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고전을 사 놓고도 끝까지 읽지 못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첫 장부터 수식과 낯선 개념이 이어지면 책을 읽다가 시험을 치는 기분이 든다. 이해 못 하는 나를 한 번 더 확인하게 될까 봐 아예 펴지 않게 된다.
나도 그랬다. 구구단을 못 외워 나머지 공부를 하던 아이였고, 대학과 대학원에서는 문학을 공부했다. 그 아이가 자라 30년 동안 영어를 가르쳤다. 영어 지문에는 과학이 자꾸 섞여 나왔고, 피해 온 과학을 교실에서 매년 다시 만났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이작 뉴턴과 찰스 다윈, 에르빈 슈뢰딩거를 비롯한 과학 고전 27편을 소개하는 책을 냈다. <문과의 눈으로 보면 과학 고전이 더 재밌어진다>다.
학생들도 그 지문에서 막혔다. 눈이 글 위에서 헛돌았고, 문제 하나를 풀고 넘어가도 비슷한 지문에서 같은 곳에 또 손을 들었다. 그래서 설명하는 순서를 바꿨다. 만유인력과 자연선택, 지동설을 시험에 나오는 용어로 먼저 외우게 하지 않고, 그런 생각이 처음 어떤 질문에서 나왔는지부터 이야기했다.
'쉽게 쓴 책'이라는 말이 오히려 부담스러운 독자도 있다. 이것마저 이해하지 못하면 정말 내가 과학에 약한 사람인가 싶어서다. 나도 그 마음을 안다. 과학자에게는 당연한 설명이 문과 출신인 내게는 중간 한 단계가 빠진 듯 느껴졌다. 그래서 구구단도 못 외우는 문과가 고개를 끄덕일 때까지 초등학생이 할 만한 '왜?'를 이어 갔고, 그렇게 확인한 설명을 한 단계씩 풀어 썼다.
DNA는 왜 김밥일까이를테면 DNA 이중나선이다. 교과서 그림을 들여다봐도 왜 그런 구조가 되는지는 머리에 남지 않는다.
"김밥으로 생각하면 쉽습니다. 겉의 김과 밥이 전체 모양을 잡고, 안쪽에는 단무지와 햄, 달걀 같은 속재료가 줄지어 들어갑니다. 속재료를 아무렇게나 넣으면 김밥 굵기가 울퉁불퉁해지고 썰었을 때 모양도 흐트러져요. DNA도 바깥의 뼈대가 모양을 받치고, 안쪽의 염기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맞물려야 안정된 구조를 이룹니다." - 69쪽
큰 염기끼리 만나면 그 부분만 불룩해지고, 작은 염기끼리 만나면 가운데가 헐거워진다.
개념이 만들어진 과정만큼이나 책이 나오기까지의 사연도 만만치 않다. 아이작 뉴턴의 <프린키피아>는 하마터면 세상에 나오지 못할 뻔했다. 영국 왕립학회가 직전에 <물고기의 역사>라는 도감을 내느라 출판 예산을 거의 다 써 버렸다. 천문학자 에드먼드 핼리가 자기 돈을 털어 인쇄비를 댔고, 왕립학회는 핼리에게 줄 보수마저 남아도는 물고기 책으로 치렀다. 만유인력이 물고기 도감에 밀릴 뻔했다.
화학책에 괴테의 연애소설이 등장하는 까닭과학 고전이라고 해서 과학자 이야기만 나오지도 않는다. 노벨 화학상을 받은 로얼드 호프만의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에는 차이콥스키의 오페라 악보와 고야의 그림이 실려 있고,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장편소설 <선택적 친화력>도 등장한다. 소설 초반에 귀족 부부 에두아르트와 샤를로테, 에두아르트의 친구인 대위가 화학의 '친화력'을 놓고 이야기를 나눈다.
"대위는 어떤 물질들이 만나면 서로 강하게 끌어당기고, 원래의 짝을 떠나 새로운 물질을 만든다고 설명해요. 두 쌍의 물질을 AB와 CD로 놓으면, 서로 짝을 바꾸어 AD와 CB가 된다는 것입니다." - 169쪽
얼마 뒤 에두아르트는 샤를로테의 조카 오틸리에에게 끌리고, 샤를로테는 대위에게 마음이 기운다. 괴테는 화학 반응을 설명하는 이 대화를 뒤이어 벌어질 네 사람의 관계와 겹쳐 놓았다.
과학과 문학이 만나는 작품은 또 있다. 27편에는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과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도 넣었다. 두 소설은 생명을 만든 사람이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는지, 기술이 인간의 삶을 어디까지 바꿔도 되는지를 실험실보다 일찍 따졌다.
2028 수능, 문과라고 과학을 피해 갈 수 있을까출간 시점이 제도 변화와 맞물렸다. 2028학년도 수능부터 국어·수학·탐구의 선택과목이 사라지고, 탐구 영역에서는 모든 수험생이 통합사회와 통합과학을 함께 치른다. 문과 성향 학생도 과학의 기본 개념을 비켜 가기 어려워졌다. 그렇다고 수능 대비용 문제집으로 쓰지는 않았다.
1543년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의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에서 2003년 도나 해러웨이의 글까지 약 460년을 따라가며, 과학사와 과학철학도 함께 담았다. 다루는 폭은 넓지만 문장은 지하철에서 낄낄 웃으며 넘길 수 있을 만큼 쉽고 재미나게 썼다.
27편은 서로 독립되어 있다. 우주가 궁금하면 <코스모스>부터, 생명이 궁금하면 <종의 기원>부터 펼치면 된다. 막히는 편이 나오면 덮고 다음으로 넘어가도 된다. 앞의 편을 읽지 않아도 뒤가 막히지 않는다. 읽는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공식도 거의 넣지 않아, 책 전체에 남은 공식은 F=ma와 E=mc² 둘뿐이다. 고전 한 편이 12쪽 남짓인데, 재미에 끌려 읽다 보면 지하철 몇 정거장 만에 한 편이 끝난다. 그 끝마다 생각할 거리 두 가지와 이어 읽을 책 세 권을 실었다.
이 책을 읽다가 마음에 걸리는 과학자나 질문 하나를 만나 원전을 펼쳐 보게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구구단을 못 외워 나머지 공부를 하던 나도 그렇게 27편을 읽었다. 어디에서 막히는지 여러 번 겪어 본 사람이 쓴 책이니, 두려워 말고 이 책을 펼쳐 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