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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 딕
허먼 멜빌 지음, 김석희 옮김 / 작가정신 / 201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독서가 낯설고 시작하기를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주고 싶은 충고는 ‘일단 읽기 시작해봐라’라는 것이다. <모비 딕>이 좋다는 이야기만 듣고 문학동네와 작가정신판본으로 모자라 만화 버전까지 사둔 지 일년 만에 별다른 기대감을 가지지 않고 펼쳤다. 거의 900쪽에 이르는 벽돌 책을 아껴가면서 읽게 되더라.
주인공 이슈마엘이 식인종 출신의 동료와 만나는 장면에서 무서워하는 내용은 그 어떤 코미디 보다 더 웃겼다. 고래와 포경 업에 관한 넓고 세밀한 정보는 책을 놓기 싫게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실제로 모비 딕을 만나 추격하고 사냥을 하는 장면은 거의 말미에 수십 쪽 등장하며 별다른 극적인 서사가 없는데도소설이 주는 즐거움을 오롯이 채워주는 명작이라니. 무엇보다 <모비 딕>에 빠져들게 하는 요소는 고전은 오래된 미래라는 명제를 틈나는 대로 확인시켜주었기 때문이다.
사람의 눈은 여러 물체를 한꺼번에 볼 수는 있지만 동시에 두 가지 물건을 세밀하게 관찰 할 수 없다는 구절을 읽고 왜 여태 살도록 그 생각을 자각하지 못했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고전을 누가 낡은 것이라 했는가. 19세기에 쓰여진 책을 읽고 21세기를 사는 사람이 새로운 지식을 얻는데 말이다.
상류층 출신의 이슈마엘이 포경선에서 제일 하급 직원 그러니까 노꾼으로 취업을 하려고 하다가 자괴감에 빠져들었다. 노꾼은 선장, 항해사, 작살꾼보다 더아래 그러니까 노예의 신분이나 다름없다. 스스로 노예의 길을 걷겠다고 덤벼들다가 왜 자괴감에 빠지지 않겠는가.
이슈마엘의 반문에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우리들 중에 노예가 아닌가 그 누구인가?
명칭이 노예가 아닐 뿐 40~50명으로 구성된 포경선의 조직 사회와 내가 근무하는 직장의 생태가 노동의 종류를 제외하면 뭐가 다른 것인지 찾지 못하겠더라. 이젠 교사는 노동자라는 생각에 반감이 전혀 생기지 않는다. 교사는 전형적인 감정노동자다.
그 누구도 교직의 사명감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 학교는 그저 직장이고 교사는 밥 벌어 먹기 살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게 된 것은 오래 전의 일이다.
교직 생활의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을 걷는 느낌이고 실제로 그렇다. 형사처벌이라는 용어가 공문서에 흔히 등장하고 실제로 나쁜 의도를 가지고 하는 행위가아닌 단순한 행정적인, 사적인 실수를 해서 형사처벌을 받는 것이 드문 일이 아니다. 학교에서 하는 모든 행위를 하기 앞서서 ‘무슨 탈이 생기지 않을까’라는생각을 항상 먼저 하게 된다. 이 생각이 그 모든 가치보다 앞서는 것이 현실이다.
나쁜 짓을 하면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명제에 반기를 드는 것이 아니고 처벌에 대해서 과도하게 의식을 해야만 별 탈없이 교직생활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내가 다니는 직장에서는 여학생의 치마가 짧으니 실수라도 치마 밑을 본다는 고발(?)을 당할 수가 있으니 남 선생들은 급식소의 제일 끝에서 창가를 향하는자리에만 의무적으로 앉아야 한다는 지침을 심각하게 시행할지 말지 고려를 했었다.
관리자라고 어디 노예가 아니던가. 가만히 보면 평교사보다 더 눈치를 보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듯 하다. 이재용이라고, 대통령이라고 마냥 편하고 상전 노릇만 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자주 목격한다.
세월이 갈수록 19세기 고전의 통찰이 더욱 현실화되는 것이다. 고전은 오래된 미래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