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종의 라틴화첩기행] 서평단 알림
김병종의 라틴화첩기행 문학동네 화첩기행 5
김병종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서평단 도서]
  우연찮은 기회에 김병종 화백의 ‘라틴화첩기행’을 손에 쥐게 되었다. 겉표지를 살핀 후 스르르 책장을 넘겨본다. 경쾌하고 선굵은 그림들이 가득하다. 내 머릿속, 낯설음과 미지의 신비감으로 희미하게만 그려지던 남미. 아! 이 책은 그러한 남미의 미술작품들을 소개하는 책이로구나! 그런데 어쩌나. 그림에 대한 조예가 턱없이 부족한 나에게 남미의 그림이라니? 물론 서구 중심의 사고에 짙게 길들여짐에서 비롯된 발상이겠지만, 서구의 유명한 명화 감상조차 서툰 내게 라틴 그림이라니, 무언가 한층 더 어색하고 어려워만 보인다. 미술에 조예가 있는 사람들에게나 맞는 책이 아닐까, 과연 이 책이 내 머릿속 희미한 남미의 이미지를 한층 확연하게 그려줄 수 있으려나, 의문이 줄을 잇는다. 혹시 이 책을 얼핏 딱 보고 나와 같은 의문을 품는 사람이 또 있지 않을까?

  그.러.나. 막상 책을 제대로 펴보시라! 이 책은 전문가적 입장에서 단순히 라틴의 미술작품들을 소개하는 책이 아니었다. 그러한 오해는 ‘화첩기행’이란 단어의 뜻풀이의 잘못에서 비롯된다. 먼저 전적으로 ‘기행’에 무게를 두라. 이 책은 김병종 화백의 남미 여행을, 그 여행에서 그가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글과 그림이란 그의 ‘언어’로 표현한 기행문이다. 즉, 책에 실린 많은 그림들은 남미 작가들의 작품이 아닌 김화백이 자신의 감상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한 경쾌한 언어인 것이었다. 글만이 아닌 글과 그림으로 쓰여진 기행문, 그것이 바로 ‘화첩기행’이다. 괜한 뜻풀이의 오해로 책장을 덮어버리지 말고, 용기내어 책장을 넘겨보시라. 라틴의 음악이, 문학이, 미술이, 자연이, 역사가 당신을 향해 손짓한다.

  김화백의 라틴화첩기행은 크게 여섯 장으로, 그가 지나온 국가인 쿠바, 멕시코, 아르헨티나, 브라질, 칠레, 페루 순으로 구성되어있다. 쿠바에서는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의 흔적을 좇아 쿠바 재즈에 취하고, 허밍웨이가 드나들던 카페와 머물던 집들을 방문하여 그를 회상하고, 쿠바의 연인 체 게바라와 그의 정신적 사부인 호세 마르티의 족적을 따라가며 다시금 혁명을 떠올린다. 멕시코에서는 벽화운동의 기수였던 디에고 리베라와 페미니스트 화가 프리다 칼로의 작품들을 둘러보며 삶을 반추해보고, 혁명기념탑을 찾아가서는 소설가 카를로스 푸엔테스를 만난다. 아르헨티나에서는 환상문학의 대가 보르헤스가 걸었던 거리를 걸으며 그의 소설 속으로 들어가보고, 탱고의 발상지와 유명 탱고극장들을 찾아 온몸으로 쓰는 시 탱고에 몸을 맡긴다. 브라질에서는 삼바에 대한 환상을 현실로서 직면해보고, 코르코바도 산 정상의 거대한 예수상의 광경에 압도당하면서도 예수상 뒤편으로 펼쳐진 세계 최대의 빈민촌을 위해 기도를 올린다. 칠레에서는 피로 얼룩진 현대사를 작품에 투영시키는 소설가 이사벨 아옌데, 불과 얼음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삶을 칠레의 풍경에 되그려본다. 마지막 여행지 페루에서는 잉카제국의 옛 수도 쿠스코와 공중도시 마추픽추의 광경에 감탄함과 동시에 서방세계의 야만으로인해 조락해버린 잉카의 후예들에 가슴 아파하며, 로맹 가리의 소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는다’ 속의 리마 해변을 거닐며 희망과 고독과 절망에 대하여, 그 모든 것들의 바스러짐에 대하여 긴 생각에 젖는다.

  어떠한가, 라틴의 손짓이 느껴지지 않는가.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 디에고 리베라, 로맹 가리, 파블로 네루다 등등이 그저 낯설기만 하다고? 괜찮다, 상관없다. 나 또한 그들이 그저 낯설기만 했으나 이 책을 통해 그들을 자연스럽게 만나고 호감을 갖고 친해지게 되었으니, 영화를 찾아보고 소설을 읽고 시와 그림을 검색해가며. 이렇듯 이 책은 김화백이 여행길을 통해 만나고 느낀 남미의 음악, 문학, 미술, 자연, 역사를 글과 그림을 통해 독자의 가슴에 나누어주려 한다.

  물론 남미의 정치·사회 문제에 대한 언급이 부족하고 남미인들의 낙천성을 정말 ‘낙천적’으로만 이해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가능하겠으나 이 책은 어디까지나 기행문이란 것, 그 사실을 떠올려보면 되겠다.

  블랙커피를 한 잔 내린다. 그 향. 그 맛. 그 내음. 그 울려퍼짐. 오늘은 왜인지 남미의 뜨거운, 정열의 태양이 느껴져 지그시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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