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먹으면서 얘기해요
성수선 지음 / 오픈하우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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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동사로 '먹다', '읽다', '쓰다', '사랑 하다'를 선택한 성수선 작가의 책을 오랜만에 읽었다. 잘 먹는 것도 돈을 버는 방편이 되는 시대이긴 하나 명색이 책을 4권씩 낸 작가이면서 대기업 팀장인 분이 '읽다'와 '쓰다'에 우선해서 '먹다'를 배치하는 것으로 보아 예사롭지 않은 책이라고 예상을 하긴 했다.

일러두기에서 '글맛을 살리기 위해' 관용적인 표현을 사용하였다니 톡톡 튀는 재치를 기대하기도 했다. 책 제목이 <우리, 먹으면서 얘기해요>이기도 하고 또 먹는 것을 쓰고 읽는 것보다 우선시하는 작가가 쓴 책의 첫 꼭지에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짜장면(너무 평범하지 않은가)이라고 밝히는 것으로 보아 몹시 진솔한 글이겠다는 설렘을 느끼기도 했다. 며칠 전 도착한 여러 권의 인문학 책을 읽는 도중에 머리를 식히는 용도로 그만이다 싶었다.

우선 성수선 작가가 짜장면을 먹겠다고 서울에서 목포까지 기차를 타고 간 식당 이름을 메모하고 읽기 시작했다.

나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들의 미래보다 그들이 결국 어떤 안주를 시켰을까. 그게 궁금했다. 사랑 앞에 무지해서, 타이밍을 놓쳐서, 말을 못 해서 사랑을 놓치고 또 놓쳤던 그들이 다시 만나 낮술을 마시며 시킨 안주는 뭘까? 설마 알탕? 고춧가루가 많이 들어서 치아 사이에 끼기 쉬운 음식을 시키지는 않겠지? 하면서도 영화 속의 눈치 없는 남자는 그러고도 남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를 만나러 정성껏 화장하고 온 여자에게 "너 요즘 연애하냐? 안 하던 화장을 다 하고"라고 말하는 속 터지는 남자니까. 가지 않으려고, 일부러 마지막 버스를 놓치려고 화장실에 있는 여자의 속도 모르고 꼭 타야 할 승객이 있으니 기다려달라고 버스 기사에게 사정하는 남자니까.

이 부분을 읽자니 내가 그간 살아오면서 저지른 수많은 눈치 없는 짓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간다. 왜 이 책은 이토록 늦게 나왔다는 말인가. 좋아하는 음식 마파두부 이야기를 하면서 늙은 곰보 여자라는 요리 이름에 얽힌 유래를 설명하는데 읽으려고 곁에 두었던 인문학책을 저 멀리 밀쳐버렸다. <우리, 먹으면서 얘기해요>에는 인생, 철학, 인문학, 음식, 예술이 다 담겨있으니 이 책을 오롯이 읽고 싶어졌다.

성수선 작가가 '내 이름으로 된 책을 한 권이라도 쓰고 싶은' 것이 소원이었을 때부터 나는 그가 운영하는 홈페이지에 들렀던 팬이었다. 그의 팬이었던 나도 책을 냈고 그도 책을 여러 권 냈지만 이런 구절을 읽자니 그가 저 멀리 내가 근접할 수 없는 세상으로 멀어져갔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유머가 넘치는데 유치하지 않고, 경쾌한데 경박하지 않고, 인생 철학을 이야기 하는데 꼰대스럽지 않은 글을 쓰는 작가가 얼마나 될까.

여행을 떠나서, 또는 낯선 동네에서, 밥 먹을 장소를 굳이 검색하지 않아도 된다. 먼 오지로 모험을 떠나는 대신, 지나가다 눈에 들어오는 식당에 들어가 보시라. 불쑥 문을 열고 들어가 평소 즐겨 먹지 않은 음식을 시켜 보시라. 조금 용기를 내서 주인에게 말을 건네 보시라. 우연과 즉흥에 몸을 맡길 때, 재미있는 일들은 의외로 많다.

평범하고 소박한 이 문구들이 왜 내게는 감탄스럽게 다가오는지 설명하기 어렵다. 다만, 이건 알겠다. 나처럼 책에서 읽은 내용을 밑천 삼아 글을 쓰는 나부랭이는 절대로 쓸 수 없는 글이라는 것을. <우리, 먹으면서 얘기해요>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도움을 보장하는 조언들이 몇 가지 있다.

어떤 일을 할 때 '간단한 수학'을 활용해보자. 어떤 과제를 줬을 때 일을 추진하게 하는 가장 큰 힘은 '간단한 수학'이다. 나는 지금 계약을 하고 마감을 해야 할 2건의 집필이 있는데 하루에 원고지 30쪽을 쓰겠다는 간단한 수학의 법칙을 실천하고서부터 진도가 빨라졌고 집필 일정이 정확해졌다. 하루에 원고지 30장을 쓴다면 한 달이면 900쪽이 되고 책 한 권 분량으로 부족함이 없다. 어떤 일을 할 때 이런 간단한 수학의 법칙을 설정하고 실천하는 것은 생각보다 큰 위력을 발휘한다.

두 번째는 성수선 작가의 부모님이 알려주신 인생의 충고인데 남들이 밥값을 내지 않으려고 머뭇거릴 때 앞장서서 밥값을 계산하라는 것이다. 딸아이가 다니는 대학에 선배가 후배에게 밥을 사주는 풍습이 있더라. 후배가 선배에게 신청하면 선배는 어김없이 그 후배에게 밥을 사주는데 한 달쯤 뒤에는 후배가 선배에게 밥을 사준다고 한다. 그걸 보은이라고 한다는데 처음에는 단순히 '귀여운 풍습'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만나서 밥을 사주고 보답하는 것이 원활한 인간관계의 첫걸음이기도 하고 자기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비결이기도 한 것 같다고 생각한다.

결말이 정해져 있는데 머뭇거리는 사람을 기다리는 것은 썩은 음식에 끼인 곰팡이뿐이라는 성수선 작가의 말에도 공감한다. 막연한 기대나 희망으로 망설이기보다는 과감한 결단을 하는 사람이 효율적이고 성공적인 삶을 살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사람을 이해하는데 소설 읽기만 한 것은 없다는 성수선 작가의 말에 깊이 동의를 하게 된다.. 소설가는 사람의 심리를 묘사하고 분석하는 대가들이다. 사람을 공부하겠다고 여러 사람을 일삼아 만나고 시행착오를 겪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또 나처럼 태생적으로 눈치가 없는 사람들도 소설을 열심히 읽다 보면 다른 사람이 지금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는 눈치가 늘어난다고 믿는다.

성수선 작가가 '먹어 본 자만이 맛을 안다'고 했으니 우선 <우리, 먹으면서 얘기해요>를 읽다가 메모해둔 전국의 맛 집을 둘러봐야겠다. 이영자가 말하는 맛 집은 그 맛깔스러운 맛의 표현이 매력적이지만 성수선 작가가 소개하는 맛 집은 맛도 맛이지만 그 가게 속에 담긴 아름다운 이야기가 매력적이다. 좋은 책이란 사람을 행동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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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북사랑 2020-02-14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책 제목일거라고 생각하지 않고, 클릭했다가 성수선 작가 플러스 좋은 책 기억하고 갑니다.

2권이나 계약하셨다니 부럽습니다.

박균호 2020-02-15 11:59   좋아요 0 | URL
아..유쾌하고 유익한 책이에요. 마음이 따뜻해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