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고 웅장한 내 서재는 사실 윗집 아저씨 것을 따라 한 것이다.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윗집 아저씨 댁의 서재를 보고 아내는 감탄했고 그 천우신조를 놓치지 않고 집안에서 제일 큰방을 서재로 삼았다. 물론 윗집 아저씨와 같은 공장에서 책장을 맞춤 주문했다. 


그분도 눈에 불을 켜고 책을 사 모았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는 집안에서 서열 막내였고 서재의 안위는 늘 가시방석이었다. 빚쟁이처럼 틈만 나면 서재를 못살게 구는 아내의 속박 아래서 우리는 숨죽여 살아야 했다. 


그러나 도도한 시대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는 법이다. 이사라는 파도를 용케도 넘어왔던 우리는 리모델링이라는 피할 수 없는 암초를 만났다. 공간의 재배치에 있어서 서재는 늘 천덕꾸러기다. 비용과 공간의 절약이라는 거대한 담론 앞에 우리의 서재는 속절없이 숙청의 칼날을 받아야 했다. 소문에 듣자 하니 윗집은 다섯 수레의 책을 내다 버렸다고 한다. 남들은 다섯 수레의 책을 읽는다는데 우리는 다섯 수레의 책을 버려야 하는 신세다. 나라고 별수 있겠는가. 권력의 무서운 사정의 칼날 앞에서 자식 같은 다섯 수레의 책을 내놓았다. 


그뿐만 아니다. 우리 둘이는 집안 재건 사업에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한다. 서재의 안위에 연연해서 조금이라도 재건 사업에 주저함을 보였다가는 삼십 대에 모 당 대표를 지낸 인사처럼 영원히 버림당할 처지다. 무더운 여름날 우리 둘이는 높으신 양반을 모시고 타일과 벽지, 욕조 등을 고르는 사업에 동참하였다. 윗사람들이 업자와 재건 사업에 필요한 자재와 디자인을 고르고 있을 때 우리는 귀퉁이에서 커피 믹스를 홀짝이고 있었다. 


이윽고 윗집 양반이 입을 열었다. “어휴 서재만 건드리지 않으면 마음이 편안할텐데” 이 말을 들은 나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수십 년 동안 권력자의 눈치를 보면서 서재를 지켜온 온갖 수모와 역정이 그 말 한마디에 담겨 있었다. 눈치 없게도 서재를 온전히 지키겠다고 ‘집안 재건 사업에 서재만 제외할 수 없느냐고’ 조심스럽게 권력자에게 대들었다가 무시무시한 토벌대에 의해서 진압당한 것이 불과 몇 시간 전의 일이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 해외순방에서 돌아온 국가원수의 행차에 동원된 중고등학생처럼 우리는 권력자들의 탁월한 선택에 손뼉을 쳐야 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숨죽여 살 수는 없지 않은가. 타일 가게 귀퉁이에서 마침내 조심스럽게 우리가 당면한 현실을 논하기 시작했다. 윗집 아저씨가 먼저 입을 열었다. “집사람 이야기를 들어보니 책장에 세 개에서 두 개로 준다고 합니다. 중국과 일본에서 어렵게 큰마음 먹고 산 책을 거저 준다고 해도 가져갈 사람이 없네요” 나도 아내의 동정을 파악해가면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책장을 두꺼운 목재로 제작한다던데 그러면 예전보다 꽃을 수 있는 책이 줄어들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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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22-07-27 12: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행히 개인사무실로 밥벌이를 하고 있기에 정권이 싫어하는 모든 것들은 일단 사무실에 보관하고 있습니다 다음 번에 사무실을 옮길 때 좀더 투자를 해서 책과 함께 그간 모은 영화테이프와 DVD 그리고 게임도 잘 펼쳐놓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이사올 때 CD는 클래식 재즈 및 일부 가요를 제외하곤 모두 알맹이만 남겨졌네요 밥벌이를 100프로 책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날이 갈수록 힘을 잃어가는 것이 남자의 운명인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건강하세요

박균호 2022-07-27 12:41   좋아요 2 | URL
저도 직장에 상당한 책을 보관하고 있는데 직장을 영원히 다닐 수 없으니 그것들도 아마 버려야 하겠지요. 개인사무실이 있다면 정말 부럽네요. 서재는 한 주인을 섬긴는 것 같습니다. 어차피 주인이 사라지면 서재도 함께 사라지는...ㅎ 언제나 건강하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