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8. 9. 한겨레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303158.html
올림픽과 국가주의의 ‘잘못된 만남’
베이징 올림픽 개막 1주일을 앞두고 이 글을 쓴다. 일본에서는 요즘 모든 미디어들이 유력선수 소개와 나라별 메달 획득경쟁에 관한 예상으로 떠들썩하다. 선수들은 이구동성으로 “히노마루(일장기)를 등에 달고 싸운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다. 국가대표라는 긍지와 책임감을 강조하는 말이다. 한국에서도 사정은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스포츠 경기에는 사람을 감동시키는 힘이 있다. 그것은 힘든 훈련을 거친 선수들이 빼어난 체력과 정신력을 발휘하는 모습이 주는 보편적인 감동이다. 비유하자면 일류 무용이나 오페라에서 받는 감동과 같은 것이다. 그것을 어떤 민족이나 국가의 우수성이라는 신화로 바꿔 사람들을 국가주의에 동원하는 수단으로 이용해온 것이 근대 스포츠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이 글을 쓰면서 나는 나의 이런 견해가 한국 독자들에게 어느 정도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지 약간 불안하기도 하다. 왜냐하면 2년간의 한국 체류 중에 스포츠 내셔널리즘에 무방비 상태인 사람들을 많이 만났기 때문이다. 월드컵 축구대회 때의 ‘붉은 악마’ 열풍을 즐기는 듯한 지식인의 얘기는 내겐 당혹스러웠다. “한국인이라면 국가대표를 응원하는 건 당연지사”라는 얘기를 “아니 이 사람이?” 싶은 지식인이 입에 올렸다. 질려버린 건, 재일조선인에 대한 강연이나 강의를 할 때마다 꼭 같은 질문을 받은 것이다. “그럼, 한국 대표와 일본 대표가 경기를 한다면 선생은 어느 쪽을 응원할 건가요?”
잊을 수 없는 것은 1960년대 중반 무렵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멕시코 올림픽 축구예선 한-일전이다. ‘빗속의 결전’으로 불린 명승부였다. 그때 어린아이였던 나는 “한국팀 이겨라!” 하고 텔레비전 앞에서 외쳤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한국이란 국가를 향한 애국심에서 나온 것은 아니었다. 바로 그 무렵 한-일 협정이 체결됐는데, 일본은 끝내 식민지 지배 역사를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우매한 조선 사람을 일깨워주었다는 오만한 얘기들이 일본 사회를 가득 채웠다. 우리 재일조선인들은 최저한의 인권조차 보장받지 못한 채 무권리 상태에 방치돼 있었다. 그런 일본이 스포츠에서마저 승자가 돼 뻐기는 건 용납할 수 없다는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내가 한국팀을 응원한 것은 강자와 약자, 부자와 빈자, 다수파와 소수파가 싸울 때는 항상 후자 편에 서고 싶다는 마이너리티로서의 의지(윤리라고 해도 좋다)의 표현이었다고 생각한다.
22살의 재일조선인 4세가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고 싶다는 소박한 욕구에서 일본 국적으로 귀화했다. 정말 용납할 수 없는 것은 이처럼 ‘귀화’를 강제하는 보이지 않는 국가주의의 힘이고, 그런 강제로부터 눈을 돌리게 하는 스포츠 신화에 대한 무지몽매한 신앙이다.
이런 심리와 국가주의는 본래 다른 것이지만 그들 간에 일선을 긋는 것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이 두 가지를 묶어주는 게 가족주의적인 정서다. 축구선수 박지성은 “우리 아들”로 곧잘 불리는데 이건 위험한 비유다. 우리 아들이든 아니든 뛰어난 플레이는 아름답고 감동적인 법이다. “아들이니까 응원하는 게 당연하다. 아들이니까 이겼으면 좋겠다”는 심리는 자식 사랑에 눈먼 부모의 심리에 지나지 않는다. 국민 대다수가 이런 ‘자식 사랑에 눈먼 부모’ 심리에 빠져 있는 모습은 어리석을 뿐만 아니라 두렵기조차 하다.
더구나 실은 박지성은 그 부모의 아들이지 우리 아들이 아니다. 그것을 ‘우리 아들’에 비유하는 것은 본래 다양한 타자들로 구성되는 공공적인 사회를 ‘피를 나눈 가족’으로 구성되는 혈연공동체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사술(詐術)이다. 이 사술에 의해 소박한 서민의 심리가 국가주의에 흡수되는 것이다.
베이징 올림픽 축구 일본대표에 이충성이라는 선수가 들어 있다. 재일조선인 4세다. 올림픽 일본대표팀에 선발되려고 일본 국적으로 귀화했다. “올림픽이 없었다면 국적 변경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생을 바꾸는 큰 결단이었다”고 본인은 얘기했다. 그는 베이징에서 “히노마루를 등에 달고 싸운다”는 결의를 요구받을 것이다. 예컨대 한-일전에서 이 선수가 활약한다면 한국 사람들은 그를 어떻게 볼까? ‘민족의 배신자’일까, 아니면 ‘스포츠는 국경을 넘는 아름다운 신화’일까? 이와 같은 두 가지 시선은 어느 것이나 천박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한 사람의 뛰어난 스포츠 선수가 귀화 따위를 하지 않더라도 마음껏 플레이를 할 수 있는 것, 곧 스포츠를 국가주의로부터 해방하는 것이 아닐까. 그것을 위한 첫걸음은 올림픽에서 국기와 국가를 추방하는 일이다.
22살의 재일조선인 4세가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고 싶다는 소박한 욕구에서 일본 국적으로 귀화했다. 그것을 비판하기는 어렵지만, 내게 만일 그와 찬찬히 얘기할 기회가 있었다면 귀화해선 안 된다고 조언해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용납할 수 없는 것은 이처럼 ‘귀화’를 강제하는 보이지 않는 국가주의의 힘이고, 그런 터무니없는 강제로부터 눈을 돌리게 하는 스포츠 신화에 대한 무지몽매한 신앙이다.
그러한 내가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봐 온 올림픽 중에서 가슴 깊이 감동한 장면이 하나 있다. 1968년 멕시코 올림픽. 육상 남자 200m 결승전. 고교생이었던 나는 그것을 흐릿한 흑백 텔레비전 중계로 보고 있었다. 미국의 스미스 선수가 우승하고, 같은 미국의 칼로스 선수가 3위에 입상했다. 시상대에 선 그들은 미국 국기가 게양될 때 검은 장갑을 낀 주먹을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블랙파워 설루트’(blackpower salute). 공민권운동 중에 퍼져나간 인종차별 반대 의사표시다. 그것은 또한 베트남전 반전 의사표시이기도 했다. 그들은 국가를 등에 업고 싸운 것이 아니라 강대한 국가를 상대로 싸웠던 것이다. 얼마나 눈부신 장면이었던가!
스미스와 칼로스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징계를 받아 국가대표팀에서 제명·추방당했다. 귀국 뒤에도 그들은 예컨대 경기단체 임원이 된다든지, 유명팀 지도자가 되든지, 올림픽 메달리스트라면 당연히 받을 수 있는 특권을 모두 박탈당했다. 그런 그들이 수십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해야 할 일을 했다. 후회하지 않는다”고 한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들처럼, 고난에 차 있지만 긍지 높은 자세를 히노마루를 등에 단 이충성 선수에게 바라는 것은 가혹한 요구일까.
서경식/도쿄경제대학 교수
번역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