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구구단을 외우지 못해 나머지 공부를 한 학생이었다. 출판사에서 과학 고전에 관한 책을 써보라고 해서 어찌어찌 쓰긴 했는데 오늘 숨이 턱 막히는 연락을 받았다. 부산의 모 중학교에서 이번에 나온 <문과의 눈으로 보면 과학 고전이 더 재밌어진다>에 대한 강연을 해달라는 것. 저자인 나도 어제 막 전달받은 신간을 언제 또 살피고 이런 제의를 한 것인지 모르겠다. 전교생 5명인 학교의 영어 교사인 내가 전교생 5백 명인 학교에서 과학 고전을 이야기한다? 누가 봐도 예쁜 그림은 아니다.
그리고 솔직히 요새 중학생들 나도 무섭다. 신통찮고 산골에서 온 나를 향한 그 특유의 냉소적인 표정이 실시간으로 그려진다. 대놓고 책상에 엎드려서 자는 놈들도 많겠지. 격렬하게 사양하고 싶다. 그런데 나를 믿고 책을 맡긴 출판사를 생각하면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기도 하다. 일단 가보자! 어떻게든 되겠지. 이길 수 없는 전장으로 향하는 장수의 심정이 이런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