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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같이 뛰어내려 줄게 (여름 낙서 에디션) - 씨씨코 에세이
씨씨코 지음 / 다산북스 / 2023년 6월
평점 :
품절
'여름 낙서 에디션' 버전이라 그런지 표지부터 여름을 떠올리게 하는 그림들이 가득했다. 파도를 연상시키는 파란색 띠지와 수박, 닻, 거북이, 파인애플, 선글라스, 튜브 등 어쩐지 당장 휴가를 떠나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 책은 처음에 제목이 유독 시선을 끌었는데, 읽기 전에는 여름 느낌의 표지 덕에 바닷속에 함께 풍덩 뛰어내리는 것이 연상되었다면, 책을 읽고 난 후의 느낌은 이보다 훨씬 무게감을 가졌다. 인생을 함께 걸어가 줄 든든한 지원군을 얻은 느낌이랄까?
책이 담고 있는 내용 또한 이와 다르지 않았는데, 전체적인 느낌은 살면서 겪는 희로애락의 순간들을 아기자기한 낙서와 함께 일기장에 꾹꾹 적어내려간 것을 엿보는 느낌이었다. 아니, 어쩌면 공책 귀퉁이에 끄적여놓은 메모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인생이 버겁다 느껴지는 순간, 의미 없는 생각들에 사로잡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어지는 순간 다시금 꺼내보면서 추억도 떠올리고, 생각도 정리하면서 위로와 위안을 받게 되는 메모같이 느껴졌다.
억지스럽지 않아서, 진지하지만 위트가 있어서 울고 웃으며 읽게 되는 문장들은 한 겨울에 마시는 따뜻한 코코아처럼 스며들었고, 한 여름 땡볕 아래 시원하게 내리는 소나기처럼 시원하게 다가왔다. 덕분에 내가 지금 원하는 대로 잘 살아가고 있구나라는 확신도 얻게 되었다.
울고 싶을 때 마음껏 울 수 있게 해주는 것, 힘든 순간 힘내라고 말하기 보다 곁을 지키며 함께 뛰어들어주겠다 말하는 위로만큼 따뜻하고 뜨거운 위로가 또 있을까? 어쩐지 제대로 된 위로를 받은 느낌이다.
살면서 문득 이불킥하게 되는 순간, 내가 원하는 삶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되는 순간, 내 인생은 왜 이러냐며 억울함이 드는 순간같이 맘처럼 풀리지 않는 인생을 살고 있다면 이 책을 통해 사느라 저만치 미뤄둔 삶의 이유와 소중함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어쩌면 나다움과 내가 원하는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게 될지도 모르겠다. 혹은 공허함을 가득 채워주는 위로라는 연료 덕에 조금은 살맛 나는 '오늘'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특히 이 책의 제목이자 가장 마지막에 수록된 글은 유독 더 마음에 와닿았는데, 나도 이런 위로를 건넬 수 있는 사람이 되어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더불어 이런 친구를 곁에 두고 있다면 세상 든든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래 기록한 문장들은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음직한 생각들과 개인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삶의 가치, 뜨거운 위로를 담고 있는 문장들 위주로 정리해 보았다. 많은 문장들이 눈에 들어왔지만 특히 더 공감 가는 내용을 위주로 뽑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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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보고 따졌다. 중도 하차도 없는 삶인데 적어도 주기 전에 내 의사는 물어보고 줘야 했던 거 아니냐고. 내가 달라고 한 적도 없는 인생을 받아서 꾸역꾸역 살아야 하는 게 억울했다. 나한테 태어나고 싶냐고 안 물어봤잖아... 요!
17~1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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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는 게 막 억울하다 느껴질 때 드는 감정들이 그대로 느껴지는 문장이다. 씩씩대며 하늘에 대고 따지는 모습도 연상된다. 그러면서도 마지막 반말에서 존댓말로 연결되는 부분은 어쩐지 웃음을 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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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고 나니 우리에게는 꿈만 꾸면서 살 수 있는 여유와 사치가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꿈보다는 생존이 더 어울리게 됐다는 것도, 그리고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다. 꼭 이루지 못해도 꼭 확실하지 않아도 그저 막연하게 꿈만 생각하며 보낼 수 있는 시절의 소중함 말이다.
2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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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리고 나서야 깨닫게 되는 소중함. 그 소중함의 가치를 우리는 되돌아보고 나서야 항상 깨닫는다. 어쩌면 그래서 우리는 항상 어른이 된 뒤에야 뒤늦게 꿈만 꿀 수 있었던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고 추억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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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오르락내리락하게 만들어진 게 인생인데, '넌 왜 그렇게 생겨먹었냐'고 매번 욕했으니 인생님도 쪼금 억울했겠다.
(...)
드디어 받아들이기로 했다.
인생은 본래 울퉁불퉁한 거라고. 꼭 드라마랑 비슷한 것 같다. 세상에 있는 드라마를 다 통틀어도 드라마 시작부터 끝까지 매화마다 감정선이 일정하고 똑같은 경우는 없다.
(...)
이제 나에게 힘든 일이 찾아오면 지금 내 인생 드라마에서 몇 번째 에피소드쯤 왔나 생각해 본다.
(...)
그랬더니 신기하게 조금 여유가 생겼다. 힘든 일이 생겨도 여기가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63~6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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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삶만 꿈꾸며 살다 보면 삶의 특정 단면만 그리워하다 불행해진다. '왜 그렇게 생겨먹었냐?', '내 삶은 왜 이럴까? 원망하고 불평하다 진짜 소중한 것들을 그냥 흘려보낼지도 모른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내 삶을 존중하고 받아들여보면 어떨까? 어쩌면 생각보다 꽤 괜찮은 삶이라고, 조금은 살맛 나는 세상이라고 느껴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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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보다 주관적으로 살면서 지극히 주관적인 희망을 가지고 살 거다. 처절한 상황이 오더라도 말도 안 되는 희망을 내 의지로 만들어 살아낼 거다.
7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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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희망이 보인다'라고 표현하지만, 희망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이다. 내가 희망을 가지기로 했다면 모두 다 희망이다. 말이 되든 안 되든 상관없이 내가 가지기로 했다면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고 판단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태어나서 자기 자신이 아닌 사람으로 살아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는데, 객관적으로 본다는 것이야말로 애초에 말이 안 되는 거 아닌가.
누가 머라고 하든 때로 눈치 없고 당당하게 희망을 그려보자. 희망을 가지는 것은 내 선택이고 내 의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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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어른들을 만나보니 나이를 먹는다고 꼭 현명해지는 건 아님을 느낀다. 학교 다닐 때도 학년이 올라간다고 해서 머리에 든 게 저절로 늘지 않더니 인생 역시 똑같은가 보다. 인생 역시 끊임없이 공부하지 않으면 겉모습만 어른인 것이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성숙함은 저절로 단 한 조각도 쌓이지 않는다.
8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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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정의에 대해 깊이 공감 가는 문장이다. 일상에서 쉽게 만나는 어른들의 모습을 살펴보면 진짜 어른인지 의심 가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는데, 나이만 먹은 무늬만 어른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어릴 때 생각했던 지혜로운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나이를 먹는 만큼 끊임없는 인생 공부가 뒷받침되어야 함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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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도 이 중고거래랑 비슷한 것 같다.
꼭 있는 것처럼 나를 유혹하지만 사실 이 세상에는 파격적인 지름길도 완전 공짜도 존재하지 않는다. 반드시 대가가 있다. 가격이 너무 과하게 싸면 사기인 핸드폰처럼, 살아가면서 지름길처럼 보이는 인생의 선택도 사실은 더 나락으로 가는 길일지도 모른다.
지금은 느린 것 같아도 차근차근 단계를 밟고 가는 게 나를 더 빨리 내가 원하는 곳에 데려다주고, 호구처럼 손해만 보는 것 같아도, 착하게 사는 게 인생의 좋은 것들을 얻어내는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10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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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결괏값은 나중에야 알 수 있어서, 때론 당장 눈앞의 이익이나 지름길을 선택하는 오류를 범할 때가 종종 있다. 꽃길이라며 굳게 믿고 걸었던 그 길이 사실 알고 보면 흙탕물이었음을 누가 짐작이나 했을까? 돌아가는 것 같고,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 같아 종종거리는 마음에 늘 불안감을 갖고 살았는데 오히려 그 길이 남들보다 앞서가는 길이었음을 알게 되는 희열을 그 누가 알 수 있을까?
어쩌면 내 속도대로, 차근차근 단계를 밟고 가는 것이 최고의 지름길이 아닐까 싶다. 시간을 들인 만큼 쌓은 인생의 내공은 그만한 가치를 가지고 있기에 생각한 것 이상의 열매를 가져다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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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면 좀 울어도 된다고 하고
힘들면 좀 힘들어해도 된다고 했으면 좋겠다.
그러면 언젠가 괜찮아질 때쯤 괜찮아지겠지.
16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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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몇 사람들을 통해 번진 힐링 포인트를 꼽자면 바로 이 지점이 아닐까 싶다. 마냥 견디라고만 했던 과거와는 다르게 '마음껏 울어', '힘들어해도 괜찮아'라는 말.
속시원히 마음의 짐을 털어내고 난 뒤의 개운함을 과거의 그들은 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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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요즘 힘들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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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하게 하고 싶은 건 아무도 없는 무인도에 가서 하늘을 바라보다 조용히 세상에서 사라지는 거라며 당장 뛰어내리고 싶다고 했다.
친구의 두 손을 꼭 붙잡으며 힘내라고, 그래도 열심히 해보자고, 너는 할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대신 이렇게 말했다.
"내가 같이 뛰어내려 줄게."
근데 어차피 뛰어내릴 거, 그러기 전에 네가 꼭 하고 싶었던 거 하고 와.
먹고 사느라 바빠서 못 본 드라마들, 전부 다 질릴 때까지 보고 와.
사람들 눈치 보느라 망설였던 꿈, 그거 후회 없이 좇아가 보고 와.
멀리서 보며 좋아했던 사람한테 밥이라도 한 끼 먹자고 하고 와.
울면서 다녔던 그 회사, 때려치우고 네가 좋아하는 여행도 다녀와.
(...)
그러고 나서도 살기 싫으면 내가 너랑 같이 가줄게.
근데 그 옥상에서 우리 치킨 하나만 배달시키자. 너는 딸기 라테 좋아하니까 내가 딸기 라테도 시켜 줄게. 우리 그거 질릴 때까지 그 옥상에서 거하게 먹고 그다음에 뛰어내리자.
(...)
아, 맞다. 미안한데 나 치킨 너무 좋아해서 질리려면 한 700년 정도 걸릴 것 같아.
(...)
같이 먹고 있다 보면 어느새 또 지나가고 행복한 날이 와 있을 거야.
286~28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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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힘든 순간, 함께 뛰어내려준다는 친구의 말 한마디가 건네는 무게감이 쿵 가슴에 내려앉았다. 세상에서 사라지기 전에 마음껏 해보고 싶은 거 다 해보고 그러고도 살기 싫으면 함께 가주겠다는 말만큼 큰 위로가 또 있을까?
그리고 나서도 옥상에서 좋아하는 것들 함께 먹으며 곁에 있겠다는 친구의 말은 어쩐지 펑펑 눈물이 날 만큼 삶의 용기를 북돋아 준다. '괜찮아질 거야', '모두 다 그러면서 살아'라는 허황되고 냉정한 말보다 어쩌면 우리는 가슴 따뜻해지는 이런 공감과 위로를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떠날 인생이라면 해보고 싶은 거 다 해보고, 먹고 싶은 거 다 먹으면서, 내 기억에 오래도록 남는 인생으로 살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유한한 삶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어쩌면 조금 더 과감하고 용기 있는 한 발짝이 아닐까 싶다.
희망을 갖는 것도, 용기를 갖는 것도 모두 내 선택이다. 어떤 삶을 살 것인지, 일상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 돌이켜보게 하는 문장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