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 - 어떻게 세계의 절반을 가난으로부터 구할 것인가
피터 싱어 지음, 함규진 옮김 / 산책자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발신: Save the Children(전 세계의 빈곤아동을 돕는 국제 기구). 

 
아버지 앞으로 편지가 한 통 와있다. 피식. 나는 한쪽 눈을 찌푸리며 코웃음을 친다. 

 

우리 아버지는 저 구호단체를 통해 외국의 가난한 아이를 후원하고 계신다. 평소 "가난한 사람이 힘들지 않아야", "굶주리는 사람이 없어야"란 말씀을 종종 하시듯 착한 마음도 갖고 계신다. 참 존경할 부분이라고? 그럼에도 난 그런 아버지의 선심을 늘 깎아내려 왔다.

아버지는 이명박과 한나라당에 희망을 걸며, 부패한 한 개신교 대형교회에 열정을 바치고 계신다. 아버지가 이명박과 한나라당의 '서민'을 말하며 대형교회의 '사랑'을 말씀하실 땐 난 너무 어지러워진다. 그 '서민'과 '사랑'이 실은 얼마나 반서민이며 반사랑인지.

아버지가 말하는 '서민'과 '사랑'을 온전히 인정할 수 없듯, 난 아버지의 빈곤아동 후원에도 박수를 치긴커녕 손사래를 쳐왔다. 가진 자의 심리적 자위행위, 빈곤을 만들어내는 구조를 보지 못하는 좁은 시야의 행위. 이런 논리를 내세우며 난 아버지의 기부활동을 무시하기만 했다. 하지만 혹시, 내가 너무 거칠고 성급했던 건 아닐까.

 

충분히 살릴 수 있는 생명이 덧없이 꺼져가는 이 세계, 정답은 '기부'

연못에 빠진 아이가 있다. 뛰어 들어가 구하지 않으면 빠져 죽고 말 것이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실천윤리학자 피터 싱어의 책 <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에 의하면 우리 아버지는 과감히 연못에 뛰어든 사람이다. 반면, 난 아이를 외면한 채 연못을 지나쳐간 사람이다. 
 

피터 싱어는 말한다. 

"상대적으로 적은 돈을 기부함으로써, 한 아이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 아마 신발 한 켤레를 사는 돈보다는 조금 많으리라. 하지만 우리가 별로 필요없는 일에 쓰는 돈, 즉 음료수, 외식, 옷, 영화, 콘서트, 휴가 여행, 새 자동차, 집꾸미기 등에 들이는 돈은 얼마인가? 그런 데 돈을 쓰면서 구호단체에 기부하지는 않음으로써, 우리는 우리가 구할 수 있는 아이를 죽게 내버려두고 있지는 않은가?"

물론 기부와 아이가 물에 빠진 상황을 직접 비교한다는 것이 다소 억지스럽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구할 수 있는 아이를 죽게 내버려두고 있지는 않은가?"란 말엔 결코 반박할 수가 없었다. 어느 가나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오늘 아침 남자 아이가 하나 죽었어요. 홍역이었죠. 우리 모두 병원에 데려가면 나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이 부모에게는 돈이 없었죠. 결국 그 아이는 오랫동안 앓다가 죽었습니다. 홍역이 아니라, 가난 때문에 죽은 거죠."

 

이런 일이 매일, 2만7천 번이나 되풀이 된다고 한다. 피터 싱어는 "수천만 명의 생명이 매년 죽어가는 세계, 충분히 살릴 수 있는 생명이 덧없이 꺼져가는 이 세계에서, 과연 어떻게 살아야 올바르게 사는 것인지 한번쯤 생각해보길" 바라는 마음으로 책 <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를 썼다. 그는 이 책의 목표를 "절대 빈곤의 덫에 걸린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윤리적 책임을 일깨우고, 구체적 행동지침과 기준을 제시해 우리가 더 많은 기부를 하게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 책은 "기부를 망설이는, 회의하는 이들에게 내미는 실천논리"인 것이다.


그는 이 책에서 본격적인 실천논리를 논하기에 앞서 '기부를 거부할 때 우리가 내세우는 10가지 논리들'을 하나하나 반박하고, '기부를 주저하게 만드는 6가지 심리적인 요인들'을 분석한다.


앞서 언급했듯 내가 기부를 거부해온 주된 이유는 '가진 자의 심리적 자위', '가난의 구조는 고치지 못함'이었다. 나의 이런 논리에 그는 다음과 같이 답한다. 먼저 지적을 받아들인다.


"나의 입장을 우려하는 경우가 있는데, 부자들이 구호 단체에 약간의 돈을 보탬으로써 양심의 가책에서 벗어나, 부익부 빈익빈을 가져오는 세계 경제 시스템에서 계속 이익을 챙기게 하리라는 것이다.", "전 세계적인 빈곤의 원인을 연구하고, 그것을 줄이기 위해 어떤 접근법이 최선인지를 고려해보면, 보다 혁명적인 변화가 절실함을 깨닫게 될 것이다."


하지만, 
 

"실천이 문제며, 자신이 바라는 혁명이 성공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면, 실제로 가난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더 나은 전략을 세워야 할 것이다."

 

솔직히 충분한 대답은 안됐음에도, 수긍하게 된다. 이렇듯 '기부를 거부할 때 우리가 내세우는 10가지 논리들'과 '기부를 주저하게 만드는 6가지 심리적인 요인들'은 기부에 대한 내 생각을 되돌아보게 했다.



"당신의 소비는 '부도덕'하다!"


결국 이 책에서 피터 싱어가 말하고자하는 바는 우리가 "그것에 상당하는 손해를 감수해야 할 경우가 아닌 한, 고통과 죽음을 막기 위해 구호 단체에 기부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매일 수천 명의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있으나 마나 한 물건을 사는 데 돈을 쓰는" 우리를 "부도덕하다"고 지적한다.


"많은 사람들이 맵시 나는 옷을 입고, 훌륭한 음식을 먹고, 고급 스테레오로 음악을 듣는 일에서 큰 기쁨을 느낀다. 나는 기 기쁨에 반대하지 않는다. 같은 값이면 최대한 기쁨을 누리며 살라. (...) 그러나 나의 주장은,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하거나 극심한 고통을 막을 수 있는 데도 그런 '가치 있는 것들'에 돈을 쓰는 일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음악을 듣는 것은 가치 있는 목표일 수 있고, 삶을 향상시키는 경험일 수 있다. 그래서 좋은 스테레오를 산다. 하지만 그것은 그런 목표나 우리의 삶을 향상시키는 일을 다른 사람의 생사보다 우선시한다는 뜻이다. 그렇게 살아가는 일이 윤리적인가? 그것은 인간의 생명은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는 말을 공염불로 만드는 게 아닐까?"


 

물론 '상당하는 손해를 감수하는 경우'와 '최대한 기쁨을 누리며'의 판단기준은 개개인 각자의 몫일 것이다. 그 기준의 스펙트럼이 너무 넓기에 피터 싱어의 주장이 명확하게 꽂히진 않는다. 어찌보면 너무 반듯하고 착한 말이기에 하나마나한 주장 같기도 하다. "가난한 사람에게 지고있는 의무"를 얘기하며 우리의 소비에 대해 "비윤리적이야"라고 외치는 모습이 '꼰대'같기도 하다.


하지만 난 그의 주장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다. 만 원짜리 스파게티 접시 앞에서 면을 말고 있을 때도, 9천 원을 내고 보지 않아도 될 영화를 보고 있을 때도 자꾸만 그의 말이 떠오른다. 내가 결코 물에 빠진 아이를 외면하고 있는 게 아니라고 믿음에도, 그것이 정말 나의 정제된 생각인지 아니면 그저 자기합리화인지 고민된다. 



수만 번의 생각보다도 하나의 행동

코웃음 쳤던 아버지의 우편물을 다시금 바라본다. Save the Children.


심리적 자위이든, 가난의 구조 외면이든 어떤 추상적 논리를 이야기하건 이것 한 가지는 너무도 구체적인 사실이다. 우리 아버지는 가난한 저개발국의 한 아이에게 의약품과 안전한 식수, 학업의 기회를 주고 계시고 난 누구에게도 도움을 주지 않고 있다는 사실.


저개발국의 아이에게 필요한 건 나의 어떠한 성찰, 어떠한 공부, 어떠한 고민, 어떠한 바른 말도 아니다. 그 아이가 미소를 안고 살아가게 돕는 건 우리 아버지의 작은 기부이다. 기부의 문맥이란 행위 이전에 따져서는 안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매일 2만7천 명의 아이들이 가난으로 죽어가는 이때에는 수만 번의 생각보다도 하나의 행동이 당장 가치 있다.


여전히 난 아버지가 말하는 한나라당의 '서민'과 개신교 대형교회의 '사랑'에는 극구 반대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아버지의 기부활동에 코웃음을 치진 못할 것 같다. 아버지의 우편물 앞에서 난 괜스레 숙연해진다. 용기를 내어 아버지께 말을 건네 봐야겠다. 아버지가 결연을 맺고 있는 아이는 어느 나라의 친구냐고, 내게도 그 아이의 사진을 보여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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