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서점 북두당
우쓰기 겐타로 지음, 이유라 옮김 / 나무의마음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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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점 북두당과 고양이들의 사연을 통해 '이야기'가 지닌 매력과 힘을 흥미롭게 그려낸 소설!"



일본의 여느 소설처럼 잔잔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을 거라 예상하고 읽었는데, 의외로 이 소설은 보통의 일본 소설에서 잘 보이지 않는 날카로운 면모와 글쓰기에 대한 의미와 통찰에 대해 담고 있어 좀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적인 느낌이 아예 배제된 것은 아니었는데, 일단 화자로 '고양이'를 앞세우고 있었고, '고서점'을 배경으로 두고 있어 일본스러운 느낌은 그대로 느껴졌다.


또 일본적인 '신화'나 '미신'에 대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어 흔히 접하는 일본 소설의 감성적인 면모와 예스러움, 그리고 기묘함은 그대로 유지한 듯했다.


하지만 이야기하고자 하는 방향성이나 풀어가는 방식이 여타 일본 소설과는 달라 확실히 차별성이 느껴지는 소설이었다.


총 9장으로 구성된 이 소설은, 아홉 번째 생을 살고 있는 검은 고양이 쿠로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가 아홉 번의 생을 살며 겪었던 이야기를 비롯해, 마지막 생에서 북두당을 만나게 된 사연, 그리고 북두당의 주인 기타호시 에리카와 그 외 그곳에서 머물고 있는 네 마리의 고양이에 대한 사연까지 다루며 '작가'와 '글쓰기', 그리고 '이야기'에 대한 내용을 흥미롭게 담아냈다.


어쩌면 단순히 인간을 불신하고 경멸하는 쿠로가 북두당을 만나 행복한 묘생으로 아홉 번째 생을 마무리했다는 전개로 따뜻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로 끝맺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안에 여러 작가의 삶과 창작의 고통, 고양이들이 진명을 가진다는 의미 등에 대한 에피소드를 더 추가하여 '글쓰기'에 대한 어려움과 이야기가 주는 힘과 의미를 한층 더 부각시켰다.


그리고 어쩌면 저자 자신의 경험담일 수도 있는 내용을 담아 독자들이 '이야기'에 대해 더 생각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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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및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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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두당

-기타호시 에리카가 주인으로 있는 고서점

-작가와 함께 생을 살았던 네 마리의 고양이가 함께 머물고 있음

-북두당에는 저주의 주술이 걸려있음


■쿠로

-세 번째 생에서 만난 주인을 특별하게 여기고 있음

-그 외 나머지 생에서는 비참한 묘생을 보냄

-인간에 대한 불신이 큼

-평생 진명(진정한 이름)을 얻지 못함

-스스로 세 번째 생에서 만난 주인의 이름을 빌려 '긴노스케'라 부름

-현재 '아홉 번째' 마지막 생을 살고 있음

-기대 없이 독립적이고, 본능적으로 사는 것이 목표


■기타호시 에리카

-고서점 북두당의 주인으로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음

-고양이들에게 '마녀'로 불림

-고양이와 의사소통이 가능함

-자신보다 고양이가 우선인 사람

-여태껏 스물일곱 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지냈음

-평생 북두당에서 책에 둘러싸여 책에 홀린 채 살아가야 하는 저주에 걸림

-특별한 정체를 숨기고 30년마다 모습을 바꿔가며 150년 동안 북두당에서 살고 있음


■루루

-암컷 고양이

-담갈색과 흰색이 섞인 무늬

-인간처럼 두발로 걸으며, 서점 재고 관리를 맡고 있음

-여섯 번째 생을 살고 있는 중


■키누

-암컷 고양이

-흰색과 검은색, 갈색이 어우러진 삼색 무늬

-일곱 번째 생을 살고 있는 중


■카아

-수컷 고양이

-오렌지빛 털에 갈색 줄무늬가 선명

-기무라에 의해 사망함


■치비

-수컷 고양이

-검은색과 흰색 무늬가 대칭을 이루고 있음


■지이노

-하얀 털을 가지고 있음

-카아 사망 후 북두당에 들어온 고양이


■간자키 마도카

-북두당에 자주 오는 단골손님 중 하나

-일곱 살에 쿠로와 처음 알게 됨

-아주 어릴 때부터 책 읽는 것을 즐겨함

-작가를 꿈꾸지만 어떤 이유로 포기하게 됨


■기무라

-30대 중반으로 북두당의 단골 중 한 명

-기타호시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어 주말마다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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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략 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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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에는 "고양이는 아홉 생을 산다"는 속담이 있는데, 이처럼 이 소설에 등장하는 고양이들도 모두 아홉 번의 생을 산다.


이 중 전생에 일본의 대문호 나쓰메 긴노스케(나쓰메 소세키)와 함께 살았던 검은 고양이 쿠로는 여덟 번의 비참한 묘생을 끝내고 마침내 아홉 번 생을 살게 된다.


앞선 생을 모두 기억하고 있는 쿠로는 인간에 대한 불신과 혐오가 뿌리 깊이 박혀 있어, 누군가에게 기대거나 의지하기보다 스스로 살아가기를 택한다.


하지만 태어난 시골을 떠나 도시로 오자마자 어떤 강력한 이끌림에 휩쓸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북두당 앞에 당도하게 되고, 이로써 인간과 가까이하지 않겠다는 신념은 무너지게 된다.


하지만 쿠로는 처음부터 끝까지 당당하고 까칠한 면모를 보이며 기존 고양이들과는 다른 행보를 보이는데, 이 덕분에 어쩌면 멈춰 있던 운명의 수레바퀴가 이 이야기 이후에는 변화를 보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게 만든다.


쿠로가 도시에 당도하자마자 강력하게 이끌린 이곳은 고서점 '북두당'으로, 고양이들의 언어를 알아 듣고, 고양이들에게 '마녀'라 불리며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는 기타호시 에리카가 주인으로 있는 곳이다.


또 이곳에는 네 마리의 고양이가 함께 살고 있는데, 이들은 루루, 키누, 카아, 치비로 모두 전생에 작가와 함께 산 인연이 있는 고양이들이다.


이들은 처음부터 자신의 진명과 작가들과 살았던 삶에 대해 에리카에게 이야기하며 마음을 활짝 열었지만, 쿠로만큼은 이 모든 것을 비밀에 부치고 죽는 날까지 이야기하지 않았다.


신비한 고서점 북두당과 서점을 운영하는 주인 에리카는 특별한 비밀을 품고 있는데, 이것은 후반부에서 쿠로가 죽음에 다다랐을 때 밝혀지게 된다.


한편 북두당에 머물렀던 고양이들은 죽음을 앞두고 아마테라스(일본 황실의 황조신이자 신들의 군주)를 꼭 한번 마주하게 되는데, 이때도 쿠로의 까칠한 성격은 유감없이 발휘된다. 덕분에 이전까지와는 다른 미약한 변화의 조짐이 포착됨과 동시에 이 다음의 이야기를 기대하게 만든다.


북두당에는 많지 않은 단골손님들이 몇몇 있는데, 대표적인 인물로는 동네에 사는 아주 어릴 때부터 이 서점을 이용했던 '간자키 마도카'와 에리카에게 호감을 가지고 주 1회 방문했던 '기무라'를 꼽을 수 있다.


이들의 전혀 다른 행보도 눈여겨볼 만한데, 특히 마도카와의 에피소드 속에 등장하는 쿠로의 색다른 모습은 웃음을 자아냄과 동시에 절박함이 느껴진다. 여타 대상과는 다른 유일무이한 모습을 보여줬던 쿠로의 복잡한 심정과 마도카의 성장담을 주의 깊게 지켜보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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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남은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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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번째' 생에 이르러서야 겨우 깨달았다. 살아간다는 건 결국 허무한 일이라는 것을.

인간이라는 종족은 산다는 것을 괜히 복잡하게 생각한다. 배불리 먹고 실컷 자는 것만으로도 대부분의 동물은 충분히 만족스러워한다.

(...)

그런데도 인간은 대개 돈이 필요하다느니, 살아가는 보람이 어쩌니 하며 쓸데없이 키를 재고, 자꾸만 뭔가를 더 바란다. 진심으로 고통받고 있는 인간이 그들 중 얼마나 될지 솔직히 의심스럽다.

1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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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번의 생을 반복한 쿠로는 이제 시니컬한 태도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살아간다는 것이 허무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은 그는 복잡하게 사는 인간들이 조금은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고양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인간 세상에 대한 견해지만, 또 한편으로는 틀린 말도 아닌지라 우리가 고통이라 말하는 것들이 사실 진짜 고통일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게 됐다.


너무 재고, 따지느라 우리 스스로를 고통에 빠뜨린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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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름한 가로등 불빛 아래서 책에 몰두해 있던 그 모습. 문학인지 뭔지에 온통 마음을 빼앗긴 채 그 외의 모든 걸 내던져도 좋다는 듯한 그 태도. 정신없이 글자를 좇으며 누군가가 만들어낸 상상의 세계 속에서 꿈을 꾸고 동경을 품는 그 뜨거운 눈빛.


그 모습은 어쩔 수 없이 나를 집으로 들였던 그 신경질적인 사내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7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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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카가 독서하는 모습을 보고 유일하게 자신이 주인으로 섬기고 싶었던 그를 떠올린 쿠로. 어쩌면 그래서 작가이기를 포기한 그녀를 돕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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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이라는 세계를 이해하면 할수록 인간이란 존재는 지독히 어리석게 느껴진다. 그저 먹고 자며 살아가기만 해도 충분할 텐데, 굳이 스스로를 괴롭게 만들고, 몸부림치며 심지어는 자신의 생명을 갉아먹기까지 한다. 정말이지 이해하기 힘든 생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고통을 견디며 창작을 향해 나아가는 인간들의 얼굴은 어쩐지 눈부시다. 그 사내가 그랬던 것처럼.

13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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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이라는 세계에 대해 느끼는 양가감정을 표현한 문장으로, 이 때문에 어쩌면 쿠로는 자신이 지켜 온 삶의 태도를 잠시 내려놨는지도 모르겠다.


누구에게도 자신을 만지도록 두지 않던 쿠로가 먼저 다가서고, 아양을 떨고, 누군가를 돕기 위해 나서는 일은 모두 창작이라는 세계를 이처럼 깊이 이해했기 때문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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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북두당이야. 다른 데랑 달라. 내가 어떤 과거를 살았든, 다른 누가 어떤 삶을 살았든, 전혀 상관없어. 중요한 건 단 하나, 지금뿐이야."

19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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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두당의 다른 고양이들과 끝까지 다른 삶을 살았던 쿠로지만 유일하게 그가 북두당에 북며들은 순간을 꼽자면 바로 이 순간이 아닐까 한다.


계속 나는 '아홉 번째 생이야'를 남발하던 쿠로.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는 과거 누구와 어떤 삶을 살았든 현재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일까? 그는 자신의 입으로 위와 같이 이야기한다. "중요한 건 단 하나, 지금뿐이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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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에게 글을 쓴다는 행위는 곧 치유다. 마음의 상처를 글이라는 형태로 바꾸어 바깥으로 끌어내고, 그것을 객관적으로 마주하며 천천히 받아들이는 과정. 그렇게 먼저 자신을 치유하고, 언젠가는 또 다른 누군가의 마음에도 가닿게 된다. 그리하여 글쓰기는 마음의 안녕과 평온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 된다.

279~28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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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단순히 아홉 번의 생을 사는 고양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 아니다. 그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면 글을 쓰는 행위에 대한 이야기를 돌려 돌려 하고 있는데, 북두당의 주인 에리카, 북두당의 단골손님 마도카, 그리고 북두당이 머무는 고양이들이 과거 함께 살았던 작가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에리카의 손을 빌려 자신의 이야기를 쓰게 만든 쿠로가 그렇다.


이들은 내면에 다들 깊은 상처를 간직하고 있는 인물들로, 글을 쓰는 행위를 통해 자신은 물론 또 다른 누군가의 마음까지 치유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 책에는 글쓰기와 아주 밀접한 장소에서 오랜 시간 살고 있지만, 정작 자신의 글은 쓰지 못하는 형벌을 받는 이와 그리고 집안 사정으로 자신의 꿈을 접은 소녀, 그 외 형편없는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꿈을 위해 끝까지 글을 썼던 여러 작가들의 모습이 그려지면서 이야기란 무엇이고, 글쓰기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지를 색다른 방법으로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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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충동을 타인의 마음에 정면으로 부딪쳐 평생 지워지지 않을 깊고 선명한 흔적으로 남기는 일. 그런 공격성마저 내포한 표현 방식에 매료되어 기꺼이 그 가시밭길을 선택하는 바보 중의 바보들. 글을 쓴다는 건 어쩌면 그런 일인지도 모른다.

37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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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중의 바보'와 같은 다소 격한 표현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해 깊은 애정을 담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문장이다.


후반부에 들어서면 글 쓰는 것에 대해 망설임과 두려움을 갖고 있던 이들이 하나둘 정면으로 부딪히는 모습들을 목격하게 되는데, 이를 보다 보면 이들이 살아온 흔적과 내면에서 뚫고 나오는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고 써 내려가는 모습들이 절로 그려진다.


그래서 그것을 지켜본 쿠로는 이렇게 표현한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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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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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등장하는 몇 가지 키워드를 살펴보면, 이 책이 단순히 고서점 혹은 고양이들의 이야기만을 담고 있는 소설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북두당에는 전생에 위대한 작가들과 함께 살았던 고양이들만 모이도록 인과 되어 있다는 것

▶그런 고양이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책방 주인

▶괴성=책의 신

▶유명한 작가들이 대거 등장

▶어린 시절부터 단골손님이었던 마도카가 작가를 꿈꾸다는 점


이런 내용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읽는 행위'에서 그치지 않고 '쓰는 행위'로까지 연결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북두당에 머무는 고양이들의 전생 이야기를 통해 그들과 함께 했던 작가들이 창작활동을 하는 데 있어 얼마나 큰 고통을 겪었는지 풀어내면서 그들은 왜 글을 쓰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게 한다.


나는, 우리는 왜 고통을 인내하면서까지 글을 쓰는가?


개인적으로는 끝까지 시니컬했던 쿠로가 아마테라스를 만난 이후의 이야기가 더 궁금해졌다. 쿠로로 인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 수레바퀴가 과연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기대를 품게 했기 때문이다.


특히 유토피아이자 주술적 감옥이었던 '북두당'의 봄과 그곳을 150년 동안 지키고 있던 에리카의 성장이 어떤 식으로 꽃피울지 짐작이 되지 않아 더 기대감을 품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고양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대를 이어 '작가'들에 대한 삶의 기록을 남겨왔던 북두당. 이후에는 과연 어떤 변화를 맞이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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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트라맨을 위하여 - 넥서스 경장편 작가상
신보라 지음 / &(앤드)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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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녀가 되고 싶어 하는 울트라맨! 그 절박한 외침이 의미하는 바는?"



호기심을 자아내게 했던 책 제목과 만화 캐릭터 표지 디자인 때문에 만화적 요소가 결합된 소설이지 않을까 예상했는데, 막상 마주한 스토리는 생각보다 무겁고 슬픈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특히 약간 우스꽝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던 '울트라맨이 되고 싶어'라는 말속에 담긴 의미가 너무 절박한 외침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는 안쓰러운 마음과 함께 더 먹먹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암울한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그리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초인적인 힘을 가진 울트라맨이 되고 싶었던 한 소녀!


망상인지 현실인지 혹은 착각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전반부를 지나 후반부에 이르게 되면, 현실 속에 아주 참혹한 모습으로 소녀는 세상에 드러나게 된다.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하는 세상 속에서 억울함을 홀로 견디며 살아야 했던 소녀, 그리고 그런 그녀의 이야기는 어쩌면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너와 나의 이야기를 대변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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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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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15세 소녀

-전학 첫날 메리를 만남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 그리고 그로 인해 상처를 받은 엄마 사이에서 홀로 생존 중


■우주의 엄마

-남편이 사망한 이후 알코올 중독으로 죽어가고 있음


■성태

-우주의 아빠

-화물트럭 운전사였던 아버지는 외제차와 충돌해 사망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어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살인자로 낙인찍힘


■메리

-15세 소녀

-본명: 문형은

-엄마로부터 학대 당하고 있음

-학교에서는 왕따

-엄마의 학대를 외부에 숨기고 유일한 버팀목인 엄마의 그늘에서 여전히 생존 중


■곽태주

-메리의 엄마

-기분이 나쁘면 누구든 머리를 쥐어뜯음

-풍채가 좋음(170cm가 넘는 키에 몸무게는 약 90kg 정도)

-낭만 상가에서 비디오 감상실을 운영 중


■정심 아저씨

-노래방 '환락송'의 주인

-중국인으로 추정

-노래방에 갈 때마다 늘 우주와 메리에게 단팥빵 하나를 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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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략 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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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는 전학 간 첫날 메리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둘은 절친한 친구 사이가 된다. 우주는 앞선 학교에서 폭력 사건으로 인해 강제 전학을 당하게 되는데, 사실과 다른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아이들을 참지 못해 벌어진 일이다.


한편 메리는 학교에서 왕따로, 그래서인지 함께 지내는 우주 또한 덩달아 친구들과 거리감이 생긴다. 그래서 둘은 더 함께 보내는 날이 많아졌는데, 이 덕분에 우주는 메리가 하나뿐인 엄마로부터 학대당하고 있다는 비밀까지 알게 된다.


둘은 노래방과 비디오 감상실, 메리의 집을 전전하며 망상과 착각, 현실 사이를 오가며 시간을 보내는데 그러다가 우주는 곳곳에서 검은 구멍을 발견하게 된다.


엄마 침대가 있는 곳, 노래방의 구석진 장소에서 그것들을 뚫어지게 쳐다보다 이내 그 구멍 안에서 검은 어둠에 둘러싸여 시간을 보내기에 이른다.


텅 비어 있는 건지, 꽉 차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그 구멍에서 우주는 양가감정을 느낀다. 어쩌면 그것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파괴된 가정 속에서 자란 우주가 마주해야 했던 현실의 모습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메리와도 관계가 소원해진 어느 날 사망한 엄마와 그 옆에 있던 우주가 사람들에게 발각된다. 이 일로 우주는 조사를 받게 되고, 조사가 끝난 뒤 마주한 현실 속에는 단팥빵을 들고 서 있는 정심 아저씨가 있었다.


이후 우주는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갈 결심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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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남은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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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태어나서 한 번도 고통스럽지 않은 채로 살아가는 생물은 존재하지 않아.

(...)

너도 아프니?

하고 내가 묻자

조금.

하고 메리가 제 코끝을 손등으로 비비며 대답했다.

1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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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에 등장하는 소녀 둘은 모두 지독한 아픔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일까? 보통의 15살 아이라면 하지 않을 법한 이야기를 서로 건네며 공감과 이해를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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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천천히 도천동을 향해 걸었다.

도천동에는 아파트 단지가 하나 있었다. 그곳은 또 두 집단으로 분리되었는데 1동과 2동은 매매 단지였고 3동은 임대 아파트 단지였다.

나는 1동에 살았다. 학교 친구들은 대게 1동과 2동에 살았다.

메리는 임대 아파트에 살았지만, 매번 나와 함께 1동의 입구로 들어섰다.

22~2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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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돈으로 나뉘는 이분법적 세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는 대목이다. 메리는 학교에서 유일하게 3동 임대 아파트에 살고 있는 아이로, 왕따를 당하고 있다.


아빠의 사고 보상비로 우주는 1동에 살고 있지만, 실상 속을 들여다보면, 메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어쩌면 그래서 둘은 친구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3동 임대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세상에 속하고 싶어 늘상 1동의 입구로 들어서는 메리의 심정도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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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것이 어둠이구나.

나는 중얼거렸다.

아무런 빛도 나오지도, 들어서지도 않을 어둠.

어둠이란 구멍과 비슷했다. 텅 비어 있는 건지, 꽉 차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상태.

4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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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공허, 혹은 외로움, 어쩌면 현실을 반영한 전체를 이야기하는 것일 수도 있는 어둠과 구멍.


아빠가 돌아가신 이후 우주는 모든 것을 잃었다. 가족도, 사랑도, 보살핌도. 그래서 어쩌면 어둠과 구멍이 그토록 끌렸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현재를 나타내는 상태이자 또 내가 채우고 싶은 욕망을 드러내는 것이라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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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에 보이는 문고리가 약했다. 문을 두세 번만 흔든다면 곧장 열려버릴 것 같았다.

왜 내부여야만 할까. 그럼에도 다를 게 없는데.

(...)

나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오줌을 마저 눴다.

밖에서 들리는 조그만 소음에도 문고리를 휙 낚아챘다. 언제까지고 이 문고리를 쥐고 살아야 하나, 생각하면서.

4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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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고리는 현재 우주가 겨우 붙잡고 있는 내면의 아주 약한 고리를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곧장 누군가 부숴버리면 언제고 열릴 수 있는 문고리지만 그럼에도 불안할 때마다 꼭 붙잡고 있는 문고리. 그것은 나를 버티게 하는 힘이었다.


그래서일까? "언제까지고 이 문고리를 쥐고 살아야 하나"라는 마지막 문장은 스스로를 언제까지 지켜내며 살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의 소리를 내뱉는 것 같아 더 안타깝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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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누구의 잘못도 없는 반복 속에서 자랐다. 그것은 굉장히 순도 낮은 자람이었다.

5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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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어처구니없는 죽음과 돈과 권력에 의해 뒤바뀐 현실. 이로 인해 우주의 가족은 파괴되고, 이 때문에 우주는 결핍 속에 자라게 된다.


그 속에 우주 가족의 하나도 잘못은 없다. 하지만 우주는 아빠에 이어 엄마까지 잃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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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하루에 여섯 가지의 약을 먹어야 했다. 그것은 분홍색과 노란색, 흰색이 섞여 있어 어마는 마치 봄을 먹는 것 같았다.

5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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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잃어버린 우주가 유일하게 봄을 맞이할 수 있는 순간은 어쩌면 엄마가 여섯 가지의 약을 먹을 때가 유일했을지도 모르겠다. 이 때문에 더 슬프게 다가왔던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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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사고는 '포르쉐 충돌사고'라는 내용으로 헤드라인에 떴다.

(...)

어디에도 상대편 운전자의 음주 사실은 적혀 있지 않았다.


포르쉐 운전자의 과실에 대한 기사가 떴을 때 나는 환호성을 질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졌다.

사라지는 글처럼 포르쉐는 빠르게 잊혀졌다.

(...)

아버지의 유물처럼 아버지의 기사는 끝까지 남아 있었다.

5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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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쉐를 모는 경제적으로 부유한 상대편 운전자의 음주로 인해 아버지는 불에 타 사망하게 된다. 하지만 이상하게 이 모든 내용은 사실과 다르게 알려지게 된다.


잠시 잠깐 포르쉐 운전자의 과실에 대한 기사가 뜨기도 했지만, 그 내용은 금방 세상에서 사라졌고 오로지 아버지의 사고 내용만 유물처럼 남아 우주와 그녀의 가족들을 괴롭히게 된다.


어쩌면 우리가 사는 세상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억울한 사람은 말이 없고, 넘치듯 많이 가진 사람은 과오가 사라지는 세상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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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울트라맨이 되고 싶다.

진짜 울트라맨이 되고 싶어.

어디서든 어깨를 움츠리지 않을 수 있게 단단한 갑옷을 가진 울트라맨이 되고 싶다.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 존재가 되고 싶다.

무언가를 쓰다듬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깊숙이 파버릴 수 있는 단단한 손가락을 가지고 싶다. 열 개, 스무 개, 아니, 셀 수조차 없는 수많은 손가락을.

6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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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장에서 우리는 우주가 절실하게 바라는 모든 것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왜 울트라맨이 되고 싶은지, 그것이 가진 메리트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통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말이다.


가족을 잃고 홀로 세상과 맞서야 했던 우주는 늘상 움츠리며 살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 자신을 든든하게 보호해 줄 단단한 갑옷이 필요했을 것이고, 또 자신을 두고 사라진 부모님을 대신해 사라지지 않는 존재가 되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을 향해 삿대질하고 상처 준 사람들을 단단한 손가락으로 깊게 파 버리고 싶지 않았을까?


자신을 지킬 힘도 없었던 우주가 유일하게 혼자 망상하며 할 수 있었던 일은 어쩌면 이렇듯 울트라맨이 되고 싶다는 외침이 다였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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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평화로웠다. 아버지와 등가교환 한 집. 아버지의 죽음을 놓고, 포르쉐와 엄마의 타협으로 가질 수 있었던 집. 그러므로 아버지처럼 평화로운 집.

6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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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와 반어법을 활용해 이야기하고 있는 '평화로운 집'은 죽음과 고요함을 상징한다. 죽은 자로 인해 지어진 집, 그리고 죽어가는 이가 머무는 집. 그래서 고요하고 평화로울 수밖에 없는 집.


이 집에서 생명의 흔적을 찾기란 쉽지 않아. 아버지처럼 이미 죽었거나 죽어가고 있는 사람만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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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사각의 공간이었다.

나는 그 안에서 무언가를 꾸역꾸역 미워했다.

무엇을 미워하는지도 모르는 채로.

언제까지고 사방이 꽉 막힌 이곳에서 눈을 뜰 것 같은 막막함. 언젠가는 이 집이 흔들려 천장이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모든 것이 주저앉아 내리면, 2층과 3층, 16층까지 모든 사람들이 내 위로 차곡차곡 쌓이겠지. 할멈이 파는 과일 바구니 속의 과일처럼. 가장 썩은 것은 가장 아래로.

나는 열여섯 가구의 사람들을 모두 등에 업은 채 사는 기분이 들었다.

6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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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심정을 아주 잘 드러낸 문장이 아닐까 싶다. 사각의 공간 속에 빠져 허우적대며 막막함과 책임감, 두려움, 불안함 속에 매일을 사는 기분.


이것이야말로 우주가 가족을 잃고 매일을 사는 심정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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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에는 아무것도 없어. 그러니까 구멍인 거지.

나의 말에 메리는 정답이 아니라는 듯 고개를 세차게 휘저었다.

구멍에는 모든 것이 있지. 그러니까 구멍인 거야.

메리가 말했다.

8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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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히 다른 관점과 시각을 우주와 메리의 입장을 통해 극과 극으로 보여주고 있는 문장이 아닐까 한다. 우주는 구멍을 통해 공허함과 결핍을 느낀다. 반면 메리는 구멍 안에 모든 것이 있다 느낀다.


이 극명한 차이의 원인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다, 어쩌면 메리는 구멍을 탈출의 도구로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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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들 앞으로 다가가 두 팔을 벌렸다.

나를 안아주세요.

나를 살려주세요.

나를 그저 사랑만 해주세요.

그들이 동시에 다가왔다.

19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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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상 혹은 착각 속에서 헤매며 우주는 사랑을 간절히 바란다. 꿈인지 현실이지 구분되지 않는 알 수 없는 곳에서 안아달라, 살려달라 강렬하게 외치자 그들은 마침내 여기에 응답해 준다.


우주의 내적 심리가 얼마나 불안하고 결핍이 심한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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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가 자신을 파괴하는 것이 살아남는 방식이라면, 나는 이제 어디든 끼어들고 달라붙는 방식을 택하기로 했다.

단팥처럼, 이가 시릴 만큼 달지 않을 정도로.

20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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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사망이 사람들에게 발각된 이후 우주는 조사를 받게 된다. 조사를 마치고 세상 밖으로 나온 우주는 앞선 삶과는 다른 삶을 살리라 굳게 결심한다.


메리의 방식과는 다른, 보다 적극적인 방법으로 살아갈 결심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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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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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의 노래 '울트라맨이야'에서 모티브를 얻어 쓰게 되었다는 이 소설은 가진 것 없고 애정이 결핍된 소녀 우주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남들과 똑같은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그녀는 불우한 환경에서 홀로 구석진 곳만 바라보며 산다. 사람들은 긍정과 희망을 강요하지만, 현실에서 그것을 찾기란 어렵다.


그렇게 늘상 버겁고 답답한 삶을 이어가던 우주는 어느 날 이미 오래전에 사망한 엄마와 함께 발견되는데, 이 일을 계기로 그녀는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갈 결심을 하게 된다.


어쩌면 그 이유에는 스스로 울트라맨이 되었다고 믿게 되어서는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원소 중에 최고는 바로 사랑이라고 믿었던 소녀 우주, 그녀는 엄마의 죽음 이후 진짜 혼자가 되면서 격렬한 위기의식을 느끼게 되었을 것이다.


이로 인해 모두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망상(혹은 착각)을 믿게 되면서 다른 방식으로의 삶을 선택하게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아이는 혼자 클 수 없다. 어쩌면 그래서 진짜 혼자가 된 아이는 망상과 착각을 통해 새로운 무엇을 불러들였는지도 모르겠다.


어느 순간 우주는 깨달을 것이다. 세상에 울트라맨은 없다는 사실을. 그때쯤이면 그녀는 아마 홀로 남겨진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그리고 그만큼 훌쩍 자라 어른이 된 자신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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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제 같은 인생을, 축제 같은 인생으로
이서원 지음 / 레디투다이브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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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인생 후반전을 위한 통찰의 문장 70"



한 번씩 나보다 앞서 인생을 산 사람들이 남긴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큰 도움이 될 때가 있다. 돌아서서 '그러지 말걸' 하는 후회의 빈도수가 줄어들기도 하고, 또 삶의 무게에 짓눌려 불안함과 막막함이 밀려올 때 덜 헤매기도 한다.


어떨 때는 잊고 있던 현재의 행복을 찾기도 하고, 다시금 인생의 방향과 목적을 제대로 상기할 때도 있다. 그러고 보면, 지금 시대에 없는 어른의 역할을 책이 대신해 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나와 상관없는, 특정 계층을 타깃으로 하는 책이라 할지라도 일부러 찾아 읽는 편이다. 그리고 그 책을 통해 내가 지금 올바르게 나아가고 있는지를 점검하고 부족한 부분은 채워 넣으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하다 보면, 그들의 나이쯤 되었을 때 조금 더 괜찮은 나, 괜찮은 어른이 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말이다.


총 7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저자가 여러 경로를 통해 모은 명언 중 특히 나이 오십에 새기면 좋을 문장들만 엄선해 엮은 에세이다.


단순히 명언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저자만의 생각과 경험을 덧입혀 이해와 공감력을 끌어내서인지 확실히 더 감정적으로 깊이 다가오는 느낌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숙제 같은 인생'이 '축제 같은 인생'이 되기를 바란다고 전하고 있는데, 이 책에 담긴 명언들을 가슴 깊이 새기고 관점을 달리하다 보면 우리 모두 중년 이후의 삶이 '축제 같은 인생'이 되지 않을까 한다.


수집된 명언의 출처를 살펴보면, 자기 자신을 비롯해, 이웃 주민, 명사 등 다양한데 이를 통해 평소 저자가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은 물론, 관찰력이 남다름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모은 명언들을 우리 삶에 잘 적용하여 앞선 인생에서 가지고 있던 나쁜 습관이나 시선, 생각에서 벗어나 더 지혜로운 노년을 맞이하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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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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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우리 가족 상담소 소장으로 30년 넘게 상담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책 속 경구는 물론 내담자나 이웃 주민, 출근길 택시 기사가 무심코 흘린 명언 등을 모으고 그에 관한 자신만의 성찰을 기록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이 책에는 그렇게 모은 수천 개의 명언 중 특히 중년의 명랑한 인생에 힌트가 될 만한 것들을 엄선하여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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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남은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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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내는 자는 언제나 가난하다

-클라우디아누스-



100세 시대의 절반에 해당하는 오십이 되면 서서히 욕망을 정리정돈해야 한다. 정리란 있는 것을 없애는 것이고, 정돈이란 있는 것을 제자리에 두는 것이다. '욕망을 정리한다'는 것은 욕망 가운데 욕심을 없앤다는 뜻이다. 욕심은 되지도 않는 일을 바라는 것이다. 오십 이후에는 되지도 않을 돈 욕심과 사람 욕심을 버리는 태도가 필요하다.

1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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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절반 오십이 되면, 앞서 살았던 절반의 삶과는 다른 방식으로의 접근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중 하나는 바로 '욕심'을 버리는 태도 아닐까?


젊은 날에는 한껏 돈 욕심, 사람 욕심을 부릴 수 있다. 그런 경험도 어느 정도 필요하니 말이다. 하지만 인생 후반부에 들어서까지 동일한 방식으로 삶을 대하다 보면 결국 남는 것은 결핍과 욕망뿐이다.


만족을 모르는 삶을 살고 싶지 않다면, 오십에는 욕심을 버리는 연습을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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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지 않고 말하는 것은 조준하지 않고 사격하는 것이다.

-W.G. 베넘-



어른이란 누구인가. 말할 때마다 그 말이 말을 들을 사람에게 미칠 영향을 잘 생각한 후 말하는 사람, 그 사람이 진짜 어른이다.

3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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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어갈수록 귀는 더 활짝 열어두고, 입은 닫는 것이 좋다. 그런데 주변을 둘러보면 희한하게 반대인 경우가 더 많다.


지혜로운 어른이 되고 싶은가? 그렇다면 내뱉는 말의 경중과 신중함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고 내뱉는 습관을 기르자. 그것이야말로 지혜로운 어른으로 가는 길이자 스스로가 대접받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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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날 내가 한 건 다 잘한 거다.

-F동 이모-



미래를 바꾸기 위해선 과거를 바꿔야 한다. 나의 과거를 깨끗하게 뽀송뽀송하게 세탁하고 나자 눈부신 미래가 눈앞에 펼쳐졌다. 신중하게, 그리고 신나게 순간의 좋은 선택을 내리며 오늘을 바람 잘 드는 빨래걸이에 거는 하루하루가 행복해졌다.

3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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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덮어두었다고 해서 그것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마음속 가장 밑바닥에 숨어 있다가 언제고 우리 삶을 망쳐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미래를 바꾸고 싶다면 내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어둠부터 깨끗이 청산하자. 관점을 바꿔도 좋고, 아픔을 꼭 끌어안아주는 방식도 괜찮다.


그렇게 과거를 깨끗하고 뽀송하게 세탁해야만 우리는 더 나은 선택과 방법을 찾을 수 있다. 그동안 사느라 바빠 고통과 슬픔을 내 안에 꼭꼭 감춰 두고 있었다면, 이제 그것들을 말끔히 놓아주고 순수한 행복의 길로 들어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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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릇의 치료법은 반대 버릇이다.

-에픽테토스-



지금 내가 겪는 고통은 내 버릇의 산물인 경우가 많다. 버릇의 치료법은 반대 버릇이다. 오십이 된 지금 내 버릇 때문에 힘들다면, 한번 돌이켜보자. 삶이 오늘부터는 반대 버릇을 가져보라는 메시지를 나에게 전하고 있는 건 아닐지.

6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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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우리를 고통 속으로 몰아넣는 대다수의 원인은 우리 자신인 경우가 많은데, 특히 잘못된 버릇이 장기간 쌓이다 결국 파멸로 이어지는 경우가 그렇다.


이를테면 괜찮지 않은데 스스로 계속 괜찮다고 되뇌거나 꾹꾹 참는 버릇의 경우 지속적으로 쌓이다 보면 고통을 넘어 우울감 및 큰 병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그러니 인생의 절반이 흘렀을 때, 무엇 때문에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면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반대 버릇을 가져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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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우리가 기대하는 것을 우리에게 줄 의무가 없다.

-마거릿 미첼-



인생은 주사위다. 무슨 수가 나올지 알 수 없다. 무슨 수를 나오게 하려고 애쓰기보다 무슨 수가 나왔을 때 어떻게 할지 고민하는 것이 지혜로운 처신이다. 인생은 우리에게 기대하는 것을 줄 의무가 없다는 걸 알 때쯤, 우리는 철이 들기 시작하고 오십이 된다.

7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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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은 인생의 주사위를 던지고 기대하는 바가 나오기를 고대하다가 결국 실망하고 고통에 빠지는 것이 기본적인 패턴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도무지 행복을 찾을 수 없다.


반 평생을 그런 방식으로 살아왔다면, 오십 이후에는 관점을 바꿔 무슨 수가 나오든 그것을 내 방식대로 해결할 방법을 모색하는 게 더 현명한 처신이지 않을까 한다.


수를 예상할 수 없는 것! 그것이야말로 인생의 참 묘미이니, 오십 이후부터는 그 흐름에 따라 흘러가 보자. 어쩌면 그때부터 진정한 인생의 참맛을 엿볼 수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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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어 어른이 아니라 나아져서 어른이다.

-이서원-



나이가 많다거나 경험이 많은 건 그 자체로는 의미가 없다. 세월과 경험을 통해 사물과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인격이 나아졌느냐가 중요하다.

(...)

숨만 쉬어도 먹는 게 나이다. 나이는 벼슬이 아니다. 벼슬은 '어떻게 숨을 쉬었느냐'로 판가름 난다. 나이가 들어 어른이 아니라 나아져서 어른이다.

220~22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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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나이 많음'으로 우쭐거리고 대접받기를 바라는 어른들이 너무 많다. 나이 먹은 게 벼슬도 아닌데, 왜 그걸로 대접받기를 바라는지 모를 일이다.


어른 대접을 받고 싶다면, 먼저 생각을 키우고 인격의 폭을 확장하는 것부터 시작해 보자. 세월과 경험의 노하우를 덧입혀 종지 그릇을 더 큰 사발 그릇으로 키우다 보면, 어느새 진정한 어른이 되어 있을 것이다.



=====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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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쓴 기계도 중간에 한 번은 부품을 갈아 끼워 줘야 잘 굴러간다. 하물며 백세를 사는 인간도 마찬가지 아닐까? 인간에게 있어 부품은 사고, 관념, 생각의 전환이라 말할 수 있는데, 이것들을 재점검하고 정비하기 위해 가장 적절한 나이는 바로 오십이 아닐까 한다.


중년에 들어서면 많은 것들이 전반전과 달라지는 양상을 보이는데, 일단 체력이 떨어진다. 그리고 경제력과 경험치는 올라간다. 반면 고집이 세지고 오랜 관습에서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하게 된다.


만약 이것을 무시하고 그대로 노년까지 살아간다면, 우리는 어쩌면 그저 나이만 먹은 어른으로 남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쯤에서 재점검을 통해 우리의 사고와 습관을 새롭게 프로그래밍한다면, 우리는 진짜 어른으로 거듭날 수도 있다.


인생 숙제를 풀기 위해 전반전을 아등바등 살았다면, 후반전은 조금 다르게 살아보자. 관점과 방식을 바꿔 조금 더 쉽게 풀 수 있는 방식을 찾는다거나, 아니면 다른 선택지를 통해 파도를 비켜가는 방법을 선택할 수도 있다. 그리고 남는 시간은 휴식을 취하거나 인생을 즐길 다른 방법을 모색할 수도 있다.


이런 삶을 위해 저자가 수집한 인생 명언을 백분 활용해 인생의 절반, 오십에 적용해 본다면 조금 더 축제 같은 인생을 살 수 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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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한 행복 - 사는 힘을 기르는 수수한 실천
김신회 지음 / 여름사람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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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하고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쌓아가는 것이 지니는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



혹여 똑같이 반복되는 하루에 지쳐 지겨움과 무기력함을 느끼고 있는가? 그렇다면 잠들기 전 이 책을 잠시 펼쳐 읽어보자. 당신이 허무하다 느끼는 똑같은 하루가 사실은 얼마나 소중한 하루인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저자는 망가져가는 자신을 다잡기 위해 하루의 루틴을 만들고 그에 따라 반복하는 삶을 꾸준히 이어나간다. 덕분에 반려견 '풋콩이'도 저자 자신도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된다.


의식하지 않아도 반복적으로 짜인 일상 덕분에 프리랜서로 살아가는 저자의 삶은 이제 아침부터 저녁까지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별것 없다고 생각한 일상이 꾸준함이라는 이름 아래 선물같이 다가온 것이다. 저자는 이 덕분에 단단히 살아낼 수 있었으며, 이것이야말로 '자신'과 '오늘'을 만드는 토대가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총 4부로 구성된 이 책은, 저자 자신의 반복되는 일상에 대한 기록으로, 별것 없는 자신의 오늘을 존중하기 위한 노력과 좋아하는 것을 길고 오래 즐기기 위한 실천을 담고 있다.


그래서일까? 읽다 보면 평소 우리가 미처 소중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아주 사소한 실천들이 새삼 중요하게 다가온다.


아침밥 챙겨 먹기, 반려견과 산책하기, 0.5인분의 식사로 과식하지 않기, 한두 달에 한 번은 나를 위한 휴식 시간 주기 등등 저자가 꾸준히 실천해 나가는 노력과 루틴들이 살펴보면서 그것이야말로 사실은 우리를 지탱하는 힘이었구나 깨닫게 된다.


여기에 더해 저자는 일상의 활력을 더하기 위한 작은 시도도 곁들이는데, 이것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알아가는 시간인 동시에 새로운 풍경을 만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준다.


이 때문일까? 이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조금 더 꾸준하고 느긋하게 매일의 '오늘'을 즐겨 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됐다. 소소하고 소박한 일상 속에 숨어있는 행복을 찾아 누려 봐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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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 깊게 다가온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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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갈수록 꾸준함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꾸준함이란 무엇일까. 묵묵함 또는 우직함. 무엇보다 성실함으로 대표되는 이것의 힘을 알면서도 삶에 적용하기 쉽지 않다. 특히 일에 있어서는 더 그렇다.


그렇지만 좋아하는 것을 오래오래 즐기기 위해서는 꾸준함의 힘을 믿어야 한다. 내가 반복해온 일을 가볍게 여기지 않아야 한다. 처음을 기억해 내는 일도 도움이 된다.

1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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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사람들이 가장 실천하지 못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꾸준함'이 아닐까 한다. 저자는 꾸준함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오래 즐기기 위해 특히 더 이것의 힘을 믿고 실천해야 한다 전하고 있다.


생각해 보면, 꾸준함이야말로 우리 삶을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자 힘이다. 그러니 작심삼일마다 다짐하며 꾸준함을 계속 이어 나가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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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 손에 붙은 물티슈를 핑계로 할 일을 미루지 않았다. 평소처럼 하루를 보냈다. 늘 사소한 것에 전전긍긍하며 평정심을 찾지 못해 괴로웠는데, 그럴 땐 그저 눈앞의 할 일을 하면 되는 거였다.


묵묵히 하루를 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말끔해진다. 그게 바로 자연 치유력. 시간이 해결해 줄 거야, 라는 말의 의미가 거기에 있었다.

5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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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나게 중요한 말이다. 사소한 것에 사로잡혀 마음과 머리가 어지러울 땐 그저 눈앞의 할 일을 하며 묵묵히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그렇게 몸을 움직이고 할 일을 하나씩 해치우다 보면, 어느새 복잡한 일도 자연적으로 치유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니 시간의 힘을 믿고, 평소처럼 하루를 보내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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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 솔직한 사람은 남을 속일 수 없고, 자신에게 떳떳한 사람은 남에게도 떳떳하다. 머리로는 알아도 실천하기 어려운 솔직함과 자신감은 깨끗하게 살겠다는 다짐과 실천에서 온다.

25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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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현실적인 이유로 떳떳하고 솔직하게 사는 사람이 손해 본다는 인식이 팽배하지만, 역시 이것을 실천하며 사는 것만큼 당당한 삶은 없는 것 같다.


내 스스로가 떳떳한 삶을 살아야만 가능한 이것을 위해 오늘부터라도 자신에게 솔직한 사람이 되어보자. 그러다 보면 어느새 남 앞에서도 어깨 쫙 펴며 사는 떳떳한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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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같지 않다'라는 실감은 사람을 더욱 옹졸하고 강퍅하게 만든다. 나이가 들수록 느긋해져야 한다지만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나의 변화를 누구보다 나 자신이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늙는 건 처음이기에.


그럴 때일수록 무언가를 달성해야 완성되는 하루가 아니라, 좋아하는 일 두세 개만으로도 충분한 하루라 여기는 일. 초조함을 다스리고 욕심을 줄여가며 오늘을 사는 일. 그게 나 자신과 화목하게 살아가는 방법이 아닐까.

27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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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말하는 '예전 같지 않다'는 말도 속상하게 다가오지만, 무엇보다 스스로 느끼는 '예전 같지 않음'은 우리를 더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할 수 있었던 일이 '할 수 없는 일'이 되고, 혼자 할 수 있었던 일에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 되면, 여러모로 더 당황스럽고 불편하게 다가온다.


그럴 땐 시간이 걸리더라도 늙음과 변화에 대해 받아들이고, 그 변화를 좋은 방향으로 풀어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더불어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해서 나 자신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나가야 행복한 오늘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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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하루는 평범한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사소한 하루는 결코 사소하지 않다. 전날 밤 계획한 일을 다음 날 실행할 수 있는 삶은 축복 받은 삶이다. 그러한 일상을 매일 반복하는 사람은 특권을 가진 사람이다.

29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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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흐르면, 보통의 평범한 하루가 사소하지 않다는 것을 저절로 깨닫게 되는 때가 온다. 우리가 전날 계획한 일을 다음 날 실행하며 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 또 아침에 새로운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말이다.


그런 의미로 보자면 일상을 반복하며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두 큰 특권을 누리며 사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돈이 있든 없든, 권력을 가졌든 가지지 않았든, 나이가 많건 적건.


갑작스레 큰 사고를 당하거나 일상이 무너져 본 사람들은 안다. 우리가 소소하게 가지고 있던 반복되는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러니 누릴 수 있을 때 특권을 누리며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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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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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고 있는 것을 즐기며 사는 것은 어렵지 않다. 반면, 이미 망가지거나 빼앗긴 것을 되돌리기는 쉽지 않다.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음에도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우리가 가진 평범한 하루를 너무 손쉽게 포기하며 살아간다. 여기에 더해 불평과 불만을 쏟아내며 더 특별한 하루가 되기를 소원한다.


저자는 이런 상황들을 자신의 삶에 빗대어 이야기하며, 꾸준한 행복이 가지는 의미와 기쁨에 대해 역설한다. 그것이야말로 우리를 든든하게 받쳐주는 밑거름이자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라고 말이다.


때론 불안함과 초조함이 우리를 찾아오겠지만, 그래도 괜찮다. 별것 없는 오늘을 존중하며 반복되는 삶에 노력을 기울인다면, 시간의 힘에 더해 우리는 반드시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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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완벽한 무인도
박해수 지음, 영서 그림 / 토닥스토리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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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도에서의 자발적 고립을 통해 나를 발견하고 치유해가는 이야기를 담은 소설!"



읽는 내내 에세이라고 생각하며 소설을 읽었다. 다 읽고 난 뒤 나는 왜 그렇게 생각하며 읽었을까 고민해 봤더니, 이 책을 쓴 저자의 삶이 주인공의 삶에 고스란히 녹아들게 되면서 소설이 에세이처럼 느껴졌던 것 같다.


더불어 지극히 현실적인 에피소드들이 소설에 등장하면서 더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던 것 같다. 특히 사람, 사회, 시스템에 치여 점점 자기를 잃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지안을 통해 투영해 보게 되면서, 더 깊은 공감을 하게 되었다.


총 4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치열한 사회생활을 하면서 상처받은 주인공 지안이 버거운 인간관계에 지쳐 자발적으로 고립을 택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는 조금씩 이야기를 푸는 형태로 스토리를 전개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독자는 호기심을 가지고 계속 몰입하며 읽게 된다.


이 섬은 어디고, 현주 언니는 누구인지, 왜 지안은 홀로 무인도에서 생활하게 되었는지, 또 그곳에서는 어떻게 의식주를 해결하며 지내는지 등등.


지안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속 사정과 상처를 마주할 수 있는데, 현시대를 살아가는 사람 중에 지안과 같은 이유로 자발적 고립을 택하는 이들이 많아서 공감하는 사람이 꽤 많을 것이다.


읽는 중에는 지안의 감정선과 궁금증을 따라가느라 미처 생각해 보지 못했는데, 다 읽고 나니 문득 영화 '리틀 포레스트'와 예능 프로그램 '삼시 세끼'가 떠오른다. 아마도 비슷한 결을 가진 이야기라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만약 어떤 일로 깊은 상처를 받았거나 삶에 회의감이 들어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싶다면,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한번 희망을 발견해 보면 어떨까 한다.


어쩌면 우리 삶에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찾을 수 있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아무도 없는 무인도에서 홀로 산책하고, 직접 가꾼 야채로 한상 가득 차려 든든하게 먹는 삶을 통해 당신의 삶에도 따뜻한 온기가 배어들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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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및 배경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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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문항&송도섬

-현주가 살고 있는 동네이자 지안이 우연히 머물게 된 곳

-송도섬은 도문항에서 배로 10분 걸리는 무인도


■차지안

-도시에서 힘든 일을 겪고 우연히 도문항을 찾았다가 눌러앉게 됨

-무인도에서 몸과 마음을 회복함


■오현주

-30대 후반의 젊은 여성으로 지안보다 나이가 많음

-도문항의 단 하나뿐인 여자 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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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략 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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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사회생활과 인간관계에 지쳐 모든 것을 내려놓고 홀로 도문항을 찾게 된 지안은 그곳에서 현주를 만나게 되면서 잠시 숨 쉴 틈을 갖게 된다.


따뜻한 동네 인심과 현주의 넉넉한 도움 덕분에 지안은 현주와 함께 살며 배도 타고 물질도 하며 도시 생활을 잊고 살지만, 아직 털어내지 못한 과거 상처로 인해 근처 무인도에서 홀로 살 결심을 하게 된다.


처음에는 고립된 섬에서 사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현주의 도움과 단단히 마음먹은 덕분에 그녀는 점차 섬 생활이 익숙해지기 시작한다.


특히 홀로 크게 앓은 이후로 그녀는 더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일상을 살아가게 되는데, 자급자족을 하며 몸과 마음이 더 건강해진 것은 물론, 마침내 잃어버린 자신 또한 되찾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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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남은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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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재료들을 섞은 것일 뿐인데, 이렇게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준다는 게 놀라웠다. 그날 나는 텃밭 옆 소나무 그늘에 앉아 양푼을 껴안고 무척이나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쳤다.

18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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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 옆에서 털푸덕 땅에 앉아 양푼을 껴안고 맛있게 비빔밥을 먹는 지안의 모습이 떠올라 살포시 웃음이 지어지는 문장이었다.


때론 복잡한 것보다 단순한 것이 명답일 때가 있다. 배고픔을 달래 줄 있는 그대로의 식재료로 만든 맛있는 한 끼처럼 말이다.


마음이 어지러울 때, 너무 멀리에서 행복을 찾기보다 우리 주변에서 사소한 행복을 찾아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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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섭다의 반대말이란 게 무섭지 않다, 이런 게 아니라 여유롭다 같은 것일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두 눈을 감은 채 몸의 힘을 빼고 있으니 바다가 나를 뭍으로 올려주었다.

18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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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에 힘을 꽉 주고 있으면 물속으로 가라앉는다. 반면, 힘을 빼고 가만히 있으면 동동 떠오른다. 우리 삶도 어쩌면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너무 잘 살아내려고 애쓰기보다, 어쩌면 무거운 감정은 덜어내고 가벼운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지안이 바다에서 느낀 무서움이라는 감정을 배제했더니 어느새 가고자 했던 뭍으로 그녀를 데려다준 것처럼, 우리 역시 힘을 빼고 나아가다 보면 결국 우리가 원하는 종착지에 언젠가 다다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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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일어나 물질을 하고 갯방풍을 따고 텃밭에서 채소를 키우며 깨달은 것은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꽤 많은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나 대신 밥 짓고 빨래를 해줄 사람이 없는 삶, 오롯이 단 한 사람이 누리는 자유에는 더더욱 많은 불편이 뒤따랐다.

202~20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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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과 함께 살다가 독립을 해 본 사람이라면 이 문장이 의미하는 바를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자유를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지 말이다.


간섭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리기 위해 우리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들을 내 손으로 다 해내야 한다. 하다못해 먹는 것조차 스스로 챙겨 먹지 않으면 내내 쫄쫄 굶어야 한다.


지안은 무인도에서 홀로 지내고 나서야 비로소 그들의 보살핌이 얼마나 컸는지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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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서 종종 혼잣말로 "엄마, 참 고마워"라고 말할 때가 있다. 엄마가 가르쳐 준 한 가지 지혜 때문이다.


"밥을 잘 차려 먹어야 해. 나 혼자서도, 아니면 나 말고 한 명 정도 더 차려줄 수 있을 실력 정도는 갖추고 있어야 해. 그래야 세상살이를 할 수 있는 거야."

(...)

사람은 곧 밥심이라는 엄마의 말은 홀로 떨어진 내게 정말로 세상을 살아낼 힘을 주었다.

228~22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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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스갯소리로 하던 '밥심'의 힘을 지안은 무인도에서 홀로 살면서 비로소 절실히 깨닫게 된다. 그동안 곁눈질로 봐온 엄마의 요리 덕분에 지안은 혼자서도 씩씩하게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생존을 위해 나 혼자서도 해먹을 수 있는 요리 몇 가지 정도는 알아두면 좋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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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식이라는 게 허례허식 같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는데, 이제는 내 품격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나를 꾸미는 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가끔 주눅이 들고 자신감이 떨어질 때는 오히려 이렇게 입으면 당당해지더라고. 물론 자긍심이 몸에 밴 사람은 옷을 뭘 입든 상관없이 그 기운이 뿜어져 나오지만..."

25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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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주눅이 들거나 자신감이 떨어질 때, 내 품격을 올리기 위해 나를 예쁘게 꾸며보면 어떨까? '옷이 날개'라는 말이 있는데, 그렇게라도 나의 자신감을 끌어올릴 수 있다면 이 또한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때의 꾸밈은 단순히 외적인 것을 넘어 자존감과 자신감을 향상시켜 줄 뿐 아니라 한층 기분을 고조시켜 사람을 더 당당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무언가 일이 잘 풀리지 않아 마음이 고단할 때 멋지게 꾸미고 잠시 외출해 보자. 기분 전환을 통해 멋진 나로 탈바꿈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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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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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너무 퍽퍽하거나 괴로울 땐, 가끔 아무도 없는 곳에서 홀로 살아가는 상상을 해볼 때가 있다. 바닷가를 산책하며 시원한 바람을 맞고, 스스로 키운 작물로 삼시 세끼를 맛있게 지어먹으며 사람과 상처에서 조금 동떨어진 삶을 말이다.


그런 일상이 무료해질 때면 조금 멀리 여행을 다녀오거나, 근처 시장에 들러 달달한 주전부리를 사 와서 한껏 맛있게 먹는 상상. 누구나 한 번쯤 해보지 않았을까?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지안을 따라 현주가 선장으로 있는 배를 타보기도 하고, 물질을 하며 바닷속을 탐험하기도 했으며, 때론 낚시를 통해 직접 생선을 얻는 수확을 맛보기도 했다.


또 송도 섬에 혼자 머물며 아침이면 섬을 산책하며 여유를 만끽했고, 한낮에는 텃밭을 가꾸고 나무를 하느라 바쁜 하루를 보냈다.


저녁이면 낮 시간에 수확한 작물들을 맛있게 요리해서 먹는 즐거움으로 하루를 마무리했고, 그런 후에는 고요한 밤을 보냈다.


한 번쯤 시도해 보고 싶었던 삶을, 지안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해 보면서 때론 버거웠고, 또 어떨 때는 그저 좋았다.


계절감을 온몸으로 느끼며 산다는 것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 둘 알아간다는 것이 이토록 행복한 일인지 이제서야 제대로 깨닫는다.


가끔은 지안과 같이 삶의 멈춤이 필요한 순간들이 반드시 찾아올 것이다. 그럴 때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나만의 속도와 방향에 따라 천천히 내디뎌 보자.


그러다 보면 점차 몸과 마음은 단단해질 것이고, 나만의 세계를 더 견고히 쌓아 올릴 수 있는 힘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지안은 물리적으로 동떨어진 무인도에서 이런 시간을 가졌지만, 우리 내면에 이런 완벽한 나만의 무인도를 하나쯤 갖고 있는다면, 삶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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