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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아이들의 세대 - 미세먼지 PM10에 덮인 한국의 미래
우석훈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05년 2월
평점 :
절판
멈추지 않는 불도저
불도저 소리가 요란합니다. 뉴타운 선정, 그린벨트 해제, 재건축, 재개발. 불도저 엔진의 굉음에 섞여 끊임없이 쏟아지는 말들입니다. 기존의 아파트는 더 높은 아파트와 주상복합건물로, 주택지와 가난한 사람들의 거주지는 새로운 아파트로, 그리고 숲도 아파트로, 산도 아파트로, 게다가 국립공원 경계 지역의 문턱까지 아파트로 꼬박꼬박 시멘트를 채워 넣는 것이 서울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서울에서 최후의 안전판 노릇을 하던 그린벨트의 작은 숲까지 전부 망가뜨린 다음에 줄 맞추고 키 맞추어 심어 놓은 나무 몇 그루의 녹색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고 합니다.
이 끊임없는 불도저 사회. 여기저기서 동시에 솟아오르는 건물만큼이나 그에 대한 많은 우려의 목소리도 치솟고 있군요. 그런데 이러한 우려의 목소리 중에 정작 가장 심각한 문제점 하나가 빠져있는 듯합니다. 간담이 서늘해질, 훨씬 더 긴박하고, 우리 개개인의 삶과 직결되는 문제가 말이지요.
PM10이 뒤덮은 먼지 지옥, 서울
우석훈씨는 <아픈 아이들의 세대>를 통해 환경오염의 구체적인 정도를 서울, 나아가서 한국 전체에서 이루어지는 건설 및 경제정책의 문제점과 연결 지어 설명합니다. 혹시 PM10(피엠텐)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저자는 PM10을 화두로 내세워 대규모 개발의 광풍으로 뒤덮인 한국의 암울한 미래를 경고합니다.
PM10이란 Particulate Matter10의 약자로서, 크기가 10마이크로미터(1마이크로미터는 100만분의 1미터) 미만인 미세입자 먼지를 말합니다. 그만큼 작은 물질은 공기 중에서 잘 가라앉지 않고 계속 떠다니는데, 그것이 우리 인체로 들어가면 큰 문제가 발생합니다.
원래 인체는 외부의 여러 물질들을 걸러내는 최소한의 거름망이 있습니다. 콧털은 먼지를 일차적으로 걸러내는 중요한 기능을 하고, 기도에는 주름이 있어서 여과장치의 역할을 하며, 점막에서는 가래를 통해 먼지 등을 배출시키죠.
그런데 PM10은 워낙 미세하기 때문에 이런 여과장치에 걸리지 않고 폐 속 깊숙이 박혀버립니다. 허파꽈리를 죽일 뿐더러 몸 안 여기저기 달라붙게 됩니다. 인간의 인체에서 처리할 수 없을 정도로 작기 때문에 계속 몸 속에 축적되는 거죠.
특히 황산화물 등 다른 오염물질과 결합해서 발암물질을 만들어내며 폐렴과 폐암, 천식, 심혈관계 질환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999년 방콕에서 실시된 연구에 따르면 PM10 농도가 10㎍/㎥ 증가할 때 전체 사망률은 1~2%, 호흡기계 사망률은 3~6% 증가했고, 특히 좁은 지역에 많은 사람들이 집중해서 생활하는 대도시에서 PM10 농도가 10㎍/㎥ 늘어나면 25~30세 성인의 수명이 1년 줄어드는 것으로 계산됐다고 합니다. 몸 밖으로 배출되지도, 몸 속에서 정화되지도 못하는 PM10. ‘보이지 않는 살인자’, '보이지 않는 독‘으로 불릴 만큼 위험합니다.
이렇듯 인체에 유해한 PM10은 자동차의 매연, 분진 및 각종 공사장에서 생긴다고 하네요. 주변을 둘러봅시다. 어느 곳을 가든 공사장을 몇 군데이고 쉽사리 찾아볼 수 있지 않나요? 뉴타운 하나 만드는 데 계획단계에서 10년, 실행단계에서 20년을 소요하는 외국과 달리, 1년 안에 토지수용을 위한 매입까지 마치고 5년 안에 공사를 끝내버리는 우리나라의 도시개발 체계, 게다가 멀쩡히 사람이 사는 곳에서 진행되는 건설.
저자에 따르면 유럽의 권고기준을 넘어선 서울의 PM10 지수로 보면 서울은 이미 '재난지역' 혹은 '긴급대피지역'입니다. 저자는 앞으로 서울은 거대한 PM10 공장이 될 것이고, 지금 서울을 뒤덮고 이는 미세먼지에 의한 죽음의 구름은 비가 와도 사라지지 않는 끈적끈적한 죽음의 운무를 만들게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서울의 PM10 오염도는 경제협력개발기수(OECD) 국가 중 단연 1등이지요.
아이를 위해, 서울을 긴급탈출하라!
나아가 저자는 부모들에게 아이를 위한다면, 어서 빨리 “서울을 떠나라!”고 강력히 권유합니다. 현 상태대로 개발이 진행된다면, 새로 태어날 아이들은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아토피를 비롯한 각종 유아질환에 시달릴 '아픈 아이들의 세대'가 된다는 것이죠.
아이가 아픈 것은 어머니가 아플 수도 있고, 아버지 때문일 수도 있지만, 아토피나 유아 천식과 같은 병들은 ‘환경성 질환’으로 PM10과 같은 미세 오염물질이 거의 즉각적이라고 합니다. 어른들은 공사장 근처에 오랫동안 살더라도 바로 아프지 않지만, 아이들은 과연 그 개발의 속도를 견뎌낼 수 있을까요? 한창 건강한 어른들이나 감당할 수 있는 이 광속의 로켓 속에서 아이들은 지금 너무도 아픕니다. 많이 아픕니다.
한 기사에서 저자는 이야기합니다.
“3킬로가 채 되지 않는 아이가 천식으로 울고 있는 걸 보면서 책 쓰는 2주 동안 내내 울었다. 우는 것 외에는 아프다고 얘기할 수 없는 0세의 영아들 모습을 떠올리면서, 정말이지 내내 울면서 한 자 한 자 적어 내려갔다. 아버지로서, 이제는 어머니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싶었고, 성인으로서,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싶었다.”
책의 곳곳에서는 이러한 저자의 절절한 마음이 묻어납니다. 저자의 경험과 깨달음을 바탕으로 내 아이의 건강, 아이에 대한 부모의 사랑을 환경 가치에 대한 자각으로 연결하려는 저자의 노력이 눈에 띕니다. 아픈 아이들의 세대를 향한 애정이란 진정성이 책 전체를 아우르고 있기에, “서울을 떠나라!”는 다소 생소하고 파격적인 그 말이 차마 마음에서 떠나질 못하는군요.
잔혹동화의 시대
이 책은 2005년, 참여정부 시절에 출간됐습니다. 지금은 2008년, ‘불도저 정부’ 시절. 오늘날, 상황은 과연 조금이라도 나아졌을까요? 개발의 광풍은 더욱 미친 듯 휘몰아치고 있습니다. 우리 몸 속의 PM10은 끊임없이 쌓여갑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제대로 돈독 오른 사회의 끝에서 아픈 아이들의 세대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불도저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이제는 우리가 실로 절절한 문제를 속히 깨닫고 마음 깊이, 많이 아파했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것은 아이를 잃은 부모의 슬픔이다. 우리는 지금 ‘아이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라는 잔혹동화의 시대를 살고 있다. 건설경기의 연착륙으로 경제성장률을 1퍼센트 높인다는 경제학을 가장한 정치담론이 실제로 낳을 것은 아이를 잃은 부모의 곡소리와 아픈 아이들의 세대뿐이다. - 우석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