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인사에게 나의 전작인 <수집의 즐거움>을 증정해야 할 일이 생겼다. 한심한 것인지 어쩐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책이 나에겐 없다. 기형적일 정도로 큰 방을 온통 책으로 가득 채운 내가 정작 내가 쓴 책을 가지고 있지 않다. 다섯 권의 책을 냈는데 최근작인 <독서 만담>만 구석에 몇 권 있는 게 전부다.
할 수 없이 동네 서점(내 친구 가게다)에 재고를 문의해봤는데 이미 5년 전에 출간된 책을 가지고 있을 리가 없다. 별수 없이 인터넷 서점으로 주문했다. 왜 나는 내가 쓴 책을 소장하고 있지 않은가에 대한 근원을 생각해봤다.
작은할아버지께서도 수필가셨다. 그분이 참 존경스러운 것이 언제나 원고지와 펜을 가지고 다니셨다. 언제 어디서나 떠오르는 내용이 있으면 원고지를 메워나가셨고 국어사전을 끼고 사셨다. 대구지방의 수필동인지에 글을 발표하셨는데 그걸 모아서 단행본으로 펴내기도 했다. 애당초 팔려고 낸 책은 아니고 팔릴 책도 아니었다. 제목이 <액운아 물렀거라>였는데 지금은 인터넷에서도 그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경성사범을 나와 25세에 교감을 27세에 교장에 취임하셨다. 내가 코흘리개였을 때도 교장 선생님이셨고 장가를 갈 때도 교장 선생님이셨다. 당신의 아들이 서울대 경제학과를 들어가 일찍이 운동권에 투신했고 자의인지 타의인지는 모르겠으나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 교장직을 내려놓았다가 한참 뒤에 복직하는 우여곡절을 겪으셨다.
평생 꽃길만 걷다가 아들이 수배되고 우리 집을 비롯한 온 친척 집에 형사들이 수시로 들락거리는 고초를 겪다 보니 여러 가지 회한이 드신 모양이다. <액운아 물러서거라>라는 제목 자체가 그분의 심경과 책의 내용을 말해준다. 당신께서는 우리 집에 들리실 때마다 오실 때는 원고지와 펜을 들고 오셨고 가실 때에는 늘 나의 장서 서너 권을 빌려 가셨다. 물론 책 애호가 답게 반납하시는 법이 없었다.
당신의 서재에 가끔 갈 때마다 나도 탐나는 책이 있긴 했지만 감히 빌려달라는 부탁을 못 했다. 대신 당신의 저서는 온 집안에 배포되었고 소장되었다. 그 책을 제대로 읽은 사람은 아마도 내가 유일하지 싶다. 당시 상주지역 국회의원의 저서 <엄마가 없는 너의 천국엔>은 상주시민임을, <액운아 물렀거라>는 함양박씨의 일원임을 알려주는 아이콘이었다.
당신의 서재엔 <액운아 물렀거라>가 수북이 쌓여있었다. 추측건대 자비 출간의 형태가 아니었나 싶다. 어린 시절이었지만 왠지 측은한 느낌이 들었고 책을 낸다는 것이 확실히 돈이 되기는커녕 구차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을 은연중에 했더랬다. 타인의 책장에 꼽히지 않고 저자 자신의 서재에 방치된 할아버지의 저서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일 년에 한번 동인지가 나올 때마다 할아버지께서는 집안 식구들에게 배급하셨다. 오타가 난 것은 볼펜으로 일삼아 수정해서 주셨다. 자랑은 아니지만 나나 되니까 할아버지가 쓴 꼭지라도 읽었지 집안의 사람 누구도 그 책을 유심히 읽는 것을 보지 못했다. 우리 집안 사람들이 참 기특한 것이 수십 년간 공짜로 책을 꼬박꼬박 무료로 배급받았으면서, 집안의 사람이 낸 책은 돈을 주고 사는 것이 아니다는 개념이 정착되었을 것 같으면서, 정작 내 책이 처음 나왔을 때 너도나도 ‘네가 쓴 책이라도 돈을 주고 사야지’라며 너도나도 앞다투어 ‘구매’를 했다. 물론 새 책이 거듭해서 나올수록 그 구매 정신은 희미해졌고 내 사촌 동생은 <독서 만담>의 출간 소식을 보고도 조용히 ‘좋아요. ’만 누르고 사라졌다.
할아버지 방에 수북이 쌓여있는 당신의 저서는 글을 쓰는 사람의 비애를 느끼도록 해주었다. 내가 쓴 책을 내 서재에 쌓아둔다면 ‘잉여다움’이 느껴질 것 같다. 그 책들을 볼 때마다 나의 ‘무명’을 느껴야 할 것 같다. 나의 패배를 되새기게 될 것 같다. 한국시리즈에서 패한 2등팀이 우승팀의 시상식에 참가하는 기분 일것 같다. 내가 내 책을 내 서재에 두지 않는 이유다. 내 책이 새로 나오더라도 작은할아버지처럼 집안사람들에게 배급도 하지 않고, 알리지도 않는다. 내 딸아이는 며칠 전 서점에 갔다가 서점주인으로부터 내가 <독서 만담> 냈다는 것을 알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할아버지의 정성이 존경스럽다. 매년 새 동인지가 나올 때마다 일일이 집안의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나눠주신 정성 말이다. <액운아 물렀거라>에는 우리 아버지와의 일화도 등장하는데 나는 이 부분을 읽고 또 읽었다. 아버지와의 대화도 추억도 없는 경상도 사내에게 기록으로 아버지의 흔적을 남겨준 할아버지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액운아 물렀거라>는 여전히 소중히 간직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네번째 책 <수집의 즐거움>의 초판이 거의 다 팔려가고 있고 출판사 대표는 아마도 새 판을 찍지 않을 것 같다. 내 책은 소장하지 않는 그간의 관례를 깨고 최후의 10부는 내 몫으로 남겨달라고 부탁을 했다. 말하자면 절판분 수집가인 내가 내 책을 수집하게 된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눈물이 앞을 가린다.
<오래된 새 책>이 비록 절판 본과 희귀본 수집을 다룬 선구자적 책인 것처럼 인식되어서 언론의 주목을 받았지만 사실 이 업계에서 전설은 조희봉의 <전작 주의자의 꿈>이다. 이 책을 통해서 헌책에 관심을 끌게 되었고 희귀본 수집가로서의 꿈을 키웠더랬다.
조희봉 선생은 절판분, 희귀본 수집가의 선구자답게 자신의 책이 절판 본이 되는 비애를 먼저 맛보셨고 나도 그 양반의 뒤를 이어갈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