지였다. 혹 직업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사무 보조원이나 행정 직원이 대부분인 제대로 된 전문직을 수행하거나 직업적 대우는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어렵사리 공부를 마치고 전문 직종에 종사하더라도 제대로 된 인격적 대우를 받을 수 없는 것은 물론, 성차별이나 성폭력이 만연한 시대였다. 앞서 샘플북에서 확인했듯 엘리자베스가 이야기했던 성차별적인 행보는 꾸준히 지속되었고, 그래서 엘리자베스 역시 자신의 화학 연구에 속도를 내기가 힘든 상황이었다.

 

이 와중에 갑작스레 마음으로 지지해 주고 깊이 사랑했던 캘빈이 사망하게 되면서 엘리자베스는 잠시 충격을 받고 멍한 상태로 지내지만 이내 상황을 수습하고 다시 정신을 가다듬는다. 이 와중에 캘빈의 아이를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과 캘빈이 소속되어 있던 연구소 헤이스팅스에서는 이를 꼬투리 삼아 엘리자베스를 해고하기에 이른다.

 

결혼하지 않은 여자의 임신은 수치스러운 거라며 그동안의 모든 연구 성과는 물론 캘빈의 연구 자료까지 모두 빼앗아 간다. 그렇게 내쫓기듯 연구소에서 나온 엘리자베스는 캘빈이 죽고 약 석 달이 지난 후 마침내 주방을 자신만의 실험실로 개조하기로 마음먹는다.

 

이대로 주저앉기보다 혼자서라도 자신만의 연구실을 만들어 계속 해나가겠다는 의지를 갖게 된 것이다. 그렇게 살짝 부푼 배로 직접 쇠지레를 휘두르고 주방을 부수면서 적극적으로 개조해 자신만의 연구실 공간을 만들어 간다.

 

여성에 대해 편중된 시선을 가지고 있던 헤이스팅스 연구소의 의견과는 다르게 그녀가 출중한 화학자이자 연구원이었다는 사실은 그녀가 해고된 지 2주 만에 저절로 입증이 된다. 그녀가 연구하던 화학진화를 같이 연구했던 팀원들이 매일같이 번갈아가며 그녀의 집에 들러 안부를 핑계로 실험 결과에 대한 해석에 대해 묻고 갔기 때문이다.

 

임신과 더불어 갑작스러운 해고로 먹고 살길이 막막했던 그녀는 이것을 기회로 삼아 찾아오는 연구원들에게 돈을 받고 실험에 대해 설명하기에 이른다. 심지어 추후에는 그녀의 이런 능력을 눈여겨보고 있던 헤이스팅스의 책임자인 도나티 박사는 그녀의 경제사정이 좋지 못한 점을 이용해 그녀를 다시 연구실로 불러들여 그녀가 오랫동안 연구했던 '화학진화'를 훔쳐 자신의 이름으로 논문에 싣는 파렴치한 짓을 저지르기도 한다.

 

그녀를 향한 조롱이나 좋지 않은 시선은 헤이스팅스뿐만이 아니었다. 그녀가 아주 나중에 성공하여 이름을 알리고 유명인이 되어서까지도 이어지는데, 이를 통해 이 당시 여성에 대한 시선과 차별이 얼마나 만연했는지를 알 수 있다.

 

예컨대 임산부의 둥근 배를 보고 오지랖 넓은 사람들이 건네는 부정적인 언사나 말참견을 하며 함부로 말해서 상처를 주는 행위, 자기들 멋대로 규정짓고 이야기하는 것들, 혹은 함부로 남의 배를 두드리며 만지는 행위 등이 그것이다. 사회적 시스템에서도 그녀는 다양한 차별을 받게 되는데, 정작 임산부인 자신의 정보는 고사하고 산부인과에서 서류를 작성할 때 요구하는 남편 정보 같은 것들을 꼽을 수 있다.

 

그녀는 유일한 가족인 캘빈이 키우던 개인 여섯시-삼십분과 함께 연구논문을 읽고, 책을 읽으며 삶을 지속해 가는데, 주위의 차별이나 편견에 굴하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의 선택과 삶에 집중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그녀와 늘 함께 했던 여섯시-삼십분 역시 수많은 인간의 단어를 습득하게 되고, 주변의 상황을 살필 수 있는 수준에 이른다.

 

그녀는 앞서 겪은 불운에서와 마찬가지로 울기보다는 맞서 싸우는 방법을 선택하는데, 꿋꿋하고 당당하게 헤쳐나가는 모습에서 남다른 에너지와 멋짐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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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가 자살했을 때와 마이어스에게 성폭행을 당했을 때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엘리자베스는 울지 않았다.

레슨 인 케미스트리 1권 (16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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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만삭이 된 그녀는 캘빈의 추천으로 조정을 함께 했던 인연으로 알게 된 캘빈 메이슨 선생을 찾아가 마침내 분만을 하게 되고 이내 곧 혼자 있을 여섯시-삼십분이 걱정되어 곧바로 퇴원하여 집으로 돌아온다. 캘빈의 죽음을 통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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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을 잃으면 너무나 단순한 진실이 드러나기도 한다. 사람들이 이러쿵저러쿵 주장하긴 하지만 너무 쉽게 간과하는 진실, 바로 시간이 참으로 소중하다는 진실이다.

레슨 인 케미스트리 1권 (19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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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있는 로잉 머신을 즐겨 하면서 건강을 챙긴 덕에 무사히 분만한 엘리자베스에게 출산 후 삶은 또 다른 시련을 안겨주었는데, 어쩐지 희망이 보이지 않는 미래와 자꾸만 울어대는 아기와의 사투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때 캘빈 메이슨 선생이 전한 말은 그녀에게 처음으로 희망을 안겨주는데, 온갖 불평등과 부조리 속에서 늘 부정적인 이야기만 들었던 그녀에게 그 말은 다시금 자신의 삶 속으로 들어가 평범한 일상을 살 수 있는 희망을 꾸게 한 게 아닐까 싶다.

 

=====
"어쩌면 아주 잘될 수도 있고요. 개도 있고, 로잉 머신도 하고, 앞으로 2번 자리에 앉으실 거고. 얼마나 좋습니까."

(...)

메이슨의 말은 솔직히 말이 되질 않았다. 하지만 이제껏 그녀가 들었던 말과 비교해 보면, 마침내 처음으로 무언가 희망이 보이는 말이었다.

레슨 인 케미스트리 1권 (22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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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았지만, 육아에 대해서는 초보였던 그녀였기에 한동안 울어대는 아기를 돌보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더군다나 혼자 모든 것을 감당해야 했기에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했던 그녀에게 어느 날 건너편 집에 사는 슬로운 부인(=해리엇)이 찾아온다. 

 

해리엇은 이미 아이를 여럿 키워 독립시키고 남편과 단둘이 살고 있었는데, 종교적 이유로 무시당하며 살면서도 이혼하지 못하고 살고 있던 또 다른 남성우월주의의 피해자 중 한 명으로 이 만남 후 엘리자베스에게 여러모로 도움을 주게 된다.

 

=====
"남들이 아는 만큼은 알죠. 아기는 조그마한 주제에 이기적인 사디스트랍니다. 왜 다들 애를 한 명 이상 낳는 건지 알다가도 모르겠어요."

레슨 인 케미스트리 1권 (24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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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그녀는 직설적인 화법으로 육아의 고충에 대해 서슴없이 이야기하는데, 이를 통해 혼자 끌어안고 있던 엘리자베스의 고충을 단번에 해결해 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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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아기를 갖다 버리고픈 마음이 몇 번 들었다고요? 두 번?"
(...)
"두 번" 정말 두 번 밖에 안 들었어요? 그런 마음이 스무 번 든다 해도 절대 많은 게 아니에요."

레슨 인 케미스트리 1권 (24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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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도 남편도 친구도 없어 사회적으로 고립되었던 엘리자베스에게 해리엇의 이런 충고는 사회적 관계를 통해 자신이 갖는 감정이 결코 나쁘거나 부정적인 것이 아님을 저절로 깨닫게 해준다. 이를 통해 육아를 하는 것에 대한 인식을 새로이 다져가게 되면서 자신만의 육아법으로 딸 매들린에게 글자를 읽는 법과 독서하는 것에 대해 일찍이 가르치게 된다.

 

=====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봐요. 매일"
(...)
"자신이 최우선이 되는 시간을 가지는 거죠. 오롯이 나만의 시간요. 아기도, 일도, 죽은 에번스 씨도, 더러운 집도 다 제쳐두고요. 딱 나를 위한, 엘리자베스 조트를 위한 시간을 가져봐요. 뭘 필요로 하든, 뭘 원하든, 뭘 찾든 그 시간 동안 자신의 욕구를 충실하게 추구해 봐요."

레슨 인 케미스트리 1권 (248~24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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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혼자 독박 육아에 빠져 삶이 피폐해진 엘리자베스에게 해리엇은 가볍게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보라는 조언을 하게 되는데 이 덕분에 엘리자베스는 아이게에만 집중했던 시간을 벗어나 용기를 갖고 자신만의 삶과 인생, 시간을 갖게 된다.

 

추후 그녀는 자신의 딸과 같은 유치원에 다니는 어맨다가 정성스레 싼 매들린의 점심 도시락을 뺏어 먹는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KCTV 방송국에서 PD를 하고 있는 어맨다의 아버지인 월터를 만나 항의하게 된다. 이 일을 계기로 그가 담당하는 요리 프로그램 <6시 저녁 식사>의 진행자를 맡게 되면서 유명세를 타게 되고 마침내 유명인이 되어 수많은 여성들에게 영향을 주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처음부터 엘리자베스가 승승장구했던 것은 아니다. 앞서 겪었던 대로 또 다른 부조리와 성차별에 맞서 싸워야 했고, 또 여성스러운 자세와 몸짓, 외모를 강요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거기에 굴복하지 않았다. 자신이 원하는 방식과 모습으로 요리 프로그램을 운영했으며 이는 재미없지만 묘하게 사람들을 끌어들여 집중하게 만들었다.

 

화학 공식과 요리의 결합은 주부로만 머물러 있는 여성들에게 자존감을 회복해 주는 것은 물론 가족들을 위해 요리를 하는 그 자체에 의미를 부여해 주면서 맛을 보장하는 것은 물론 사람들의 마음도 움직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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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상을 차려라. 

너희 어머니는 이제 자기만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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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6시 저녁 식사>의 마무리 멘트로 항상 이 말로 인사를 대신하곤 하는데, 과거 해리엇이 자신에게 해주었던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라는 말에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엘리자베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미처 알지 못했던 캘빈의 과거와 숨겨진 인연, 그리고 이것이 미래까지 연결되는 걸 확인해 볼 수 있는데, 마지막까지 따라가다 보면 어쩐지 너무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한 캘빈이 그래서 더 안타깝게 느껴진다.

 

한 명의 사람이자 과학자, 화학자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그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받고 무시당했던 엘리자베스의 삶을 통해 한 개인이 겪는 상실이 얼마나 큰지, 또 사회적으로 만연한 성차별 인식으로 인해 곳곳에 뻗쳐있는 사회적 민낯이 얼마나 추잡하고 더러운지 확인해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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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이 아무리 훌륭하다 해도 네가 중요하거나 똑똑한 사람이 되는 건 아니란다. 너를 너답게 만드는 건 조상이 아니야,"
"그럼 나를 나답게 만드는 건 뭐예요?"
"네가 선택하는 것들이지. 네가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이 너를 너답게 만든단다."

레슨 인 케미스트리2 (6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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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비난과 불행 속에서도 눈물로 주저앉기보다 자신의 길을 꿋꿋이 걸어 나갔던 엘리자베스의 삶은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전하는데, 삶을 살아가는데 진짜 중요한 것은 무엇이고 어떤 것이 가치 있는 삶인지를 자신의 삶을 통해 제대로 전한다.

 

또 사회적 편견이나 편협한 시선으로 타인을 판단하고 재단하는 행위가 얼마나 위험한 발상이며, 타인을 상처 입힐 수 있는지 제대로 깨닫는 시간도 가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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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6시 저녁 식사>를 통해서 화학을 가르치고 싶었어요. 여자들이 화학을 이해한다면, 세상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이해하기 시작할 테니까요."
(...)
"저는 원자와 분자에 대해서 말하는 거예요. 로스 씨. 물리적 세계를 지배하는 진짜 규칙 말이죠. 여자들이 이 기본적인 개념을 이해하면 그들을 위해 창조된 세상의 그릇된 한계를 보게 될 겁니다."

레슨 인 케미스트리2 (19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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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고 자신 있는 화학을 통해 자신만의 언어로 여성들에게 스스로 깨우칠 수 있는 시간을 <6시 저녁 식사>를 통해 제공했다. 유리 천장 속에 갇힌지도 모르고 사는 여성들이 그것을 깨고 훨훨 자신의 꿈을 찾아 날아가기를 바라며 독려하고 응원했다.

 

이것은 그녀가 <6시 저녁 식사>를 진행하면서 전했던 방청객들의 사연과 편지를 통해 종종 소개되었는데, 그저 여성이고 엄마이기에 접어야 했던 꿈을 마음껏 펼치고 능력을 발휘하는 모습은 흐뭇한 미소를 자아내게 했다.

 

그녀는 자신의 딸과 반려견을 교육하는 데에도 사회적 관념이나 시스템에 얽매이지 않았다. 유치원생이 글을 읽고 어려운 책을 읽는 것도, 반려견인 여섯시-삼십분에게 단어를 가르치는 것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항상 정성과 최선을 다했으며 아이가 보고 듣는 세상에 어떤 한계선도 긋지 않았다. 마치 그녀의 다음 세대에는 자신이 살았던 세상보다 훨씬 더 편견 없는 세상에서 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듯 온 마음을 다했다.

 

어쩌면 그녀가 요리 방송인 <6시 저녁 식사>를 진행하며 전한 메시지들은 온갖 차별에 물들어 있던 여성들을 각성시키는 것은 물론, 나 홀로 키운 딸이 사랑받으며 마음껏 능력을 발휘하며 살기를 바라는 엄마의 마음도 담겨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오랜 시간 불운과 불행 속에 내던져졌음에도 자신이 원하는 삶을 위해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해나가는 엘리자베스의 삶을 돌아보며 나답게 살기 위해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를 생각하게 한다. 어떤 부조리나 고난 앞에서도 끝까지 물러나지 않고 해나가기를. 

 

부디 울퉁불퉁한 인생길에서 모두 자신의 꿈을, 자신이 원하는 인생을 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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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그런 날도 있지
달큼글(정예원) 지음 / 딥앤와이드(Deep&WIde)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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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에서 느껴지는 포근함이 인상적이다. 보이지 않은 여러 손들이 나를 감싸 안아주어 어쩐지 위로를 건네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이 표지는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적어도 이 책을 읽고 난 뒤라면 더욱더 다르게 느껴진다. 나를 중심으로 둘러싼 선으로 그려진 수많은 형체들은 사실 타인이 아닌 또 다른 '나'의 모습을 형상화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좌절과 시련에 주저앉은 나를 일으키고 위로해 주는 건 결국 타인이 아닌 자신이라는 것을 각기 다른 모습으로 표현하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살다 보면 겪게 되는 '부정적인' 그런 날.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수도,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어 혼자 웅크리고 버텨내며 지켜냈던 시간들. 시련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아 더 좌절했던 경험이 있다면, 이 책을 통해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지, 또 새로운 일상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조금 덤덤하지만 담백한 글들은 어쩌면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자 성숙한 위로가 되어줄 것이다. 세상을 바꿀 수도, 다가오는 파도를 막을 수도 없기에 저자는 그것을 헤쳐나갈 수 있는 가장 지혜로운 방법을 귀띔해 주기 때문이다. 인생의 방향을 잃었을 때, 지치고 무너질 것 같을 때, 삶에 전하는 작은 희망은 다시금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전해준다.

 

그리고 그것은 스스로 결핍을 채우고 마음을 다스리게 해주어 인생의 의미를 되찾게 해준다. 살면서 언젠가 불안과 두려움으로 캄캄한 동굴에 머무르는 순간이 온다면, 이 책에 담긴 내용들을 통해 스스로에 대한 자존 회복과 확신을 통해 평온한 일상을 다시금 되찾기를 바란다.

 

시기가 다를 뿐 너도 나도 겪는 인생의 불안과 상실에 대해 <살다 보면 그런 날도 있지> 하며 넘길 수 있을 것이다. 나만의 속도와 방법으로 이어나가는 나만의 행복 길을 무난히 통과하는 방법 지금부터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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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무너진 것만 같은 사람들의 마음가짐을 다시 돌려놓기 위해 적었다. 자신을 괴롭게 하는 인생의 파도들을 멈추게 할 순 없어도 그걸 헤쳐 나갈 이유를 찾을 수 있도록. 자신의 인생 속 일말의 작은 의미라도 되찾을 수 있도록. 상황이 변하지 않는다면, 내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 되기도 하니까.

프롤로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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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변화를 통해 삶을 보다 풍요롭고 행복하게 지켜나가는 방법만큼 좋은 게 또 있을까? 누구에게 의지하거나 도움을 구하지 않아도 가능한 가장 확실하고 부작용이 없는 방법을 통해 불행에서 한 발짝 떨어져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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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어떤 사건을 마주하고 그 일의 느낀 점이나 결론을 제대로 끝맺음 짓지 못하면 우리는 끊임없이 그 기억 속에 묶여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
그러나 과거 사건을 소재 삼아 글을 쓰기 시작하면, 그 과거의 나를 다시 돌아보고 솔직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
당시의 나는 내리지 못했던 결론을 현재의 내가 내려주는 것이다. 그러면 더 이상 과거의 나의 실수나 실패들로 인한 상처들이 지금의 나를 괴롭히지 못한다. 그 과거의 실수나 실패로 지금의 나는 어떻게 성장하고 변했는지 깨닫기 때문이다. 그런 글쓰기의 과정 속엔 과거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힘이 있다.
(...)
우리의 과거엔 생각보다 지금의 나를 만든 계기들이 무수히 많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그 계기들을 찾아 지금의 나를 이해하고 알아가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20~2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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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과거에 메여 제자리걸음을 하게 되는 때가 있다. 어쩌면 이것은 제대로 끝맺음을 하지 않았기에 벌어지는 일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무엇이든 하다만 일들, 마무리를 짓지 못한 일들은 결론이 없다. 그래서 뒤끝이 개운하지 못한 감정을 불러온다. 그렇다면 같은 맥락으로 깔끔하게 마무리를 지어보면 어떨까?

 

저자는 마무리를 짓는 방법으로 글쓰기를 제안한다. 나를 돌아보고, 생각을 정리하면서 온전히 나를 받아들일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을 통해 벌어진 상처를 꿰매고 치유해 나가는 과정을 가지라고 말한다. 어쩌면 이를 통해 가장 싫어했던 과거의 내 모습을 오히려 사랑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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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법적으로 성인이 되고 나서 지금껏 쭉 느낀 '어른'이라는 것은 이런 것 같다. 결국 모든 것은 내가 스스로 헤쳐 나가야 한다는 것, 스스로 무언가를 하지 않고, 해내지 못한다면 아무것도 진행되지 않고 아무것도 이뤄지는 게 없다는 것, 정말 나를 내가 오롯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것이 내가 성인이 되고 느낀 하루하루의 삶이다.
(...)
예나 지금이나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은 참 비슷한 것 같다. 뭐든 내가 직접 부딪혀야 한다는 것.

30~3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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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하지만, 막상 어른이 되고 보면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책임지고 스스로 해내야 한다는 것에 부담감을 느껴 당황할지도 모르겠다. 어릴 때는 미처 몰랐던, 어른이기에 감내해야 하는 것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던 '어른'이라는 것이 나이나 신체적 성장이 아니라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 스스로 헤쳐나가야 하는 것이라는 하루라도 빨리 알려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자라면서 차근차근 이런 것들을 배워서 익혔더라면 지금보다는 조금 더 좋은 사회, 좋은 어른이 되어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미성숙한 어른에서 진정한 어른으로 다가서는 방법은 직접 부딪히는 것이다. 책임지는 삶을 통해 진짜 어른으로 거듭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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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내가 현대 나이 계산법을 너무 공감하고 이해하는 것은 그 삶에 아직도 익숙해지지 못하고 내가 나를 온전히 책임지는 게 버거워서 그렇지 않을까.

3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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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세대와 요즘 세대는 나이대가 비슷하지 않아서 실제 나이에서 0.8을 곱해 실제 나이보다 낮게 계산한다는 이야기를 흔하게 보곤 하는데, 무심히 흘려 넘겼던 그 말이 사실은 이렇게도 해석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던 문장이다.

 

가벼이 여러 요인들에 의해 외관상 보여지는 부분에 있어 균형을 맞추기 위한 계산법이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어쩌면 단순히 지금의 나이를 더 어리게 보고, 수명이나 신체적인 것들이 젊어진 것 이상의 내 삶을 온전히 책임지는 게 버거워 더 공감하고 이해하는 문장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만큼 현대 사람들은 더 오랫동안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지기보다 누군가에게 위탁하고 보호받는 시기를 오래 지속하기를 바란다는 의미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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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나도 학창 시절에 지루한 수업을 들을 때면 그와 비슷한 상상을 하곤 했다. 나의 뇌를 꺼내어 씻을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
뇌를 꺼내 얼룩지거나 들러붙은 것처럼 시꺼멓게 변해버린 원치 않는 기억들을 지워버리고 싶었다. 손가락으로 이리저리 문질러 뽀드득뽀드득 소리가 날 때까지 깔끔하게 지워버리고, 꽃향기나 과일 향기가 나는 향수를 뿌려 기분 좋은 생각들로 채운 후 다시 넣고 싶다는 상상을 말이다.

19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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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생각 혹은 지우고 싶은 기억을 오래 머릿속에 담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하는 생각이라 더 공감이 갔던 문장이다. 잘 잊어버리는 것이 축복이라고 이야기할 만큼 생각이나 기억을 오래도록 담고 있는 것은 꽤 괴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어떨 때는 설거지를 하는 것처럼 뇌를 꺼내서 깨끗하게 씻어내거나 표백제를 써서 말끔하게 지워버리고 싶지만 현실에서는 이루어지기 힘든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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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인지 어느 순간부터는 나를 아프게 할 것 같은 사람들은 미리 거리를 두고 가까워지지 않으려 노력하게 된다. 또한 가까웠던 사람이라 할지라도 내게 상처를 주거나 감정 낭비를 하게 만드는 사람이라면 얼른 끊어내게 된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참 잘도 새겨지는 기억들 중 나쁜 기억들을 더 이상은 새기지 않기 위해서.

19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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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때 저자가 사용한 방법은 꽤 유용한데, 나 역시도 잘 활용하고 있는 방법이라 특히 더 공감이 많이 갔다. 조금씩 거리를 두고, 거르기 시작하면 불안하고 소란스러웠던 마음이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한다. 덕분에 타인에게 양보했던 시간도 다시금 되찾아 올 수 있다. 검은 안개가 가득 차 머릿속을 뿌옇게 흐렸던 나쁜 기억도 더 이상 늘어나지 않는다.

 

문득 어쩌면 우리는 스스로를 지키는 일에 너무 소홀했던 것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옷에 냄새가 쉽게 베어들 듯 나쁜 기억 역시 쉽게 새겨진다. 그리고 이것을 몰아내는 것에는 그만큼의 시간을 들여야 한다. 이제라도 나를 지키기 위해 사람과의 적절한 거리를 유지해 보는 것은 어떨까?

 

때론 거르는 것으로, 때론 거리를 유지하는 것으로 '나'를 지켜보자. 어느새 기분 좋은 기억들로 가득 찬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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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말해주고 싶은 게 있다. 지나고 나야만 보이는 것이 있다는 것을.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듯, 막막하기만 한 이 시간도 분명 끝이 있다는 것을. 지나고 나면 알게 될 것이다. 내가 들어간 동굴은 사실 동굴이 아니라, 긴 터널이었다는 걸.

21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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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위로가 되어주는 문장이 아닐까 싶다. 단숨에 잘 사는 나라가 되었지만,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 현시대는 캄캄한 어둠과 같다고들 이야기한다. 언젠가 후에 '무척 긴 터널을 지나왔다고' 말할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다가왔으면 한다.

 

 


마음의 방향을 틀어 나를 변화시키는 방법이라 그런지, 책을 읽으면서, 글을 쓰면서 더 마음에 꼭꼭 새겨지는 기분이 든다. 나 역시도 타인으로부터 받은 상처와 불안에 끝도 없는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기분을 느꼈던 순간이 있었다. 불행은 왜 그리도 몰아서 들이닥치는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혼란스럽던 때도 있었는데, 결국 스스로 마음을 정리하고 변화 시키면서 지금은 평온을 되찾았다.

 

그때 도움을 받았던 것이 책을 읽는 것이었고, 글을 쓰는 것이었는데, 외부의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고 무언가 집중할 것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르겠다. 당시엔 좋다 나쁘다를 판단할 겨를도 없이 그런 선택을 했는데, 시간이 지난 지금은 그게 잘한 선택이었음을 안다.

 

한때는 힘들 때 오랜 시간 내 곁을 지켜준 믿음직스러운 '사람'을 통해 위로와 위안을 얻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를 통해 무언가를 얻는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에, 스스로 마음의 변화를 통해 원하는 것을 쟁취하고 내 삶을 책임지는 것이 더 현명하다는 생각을 한다.

 

언젠가 상황은 끝나기 마련이다. 그리고 작든, 크든 상처는 남기 마련이고 나쁜 기억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굳이 깊고 길게 가져갈 필요는 없다. 나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을 통해 최소한의 시련과 고통만 경험하자. 이 모든 것들은 내가 가지는 마음가짐 하나에 판가름이 난다. 나를 깊이 이해하는 것도, 위로하는 것도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은 나 자신임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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