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my Safari 샤이니 블랙 만년필 (유광 블랙/한정판) 신상품 [국내수입 한정판] - EF(가는촉)
LAMY(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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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만년필을 좋아하는데도 직접 사서 쓴 건 프랑스 마트에서 산 워터맨 만년필이랑 이번에 산 LAMY 사파리 펜이 전부다. 워터맨 만년필은 지금 어디 박혀 있는지 찾아봐야 하는데 만년필이 주는 어떤 부담감은 느껴지지 않았던 펜이었다. 대신 몸체가 금속으로 되어 있어서 좀 무거웠고, 그 때문에 오래 쓰면 손이 많이 피곤했다. 글씨를 쓸 때 나도 모르게 힘을 주는 버릇 때문이기도 했지만. LAMY 만년필에 대한 어떤 편견이 있었다. 아버지께서 출장 다녀오실 때면 종종 만년필을 사주셨는데, 그 중에서도 LAMY 만년필은 펜촉이 유달리 굵고 몸체가 두꺼워 잘 안 써졌다. 하긴, 초등학교를 갓 벗어난 소녀에게 LAMY 굵은 촉 만년필을 사주신 것부터가 무리였다. 연말에 팀 내에 불어닥친 작은 바람이랄까, '스스로에게 선물 주기'에서 내가 고른 것은 만년필이었다. 이것 말고도 평소에 나는 내게 언제나 관대한 인간이지만 ^^ 필기구만큼은 이제 좋은 걸 하나쯤은 갖고 싶다. 몽블랑에 비하면 소박하고도 소박하지만 어떠랴, 나는 아직까지 만족한다. 카트리지 하나를 다 쓰고 컨버터에 잉크를 채워 쓰고 있다. 얼추 손에도 익었고, 내 글씨도 나올 정도로 적응을 했다. 오래오래 함께하고 싶은 친구로 남아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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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강물처럼
파울로 코엘료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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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소리 같은 책들이 싫을 때가 있다. 진짜 인생을 살라고,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지는 대로 살지 말고 네 의지를 따르고 꿈을 실현시키라는 말들이 덧없는 아포리즘처럼 들릴 때가 있다. 삶에 오만한 이에게 지혜의 목소리는 헛소리로 들린다.

누구나 나락 앞에 서볼 때가 있을 것이다. 비록 떨어지지는 않더라도, 한번씩은 마음의 지옥을 경험할 것이다. 그럴 땐 무언가라도 간절하게 붙잡고 싶어진다. 법정 스님의 잠언이나, 공지영의 위로나 파울로 코엘료의 햇빛 같은 글들은 그럴 때 효력을 발휘한다. 그런 책들은 우리를 성공으로 이끌지 않는다. 다만,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딱 그만큼만 우리의 손을 잡아주고 땅에 주저앉히고 잠시 숨을 고르게 한다. 그럴 때, 잔소리는 비로소 마음의 빛이 되어 위무해준다...

진짜로 살아본 자의 말에는 에너지가 담겨 있다. 아무리 그 언어가 투박하고 거칠더라도 그 안에 진실의 힘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 힘은, 어떻게든 살아보려는 사람의 마음에 가 닿는다. <흐르는 강물처럼>을 읽으며 뭉클했던 몇몇 순간들에 그런 에너지를 느꼈다. 책에 나온 대로, "하루에 십오 분만이라도 인생에 대해 관조할 수 있"다면, 이렇게 몰아서 쉬고 위로받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것이 이 책에서 얻은 작지만 큰 깨달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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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 1 - 하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밀레니엄 (아르테) 1
스티그 라르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아르테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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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유명한 <밀레니엄>을 이제야 영접했다.
무시무시한 판매량, 작가의 기구한 이력만으로도 호기심의 불은 댕겨졌다.
결과는?
대만족까지는 아니지만(아직 1부, 겨우 1부가 아닌가!) 꽤 괜찮은 소설을 만났다는 느낌! 
북구 복지국가의 기업 비리부터 성 범죄 그리고 복지 시스템의 헛점 그리고 매력적인 두 명의 캐릭터, 그리고 애거서 크리스티식의 밀실 살인이 합쳐지고 나니 커다란 스케일을 가진 아기자기한 그림이라는 모순된 풍경이 펼쳐진다.
무엇보다 번역이 유려해서 좋았다(어떤 부분은 센스가 과잉이더이다 ^^)!

표지랑 내지 및 전체적인 디자인이 촘 없어 보여서 별 하나 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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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의 악마 (구) 문지 스펙트럼 12
레이몽 라디게 지음, 김예령 옮김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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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여전히 순진한, 하지만 잔인해질 수도 있는 어른 같은 생생한 눈초리를 가진 상냥한 꼬마였다. 그래, 왠지 무거운 주름과, 딱딱한 모자 챙 안에서, 방종의 불꽃이 일렁거리고 있는 듯한 기이한 눈빛의 소유자였다.

 

                                            앙드레 살몽, <끝나지 않은 추억>(갈리마르, 1955)
 

요절한 천재들에게 천박한 호기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그의 천재 때문이든, 그 천재만큼이나 매혹적으로 보이는 그의 생애 때문이든. 라디게는 묘한 이력의 소유자이다. 1903년에 태어나, 1923년에 처녀작 <육체의 악마>로 르 누보 몽드 상을 수상하고, 그해 12월에 숨졌다. 그의 나이 스무 살이었다. 어떻게 하여 이 어린 소년은 이와 같이 무서운 작품을 쓰게 되었을까? 이 작품에 대해서는 출판사 사장이었던 그라세와 콕토의 조언이 큰 역할을 하였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이것은 스무 살 먹은 어린 청년의 작품인 것이다. 

소설의 배경은 1차대전이 터진 파리의 근교 F...와 J...이다. '나'는 전쟁이 발발한 해 열 두 살이 된다. 전쟁! 하지만 (책 해설을 인용하자면) 이 소설은 '1차대전이 배경임에도 거기에는 피비린내나는 전투도, 고통의 아우성도 없다.' 소년에게 전쟁이란 멀리서 들려오는 대포소리이거나, 기차역을 지나는 군용열차의 행렬, 그리고 그 행렬의 사기를 북돋우기 위해 여인들이 퍼나르는 포도주 들 같은 '불꽃놀이' 같이 기억될 뿐이다. '그토록 많은 어린 소년들에게 전쟁은 무엇을 뜻했겠는지. 그것은 4년 동안의 긴 휴가였을 뿐이다.'

비상한 머리를 가졌지만 그 똘똘함을 나쁜 데 써먹는 데 더 능숙한 소년 '나'는 어느날 옆집 하녀가 지붕 위에서 난동을 부리는 모습을 아버지의 무등을 타고 구경하다 그녀가 추락하자 기절한다. 이 끔찍한 에피소드는 이 소설이 앞으로 이야기해줄 무시무시하면서도 뭐라 말할 수 없는 기괴한 분위기를 암시하고 있다.

'나'는 조숙하다. 학교 공부는 시시하기 짝이 없으며, 생활은 권태롭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자신보다 너댓살 많은 숙녀 '마르트'을 만나게 된다. 그녀는 이미 약혼자가 있는 몸이였으며, '나'를 그저 친동생처럼 귀여워해줄 뿐이다. 그러나 '나'는 또래 여자아이들의 풋풋함보다는 마르트 같은 성숙한 여인을 더 매력적이라 생각하며 자신의 상대라고 생각한다. 마르트가 신혼살림집에 들여놓을 가구들을 고르러 갈 때, '나'가 동반하여 자신의 취향대로 물건들을 고르는 장면은 자못 깜찍하기까지 하다. '물건'으로 내 인상을 심어놓는다는 발상, '물건 안에 깃들어 있는 사람의 영혼'이라는 것을 얼마나 고전적일 수법인가? (그러니까 헤어지면 그 사람으로부터 받은 물건들을 모두 처분해야 한다)

이 둘은 이런 밀회 아닌 밀회를 즐기다가 사랑에 빠지고 만다. (아니, 마르크가 그의 사랑에 굴복했다고 하는 편이 낫겠다. 둘이 서로 집에 바래다준다고 왔다갔다하면서 새벽까지 거리를 오가는 장면이라니) 그러나 불륜은 대개 유쾌한 결말을 바랄 수 없는 법이다. 이 소설은, 깊이 사랑했지만 현실이 그 둘의 사랑을 허락하지 않았다, 라는 식의 슬픈 로맨스로 전개되지 않는다. 물론 소설은 마르트의 죽음으로 슬프게 끝나고 있지만, 작가의 시선은 그런 치정의 바깥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랬다면 걸작이 되지도 않았겠지) 작가가 우리에게 단순한 '불륜 사건'을 통해 사랑, 아니 사람의 모순적인 모습을 까발리고 싶어한다. 육체를 탐하다 임신하게 된 마르트가 그 사실을 내게 말해주는 장면과, 나중에 아이를 예정일보다 빨리 낳았을 때 '나'의 심리상태가 바로 그런 것들 중 하나이다. 애인이 임신 사실을 고백했을 때, '나'는 아기를 가졌다는 기쁨보다 누려야 할 젊음을 도둑맞았다는 생각을 한다. 게다가 그녀는 이미 유부녀고, 남편은 전장에 (그녀의 남편은 세계대전에 참전한 군인으로 나온다) 나가 있는 상태에서 임신을 했으니 (그녀는 남편을 사랑하지 않아 그의 편지에 답장도 거의 하지 않고, 휴가를 나와도 잠자리를 하지 않는다, 고 '나'에게 고백한다) 그 아이가 불륜의 씨앗이라는 생각은 누구나 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두려움에 휩싸인다. 그런데 아이가 예정보다 일찍 태어나게 되자 나는, 반대로, 이 아이의 아빠가 과연 자신인지, 혹시 그녀가 자신에게 말한 것과는 달리 휴가나온 남편과 잠자리를 하게 되었는지를 의심하게 되고, 순간 그녀에게 화가 난 나머지 욕설을 퍼붓는 편지를 썼다가 찢어버리고 그녀에게 사랑을 구걸하는 편지를 쓰게 된다. 하지만 결국 그 아기는 '예정보다 일찍 태어난 나의' 아이였고, 나는 비로소 안심하여 아이를 보러 휴가나온 그녀의 남편에게 '그의' 아들의 탄생을 기념하여 그 불쌍한 사내에게 휴가를 주는 관대함마저 보인다.

그러나 결국 마르트는 죽고 만다. 이 이유조차 이 소설에는 분명히 나오지 않는다. 그녀는 둘의 아이의 이름을 '나'의 이름으로 한다. 그리하여, 그녀는 '나'를, (동시에 아이를) 부르며 죽었던 것이다. 

 
내가 유일하게 자크를 본 것은 몇 달이 지나서였다. 아버지가 마르트의 수채화를 몇 점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안 그는 그것들을 보고 싶어했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관계된 것을 보고자 갈망한다. 나는 마르트가 청혼을 수락했던 그 남자를 보고 싶었다.

나는 숨을 죽이고 발끝을 든 채 빼꼼히 열린 문으로 향했다. 문에 이른 바로 그 순간 나는 들었다.

- 아내는 아이의 이름을 부르면서 죽어갔습니다. 가엾은 어린것! 그애가 저의 유일한 존재 이유가 아니겠습니까?

그처럼 의연히 자신의 절망을 다스리는 홀로 된 남편을 보면서 나는 질서가, 마침내, 사태의 주변으로부터 저 스스로 발동하기 시작했음을 깨달았다. 즉, 방금 나는 마르트가 내 이름을 부르면서 죽었으며, 또한 내 아들이 적법한 생애를 누리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않았는가?

 
만약 마르트가 죽는 장면이 이렇게 남의 입을 통해서 전해지지 않았다면 (그녀의 죽음을 통고한 것은 '나'의 동생들이다. 그 장면은 차라리 장난 같아 보인다), 그 죽음이 소설의 종반부에 툭 던져지듯 등장하지 않고 절정부분에서 너무 처절히 묘사되었더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이 소설이 주는 둔한 울림, 책을 읽고도 멍하게 몇분을 더 앉아 있게 만드는 그런 '즐거움'은 누리지 못했으리라. 그래서 이 소설은 멋지다.

 

하지만 <육체의 악마>가 나온 지 불과 몇 달 뒤에, 그 불빛이 갑자기 어두워진다. 1923년 12월 12일 급성 티푸스로 라디게가 사망한 것이다. 푸아요 호텔 방에서 16구의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그 상황에 질겁한 어떤 콕토에게 이끌려 급히 온 병원의 노련한 의사도 어쩔 줄 몰라 했다. 라디게는 엄청난 고통 속에서 서서히 죽어갔다.
                                           (---------)
라디게는 너무 자유로웠습니다. 그 어떤 것에도 의지하지 않는 법을 가르쳐준 사람이 바로 라디게였습니다. (--)그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나는 무능력한 사람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어떤 명석함도 얻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제 일을 재주 있게 해나가지도, 작품을 구상하지도 못합니다. 그렇다고 제대로 무언가를 실현하기도 힘든 그런 상태입니다.

 

                                             - 장 콕토, <존재하는 것의 어려움>(LGF, 1995)

 

당시 레몽 라디게는 스무 살이었다.

 

                     - <보엠3 열린도시, 몽파르나스>, 단 프랑크, 박절화 옮김, 이끌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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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네 이발관 - 5집 가장 보통의 존재 [재발매]
언니네 이발관 노래 / 블루보이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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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기다린 보람이 있는 앨범!
작년 말에 나온다고 했다가 미뤄진다고 했을 때 적잖이 실망했는데, 이석원의 예의 그 완벽주의가 또 발동이 걸렸구나, 정말 좋은 음반이 나오겠지 하며 잊어버리고 있었다 :-)
와, 이 앨범은 꼭 사서 들어봐야 한다. 좋은 스피커가 구비된 시원한 방에서.
하지만, 선풍기가 고장난 우리집 마루에 혼자 앉아 차가운 맥주를 마시며 듣는 것도 좋다.
삶에 솔직한 가사들, 애써 거짓 긍정으로 감정을 포장하지 않는 가식 없음, 거칠지만 그게 밉지 않고 오히려 쓱쓱 등 한번 쓰다듬어주고 싶은 노래들 때문에 난 <언니네 이발관>이 제일 좋았고 지금도 좋다. 앞으로도 계속 좋은 음악 만들어주기를, 그리고 이 멤버 그대로 장수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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