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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레슨 인 케미스트리 1~2 - 전2권
보니 가머스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앞서 읽었던 샘플북의 마지막 놀라운 한 문장은 절묘한 끊기 신공을 자랑했는데, 덕분에 언젠가 꼭 완독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이 책을 완독하기에 이른다.
나를 그토록 궁금하게 만든 마지막 문장은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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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37분 뒤에 죽었다.
레슨 인 케미스트리 1권 (15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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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문장이었는데, 티키타카가 절묘하게 잘 어우러졌던 캘빈과 엘리자베스의 행복한 시절을 뒤로하고 난데없이 캘빈이 37분 뒤 죽었다는 문장은 너무 뜬금없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왜 갑자기 죽었을까라는 궁금증과 함께 잘 풀려가던 둘의 관계나 화학자로서의 직업적 상황은 어떻게 되는 걸까라는 의문도 들었다.
더불어 1권 초반에 등장한 엘리자베스의 딸인 매들린에 관해서도 너무 궁금했다. 그리고 마침내 이 모든 상황들을 마침내 확인해 보게 된 것이다.
시대적 배경인 1950~1960년대 미국에서 여성의 위치는 그저 가정주부 혹은 우아하게 차려입고 차나 즐기며 수다를 떠는 이미지였다. 혹 직업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사무 보조원이나 행정 직원이 대부분인 제대로 된 전문직을 수행하거나 직업적 대우는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어렵사리 공부를 마치고 전문 직종에 종사하더라도 제대로 된 인격적 대우를 받을 수 없는 것은 물론, 성차별이나 성폭력이 만연한 시대였다. 앞서 샘플북에서 확인했듯 엘리자베스가 이야기했던 성차별적인 행보는 꾸준히 지속되었고, 그래서 엘리자베스 역시 자신의 화학 연구에 속도를 내기가 힘든 상황이었다.
이 와중에 갑작스레 마음으로 지지해 주고 깊이 사랑했던 캘빈이 사망하게 되면서 엘리자베스는 잠시 충격을 받고 멍한 상태로 지내지만 이내 상황을 수습하고 다시 정신을 가다듬는다. 이 와중에 캘빈의 아이를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과 캘빈이 소속되어 있던 연구소 헤이스팅스에서는 이를 꼬투리 삼아 엘리자베스를 해고하기에 이른다.
결혼하지 않은 여자의 임신은 수치스러운 거라며 그동안의 모든 연구 성과는 물론 캘빈의 연구 자료까지 모두 빼앗아 간다. 그렇게 내쫓기듯 연구소에서 나온 엘리자베스는 캘빈이 죽고 약 석 달이 지난 후 마침내 주방을 자신만의 실험실로 개조하기로 마음먹는다.
이대로 주저앉기보다 혼자서라도 자신만의 연구실을 만들어 계속 해나가겠다는 의지를 갖게 된 것이다. 그렇게 살짝 부푼 배로 직접 쇠지레를 휘두르고 주방을 부수면서 적극적으로 개조해 자신만의 연구실 공간을 만들어 간다.
여성에 대해 편중된 시선을 가지고 있던 헤이스팅스 연구소의 의견과는 다르게 그녀가 출중한 화학자이자 연구원이었다는 사실은 그녀가 해고된 지 2주 만에 저절로 입증이 된다. 그녀가 연구하던 화학진화를 같이 연구했던 팀원들이 매일같이 번갈아가며 그녀의 집에 들러 안부를 핑계로 실험 결과에 대한 해석에 대해 묻고 갔기 때문이다.
임신과 더불어 갑작스러운 해고로 먹고 살길이 막막했던 그녀는 이것을 기회로 삼아 찾아오는 연구원들에게 돈을 받고 실험에 대해 설명하기에 이른다. 심지어 추후에는 그녀의 이런 능력을 눈여겨보고 있던 헤이스팅스의 책임자인 도나티 박사는 그녀의 경제사정이 좋지 못한 점을 이용해 그녀를 다시 연구실로 불러들여 그녀가 오랫동안 연구했던 '화학진화'를 훔쳐 자신의 이름으로 논문에 싣는 파렴치한 짓을 저지르기도 한다.
그녀를 향한 조롱이나 좋지 않은 시선은 헤이스팅스뿐만이 아니었다. 그녀가 아주 나중에 성공하여 이름을 알리고 유명인이 되어서까지도 이어지는데, 이를 통해 이 당시 여성에 대한 시선과 차별이 얼마나 만연했는지를 알 수 있다.
예컨대 임산부의 둥근 배를 보고 오지랖 넓은 사람들이 건네는 부정적인 언사나 말참견을 하며 함부로 말해서 상처를 주는 행위, 자기들 멋대로 규정짓고 이야기하는 것들, 혹은 함부로 남의 배를 두드리며 만지는 행위 등이 그것이다. 사회적 시스템에서도 그녀는 다양한 차별을 받게 되는데, 정작 임산부인 자신의 정보는 고사하고 산부인과에서 서류를 작성할 때 요구하는 남편 정보 같은 것들을 꼽을 수 있다.
그녀는 유일한 가족인 캘빈이 키우던 개인 여섯시-삼십분과 함께 연구논문을 읽고, 책을 읽으며 삶을 지속해 가는데, 주위의 차별이나 편견에 굴하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의 선택과 삶에 집중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그녀와 늘 함께 했던 여섯시-삼십분 역시 수많은 인간의 단어를 습득하게 되고, 주변의 상황을 살필 수 있는 수준에 이른다.
그녀는 앞서 겪은 불운에서와 마찬가지로 울기보다는 맞서 싸우는 방법을 선택하는데, 꿋꿋하고 당당하게 헤쳐나가는 모습에서 남다른 에너지와 멋짐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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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가 자살했을 때와 마이어스에게 성폭행을 당했을 때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엘리자베스는 울지 않았다.
레슨 인 케미스트리 1권 (16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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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만삭이 된 그녀는 캘빈의 추천으로 조정을 함께 했던 인연으로 알게 된 캘빈 메이슨 선생을 찾아가 마침내 분만을 하게 되고 이내 곧 혼자 있을 여섯시-삼십분이 걱정되어 곧바로 퇴원하여 집으로 돌아온다. 캘빈의 죽음을 통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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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을 잃으면 너무나 단순한 진실이 드러나기도 한다. 사람들이 이러쿵저러쿵 주장하긴 하지만 너무 쉽게 간과하는 진실, 바로 시간이 참으로 소중하다는 진실이다.
레슨 인 케미스트리 1권 (19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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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있는 로잉 머신을 즐겨 하면서 건강을 챙긴 덕에 무사히 분만한 엘리자베스에게 출산 후 삶은 또 다른 시련을 안겨주었는데, 어쩐지 희망이 보이지 않는 미래와 자꾸만 울어대는 아기와의 사투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때 캘빈 메이슨 선생이 전한 말은 그녀에게 처음으로 희망을 안겨주는데, 온갖 불평등과 부조리 속에서 늘 부정적인 이야기만 들었던 그녀에게 그 말은 다시금 자신의 삶 속으로 들어가 평범한 일상을 살 수 있는 희망을 꾸게 한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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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아주 잘될 수도 있고요. 개도 있고, 로잉 머신도 하고, 앞으로 2번 자리에 앉으실 거고. 얼마나 좋습니까."
(...)
메이슨의 말은 솔직히 말이 되질 않았다. 하지만 이제껏 그녀가 들었던 말과 비교해 보면, 마침내 처음으로 무언가 희망이 보이는 말이었다.
레슨 인 케미스트리 1권 (22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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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았지만, 육아에 대해서는 초보였던 그녀였기에 한동안 울어대는 아기를 돌보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더군다나 혼자 모든 것을 감당해야 했기에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했던 그녀에게 어느 날 건너편 집에 사는 슬로운 부인(=해리엇)이 찾아온다.
해리엇은 이미 아이를 여럿 키워 독립시키고 남편과 단둘이 살고 있었는데, 종교적 이유로 무시당하며 살면서도 이혼하지 못하고 살고 있던 또 다른 남성우월주의의 피해자 중 한 명으로 이 만남 후 엘리자베스에게 여러모로 도움을 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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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아는 만큼은 알죠. 아기는 조그마한 주제에 이기적인 사디스트랍니다. 왜 다들 애를 한 명 이상 낳는 건지 알다가도 모르겠어요."
레슨 인 케미스트리 1권 (24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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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그녀는 직설적인 화법으로 육아의 고충에 대해 서슴없이 이야기하는데, 이를 통해 혼자 끌어안고 있던 엘리자베스의 고충을 단번에 해결해 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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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아기를 갖다 버리고픈 마음이 몇 번 들었다고요? 두 번?"
(...)
"두 번" 정말 두 번 밖에 안 들었어요? 그런 마음이 스무 번 든다 해도 절대 많은 게 아니에요."
레슨 인 케미스트리 1권 (24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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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도 남편도 친구도 없어 사회적으로 고립되었던 엘리자베스에게 해리엇의 이런 충고는 사회적 관계를 통해 자신이 갖는 감정이 결코 나쁘거나 부정적인 것이 아님을 저절로 깨닫게 해준다. 이를 통해 육아를 하는 것에 대한 인식을 새로이 다져가게 되면서 자신만의 육아법으로 딸 매들린에게 글자를 읽는 법과 독서하는 것에 대해 일찍이 가르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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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봐요. 매일"
(...)
"자신이 최우선이 되는 시간을 가지는 거죠. 오롯이 나만의 시간요. 아기도, 일도, 죽은 에번스 씨도, 더러운 집도 다 제쳐두고요. 딱 나를 위한, 엘리자베스 조트를 위한 시간을 가져봐요. 뭘 필요로 하든, 뭘 원하든, 뭘 찾든 그 시간 동안 자신의 욕구를 충실하게 추구해 봐요."
레슨 인 케미스트리 1권 (248~24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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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혼자 독박 육아에 빠져 삶이 피폐해진 엘리자베스에게 해리엇은 가볍게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보라는 조언을 하게 되는데 이 덕분에 엘리자베스는 아이게에만 집중했던 시간을 벗어나 용기를 갖고 자신만의 삶과 인생, 시간을 갖게 된다.
추후 그녀는 자신의 딸과 같은 유치원에 다니는 어맨다가 정성스레 싼 매들린의 점심 도시락을 뺏어 먹는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KCTV 방송국에서 PD를 하고 있는 어맨다의 아버지인 월터를 만나 항의하게 된다. 이 일을 계기로 그가 담당하는 요리 프로그램 <6시 저녁 식사>의 진행자를 맡게 되면서 유명세를 타게 되고 마침내 유명인이 되어 수많은 여성들에게 영향을 주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처음부터 엘리자베스가 승승장구했던 것은 아니다. 앞서 겪었던 대로 또 다른 부조리와 성차별에 맞서 싸워야 했고, 또 여성스러운 자세와 몸짓, 외모를 강요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거기에 굴복하지 않았다. 자신이 원하는 방식과 모습으로 요리 프로그램을 운영했으며 이는 재미없지만 묘하게 사람들을 끌어들여 집중하게 만들었다.
화학 공식과 요리의 결합은 주부로만 머물러 있는 여성들에게 자존감을 회복해 주는 것은 물론 가족들을 위해 요리를 하는 그 자체에 의미를 부여해 주면서 맛을 보장하는 것은 물론 사람들의 마음도 움직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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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상을 차려라.
너희 어머니는 이제 자기만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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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6시 저녁 식사>의 마무리 멘트로 항상 이 말로 인사를 대신하곤 하는데, 과거 해리엇이 자신에게 해주었던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라는 말에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엘리자베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미처 알지 못했던 캘빈의 과거와 숨겨진 인연, 그리고 이것이 미래까지 연결되는 걸 확인해 볼 수 있는데, 마지막까지 따라가다 보면 어쩐지 너무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한 캘빈이 그래서 더 안타깝게 느껴진다.
한 명의 사람이자 과학자, 화학자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그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받고 무시당했던 엘리자베스의 삶을 통해 한 개인이 겪는 상실이 얼마나 큰지, 또 사회적으로 만연한 성차별 인식으로 인해 곳곳에 뻗쳐있는 사회적 민낯이 얼마나 추잡하고 더러운지 확인해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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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이 아무리 훌륭하다 해도 네가 중요하거나 똑똑한 사람이 되는 건 아니란다. 너를 너답게 만드는 건 조상이 아니야,"
"그럼 나를 나답게 만드는 건 뭐예요?"
"네가 선택하는 것들이지. 네가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이 너를 너답게 만든단다."
레슨 인 케미스트리2 (6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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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비난과 불행 속에서도 눈물로 주저앉기보다 자신의 길을 꿋꿋이 걸어 나갔던 엘리자베스의 삶은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전하는데, 삶을 살아가는데 진짜 중요한 것은 무엇이고 어떤 것이 가치 있는 삶인지를 자신의 삶을 통해 제대로 전한다.
또 사회적 편견이나 편협한 시선으로 타인을 판단하고 재단하는 행위가 얼마나 위험한 발상이며, 타인을 상처 입힐 수 있는지 제대로 깨닫는 시간도 가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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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6시 저녁 식사>를 통해서 화학을 가르치고 싶었어요. 여자들이 화학을 이해한다면, 세상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이해하기 시작할 테니까요."
(...)
"저는 원자와 분자에 대해서 말하는 거예요. 로스 씨. 물리적 세계를 지배하는 진짜 규칙 말이죠. 여자들이 이 기본적인 개념을 이해하면 그들을 위해 창조된 세상의 그릇된 한계를 보게 될 겁니다."
레슨 인 케미스트리2 (19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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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고 자신 있는 화학을 통해 자신만의 언어로 여성들에게 스스로 깨우칠 수 있는 시간을 <6시 저녁 식사>를 통해 제공했다. 유리 천장 속에 갇힌지도 모르고 사는 여성들이 그것을 깨고 훨훨 자신의 꿈을 찾아 날아가기를 바라며 독려하고 응원했다.
이것은 그녀가 <6시 저녁 식사>를 진행하면서 전했던 방청객들의 사연과 편지를 통해 종종 소개되었는데, 그저 여성이고 엄마이기에 접어야 했던 꿈을 마음껏 펼치고 능력을 발휘하는 모습은 흐뭇한 미소를 자아내게 했다.
그녀는 자신의 딸과 반려견을 교육하는 데에도 사회적 관념이나 시스템에 얽매이지 않았다. 유치원생이 글을 읽고 어려운 책을 읽는 것도, 반려견인 여섯시-삼십분에게 단어를 가르치는 것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항상 정성과 최선을 다했으며 아이가 보고 듣는 세상에 어떤 한계선도 긋지 않았다. 마치 그녀의 다음 세대에는 자신이 살았던 세상보다 훨씬 더 편견 없는 세상에서 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듯 온 마음을 다했다.
어쩌면 그녀가 요리 방송인 <6시 저녁 식사>를 진행하며 전한 메시지들은 온갖 차별에 물들어 있던 여성들을 각성시키는 것은 물론, 나 홀로 키운 딸이 사랑받으며 마음껏 능력을 발휘하며 살기를 바라는 엄마의 마음도 담겨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오랜 시간 불운과 불행 속에 내던져졌음에도 자신이 원하는 삶을 위해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해나가는 엘리자베스의 삶을 돌아보며 나답게 살기 위해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를 생각하게 한다. 어떤 부조리나 고난 앞에서도 끝까지 물러나지 않고 해나가기를.
부디 울퉁불퉁한 인생길에서 모두 자신의 꿈을, 자신이 원하는 인생을 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