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늘 그들(아내&딸)에게 굴욕적으로 패배하고 지배를 당하는 것만은 아니다. 나도 승리의 순간이 엄연히 존재한다. ‘국산 옥수수로 만든 강냉이 뻥튀기’ 대첩이 바로 그 경우다. 지난 일요일 나는 어머니에게 드릴 떡을 사기 위해서 재래시장에 들렀는데 그들에게 조공을 할 먹거리를 찾다가 ‘국산 옥수수로 만든 강냉이 뻥튀기’를 발견했다. 
중국산은 노랗게 먹음직스럽게 생겼는데 국산 옥수수는 꺼무칙칙하게 보기엔 그래도 역시 농산품은 신토불이 아니던가? 더구나 조공용이니 그 음식의 원산지에도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어머니를 뵙고 집으로 돌아갔다. 의기양양하게 까만 비닐봉지에 든 ‘국산 옥수수로 만든 강냉이 뻥튀기’를 마누라 상전에 바쳤으나 그딴 걸 뭐하러 사오냐는 예상치 못한 혹평을 받았다.
순간 화가 치밀어서 ‘국산 옥수수로 만든 강냉이 뻥튀기’를 거실에 패대기치려고 했으나 상전 앞에서 감히 그런 불손한 행동은 못 하고 내 서재로 들어와 소파에 살포시 패대기를 쳤다. 저들에게 ‘국산 옥수수로 만든 강냉이 뻥튀기’를 절대로 주지 않고 나 혼자 다 먹기로 결심을 했다.
무려 5,000원 어치고 나와 안면이 있는 주인아주머니께서 가래떡 뻥튀기와 쌀 뻥튀기까지 덤으로 주셔서 혼자서 다 먹기엔 너무 벅차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매일 매일 먹기로 하고 봉지를 열었는데 뻥튀기 냄새가 코를 찌른다. 꾸역꾸역 먹는데 목이 따가울 지경이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음료수라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자몽’ 주스뿐이다. 내가 절대로 먹지 않겠다고 결심한 주스인데 너무 급하다보니 어쩔 수 없다. 쓰디쓴 자몽 주스를 벌컥 벌컥 마시고 다시 서재로 복귀했다. 저들의 비웃음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다음 날부터 야구 중계를 보면서 ‘국산 옥수수로 만든 강냉이 뻥튀기’를 먹었다. 서재의 형광등도 꺼두어서 마치 영화관에 온 것 같은 운치가 느껴진다. 역시 ‘국산 옥수수로 만든 강냉이 뻥튀기’를 사길 잘했다. 그러나 또 목이 따가워져 온다. 나가서 또 자몽 주스를 먹었다. 처음에는 왜 이렇게 맛없는 걸 사왔냐고 조금 짜증을 낸 것 같은 기억이 나는데 이제 자몽주스가 입맛에 맞기 시작했다.
저들도 분명 뻥튀기를 싫어하지는 않는데 자신들이 한 소리가 있어서 참고 있겠구나라고 생각하니 새삼 강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의 경우 냉우동 한 그릇에 자존심과 나의 이데올로기쯤은 쉽게 버리는 위인이 아닌가? 저들은 자신들의 이데올로기와 명분을 위해서라면 먹거리쯤은 안중에도 없구나!
6일째 되는 날 여느 때처럼 야구를 보면서 ‘국산 옥수수로 만든 강냉이 뻥튀기’를 먹는데 아내가 덜컥 문을 열었다. 뻥튀기를 마치 떡을 먹는 것처럼 그렇게 우적우적 먹느냐고 타박을 한다. 당황스러웠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저 여자도 강렬한 뻥튀기 향을 맡았을 때이고 적어도 인간인 이상 ‘입질’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더구나 저녁을 먹은 후 두 시간이 지났다. 간식거리에 대한 욕구가 극대화되는 시점이다. 서재를 나가는 아내의 뒤통수에 대고 ‘지금이라도 먹고 싶으면 말해라’라고 말하는 호기를 부렸음은 물론이다.
과연 정확히 18분 후 아내가 “뻥튀기 이리 좀 가져와봐”라며 백기를 들었다. 감격스러운 순간이다. 실로 얼마만의 승리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승자라고 해서 자만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먹고 싶으면 여기 와서 가져가”라는 모욕적인 언사를 패자에게 해서는 안 된다. 
거실에 있는 아내에게 조용히 ‘국산 옥수수로 만든 강냉이 뻥튀기’를 가져다주었고 다음 날 아침 그들이 소비한 뻥튀기의 양이 적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의 승리를 재확인했다.
이번 승리에 오점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다음날 학원을 다녀온 딸내미가 뻥튀기를 찾았는데 승리에 도취한 나머지 ‘조롱’을 조금 하다가 ‘빡친’ 딸내미를 달래주기위해서 ‘국산옥수수로 만든 강냉이 뻥튀기’를 제발 먹어달라고 애원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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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베고자는남자 2015-06-17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참 재미나게 쓰시네요 스타일도 비슷하시고....유쾌한 시간이었습니다

박균호 2015-06-17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