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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주, 걷다
김태빈 지음 / 레드우드 / 2020년 12월
평점 :
<동주, 걷다>는 문학 선생 김태빈 저자가 쓴 ‘윤동주 시인 흔적 찾기’ 책 쯤으로 보인다. 저자는 윤동주 시인이 공부하고, 시를 쓰며, 죽어간 일본. 북간도 그리고 서울을 차례로 찾으면서 시인의 흔적을 찾고 그 의미를 되새긴다. 책에도 성품이 있다면 이 책은 전형적으로 외유내강형이다. 제목도 표지도 장정도 위풍당당하지는 않다. 그러나 읽어갈수록 윤동주 시인의 일대기를 연구한 책으로 이 만한 책이 있었는지 의문이 든다.
읽어갈수록 저자의 윤동주 시인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깊은지 뼈저리게 느껴진다. 설사 윤동주 시인의 후손일지라도 이토록 면밀하게, 애타게 시인의 발자취를 찾아 다니고 기록으로 남길 수 있는지도 의문이 든다.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이하 중략
-쉽게 씌어진 시, 1942.6.3
윤동주 시인이 일본 릿쿄대학 재학 때 쓴 시에 등장하는 ‘늙은 교수’가 누구인지 알고자 하는 태도와 어느 정도의 합리적인 추론을 제시하는 구절을 읽고 감탄과 존경을 하게 된다. 릿쿄대학 시절 남긴 단 한 장의 사진 속에는 윤동주 시인에게는 동그라미가, 4촌인 윤몽규 에게는 세모 표시가 되어 있고 날짜가 표시되어 있는데 이 표시와 날짜의 의미를 정확하게 연구를 해서 독자들에게 알려주는데 이런 대목이야말로 문인의 작품성에 대한 논의 못지 않게 연구자로서 추구해야할 또 다른 중요한 방향이며 독자들에게는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동주, 걷다>를 윤동주 시인에 대한 대단한 연구서이자 인물평전이자 작품해설서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시종일관 치열하게 시인의 흔적을 쫓으면서저자로 하여금 ‘윤동주 학자’라고 부를 수 밖에 없는 다양한 사실 관계를 밝힌다. 모던 보이 이상 시인이 도쿄제국대학 부속병원에서 임종을 앞두고 3달전 결혼한 아내에게 먹고 싶다고 부탁한 음식이 일본의 고급 과일 가게인 ‘센비키야’에서 파는 ‘멜론’이라는 사실도 흥미롭다.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 하루는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갈망하던 내일이다’
도서관에서 십 수년을 보낸 한 무명의 고시 낭인이 휘갈긴 유명한 낙서라고 생각했던 유명한 도서관 책상 문구다. 이 문구의 주인은 놀랍게도 2004년 일본인으로서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은(이미 사후로 손자가 대신 받았다)후세 다쓰지라는 분이다. 3.1 운동의 기폭제가 2.8독립 선언 사건 때 한국인을 변호했으며 관동대지진 당시에는 조선인 학살 진상 조사단을 꾸려 목숨을 걸고 조선인을 보호한 분이다.
<동주, 걷다>는 이처럼 윤동주 시인의 삶을 찾아가면서 겪게 되는 그 당시의 문물과 윤동주 시인의 가족사 그리고 당시의 조선과 일본의 학제 등 흥미로운 사실들이 많이 등장한다. 무엇보다 저자 김태빈 선생의 윤동주 시인에 대한 애정이 오롯이 드러나 있다. 참 귀한 책이고 민음사에서 나온 <윤동주 자필 시고전집> 곁에 나란히 세워 둘 만한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