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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지 존스 앤 더 식스
테일러 젠킨스 리드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6월
평점 :
분명 소설임을 알고 읽기 시작했는데, 읽다보면 자꾸만 저자의 설정에 말려들어 실화로 생각하게 되는 이상한 소설인 <데이지 존스 앤 더 식스>. 그래서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이 소설에 등장하는 밴드 이름, 등장 인물들의 이름, 노래등을 확인하려 포털사이트나 유튜브를 검색하게 된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책에서 읽은 노래나 밴드, 등장인물들에 대한 정보는 구할 수 없다. 앞서 말한대로 허구로 만들어진 픽션이기 때문이다. 아마존 프라임 드라마로도 제작되어 이 정보가 간혹 노출되기는 하나 진짜 원하는 정보는 절대 구할 수 없다.
이는 이 책을 쓴 작가의 의도이기도 한데, 초반 작가노트부터 풍기는 실화같은 분위기와 인터뷰 형태를 빌어 실존하는 인물들의 이야기처럼 느껴지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500페이지가 넘는 꽤 두터운 분량을 자랑함에도 순식간에 매료되어 이야기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수없이 상충되는 감정속에서 부딪히며 성장해 나가는 이들의 음악이야기와 휴머니즘을 통해 저자가 그리고자 했던 사유를 찾아보길 바란다. 정상의 자리에서 그들은 왜 갑자기 해체를 선언한 것인지, 뮤지션의 삶과 무대의 경계가 어떻게 모호해질 수 있는지, 오래된 상처를 노래하는 것이 어떻게 그 아픔을 새롭게 만들 수 있는지를 직접 확인해 보길 바란다.
이 소설의 구성은 이야기의 밑밥이 되는 작가노트를 필두로, 각자 데이지 존스, 던 브라더스로 음악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마침내 <데이지 존스 앤 더 식스>로 함께 밴드를 결성하면서 최고의 순간을 맛본 후 돌연 해체를 선언하게 된 순간까지 그려진다.
후반부에는 깜짝 선물이 기다리고 있는데, 소설에 심취해 있느라 미처 깨닫지 못한 순간 저자가 깜짝 등장하여 놀라운 사실 하나를 전해준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이야기가 끝난 순간 옮긴이의 말을 통해 우리는 현실에 당도할 수 있다.
장담하건데, 이 소설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들은 이 소설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모호해져 흠뻑 빠져들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내 나처럼 검색이나 유튜브를 통해 검색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되짚어보게 될것이다.
기회만 생기면 약에 손대는 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던 시절, 마약과 술에 찌든 삶은 어찌보면 너무나 당연했다. 괴로워서, 즐거워서, 슬퍼서 등등 여러 이유로 약은 가까이 하기에 너무 좋은 친구였다. 그래서 더 혼란했고 더 열정을 불태울 수 있었다.
이와중에 록 음악에 푹 빠진 이들 '데이지 존스'와 '던 브라더스'는 자신의 이야기를 음악으로 마음껏 표출하기를 원했다. 그러던 중 그들은 어떤 사유로 <데이지 존스 앤 더 식스>라는 이름으로 함께 하게 되고, 마침내 정상의 자리에 서게 되는데. 이들이 왜 갑자기 해체를 선언하게 되는지, 또 이 이후의 이야기는 어떻게 전개되는지 록 음악 씬의 한가운데로 함께 들어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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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나는 1970년대 록밴드 '데이지 존스 앤 더 식스'가 대중적 인기를 얻은 과정을 일화 중심에서 명확히 그려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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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지 존스 앤 더 식스의 멤버 모두가 참여해 밴드의 역사를 이야기한 최초이자 유일한 기록물이라는 데서 이 책의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8~9페이지 작가노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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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에는 데이지 존스와 던 브라더스가 자라온 환경 및 그들이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담겨있는데, 풍족함 속에 결핍이 있던 데이지 존스와 넉넉하진 않았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선 던 브라더스의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
<데이지 존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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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지 존스는 1951년에 태어나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 할리우드 힐스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영국의 저명한 화가인 프랭크 존스이고, 어머니는 프랑스 모델 잔 르페브르다. 1960년대 말, 선셋 스트랩에서 사춘기를 보내면서 데이지는 부모의 유명세에서 벗어나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1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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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돈을 다 가진 집에서 태어났으니 원하는 건-예술가든 약물이든 클럽이든-다 가질 수 있었어요. 물 쓰듯 써도 바닥날 일이 없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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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데이지 곁엔 아무도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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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지 아버지도 어머니도 각자 자기만의 세상에 빠져 지내느라 딸은 내팽개쳐 놓다시피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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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아이 곁엔 진심으로 관심을 쏟아주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어요. 하물며 부모까지 그 모양이었으니 아이가 얼마나 큰 상처를 받았을지는 말할 필요도 없겠죠. 하지만 그런 성장 과정으로 말미암에서 아이콘이 된 것 아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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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지 존스는 뚜렷한 트라우마를 품고 있으면서 고전적으로 아름다운 인물의 표본이었어요.
14~1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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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외모, 재능 등 어느것하나 부족함 없이 모든 것을 손에 쥐고 태어났지만, 그녀에게도 유일한 결핍은 존재했는데 그건 바로 사랑에 대한 결핍이었다. 오히려 가진것이 많았기에 그녀를 이용하려고 할지언정 진심으로 그녀를 위해주고 관심을 쏟아주는 이는 단 한명도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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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새벽 서너 시까지 거기 있었는데, 밤늦게까지 논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네요. 갑자기 살아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어떤 세계의 일부가 된 느낌이었어요.
1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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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어느 클럽을 드나들게 되면서 로큰롤과 사랑에 빠지게 되고 싱어송라이터에 도전해 보지만 사람들은 그녀의 외모를 탐내고 재능을 훔칠지언정 그녀의 음악을 제대로 알아봐주는 이는 아무도 없다. 거기에서 오는 절망과 좌절은 끝도 없는 마약과 약물에 대한 의존으로 변질되고, 이로 인해 한없이 망가져 가는 그녀의 모습은 어쩐지 위태롭게 다가온다.
이때 데이지에게 유일한 친구이자 최고의 친구를 만나게 되는데 그게 바로 시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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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지: 이 세상에 날 위해 뭐든 해줄 사람, 내가 뭐든 해주고 싶은 사람이 한 명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 그런 때만 느낄 수 있는 평온함이 있어요. 시몬은 내게 그런 평온함을 느끼게 해준 최초의 사람이었어요.
2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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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 데이지에게 재능을 발휘하라고 격한 사람은 나밖에 없었어요. 다른 사람들은 데이지가 가진 것을 어떻게든 빼먹으려고 안달이었죠.
2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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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함 속에 불안전함을 품고 있던 데이지는 그래서인지 어릴때부터 혼자 습득하고 혼자 노는법을 깨우쳤으며, 일찍이 불면도 겪고 있었다. 열네 살때 처음 담배를 피우고, 밤늦게까지 클럽을 드나들었으며, 가출을 하는 등 외롭고 결핍된 삶을 살았다.
부모님이 자기들만의 세상에 사는 동안 혼자 밤늦게까지 엄마의 소설책을 읽는것이 버릇이 되면서 꼬맹이 시절부터 불면을 앓았고 그게 습관으로 굳어져 나중엔 약에 의지하는 지경에 이른다.
열일곱살에는 사는 목적이 있는지 자문하게 되면서 다른 사람의 신세를 지고, 집을 떠나 떠돌이처럼 사는 생활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손내밀면 무엇이든 가질 수 있었던 부유하고 아름다웠던 소녀가 부모의 관심에서 멀어지면서 채울 수 없는 공허함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하게 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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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지: 누군가의 뮤즈가 되는 것엔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었어요. 난 뮤즈가 아니에요. 내가 그 위대한 누군가지. 개똥 같은 이야기는 이걸로 끝.
2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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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때부터 혼자 모든것을 감내하며 살아서인지 그녀는 매우 독립적이었고 누군가의 지시를 받거나 밑에 자리하는걸 그다지 좋아하진 않았던 듯 하다. 그저 스스로 군림하고 나답게 사는것을 더 즐겨했던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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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 데이지를 만났을 때 내가 언니였고, 더 똑똑했고, 더 세련됐었어요. 하지만 1970년대 초반, 데이지는 '잇걸'이 되어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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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그러한 당당하고 아름다운 그녀의 모습은 모든 여성들의 선망이 되었고, 마침내 '잇걸'로 자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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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지: 난 곡 쓰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어요. 노래를 부르는 건 괜찮지만 무대 위에서 다른 사람의 노래를 부르는 꼭두각시는 되고 싶지 않았어요. 내가 다 하고 싶었어요. 내가 쓴 곡을 부르고 싶었어요.
시몬: 데이지는 거저 얻은 건 전부 다 무시했어요. 돈, 외모, 자기 목소리까지. 사람들이 자기 말을 경청해 주길 바랐어요.
7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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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저 얻은 것에 환멸을 느끼며 자신의 노래를 부르기를 간절히 원했던 데이지는 어느날 테디 프라이스를 만나게 되면서 운명이 바뀌게 된다.
<'더 식스'의 시초 <던 브라더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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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식스'의 시초는 1960년대 중반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에서 결성된 블루스 록밴드 '던 브라더스'였다. 빌리 던과 그레이엄 던 형제는 1954년 아버지 윌리엄 던 시니어가 떠난 후 홀어머니 말렌 던 밑에서 컸다.
3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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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지와는 다르게 던 형제는 가난한 가정에서 자라난다. 빌리가 일곱 살, 그레이엄이 다섯 살때 아버지가 집을 나가면서 홀어머니 밑에서 컸는데, 아버지가 떠나면서 남긴 낡은 실버톤 기타가 어찌보면 '던 브라더스'가 만들어진 계기라고도 할 수 있다.
이들은 이 기타를 가르쳐줄 사람이 없어 독학으로 배우게 되고, 좀더 커선 수업이 끝난 뒤에 늦게까지 남아 합창실의 피아노를 치면서 습득하게 된다. 그러다 빌리가 열다섯 살쯤 엄마가 돈을 모아 그레이엄과 빌리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중고 스트랫(전자 기타 스트라토캐스터)을 사주면서 스트랫은 그레이엄이 갖고, 실버톤은 빌리가 갖게 되면서 곡을 쓰기 시작했고 거기서 모든것이 시작된다.
이때 빌리는 곡 만드는 일에 푹 빠졌고 특히 노랫말에 엄청 공을 들이게 된다. 그렇게 형제가 '던 브라더스'로 활동하다가 1967년 십대인 형제는 밴드를 결성하기 위해 드러머에 워런 로즈를, 베이시스트에 피트 러빙을, 리듬 기타리스트에 척 윌리엄스를 영입하게 된다.
빌리는 애초에 프런트맨이 되고 싶었는데, 5인조가 갖춰지면서 포지션을 바꿔 보컬을 맡게 된다. 이때부터 이들은 죽어라 연습해서 하루가 다르게 실력이 늘었는데 여러 공연에 초대되면서 인기를 얻기 시작한다.
빌리가 열아홉살에 한 결혼식 피로연 연주일이 들어오면서 거기서 호텔 칵테일 바에 있던 한 웨이스트리를 보고 첫 눈에 반하게 되면서 교제를 하게 되는데 그녀가 바로 빌리 던의 아내인 커밀라 던이다.
그렇게 조금씩 상승세를 타던 이들에게도 첫 시련이 다가오게 되는데 1969년 12월 1일 미국에 선발 징병제가 도입되면서 척 윌리엄스가 징집 영장을 받게 되면서부터다. 이때 척의 빈자리를 임시로 피트의 동생인 에디 러빙에게 맡기게 되는데, 척이 캄보디아로 징집 된지 6개월도 안되서 사망하게 되면서 에디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그리고 에디 러빙과 함께 키보디스트로 캐런 캐런을 영입하게 되면서 그렇게 이들은 6인조로 굳어지게 되고, '던 브라더스'에서 밴드명은 마침내 '더 식스'로 바꾸게 된다.
빌리 던(더 식스의 리드 싱어)
그레이엄 던(더 식스의 리드 기타리스트)
워런 로즈(더 식스의 드러머)
피트 러빙(더 식스의 베이시스트)
에디 러빙(더 식스의 리듬 기타)
캐런 캐런(더 식스의 키보디스트)
그렇게 이들은 빌리 던이 쓰는 끝내주는 노래로 마침내 대중들에게 인정을 받기 시작하면서 다양한 곳에서 공연을 하고 인기가 급상승하기 시작한다.
이때 멤버들은 인기에 힘입어 팬과 많은 여성들이 주변에 들끓었고, 공연후에는 늘 여자, 술, 약에 취해 지냈는데 이미 결혼한 빌리 역시 약에 취해 이미 너무 망가진 상태였다. 그래서 커밀라가 첫 딸 줄리아를 출산할때도 그런 몰골로 함께 할 수 없었던 빌리는 곁에 있어 주지 못한다.
이 일로 크게 혼쭐이 난 빌리는 재활원에서 약물 중독 치료를 받고 마침내 가정으로 돌아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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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는 1974년 겨울에 재활원에 들어갔다. 더 식스는 투어 일정에서 남은 두어 차례의 공연을 취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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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던은 재활원에서 60일을 보낸 후에야 비로소 딸 줄리아를 만났다.
11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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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을 계기로 빌리는 이후 가정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을 기울이게 되는데, 스스로 평생 가정에 충실할것과 자신의 삶을 딸과 커밀라에게 바칠것을 마음속으로 맹세한다. 그래서 술과 약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무던히 애를 쓰고, 공연이 끝난 직후에는 무조건 집으로 돌아가 술과 마약의 유혹에서도 멀어지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가끔 위태로울때는 미리 알아챈 아내 커밀라가 공연에 함께 동행해주기도 한다.
그렇게 빌리는 술과 약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가정을 지키기 위해 꽤 오랜시간 노력하지만 어떤 일의 계기로 이것이 한 순간에 무너지는 때를 맞게 되는데, 이는 한참 뒤의 일이다.
<데이지 존스 앤 더 식스의 이야기>
빌리를 주축으로 구성된 '더 식스' 밴드는 그렇게 승승장구하며 지속적으로 인기를 이어 나간다. 빌리는 계속해서 끝내주는 음악을 만들어냈고, 가사의 내용은 늘 아내 커밀라에게 바치는 노랫말이 많았다. 재활원을 다녀온 이후 철저히 가정을 위해 살겠다는 다짐을 이행함과 동시에 속죄하는 마음을 담았던 것이다.
새 앨범에 수록될 <허니콤>도 그런 곡중에 하나였는데, 말랑한 사랑노래지만 곡이 워낙 좋아 대표곡으로 밀 예정이었다. 그러던 중 테디가 이곡을 듀엣곡으로 만들자고 제안하게 되면서 한 때 멤버들간에 혼란이 야기되기도 한다. 록밴드라는 이미지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의견이 야기됐지만 결국 듀엣곡으로 진행하기에 이른다.
이때 듀엣을 할 멤버로 같은 레이블 소속인 데이지가 선정되면서 이들의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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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지: 빌리가 노래를 진짜 잘했어요. 진한 호소력이 느껴졌어요. 듣고만 있어도 애특한 마음이 들었어요. 시련을 뚫고 나온 남자의 목소리라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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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목소리가 세련된 신상 청바지라면 빌리의 목소리는 오랜 세월 간직한 청바지 같았어요.우리가 서로의 빈 곳을 채워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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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에 가는 날 얼마나 흥분했는지 몰라요. 내가 비로소 쓸모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14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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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만남 전 서로에 대한 평가는 생각보다 후했다. 좋은 이미지, 설렘으로 기대감에 한껏 부풀었다. 하지만 이것은 아주 짧은 순간에 그쳤다. 만남이후 이들은 늘 으르렁 거렸으며 좋다 나쁘다를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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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지: (빌리 던이란 남자는 데님이 아니면 셔츠를 안 입나?)
빌리: (대책 없는 여자네. 신발 좀 신으라고.)
15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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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들의 관계나 감정과는 다르게 이 둘의 만남이 대외적으로는 대단한 반향을 일으킨다. 그리고 더 식스라는 밴드에도 다양한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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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 해리스(록 음악 평론가): <허니콤>에서 빌리와 데이지 각자의 존재감과 미학적 긴장감은 이후 데이지 존스 앤 더 식스가 완성한 멋진 하모니의 출발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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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호소력 넘치는 창법으로 '콜 앤드 리스폰스' 노래하면서 낭만적이고 이상적이지만 불확실한 미래를 이야기합니다.
15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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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둘 역시 서로 으르렁 거리면서도 이런 주변의 반응을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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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지: 내가 빌리를 나쁜 새끼라고 생각한 건 중요하지 않았어요. 함께 노래할 때 그런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한 가지 점에서는 나와 통하는 게 있다는 뜻이에요. 신경에 거슬리는데도 자꾸 끌리는 그런 면?
빌리는 가시 같았어요. 더도 덜도 말고 꼭 가시 같았죠.
16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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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시작된 그들의 동행은 마침내 'feat.데이지'에서 '데이지 존스 앤 더 식스'라는 밴드명으로 바꾸기에 이르는데, 다음 새 앨범을 함께 제작하고 활동하기로 한 것이다.
이때 데이지는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동등한 권한과 결정권한을 요구했고 이로써 단독으로 모든 결정권한을 가졌던 빌리와 더 식스에게도 변화의 바람이 찾아오게 된다. 새 앨범에 수록된 곡들은 빌리와 데이지가 함께 만들었으며, 다른 팀원들도 적극적으로 앨범에 참여하게 되면서 각자의 개성과 능력을 끌어올릴 수 있었고, 마침내 함께 발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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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지: 빌리는 진정으로 이해했다고 확신했어요. 그도 날 이해했고요. 이런 일은, 그러니까 한 사람과 통한다는 건 불을 가지고 노는 것과 같아요. 이해받는 건 기분 좋은 일이에요. 어떤 사람과 손발이 잘 맞는다고 느끼면, 누구도 넘보지 못할 경지에 오른 것 같죠.
27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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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음악적 교감과 능력은 서로를 감화시키고 더 나은 곡을 만들게 만들었고, 때로는 싸우고 부딪히며 성장해 나가게 된다. 그렇게 어느덧 앨범이 완성단계에 이르러 문득 어떤 사실을 깨달은 빌리는 다짜고짜 데이지를 밴드에서 내보내려 하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이때쯤 커밀라도 그런 빌리의 마음을 눈치채게 되지만, 데이지, 빌리, 커밀라 그 누구도 진실에 대해 함구하며 꿋꿋이 이 위태로운 관계를 이어나간다. 어느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었던 데이지는 이때쯤 뜬금없이 휴가지에서 만난 이탈리아 왕자라고 말하는 사기꾼과 덜컥 결혼하게 되고 더욱더 약에 취해가기 시작한다.
예상대로 그들이 함께 만든 <오로라> 앨범은 대박을 치게 되고 이들은 마침내 정상의 자리에 서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데이지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한 자신의 처지를 깨닫게 되면서 자신을 이용만 하는 니콜과 헤어지고 공연에 집중하려 노력한다. 그리고 약물과도 멀어질 결심을 하게 되면서 빌리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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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지: 처음 약에 탐닉하는 이유는 감정을 무디게 하고, 칼끝 같은 감정에서 도망치려는 건데, 얼마 안 가서 약 때문에 오히려 삶이 더 힘들어진다는 것, 약이야말로 모든 감정을 예리하게 고조시키는 것임을 깨닫게 되니까요. 약 때문에 실연의 아픔이 더 고통스러워지고, 즐거운 시간은 더 짜릿해져요. 결국 약발이 떨어져 탈진하고 우울해지면 온전한 정신이라는 것에서 도망치려 했던 이유에 의문을 품게 되는 건 시간문제예요.
43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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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테디가 심장마비로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면서 이들의 불안했던 관계는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많은 사람들에게 많은 의미가 있는 사람이었던 테디였기에 그의 죽음의 무게는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을 불러온다.
이 일을 계기로 빌리는 통제불능상태에 빠지게 되고, '데이지 존스 앤 더 식스'는 물론 '더 식스'마저 해체되고 만다. 데이지는 커밀라와의 대화를 통해 마침내 자신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깨닫게 되고 이로써 우리가 앞서 궁금해한 정상에 선 밴드의 해체 이유를 확인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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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지: "벌써 자신의 밑바닥을 보지 말아요. 데이지, 당신이 미처 깨닫지 못해서 그렇지, 당신에겐 무궁무진한 자산이 있어요." 그 말이 가슴에 그대로 박혔어요. 아직 내 삶이 결정된 게 아니라는 것이. 내게 아직 희망이 있다는 것이. 커밀라 던 같은 여자가 날 그렇게 생각한다는 사실이...
커밀라 던은 날 구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거예요.
492~49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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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후 이들은 뿔뿔이 흩어져 각자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데, 그들 각자가 염원했던 것, 바라던 삶의 모습을 후반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시작점은 달랐지만 록밴드 음악에 대한 열정과 사랑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던 이들의 이야기 속에는 사랑, 이별, 환희, 슬픔, 미련, 분노, 앙심, 부인, 포용과 성장등 수많은 이야기가 가득하다.
독특한 것은 멤버 전원이 참여한 인터뷰 형태로 서술된 점을 꼽을 수 있는데, 전지적 작가시점과는 또다른 묘미와 재미를 발견할 수 있었다. 디테일한 감정선과 상황묘사를 통해 해당 시점에 독자가 함께하고 있는 현실감까지 느낄 수 있었는데, 어쩌면 이러한 서술방식 덕분에 더 실화같은 느낌이 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저자는 이러한 현실감 돋는 인터뷰 형태의 이야기 말미에, 독자를 놀라게 할 상황과 트릭을 하나 설치해 놓았는데, 이는 직접 책을 통해서 확인해 보기 바란다. 딱 한장면에 직접 저자가 투입된 장면에서 이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다.
상상과 현실 그 어디쯤에서 헤매던 독자가 이제 현실로 돌아올 시간이다. 인터뷰를 통해 멤버 전원의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삶을 모두 살펴봤다면, 이후에는 그들이 함께 만들었던 최고의 앨범 <오로라>에 담긴 노래와 가사를 음미할 시간이다. 이 가사들을 하나하나 곱씹다보면 어쩐지 음악사이트 어딘가에 존재할것만 같은 생각이 드는건 비단 나뿐일까?
여기에 또 하나 독자를 위한 저자의 선물을 발견할 수 있는데, 바로 커밀라의 메세지다. 딸들을 통해 전하는 통쾌한 복수를 담은 의미심장한 메세지는 여러 생각을 자아내게 한다.
이제 정말 마지막의 마지막에 다다랐다. 저자의 '감사의 말'을 지나 '옮긴이의 말'을 통해 제대로 땅에 발을 내디딜 시간이다. 여기에서는 진짜 이 책의 모티브가 된 밴드에 관한 이야기와 이 책이 탄생하게 된 비화가 담겨있다.
이 책을 읽으며 그토록 찾아 헤맸던 진짜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비로소 발견하게 된 것이다. 우연히 고릿적 록밴드 플리트우드 맥의 재결성 기념 공연 무대를 보게 되면서 열세 살 여자아이는 상상에 흥미로운 통찰의 씨앗을 뿌리게 된다.
바로 <산사태>를 부르면서 스티비를 바라보던 린지의 모습을 보며 '아, 저 둘은 사랑하는 사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비로소 시작된 것이다. 이것이 후에 로큰롤에 관한 책을 쓰겠다고 결심했을 때 비로소 단초가 되었고, 그렇게 <데이지 존스 앤더 식스>는 첫 싹을 틔우게 된다.
'옮긴이의 말'을 정독하다보면 비로소 <데이지 존스 앤 더 식스>의 큰 줄거리가 실제 닉스와 버킹엄 커플의 이야기와 굉장히 비슷하다는 점을 발견하게 되는데, 특히 데이지가 합류한 이후 데이지와 빌리 사이에서 벌어지는 미묘한 감정변화와 레코딩 작업이 바로 그것이다.
밀어내지만 서로 끌어당기는 상황속에서 협업이 이루어지는 상황적 묘사는 다양한 양가감정을 불러오고 이는 비즈니스와 예술, 책무와 매혹, 반목과 공감의 경계를 흐릿해지게 만든다. 서로의 매력에 감화되었기에 끌렸고, 끌렸기에 노래는 한층 빛을 발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둘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
이 모든것을 알고 있었기에 이들은 서로 자신을 기만하는 쪽을 택하면서 부인, 거짓말, 둘러대기를 동원하며 진실과 독대하기를 미룬다. 실제로 플리트우드 맥도 그러했다고 하는데, 이 소설에서 그려지는 수많은 갈등, 반복, 공감, 염원, 희망, 좌절, 분노, 저주, 깨달음, 수용, 이별, 회고 등의 감정들도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오래전 한참 인기를 끌었던 록음악 시절을 현실로 불러들여와 다시 즐길 수 있어 기분좋은 시간이었다. 비록 얼굴을 찌푸리게 하는 술과 마약 중독들의 상황은 불편하게 다가왔지만, 그만큼 더 강력한 긴장감을 불러왔던 것도 사실이다.
음악이야기가 그렇듯 이 소설도 음악을 하는 이들에 대한 열정과 사랑, 성장담을 담고 있지만, 이 소설이 유독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허구인듯 사실인듯 애매모호한 상황에 독자를 뚝 떨어뜨려놓는다는 점을 꼽을 수 있을것 같다.
모든 상황을 인터뷰 형태를 통해 전달하면서 전해지는 디테일한 묘사는 나도 모르는 새 흠뻑 빠져들게 만든다. 또 중간중간 작가가 만들어 둔 트릭은 생각치 못한 재미를 더해준다. 예상치 못한 전개도 어찌보면 또하나의 매력포인트라고 말할 수 있을것 같다.
보통 소설에서 전개되는, 혹은 기대하게 되는 그런 전개는 적어도 이 소설의 텍스트안에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빌리는 가정을 지켰고, 캐런은 자신의 삶을 선택했다. 데이지도 자신만의 멋진 삶을 만들어냈다. 가장 뜨거웠던 시절, 이제는 추억으로만 남은 그때 그 시절의 이야기이기에 어쩌면 우리는 지금 더 아름답게 기억할 수 있는것은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